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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명의 18세 투표권 시대, 선거 교육 제대로 해야

일취월장7 2020. 1. 3. 17:40


50만 명의 18세 투표권 시대, 선거 교육 제대로 해야

[기고] 18세 선거권과 선거교육


패스트트랙에 올려졌던 18세 선거권이 통과되어 올해 총선부터 적용된다. 4월15일 치러지는 21대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50여 만 명의 18세 유권자들이 자신의 대표를 직접 선출한다. 올해 고등학생 신분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될 유권자는 약 6만 명이라고 한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만 18세가 되는 대학생이나 사회진출생들이 모두 자신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 19세 선거권은 학교의 정치판 운운하면서 실은 40만 명 이상의 대학생과 사회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한 것이었다. 이런 불합리함이 이제라도 해소된 것이 늦었지만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제야 비로소 OECD 회원국 중 유일한 19세 선거권 후진국이라는 불명예도 벗어나게 되었다.  

OECD 국가 중 가장 늦게야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룬 18세 선거권에 대해 그동안 선거권 인하를 반대해 왔던 일부 세력들은 이제 학교와 교사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지난 12월 24일 교총은 모의선거교육 중단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서울시교육청에 전달했다. 교총이 모의선거교육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는 학교에서 모의선거교육이 이루어지면 정치편향 교육과 교실 정치장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교총은 모의선거 교육을 중단하고 교실의 정치 중립성 확보 방안부터 마련하라고 교육청에 요구했다. 12월 27일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선거 관련 교육을 선거관리위원회 소속 선거교육 전문교사가 선거교육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교총, 자기 얼굴에 침을 뱉다 

교총은 초·중·고등학교에서 아이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이 학교에서 모의선거 교육을 하면 정치편향교육이 되고 교실이 정치장화 된다고 얘기하는 것은 교육자 스스로 자신들은 교육의 정치중립성을 지킬 능력도 의사도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교육전문가를 자처하는 교육자들이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며 자신들은 교육전문가로서의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고백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도록 하는 교육적 원리를 견지하고, 이를 위한 적절한 교육방법을 구사하는 능력과 태도가 교육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전문성의 영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주입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육일 뿐이다. 교육전문성을 갖춘 이들은 강요와 주입은 학습자의 주체적 성장을 방해하며 언제든 시간이 지나면 잊히거나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education 이라는 단어가 '무언가를 외부에서 집어넣다'가 아니라 학생들 내면의 잠재성과 가능성을 '밖으로 끄집어내다'라는 말을 뜻하는 educare에서 연유했다는 기본적인 사실도 모르거나 혹은 부정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정치편향성이 나타날 우려가 있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까 염려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면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주체는 바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육자 자신이지 교육청이나 어떤 기관에 요구할 일이 아니다. 교육자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단체인 교총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행정기관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 마디로 코미디 같은 일이다. 이런 요구를 교육청에 하는 교총이 얼마나 비주체적인 조직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교총의 선거교육 중단 요구는 교육기본법이 학교와 교사들에게 명하고 있는 민주시민교육을 방기하는 것이며, 교육이 텍스트에 갇힌 지식교육이고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모의선거 교육을 하면 교실이 정치판이 된다면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나라들에서 실제 선거 시기에 학교 모의선거를 실시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심지어 미국은 투표지원법에 학생 투표자 교육을 위해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캐나다에서는 2015년 캐나다 연방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학생 선거에 6,662개 학교에서 922,000명의 학생들이 선거에 참여했으며, 2017년 9월에 실시된 연방총선 때 전국적으로 3,490개 학교의 총 95만 8462명의 학생들이 등록하여 모의선거 교육을 실시한 독일은 2022년에 전국의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100% 모의선거를 실시하는 것을 국가정책으로 추진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런 세계적인 교육현상에 대해 교총은 어떤 답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홍일표 의원, 교사의 존재를 지우다 

홍일표 의원은 모의선거 교육을 하려면 선관위에 신고해야 하고, 선관위가 파견한 전문교사가 해야 한다는 내용의 선거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동 발의한 13명 의원 중 한 명을 빼고 모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다. 이 법안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 발의된 법안 내용 중 선거교육 교사가 정치편향교육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만 의미가 있는데 이는 공무원의 중립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 제9조와 완전히 중복되어 특별히 추가될 필요가 없다.  

'선관위가 파견한 교사'만이 선거교육을 해야 한다는 개정안은 한 마디로 '선생들 너희들 다 비켜. 선거교육은 선관위만 할 수 있어'라는 말이다. 이걸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은 가급적 다의적 해석의 여지가 없이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개정안에서 말하는 '선관위가 파견한 전문교사'란 누구를 말하는가. 개정안 제안이유에서는 '선관위 소속 선거교육 전문 공무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초중등교육법 제21조에서는 교사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교육부장관이 검정·수여하는 자격증을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다른 문서도 아닌 법조문에서 쓰는 용어는 정확하고 엄격해야 한다. 선관위 산하에 선거연수원이 있고 선거연수원 제도연구부에 4명의 전임교수들이 있지만 선관위 조직 그 어디에도 교사들은 단 한 명도 없다. '선관위 소속 선거교육 전문 공무원'이 개정안에서 말하는 '교사'이려면 국어교사, 수학교사처럼 선거교육교사제도가 생기되 학교가 아닌 선관위에 소속된 교사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를 선발한 교육부가 선거전문교사로 선관위에 교사를 파견하고 선관위는 다시 학교에 그 교사를 파견해야 한다.  

2019년 현재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238,499개 학급이 있다.(2019, 교육통계서비스) 이 중 10%만 모의선거교육을 한다고 가정해 보면 23,499 학급에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만도 '선거교육 전문교사'가 몇 천 명, 최소 수 백 명은 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들 '선거교육 전문교사'들이 선관위에 소속되어 있되 정상적인 교사로 근무하려면 선거 시기 모의선거교육은 물론 연중 내내 선거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도대체 이런 교사제도란 무엇인가.  

이렇게 장황하게 개정안에 담긴 '선거교육 전문교사'에 대해 논한 것은 개정안이 현실에 존재하는 학교교사들을 부정하려다 보니 전혀 비현실적이며 동시에 교사자격, 교사임용제도 등과 관련해 교직사회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에 선거제도를 가르치는 수십 만 명의 초중등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교과서에 담겨있는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정당제도 등을 수십 년 가르쳐 왔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개정안은 이들 교사들을 한순간에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학교교육 현장에서 삭제해버린다. 개정안 발의의원들은 입법권자라는 권한을 이용해 교사들은 선거교육 하지마라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이다. 교사 일반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과 혐의를 법안을 통해 노골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45만 교사를 잠재적 범법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걸 개정안 발의자들은 알고나 있는 걸까. 
  
왜 모의선거 교육인가

교육기본법 제2조는 우리나라 공교육 목적이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선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민주시민이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하는 학교는 선거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 선거교육은 주로 선거제도에 관한 지식교육에 머물러 있었다. 보통·평등·비밀·직접선거라는 선거 4원칙이나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지방선거 제도를 열심히 배우는 것만으로는 정작 실제 선거에서 유권자로서 제대로 투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익히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19세 이상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첫 투표권을 행사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선거제도에 관해 배웠을 뿐 정작 선거에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 배우지를 못했다. 

민주주의는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태도로 체득되는 것이며 구체적인 삶의 경험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민주시민성에 대한 국제비교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은 많으나 민주적 가치와 태도의 내면화 정도는 세계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청소년의 민주시민역량: 국제비교와 지원체계 개발, 김준홍, 2013) 학교가 길러줘야 할 민주시민의 자질을 위해서는 민주주의나 선거제도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건강하고 합리적인 유권자의 의식, 태도,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한 나라의 정당과 의회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에 비례한다. 우리나라 국회가 식물국회, 무능국회, 심지어는 폭력국회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전 시기 학교에서 이루어졌던 유권자교육(선거교육)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당 역시 정책이 아니라 파벌과 꼼수로 움직이고 있다. 선거 때마다 패션쇼에서 옷을 바꿔 입듯이 당명을 갈아치우고 최근에는 선거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비례 전용 정당까지 만든다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는 유권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정당들을 용인해주고 있는 유권자 수준의 결과물이란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권자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교과서의 지식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모의선거는 실제 입후보한 정당과 후보들을 놓고 그들이 내건 공약을 분석하며 비교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모의투표를 함으로써 실제 유권자가 되어 보는 교육이다. 이 과정이 학교 교육과정으로 진행되는 것은 교과서 지식을 실제 경험과 연결시켜 교육적 효과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여준다. 모의선거는 실제 선거와 최대한 유사한 과정과 교육도구(선관위, 기표대, 기표용구 등) 및 환경 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자신의 투표권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체험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실제 연구결과에 따르면 모의선거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선거의 중요성을 훨씬 생생하게 인식하고 향후 실제 선거권을 얻게 되면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갖게 되는 비율이 높아진다. 참여적 시민성, 적극적 시민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이런 교육을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최소 서너 번만 받아도 실제 선거에서 훨씬 합리적이고 현명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는 전국 고등학교 학생들의 1/8이 실제 투표권을 행사한다. 이들이 생애 첫 투표에 임하면서 학교에서 선거의 실제에 대해 사전교육을 받는다면 훨씬 유능한 유권자, 준비된 유권자로 투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교복 입은 유권자가 생겨난 지금이야말로 학교 교육과정으로 선거교육을 제대로 해줄 때 교총과 자유한국당이 그렇게도 우려하는 학교와 교실이 '정치판'이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학교가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선거에서 유권자가 지켜야 할 의무나 책임, 반드시 지켜야 할 선거법 등을 어디에서 학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을 실제 선거과정을 재현하는 생생한 체험교육인 모의선거를 통해 학습할 때 가장 교육적 효과가 높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 아닌가. 공교육기관인 학교는 오히려 이런 교육으로 국민의 주권자로서의 올바른 권리행사를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다. 

10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영어 한 마디 못하는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에서 그대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10년 영어교육에도 영어 한 마디 못하는 것에 대해 학교와 교육당국은 미안해하고 반성해야 하지만 그 결과는 개인적 차원에서 감당해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2년 학교교육에도 불구하고 주권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하지 못한 채 선거에 임해야 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 전체 차원에서 감당해야 할 문제가 된다.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일인 것이다. 모의선거교육이 지금에야 본격 시작되는 것은 늦어도 너무 늦은 일이다. 학교와 교사들에 대한 막연한 불신은 모의선거교육 중단을 요구하거나 교사를 배제한 선거교육 법으로가 아니라 선거교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높이고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자신의 공약과 정책을 아이들 발달단계에 맞게 제작하여 학교에 제공하는 것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투표권 외 일체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어 과도할 정도로 자기검열이 내면화되어 있는 이들이다. 해고와 처벌을 각오하지 않으면 선거법 저촉은 물론 정치적 발언도 스스로 금기시하거나 자제하고 있는 이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교사들이 너무 위축되어 선거교육이 제한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교육전문가들의 단체라면 교총은 선거교육을 위한 다양한 교육방법과 교육 자료들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인 선거교육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문가적 고민과 역할을 해야 한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유권자들의 민주시민 역량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특히 비록 일부이지만 고등학생들이 유권자가 된 지금에야말로 이런 고민은 국민의 대표가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숙제다. 18세 선거권 시대 우리 사회 전체가 협력해야 잘 다져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