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2019 대한민국, 길을 묻다 ③조순

일취월장7 2019. 1. 16. 10:39
[신년기획①] 2019 혼돈의 대한민국, 원로에게 길을 묻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8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원로 연쇄 인터뷰…“분열과 갈등 끝내고 화합의 새 시대 열어야”

로마시대 원로회(元老會)는 현재 ‘양원제’ 체제에서 상원과 같은 역할을 했다. 연륜과 학식을 갖춘 ‘큰 어른들’의 회의체였다. 상원을 뜻하는 세너트(Senate)도 ‘원로회’에서 따왔다. 이 말이 우리말로 바뀌는 과정에서 ‘원로’(元老)라고 불린 것이다. 그렇지만 동양적 사고로 볼 때 원로회의 의미는 세너트보다는 엘더스(Elders)에 더 가깝다.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만,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은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과 같다. 현직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국가의 원로로서 자문역에만 충실해 온 것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국제 빈민운동에 적극 나섬으로써, 되레 퇴임 이후 미국 사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은 현 정부가 외교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경우 특사 자격도 마다하지 않는다.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일에 적극 나선다.

독일도 전직 총리를 국정 자문역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건물과 도보로 1분 거리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도록 해 수시로 현안에 대한 자문을 구한다. 이 밖에도 영국·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사회 각 분야 원로급 인사를 행정부 산하의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하도록 해 국가의 중요한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다.

비영리 국제 민간조직 엘더스(The Elders)는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세계 평화, 정의, 인권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는 사례다. 2007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엘더스는 현재 그로 할렘 브룬틀란(전 WHO 사무총장), 마르티 아티사리(전 핀란드 대통령), 지미 카터(전 미국 대통령) 등 13명이 회원으로 활동한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이 모임의 정식 회원이다. 2011년 4월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화해를 위해 노력했는데, 당시 카터와 함께 방북한 이들은 엘더스 사절단이었다.  

 

ⓒ Pixabay

국제 민간조직 엘더스, 국제 분쟁 조정 역할

현대사회에서 원로는 사회의 구심점과 같다. 사회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갈등을 보일 때일수록 사회의 구심점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60년 체제와 87년 체제 사이에서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발전에 진한 향수를 느끼는 세대가 보수라는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1987년 직선제를 이끌어낸 민주화 세력은 진보세력이라는 울타리에 모여 있다. 성장과 분배 중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할지를 놓고도 끝 모를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원로의 역할이 작아지고 있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일본이 세계 무대에서 여전히 기술 강국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는 것은 현직에서 은퇴한 기술 장인의 노하우가 후대에 전달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워낙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서다. 비록 기술이라는 특정 분야에 한정돼 있지만, 원로급 인사에 대해 일본 사회는 깍듯하다. 우리 사회도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가는 원로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들의 혜안을 사회 통합과 경제 도약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에 시사저널은 창간 30주년을 맞이해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 분야 원로급 인사들과 대담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대한민국, 길을 묻다’는 한국 사회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다.



조순 “소득주도성장 정책, 중소기업 어렵게 만든다”

        김지영 기자·정리   김민주 인턴기자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2019 대한민국, 길을 묻다 ③조순 前 부총리
‘경제정책 속도조절론’ 역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빠르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 연립주택이 밀집한 주택가에 2층 단독주택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 행운동(옛 봉천동)에 있는 이 집 대문 옆 명패엔 ‘趙淳(조순)’이라 씌어 있다. 지난 1980년 지어진 집이다. 취재진은 올해로 39년째 이 집에 사는 조순 전 부총리를 지난 1월7일 오후 ‘알현’했다. 조 전 부총리는 거실 책상에 정장 차림으로 앉아 취재진을 맞았다. 올해 91세. 망백(望百)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조 전 부총리. 

시사저널이 조 전 부총리를 찾은 건 그가 다방면의 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이자 교육자, 경제관료 출신에다 정치권에서 갖은 풍상을 겪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노태우 정부에서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를 역임했다. 한국은행 총재, 초대 민선 서울시장, 국회의원, 여야 당 대표 등을 두루 거쳤다. 학계와 관계, 정계 등을 넘나들며 굵은 족적을 남겼다. 한때 ‘포청천’ ‘산신령’으로도 불렸다. ‘특출한 외모’에서 비롯된 별명들이었다. 

이날 조 전 부총리는 거동이 다소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건강에 특별한 이상 신호는 없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앉은 자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목소리 톤은 낮았다. 하지만 취재진에게 전달한 메시지는 분명하고 확실했다. 그는 경제 관련 질문에 대해 거침없이 답변했다. 기자가 사전에 질의서를 보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자 질문을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그의 답변엔 막힘이 없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그것은 좋지 않은 정책”이라며 “팩트에 입각해서 세운 정책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오히려 고용을 줄이고 중소기업을 아주 어렵게 만드는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최저임금 정책과 관련해서도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빠른 것도 사실이지만 그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위기 해결은“한꺼번에 되는 건 아닐 거”라며 “한 10년 정도 내다보고 차근차근 가야 된다”고 조언했다.

교육 문제와 관련해서도 평소 소신을 피력했다. 거리낌이 없었다. 다만 남북문제 등 몇몇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인터뷰 중간중간 ‘백발성성한 산신령’ 만면에 해맑은 미소도 드리워졌다. 오래된 집 거실의 큰 창으론 한겨울 오후 햇살이 따스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 시사저널 박은숙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독거노인이나 마찬가지예요(웃음). 강연이나 모임 등으로 가끔 외출하는데 특별한 일 없으면 주로 집에 있습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운동을 조금 해요. 집 가까운 곳에 고등학교가 있는데 거기까지 낮에 산책을 합니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제가 볼 때 정부가 단편적으로 여러 가지를 했어요. 소득주도형 성장이라든지, 다 관련된 문제지만 최저임금제라든지, 단편적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수행했단 말이에요. 경제는 아니지만 정치에서도 적폐청산이라든가. 제가 보기엔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앞으로 긴 세월을 어떻게 해야 이 나라를 좀 더 좋게 만드느냐, 이런 큰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겁니다. 그게 비전이고 전략이란 말이에요. 전략이 있어야 전술이 나오죠. 전술이 곧 정책입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는 그게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역대 정부가 다 (비전과 전략이) 필요했는데,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단편적으로 이 정부에선 이거 하고, 저 정부에선 저거 하고 하니까 서로 잘 맞지도 않고 문제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과거에 정치도 해 보셨지만 아무래도 대통령도 정치인이다 보니 당장 성과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5년 단임제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면 단편적인 정책들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말씀대로 긴 안목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우리 정치의 안타까운 현실 아니겠습니까. 

“그럼요. 그렇기 때문에 그걸 국민과 반대당(야당)한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내가 이런 정책을 펴는 것은 내 후임으로 누가 오더라도 대체로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렇게 한번 (정책을) 세워보겠다. 나는 5년 임기를 넘어서는 정책을 구상해 보겠다’고 국민한테 확실하게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정부가 와도 (이전 정부의) 노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국민의 3분의 2 정도가 지지하는 그런 정책을 만들어야겠지요. 10년 이상을 내다보면서.” 

1989년 3월15일 민정당 당사에서 열린 대통령 공약 실천에 관한 당정회의에서 조순 부총리(왼쪽 두 번째)가 정부 대책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89년 3월15일 민정당 당사에서 열린 대통령 공약 실천에 관한 당정회의에서 조순 부총리(왼쪽 두 번째)가 정부 대책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빠르다”

말씀하신 문재인 정부의 단편적인 정책 가운데 노동소득 분배를 통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것은 좋지 않은 정책입니다. 그거는 잘 안돼요. 왜 그러냐면, 팩트에 입각해서 세운 정책이 아니라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세운 겁니다. 그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성공할 것이 별로 없어요. 항상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소위 팩트에 근거를 둔 정책, 소위 말하면 실사구시가 필요합니다. 실사구시를 해야 합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오히려 고용을 줄이고 중소기업을 아주 어렵게 만드는 그런 정책이란 말이에요.” 

하지만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임금 노동자에게 유리하단 분석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근로자한테 좋은 부분이 있기는 한데 근로자 전체가 아닙니다. 좋은 회사 다니고 좋은 직책에 있고 월급 잘 받는 이런 근로자한테 최저임금을 자꾸 올려주면 엄청 좋지요. 그렇지만 중소기업, 이런 기업들엔 아주 안 좋습니다. 그러니까 근로자 일부한텐 유리하지만 전체한텐 유리한 것이 아니에요.”

최저임금 인상 문제도 맞물려 있는데,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고, 정부도 고심하는 것 같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빠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우선은 그 자체가 시기상조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소기업, 자영업 같은 겁니다. 다섯 사람이나 서너, 너덧 사람 고용하는 그런 게 잘돼야 합니다. 그래야 소득 문제도 해결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해 놓으면 네댓 명 고용하는 업체들, 참으로 곤란할 겁니다. 그것을 또 빨리빨리 올리면 어떻게 감당해 냅니까. 세상에 그런 법이 없어요. 어떤 나라도 그렇게 빨리 소득을 올린 나라가 없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중국이 옛날에 그랬죠. 중국이 그땐 목표를 가지고 있었어요. 중국은 경제 구조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들겠다, 말하자면 기술 위주로 구조를 바꾸겠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목표도 없이 소득주도라면서 정부가 자의적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하고 그걸 올리거나 내리거나 마음대로 하는 건 대체로 성공 못 할 겁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다는 지적과 우려 때문인지 지난해(2018년) 같은 경우 16.4% 인상했다가 올해는 10.9%로 낮췄습니다. 그러면서 대통령 공약인 ‘시간당 만원’이 실현 불가능하게 됐다는 분석이거든요. 이 정도 속도는 괜찮다고 보십니까. 

“제가 보기엔 그것도 상당히 높아요. 왜 그러냐면, 작은 업체들은 약간의 돈도 사활의 문제거든요.” 

1995년 4월24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된 조순 전 부총리(왼쪽)가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 후보경선과 관련한 문제를 협의했다. ⓒ 연합뉴스
1995년 4월24일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된 조순 전 부총리(왼쪽)가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 후보경선과 관련한 문제를 협의했다. ⓒ 연합뉴스

“경제정책 10년 이상 내다보고 가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했는데, 정규직화 속도도 느려졌다고 합니다.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정부가 그렇게 개입할 문제는 아니에요. 그건 시장에서 결정합니다. 시장에서 과연 그런 걸 제대로 할 거냐, 그렇게 보시는 분도 아마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시장이란 게 엉터리 제도가 아닙니다. 그게 역시 기본적으로 경제의 중심입니다. 시장이라는 게 중심을 이뤄야 돼요. 그래야 수요·공급이 맞아떨어질 수 있고. 그래야 스무스(smooth·원활하게)하게 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한꺼번에 어떤 이상(理想)을 내걸고 해선 실패하기 쉽습니다.” 

고용 문제는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기업주 결정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만약 시장에 고용을 맡겨두면 고용주 입장에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으려 할 것 같습니다.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정부가) 개입하는 것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기업주와) 한 번 상의를 한다든지, 그렇게 조응을 하든지, 대화를 통해 서로 양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스무스하지, 상대방 생각은 안 한 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하라, 이렇게 한다는 건 옳지 않습니다.”  

재계에선 ‘문재인 정부가 과감히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경기부양 속도를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경기부양을 상당히 한 것이지요. 소득주도형이라고 해 가지고 정부가 돈을 썼단 말이에요. 고용정책이라면서 정부 지출을 통해 공무원을 늘렸단 말이죠. 그게 정부의 경기부양책이죠. 강력한 경기부양책이죠.”

1995년 7월1일 조순 당시 서울시장이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을 찾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1995년 7월1일 조순 당시 서울시장이 강남성모병원 영안실을 찾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장에 맡겨놔야”

그러면 경기부양 속도를 더 내야 한다고 보지 않으신다는 말씀이죠.

“예. 아닙니다. 아닙니다.” 

속도를 좀 줄여야 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럼요.” 

규제개혁 같은 거는 좀 더 과감하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규제개혁은 좀 더 과감하게 해야죠.”

하지만 과감한 규제개혁을 요구하는 재계 목소리를 너무 들어주면 안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규제를 너무 쉽게 풀어줘선 안 된다는 건데요, 그건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나라는 규제가, 정말 쓸데없는 규제가 너무 많아요. 규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장이 죽어갑니다. 시장은 규제를 싫어하거든요. 그러니까 규제를 줄여야 하는데 재벌들이 원하는 규제개혁도 있고, 중소기업이 원하는 것도 있을 텐데, 정부가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해 가지고 결정해야죠.” 

일각에선 경기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안 좋을 수 있다고 전망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지금 문제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보다도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왜 그러냐면, 지금은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있어요. 그때(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문제는 딱 성격이 정해져 있었거든요. 지금은 주어진 문제가 없습니다. 모든 게 문제란 말입니다. 고용, 성장, 여러 가지가 다 문제예요. 규제, 전부 문제가 돼 있지요. 그래 가지고 어디 하나를 봐도 건전한 것이 없고, 그런 의미에서 그 두 번의 위기보다도 사실은 더 어렵고 더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경제위기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세의 큰 흐름을 정부가 알아야 합니다. 이것(경제위기)을 해결하기 위해선 한꺼번에 되는 건 아닐 거예요. 한 10년 정도 내다보고 차근차근 가야 됩니다. (정부가) 그렇게 생각하면 국민은 불만이 많겠죠. 당장 살기 힘드니까. 그래도 정치, 경제, 이런 거는 ‘빨리빨리’ 가지고 안 돼요. 과거 정부에선 모르겠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2000년 3월8일 민주국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조순 전 부총리(가운데) ⓒ 시사저널 이종현
2000년 3월8일 민주국민당 중앙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조순 전 부총리(가운데) ⓒ 시사저널 이종현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우리나라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특히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이기도 합니다. ‘차이나 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중국이 우리를 따라잡는다는 건 기정사실이니까요. 우리와 중국의 경제 발전 속도는 비교가 안 됩니다. 여러 가지로 저쪽이 빠르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경쟁할 생각하지 말고 협력해서 피차 윈윈(Win-Win)하는 정책으로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누가 경제정책을 가장 잘 실행했다고 보십니까. 

“우리 대통령들 업적을 평가해 볼 때 ‘야, 좋은 대통령이었다’ 이렇게 생각할 대통령은 없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만족할 만한 대통령은 그리 없습니다.”

아무래도 정부의 경제 수장을 맡으면 대통령 대선 공약과 의지를 무시할 수 없겠죠. 일하시면서 얼마나 영향을 받았습니까.

“물론이죠.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라 어쩔 수 없다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평소 정부가 있는 힘을 다해서 막아야죠. 소위 자유경제엔 대부분 빈익빈 부익부를 피할 수 없습니다. 평소에 부자한테 세금을 좀 더 받고, 가난한 사람한텐 좀 덜 받는 식으로. 고용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러니까 10년을 내다보는 (경제정책) 방향들을 대통령이 정해야 됩니다. 이제부터라도, 지금 대통령부터라도 해야 합니다.”

앞으로 계획 좀 들려주십시오.

“계획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겠지만 나이가 이쯤 되니까 뭐 계획대로 잘되지도 않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긴 합니다. 시간 낭비할 순 없잖아요. 그렇지만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선 말 안 하는 게 제일…(웃음).”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2019 대한민국, 길을 묻다 ③조순 前 부총리
조순 前 부총리의 교육관 “사교육이 아이 망치는 데도 일등만 다그쳐”




 

조순 전 부총리는 관료 출신 이전에 학자이자 교육자다. 경기중학교와 서울대 상대 졸업 후 1960년에 미국 보오든대를 졸업했다. 이후 UC버클리대학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7년 서울대 상대 부교수로 부임했고 1970년부터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많은 학자와 재계 인사를 배출했다. 조 전 부총리는 요즘도 특강을 다니면서 자신의 교육관을 설파한다. 

2018년 7월11일,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동반성장연구소가 주최한 ‘제54회 동반성장포럼’에선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조 전 부총리가 ‘나라의 중심은 사람이다’란 주제로 한 이날 강연 내용 일부를 소개한다. 

2018년 7월11일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서 열린 제54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조순 전 부총리가 강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2018년 7월11일 서울대학교 교수회관에서 열린 제54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조순 전 부총리가 강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조 전 부총리는 “부모가 자식을 발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며 “자식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도록 그리고 어릴 때부터 좋은 버릇을 가지도록 가르치지 않고 별의별 사교육을 받게 한다. 사교육이 아이를 망친다는 것을 모르고 거기서 일등을 하라고 다그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린아이들에게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1등을 하라는 쓸데없는 부담을 주지 말고 사교육을 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좀 힘들더라도 가정교사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조 전 부총리는 정부의 교육정책과 관련해 세 가지 조언을 했다. 우선 ‘어문(語文)정책’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한글 전용은 우리나라 문화발전을 크게 저해해서 나라를 이류국(二流國)도 어렵게 만든다. 국어의 75%에 달하는 한자 어휘를 모두 사어(死語)로 만든다”며 “국민은 직설적이고 원색적인 한글어만 쓰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 후진들의 지능 발전이 없다. 있어도 느리고 거칠다. 한글 전용이 일류국이 될 수 있는 나라를 영원히 삼류국으로 묶어놓고 말았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 평준화 정책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조 전 부총리는 “평준화는 한글 전용과 함께 모든 아이를 우열(優劣) 없는 우인(愚人)으로 일률화하자는 취지”라며 “이 같은 정책은 발전 지향적이 아닌 퇴보 촉진적인 사람들이나 채택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버려야 할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조 전 부총리는 대학 운영 자율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대학이 학생의 입학과 성적평가, 졸업 등에 관해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운영에 대한 교육 당국의 ‘간섭’에 대해선 “유해무익(有害無益)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대입수능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수능점수를 가지고 모든 대학의 학생선발 기준을 삼는 것은 어리석고 잘못된 일”이라며 “수능은 수학능력 즉 scholastic aptitude(학자적 자질)의 유무를 평가하는 지표이지 대학 입학의 전형으로 쓰일 것은 아니다. 우리 대학의 다양성을 기르기 위해 입학시험 제도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입학생 출신지역 분포의 평준화 제도’를 제안했다. 대학마다 시·도 지역별 인구에 비례해 입학생을 뽑자는 것이다. 조 전 부총리는 “미국 대학에선 학생 선발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대학 입학처장이 연중무휴로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각 주(州)의 사정을 살핀다”고 말했다.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2019 대한민국, 길을 묻다 ③조순 前 부총리
조순 前 부총리가 보는 한반도 정세



조순 전 부총리는 지난 1월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한반도 긴장완화 분위기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자세한 질문에 대해선 난색을 표했다. “글쎄, 어려운 문제인데, 말 안 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상당히 말을 아끼려 했다. 그럼에도 거듭된 질문에 몇 마디 했다.  

1997년 9월11일 조순 민주당 총재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1997년 9월11일 조순 민주당 총재가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통일 대박’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통일의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거였습니다. 현 정부도 남북관계가 좋아지거나 통일이 되면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말합니다. 

“그걸 그렇게 쉽게 봐선 안 됩니다. 길게 보면 통일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지요. 그렇지만 통일 대박 그건 너무 과한 기대지요. 과한 기댑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 대박과 현 정부에서 기대하는 장밋빛 청사진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북한이 붕괴할 테니까 그때 우리가 나서면 대박 나지 않겠느냐’ 이런 뜻이 꽤 담겨 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북한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나라가 아니죠.”

남북교류 속도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이 또한 너무 빠르다고 보십니까.

“속도를 자꾸 빨리빨리 하자, 이건 우리 쪽에 유리한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보수 단체와 언론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해 북한이 사과를 안 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경우에 따라선 올바르지만, 그러면 사과를 안 하면 계속해서 이렇게 할 거냐, 이렇게 한다면 그것도 옳은 것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정세를 봐서 이건 어차피 사과를 못 받는다 포기하고 또 미래를 향해서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