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넘어
[서리풀 논평] '가정의 달' 5월에 '정상가족 해체'를 생각한다
2019.05.07 09:58:58
다시 5월이 돌아왔다. 한때 부르던 이름도 있지만,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무슨 무슨 '날'로 가득한 달이다. 누구는 그 날을 기다리고, 다른 누구는 영 부담스러우며,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의식도 하지 못하고 지나간다.
이제 '친밀성'은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처절하게 자본주의로 편입되고, 완전히 상품이 되었으며, 그리하여 몸집을 불린 시장만 힘이 세다. 관심과 사랑과 돌봄을 표현하는 길은 '돈' 한 가지로 통일된 지 오래다.
이 모든 '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 적어도 5월의 토대는 가족, 그것도 '정상가족'에 대한 공고한 규범 또는 이데올로기다. 그 규범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 이를 욕망한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 힘이 세다. 영혼에다 무의식까지 가 있을지 모른다.
'정상가족'의 따옴표는 하나지만, 실은 둘이다. '정상'과 '가족'을 따로 구분해야 한다.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오늘 이 따옴표는 이 말이 특정한 의미를 내포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해석되며, 한쪽으로 치우치는 어떤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표시하려는 기호이다.
'잘한다' '좋다' '이상하다' 등등, 뭐라고 표현하든 어느 시절, 어느 곳에서나 같은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늘 그렇게 살았던 것도 아니다. 보편타당도 진리도 아니니, 그냥 이 시대 한국 땅에서 바글거리며 사는 사람들, 그것도 대놓고 표시하는 일부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면 맞겠다.
먼저 '정상'이라는 말. 길게 말할 것도 없이 폭력이고 억압이다. 당장 장애, 성소수자, 일부 질병은 끈질기게 '비정상'이다. 키가 어떻다느니 머리가 좀 이상하다느니, 어떤 신체와 정신조건도 빠지지 않는 정상성의 판단대상이다.
따지고 보면, 젠더와 성이 가장 오래 정상 이데올로기의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어디 여자가..."라거나, "...답지 못하다"라는 규정. 말이 사람을 만들고 행동을 제한한다. '정상화'하는 힘이다. 도대체 그 정상화는 누구의 무엇을 위한 정상화인가?
과거처럼 노골적인 것은 아니지만, 아슬아슬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비혼이나 나이. 그리고 노동과 계급, 지역, 인종은 훨씬 더 은밀하게, 그러나 언제라도 정상성의 폭력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있다.
'정상'은 단지 부담이나 압력을 넘어, 억압하고 차별하고 배제한다. 어린이날에 끼지 못하는 아이와 어버이날에 전화 한 통 받을 일 없이 홀로 사는 노인을 생각해 보라. 그들에게 가족과 결혼과 돌봄을 압박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고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다음은 '가족' 차례다. 이것도 이미 우리가 아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 가족과 가족 '제도'의 의미, 의무와 책임, 가치까지. 이 시기 한국 땅에서 굳어져 불변일 것 같지만, 그 또한 한때 지나가는 모습일 뿐이다.
모계사회니 무슨 혼인 풍습이니 하면서 멀리 갈 것도 없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30년 전 가족과 지금 가족을 누가 같다고 하겠는가. 대가족은 해체되고, 부-모-아들-딸로 구성된 4인 가족 이미지도 허물어진 지 오래다. 하물며 부양이나 돌봄과 같은 내용에 이르면, 더 말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더는 친밀성과 자기 성취의 토대가 아니다. '부양의무자' 기준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에게는 고통이고 사회적으로는 갈등의 원천이다. 건강보험 장기체납분을 납부할 책임이 미성년 자녀에게 넘어갈 지경이면...현재 많은 제도적 가족은 기껏해야 경제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삶을 지탱하는 체계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대는 것이 당장 문제다. 아동학대, 가정폭력, 배우자 성폭력의 바닥에는 한결같이 정상가족에 대한 욕망과 사회적 강요가 자리를 잡고 있다. 여성, 어린이, 노인, 그 누구라도 온전한 인격과 독립한 주체로 인정받지 못할 때 사태가 발생하고 악화한다.
보통의 돌봄과 교육과 부양은 기본. 퇴원한 정신장애인을 돕는 일도, 성인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것도, 치매 노인에 대한 '커뮤니티 케어'도 일차로 가족이 책임져야 '정상'이다. 으레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가 있고, 그들이 그 완고한 전통적 역할을 하리라 믿는 것이 바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다.
병원에 입원할 때는 보증을 해야 하고, 병실에서는 가족이 수발할 일이 기다린다. 수술을 받으려면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보호자'를 적으라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혼자, 아니면 친구와 더불어 퇴원하는 것은 참으로 예외적이서, 아마 많은 사람이 '비정상'이라 여길 것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힘이 있으니, 국가가 가장 앞에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데 유리해서다. 가족 대신 정신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일 전부를 떠맡아야 하면? 가난한 노인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면?
이유가 무엇이든, 이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지탱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푸코 식으로 말하면, 과거와 같은 통치방식으로는 더는 '사회를 보호'하고 '안전'을 유지하기 어렵다. 점점 더 위험해질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폭력성과 억압이 많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개인으로 보면, 작게는 부담, 불화, 불안의 원인이고 심하면 아프고 병들게 한다. 사회적으로는 혐오와 차별의 원인이 되어, 결국 폭력을 부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나란히 있는 5월 이 주, 역설적으로 그 바탕이 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떠올리고 해체를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사람들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사회적 존재인 한, 관계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다.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독립된 인격체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친밀성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 국가와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고 증진하는 것이 지금 과제다.
예를 들어, 주거를 비롯해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도 한 가지 방법에 들어간다. 모든 영역 특히 경제에서 젠더가 평등한 것, 기초연금이나 아동수당을 늘리는 것, 치매 환자들 사회적으로 돌보는 것, 모두 도움이 된다. 아, 주거비를 낮추는 것도 중요하다.
걷기만 하면 돈이 생긴다!...녹색기본소득으로 세상 바꾸기
[프레시안 books] 강상구의 <걷기만 하면 돼>
2019.05.04 23:52:44
걷기만 하면 '돈'이 된다? 이미 '현실'인 세상이다. 일부 시중은행의 금융상품 중에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해 특정 기간 동안에 특정 걸음수 이상을 걸으면 이자를 추가로 주는 상품이 있다. 카드 상품이나 보험 상품 중에도 스마트폰앱을 통해 걸음수를 측정해 제시한 목표치를 넘기면 포인트를 적립해주거나 보험료를 깎아주는 상품이 있다. ( 관련 기사 바로 보기) 서울시에서도 '워크온'이라는 앱을 통해 걸음 수에 따라 마일리지를 적립하고, 걸음 목표 수를 채우면 쿠폰을 얻거나 기부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걷기만 하면 돼 :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 녹색기본소득에 관하여>, 강상구 지음, 로아크 펴냄 ⓒ로아크
'기본소득'은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집, 밥, 물, 공기, 교육, 의료, 교통, 통신 등)을 구매할 수 있도록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이란은 2010년 기본소득을 도입해 국민 1인당 월 150만 원 가량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미국 알래스카주도 석유수익금을 운용해 그 수익금을 기본소득으로 주민들에게 제공한다고 한다. 이밖에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에서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진행했으며, 핀란드도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실업자 2000명을 상대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정책실험을 실시해 2020년 최종 결과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강상구 원장은 기본소득의 장점으로 1)소득이 늘어난다 2)(흔히 기본소득의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노동 의욕 감소와 달리) 노동 의욕을 증가시킨다 3) 노동자의 교섭력이 커진다 4)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킨다 등을 지적했다. 이런 장점을 가진 기본소득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걷기'와 결합시켜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저자는 주장한다.
앞서 사례로 제시한 것처럼 이미 스마트폰 앱을 통해 걸음 수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도 존재하고, 대중교통 이용 시에는 교통카드를 통해 이용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이나 제도를 조금 손 본다면 구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전동휠체어는 걷기로, 전기자전거는 대중교통으로 간주하자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걸음 수 얼마에 어느 정도의 돈을 지급할 것인가의 문제는 심도 깊게 연구해야 할 문제이지만, 현재 걷기에 기반한 상품이나 정책이 '보상'이 너무 적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할 것이다.
"한국의 양극화는 전세계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럽습니다....월급으로만 따지면 일년에 880만 명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합니다. 2017년 기준으로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156만 원입니다. 이마저도 취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반면 상위 0.1퍼센트는 일년에 평균 13억 원 가까이 벌고 있지요....녹색기본소득은 실업자에게 소득을 보장합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과 학원을 드나들고, 식사 시간에 식당이나 편의점을 찾는 시간이 이제는 단순히 소모하는 시간이 아니라 녹색기본소득을 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저자는 '녹색기본소득'을 지급 대상을 만 7세부터 64세까지 하자고 제안한다. 현재 복지제도로 시행하고 있는 아동수당과 노령수당을 받지 않는 연령대다. 아동.청소년들을 '녹색기본소득' 대상에 포함시킴에 따라 저자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녹색기본소득'을 통해 아동.청소년이 받을 수 있는 돈을 적립해서 만 19세 때 찾을 수 있도록 한다면 청년이 사회에 처음 진입하게 될 때 일종의 '씨앗자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녹색기본소득'의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까? 저자는 1)녹색기본소득 도입으로 절감되는 비용(자동차 사용이 줄어듬에 따라 도로 건설 비용, 미세먼지 대응 등 환경오염과 관련된 비용, 국민건강 증진 예산 등을 줄일 수 있다), 2) 부자들에 대한 과도한 감세를 원상 복구하고 사회복지세 도입 등 증세, 부동산 등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하자 3) 탄소세 등 기후 변화와 관련한 과세를 하자 4) 공유재를 사적으로 누리는 것(부동산 개발 이익, 빅데이터로 인한 기업 이익 등)에 대한 과세를 하자고 제안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제안한 걷기를 기반으로한 녹색기본소득의 구상은 다양한 정책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떤 형태가 되던 녹색기본소득 도입의 의미에 대해 그는 "산업구조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고, 부의 분배 구조를 의미 있게 개선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긴 노동시간, 자동찰 꽉 찬 도시, 걷기나 자전거 타기에 불편한 도로, 이런 것들로 인간은 걷지 않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건강을 잃고, 심성을 잃고, 맑은 공기를 잃었습니다. 인간 존재의 본령을 되찾으려는 사람은 걸어야 하고, 싸우는 자 역시 걸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녹색기본소득의 조건으로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내걸었다기보다 걷고 자전거를 타기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녹색기본소득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셔도 됩니다."
진보정당 활동가인 저자는 당장 이같은 제안이 현실화 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기본소득과 기후행동을 연결시킨 이런 '정치적 상상력'이 진보정당이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내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회, 문화,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엔드게임 이후, 이젠 가망이 없어?...더 큰 MCU로 출발! (0) | 2019.05.07 |
---|---|
부동산 보유세 강화 없이 복지국가 불가능 (0) | 2019.05.07 |
스트레스 덜 받고 오래 사는 다섯 가지 비법 (0) | 2019.05.06 |
《나의 특별한 형제》, 마음을 움직이는 어떤 동행 (0) | 2019.05.04 |
'반전유인(盤前有人)'의 바둑 자세 (0) | 2019.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