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동북아, 유라시아, 미국 패권

일취월장7 2018. 9. 15. 09:05
남북 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2018.09.14 09:47:47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rk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선행 조건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 없는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는 가능하지 않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이 궁극적인 '평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최 교수는 남과 북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상태"인 '남북 연합론'을 제시했다. '남북 연합'이란 '일국가 이체제'도 아닌, '이국가 체제'도 아닌 상태다. 최 교수는 "남북 연합이 통일의 최종 형태가 되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최 교수는 "남북 연합론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새로 상상하는 것 또한 함께 간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구상하기 위해서 최 교수는 "한반도,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반도의 평화, 그것을 넘어 동북아,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로 가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최 명예교수의 발제문을 싣는다.  

1. 러시아 월드컵에 동아시아는 없다 

일본 대 벨기에 전에서 한국 모 공영방송 해설자의 편파적 응원에 대한 나라 안팎의 논란이 거셌다.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16강전에 진출한 일본의 패배에 대한 그의 직정적(直情的) 태도가 한국에서 꼭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컨대, 한국에서 일본은 여전히 콤플렉스다. "다른 나라에 대해 습관적 증오나 호의를 갖는 것은 노예근성에 가깝다"는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이 의구한 심리는 상서롭지 않다. 그런데 일본 쪽 사정도 썩 낫다고 하기 어렵다. 최근의 한반도 화해에 불안해 하는 여론이 옹호하는 쪽을 압도한다는 것이고 보면 한국 팀에 대한 일본인의 속내 역시 단순치 않음을 짐작할 따름이다. 중국은 어떠했나? 한국 대 독일 전을 보도하던 중국 모 방송국 여성 앵커가 독일 선수복을 입고 나섰다는 데 드러나듯 중국 팀 없는 러시아 월드컵을 대하는 중국인의 심리가 복합적일 것은 쉽게 유추될 터, 요컨대 러시아 월드컵에 동아시아는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크게 후퇴했다. 피파(FIFA)의 조정으로 공동개최롤 수용하면서 경쟁하던 한일 두 나라 시민 사이의 우애가 이전보다 한결 진지해진 것을 그때 우리는 실감했다. 6.15선언(2000)도 도왔다. 이 선언 이후의 남북 화해가 한일 사이에도 긍정적으로 작동한바, 한반도문제는 동아시아문제와 커플링(coupling)이다. 한반도문제가 내재화하면 동아시아문제도 내재화로 꺾고 한반도문제가 외재화하면 동아시아문제도 외재화로 꺾는다.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정치가 탈민주화의 경로를 충실히 밟아나가면서 남북도 동아시아도 함께 항상적인 분쟁상태로 함몰했으니, 그 여진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대로 드러났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월드컵에 부각된 갈등에 너무 주눅들 필요는 없다. 축구는 원체 전투적이라, 경기장 안팎에 폭력을 야기하는 일은 물론이고 실제 전쟁으로까지 번진 경우도 없지 않았으니 이번 월드컵에 드러난 한중일 세 나라 국민의 가상전쟁을 일반으로 확대할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요란한 표층 아래 잔잔한 우애도 횡단했다. 한국의 탈락을 위로하는 일본인의 목소리와 일본의 선전을 칭찬하는 한국인의 목소리가 종요롭다. 마침 한반도 정세가 판문점선언 및 센토사선언으로 외재화의 긴 터널을 막 벗어나는 중이매, 동아시아에도 새벽빛이 부윰하다.  
 
물론 악마들은 곳곳에 출몰할 것이다. 이번에 각별히 확인한 바는 한반도가 비분쟁 상태로 변환하는 것에 비우호적인 미국 주류의 민낯이다. 하기는 남북관계가 전쟁조차 불사할 대결 속을 더듬었을 때 미국 핵무력이 금기의 영역이었던 서해에 거침없이 밀고 들어왔다니,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함께 불화할 때 미국의 위상은 두드러진다. 미국의 현전(presence)은 중국의 현전을 불러온다. 불화하는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의 대립 속에서 한반도문제의 최고 당사자인 남과 북이 동시에 손님으로 물러앉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모처럼 안팎의 인연이 줄탁동시(啐啄同時)로 나투어 문득 다른 시간으로 들어서니 뭇공덕이 고맙다.

2. 남북미와 동아시아 

벌써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만사 불여튼튼, 두 지점에 유의할 필요가 없지 않다. 하나는 동아시아, 다른 하나는 시민이다. 남북미가 주도하는 반전 속에서 자칫 동아시아, 특히 중국과 일본을 상대화하려는 경향이 부상할 수 있지만, 어떤 배외주의도 금물이다. 분단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분단의 해소 또한 국제적으로 성수될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자. 더욱이 우리는 중일을 껴안아야 할 절실한 이유가 있다. 틈이 생길라치면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와 편을 먹고 또한 일본은 한국과 미국과 편을 먹으려는 냉전시대의 대립으로 문득 회귀하려는 인습이 발동하기 때문에도 한국이 앞장서 중일과 튼튼히 연계해야 간신히 이 나쁜 유전(遺傳)으로부터 해탈할 계기가 마련되겠기 때문이다. 

또한 두 선언이 기본적으로는 남북미 세 나라 정상들의 결단에 힘입은 덕에 불가피하게 ‘좁은 의미의 시민적 참여’가 제한되었다는 점에도 더욱 주의가 기울여져야 마땅하다. 어렵게 열린 새 국면을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추동하기 위해서도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시민적 참여의 독자적 형식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지만, 나라를 가로지른 연대 또한 자연스럽다. 동아시아, 특히 말썽 많은 한중일 세 나라 국민 사이의 화해, 즉 민제(民際, inter-civic)를 다시 일대의 화두로 들어야 할 때다. 민제는 국제(inter-national)의 어머니다. 아무리 정부 사이가 좋다 하더라도 국민 또는 시민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 국제는 모래 위의 집 신세를 면치 못할 터인데, 한중일 세 나라 국민 또는 시민의 우애는 러시아 월드컵이 가리키듯 높다고 하기 어렵다. 동아시아국제주의를 담보할 민제를 더 촘촘히 할 일의 선차성이 새삼 종요롭다.

그동안의 진전, 특히 북미회담의 과정 속에서 중국의 연관은 일종의 구조라는 점이 밝혀졌기에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중국을 지나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아니 오히려 북은 물론이고 한국도 중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근리하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란 대사업은 한반도의 분단으로 왜곡된 중국혁명 이후의 사회발전을 제 길로 들어서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건국 직후 항미원조(抗美援朝)의 명분으로 6.25에 말려듦으로써 신생 중국은 국제적 고립, 특히 처음에는 미국, 뒤에는 소련까지 가세한 위협 속에서 파멸적 결과를 야기하곤 한 급진적 인민동원상태로 질주하기 일쑤였거니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대표적일 것이다. 이 점에서도 한반도 분단의 평화적 해소 과정은 모처럼 ‘굴기’의 문턱에 도착한 중국에도 절호의 기회가 될바, 그럼에도 그 기회가 제공할 다른 우려 역시 깊이 고려되어 마땅하다. 김동춘은 말한다.   

한국에서는 중국에 대한 우려도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은, 한국이나 북한이 또다시   중국의 영향권 아래에 편입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미나 친중이 아닌, 제3의 길이 과연 가능한 지가 관건이다. 종전선언이 일본 식민 체제의 종식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면, 한반도의 운명은 사실상 식민지 이전으로, 곧 미국과 중국이라는 대국 사이   에 낀 상태로 되돌아갈 우려가 있다. 

그의 발언이 최근의 복잡한 정세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이 걸리기는 해도 한반도가 분열된 경우 취하곤 한 중국의 전통적 기미(羈縻)정책이 부활할 데 대한 염려는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한중수교 이후가 남북을 조절하는 기미정책에 가까웠다고 할진대 남북이 함께 중국을 정성껏 설득한다면 중국도 새로이 출현할 남북연합과 동행하는 것이 떳떳하고 이롭기까지 하다는 판단을 내리지 못할 이유가 적다고 판단된다.  

일본은 더욱 절실하다. 그동안 미국의 등 뒤에서 한반도 문제의 내재화를 방해하던 아베의 일본정부가 정세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허둥지둥하는 모양이 마뜩찮아도 일본을 배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다시 김동춘은 말한다.     

올해 안에 남북한이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면, 평화체제로 가는 교량이 될 것이다. 한국   전쟁의 종전은 2차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으로 성립된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우려한 미국의 냉   전 전략은 일본의 전쟁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은 채 일본을 국제사회로 황급하게 복귀시켰고, 이런 ‘샌프란시스코 체제’ 아래에서 한국, 북한, 일본은 ‘정상국가’라 보기 어려운 ‘결손국가’가 됐다. 냉전은 식민 지배의 연장이었다. 한반도의 종전은 남북한뿐 아니라 일본도 정상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1951년 9월에 조인되고, 이듬해 4월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료하기 위해 연합국이 일본과 맺은 평화조약이다. 하필 6·25전쟁 와중에 대일강화조약이 추진된 이유는 나변(那邊)에 있는가? 미국은 6.25를 기화로 일본의 우익을 중국 국민당을 대신하여 다시 동아시아 정책의 보루로 삼으려는 것이매, 일본의 전후 개혁은 중도이폐하고 한반도는 휴전선을 경계로 다시 분단된 바, 일본의 패배가 전후 동아시아의 평화가 아니라 냉전체제의 발진으로 이월된 것은 역사의 간지다. 샌프란시스코체제를 바탕으로 태어난 한반도 ‘분단체제’와 일본의 ‘55년 체제’가 어떻게 각 국민국가 안팎의 민주주의를 제약함으로써 지역 전체의 평화를 속 깊이 위협해왔는지는 다시 거론할 바 없거니와, 판문점선언과 센토사선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강제한 동아시아의 왜곡을 치유할 복원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선언 이후 일본 또한 이미 이 거대한 변환의 문맥에 껴묻어있는 셈이니, 일본 조야가 이를 더욱 능동적으로 추동하도록 넌지시 옆구리를 찌르는 지역적 연대가 한층 의식되어야 할 것이다.  

3. 다른 동아시아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혁/평화체제의 구축은 비단 한반도 양측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변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20세기의 동아시아와는 다른 21세기형 동아시아 질서의 탄생을 촉진할 것이매, 동아시아공동체에 대한 토의를 다시 발진할 때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공동체론을 회피해왔다. 한반도문제와 동아시아문제가 쌍궤로 불안정한데 공동체론까지 가세하면 그나마 쌓은 지역연대도 그르칠까 하는 노심(勞心)이 가로놓였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는 경성(硬性)의 제도보다는 연성(軟性)의 네트워크 형성 즉 민제에 주력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물극즉반(物極則反)! 탈민주화의 끝에서 출현한 두 선언으로 쌍궤가 내재화로 꺾어지는 분기점을 바야흐로 통과했다. 이제 환상 없는 이상주의를 실험적으로 가동할 계제에 어느 틈에 다다른 것이다. 

남북연합론과 동아시아공동체론의 관계를 잠깐 짚어보자. 먼저 확인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양자가 별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 무엇이 선차적인가? 물론 전자다. 전자가 없으면 후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후관계는 아니다. 동시에, 함께 밀어나갈 구상과 실천이 종요롭다. 말하자면 회통(會通)이다. 회통은 회통이되 전자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후자를 안내하는 작업이기도 한 동시성이거니와, 역도 성립한다. 아마도 실제로는 ‘기우뚱한 균형’(김진석)이기 쉽다. 우리 각자가 서있는 그 실존의 장소에서 그 때에 맞춰, 다른 하나를 의식하며 그 하나의 작업을 수행하면 그뿐이다. 

또한 남북연합론에 대해서도 정리해둘 필요가 없지 않다. 나는 남북연합이 통일의 최종 형태가 되어도 무방하다고 피력해 왔다. 이 말은 주로 중일 지식인들 만났을 때 하던 것인데,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은근한 우려를 불식하기 방편으로 비롯한 것이었다. 표리부동한 자가 되어서는 아니되겠기에 나라 안에서도 주장했다. 물론 남북연합을 고정적이고 폐쇄적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남북연합 단계로 오르면 그 과정에서 또 역동적인 ​상호진화가 따를 것이 거의 분명할 터이기에 짐짓 시치미를 뗀 것에 가깝지만, 한편 치열한 토론의 결과로 정말로 창조적인 남북연합론이 도출된다면 ‘다테마에(立前)’에서 출발해서 ‘혼네(本音)’로 마감하는 도덕적 도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묻어놓기도 하였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 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 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다시 강조컨대 한반도문제와 동아시아문제는 쌍궤다. 전자의 핵으로 되는 남북연합론을 다듬는 일과 후자의 꿈으로 되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새로이 상상하는 일 역시 쌍궤다. 특히 그사이 미뤄진 후자를 한걸음 진전시키는 일이 종요로운데, 왜 경제적으로는 가장 역동적인 동아시아가 공동체 문제에서는 후진인가? 마크 셀던(Mark Selden)은 두 지점에 주목한다. 첫째 “제국 시기와 아시아-태평양 시기에 진행된 일본의 잔혹 행위를 둘러싼 충돌이 해결되지 못한” 것, 둘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과 다른 국가들의 충돌이 시작”된 것. 과거의 일본과 현재의 중국이 장애로 된다는 진단이거니와, 양자의 공통점에 주목하면 결국 미국의 존재에 미친다.  

일찍이 대영제국의 지위를 둘러싸고 독일과 경쟁한 미국은 두 번의 대전을 통해 20세기의 패자로 등극했다. 이 과정은 한편 ‘미국령 호수’ 태평양에 대한 일본의 도전으로 되는 태평양전쟁을 포괄한 바, 미국은 이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했고 일본은 굴복했다. 2차대전 후 반파시즘 민주연합의 분열 속에서 소련이 미국에 도전했다. 중국혁명과 6.25전쟁으로 부활한 일본 우익을 방패로 중소 대립의 틈에서 소련을 고립시켜 해체로 이끎으로써 미국은 최종 승리했다. 냉전과 열전의 지루한 지속 끝에 일본이 이끄는 경제 기러기 편대의 비행 속에 동아시아가 흥기했다. 이어 개혁 개방의 물결에 참여한 중국이 부흥하면서 바야흐로 일본의 도전에 이어 중국이 ‘미국령 호수’에 진출해 바야흐로 미중 무역전쟁의 전운이 짙다. 과연 중국의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비록 미국의 선공에 의한 자위적 조치라고 할지라도 전통적인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이탈한 중국의 잇단 ‘굴기’는 리 샤오(李曉, 길림대)의 말마따나 “지식상의 의화단” 운동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할지도 모르매, 미중무역전쟁을 정치경제적 내부 혁신을 통한 중국 개혁개방의 새 기회로 삼는 것이 근리하다는 게 중론에 가깝다. 

중국의 버거운 상대 미국은 또 어떠한가? 미국이 하강 끝에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라는 주장은 덜 합리적이지만 트럼프의 등장이 지니는 목하 미국의 처지 또한 간단치 않다. 어느 경제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자. 

박태호: 오바마 전 대통령 때는 (...) 미국의 서쪽으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동쪽으론 범대서양무역투자협정(TTIP)를 각각 추진했다.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의 서비스산업의 주도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TPP추진을 철회하고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기로 하면서 두 개 모두 무산됐다. 미국이 제도를 통해 합리적 슈퍼파워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추진한 대안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결국 남은 건 트럼프식 양자해결뿐이다. 

트럼프의 등장만큼 미국의 곤경을 잘 보여주는 예는 드물거니와, 푸틴과의 회담에 앞서 “나는 정치를 쫓으며 평화를 위기에 빠뜨리기보다는 평화를 추구하며 정치적 위기를 감수하겠다”는 신통한 말도 한 것을 보면 하강기의 미국 대국주의가 흘러든 패션이 희한한 바 있다. 한 시대는 저물고 새 시대는 동 트지 않은 전형적인 과도기다. 트럼프식 좌충우돌이 한반도에는 내재화의 틈을 열어주기도 하는 이 간지의 때, 미중 무역전쟁 때문에라도 한반도의 내재화가 다그쳐지는 이 역설의 때, 남북연합 추진 운동과 상호진화할 동아시아공동체운동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4. 유원능이의 동아시아공동체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에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했다. 판문점선언과 센토사선언 이후의 어떤 교착을 돌파할 묘수인데, 남북, 중국, 러시아, 몽골, 일본, 그리고 미국을 포괄한 총 7개국으로 구성될 이 공동체는 “동아시아끼리만”으로 제한되지 않은 탄력을 갖춘 것이 주목된다. 다만 ‘동아시아’가 걸린다. 이름과 달리 동북아시아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가 동아시아를 대신하는 이 정치적 무의식은 우리 안에 내장된 동북아시아 중심주의의 드러남일 터인데,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와 일본 중심의 동양주의처럼 자칫 패권적 동아시아주의로 경사될 위험을 안을 수도 있기 때문에도 동남아시아를 괄호친 ‘동아시아’는 정중히 사절이다.  

센토사선언이 싱가폴에서 성사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동아시아 상상에서 동남아시아는 필수적인 동반자다. 잘나가던 유럽연합(EU)도 민중적 참여의 부재라는 태생적 한계 속에 문제로 된 이때 지역통합의 모범생 아세안(ASEAN)은 그 지진아인 한중일 세 나라를 초청하여 ‘아세안+3’로 일종의 가정교사 역할을 맡아온 점에서도 동남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알아차림은 한층 깊어져야 마땅하다. 더구나 유교와 대승불교를 문명자산으로 삼는 동북아시아와 달리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영향이 강력한 동남아시아는 서아시아로 열린 점도 미래다. 불가피하게 동북아시아 중심인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동남아시아와 연계할 다른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바, 아세안+3에 “북조선을 포함하는 ASEAN+4(또는 몽골까지 참여하는 ASEAN+5)”는 마침맞은 현안으로 상정할 만 하거니와, 만약 이 고리가 의식된다면 동아시아철도공동체가 동아시아공동체로 가는 중요한 디딤돌이 될 가능성 또한 높아질 것이다.  

동북아시아는 왜 자주 동남아시아를 횡볼까? 두 아시아의 비대칭성도 비대칭성이지만 동북아시아에는 학서(學西)의 우등생 메이지(明治) 일본이 끼친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경향이 유독 강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한국의 지식사회를 보건대, 한때 주춤했던 서구주의가 강화일로다. 아시다시피 1970년대 민족민중운동의 발진 속에서 일종의 네그리뛰드(négritude)운동처럼 비약한 반서구주의가 어느 틈에 그 반동으로 달려간 품새가 상서롭지 않다. 우리가 발디딘 한국,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는 거의 실종하고 박래품(舶來品)서양의 시각들이 다시 횡행이다. 그 끝에 ‘일본 대 나머지 아시아’의 분열과 이보다 “더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중국 대 나머지 아시아’ 사이의 비대칭적 관계”를 변형 복제한 한국의 아시아 타자화가 기다린다면 악몽이다. 한반도 문제의 내재화와 동아시아문제의 내재화라는 세계사적 사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한국,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일대 회향이 요구되는 것이다.  

안팎의 비대칭들로 예민한 동아시아에서 공동체라는 멀지 않은 이상에 크고 작은 여러 나라 또는 준국가들이 함께 오를 공동의 국제/민제의 약속을 점검할 때, 탈아입구의 경향 속에 더욱 유전자처럼 각인된 원교근공(遠交近攻)을 해체하는 일이 종요롭다. 

아시다시피 이 책략은 세객 범수(范睢)가 진(秦) 소양왕(昭襄王)을 달래 기존의 근교원공(近交遠攻) 대신 새로이 채택된바, 결국 진의 일통을 불러온 디딤돌이었다. 북진통일이나 남조선해방론도 그 변형이다. 이 말썽 많은 두 담론의 기원은 아마도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병탄한 신라의 통일정책에까지 거슬러 오를 터인데, 다시 생각하면 일제도 이를 충실히 답습했다. 이웃 조선과 중국을 침공할 때는 원교근공이라면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확전할 때는 근교원공이었다. 물론 후자에서 ‘근교’는 말만 ‘근교’지 동남아 각국을 서양으로부터 탈취하기 위한 술수에 지나지 않으매 실은 ‘근공원공’(近攻遠攻)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때론 근교원공이 긍정적인 경우도 없지 않았다. 서양의 충격이 동아시아를 압박할 때 제출된 한중일 연대론이 드문 예일 터인데, 실패하기도 했고 설령 성공했다 하더라도 서양을 몰밀어 타자화하는 이 담론의 이분법은 오늘에 되살리기에는 부담이다. 근교원공이든 원교근공이든 이들은 다 패도시대의 부정적 유산이다. 그 책략을 고안한 세객이란 말하자면 소피스트인데, 어디까지나 자신의 출세를 위해 고객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니 패도를 넘어 평화체제의 빗장을 여는 남북연합운동 또는 동아시아공동체운동은 두 책략의 무덤으로 되어야 마땅하다.   

유원능이(柔遠能邇, 먼 이를 부드러이 하며 가까운 이를 잘하게 하다)에 주목하고 싶다. <서경>(書經)이 출전인데, 첫번째는 순(舜)임금의 말씀(卷之一 虞書 舜傳) 중에 나온다. “식재유시(食哉惟時)니 유원능이柔遠能邇)하며, (먹는 것은 때이니 머언 이를 부드러이 하며 가까운 이를 잘하게 하며)”. 두번째는 주(周) 2대왕 성왕(成王)의 유언(卷之六 周書 顧命)이다. “유원능이(柔遠能邇)하며 안권대소서방(安勸大小庶邦)하라. (먼 데를 柔하며, 가까운 데를 能하며, 작으며 큰 모든 나라를 편안히 하며 勸하라.)”  

김관식의 두 번역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앞은 사람으로, 뒤는 장소로 풀었는데, 먼 데 제후와 가까운 데 제후를 가리키매, 결국은 같다. 다시 정리컨대 ‘유원능이’란 “'먼 나라를 유(柔)하고 가까운 나라를 능(能)한다”는 것이다. ‘유’와 ‘능’에 대해 스승 주희(朱熹)의 영(令)으로 <서경집전>을 완성한 채침(蔡沈)의 주가 유용하다. “유는 너그러이 어루만지는 것이고(寬而撫之也), 능은 순하게 각근히 하는 것이다(擾而習之也).” 

유가사상이 형성된 전국시대 초기에 편찬되기 시작해서 진대에 완성된 <서경>은 특히 위작이 많다. 첫번째로 든 '우서'는 거의 완벽한 위서이고, 두번째 '주서'는 “대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지만, 설령 양편이 모두 위경이라 할지라도 그냥 폐기할 일은 아니다. 부국강병을 기초로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으로 질주한 천하대란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원교근공에 반대하는 유원능이가 평천하(平天下)의 원리 즉 평화사상의 심법(心法)으로 제출된 점에 주목하면, 요순시대를 일종의 황금시대로 상상한 그 마음의 끝을 짐작할 수 있겠다. 채침의 서가 아름답다. “그리고 수천년 뒤에 태어나서 수천년 앞을 강명(講明)함 또한 이미 어렵다. 그러나 이제삼왕(堯舜과 禹湯文武)의 다스림은 도에 뿌리를 두었고 이제삼왕의 도는 마음에 뿌리를 두었으니 그 마음을 얻은즉 도와 다스림을 진실로 가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원능이는 ‘교(交)’가 어디까지나 ‘공(攻)’에 종속한 원교근공과 근교원공을 여의고 ‘교’가 그대로 ‘교’가 되는 원교근교일 것인데, 껍데기는 버리고 고갱이만 취한다면 지금 이곳의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동아시아적이면서 세계적 호소력을 행사할 사상과 감성”으로 다듬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을 터이다.  

유원능이를 남북연합과 동아시아공동체 건설의 심법으로 삼는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소국주의의 재평가와 연계된바, 원교근공이 부국강병의 대국주의를 추진할 전략전술이라면 유원능이는 자치를 섬기는 소국주의와 짝할 심법이다. 무엇보다 선차적인 것은 우리 마음 속의 부국강병을 여의고 ‘잘살아보세’의 장기지속으로 잃어버린 공변된 마음의 회복이다. 이 마음이 없으면 남북연합과 동아시아공동체는 고사하고 목하 땅에 떨어진 공공적 신뢰를 재구축하는 일 또한 난망일 것인데, 남 탓하지 말고 나부터 이 간절한 마음의 끝을 찾을 일이다. 채침의 일갈이 사무친다.  

“지닌즉 다스려지고(治) 잃은즉 어지러워져(亂) 치란(治亂)의 나누임이 그 마음의 있음 없음 여하에 달렸을 뿐이다.”   


"종전선언은 '살라미 전술'…평화협정으로 비핵화"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이삼성 교수 "평화체제 통한 비핵화"
2018.09.13 17:48:20

'북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익숙한 주장에 대한 반론이 나왔다. 거꾸로 평화체제를 통해 북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고, 이것이 6.12 북미 정상회담과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미 정상이 동의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다소 도발적인 주장에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지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 '남북·북미 화해 시대의 동아시아 평화공동체'가 막을 올렸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13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 열린 심포지엄 제1세션 발제자로 나서서 "6.12 북미 정상 공동성명의 의의는,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북한을 처벌 대상인 '불량 국가'로 취급하는 관행을 벗어나 조약 체결도 가능한 대화 상대로 인정한 것"이라며 "요점은 '평화체제 건설을 통한 북한 비핵화 건설'이라는 큰 틀에 미국 대통령이 동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사전 배포한 발제문에서도 "(센토사 합의는) 평화협정 체결에 의한 북한 비핵화의 진행을 의미한다"며 "그 구체적 이행을 위한 후속 협상은 평화협정의 내용에 대한 협상이 될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현재 북미·남북 간 대화 의제는 '핵 신고 리스트 제출과 종전 선언'에 국한돼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하면서 '종전 선언'이 아닌 '평화 협정'에 대한 본질적 논의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그 근거로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라는 판문점 선언 3조 3항, "미국과 북한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협력한다"는 센토사 공동성명 2조를 들었다.

이 교수는 "그런데 평화협정 논의는 시작하지도 않고, 종전 선언마저 한미는 한미연합훈련 재개 위협과 함께 북한 비핵화 선행조치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았다"며 "6.12 합의에 따르면 바로 평화협정 논의로 가야 하는데, 미국은 종전 선언을 따로 떼어내어 압박 수단으로 쓰는 '살라미 전술'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한반도 이슈의) 요체가 평화협정임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냉전 해체 후 핵 프로그램을 시작한 북한이 결국 지난해 "핵무장 완성"을 선언하게 되기까지, 북한의 등을 떠민 한국·미국 대북 강경파들의 인식론으로 △북한이 처음부터 핵무장을 목표로 했다는 본질주의 관점 △북한 붕괴론을 꼽았다. 이 교수는 "본질주의는 자기충족적 예언"이라며 "우려한 대로의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하고, 북한 붕괴론에 대해서도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 이행을 포기할 때 '합의 이행은 불량국가 북한의 수명을 연장할 뿐'이라는 생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험악했던 한반도 정세가 변화한 계기로 △2017년 봄 중국이 '쌍잠정(쌍중단), 쌍궤병행'을 해법으로 제시했고 △한국의 정권교체 후 문재인 정부가 2017년 12월 한중정상회담 후 '평창올림픽 기간 중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하는 등 균형외교에 나섰으며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 특사단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일련의 사건들을 꼽았다. 이를 촉발한 변수는 △2017년 북한의 '핵무장 완성' 선언으로 지목했다. "'핵무력을 완성'했기에 비핵화를 천명하게 된 아이러니"라며 그는 "제품이 완성된 다음에야 그 물건을 갖고 거래와 흥정을 할 수 있다"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이 교수는 "북한의 핵무장 완성이라는 사실이 힘의 균형에 변화를 가져왔고 정치적 충격도 컸다"며 "한국이라는 행위자의 속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진보적 정권교체가 균형외교를 강화했고 그것이 남북중 간 새로운 상호작용 구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북한의 핵무장 완성 선언은 단기적으로 미국의 군사 반응을 초래해 전쟁 위기를 고조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진보정권에 절박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간의 '습관적 대북정책'의 결과가 핵무장 완성이라는 데 대한 통절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제하고 "한미동맹 중심주의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중 정상회담을 강행한 것은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을 거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무장 완성으로 북한 붕괴론, 선제타격론의 타당성이 사라졌고 △한국의 균형외교로 인해 미국의 대북 군사 옵션이 불가능해진 가운데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노선 포기를 선언하며 비핵화 의지를 보인 것이 북한과의 협상 국면에 나서게 하는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그럼에도 9월 현재는 "미국 정부가 6.12 선언과 비핵화 선행조치론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며 "북한의 미래는 자신들의 노력뿐 아니라 한미 양국의 노력에 의해서도 열려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한미의 대응에 따라 북한의 선택은 다음 3가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미국 의회의 비준을 거친 조약 형태의 평화협정 체결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평화체제' △미 의회 비준 없는 행정조약 형태의 평화협정에 따른 '불안정한 평화체제' △평화체제 논의 불발로 인한 북한 핵무장 재강화 등이 그 3가지다.

이 교수는 상호 간 신뢰 형성을 통해 북한의 위험 회피 행동(헷징. hedging) 유혹을 제어하고 역내 협력을 강화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조약 형태의 협정을 통한 안정적 평화체제라면서, 이와 함께 △평화협정의 '타결은 일괄적(패키지 딜), 이행은 단계적'으로 해야 하며 △미국과 중국은 '보장자'가 아니라 '당사자'로 직접 협정에 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제하는 이삼성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토론자로 나선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혜정 중앙대 교수는 '6.12 북미정상회담은 평화체제를 통한 비핵화(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가 아닌) 약속'이라는 해석에 대해 저마다 주목하며 비평했다.  

이남주 교수는 "문제해결의 방향으로 '평화협정의 체결의 의한 북한 비핵화의 진행'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고 논쟁적"이라며 "물론 이 원칙이 이삼성 교수의 주장처럼 북미가 합의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정 교수도 "싱가포르 회담이 '평화체제를 통한 비핵화'라고 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반론했다.

이남주 교수는 또 '평화체제 논의가 더 중요하다'는 발제 내용에 대해 "북미협상이 어느 단계에서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만약 종전선언이라는 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평화협정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지금까지 사태의 진전을 잘 반영하는 주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남주 교수는 "3차 정상회담 전후는 상당히 다른 국면이 될 것"이라며 "작년부터 1차·2차 정상회담까지는 평화 프로세스 동력 형성 단계였다면, 이제는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만약) 기대에 못 미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큰 틀에서는 동시행동이지만, 일종의 단계가 이어지는 방식"을 제안하며 "내가 한 행동이 상대의 긍정적 행동의 연쇄를 일으키는 방식, 예컨대 (등가 교환을 상정하지 말고) 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그러면 북한이 핵 신고를 하고, 그럼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식의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이 프로세스가 유지되도록 보증자 격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갑우 교수는 균형외교 부분에 대해 "핵심은 정세와 무관하게 (한국이) 남북관계의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가, 또는 확보할수 있는가"라며 "한국 정부가 북미협상에서 3자적 관점을 취했다는 평가나 평화협정을 회피한다는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고 반론했다.

구 교수는 또 이삼성 교수의 '3가지 시나리오'와 관련해 "불안정한 평화체제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며 "(이는) 한미동맹 대 북중동맹의 대립구도가 구조화되며 북한의 최소수준 비핵화와 개혁개방이 이뤄지는 경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비핵화, 평화체제, 한미동맹이라는 정책목표의 3중 모순"이 제기될 것이라며 "결국 한미동맹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평화체제 구축에서의 관건인데, 봉합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이혜정 교수는 "북한의 군사적 능력, 중국의 대북 압박·제재에 대한 입장과 한국의 전쟁불가 원칙 등으로 트럼프 정부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으로 회귀하기가 쉽지 않으며,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일정하게' 지키는 한 북한이 비핵화 협상을 진행할 것이란 분석에 동의한다"며 다만 미국사회 주류의 굳은 대북 인식이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혜정 교수는 "긴 호흡으로 보면 북한이 한국과 핵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터부였는데, 6.12 선언에서 보면 오히려 비핵화 부분은 판문점 선언을 인용했다"는 역설을 지적하며 "종전 선언과 핵 리스트의 교환이 안 되면 마치 한 발도 못 나갈 것처럼, 트럼프가 중간선거에서 지면 아무 것도 안 될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정부에만 맡겨두지 말고, 각국의 평화 애호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고발·감시·비판에 나서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프레시안 창간 17주념 기념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규 프레시안 이사장(사회),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 이삼성 한림대 교수, 이혜정 중앙대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동북아, 유라시아, 미국 패권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남북 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에 대하여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주제로 발제를 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선행 조건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 없는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는 가능하지 않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이 궁극적인 '평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최 명예교수의 글에 대한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의 토론문을 싣는다.

1. 최원식의 “남북연합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논지가 가진 가치

최원식 선생의 “남북연합과 동아시아공동체”가 지향하는 논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뿐만 아니라 그 동의의 강도도 높다. 그의 논지가 다다르고자 하는 지점은 새로운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어 가보자는 것이다.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의 글 바로가기 : 남북 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남과 북, 한반도의 지정학적, 문명사적 맥락은 당연하게도 일차적으로 동아시아이며 여기서 출발하는 세계사적 위치와 역할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작업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전쟁과 식민지, 패권체제가 지배해온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유형의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4가지 지점이 그의 글 속에서 주목되고 있다. 

첫째는 한반도 문제와 동아시아 문제가 서로 얽혀 돌아가는 “연동(coupling)체제”라는 점, 둘째는 남북연합이라는 설정이 물리적 통일체제의 중간단계라고 할 수 있는 반패권적인 “분단 해소형 중형국가”를 모델로 삼았다는 점, 셋째로는 동아시아의 범주를 포괄적으로 재 확정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의 시민적 연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넷째로는 아시아적 관점을 근거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결론은 때에 따라 멀건 가깝건 상대를 향한 ‘공(攻)’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을 해체”하고, “지금 이곳의 평화체제 구축에 기여할 동아시아적이면서 세계적 호소력을 행사할 사상과 감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지침은 소국주의를 토대로 전방위적 교린 관계를 일궈나가는 “유원능이(柔遠能邇)”의 원칙으로 요약된다. 이는 그가 정리한 대로 “부국강병을 기초로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으로 질주한 천하대란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원교근공에 반대하는 유원능이가 평천하(平天下)의 원리 즉 평화사상의 심법(心法)으로 제출된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남과 북의 연합체제가 확장된 개념의 아시아적 관점을 가지고 반 패권적 공생/평화 체제를 동아시아에서 도모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 세계사를 파악하는 시선이 “지구적 연계체제(transnational linkage)”라는 점에서 타당하고, 종국에는 제국주의 지배담론이 된 서구적 틀에서 벗어난 아시아적 경험세계를 근거로 하는 관점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또한 시민연대의 기초를 강조하고 있어 지역공동체 EU의 현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담고 있다는 것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러한 그의 논의가 지향하고 있는 점에 대해 이론(異論)을 달 이유는 없다. 그런 까닭에 이 토론문은 그의 핵심논지에 대한 비판보다는 논의가 보다 확장, 심화되었으면 한다는 점에서 보론적 성격이 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2. 보론적 확장 

(1) 동아시아/유라시아 체제에 대한 이해 

최원식의 동아시아 개념에는 동남아시아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지리적 구도를 확장하는 진전을 보인다.  

그런데 중국 하나만 놓고 봐도 중국을 동아시아, 또는 동북아시아의 개념에 한정시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중국은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내륙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를 포괄한 유라시아 체제 전반에 걸친 지리적 경계를 지녔다. 내부적으로도 신장지역과 티베트, 내몽골 그리고 과거 만주지역을 통괄하는 복잡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러시아와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북한은 중국만이 아니라 두만강을 경계로 과거 만주 그리고 러시아의 동북지역과 연계되어 있다. 동남아시아를 뺀 동북아시아의 동아시아체제만 보더라도 한-중-일로만 접근할 수 없는 범주적 확장성이 내면화되어있다.  

유라시아 체제에 대한 이해는 고대 문명사의 실크로드로부터 시작해서 몽골의 유라시아 벨트만이 아니라, 유목기마와 정주문명의 관계에 대한 문명사적 접근을 요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설정하는 동아시아는 이러한 유라시아 체제 전반의 변동과 직결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게다가 유라시아 체제의 근대적 변화의 과정은 인도양을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의 해양 교역권의 변화와도 맞물려 돌아간다. 종교적 단위로 보면 이슬람의 최대인구가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이 지역에 대한 문명사적 이해가 더욱 깊게 요구되고 있는 것을 말해준다. 동아시아의 개념은 이런 관점에서 수정 보완 내지 기준자체의 점검이 필요하다.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러시아의 요소가 직접적으로는 빠져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시아와 다른 지점이 있긴 하나,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친 영국과 러시아의 유라시아를 근거로 만들어진 대치전선은 이 지역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동아시아에 대한 이해는 단지 동남아시아를 포괄한다고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유라시아 체제 전체의 관점에서 파악해 들어갈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분명해질 수 있다. 유럽이 단지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문명사적 개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동아시아 역시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동아시아는 유라시아 체제의 전체적 연동구조를 통해 이해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2) 패권체제에 대한 극복문제 

최원식 선생의 글에서 미국의 존재를 주목하는 대목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이번에 각별히 확인한 바는 한반도가 비분쟁 상태로 변환하는 것에 비우호적인 미국 주류의 민낯이다.....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함께 불화할 때 미국의 위상은 두드러진다.” 그런데 미국의 위상은 이렇게 특정한 국면에서 그 위상이 드러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구조화되어 있는 것일까?

인용된 김동춘의 글 한 대목은 “냉전은 식민지배의 연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보다 강조되고 확장된 접근으로 정리될 필요가 있다. 냉전은 식민지배의 연장이면서도 매우 새로운 방식의 식민체제이자 미국이 요구하는 세계 정치경제적 요구와 그대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냉전은 미국과 구 소련간의 세계적 대치전선을 구성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들 패권체제의 주도세력 사이에는 냉전(Cold War)이라도 냉전체제로 인해 제3세계로 분류된 지역은 열전(Hot War)을 치른 역사였다. 그것은 한국전이나 베트남전과 같은 전면전도 있었고, 중남미처럼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warfare)을 겪은 지역도 있다. 냉전체제 아래 열전이었던 베트남 전쟁은 명백하게 식민지해방전쟁이었고 중남미의 저강도 전쟁은 미국에 의한 제국주의 체제 유지의 군사적 방편이었다. 이에 대한 저항은 중남미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식민지 해방투쟁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이 식민지 해방전쟁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남과 북이 단연코 다르다. 그리고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한국전쟁을 그렇게 파악해 들어가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식민지 해방보다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쪽의 한국전쟁과 관련한 역사적 경험을 전후(戰後)를 기점으로 파악해 들어갈 때에는 다른 논의가 시작될 가능성이 생겨난다. 논의의 정치적 위험성을 전제로 하고 말하자면, 한국전쟁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주권적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남쪽이 미국의 보다 강력한 관할체제로 흡수되는 계기로 작동한다. 이는 일종의 “후기 식민지 체제(post-colonial domination)”의 성격을 갖게 된다.  

군사적 주권의 상실은 그 토대이고 바로 얼마 전 남북 철도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움직임이 미국에 의해 제동이 걸린 것은 그러한 주권상실의 연장선에서 발생한 문제다. 자신의 영토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 주권행사를 하지 못하는 국가체제는 유형적으로 식민지체제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체제가 등장한 이후 미국의 지배구조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정도가 아니라 군사주의와 대자본의 동맹이 국가에 의해 매개된 방식(National Security State Corporate Complex/NSSCC)이다. 냉전체제가 한반도에서 여전히 해체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이러한 식민지배 구조의 온존과 관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종전선언과 남북의 연합/공동외교는 이러한 식민지배질서의 일정한/점진적 해체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동남아시아가 과거 반제와 반 패권주의를 표방한 반둥체제의 중심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냉전과 식민지배의 구조가 결합된 현실을 돌파하는 것은 동남아시아와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데도 긴요하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전쟁참여에 대한 사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의 문제도 있지만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 또한 매우 막중하게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남북 연합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구상, 설계하는데 미국을 배제시킬 수도 없고 장차도 그럴 까닭이 없지만 우리와 미국의 관계가 이런 상태로 지속된 채로 이루어지는 동아시아의 미래 또는 유라시아와의 관계 확대는 “식민지배의 보이지 않는 확장”이 될 수 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지배질서를 어떻게 해체하고 남과 북의 독자적이며 자주적 미래설계의 토대를 만들 것인가는 지금의 현실,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매우 중요한 과제다. 미국의 패권체제 지배력을 약화시켜나가는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3) 한-중-일 동북아시아 역사 해석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만으로 한정해서 생각해 볼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난관에 봉착하는 역사해석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이는 동아시아 시민연대의 기초를 바로 세우는 데 중대한 장애다. 동아시아 근대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발생한 무수한 역사적 사건과 고통 그리고 패권체제의 문제는 과거로 마무리 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정리하는 것은 시민연대를 바탕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동아시아 공동체로 동아시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핵심적 과제가 된다. 

일본에서 공부한 중국의 정치학자 쑨거가 동아시아를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일본의 법학자이면서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에 대해 비판적 논쟁을 벌여온 오누마 야스아키(大沼保昭)가 갈등과 대립을 넘는 한-중-일 역사의식에 대한 제언을 하는 모습들은 모두 동아시아 역사의식과 직결된 현실이다. 한-중-일 간의 역사해석이 갖는 공통의 지점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으나 이는 현실에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내부로 들어가면, 앞서 언급했듯이 몽골, 만주, 신장, 티베트 그리고 타이완까지 합쳐 논의할 필요가 있는 복잡성 역시 존재한다. 한족(漢族)중심주의에 대한 역사해석의 반격이 엄연히 있다. 

이렇게까지 확대되어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령 동북아시아 3국의 인민들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태평양 전쟁의 종결을 정리한 동경재판에 대한 논의가 한-중-일 사이에 제대로 된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연대는 매우 난이도 높은 작업이 된다. 패도(覇道)를 극복하려는 “유원능이(柔遠能邇)”는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과 성찰 그리고 시민적 공유가 동반되지 않으면 곤란할 것이다. 

3. 결론 

최원식 선생의 남북연합론과 동아시아 공동체의 논의가 당위로서 바람직하나, 이것이 구체적 현실성을 가지려면 첫째, 유라시아 체제의 맥락, 둘째 냉전과 식민지배를 결합시킨 미국의 패권체제의 해체, 셋째, 역사에 대한 허심탄회한 소통의 축적이 긴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모두 사실상 장기적 과제이나, 매일 급속하게 변모하는 현실까지 지속적으로 담아내면서 진행하는 논의가 된다면 학문적 긴장과 현실적 적합성 그리고 시민적 실행력을 길러낼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 기대해본다. 좋은 논제를 주신 최원식 선생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양국론, 통일론, 연합론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최원식 교수의 발제에 대하여
2018.09.14 16:18:29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최 교수는 남과 북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상태"인 '남북 연합론'을 제시했다. '남북 연합'이란 '일국가 이체제'도 아닌, '이국가 체제'도 아닌 상태다. 

최 교수는 "남북 연합론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새로 상상하는 것 또한 함께 간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구상하기 위해서 최 교수는 "한반도,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의 발제와 관련해 김기협 역사학자가 여러 토론 거리를 던져줬다. 


1. ‘동아시아’는 어디인가? 

최 교수는 동남아시아를 배제한, 동북아시아만을 염두에 둔 ‘동아시아’의 설정에 우려를 표합니다. “우리 안에 내장된 동북아시아 중심주의”가 “패권적 동아시아주의로 경사될 위험”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에는 공감하지만, 굳이 ‘동아시아’의 관념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에는 동심원과 같은 여러 겹의 정체성이 겹쳐집니다. 개체로서의 “나”를 중심으로 가족. 지역사회, 국가. 민족, 문명권, 인류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이 포개져 있지요. 이 다중성의 인식이 패권주의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사람은 가깝게 인식하고 먼 사람은 멀게 인식하는 것이,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깝다고 우기는 것보다 원만한 사회관계를 위해 바람직한 자세일 것입니다.  

한중일 3국은 유교-한자 문명전통을 공유하는 각별히 가까운 사이입니다. 이슬람교 힌두교 전통이 우세한 동남아시아 지역과는 꽤 거리가 있지요. 베트남도 유교-한자 문명권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베트남 전통의 전부도 아니고 그 존재가 동남아시아 문명권의 성격에 큰 몫을 맡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근대사의 서세동점 상황 속에서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는 크게 다른 경험을 쌓아 왔기 때문에 지금 서 있는 위치와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ASEAN이 실험해 온 국제관계의 원리 중에는 배울 만한 것이 많습니다. 다문화사회를 오랫동안 운영하는 가운데 빚어진 원리일 것입니다. 그 좋은 것을 열심히 배우며 +@의 손님 노릇을 잘 하면 됐지, 한 식구가 되어야겠다고 들러붙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유럽연합의 원리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처럼 아세안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면 잘 배우되, 비교적 가까운 친척인 만큼 공유할 것이 꽤 많으리라는 기대감 정도를 가지면 되지 않을까요?

2. 양국론, 통일론, 연합론 

남북관계의 큰 변화를 앞두고 그 좋은 성과를 바라보기 위해 남-남 갈등의 극복이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양국론-통일론-연합론의 분기도 남-남 갈등에서 비롯하는 것이지요. 

남-남 갈등의 원인을 이해관계의 차이와 정서의 차이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라면 분단체제 하의 기득권층이 분단 상태에 집착하는 문제이므로 척결의 대상임이 분명합니다. 반면 정서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인정의 발현이므로 존중해 마땅합니다. 그래서 반동적 기득권층이 정서의 차이를 과장해서 자기네 주장을 분식하는 데 이용하는 일이 많습니다.

정서의 차이는 무엇보다 세월에서 오는 것입니다. 70년 전의 분단은 뼈를 부러트리고 생살을 찢는 폭력이었지요. 무조건 합치는 것만이 회복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70년 동안 아물 만큼 아물어, ‘정상국가’가 못 되는 ‘장애국가’로서라도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었지요. 70년 전을 많이, 깊이 기억하는 세대와 적게 기억하는 세대 사이에 정서의 차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정서의 차이는 앞으로 실천과 경험을 통해 많이 해소될 것입니다. 평창에서도 젊은 세대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감흥을 일으키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대한 반응의 변화가 단적인 예이지요. 진행되는 상황 전개에 따라 많은 새로운 경험이 닥칠 것이고 그에 따라 정서의 차이가 많이 줄어들 것을 기대합니다.

통일론과 양국론은 극단적이고 확정적인 입장인 반면 연합론은 중도적이고 가변적인 입장입니다. 확정적 결론을 서두르기보다 연합론을 통해 다음 세대가 이제부터 새로운 경험을 더 쌓은 후 다음 단계에서 선택할 여지를 많이 남겨주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우리에게 타당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3. 원교근공과 근교원공 

최 교수는 “근교원공이든 원교근공이든 이들은 다 패도시대의 부정적 유산”이라며 ‘근교원교’를 제창합니다. 지금 세상이 ‘패도시대’를 이미 벗어나 있으니 그런 유산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닌 것 같고, 그를 벗어나기 위해 유산을 던져버리자는 뜻 같습니다.

유산의 파기가 시대 극복을 위해 효과적인 길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파기하겠다는 유산이 극복할 시대의 본질을 담은 것인지 잘 살피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겠습니다. ‘원교근공’이 패도시대의 특징임은 분명하지만, 과연 ‘근교원공’도 그런 것일까요? 

범수가 ‘원교근공’을 들고 나오기 전에 ‘근교원공’이란 이름의 정책이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원교근공’에 대비해서 종래의 정책 기조에 이름을 붙인 것뿐이죠. 아마 최 교수가 제시하는 ‘유원능이’의 원리가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었겠지요. 이 원리를 뒤집기 위해 ‘원교근공’이 나온 것이고요. 내가 ‘근교원공’을 이야기하는 것은 ‘원교근공’에 대비시켜 알아듣기 쉽게 한 것일 뿐, ‘유원능이’가 더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원능이’는 ‘원교근교’와 다른 것입니다. 가까운 자와 먼 자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를 두는 것이죠. 이 차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유기론적 세계관입니다. 근대세계를 휩쓴 원자론적-기계론적 세계관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상정함으로써 ‘패도시대’를 가져왔습니다. ‘원교근교’를 주장하는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는 패권주의에 대한 즉물적 반발일 뿐이지 유기론적 세계관에 접근하는 길이 못 되기 때문에 패도시대의 극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양국체제와 남북연합은 만난다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최원식 교수의 '남북연합'에 대하여
2018.09.14 16:06:11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의 선행 조건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 없는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는 가능하지 않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북이 궁극적인 '평화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 

최 교수는 남과 북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상태"인 '남북 연합론'을 제시했다. '남북 연합'이란 '일국가 이체제'도 아닌, '이국가 체제'도 아닌 상태다. 최 교수는 "남북 연합이 통일의 최종 형태가 되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이 '남북 연합'에 대해 경희대학교 김상준 교수가 토론문을 제시했다. 

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modern world history)는 새로운 단계—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발제문은 동아시아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당연히 동의하고 환영한다. 발제문의 ‘남북연합’이란 공존체제·평화체제와 상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평자 역시 후기근대에서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다. 그러니 발제문과 평자의 생각은 이 만남 이전부터 이미 8할이 같다.  (☞바로가기 :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발제문...남북 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걍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여기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 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국제(國際, inter-national)'보다 '민제(民際, 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의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 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각각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인 것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 바…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 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 굽은 것이 온전하고, 휘어진 것이 바르다)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제(際)'가 안 열렸는데 민(民) 간의 제(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 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 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한반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조건과 내적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이 아주 쓸 만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만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로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북한 비핵화, 의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고] 북한의 의지는 명확하다


한반도는 분단 70년만에 4.27 판문점 선언과 6.12 북미 정상 공동선언을 통해 평화체제 건설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원칙을 세웠다. 그 후 북미 협상은 미국 선(先)비핵화 요구와 북한의 선(先)종전선언 요구가 대치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졌고, 양측은 비핵화와 경제적 보상의 일정표를 제시하지 않은 채, 서로 협상의지는 있으나 상대가 먼저 양보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는 사이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의 기회가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북한 주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했고, 2013년 신년사에서 "경제문제의 해결은 사회주의 강성국가건설 위업수행에서 전면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은 2013년 3월 '경제-핵 병진노선'을 채택한 이래 5년 만인 2018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집중'을 당의 새로운 전략노선으로 채택했다.  

지난 10년동안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강도 높은 제재와 외교적 고립이었다. 이에 북한은 생존을 위해 핵을 선택한 것이 옳았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핵을 완성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을 가졌다. 그런데 핵무기 완성을 선언한 북한은 핵을 보유한 경제적 빈곤국이 아닌, 한반도 비핵화와 자신들의 경제발전을 선택했고 국제사회는 일제히 환영했다.  

북한의 핵 도발로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거론되던 때와 비교하면 1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한반도는 대반전을 이룬 셈이다. 지난 1세기 동안 한반도는 미중일러의 침략과 관여에 지정학적으로 묶여 한반도 문제에 주도권을 강화하지 못 했다. 지난해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시험발사와 소형화된 핵탄두 개발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대화하였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하는 중에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남북경제협력의 모티브로 만든 것은 큰 업적이다. 그러나 정권 말기에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북한도 핵개발에 몰두하였기 때문에 역대 남북회담 합의문의 실현과 지속성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지금의 상황은 그 때와 다르다. 북한이 세계를 향해 핵을 포기하고 경제 개혁 개방을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의 큰 틀에서 김대중, 노무현 전 정권을 계승하고 있으며, 집권 1년차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북한과 미국을 중재하면서 비핵화 프로세스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신뢰를 동시에 얻어 북미간 비핵화 협상의 간극을 좁히는데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남북미의 진전상황을 중국, 러시아, 일본과 긴밀히 공유하여,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역학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국가들의 대외적인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 후부터 지속적으로 북한 방식의 경제발전전략을 실행해왔다. 기존 김정일 정권의 경제특구 전략을 지역적, 산업적으로 확대하여 경제개발구 정책으로 발전시키고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2010~2020)'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무역의존도가 47.7%(2015년)인 북한을 경제제재로 압박하여 북한의 대외 경제 개방에 큰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나 북한은 미국의 경제제재에도 3~4%의 경제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해왔다.  

현재 압록강 상류의 양강도 혜산시에는 대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며, 만포-혜산 철도선에는 화물을 가득 실은 열차를 볼 수 있다. 기차역과 세관이 다시 지어지고 짐이나 광물을 실은 트럭과 택시들이 분주히 오간다.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구체화된 철도 연결의 경우, 북한 측도 동해북부선 연결을 위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며, 철도에 의존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노후화된 철로를 복구하고 고속철 운행이 가능하도록 현대화하는 작업이 가장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또 최근 평양에는 대형마트가 문을 열었고, 대부분 북한에서 자체 생산된 물품이 진열되어 있다. 북한에서 생산된 소주만 70여 종이다. 평양 거리 여성들의 옷차림은 남한과 점차 비슷해지고, 한국의 한 TV 프로그램에서는 북한산 화장품과 한국산 화장품을 비교하면서 메이크업 시연을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변화는 이미 북한 내에 시장 경제 체제가 작동하고 있으며 '김정은식 경제발전'과 계획경제하의 개혁개방으로 북한 주민의 삶과 질을 변화시킴으로써 주민 스스로가 경제동력을 생산하는 선순환 구조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선언 이후 북한 지도자로서 전례 없는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 및 경제적 행보들은 북한의 정상국가화와 경제발전의 열망을 잘 보여준다. 

한반도 평화의 핵심은 경제협력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 동력은 경제발전을 위한 것이고, 남한 역시 남북 경제 협력과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그동안 남북한이 한반도 문제에 주도권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는 100년 전 열강들의 침략에 의해 주권을 상실하고 되찾는 과정이 열강들의 지정학적 이익에 의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을 지경학적으로 전환시키고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남북은 미중일러를 한반도 경제의 이익 공유 주체로 참여시킴으로써 21세기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남북을 관통하여 대륙으로 연결된 교통, 에너지, 물류의 활성화는 한반도의 경제번영과 동아시아 평화의 상징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 선언이 한반도의 비핵화가 기정사실화된 것이 아님을 주지해야 한다. 북미협상이 동력을 잃거나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지도자들의 믿음과 신뢰가 깨질 때 북한은 국제사회를 향해 어렵게 연 문을 다시 걸어 잠글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기회 상실의 책임을 한국과 미국에 돌릴 것이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기 위해 평화에 역행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  

현상황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을 신뢰하느냐, 하지 못 하느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에 미래가 있는가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지지, 남ᆞ북ᆞ미 지도자들의 통 큰 결단, 북한과 남한의 경제협력에 대한 열망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남과 북이 협력하여 이 기회를 살릴 때 한반도는 지정학적 딜레마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경제의 중심, 물류의 허브, 대륙의 시작점이 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한의 믿음과 신념으로 이루어야 할 남북 공동의 유산이며, 이 세대와 다음 세대가 함께 이루어야 할 한반도의 미래이다.



흔들리는 유라시아...러시아를 주목하자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심포지엄] 최원식 교수의 발제에 대해
2018.09.15 15:05:50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최원식 인하대학교 명예교수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최 교수는 남과 북이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상태"인 '남북 연합론'을 제시했다. '남북 연합'이란 '일국가 이체제'도 아닌, '이국가 체제'도 아닌 상태다. 

최 교수는 "남북 연합론과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새로 상상하는 것 또한 함께 간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구상하기 위해서 최 교수는 "한반도,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의 발제와 관련해 역사학자인 이병한 원광대학교 교수가 토론문을 제시했다.


1. 동아시아의 ‘몸’ - 원/근(遠/近)의 구조조정 

'동아시아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일대 회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세계를 몸으로 직접 경험해볼 필요가 있다. 멀고/가까움의 감각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매개를 통하지 않는 맨몸의 부딪힘/부닥침이 소중하다. ‘러시아 월드컵에 동아시아는 없었다.’의 반면으로 동아시아(론)에 러시아는 있는가? 라고 되물어 볼 수도 있다. 한국은 좀체 실감이 덜하지만 한반도의 장래를 ‘남북연합’으로 상상한다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유이(有二)한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이다. 즉 러시아는 ‘이웃나라’이다. 미국은 멀지만 친숙하고, 러시아는 가깝지만 소원하다. 탈냉전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냉전의 후과는 (남한에서) 오래다.   

그러나 실상 19-20세기 동아시아의 천하대란에도 러시아는 깊숙했다. 아편전쟁과 ‘서구의 충격’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관 또한 편향이고 편벽된 것이다. 홍콩(영국)은 1997년, 마카오(포르투갈)는 1999년 모두 중국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새 천년을 맞이하고도 유독 변함없이 러시아의 강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 연해주이다.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대청제국에서 러시아제국으로 이양된 땅으로,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광대한 영역이다. 이곳이 크림반도에서 발족한 러시아(동방정교 국가이자 비잔티움 제국의 후예)의 영토가 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 역사에서 전례가 없던 ‘신시대’가 열린 것이다. 1860년 조선과 러시아의 접촉은 병인양요(1866)나 신미양요(1871)보다도 이른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되지못한 1948년 북조선의 최고지도자가 키릴문자로 스탈린에서 손 편지를 쓸 수 있는 김일성이었다는 점 또한 범상치가 않다. 

그러함에도 1991년 소련의 해체에 맞춤하여 발진한 ‘동아시아론’은 러시아/소련이 1860년 이래 줄곧 동아시아를 구성하는 ‘몸통’이었다는 사실에 소홀하다. (혹은 안다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했다.) 아세안에서 가장 가까운 베트남의 하노이만 해도 비행기로 4시간 30분이 걸린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시간, 하바롭스크는 2시간 30분이다. 도쿄보다도 더 가깝다. 서구주의와 아시아주의의 길항 속에 ‘동구’(東歐)에서 동진해온 러시아를 망각하는 것은 혹 식민(일본)과 냉전(미국)으로 조련된 인식의 왜곡, 굴절된 몸 감각의 소산이 아닐까? 유라시아의 북방경로를 통한 ‘동구와 동아의 상호진화’는 남한 지식인의 눈에 좀체 들어오지 않는다.  

2.  

동남아/아세안의 강조에 십분 공감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나는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인도차이나) 경험을 통해서 기왕의 동아시아(론)를 졸업했다. 한/중/일 중심의 동아시아 감각으로는 베트남조차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도 지적하는 바, 힌두교와 이슬람으로 서아시아로 연결된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동북아와의 가장 큰 차이는 유럽의 유산이 지대하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서구와 직결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와는 2000년, 이슬람과는 천년, 유럽과는 반 천년의 유산이 켜켜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 동남아/아세안이다. 하기에 베트남 일국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도 중국(동아시아)과 인도(남아시아)와 프랑스(서구)와 소련(동구)을 몽땅 아울러야 했다. 박사논문의 후속작업으로 베트남현대사를 ‘동아시아적 관점’으로 쓰고자 하다가 그만두고 ‘유라시아적 시각’으로 회향했던 까닭이다. 동남아/아세안의 모든 나라가 그러할 것이다. 즉 동남아와의 조우가 소중한 것은 동북아+동남아=동아시아, 라는 구도의 한계를 체감(體感)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센토사선언의 싱가포르 또한 서구(영국)의 유산 없이는 세계적인 허브도시가 되지 못했을 터이다. 즉 동남아에서 서구는 무척 가깝다. (역으로 동북아는 서구보다 러시아/소련 연결망을 통하여 ‘동구’가 더 가깝다.) 

3.  

동아시아의 ‘몸’ 감각의 쇄신을 강조하는 까닭은 남/북 연합을 도야하는 훈련으로서도 제격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1948년 이후 북조선의 공간감각, 역사 감각이 ‘동아시아’로 한정될 수 있을까? 그러하지 않을 것 같다. 북조선이 열성으로 참여했던 각종 국제회의와 국제기구는 도리어 동아시아(남한, 일본, 대만)를 척지는 것이었다. 최원식 선생도 익숙할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가 열렸던 주요 도시 또한 방문해 보았다. 아시아 본부가 있었던 콜롬보(스리랑카)와 아프리카 본부가 있었던 카이로(이집트)와 가장 큰 회의가 열렸던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까지. 곳곳에 북조선의 흔적이 남아있다.  

동유럽부터 동아시아까지 작동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결망 속에 깊이 참여했던 북조선의 감각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다. 냉전기 반세기 동안 북조선과 긴밀했고, 탈냉전기 사반세기 동안 남한과 친밀해진 경우가 많다.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가 그러하고, 몽골 및 중앙아시아의 모든 나라가 그러하며 동유럽 국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최종 낙착지로는 싱가포르가 선정되었으되, 북미정상회담의 유력 개최지로 몽골이 거론되고, 카자흐스탄은 장소 제공을 자청했던 사정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4.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미동에서 격동으로 진입했다면, 그 뜻은 분단체제를 주조했던 세계체제가 근본적인 이행기에 들어섰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남북연합과 동아시아공동체 또한 세계체제적 지평에서 조망해야 한다. 작금 세계체제의 가장 큰 모순이 무엇인가를 해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장기적-거시적 안목에 바탕한 대전략을 수립해야 단기적-국지적 전술 구사가 가능하다. 나는 ‘흔들리는 유라시아’라고 표현하고 싶다. 1945년 이후 신대륙 미국이 구대륙 유라시아를 분할 지배했던 세계질서가 전면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냉전체제, 서아시아의 대분열체제, 남아시아의 대분할체제, 동아시아의 대분단체제(이삼성)가 죄다 동요한다.  

당장 유럽부터 서방(The WEST)이 갈라선다. 대서양을 마주한 구/미가 분열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유럽이 자주성을 획득해간다. EU에서 미국의 뜻을 대변했던 영국은 이탈했다(브렉시트). 그 반면으로 서유럽과 러시아/동유럽이 근접해 간다. 군사적으로도 NATO에서 자유로운 유럽통합방위군을 창설하고, 달러와 연동되지 않는 유럽 독자의 금융결제시스템을 모색하고 있으며, 에너지 연결망은 미국(트럼프)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가동되고 있다. 동서유럽 냉전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 또한 독일/프랑스와 러시아의 합작으로 해결해간다. 서유라시아만도 아니다. 남유라시아의 이란 핵합의에서도 신대륙 미국만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독일/프랑스 및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인도가 이란과 손발을 맞춘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의 재건 또한 러시아와 중국, 인도의 합작으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 러시아, 터키, 이란, 인도, 중국이 모두 19세기 이전의 지역질서 재건에 앞장서고 있으며, 그들 간의 연합/연대/연결을 통한 유라시아 대통합/재통합에 합류하고 있는 것이다. 신대륙이 구대륙에서 독립했던 18세기(1776) 이래 작금은 구대륙이 신대륙에서 독립하며 신/구 대륙 간 재균형을 달성해가는 대반전의 형세에 들어선 것이다. 구대륙의 재활/재건/재생 운동과 신대륙의 이탈 선언(America First = 트럼프 독트린 = 21세기 판 먼로 독트린)이 오묘하게 합세하는 모습이다. 한반도의 (소)분단체제 해소 또한 이러한 신/구 대륙간 지구적 권력 변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구미(歐<->美)와 아태(亞<->太)의 멀어짐 속에서 구아(歐-亞)의 다시 가까워짐(New Silk Roads)과 연동하는 남북연합론 및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입안해야 할 것이다. 다른 미래와 다른 역사는 직결된다. 19세기 서구 패권 이전 유라시아의 초기 근대에서 작동했던 세계질서에 대한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중국-인도-페르시아-오스만-유럽-러시아 네트워크)가 각광을 받고 있다. 나는 갈수록 동아시아보다는 동유라시아라는 개념/관점이 한국/한반도의 체감(몸 감각)에도 더 적합해지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5.  

동아시아론의 후학/후속세대이자 역사학자로서 기여할 방법으로 <동구의 충격 : 대항하 시대>라는 발상을 키우고 있다. 중국과 가장 넓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이다. 2030년이면 신칸센이 일본 본토와 홋카이도를 잇고, 홋카이도는 다시 사할린과 다리로 이어지고 사할린은 연해주로 터널로 연결된다. 즉 일본이 섬나라가 아니게 되는 바, 그 핵심 연결망 또한 러시아이다. 백 년 전 ‘만주의 모스크바’ 하얼빈은 프라하(체코)와 소피아(불가리아)까지 연결되는 동방정교회 네트워크가 활달했다. 아무르 강을 비롯해 세계 10대 강의 4대 강이 시베리아를 흐른다. 서구가 인도양을 통하여 아시아로 진출했다면, 동구는 이 강을 통하여 천년동안 동진해 온 것이다.  

서구에 대항해(大航海) 시대가 있었다면, 동구에는 대항하(大航河) 시대가 있었다. ‘동구와 동아의 만남’은 150년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주축이었다. 실로 러시아의 아시아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부터 울란우데, 치타, 블라디보스토크 등 굉장하다. 러시아의 신문과 잡지를 펼치면 중국의 중화주의와 일본의 동양주의에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를 포갤 수 있는 안목이 활짝 트인다. 중국의 한학과 일본의 동양학과 미국의 지역학을 러시아의 동방학에 견주는 학문의 도야 속에서 한반도의 동아시아론 2.0도 만개할 수 있지 싶다. 

그런 지적/사상적/문명적 재균형이 달성되어야 ‘주변 4대 강국’이라는 상투어 또한 실질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업에서도 일찍이 키릴 문자권과 긴밀했던 북조선 학계와의 ‘남북연합’이 절실하다.  

김정은이 주도하는 평양 개발 프로젝트 시행 눈길

[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정부 “北, 인프라 지원할 테니 개혁·개방해라”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4(금) 11:51:31 | 1509호

정부의 올가을 대북(對北) 접근 드라이브에 탄력이 붙고 있다. 올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만나 합의한 ‘판문점 선언’ 비준을 위한 동의안이 9월11일 국회에 제출된 데 이어, 추가 남북 정상회담과 연내 종전선언 등이 리스트에 올랐다. 대북제재 위반 논란이 있었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본격 가동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북특사가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인 9월7일 문재인 대통령은 외신 인터뷰에서 “올해 말까지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진도를 내는 것이 목표”라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2015년 8월26일 평양 주체사상탑에서 바라본 대동강 너머의 창전거리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2015년 8월26일 평양 주체사상탑에서 바라본 대동강 너머의 창전거리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정부, 내년도 2986억원 인프라 지원


청와대와 정부 구상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대북 인프라 지원과 경협 추진 대목이다. 통일부가 제출한 판문점 선언 비준동의안에 첨부된 비용추계서는 내년에 철도·도로 협력과 산림협력 등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을 2986억원으로 잡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갈 사업의 총액 대신 내년 예산만 동의안에 반영한 걸 두고 ‘비용을 축소해 제시한 꼼수’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정부는 개성-신의주 철도·도로 개·보수 등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지원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8월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성사 직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취소되면서 소원해지는 듯하던 북한과 미국 관계도 정상궤도에 오르는 분위기다.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 화답하면서 조만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백악관은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2차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한 사실은 물론, 북·미 간 정상회담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점까지 공개하면서 평양을 향한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북한 김정은 체제가 비핵화 문제 등에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할 경우 한국과 미국이 대북제재 해제를 넘어 경제지원과 관계정상화 같은 과감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문제는 김정은 체제가 어떻게 이런 정세변화에 호응해 ‘채찍에서 당근으로의 전환’을 꾀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과거를 걷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서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며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모종의 변혁을 꾀할 것임을 공언했다.


한 국가체제의 정책노선 변화는 통상적으로 3단계 과정을 거쳐 진화하고 구체화한다. 첫 단계는 상징적 변화의 모습을 통해 개인이나 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다음으론 상징적 변화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단계의 진입이 필요하다. 여기에선 시범적인 수준에서라도 가시적인 성과나 결과물이 도출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실질적인 변화의 단계에 도달하게 하는 게 전형적인 변화 시스템이다. 북한은 앞서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징적 변화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남한 내 보수 성향으로의 권력교체와 깐깐한 대북정책 노선에 불만을 품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호전적 행태로 돌변하면서 남북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결국 대북제재를 자초하면서 북한 경제는 난관을 겪어야 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권력을 승계했다. 북한의 낙후된 경제 현실과 김정은의 이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만경대유희장 사건이다. 집권 첫해인 2012년 5월 이곳을 방문한 김정은은 당시 유희장의 ‘배 그네(바이킹선)’ 앞 구내도로가 심하게 깨진 걸 보고는 “한심하다”고 질책했다. 이어 보도블록 사이 곳곳에 잡초가 자라난 것을 보면서 허리를 굽혀 직접 풀을 뽑았다. 그러면서 그는 “유희장이 이렇게 한심할 줄 생각도 못했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소리”라고 관계자들을 질책했다. 


김정은은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적인 행보를 보이는 상황에서도 내부적으로 개혁·개방으로 해석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했다. 2012년 6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걸 골자로 한 6·28 개혁조치를 시작했고, 2014년엔 기업의 자율권 부여를 핵심으로 하는 5·30 조치를 단행했다. 평양 개발 프로젝트도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부터 평양에 고층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는 뉴타운 형태의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평양 중심구역의 대동강변 등에는 이미 김정은 지시에 따라 53층 주상복합 건물과 46층 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섰다. 최근엔 개인 자본이 투입된 아파트 건설과 쇼핑센터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신규 주택 건설사업에 개인사업자가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서구식 아파트 분양 모습도 나타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주택 임대업이 출현하고 소(小) 토지와 시장 매대를 사고파는 자본주의적 현상도 점차 번지고 있다고 한다.

 

2017년 4월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맨 오른쪽)과 고위 인사들이 려명 주거단지 개관식에 참석했다. ⓒ AP 연합

2017년 4월1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맨 오른쪽)과 고위 인사들이 려명 주거단지 개관식에 참석했다. ⓒ AP 연합

 

김정은에게 개혁·개방은 양날의 劍


북한 노동당 핵심 간부들이 5월 베이징(北京)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고향인 산시성(陝西省), 상하이(上海)와 저장성(浙江省) 등을 방문해 경제현장을 중심으로 중국의 경제 실태를 살펴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中關村) 과학원 문화정보중심과 중국 농업과학원, 철도 관련 시설 관리기관인 베이징시 기초시설투자유한공사 등을 돌아본 북한 참관단은 시진핑 국가주석을 예방한 자리에서 “중국의 경제건설과 개혁·개방 경험을 학습하기 위해 중국에 왔다”고 언급해 관심을 끌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설 경우 체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등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부터 공들여 온 군사노선 포기에 대한 군부 등 강경파의 불만과 노동당과 군부 기득권 세력의 이권다툼으로 인해 체제에 균열이 생길 요소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한·미 정보 당국의 평가는 “김정은이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북한 체제를 통치하고 있다”는 지난 수년간의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김정은의 게임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국면을 맞는 분위기다. 레드카펫이 깔린 회담장을 나서면서 맞닥뜨리게 될 엄중한 국제정세나 현실과의 싸움이다. 무엇보다 북한 체제를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국제사회로 나가는 문제는 김정은에게 절대 권력은 물론 가족·인척과 추종세력의 명줄을 좌우할 수 있는 도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하루 전인 6월11일자 보도에서 “김정은에게 개혁·개방은 양날의 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대북 지원 청사진과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에 상응한 파격적 선물에 김정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