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유병언 음모론’에 숨은 수상한 의혹

일취월장7 2019. 6. 12. 15:27

유병언 일가…만기출소한 장남, 행방 묘연한 차남

  • 정락인 객원기자·안성모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2 08:00
세월호 참사 5년, ‘유병언 일가’ 어떻게 지내나

세월호 참사 직후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화물 과적과 조작 미숙 등을 사고의 주원인으로 지목했다. 과도한 화물 적재, 부실한 결박(고박), 미숙한 운항, 여기에 기상 악화와 인재가 겹쳐 사고가 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인천지검에 초대형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전방위 수사에 들어갔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수사력이 집중됐다. 검찰은 저인망식으로 청해진해운을 샅샅이 훑어갔다. 그리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실질적인 소유자로 지목했다.

검찰 수사는 유 전 회장 일가로 확대됐고, 차례로 소환을 통보했지만 이들은 소환에 불응하거나 이미 잠적한 상태였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을 잡기 위해 역대 최고액의 현상금을 걸고 ‘전담 검거팀’까지 꾸려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은 도피 과정에서 전남 순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핵심 피의자가 사망하면서 검찰 수사는 맥이 빠지고 말았다. 그의 일가에 대한 수사도 한계를 드러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년, 과연 유병언 전 회장 일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왼쪽부터 권윤자(부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대균(장남), 유섬나(장녀)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왼쪽부터 권윤자(부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유대균(장남), 유섬나(장녀) ⓒ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유대균, 2년형 만기출소…환수 재산 반환 승소

유 전 회장은 부인 권윤자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뒀다. 세월호 참사 당시 장남 유대균씨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자녀는 모두 해외에 체류 중이었다. 국내에 있던 유대균씨는 아버지 유 전 회장과 횡령·배임, 조세 포탈 등을 공모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부자에게 소환을 통보했지만 이들은 여기에 불응하고 잠적을 택했다. 유씨는 경기도 용인시의 한 오피스텔에 숨어 있다가 약 3개월 만인 2014년 7월25일 은신처에서 검거됐다.

유씨는 2002년 5월~2013년 12월 ‘청해진해운’ 등 계열사 7곳으로부터 상표권 사용료와 급여 명목으로 73억여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횡령)로 기소됐다. 법원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2년으로 감형이됐다.

유씨는 화장품·건강식품·전자제품 판매업체 ‘다판다’의 최대주주다. 지분 32%를 소유하고 있다. 다판다는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 연매출이 400억원이 넘는 알짜회사였다. 2012년 460억원, 2013년 4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근래 몇 년은 실적이 좋지 않았다. 2017년 매출은 160억원, 지난해는 100억원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또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6월까지 커피 관련 업체인 ‘소쿠리상사’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소쿠리상사는 그해 7월 ‘소쿠리’로, 이듬해인 2015년 3월 ‘빅마운틴’으로 회사명이 바뀌었다. 현재 대표는 이아무개씨가 맡고 있다.

2016년 7월 만기출소한 유씨는 2015년 국고로 환수된 35억원의 재산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로 지출한 수색·구조비용 등을 달라며 유대균씨를 상대로 430여억원의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이에 앞서 정부가 제기한 또 다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는 유씨가 패소했다. 정부는 유씨를 상대로 35억4000여만원 상당의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유씨에게 “정부에 75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부는 또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수습 비용과 세월호피해지원법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손해배상금 등 총 1878억1300여만원을 부담하라며 유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재판부는 유씨가 청해진해운의 경영에 관여했다거나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된 업무 지시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비용을 부담할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정부는 유대균씨를 상대로 총 2344억원에 달하는 구상금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받아낸 것은 1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 수사를 받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친형인 유병일씨와 동생 유병호씨 ⓒ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 수사를 받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친형인 유병일씨와 동생 유병호씨 ⓒ 연합뉴스

장녀, 징역 4년형… 차녀는 법적 처벌 피해

유 전 회장의 차남인 유혁기씨는 한때 아버지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그는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대주주이자 주요 계열사의 대표를 겸직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유대균·유혁기 형제인 것으로 확인됐다.

유혁기씨는 2014년 8월까지 ‘문진미디어’ 대표도 맡았다. 출판업체 문진미디어는 ‘투판즈’로 회사명이 바뀌었다. 그는 또 형 유대균씨 뒤를 이어 녹차를 생산·가공하는 영농조합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미국 영주권자인 그는 세월호 참사 당시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검찰은 유씨에게 총 5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세 번에 걸쳐 소환 통보를 했다. 하지만 그는 불응하고 잠적했다. 검찰은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령까지 내렸지만 현재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유병언 전 회장의 장녀인 유섬나씨는 40억원대의 배임 혐의를 받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프랑스에 체류 중이던 유씨는 검찰이 출석을 통보했지만 불응했다. 검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령을 내렸다.

유씨는 현지 경찰에 체포된 후 프랑스 당국의 송환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기각됐다.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국내로 입국한 그는 공항에서 체포돼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유씨는 2011년 6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자신이 대표를 맡아 운영한 ‘모래알디자인’의 자금 21억원을 컨설팅 등의 명목으로 자신과 동생 유혁기씨가 운영하는 개인회사에 부당하게 지급해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았다.

또 세모그룹 계열사인 다판다로부터 컨설팅 명목으로 25억원을 받아 챙기는 등 모두 46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다. 유씨는 모래알디자인의 자금 횡령 과정에서 수억원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도 받았다. 유씨는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가 최종 징역 4년에 추징금 19억4000만원이 확정됐다.

미국에 체류 중인 차녀 유상나씨는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별다른 혐의가 없어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 전 회장의 자녀들 중 유일하게 법적 처벌을 피하게 됐다.

유병언 형은 ‘집행유예’ , 동생은 ‘징역 2년’

유 전 회장의 형 유병일씨도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는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 대표를 지냈으며, 부친이 설립한 유성신협에서 부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 6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청해진해운에서 1억3500만원 정도를 고문료 명목으로 받았으나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다.

유씨는 검찰의 포위망을 뚫고 도피하다가 안성 금수원 인근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검찰은 그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유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동생 유병호씨는 세모그룹 계열사인 ‘사이소’에서 감사를 지냈다. 사이소는 장녀 유섬나씨가 사내이사를 맡은 회사다. 그는 2008년쯤 구원파 소유의 호미영농조합 명의로 ‘세모’로부터 지원받은 30억원(이 중 8억원은 반환)을 부동산 투기 등에 개인적으로 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유씨는 JYP 대표인 가수 박진영의 장인이기도 하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여동생 유경희씨와 남편 오갑렬 전 체코 대사를 긴급 체포했다가 이틀 만에 석방했다. 검찰은 오 전 대사를 유병언 전 회장 도피를 총괄 기획한 인물로 특정하고 ‘범인은닉 혐의’가 아닌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같은 혐의를 받은 유경희씨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친족특례조항에 따라 가족이나 친척이 범인을 은닉해 준 경우에는 법적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2014년 4월23일 검찰의 금수원 압수수색 계획이 전해진 직후 대책회의를 열어 도피 계획을 세웠고, 유 전 회장이 금수원을 빠져나온 후 신도들의 집을 거쳐 순천 송치재 별장으로 은신하는 과정에서도 유 전 회장의 의식주를 책임진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처남도 처벌받아 특히 도피와 관련해 유 전 회장으로부터 지시 사항을 직접 전달받아 도피처를 물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오 전 대사에게 징역 1년6월을 구형했지만,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유 전 회장의 부인 권윤자씨와 동생 권오균씨 남매도 사법 처리를 받았다. 대구에 기반을 둔 ‘달구벌’의 대표를 지낸 누나 권씨는 2010년 구원파 재산을 담보로 297억원 상당을 대출받은 뒤 이를 동생 권오균씨의 사업자금으로 쓴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동생 권씨는 조카인 유대균씨가 최대주주인 건설사 트라이곤코리아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계열사 자금을 경영 고문료 등의 명목으로 유 전 회장 일가에 몰아줘 회사에 수십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권씨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동생은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법의 심판대에 선 유벙언 측근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측근들도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고 사법처리 수순을 밟았다. 유경희·오갑렬 전 체코 대사 부부와 함께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총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이재옥 헤마토센트릭라이프재단 이사장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운 신도들 중 신명희씨와 김명숙씨 그리고 운전기사 양회정씨는 ‘도피 3인방’으로 불렸다. 이들은 순천 별장에서 유 전 회장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차량을 이용해 도피를 도운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법원은 세 명에게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유대균씨의 호위무사로 불리며 도피를 도운 신명희씨의 딸 박수경씨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유병언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필배 전 문진미디어 대표에게는 징역 4년이 선고됐다. 그는 고문료와 상표권 사용료 등으로 40억원을 횡령하고 292억여원을 배임한 혐의를 받았다. 계열사 돈으로 유 전 회장에게 고문료를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송국빈 다판다 대표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됐다.

계열사 돈으로 유 전 회장에게 고문료를 지급하거나 사진 전시회를 지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고창환 세모 대표에게 징역 2년6월, 변기춘 천해지 대표에게 징역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오경석 헤마토센트릭라이프연구소 대표 징역 3년, 이재영 아해 대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이강세 전 아해 대표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회사 자금을 빼돌려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노른자쇼핑 대표인 탤런트 전양자씨(본명 김경숙)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유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불렸던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는 60억원대의 경영비리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6월과 벌금 2억원이 선고됐다. 김 대표는 미국에 체류하다 검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했으나,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수사관들에게 체포돼 강제 송환됐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김한식 대표는 무리한 선박 증·개축과 부실 고박, 그리고 화물 과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0년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3년이 감형된 징역 7년에 벌금 200만원이 선고됐고 대법원에서 원심이 확정됐다. 김 대표는 2016년 3월 청해진해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재 청해진해운 대표는 채아무개씨가 맡고 있다.



‘구원파 본산’ 금수원 “일상으로 돌아왔다”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2 08:00
5년 전 혼돈에 휩싸였던 금수원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 감돌아
7월말 1주일 동안 열리는 하계수양회1만명 신도 모일 예정

“어떻게 오셨어요?” 6월5일 오후 1시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금수원에 들어서려 하자 정문을 지키던 수위가 방문 목적을 물었다. 시사저널 취재진이라고 밝히자 “누굴 만나기로 했느냐”고 다시 물어왔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언론사에서 찾아온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기사 문제 등으로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던 내부 관계자에게 전화해 ‘금수원을 둘러보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직접 정문까지 내려와 취재진을 금수원 안으로 안내했다.

5년 전인 2014년 이맘때 금수원은 ‘혼돈’에 싸여 있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그가 몸담고 있던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가 배후로 지목되면서 구원파의 본산인 금수원은 정부와 언론의 ‘표적’이 됐다. 구원파 신도들은 “정부를 향한 국민의 분노를 구원파로 돌리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구원파를 제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유 전 회장이 그해 6월12일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몇 달 동안 휘몰아친 ‘광풍’은 잦아들었지만, 정부와 언론에 대한 구원파의 ‘불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본산인 금수원 입구와 내부 ⓒ 시사저널 박정훈

유병언 추모와 관련된 행사는 계획 없어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찾은 금수원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1시간 정도 금수원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10명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유기농 채소밭과 젖소농장, 그리고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말에 기도회가 열리는 강당은 의자들만 놓인 채 텅 비어 있었다. 강당 건물 2층 한편이 예전에 유 전 회장이 사진을 찍으며 머물던 곳이다. 구원파 관계자는 “토요일 저녁에 신도들이 모일 때 외에는 대부분 지금처럼 조용하다”며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없었던 건물이 새로 들어서기도 했고, 낡은 건물 몇 채는 리모델링을 통해 깔끔히 새 단장을 했다. 올해 7월말에는 1주일 동안 하계수양회가 열릴 예정이다. 매년 해 오던 행사다. 이 시기 금수원에는 1만 명의 신도가 모인다고 한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야외 수영장도 이때쯤에는 물을 받아 개장한다. 반면 유 전 회장 추모와 관련한 공식 행사는 준비된 게 없다고 했다.

유 전 회장이 시신으로 발견된 후 구원파는 정부와 언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특히 언론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반론·정정보도 요청을 쏟아냈다. 2014년 언론 중재 처리 건수 중 85%인 1만6000여 건이 구원파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300여 개 매체를 대상으로 언론중재위 제소를 했던 구원파는 최근에도 합의이행 내용을 근거로 반론·정정보도 요청을 하고 있다.

구원파가 두 차례에 걸쳐 제기한 정정 및 반론보도 주요 내용은 이렇다. 우선 유 전 회장은 구원파의 교주·총수나 목사가 아니며, 유 전 회장과 구원파는 5공화국과 유착관계가 없었고 오대양 사건과도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또 구원파는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조직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없으며, 유 전 회장 일가 재산으로 보도된 2400억원의 상당 부분은 구원파 교인들로 구성된 영농조합 소유로 유 전 회장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구원파는 2014년 7월부터 이러한 내용을 담은 ‘우리는 구원파다’라는 제목의 팟캐스트 방송을 개설해 자체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방송은 총 40회 분량이 업데이트됐다. 이와 함께 ‘구원파에 대한 오해와 진실’ 홈페이지(https://klef.co.kr)를 통해 구원파와 유 전 회장에 대한 각종 의혹을 반박해 왔다. 



‘유병언 음모론’에 숨은 수상한 의혹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2 08:00
여전히 풀리지 않는 사망원인… 박근혜 정부 국면전환용 카드로 이용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사망 당시 73세)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공식적으로는 ‘사망’으로 처리됐지만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지금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 유 전 회장은 정부를 향한 여론의 비난 화살을 돌리는 카드로 활용됐다. 세월호가 침몰한 후 정부 컨트롤타워 기능은 상실했고, 해경은 늑장 대응에 늑장 출동으로 국민의 분노를 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성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것도 한번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2014년 7월23일  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을 검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곳에서 2014년 7월23일 경찰 과학수사대가 현장을 검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인천지검은 ‘세월호 선사 특별수사팀’까지 꾸리고 청해진해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유 전 회장을 ‘세월호 실소유주’로 못 박았다. 검찰 수사는 유 전 회장뿐 아니라 그의 일가 비리로 확대됐다. 검찰은 토끼몰이식 수사를 벌이며 수사상황을 수시로 언론에 알렸다. 이때부터 언론 보도 방향도 달라졌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나 구조작업 지연의 문제점 등을 찾기보다는 유병언 일가에 대한 보도에 치중했다. 정부를 향했던 언론의 화살은 한순간에 유병언 일가로 방향을 바꿨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출석요구에 불응하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은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본산인 경기도 안성 금수원 상공에 헬기를 띄우고, 압수수색 당일에는 수색 전 과정을 언론에 공개했다. 

유 전 회장이 도주하자 검찰은 이례적으로 5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경찰은 특진까지 내걸면서 유 전 회장을 쫓는 데 주력했다. 유 전 회장의 도주가 장기화되자 이번에는 현상금을 역대 최고액인 5억원으로 올렸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나 탈옥수 신창원에게 걸린 5000만원보다 무려 10배가 많았다. 여기에다 군대까지 동원해 수색에 나서고 행정안전부는 전국 24만 곳에서 임시 반상회까지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 때 “지금 유병언 검거를 위해서 검경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못 잡고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질책했다. 기무사령부는 유 전 회장을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불법 감청까지 자행했다. 

이렇듯 정부는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유 전 회장을 쫓았다. 하지만 유 전 회장은 6월12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 삼거리의 한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가 머물던 별장에서 2.5km 떨어진 곳이다. 처음에는 유병언의 시신이라고 알아보지 못하고 40일 동안 무연고자로 처리했다. 시신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패했고, 백골화가 80%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다 뒤늦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나서서 해당 변사체가 유병언이라고 확인했다. 그 근거로 ‘DNA 감정’과 ‘지문감식’ 결과를 제시했다. 국과수는 오른손 집게손가락에서 지문의 융선을 복원했고, 감식해 보니 유병언과 일치했다고 밝혔다. 또 대퇴부(넓적다리)에서 DNA를 검출해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육안과 엑스레이를 통해 시신의 왼손 검지 끝마디 뼈 결손과 약지의 일부 변형이 확인됐다. 치아 정보도 일치했다. 유 전 회장의 치과 주치의는 시신의 어금니와 송곳니의 보철치료 흔적을 살펴본 뒤 유 전 회장이 맞다고 확인해 줬다. 

 

의문에 싸인 18일간의 동선

여러 의혹이 있기는 하나 해당 변사체가 ‘유병언’이라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국과수는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시신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것에 대해 정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유 전 회장이 타살된 후 시신이 옮겨졌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 전 회장의 사인에 대해 ‘자살’과 ‘저체온사’ ‘굶주림에 의한 사망’ 등이 제기됐다. 유 전 회장이 자살했을 확률은 아주 낮다. 그는 평소 자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내가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말도 자주 했다. 이런 그가 종교적 신념을 버리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 전 회장은 또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건강을 챙겼다. 태권도 7단으로 꾸준히 몸을 단련했고, 유기농 음식과 미네랄워터만 먹고 마셨다. 만약 그가 자살했다면 ‘독극물’을 이용했을 확률이 높은데, 시신에서 독극물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저체온사 가능성도 제시됐다. 그러나 유 전 회장이 사망할 당시 순천의 날씨는 비가 오는 날도 있었지만 초여름 날씨에 버금갈 정도로 더웠다. 당시 새벽 기온이 10도까지 내려간다고 해도 유 전 회장은 내복에 겨울점퍼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굶주림 때문에 죽었을 가능성은 더욱 작다.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 중에 ‘육포 2봉지’는 아직 다 먹지 않은 상태였다. 정말 배가 고파 죽을 정도였다면 육포를 그냥 통째로 놔뒀을 리가 만무하다. 

변사체가 발견된 현장에서는 의외의 물품이 나왔다. 비어 있는 소주병 두 개와 막걸리병 하나다. 유 전 회장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다. 그는 만성지병으로 당뇨와 고혈압, 피부병을 앓았다. 당뇨병을 앓는 환자에게 술은 극약이나 다름없다. 고혈압에도 좋지 않다. 

그런데도 양주도 아니고 막걸리와 소주병이 나왔다. 국과수 발표에 따르면 변사체의 장기에서는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다. 마을 슈퍼마켓 주인도 외지인 등 수상한 사람에게 막걸리를 판 기억이 없다고 했다. 

현장에 꼭 있어야 할 물품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고혈압과 당뇨 약, 안경, 지갑 등이다, 유 전 회장은 도피하는 과정에서 많은 현금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피하는 데 돈은 필수다. 그런데 현장에는 지갑도 없었고,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한 장 나오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발견되지 않았다. 술병은 있는데 물병이 없는 것도 이상했다. 

이 밖에도 타살설을 뒷받침하는 의문점은 여러 가지다. 유 전 회장이 은신해 있던 순천 송치재 별장에서 모습을 감춘 후 시신으로 발견된 6월12일까지 18일간의 동선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은 ‘유병언 일당 탐욕(배 수선, 과적)’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세월호 관련 지시를 했고, 김 전 민정수석이 지시사항을 적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메모의 의미를 해석하면 ‘유병언 전 회장 일당이 탐욕에 의해 배를 증축하고 과적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몰아가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