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세계는 지금 '직접민주주의'가 대세 - 불평등의 저주, 문재인 정부에 필요한 '플러스 알파'

일취월장7 2018. 10. 11. 11:32

세계는 지금 '직접민주주의'가 대세

[다른백년 칼럼] 직접민주주의 글로벌 포럼 로마대회 참관 기록
2018.10.10 11:09:05

필자가 '직접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스위스 국적의 직접민주주의 전도사 브루노 카우프만(Mr. Bruno Kauffmann)이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하여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하는데 국민주권연구원의 상임이사 자격으로 인사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계기를 통해서다.

강연 내용은 상당히 신선하여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의 느낌을 4월 6일 자 <프레시안>에 ''즐거운 실패자'가 되는 방법...시민발안제를 제안한다'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통해서 소상히 밝힌바 있다(☞ 바로가기). 

한편 한국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하여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며 민간정부로 출범하는데 성공하였고 2016/7년간의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탈법적이며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단죄하고 문재인 정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세계인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았으나, 정작 이후 전개될 미래정치의 로드맵은 실종되었고, 목불인견의 구태의연한 과거식 정치형태가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우리의 정치판이 도로묵으로 회귀하는 형국이다.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이에 대하여 헌법개정과 선거법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 한국 정치판의 구성과 상황, 헌정 제도의 결함과 시정잡배 수준의 정당구성원 자질 등 여러 문제로 난항을 겪으면서, 의회와 정당구조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 중의 최우선이라는 공론이 형성되면서 현하 한국사회의 가장 주요한 개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사회 내 선진적 시민사회의 주도로 비례민주제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시점에, 정작 정당명부식 비례민주제 시행의 모범국가로 알려진 독일에서는 오히려 대의적 정당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집권여당인 기민기사연합당은 차치하고라고 160년 역사를 지닌 사민당조차 냉대 속에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한다. 로마현지에 만난 독일 활동가들의 독일의 정당중심 정치에 대한 반응은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상' 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의 주변부라고 칭할 수 있는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그리고 급기야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즉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어 급기야 중앙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국내 언론의 보도와 학계 대부분의 평가는 이를 부패하고 무능력한 남유럽의 정치문화에 국한된 일과성 내지는 대안을 찾지 못해 표출하는 포플리즘으로 치부하면서 오로지 책임질 수 있는 대의적 정당정치로의 복귀가 정답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편이다. 정말 그럴까?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미래구상에 대한 갈증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직접참여의 생생한 정치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볼 욕심으로 추석 다음날 일찍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비를 털어서 함께한 이들은 대구가톨릭대 이정옥 교수를 비롯하여 주권자전국회의 문국주 집행위원장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형식박사 등 이었다. 

이번 제 7차 글로벌포럼이 영원한 도시(Eternal City)로 불리는 로마에서 열렸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상징적이었다. 로마시의 배려로 2000여 년 전 인류역사에서 매우 소중했던 민회 중심의 공화정이 실행된 장소인 '포로로마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청건물(Palazzo Senatorio)에서 진행되어 역사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였고, 유럽의 21세기형 시민혁명이라고 평가받는 오성운동 운동의 출신으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로마시장에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Ms. Virginia Raggi)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별했으며, 60여 개국에서 500여명이 참석할 만큼 이젠 직접민주주의 운동이 국제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열기 속에서 열렸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로 대회 이후 직접민주제의 확산을 위한 마그나 카르타의 제정 결의로 발전한다. 

회의 일정은 9월 25일 저녁 등록과 함께 개회선언과 로마시장의 저녁초대로 시작하여, 26~27일 양일간의 오전의 공동주제 발제와 오후의 각론적 워크샵으로 진행되었고, 28일은 전체회의를 평가하고 2019년 대회 주최 예정국인 대만 타이중(臺中)시의 구상 발표에 이어 마그나 카르다 제정작업의 착수를 선언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매우 인상적인 것은 전세계 7개 주요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례발표를 한 것으로 로마는 시장이 직접 발표를 하였고 다른 도시들은 모두 부시장들이 참여하여 발제를 하였는데 서울과 마드리드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역시 압권은 라지 로마시장의 사례발표였다. 

그녀는 우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해마다 떨어지는 것은 기존 정치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체계와 참여방식의 일대 혁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아고라 광장의 원칙과 개념에 따라 모든 의제는 공개와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현대적인 통신기법인 온라인(on-line)과 기존의 오프라인(off-line)방식을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밝힌다. 

소셜 미디어와 정보의 수단을 활용하여 시민들로부터 직접 제기된 안건에 대하여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내용을 공개하면서 모든 시민들에게 제공된 정보의 접근권을 보장하며, 회합과 토론을 통한 숙의 그리고 결론에 이르는 일련의 종합적인 과정에 치밀한 시민참여와 시민발의라는 민주적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예시로 로마시는 여론조사와 시민제안을 통하여 핵심 프로젝트로 지속가능한 공간이동권(sustainable mobility in Rome)으로 선정하고, 이를 시민의 공론과 참여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영화제작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참여의 경로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뒤를 잇는 다양한 발표내용은 상기의 시나리오에 준하여 각자 도시들이 안고 있는 나름대로의 현안과 조건에 상응하는 여러 사례들을 발표하였는데, 추가로 몇 가지 사항을 보태어 설명하자면, 투명성(Transparancy)과 책임성(accounterbility)를 유난히 강조하였고, 발안와 숙의의 과정뿐만 아니라 실제의 집행과장에도 발안를 주도한 시민그룹들이 반드시 참여하여 모니터링하는 경로를 마련하여 땅에 떨어진 정치와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로설계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사항으로 적정한 예산배정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과 일정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가 입을 모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가능한 모두가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숙의하고 결론을 도출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참여 여부도 강압이나 규정이 아니라 관심과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현재 국가단위에서 시민발안제를 포함한 직접민주제도를 채택한 나라에는 스위스와 우루과이 그리고 놀랍게도 이웃나라인 대만이 있다. 대부분의 참여국가들은 지방자치단위 수준에서 참여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거나, 주요 남유럽국가들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대부분 주정부, 미국의 선진적 주정부(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오리건 등)에서 시민발안제도가 채택되고 시행중인 듯하다. 우루과이라는 나라가 언급되자 농민출신으로 대통령으로 봉직하다가 건강문제로 사직하고 다시 농민으로 돌아간,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의 이야기가 필자에겐 직접민주제도와 함께 연상으로 겹쳐지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대만의 경우에도 국가의 중대한 사안은 아닐지라도 생활의 현안문제를 시민적 발안을 통해서 국민투표를 시행한 수 차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타이중시의 사례발표에는 초등학교부지의 선정과 학교이름을 작명하는 과정을 시민 발의와 투표과정으로 진행한 사례가 재미있게 소개되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례발표는 스페인의 경우, 포데모스 운동이 격하게 진행되기 전인 2011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은 특별한 이슈에 억매이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real democracy)를 외치면서 기존의 정치제도를 다시 생각하고(rethinking), 다시 정의하고(redefine) 다시 설계(redesign)할 것을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통해서 요구하였으나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들의 요구에 등을 돌리면서 포데모스 정당운동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시민들이 직접 책임지고 결정한다(we, people, are to make decision in responsibility)'라는 구호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아직 전국단위의 직접민주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중앙정부에 직접민주제 책임장관을 임명하여 이를 준비하고 있으며, 대부분 지방정부에는 시민참여부서를 국장급단위로 직접 운용하고 있다. 직업정치 영역과 일반시민간의 간격을 줄여가기 위한 전자시스템의 구축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시민들은 이미 직접민주제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반하여 정작 정치인들은 이의 시행에 꼬리를 빼고 있다고 고백한다.

디지털 디바이드, 시민 연령의 고령화 및 25개의 지방정부간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그리고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투명성 부재가 직접 민주제를 당장 시행하지 못하는 현실적 장애라고 지적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시민간 자질의 간극과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전문가들의 안내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치적 고려와 기술적 사항 그리고 제도적 정착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시민발안 확정 이후 실제로 시행된 국민투표에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했던 경험도 지적되었다.

시민발안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직접민주제도가 비경제적이라는 지적에 대해, 바젤 대학의 교수출신이 마이크를 잡아채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절대로 반대의 경우라고 외치면서 스위스 경험에 비추면 직접민주제를 통한 결정이 대의민주제의 과정보다 직접 비용이 20% 정도 절감되며 사회갈등으로 발생되는 간접비용까지 감안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직접민주제도가 시민들에게 만족감을 제공하는데 훨씬 경제적이며 효과적이라고 단언한다. 아이슬랜드의 사례로 금융위기로 국가부도상태에서 이를 극복한 것은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해결책을 찾고 모두가 하나되어 실천한 덕분이라는 발언도 있었다.

민주제도를 정치를 중심으로 분류하자면 리바이던의 저자 홉스식으로 권력자에게 모든 것이 위임된 통치(統治)에서 시작하여 루소의 시민적 일반의지에 따른 사회계약론과 칸트의 보편적 법정주의에 따른 법치(法治)가 변형되어 공직사회가 시민을 통제하는 관치(官治)를 거쳐 시민들이 참여하여 진행하는 협치(協治)의 형태로 발전해 온 셈이다. 법치의 다른 형태로 민주적 사회로 들어오면서 합의된 선거의 규칙을 통해 시민의 선택을 받은 정당들이 책임지고 국정을 운용하는 이당치국(以黨治國)이 일반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인류사회 오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촛불혁명을 거친 2018년 한국사회는 이제 강압적(up-bottom) 통치시대를 끝내고 관치를 넘어서 협치를 지향하는 시점에 있기는 하나, 민본과 민생과는 거리가 먼, 표만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show-up)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참여민주제로 포장한 유사민주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정당이라는 이름은 있으되 정당이 추구해야 할 강령과 정책의 실천의지가 실종된 사이비 정당시대에 한국시민들은 살고 있기도 하다. 

이때 직접민주주의를 들고 나선 일군의 유럽 시민들은 기존 정당중심의 정치는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민주주의는 반드시 바텀업(bottom-up) 방식의 민치(民治)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출발점이며 새로이 마그나카르타를 준비하는 배경과 근거이기도 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동의적으로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 한국현대 정치사를 살펴보면 민치가 이루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성숙한 대의적 민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의 개혁 역시 매우 바람직하며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정당다운 정당이 없는 한국정치의 현실에서는 텅빈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당이 정당답게 변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확립을 위해서도 시민발안제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것이 로마에 참여한 지인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자 한국사회에 던지는 조언이기도 하다. 이제 비례적이고 균형적인 대의제도와 시민발안을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제의 쌍(双)도입이 2018년 이후 한국정치의 과제상황이 된 셈이다. 

대회 이틀째인 로마대회의 직접민주주의 토론은 정치의 영역을 훌쩍 뛰어 넘어간다. 각론으로 넘어간 오후의 워크샵에서는 수많은 주제들이 다루어져 필자가 모두 참석할 수는 없었으나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구체적 경험과 내용을 담아내는 사회 경제 그리고 철학의 주제로 이루어 졌다. 필자가 선택하여 들어간 두 군데의 워크샵 주제는 '민주주의는 예술이자 타자와의 대화이다' 와 '창의적인 공유재와 민주제도 – 혁신'이였다. 불행히도 주제강연과 토론이 독일어와 이태리어로 이루어졌고 어설픈 통역으로 깊고 세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첫째의 주제는 일정에 없던 것으로 저명한 독일 철학교수가 참여하면서 급조되어 이루진 워크샵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제도로 보지 말고 자신의 삶에 채워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음악의 여신인 뮤즈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뮤즈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타자와 대화를 통해서 더욱 성숙된 내용으로 정진하면서 일상적인 실천으로 나가게 된다고 가르치면서, 삶의 주인인 자신과 타자인 우주와 세계 및 사회간의 관계적 연결 매체로서 직접민주제도가 반드시 요청된다는 요지이다. 내용이 어려워 필자가 이해했는지는 불명하여 그가 강의 중에 칠판에 그려낸 한 폭의 예술적 강의기록을 찍은 사진을 아래에 게재하면서 이를 보완하고자 한다.



두 번째 주제의 발제와 패널은 그야말로 로마시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자리였다. 로마시 당국의 시민참여국장, 로마시의 유럽대학 학장, 장관(?)연합회 의장, 디지털이태리 대표 등이 참석하여 주로 직접민주제를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이해했다. 직접민주제를 실시하는 데는 정보와 데이터가 매우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이를 사기업이 소유하고 있어 비용이 발생하면서 일반시민들의 접근이 제한되는 것을 여하히 극복하는 문제와 기업과 경제활동의 영역에 이해관계자 중심 또는 사회적 공유라는 개념을 직접민주제와 결합시켜 적용하는 주제를 다루면서 어떤 경우라도 모두를 위한 혁신과 창의를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것을 분명히 한 자리였다. 

결론부이다. 3~4일간의 로마대회를 참여하면서 이제 정치적 제도는 통치와 법치의 영역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민치의 시대(以民治國)로 진입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으면서, 직접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제도의 영역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적 사건 속에서 원칙과 과정과 대화를 통하여 개인 그리고 인류사회를 보다 높은 미래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 라고 스스로 정리해본다.

추신 : 참여한 대부분 주요 도시에서 시민참여와 교육을 위한 수백만 유로(수십억 원)의 예산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에 1년에 1700조 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나라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시민민주교육 예산이 3~4억 
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회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한국 인사들의 발표 내용과 수준도 이에 준했다. 촛불시민혁명의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현대적 민주주의에 관한 한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불평등의 저주, 문재인 정부에 필요한 '플러스 알파'

[김윤태 칼럼] 소득주도 성장만으로는 한계…사회보장 개혁 서둘러야
2018.10.11 10:57:17

한국 정부는 GDP 성장률을 중시한다. 노무현 정부는 2만 달러 시대를 국정목표로 정했다. 이명박 정부는 4만 달러를 내걸었다. 2018년 IMF 통계에 따르면, 1인당 국내 총생산이 3만2775달러를 기록하면서 세계 29위, 인구 1000만 이상 기준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 달러가 넘어도 행복감은 더 늘어나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이 불행감과 열등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비 지출과 주거비와 성형수술 비용처럼 과잉경쟁의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세계 최저 출산율과 세계 최고 자살율 통계가 보여주듯이 한국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한국인이 행복감이 낮은 가장 큰 이유를 지나친 불평등이다. 경제성장률이 상승해도 지나친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행복감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절대적 소득만큼 상대적 소득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소수의 부유층이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고용불안과 노후불안으로 고통을 겪는다면 1인당 국내총생산과 평균소득의 상승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재벌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을 쥐어짜는 피라미드 계층구조에서 중산층은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에 앞장선 1700만 명의 국민의 목소리에는 극심한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불평등의 저주 

코라도 지니는 이탈리아 통계학자이자 사회학자인데, 지니 계수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지니 계수는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표를 널리 사용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지니계수는 0.295로 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17번째로 낮고, OECD 평균인 0.314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통계청의 가계소득 조사 자료는 조사의 객관성과 부자의 응답 기피 가능성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는 불평등 연구를 위해 아예 지니 계수를 사용하지 않았다. 2014년 그는 <21세기 자본>에서 지난 200년 동안 25개 국가의 납세 통계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분석하여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와 파리경제대학의 <세계의 부와 소득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1%의 소득은 2016년 기준 전체 소득의 12.3%를 차지하며, 상위 10퍼센트의 소득은 약 44.8%로 절반 수준을 차지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고 부유층의 부의 집중이 지난 20년 동안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지나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만든 사회문제는 다양한 차원에서 부작용을 일으킨다. 소득, 부, 교육, 권력의 불평등 뿐 아니라 건강, 사망률, 행복감과 자존감의 불평등도 발생한다. 영국 사회역학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이 문제다>에서 부유한 23개 국가의 비교연구를 통해 불평등이 질병, 정신질환, 자살, 살인, 범죄, 사회적 신뢰의 저하 등 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소득 격차가 가장 큰 미국은 가장 많은 의학적 질병, 우울증, 최고의 살인율과 수감율로 고통을 겪고 있다. 반면에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처럼 평등한 사회가 미국에 비해 사회문제가 훨씬 적다. 한국인의 낮은 행복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은 불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증가하는 불평등은 한국의 주관적 계층 의식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015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스스로 하층이라고 답변했다. 평생 노력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60퍼센트에 달했다. 심지어 자녀 세대가 자신보다 더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로 하락할 것이라는 응답의 비율도 급증했다. 재벌 3세, 4세 자녀의 막대한 부의 세습이 알려지면서 금수저와 흙수저의 논쟁도 등장했고,'헬조선'이라는 인터넷 유행어가 확산되었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처럼 분노가 저항으로 폭발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불평등의 저주는 한국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나친 불평등을 줄이는 전략 

2017년 6월 10일 6월민주화운동 기념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대변하는 말이다. 그 후 문재인 정부의 정책 목표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경제, 공정경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부의 경제정책은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자리를 최고 목표로 설정했지만 고용율은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영세자영업자의 불만에 직면했다. 혁신경제에 필요한 산업정책이 분명하지 않은 가운데 자동차와 조선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실업자가 발생했다. 공정경제는 표류하고 불충분한 재벌개혁과 조세개혁에 의해 불평등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불평등을 줄이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지난 20년 동안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을 낮추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낙수경제학의 장밋빛 청사진은 현실에서 좌절되었다. 그리하여 최근 주류 경제학자들은 낙수경제학에 대해 회의적인 평가를 발표했다. 2009년 세계은행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불평등의 위험을 경고하면서 '포용적 성장'을 제안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출간한 <소득 불균형의 원인 및 결과>는 150여 개 국가를 분석하고 낙수효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고 중산층을 유지해야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경제학자들이 2012년 '소득 주도 성장'을 제기하여 많은 논쟁이 발생했다. 포용적 성장과 소득 주도 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소득 인상만으로 불평등을 줄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웨덴 사회학자 코르피와 팔메는 미국과 스웨덴의 경험적 분석을 통해 불평등을 줄이는 전략으로 임금 인상보다 사회보험 등 복지제도의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복지제도가 빈곤을 감소하는 효과는 시장 소득과 가처분 소득을 기준으로 측정된 빈곤율로 비교할 수 있다. 가처분 소득 빈곤율이 가장 낮은 스웨덴의 경우 시장 소득 빈곤율은 미국보다 높다. 그러나 미국의 가처분소득 빈곤율은 스웨덴보다 훨씬 높다. 보편적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부재도 불평등을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2007년 공식적 빈곤선을 기준으로 한 미국의 빈곤율은 12.5%였지만 의료비용을 소득에서 제했을 경우 빈곤율은 15.3%까지 상승한다. 미국에서는 가처분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  

한국의 세전과 세후 지니계수의 비교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조세와 복지에 의한 재분배의 기능이 강한 나라의 경우에 초기 소득(세전 급여)의 지니 계수와 소득 재분배 이후 가처분소득의 지니계수가 다르다. 가처분소득은 시장소득에서 공적 이전을 더하고, 조세를 제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자료를 보면, 국내총생산(GDP)의 20~30%를 복지에 지출하는 북유럽과 서유럽 국가에서는 대체로 지니계수 개선 정도가 양호하다. 반면 한국은 공적 이전과 조세에 의한 지니계수의 개선 효과가 4번째로 낮다. 공적 이전과 조세가 지니계수를 거의 낮추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시기에 한국이 복지국가의 시대로 진입했지만, 아직 한국의 복지국가는 저발전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복지국가가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도 미약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복지제도에 의한 불평등 완화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났지만, 차상위 사각지대에 대한 공적 이전이 미약하다. 고용보험의 경우에도 전체 인구의 절반이 제외되어 불평등 완화에 미치는 효과가 적다.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지출 예산의 비율(10.1%)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 비율인 20% 수준에 비해 매우 낮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2016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19.4%)도 OECD 회원국 평균(25%)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조세부담율과 사회지출이 낮아 한국에서 분배 정의는 왜곡되고 있다. 

부의 집중은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많은 학자들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정부의 역할, 기업과 노동조합의 권력관계, 그리고 사회정책의 효과에 주목한다. 한국에서도 정부와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조세 도피, 낮은 세율, 부실한 복지제도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또한 재벌 대기업의 탈세, 불법 상속, 지나친 임금 상승과 배당, 부동산 투기 등으로 부의 집중이 심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불평등을 규제하는 정부의 입법과 규제 장치는 매우 미약하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30년 동안 노동조합이 약화되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의 영향력이 작아지면서 정치권에서 재벌과 부자를 옹호하는 힘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재벌 대기업과 불법적으로 결탁한 박근혜 정부를 탄핵했지만, 최근 은산분리 완화 입법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재벌 대기업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재벌 대기업의 탈세, 불법 상속, 불공정 거래, 동네 상권 지배를 막는 정책이 없다면 부의 불평등을 줄이기는 어렵다. 재벌 대기업이 최고 포식자로 군림한다면 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의 소득은 점점 쪼그라들고 말 것이다. 부의 집중과 심화는 결국 사회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중산층의 구매력을 약화시켜 장기적인 경제성장도 저해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책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치열한 논쟁이 필요하다. 지난 20년 동안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 공기업 사유화, 의료 민영화, 자사고 설립, 서울의 뉴타운 개발, 경제의 금융화가 이루어지면서 누가 더 이익을 얻었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진정 양식 있는 학자라면 국내총생산과 경제성장율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고, 정부의 정책으로 과연 누가 이득을 얻고, 누가 손해를 보았는지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다행히도 올해 9월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에서 '포용국가의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사회보장 개혁의 청사진이 촛불 시민혁명 이후 1년이 넘은 시점에 발표된 것은 너무 늦은 감이 든다. 앞으로 조속한 시일에 구체적 액션 플랜과 재정 조달 계획을 실행하기 바란다. 물론 장기적 성장 동력을 키우는 산업정책과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적극적 행동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지나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조세 개혁과 사회보장 개혁이 없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것이다.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여 사회이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과 훈련에 대한 대대적 투자가 없다면 사회계층은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경제성장률을 올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