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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후폭풍①] ‘김경수 나비효과’ 충격에 빠진 여권

일취월장7 2019. 2. 15. 10:38


[김경수 후폭풍①] ‘김경수 나비효과’ 충격에 빠진 여권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1 08:00
집권 3년 차 文정부 정국 장악력에 심각한 악영향
총선·대선 전략에 비상등, 대권주자들 예의주시

김경수 경남지사는 유달리 피부가 희고 고와 정가에서 ‘최강 동안(童顔)’으로 불린다. 1967년생으로 50대 초반이지만, 얼핏 봐선 40대 얼굴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김해 봉하마을에 내려가 농사일을 하면서 얼굴이 그을려 군데군데 경미한 화상을 입은 것도 가까이서 봐야 겨우 알 수 있다. 

어찌 됐건 1월30일은 김 지사 인생에서 얼굴이 가장 하얗던 날로 기록될 것 같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이날 김 지사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댓글 조작 가담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로 징역 2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댓글 작업을 지속하는 대가로 일본 오사카·센다이 총영사직을 제공하려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지사를 법정 구속했다. 

성창호 판사의 판결이 끝난 직후 법정 안은 지지자와 반대파의 엇갈린 반응으로 혼란에 휩싸였다. 실형이 선고되자 김 지사는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피고인석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다음 지지자들을 향해 몸을 돌려 큰소리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외쳤다. 순간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측근들의 전언에 따르면, 김 지사는 이번 판결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주변에서 재판을 걱정할 때마다 항상 ‘진실은 밝혀지지 않겠느냐. 너무 걱정 마시라’고 말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지사는 이날 즉각 항소했다. 변호인인 오영중 변호사는 “재판 내용을 언론에 알릴 생각도 했지만, 그때마다 지사님은 ‘그런 식으로 여론몰이 하지 말자. 재판부를 존중하자’는 입장이었다”며 1심 법원의 판결을 강하게 비난했다. 또 다른 측근 인사는 “오전엔 특검 측 증인 심문, 오후엔 변호인 측 증인 심문이 있었는데, 언론사 마감 일정상 오전 심문 내용만 주로 언론에 보도됐다”면서 “오후 심문에서 특검과 드루킹 쪽 논리가 맞지 않아 재판부가 수차례 지적할 정도였다”며 판결에 의구심을 표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김경수 경남지사가 1월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호송차를 타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민주당 “오염된 증거 받아들인 정치적 판결”

여권 전체도 충격에 휩싸였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특검 내부에서조차 ‘실패한 수사’라고 평가했기에 법정 구속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원 판결 직후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재판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율사 출신인 박주민 의원(최고위원)은 “객관적 증거와 법리에 따라 이뤄진 판결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면서 “이번 판결은 왜곡되고 오염된 증거를 기반으로 특검의 주장을 100% 받아들인 결과”라며 재판부를 맹비난했다.

여권은 김 지사 구속이 정국에 미치는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직 도지사에 대한 구속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2015년 경남지사 시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현직 도지사라는 점을 감안해 구속은 면했다.  

정권이 출범한 지 만 2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 지사를 법정 구속했다는 것은 분명 그동안의 법원 행보와는 다르다. 지난해 8월 특검이 김 지사를 기소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을 때 법원은 “공모 관계의 성립 여부 및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인멸의 가능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한 점, 피의자의 주거와 직업 등을 종합하여 보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정반대로 김 지사를 법정 구속하는 초강수를 뒀다.  

야권 “문 대통령, 최측근 비리 정말 몰랐나”

이번 사안은 ‘김경수’라는 정치인 개인의 판결로 한정하기 힘들다. 여권이 삼권분립 훼손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를 적폐세력으로 몰고 있는 것은, 이번 판결이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의 정국 장악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는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지난 대선 기간 중 진행된 일부 세력의 선거부정 행위에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연루됐다는 점에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당장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지난 대선이 공정하게 치러진 게임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대선 불복으로까지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1월31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번 드루킹 사건은 민주화 이후 가장 심각한 불법 선거운동이고, 대규모 민주주의 파괴”라면서 “지난 대선의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은 태생부터 조작정권, 위선정권이 아니었냐는 의심이 간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경우에 따라선 정치적 부담이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옮겨갈 수도 있다.  

현재로선 자연히 문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불가피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월3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은 1주일 전보다 0.2%포인트 내려간 47.5%로 나타났다. 부정평가와의 격차는 0.3%포인트로 좁혀졌다. 리얼미터는 “그동안 문 대통령 지지율은 상승세였지만 1월30일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 구속되자 하락세로 돌아섰다”고 설명했다. 김홍국 경기대 교수는 “김 지사 판결이 곧장 문 대통령 지지도 하락으로 연결되진 않겠지만 지난해 말부터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 손혜원 의원 목포 투기 의혹 등 악재가 연달아 터지면서 추세는 분명 하락세를 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다 보니 여권 내 책임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전임 지도부에 대한 정치적 책임론이 나오는 등 미세한 균열도 보인다. 민주당 내 한 초선의원은 “드루킹 김동원이 주도적으로 활동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으로부터 댓글 공격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누군가. 바로 추미애 전 대표 아닌가. 추 전 대표가 정치적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를 검찰에 고소하면서 엄한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고 비판했다. 한 재선의원 보좌관도 “지난해 5월 야당과 드루킹 특검에 합의한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특검이 수사에 들어간 이상 기소는 뻔한 일이었다. 이번 사태는 사법부에 빌미를 준 꼴”이라고 지도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속내도 복잡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최근 대통령의 딸이 해외로 이주한 것에 대해 정치권이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자 언론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한 것은 그만큼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됐다는 뜻”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참모진 실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월28일 터진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설화(舌禍)다. 파장이 가라앉지 않자 문 대통령은 사건 발생 하루 만에 사표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김 보좌관을 경질했다.

김 지사 구속으로 여권의 차기 구도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번 1심 재판부의 판결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물론 김 지사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차기 행보에 대해 말을 아껴왔다. 대권 도전보단 지사직 연임에 더 애착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0월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대권은 내가 부담해야 할 몫이 아니다. 경남 말고 다른 생각이 없다”면서 “필요하다면 도지사 재선까지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비록 자신의 대선 도전과 선을 긋고 있지만, 여당 내에선 김 지사를 ‘민주개혁 세력의 적통을 이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김 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타이틀이 말해 주듯이 친노와 친문 세력을 한데 이어줄 적임자다. 지난해 경남도 선거에서 김 지사는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우리 경남은 두 거인을 키워낸 자랑스러운 땅이다. 거인은 거인을 낳는다. 노무현과 문재인을 이제 김경수가 이어간다”고 강조한 바 있다.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월1일 항소심에서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1월10일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월1일 항소심에서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1월10일 경기도 성남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김경수, 친노·친문 이어줄 민주세력 적통” 평가

이번 판결로 민주당으로선 아까운 차기 유력 대선주자 한 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사석에서 김 지사를 가리켜 “참 순수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던 이해찬 대표가 법원 판결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해찬 대표의 ‘집권 20년’ 구상에 김경수라는 카드가 분명 있었는데, 이번 판결로 버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 대표의 상실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친문 주류에 의한 정권 재창출’을 꿈꿔온 친문 세력 입장에서 이번 판결은 충격 그 자체다. 김 지사 구속 이후 민주당이 대응 전략에 혼선을 보이는 것도 이런 상황을 방증한다.

또 다른 유력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도 2월1일 2심에서 법정 구속되면서 재기가 힘들어진 상태며, 이재명 경기지사는 ‘친형 강제입원’ 의혹, 공직선거법 위반·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있다. 남은 카드는 이낙연 국무총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정도다. 

김 지사의 정치적 낙마로 다른 여권 대선주자들이 반사이익을 얻긴 힘들다. 오히려 동반 하락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김 지사가 구속된 날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수야! 이럴 땐 정치를 한다는 게 죽도록 싫다. ‘정치하지 마라’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언이 다시 아프게 와서 꽂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함께 만감이 쏟아져 내린다”고 안타까워한 것이 이를 잘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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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드루킹, 그리고 운동의 규모화

[시민정치시평] 드루킹 판결, '미네르바 2탄'인가
2019.02.15 00:22:31

'규모의 경제'와 어원을 같이 하는 '규모화(scaling)'는 문제의 규모에 적합한 규모의 해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 1명이 수십만 개의 건물의 소방점검을 1년 안에 해야 하는 상황은 규모화가 필요하다.


옛날에 '운동'이란 골방에서 등사한 삐라 수십 장을 감시를 무릅쓰고 뿌리기로 상징되었다. 수천만 국민을 향한 홍보 수단으로는 전혀 규모화가 되지 않은 해법이었고 변화는 무지한 대중의 거듭된 배신을 거치며 고통스럽게 느린 속도로만 찾아왔었다. 그런 고통의 한 면에는 어떤 방송 신문도 보도해주지 않는 청계천 의류공장의 살인적 청소년 노동을 알리기 위한 22살 청년의 분신도 있었다. 

인터넷은 약자들 간의 소통을 규모화했다. 힘없는 개인에게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주었다. 인터넷 중에서도 월드와이드웹의 역할이 컸다. 부지불식의 다수가 내 웹사이트를 '방문'할 수 있게 하여 이메일보다 훨씬 더 확장성 있는 소통이 가능해졌다. 검색엔진은 그런 방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1인이 불특정다수의 수백만 명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문제에 인터넷-웹-검색은 규모화된 해법이 되었다. 

결국 인터넷은 운동을 규모화해냈다. 더 이상 운동은 목숨을 건 소수에 의존하는 위험한 것일 이유가 없게 되었다. 이것이 인터넷이 다른 기술과 다른 점이다. 지금까지의 신기술들은 항상 상대적 불평등 그리고 억압을 심화하는 부작용 때문에 진보세력들에게 고민의 대상이었지만 인터넷은 더 많은 사람들을 공론과 생산의 주인자리로 호명하는 긍정적 효과가 명백했다. 1995년 이후 소위 '디지털권리' 수호단체의 숫자들이 세계적으로 급증한 이유이다.

드루킹에 대한 유죄판결은 이미 인터넷의 사회적 역할에 조종을 울린 날이었다.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컴퓨터들이 작동하는 방식대로 일일이 손으로 할 것을 자동화한 것뿐인데 이걸 갑자기 범죄로 몰아치는 것은 신뢰이익에 어긋난다. 미국 교수에게 물어보니 웹사이트라는 게 원래 막노동으로 하던 걸 자동화한 것인데 웹사이트 만드는 것도 범죄냐고 반문한다. 매크로 어뷰징을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 있으면 제발 알려달라. 우리나라 인터넷규제가 유별나서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댓글/추천 올리기에 대해서 컴퓨터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사례들이 있지만 벌금형 정도였다. 당연하다. 첫째 다른 댓글들에 쏠렸을 관심을 가로챘다는 잘못이 있다. 오프라인에 비교하자면 길거리에서 가두확성기를 불법 데시벨 수준으로 틀어 놓은 정도의 일이다. 절대로 징역 살 일이 아니었다. 

'업무방해'? 네이버의 업무에 대한 손해가 정녕 징역 2년어치가 되는가? 네이버의 실명 정책을 어겼다고 한들 그건 네이버의 비지니스모델일 뿐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 처벌로 보호할 일인가? 더욱이 지인들이 자신의 계정을 제공해준 것이라면 실명 정책을 어기기는 한 것인가? 네이버가 각자 스스로 쓴 댓글을 통해 여론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도 네이버의 소망일 뿐 이용자들이 곧이곧대로 안 따라 주면 범죄가 되는가? 교수가 좋은 학생들 키우고 싶어서 제발 하루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라고 얘기하는데 학생들이 10시간 공부 안 하면 교수에 대한 업무방해가 되는가? 검찰이 업무방해죄로 노조탄압할 때 사용자가 피해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노조에게 업무방해죄 뒤집어씌울 때가 자꾸 생각난다.

'여론'의 훼손? 네이버 댓글 양상이 언제부터 여론이 되었는가?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그냥 그건 여론이 되고 거기서 다른 사람이 안 쓰는 도구를 써서 주의를 끌면 여론 훼손죄가 되는가? 미네르바 처벌하고 비슷한 동어반복의 냄새가 난다. 미네르바가 페이스북 이전 시기에도 팔로워들이 수십만 명이었고 이 수십만 명이 몰리는 걸 보고 여론을 호도한다며 난리쳐서 미네르바가 처벌을 당했다. 그땐 다음 아고라가 '여론'이었고 지금은 네이버 댓글이 '여론'이라는 식이다. 게다가 여론훼손죄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런 식으로 처벌하는 건 원님재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근대 국가에 여론훼손죄는 이정현 씨가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방송간섭죄밖에 없고 방송은 방송에게 주어진 특수하고 독점적인 임무 때문에 그런 보호를 받는 것이다. 

'여론'은 전 사회가 나눠 쓰는 1장의 도화지가 아니다. 네이버에 가면 네이버 이용자들의 여론이 있고 일베에 가면 일베 이용자들의 여론이 있다. 백과사전에 들어있는 낱장 개수 만큼 많은 여론들이 있고 여론 수용자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여론이 있다. 그중의 포털 하나에 인위적으로 지지자 숫자를 올려놨다고 처벌하려는 것은 광우병 시위, 세월호 시위에 대고 '대다수 국민은 가만히 있는데 좌파들이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점거해서 국민 전체의 뜻인 것처럼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광화문 점거자들을 처벌하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군사독재 시절 우리는 '편집부'라는 이름으로 절절한 평등과 인권의 목소리를 대중들에게 전달했다. 대학 서클 선후배 단 몇 명이 작업한 문건도 '전국○○○동맹', '인천지역○○○연대'라는 단체 이름으로 등사를 했는데 보복과 탄압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대표함을 과시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앞에 '전국○○○'이 들어가면 다 형사처벌감인가? 드루킹이 벌인 여론조작이라는 것이 고작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에 대한 의견이 더 많아 보이게 하는 것인데 자기가 더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게 바로 정치 아닌가?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의 활동이 생각난다. 소비자 불만 전화는 소비자 불만을 털어놓으라고 만든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전화해서 '당신 물건 팔아줬는데 당신네 회사가 조중동에 광고해서 기분 나쁘다'라고 불만 털어놓았더니 불만을 조금 많이 털어놓았다고 업무방해죄로 처벌당했다. 네이버 게시판은 이용자들이 댓글을 달고 추천하라고 만들어 놓았고 드루킹은 댓글을 달고 추천하는데 더 열심히 하려고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더니 업무방해죄로 처벌되고 있다. 애시당초 알고리즘의 기능 방식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므로 원래 컴퓨터업무방해죄의 입법 목표였던 해킹도 아니었다. 인터넷을 통해 대중들이 자유롭게 이합집산하며 의견을 표시했던 날은 이제 종지부를 찍는 것인가? 이제 인터넷은 대중운동의 요람이 되지 못하고 극우보수의 가짜뉴스와 일베의 혐오글들만 남기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