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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포장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일취월장7 2019. 4. 23. 09:45

불평등을 포장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민미연 포럼] 학력 자본에 따른 불평등, 누가 공평하다 하나
2019.04.22 17:38:23

얼마 전 '김용균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어째서 '김용균법'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우리는 그 안타까운 사연을 잘 알고 있다. 김용균 씨 어머니의 헌신 덕에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법이 통과되었다. '김용균법'이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이 법에는 "도급인은 관계수급인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 필요한 안전 조치 및 보건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제 63조가 들어가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위험을 외주화하는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김용균법'이 통과되어 다행이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21세기에 하청기업 노동자를 이토록 노골적으로 차별해온 그동안의 관행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유럽과 미국의 원·하청 관계는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다. 우리와 비슷할 거라 착각하는 일본의 원·하청 관계는 온정주의적 관계다. 원·하청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외국의 사례를 살펴볼수록 한국의 원·하청 관계의 원인은 자본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원·하청 간의 압도적인 비대칭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별한 관계다. 같은 노동자라도 원청에서 근무하는지, 아니면 하청에서 근무하는지에 따라 받는 보수가 달라진다. 보수에 따라 노동자와 그 가족이 누리는 삶의 질도 달라진다. 자본주의라고 해도 한국만큼 원·하청의 격차가 큰 곳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런 격차는 우리 내부의 어떤 특정한 문화나 습속에 근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과연 무엇일까.

'능력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역동적 민주주의는 우리 스스로도 자랑하지만, 많은 세계인들도 인정하는 우리의 자랑이다. '6월 민주항쟁' 이후 수십 년간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목청껏 외쳐온 민주주의는 늘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쳤다. 물론 이것만해도 민주적 역량의 결실이었다. 그러나 부족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평등을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등해지기 보다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불평등은 이미 나쁜 의미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능력'에 대한 우리의 물신주의 때문에 이런 불평등은 정당화되고 심화되었다.

'능력'에 대한 맹신은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이데올로기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 좋은 보수를 받고 더 잘 살고 더 행복해도 된다'는 황당한 생각이 어쩌다 한국인에게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유교 문화로부터 능력주의가 유래되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능력주의는 유교에서 과거제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전 세계에서 이토록 빠르게 한 인간의 능력만으로 고위직을 부여하는 제도는 중국과 우리밖에 없었다. 일본의 젊은 학자 요나하 준에 의하면, 일본의 경우 과거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물적 기반이 없어서 불가능했다고 한다.

현재 우리에게는 너무나 흔한 종이와 종이로 만든 책의 대규모 생산과 유통이 중국과 고려같이 생산력이 매우 발달한 나라가 아니고서는 힘들었다고 한다. 영국은 1870년대 미국은 1883년이 되어서야 시험을 통해 관료가 선발되었다. 그만큼 과거제도는 인류 역사에서 드물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알렉산더 우드사이드(Alexander Woodside)는 중국, 한국의 과거제도를 귀족제를 직업적 엘리트 관료로 대체한 세계사적 혁명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만큼 대단했지만 그 대신 그만한 대가도 따랐다.  

능력에 따른 불평등이 정당화되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능력에 따른 불평등이 아니고 능력을 담보해줄 학력 자본에 따른 불평등이었다. 진짜 능력은 아니었다. 능력을 보여줄 거라는 믿음에 기초한 불평등이자 격차였다. 우리는 이것을 학력·문화 자본이라 고상하게 말하곤 하지만, 사실은 학벌 하나로 먹고 들어가는 세상이었다.

이런 능력주의는 개인적 불평등, 개인적 격차를 정당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불합리한 격차와 불평등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한국인의 특성을 '평등'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이런 평등 지향은 토지개혁이라는 세계적인 성공 경험 덕분에 귀족적 지주제를 건너뛰어서라고 배웠다. (물론 자유민주세계에서 한국과 대만만 토지개혁에 성공한 이유는 앞서서 중국 본토와 북한에서의 토지개혁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인의 치열한 평등의식은 특정 지점에서 사그라진다. '능력'이다.

한국의 유교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인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자신의 논문 '유교적 근대성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2017, <철학연구회 학술발표 논문집>)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에 대한 전국민, 특히 청년들의 분노가 촛불혁명의 결정적인 도화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 사건은 우리 사회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어떤 원초적인 정의감을 건드렸다. 우리 사회의 대중들, 특히 청년들은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아니 돈도 실력이라고 우기는 정유라가 부당한 외압을 통해서 명문대에 입학하고 또 별 다른 노력 없이 학점을 취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냥 가만히 인내하며 지켜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정의감은 일정한 실력과 노력만이 특정 성취나 권한을 누릴 자격을 정당화한다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능력주의. 필자)에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그 메리토크라시 이념은 지난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였다."  

장은주는 문재인 정부가 여기저기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지만,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던 사실을 들추어낸다.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이유는 뭘까?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단체임에도 전교조는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했다. 장은주는 정규직 교사들이 교원 임용고시를 통과했다는 자긍심과 자기 정당화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우리의 권리는 임용고시라는 공적인 절차를 통했기에 정당한 것이다."

과연 그럴까? OECD 국가 중 15년 차 경력 교사 임금보수통계를 보면, 한국이 1인당 GDP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럽을 포함한 선진국 대부분의 경우 1인당 GDP에 근접한 보수를 받지만, 한국은 약 2.3배를 받는다. 사학연금을 포함하면 비교 불가 수준으로 격차는 커진다. 한국 교사는 세계적 기준에서 드물게 좋은 직업이다. 그래서 선진국 교사들은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려는 직업이지만, 한국에서는 보수에 이끌려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정규직 교사의 능력은 무엇인가? 아이를 잘 가르치는 것인가? 한국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임용고시라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사실만이 능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가치로 남는다. 시험성적은 직무 현장에서는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이를 근거로 차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랜 옛날부터 한국인은 시험을 통과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과거나 시험을 통한 인재선발은 세습 귀족을 제어할 필요성이 있던 시절에나 의미가 있었다. 세계가 서로 경쟁하는 시대에 한 번의 시험으로 내부노동자가 되어 편히 살아간다는 것은 공평성의 차원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시험공부 능력은 인간 능력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에서 시험은 물신이 되었다. 시험 한 번으로 인생이 바뀌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평등한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국제표준어, 진보정치의 방향
[장석준 칼럼] '세상의 큰 흐름'에 주목하는 진보정치

올해는 벚꽃을 보며 유독 2004년 이맘때를 떠올렸다. 그 해 4월에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벚꽃이 만발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이자 중앙선거운동본부 책임자였던 노회찬은 어깨띠 하나 두르고 당직자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맞춰 거리 유세를 나갔다. 의사당 옆 윤중로는 마침 식사를 마치고 산보를 하거나 벚꽃 축제에 나들이 나온 시민으로 가득했다.

이때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마치 유명 연예인이라도 본 듯 노회찬 후보 앞에 멈춰서고 환호성을 지르며 에워쌌다. 먼저 악수를 청하는가 하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진보정당에게는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TV 토론회에서 노회찬 후보가 일으킨 바람이 실감됐고, 대중정치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8번이던 노회찬이 당선될 줄은 미처 몰랐다.  

벌써 15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그때 장면이 생생하다. 아마도 그가 없는 채 맞이하는 첫 번째 봄이라 그럴 것이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의 계승 발전'부터 '판갈이'까지

지금은 다들 그 해 총선을 기억하며 민주노동당의 '승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니, 실은 이 선거도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돌파해야 했던 다른 선거처럼 힘든 시험으로만 다가왔다.  

물론 반가운 조짐도 없지 않았다. 우선 2002년 지방선거에 이어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예정이었다.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적어도 한 명 이상은 나오리라는 기대가 일었다. 게다가 2002년 광역의회선거 정당투표에서 전국에 걸쳐 약 8%를 득표한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TV 토론회 초청 대상이 됐다. 이들 토론회에 노회찬 후보가 출연하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그의 정치 언어와 만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태풍이 2004년 총선을 뒤흔들었다. 총선 한 달 앞두고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한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다수 국민의 여론은 곧바로 탄핵 반대로 쏠렸다. 그러면서 총선 지형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키자는 열린우리당과, 불리한 여론을 딛고 어떻게든 생존해보려는 한나라당의 치열한 양당 구도로 휩쓸려 들어갔다. 그 사이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칫 존재조차 눈에 안 띌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지역구에서 두 명을 당선시키고 최초의 정당명부 비례대표 선거에서 13% 넘게 득표하며 여덟 명을 당선시켰다. 애초에는 당 안에서조차 한 명이라도 국회에 진출하면 성과라고 했었다. 그런데 실제 당선자는 무려 10명이었다. 13%라는 정당 득표율에 민주노동당 스스로 놀랐다. 격렬한 양당 대립 속에서도 제3의 개혁 대안을 찾는 열망 역시 그만큼 치열했던 것이다. 2004년의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 열망에 형체를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럼 민주노동당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돌아보면, 총선을 앞두고 나름 치밀한 노력이 있었다. 2003년에 민주노동당은 1년 뒤 국회 진출을 대비해 정치 노선을 재정비하려 했다. 이때 고 이재영 정책실장은 강령 속 한 문구를 끄집어내 정치 노선의 대원칙으로 제시했다. 그것은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문구였다.

이미 강령에 있는 문구임에도 이를 새삼 강조하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다. 격론이 오갔고, 대의원대회도 전에 없이 뜨거워졌다. 결국 이 문구를 첫 머리에 단 정치 노선 안건은 불과 몇 표 차이로 대의원대회를 통과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이라니 너무 생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지나치게 추상적이기도 하다. 그때도 이를 그대로 구호로 삼자는 취지는 아니었다. 주된 고민은 집권당인 리버럴정당 열린우리당과 구별되는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의 입각점과 지향을 분명히 하자는 데 있었다.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킨다"는 말에는 이른바 '민주' 세력이 끌어안지 못하는 착취, 수탈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정신을 좀 더 대중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이재영 실장이 중심이 된 정책팀은 그 답으로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을 내놓았고, 이것이 민주노동당의 2004년 총선 구호가 됐다. 지금은 이 구호를 놓고 말들이 많다. 가령 부유층만 세금 부담을 늘려서는 복지를 확대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구호의 핵심 메시지는 "세금 대 복지"가 아니었다. "부자 대 서민"이었다. '서민'을 정치의 주역으로 불러내려는 것이었다.  

이런 비전은 마지막으로 노회찬 후보의 입을 거치며 더욱 구체화됐다. "수십 년 묵은 불판 갑시다"라는 TV 토론회 발언은 열린우리당-한나라당 구도를 넘어서는 정치적 지향을 선명히 제시했다. 대중은 이 말을 단박에 이해했고, 거기에서 자신의 열망을 (재)발견했다. 2004년에 일단 확인된 이 열망의 크기가 정당 득표율 13%였다. 2004년 민주노동당의 약진에는 이러한 실험, 논쟁, 분투의 과정이 있었다.  

전 지구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흐름에 주목하자  

그러고 보면 그때 민주노동당 사정과 지금 정의당 사정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촛불 항쟁 직후에는 이렇지 않았다. 촛불 직후 상황은 한국 정치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국면이었다. 양당 구도가 아닌 다당 구도이면서 여러 정당 사이에 개혁연합이 구축될 수 있는 국면이었다. 양당 구도와는 다르게 자유한국당을 고립시킬 수 있는 국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대신할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것 같다.  

새 국면은 아직 안개에 싸여 있다. 다만 이를 촛불 이전 국면과 닮게 만들려는 강력한 힘이 작동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촛불 이전 국면, 즉 범민주당과 범새누리당의 양당 중심 정치 말이다.  

자유한국당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이 열리기만을 바라며 농성 정치를 계속해왔고, 선거제도 개혁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다른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실망감 탓에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오르고 촛불 항쟁의 효력이 소진하는 것처럼 보일수록 이에 위기감을 느끼는 이들의 표심을 여당 지지로 끌어 모으려 한다. 이미 이게 총선 대응 제1전략이 된 듯싶다. 이렇게 두 당 모두 2020년 총선에서 양당 대결 정치를 부활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내년 총선도 진보정당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시험이 될 것이다. 즉, 지금 정의당의 처지는 2004년 민주노동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때 민주노동당은 원외정당이었고 정의당은 원내정당이니 나아진 점도 있지만, 양당 구도의 구심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결코 만만치 않다. 이 상황에서 진보정당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나는 우선 세상의 큰 흐름에 주목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지금 자본주의 중심부 국가들에서는 전에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적 사회주의'가 현실 정치의 화제로 급부상하는 중이다. 버니 샌더스가 다시 출마를 선언한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이 그러하고, 제러미 코빈 대표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이 그러하다.  

미국은 오랫동안 '사회주의'가 금기어였던 나라이고, 영국 노동당이 당헌 제4조에서 이념이라 밝히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오랫동안 아무 내용도 없는 말로 방치돼왔다. 한데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심각한 사회 위기를 겪고 난 뒤에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 다수는 샌더스 상원의원이나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조직이 주창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에서 대안을 찾는다. 영국 노동당 새 집행부는 야심 찬 탈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민주적 사회주의'의 내용을 채우고 있다.  

어떤 내용들인가? 무엇보다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며 파괴된 복지국가를 되살리겠다고 한다. 사실상 긴축 재정을 강요해 복지 확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균형 재정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겠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지구화-금융화로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금융 자본을 손보겠다고 한다. 노동조합 같은 대중 조직들이 다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겠다고 한다. 공공부문을 확대하되 노동자와 지역 사회가 적극 참여하는 새로운 실험을 펼치겠다고 한다.

에너지 전환이나 기후 변화 대응, 교육 개혁처럼 시급한 과제들을 공공 투자로 해결함으로써 오히려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한다. 기본소득이나 일자리보장제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귀를 열겠다고 한다. 극우 포퓰리즘에 맞서 여성과 성 소수자, 이주민의 권리를 옹호하겠다고 한다.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 시기에 구축된 자본주의 질서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지금의 질서와는 정반대되는 세상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요즘 이러한 지향이 '민주적 사회주의'라 불리고 있다.  

바로 여기에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말 자체야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다. 괜히 무슨 주의가 옳으냐는 논쟁에 빠질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국제 표준어에 단긴 지향이다. 지금의 이 자본주의 질서를 극복해야만 인류에게 미래가 있다는 메시지, 하루라도 더 빨리 그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 말이다.

이 지향을 명확히 한다면, 그 다음에는 마치 15년 전에 그랬듯이 한국적 상황에 맞게 변주하는 작업이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균형 재정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재정 기조를 합의할 수 있을 것이고, 기본소득제와 일자리보장제, 참여소득제를 놓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부동산이나 교육 정책을 시대에 맞게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고, 리버럴 세력의 경제 민주화론과 구별되는 경제 민주주의 비전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을 더 생생한 입말로 설파할 차세대 정치가들에게 우리 시대에 맞는 무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큰 방향이 선명해야 세밀한 대안도 나올 수 있다  

요즘 이런 질문들을 자주 듣는다. 한국 진보정당운동에는 왜 버니 샌더스 같은 인물이 없는가? 한국의 젊은 세대는 왜 미국 밀레니얼 세대와 달리 '보수적'으로 보이는가? 노회찬이 떠난 지금, 우리는 과연 제2, 제3의 노회찬을 키워낼 수 있는가?

하나같이 다 깊은 고민을 거듭해야 답할 수 있는 물음이다. 하지만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서도 우선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시대에 진보정당운동이 밀고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이다. 그 방향이 뚜렷해야만 각각의 물음에 대한 세밀한 답도 낼 수 있다.

양당 구도 회귀에 겁먹거나 그런 구도 속에서 살아남을 묘책에 머리를 싸매봐야 소용없다. 큰 방향부터 확인하자. 갈 곳이 분명한 세력만이 담대해질 수 있고, 난관을 난관으로만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에만 한국 진보정당운동은 또 다른 찬란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 2004년 총선 당시 개표방송을 보는 민주노동당 관계자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