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일취월장7 2019. 12. 9. 10:14

법무부는 그 여성에게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했다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① 법정에서의 이주여성 잔혹사
2019.07.15 14:32:56

지난 7월 6일 오후 미국에 거주하는 페이스북 친구가 급하게 메신저를 보냈다. "변호사님 도와주세요!" 페이스북에 한 베트남 여성이 어린아이 앞에서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고 구조요청을 하는 영상이 올라왔으니 내가 나서서 확인을 하고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뒤늦게 메신저를 확인하였는데 다행히 이미 여성단체 등이 나서서 여성과 아이를 구한 상황이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여러 예가 떠올라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음날 회사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중, TV를 통해 이 사건을 두고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서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는 '애국 보도’를 보았다. 누가 애국의 공든 탑을 무너뜨리나. 베트남 국적의 부인을 폭행한 한국 남자가? 아니면 한국인 남편의 폭행 사실을 알린 베트남 여성이? 애국의 이름으로 개개인의 삶을 저울질하는 공든 탑이라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애초부터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을지.

나는 꽤 오랫동안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이주여성법률지원단의 일원으로 이주여성들에게 법률지원을 했다. 정기적으로 센터를 방문하여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이혼 사건 변론 등의 지원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결혼 이주를 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고,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카자흐스탄 등 다양한 아시아 국적의 여성들이었다. 상담하는 여성들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으나, 한결같은 내용은 남편과 시집 식구들의 학대, 자신의 출신국이나 출신 가정에 대한 무시와 모욕, 경제적 어려움 등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진행할 때마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고, 사과의 말로 상담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주 여성들의 잔혹사는 이미 여러 사례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져 있고, 나 역시 센터에서 상담과 변론을 하면서 목격했다. 이들의 잔혹사는 죽도록 맞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심지어 법정에서조차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잔혹사의 실체다.

법원에서 머리 박고 자해하는 남편...그래도 친권은 아빠에게?


A씨는 베트남 국적이었고, 어렵게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센터에서 마련한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부친이 대학교수이자 작가인, 꽤나 유복한 집안의 자제였다. A씨와 스무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남편은 무슨 사연인지 부모와 연을 끊고. 택시운전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녀를 집에 가두고, 여권을 뺏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친정으로 돈을 빼돌릴까 의심하여 현금은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의심이 날 때마다 폭행했다. A씨는 어렵게 센터의 도움을 받아 아이와 함께 남편으로부터 탈출했고, 나는 그녀의 이혼 소송을 도왔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남편이 무서워서 숨어 있던 그녀였으나, 자녀를 남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프랑스, 미국과 천년을 싸워 이겨낸 베트남 사람답게 용감했다. 남편은 A씨가 한국으로 돈을 벌러 오기 위하여 위장 결혼을 했다, 베트남에 남자가 있었다는 등 거짓말을 하면서 그녀에게 결혼 파탄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아이를 뺏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연을 끊고 살던 부모까지 어떻게 설득하였는지 법정에 등장했다.  

재판 진행 중 판사는 면접교섭과 친권자를 정하는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법정에 데려오라고 하였다. A씨는 남편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와 남편의 면접교섭에 협조하기 어려울 때였다. 나는 그녀와 법정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A씨와 함께 온 센터의 자원봉사자로부터 다급히 전화가 왔다. 남편이 깡패들을 동원하여 법정 앞에서 애를 납치해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법원으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도 사무실에서 폭력 상황에 혹시나 무기라도 될까 싶은 마음에 커다란 우산을 하나 챙겨 나갔다.  

법정 앞에서 벌어진 광경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아이를 납치해 가다 실패한 남편은 괴성을 지르며 법원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자해를 하였고 피를 흘리며 A씨와 주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경비원들도 우왕좌왕하며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나는 그녀와 아이를 데리고 피신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재판이 있을 때마다 법원의 경비들이 동원되고 A씨와 나는 법원 경비원의 경호를 받는 VIP(?) 신세가 되었다. A씨와 나는 처음부터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생명의 위험까지 느끼는 상황임을 판사에게 호소하면서 아이와 남편의 면접교섭이 시기상조임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판사는 무조건 아이는 아빠와 만나야 한다는 원칙만을 강조하면서 무리하게 아이를 데려오도록 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배를 동원한 아이 납치와 폭력 상황이 벌어졌다. 처음부터 판사는 이주여성인 A씨의 친권 자격과 양육능력을 의심하였다. 비록 폭력 아빠라도 한국인이며 중년 남자인 남편 쪽이 아이 양육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자주 내비쳤다.  

이주여성의 이혼 사건을 변론하다 보면, 이주여성의 자녀에 대한 친권 및 양육 자격에 대한 의심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남편이 아무리 폭력을 행사하고 아내를 학대해도 이주여성의 친권과 자녀 양육 능력은 의심 받는다. 여기에 한국인 남자의 자식을 허락도 없이 이주여성의 본국으로 데려가 버릴 상황에 대한 의심까지 얹어진다. 한국에서도 자격이 없고, 본국으로 데려갈 수 없는 모성이 바로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모성인 셈이었다. A씨는 비록 어렸지만, 아이를 폭력적인 아빠에게 내어 줄 수 없었고, 지키고 싶어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을 확보하고 이혼할 수 있었다. A씨는 현재 한국 국적을 취득하여 한국에 살며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고, 전남편의 위협은 상존하고 있다, 아이마저 이런 엄마가 가진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송이 끝난지 수년이 지났지만 가끔씩 한밤중에 A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다. '변호사님 저 많이 힘들어요.'

'품행이 단정하지 못해' 국적 취득 불가? 

캄보디아인 결혼 이주여성이었던 B씨는 이혼소송을 하였으나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였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학대로 인한 이혼이었으나, 그녀의 경제력과 캄보디아로 아이를 데리고 갈 가능성 등의 이유로 친권을 확보하지 못했다. 다행히 B씨는 비자를 받아 한국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고, 양육비를 지급하면서 자녀를 면접 교섭하며 지낼 수 있었다. B씨는 결혼을 이유로 한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국적법에 따라 일반 국적 취득 요건을 갖추어(거주기간, 일정한 재산) 국적 취득 신청을 하였다가 국적 취득이 거부됐다. 나는 법무부의 B씨에 대한 국적 취득 거부처분이 위법하다는 행정소송을 지원하였다.  

법무부가 그녀의 국적신청을 거부한 이유는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B씨는 국적 취득을 위한 거주 요건, 일정한 재산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고, 거주기간 동안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었으며, 한국 국적인 자녀를 위하여 안정적으로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고 했다. 재판과정에서 법무부가 밝힌 B씨의 '품행 미단정 사유'는 결국 '그녀의 잘못으로 이혼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B씨의 잘못'에 대한 증언 청취를 '이혼한 전남편과 시어머니'에게 했다. 그들은 B씨가 '돈을 벌기 위해 위장 결혼을 하였으며, 아이도 낙태를 하려는 것을 겨우 말려서 낳았다' 등의 내용으로 진술서를 법무부에 제출하였고, 법무부는 그 진술에 근거하여 그녀의 품행이 단정치 못하니 한국 국적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국적 부여에 대한 것은 다음 기회에 국적 취득 신청을 할 수 있어 법무부의 재량이 매우 광범위하게 인정되기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경우도 드물고, 승소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B씨의 경우는 이례적으로 법무부의 국적 거부처분이 재량권 남용으로 위법하다는 판단을 받았고, 승소할 수 있었다. 도대체 B씨의 품행 단정 여부를 이혼한 전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물은 법무부의 뜻은 무엇일까. 처음부터 법무부는 이주여성에게 국적을 주기 싫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으로 시집오는 혜택을 누리고도 감히 한국 남자와 이혼한 그녀에게. 

영화 <파이란>을 더이상 좋아할 수 없는 이유 

결혼 이주 여성하면, 나는 영화 <파이란>을 떠올리곤 했었다. <파이란>은 2001년 개봉한 송해성 감독의 영화다. 파이란은 중국인 여성인데,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찾아 한국에 오기 위해 삼류 깡패인 강재와 위장결혼을 한다. 강재는 어느 날 잊고 있던 법적 아내인 파이란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야 그녀를 찾게 되고, 그녀의 유품 속에서 자신과 결혼해준 강재에게 고마움과 절절한 사랑을 전하는 일기를 읽게 된다. 강재는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절절한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청초한 중국배우 장백지와 강재 그 자체였던 배우 최민식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하지만 이주 여성 변론을 하게 된 뒤부터 나는 영화 <파이란>을 더 이상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좋아할 수가 없었다. 청초하고, 순종적이고, 순수한의 사랑의 결정체로 그려지는 이주 여성의 모습. 이는 다름 아닌 한국 남성들의 판타지다. 한국 남성에게 가난한 아시아 국가의 여성과의 결혼은 판타지의 구현이어야 하는데, 이는 결혼과 동시에 깨진다. 이주 여성들은 청초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순수하지만도 않은, 살아있는 여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 남성들, 특히 국내 여성과 결혼을 성취하지 못한 남성들은 한국보다 가난한 아시아의 다른 여성을 찾게 되고,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결혼을 한다. 여러 명의 여성을 하루 만에 만나고, 그중 한 명을 선택하여 다음 날 결혼하는 경로가 부지기수다. 부강한 한국에 대한 동경을 품은 이국의 어린 여성들은 속이기 쉬운 대상이고, 남자들은 나이, 직업, 질병 여부, 결혼 여부 등 많은 것들을 속이고 결혼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결혼 소개업자들은 짭짤한 수입을 챙긴다.  

큰돈을 주고 데려온 어린 아내가 청순하지도, 순진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이다. 또 본전도 못 찾았는데 아내가 도망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 도망갈 것을 우려하여 한국말은 배우지 못하게 집안에 가둬두고, 본전 생각에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내가 변론한 사건에서, 남편이 돈을 벌어오라고 이주 여성을 성매매업소에 팔아넘긴 사건도 있었다. 집안 남자들(시아버지, 시동생들)의 성욕 해소 대상으로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이 여성은 여성단체의 도움으로 탈출하였으나,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위자료 청구소송 만을 변호사들에게 맡기고 한국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자국으로 돌아갔다. 견디다 못한 아내가 도망가는 일들이 발생하자, 급기야 결혼 알선업체들은 '우리 업소가 소개하는 여성은 도망가지 않습니다'라는 업소 광고를 한 적도 있다. 아이를 낳아도 시어머니가 뺏어가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한국의 혈통은 한국 사람이 키워야 한다는 이유로.

많은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결혼알선업체에 대한 제재도 강화되어 가고 있고, 국적 취득 요건도 개선하여 남편의 책임으로 이혼하게 되는 경우 한국 거주 기간을 채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여전히 이주여성들은 죽도록 맞거나, 도망쳐서 불법체류자가 되고 있고, 십수년을 한국에서 살아도 제대로 한국말조차 못하는 환경에 살면서 온갖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고 있다. 제도가 강화되었다고 하나 여전히 사각지대가 넘쳐나고, 강화된 제도조차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가짜 결혼이라는 의심의 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국적 취득요건으로 이주 여성의 목을 조르고, 개선되기 어려운 언어 장벽은 이들을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 

간단하게 제도 몇개 개선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결혼 못한 나이 많은 한국 남자들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가난한 나라의 이주 여성과의 손쉬운 결혼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자. 아무 제약 없이 돈만 내면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게 했던 이주여성과의 혼인정책은 이주여성의 인권을 극심하게 유린하는 결과를 낳았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정책도 나오지 않는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의 '여성을 위한 변론' 연재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김수정 변호사는 호주제 위헌소송 대리인단, 낙태죄 위헌소송 대리인단 단장으로 활동하는 등 오랫동안 여성과 아동을 위한 변론을 해온 변호사입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한국여성의전화 전문위원,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 등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사회경험 풍부한 60대는 성적 수치심 크지 않다는 법원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②여전히 '피해자다움' 강요하는 법원
2019.08.09 15:13:08



광주고등법원(제1행정부 부장판사 최인규)은 지난 7월 17일 60대 여성 택시운전기사를 성추행한 초등학교 교감에 대한 해임처분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이고, 진술 내용상 성적 수치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라는 이유에서였다.

위 판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수십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은 많이 맞아서 덜 아픈 것인가', '나이들은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느냐',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강화하는 판결'이라는 등 비판을 했다. 위 판결은 나이 많은 여성(섹시하지 않은 여성), 사회 경험 많은 여성(성경험이 많은 여성)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잘못된 통념에 근거한 것이라는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위 판결을 보고 '요즘에도 이런 판결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판결문에 등장하는 시대에 말이다. 과거 피해자의 사회적 경험, 성경험 유무, 나이를 근거로 피해자인지 아닌지를 노골적으로 법정에서 다투던 때가 있었다.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대놓고 피해자가 처녀인지 물어보고, 사건 당시 피해자의 옷차림, 평소 행실까지 샅샅이 파헤쳐 무죄를 입증하려고 했다. 요즘은 최소한 대놓고 저렇게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왔는데, 위 판결을 보니 내가 너무 앞서간 게 아닌가 반성했다.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유발한 남성의 성적 충동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이는 종종 성적 충동을 유발한 피해자의 행실 책임론으로 귀결되어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형을 감면받거나, 심지어 무죄를 받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야한 옷을 입었거나, 평소 행실이 방정하지 못했다거나, 남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남성과의 관계를 허락한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등 여성이 남성의 성적 충동을 유발해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성폭력 재판에서 종종 나이가 많은 여성이거나 예쁘지 않은 여성에게는 남성의 성적 충동이 생길 리가 없다면서 위 광주고등법원 판결처럼 혐의를 부정하는 논거로 인용된다.

과연 성폭력 범죄가 피해자가 유발한 남성의 성적 충동의 결과물인가. 경찰청에서 집계한 성범죄 통계 분석결과를 보면, 전체 성범죄에서 40대 이상 피해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4. 9%(2012년), 19. 5%(2016년)에 이른다. 이처럼 성범죄 피해자 5명 중 1명은 40대 이상 중.노년층이다. 또한 여성가족부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위탁하여 수행한 '2017년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동향분석'(2016년 1년간 유죄판결이 확정된 신상정보 등록대상자의 판결문 분석)에 따르면, 아동 청소년 성범죄 피해자의 평균연령이 14.6세이고, 19.7%가 13세 미만의 피해자이며, 6세 이하의 피해자도 2.7%(105명)를 차지한다. 이러한 통계치는 무엇을 말하는가.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의 나이, 외모, 상황에 관계 없이 일어난다. 6세 이하의 어린아이나 70대 노인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취약한 상황의 여성들이 주로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위 통계치가 말해주듯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로부터 유발된 남성의 성적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피해자의 나이, 외모, 의상, 성경험 유무, 사회적 경험 등은 피해자가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인지 여부를 따지는 데 전혀 고려대상일 수 없다.  

1960년대 성폭력 사건 피해여성이 억울하게 실형을 살게 된 이유는...


최근 나는 1960년대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하나 알게 되었다. 2018년 미투 열풍이 뜨겁던 때, 한 여성이 평생을 가슴에 품은 사연을 갖고 여성단체를 찾아왔다. A씨는 성폭행 피해자였음에도 오히려 남자에 대한 중상해범으로 기소되어 6개월 이상 감옥생활을 했다. 그 억울함을 평생 품고 살아오다 미투 열풍을 보면서 용기를 내서 여성단체를 찾아오신 것이다. 지금이라도 본인의 억울함을 풀 길이 있는지, 방법이 있다면 끝까지 싸워 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A씨의 사연이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라는 영화의 내용과 유사하여 깜짝 놀랐다. 배우 원미경이 주연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가정주부인 한 여성이 젊은 청년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상황에서 청년의 혀를 깨물었는데, 오히려 청년은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하고 혀를 깨물어 자신에게 상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구속된 후 1심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천신만고의 법정 투쟁 끝에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살까지 시도하게 되는 등 여성에 대한 갖은 편견에 무기력하게 노출되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성단체를 찾아온 A씨는 사건 당시 만 19세였고 성폭력범은 25세의 청년이었다. A씨는 자신의 집 앞에서 지인과 함께 찾아온 남자를 처음 만났고 남자가 잠깐 걸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집요하게 매달려 집에서 150미터 정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갑자기 돌변하여 A씨를 쓰러뜨리고 키스를 하려고 하였고 도망가려는 그녀를 세 번이나 붙잡고 쓰러뜨렸다. 바닥에 쓰러진 A씨는 실랑이 끝에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남자의 혀를 깨물어 혀가 일부 절단되었다. 며칠 뒤 남자는 A씨가 자신의 혀를 끊었다는 이유로 1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녀의 집에 침입하여 식칼로 A씨의 아버지를 죽인다고 위협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A씨 부친의 신고로 남자는 체포되었다. 남자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른 A씨를 중상해죄로 고소하였고, 경찰은 그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하였으나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검찰은 A씨 행위가 과잉방위라면서 그녀를 중상해 혐의로 기소하고 구속하였다.

법원은 A씨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하여 강제키스로부터 처녀의 순결성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젊은 청년을 일생 불구로 만들었고, 사춘기의 처녀가 범행 장소까지 자유로운 의사로 따라간 것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소치이며, 이는 남자로 하여금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데 대한 도의적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초에 남자는 그녀에 대한 강간 미수나, 강제 추행으로도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특수주거침입, 특수협박으로만 기소되었다. A씨는 재판 종결 시까지 130일을 구속된 채 재판을 받았고, 흉기를 들고 A씨의 집에 침입하여 생명을 위협한 남자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고, 최종 형량도 A씨 보다 경한 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처녀성을 증명하기 위해 신체감정까지 받고, 성폭행범과 같은 재판의 피고인이 되어야 했다. 그녀는 피고인 1, 남자는 피고인 2였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 어차피 이런 험한 일 당한 처녀가 혼인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남자도 불구의 몸으로 혼인이 어려울 것이니 둘이 혼인하라는 설득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A씨는 성폭행범과의 결혼 권유를 끝까지 거부하였고, 결국 13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속된 채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한 A씨의 억울함은 평생 그녀를 지배하였고, 지워지지 않은 문신처럼 그녀의 몸에 새겨졌다. A씨는 7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 억울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여성단체를 방문했다.  

처녀의 몸으로 처음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죄는 A씨를 감옥에서 썩게 만들고 석방된 후에도 감옥 생활과 다를 바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했다. 1960년대의 '그녀'는 성폭행의 피해자는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죽도록 저항해야만 하는 순결한 여성 판타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감히 낯선 남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 그것 자체가 죄이며, 죄지은 여인이 앞날이 창창한 청년을 불구로 만들고도 결혼마저 거부하였으니 몇 달 감옥에 가두는 단죄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실화는 1980년대 일어난 일이다. 1980년대의 '그녀'는 가정주부의 몸으로 20대 청년의 성폭행을 피하려고 혀를 깨물었다가, 오히려 구속되어 재판을 받으며 유부녀가 총각을 유혹했다는 손가락질과 과거가 다 파헤쳐지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재판에서 이 여성은 총각이 나이든 유부녀에게 성적 충동을 느낄 리 없다는 통념으로 시작하여 오래전 과거까지 파헤쳐져 단죄당했다. 영화 속에서 시누이의 위증이 밝혀져 결국 무죄를 선고받지만, 성폭력 피해자일 리 없는 유부녀가 청년의 혀를 깨물어 창창한 앞날을 망친 죄는 충분히 단죄되었다. 

2019년의 '그녀'는 60대의 나이 많은, 사회 경험 많은 여성이기에 성폭력의 수치심조차 가볍게 취급당했다. 그녀들은 단지 조금 덜 노골적(처녀인지 아닌지)으로 공격당하지 않을 뿐, 여전히 성폭력 재판에서 피해자인지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고, 가해자에 의해 평소의 성격, 행실, 말 한마디가 까발려 지고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그녀'들이 있기에 


성폭력 피해자는 똑똑해서도 안 되며(똑똑한데 당할 리가 있나), 성폭행을 당한 후에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해서도 안 되며, 밝고 쾌활하게 살고 있어도 안 되며, 결혼한 경험(이혼 경험)이 있어도 안 된다(여전히 행실이 중요하다).  

이 땅의 여성들이여 이러한 점을 잘 숙지하자. 성폭력의 피해자로 인정될 만큼 젊지 않거나, 이쁘지 않거나, 정숙(?)하게 생활해오지 않았다면 더더욱 잘 숙지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이 판결문에 기록되는 세상이 왔어도, 피해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잘 숙지하지 않고 있으면, 언제 어떻게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둔갑하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은, 1960년대의 그녀들부터 2019년의 그녀들까지 온갖 모욕과 굴욕에도 멈추지 않고 싸워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1960년대의 그녀는 오랜 시간 기다려왔지만 오늘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2019년의 그녀들은 싸워서 성인지 감수성을 제대로 판결문에 새겨 넣었다. 그녀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법원이 성폭력 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우리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인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 사건에서 성폭행 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과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18노2354 판결)"



15세 소녀는 어떻게 성매매 범죄자가 되었는가

[김수정의 여성을 위한 변론] ③ 성인남성들만 사는 나라
2019.12.06 09:27:46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처벌이 관대한 이유는? 

지난 10월 미국 법무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아동 성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사이트 운영자인 한국인 손 모 씨에 대한 기소장을 공개했다. 손 씨는 지난해 3월 한국 경찰에 체포돼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이 사건으로 손 씨와 이용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되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손 씨는 1심 재판에서는 나이가 어리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으며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뒤에는 결혼도 했다. 검사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재판부는 손 씨의 죄가 무겁다며 집행유예 없이 실형 1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하였으나, 결혼해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는 점을 참작사유로 삼았다.

그렇다면, 해당 사이트 이용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부분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일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용자도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심지어 공중보건의인 한 이용자는 9세 아동 성착취 영상물 등 33개를 다운받아 소지하고 있었는데도 형사처벌되면 취업이 제한된다는 이유로 벌금형마저 선고 유예됐다. 이 정도면 처벌이 아니고 가히 대접(?)이라고 할 만하다. 명백한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이처럼 대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5세 소녀는 어떻게 성매매 범죄자가 되었는가
 

나는 국선보조인으로 성매매 혐의로 소년보호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아이들을 변호했다. 그때마다 의문을 품었던 것은 아동복지의 관점에서 보호받아야 할 위기의 아이들이 왜 성매매 범죄자 취급을 당하며 재판까지 받는가 하는 점이었다. 가출로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은 쉽게 아르바이트(알바)를 구할 수도 없고, 알바를 구해도 임금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처럼 춥고 배고프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성매매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어린 여자아이들을 찾는 성인남성의 수요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여자아이가 있다. 남자친구가 사실상 포주 노릇을 하며 여자아이에게 성매매를 시켰다. 나중에 딸을 찾은 엄마가 이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고, 여자아이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던 성인남성들이 검거됐다. 그런데 문제는 성인남성들만 성구매자로 조사받은 게 아니라, 여자아이 역시 성매매 혐의가 인정된다며 소년보호사건의 재판을 받게 됐다. 그것도 소년분류심사원에 구금된 채.  

엄마는 15세 딸 아이가 성인남성들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해 신고했는데, 아이마저 졸지에 성매매 범죄자가 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성을 구매한 성인남성들은 초범이라는 이유로,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혹은 간단한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받고 멀쩡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정작 여자아이는 성매매 범죄자로 구금되었다. 여자아이를 접견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빠 또래의 아저씨들 중 단 한 명도 여자아이의 나이를 물은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성매매 신고를 하겠다고 위협하며 돈을 주지 않거나 계속 만나 줄 것을 요구했다. 여자아이를 변호해주겠다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이가 왠지 나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른들의 바닥을 본 아이를 내가 무슨 자격으로 변호할 수 있단 말인가. 

15세로 나이가 같은 또 다른 여자아이도 있다. 가출한 아이들의 공동체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아이들이 생활비와 유흥비 명목으로 아이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채팅으로 성인남성과의 성매매를 알선하고, 성매매 대금을 착취하는 방식이었다. 남자아이들의 포주 노릇은 어른들에게 전수받은 듯 똑같았다. 여자아이는 처음에는 같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게 좋았고, 자신이 돈을 벌어 그들과 생활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아이는 외출마저 감시당하는 생활이 계속되자 무리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성구매자인 성인남성에게 사정을 말하고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대부분 도와주지 않았다. 다행히 한 성인남성이 도와줘 여자아이는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제로 성매매에 동원된 여자아이는 끝내 소년분류심사원에 구금되었다. 여자아이가 경찰에 진술한 성매매 사실 중 일부에서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대체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매매를 자발적/비자발적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인위적인 구분 때문에 피해자로 보호받아야 할 위기의 아이들이 구금되고, 처벌되고 있다. 의지할 어른도, 의지하고 싶은 어른도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성 구매자들인 성인남성들은 이처럼 취약한 여자아이들의 상태를 이용해 임신이나 성병 감염과 같은 모든 위험을 이들에게 전가한다. 그런데도 자발적인 성매매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들은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 취급을 당한다. 아이들은 처벌될까 두려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성구매자인 성인남성은 잠시 '쪽'팔리고 말면 그만. 심지어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들에게는 하나의 무용담이자 자랑거리가 된다. 얼마나 어린 여자아이와 했는지.

남성에게 유리할 때만 보장되는 아이들의 성적 자기결정권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이하 '아청법')은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미성년자)을 자발적인 경우와 비자발적인 경우로 나눈다. 자발적인 경우에는 성매매 피해 아동 청소년이 아닌 '대상 아동 청소년'이라 칭하며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발적인 경우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성매매를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보호처분은 비록 형사처벌은 아니지만 형법의 대체에 불과하기에 피해자가 아닌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똑같다.  

이에 반해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 성착취의 형태로 성매매를 명확히 열거하고 있고, '아동 성매매'라는 용어 대신 '성매매 상황에 있는 아동 성착취'라는 용어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매매에 동원된 아동은 아동의 합의나 동의 여부를 떠나 성매수 범죄의 피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서 13세 이상 아동이 성행위에 동의할 수 있다고 취급되어 성 착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했다고 간주된 아이들은 범죄자로 취급되고 보호처분에 의해 구금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신고를 못 하는 것은 물론 법률적 조력, 성폭력 피해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성매매 아동청소년의 지위를 범죄자가 아닌 피해자로 분류할 것을 촉구했다.

'탁틴내일' 등 시민사회단체는 성매매 범죄의 대상이 된 미성년자들을 '피해 아동'으로 보호하라며 '대상아동 청소년 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했고(국가인권위원회도 법 개정을 권하고 있음), 현재 개정 법안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궁박한 상태를 이용'당했음을 입증한 아동과 청소년만 피해아동으로 보겠다는 입장이다.

아동과 청소년이라는 것 외에 무엇을 더 입증해야 궁박한 상태가 입증이 될까. 50대 이상의 성인남성이 주를 이루고 있는 국회 역시 너무나 예상 가능하게도 '대상 아동청소년'을 '피해 아동'으로 바꾸는 법 개정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아니, 반대하고 있다.

2017년 대법원은 15세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어 임신에 출산까지 하게 한 49세 기획사 대표에게 무죄를 판결해 크게 논란이 됐다. 법원은 아이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성관계에 동의하였고 두 사람이 연인 사이였다는 가해 남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미성년자는 미성숙하여 어른이 보호·양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왜 성인남성과의 성적인 문제로 얽히면, 남녀 간의 사랑에 따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둔갑하는가. 

2019년 서울고등법원은 35세 남자가 채팅으로 만난 10세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술을 먹이고 양손으로 누르고 강간한 사건에 대해 항거불능의 폭행이 없었다며, 13세 미만 의제강간제로 3년형을 선고했다. 강간의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의제강간죄가 없었다면, 남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2심 재판부는 채팅으로 남자를 만난 10세 여자아이의 행실에 대한 편견에 기반해 재판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35세 성인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10세 여자아이에게 술을 먹이고 양손으로 누른 폭력을 항거 가능한 폭력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겨우 10세 여자아이라도 성인남성과의 성적 대결에서는 '아동'은 사라지고 '여자'만 남는다.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은 어느새 성적 자기결정권, 즉 '자발'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아이들을 공격한다. 성인남성의 성범죄에 대해 법과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성인 남성의 성범죄 대상이 성인 여성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피해자가 아동이라고 해도 처벌의 관대함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 아동은 사라지고 여성만 남는다. 조두순 급의 극악한 폭력을 동반하거나, 아동이 아주 어리거나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남성의 성욕은 마땅히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며, 이것을 참지 못하게 한 책임은 피해자인 여성이 진다. 심지어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에도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라는 이름으로 '유혹'과 '행실'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아이들도 피할 수 없는 '남성'이라는 이름의 권력 

앞서 예로 든 '웰컴 투 비디오 사건'처럼 아동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소비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대부분은 남성이다. 성매수자도 대부분 남성이다. 강간 등의 성폭력 범죄자도 대부분 남성이다.(2018년 경찰청이 발표한 성범죄 통계치를 보면, 유사강간 포함 강간 범죄의 절대다수인 98%가 남성이고, 피해자의 97.8%는 여성이다.)

성범죄 처벌법을 만드는 국회도, 수사기관도, 법원도 대부분 남성이 주도하고 있다. 일부 여성이 있다고 해도 남성들이 다져놓은 선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들은 가장 혹은 가장이 되어야 할 남성들의 성범죄를 '일탈 행위'로 치부하고 우대 조치한다. 불법 영상을 촬영한 남자들이 교사 및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유로 처벌이 감경(벌금형에 심지어 기소유예) 혹은 면제되는 것을 보라. '웰컴 투 비디오' 사건에서 손 씨에 대한 양형 참작사유도 결혼하여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법원이 성범죄자들의 취업을 금지시킨 직업군에 있는 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오히려 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가장의 성범죄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보다 그의 가족 부양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장이 되고 사회를 이끌어 나갈 남성들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딸을 유린한 경우에도 그 딸을 양육하라면서 석방해주기도 한다. 가장의 책임이란, 가장이 되어야 할 성인남자가 짊어진 책임이란, 이렇게 무거운 것이어서 웬만한 성폭력은 성폭력이 아니고, 성폭력이라고 해도 가장 노릇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책임만 지운다.  

남성들이어, 제발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동의했다거나 사랑했다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사랑한다면 아직은 어린 그들이 건강하게 무사히 성인으로 성장하게 지켜보아라.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라. 또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했다는 이유로 자발적이라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성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을 더 이상 아이들에게 묻지 말라. '남성'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