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의 60년 뿌리'를 뽑으려면...
[정욱식 칼럼] 한국전쟁을 끝낸다는 것의 의미
2018.09.04 17:07:56
문제 해결에 접근할수록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거나 다뤄지지 않았거나 피하고자 했던 근본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기 마련이다. 한국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종전선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이 남긴 세 가지 근본 문제, 즉 한반도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그리고 핵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을 휴전하기로 한 정전협정은 한미간에 상호방위조약과 주고받은 성격이 짙었다. 북진통일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 정권은 한사코 정전협정에 반대했었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정전협정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던 1953년 6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공산군과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동시에 철수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에 앞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호방위조약에는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첫째는 한국이 타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은 자동적이고 신속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한국이 독자적인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무기와 탄약, 그리고 병참 물자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한국이 적절한 능력을 구비할 때까지 미국은 한국에 공군과 해군을 담겨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이러한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계속 전쟁을 하겠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러한 요구가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공포로를 몰래 석방해 정전협상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승만식 '벼랑 끝 전술'이었던 셈이다.
당황한 미국은 이승만의 제거까지 검토했지만, 결국 유인책을 제시하면서 이승만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키로 했다. "(정전협정에 반대하는) 이승만을 설득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는 로버트슨(Walter Robertson) 국무부 차관보를 서울로 보내 이승만과 협상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승만은 정전협정에 동의키로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키로 했다.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의 쌍생아'라고 할 수 있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상호방위조약에는 이승만이 강력히 요구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은 빠졌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폭등한 군사비가 미국 경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안보의 경제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대규모의 주한미군 유지와 어울리는 짝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한국 내 핵무기 배치였다. 공산군에 비해 열세에 있는 재래식 군사력을 핵무기의 대거 배치를 통해 만회키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주한미군의 병력 수는 줄어들었고 그 대신 한국에 배치한 핵무기의 종류와 수량은 늘어났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른거렸던 핵과 한반도의 관계는 이렇게 밀착되고 말았다.
이렇듯 1950년대에 정전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미국의 핵무기 배치 등이 맞물리면서 일시적인 협정이었던 정전협정은 '체제'가 되어갔다. 북한도 중국 및 소련과 공식적인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4대 군사 노선'으로 상징되는 군사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전체제는 어지간한 힘으로는 뽑아내기 힘들 정도로 한반도 땅속 깊이 뿌리를 뻗쳐갔다.
종전선언과 역사구조적 관성의 충돌
2018년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그 뿌리를 캐내기로 했다. 종전선언은 그 첫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동의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변심했다. 왜일까?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을 휴전하기로 한 정전협정은 한미간에 상호방위조약과 주고받은 성격이 짙었다. 북진통일을 국시로 내세운 이승만 정권은 한사코 정전협정에 반대했었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정전협정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던 1953년 6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공산군과 유엔군이 한반도에서 동시에 철수할 것"을 제안하면서 "이에 앞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호방위조약에는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첫째는 한국이 타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은 자동적이고 신속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한국이 독자적인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무기와 탄약, 그리고 병참 물자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셋째는 "한국이 적절한 능력을 구비할 때까지 미국은 한국에 공군과 해군을 담겨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은 "이러한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계속 전쟁을 하겠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이러한 요구가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반공포로를 몰래 석방해 정전협상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이승만식 '벼랑 끝 전술'이었던 셈이다.
당황한 미국은 이승만의 제거까지 검토했지만, 결국 유인책을 제시하면서 이승만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키로 했다. "(정전협정에 반대하는) 이승만을 설득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는 로버트슨(Walter Robertson) 국무부 차관보를 서울로 보내 이승만과 협상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승만은 정전협정에 동의키로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키로 했다.
한국전쟁이 낳은 '역사의 쌍생아'라고 할 수 있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상호방위조약에는 이승만이 강력히 요구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은 빠졌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있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폭등한 군사비가 미국 경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안보의 경제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대규모의 주한미군 유지와 어울리는 짝이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한국 내 핵무기 배치였다. 공산군에 비해 열세에 있는 재래식 군사력을 핵무기의 대거 배치를 통해 만회키로 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주한미군의 병력 수는 줄어들었고 그 대신 한국에 배치한 핵무기의 종류와 수량은 늘어났다.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아른거렸던 핵과 한반도의 관계는 이렇게 밀착되고 말았다.
이렇듯 1950년대에 정전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미국의 핵무기 배치 등이 맞물리면서 일시적인 협정이었던 정전협정은 '체제'가 되어갔다. 북한도 중국 및 소련과 공식적인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4대 군사 노선'으로 상징되는 군사화에 박차를 가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전체제는 어지간한 힘으로는 뽑아내기 힘들 정도로 한반도 땅속 깊이 뿌리를 뻗쳐갔다.
종전선언과 역사구조적 관성의 충돌
2018년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그 뿌리를 캐내기로 했다. 종전선언은 그 첫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동의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변심했다. 왜일까?

▲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위치한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본격적인 회담 전 악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다양한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역사구조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종전선언은 60년 넘게 뿌리를 내려온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핵 문제를 건드리는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종전선언에 다가설수록 이들 세 가지의 저항도 커진다.
특히 그 중심에는 한미동맹이 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과 아무리 무관하다고 주장해도 그 존재 이유는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역사의 관성의 무게를 이겨내려면 지속적으로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추진력의 핵심에는 비핵화 진전이 있다. 이 추진력이 떨어지거나 멈춰버리면 기존 체제의 반격이 시작되거나 다른 문제들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이 와중에 같은 사람도 딴생각을 할 수 있고, 본래 딴생각을 품고 있던 사람의 개입력도 커진다. 전자가 트럼프라면 후자의 대표주자는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국민과 언론을 향해 3개월 가까이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없고 억류된 미국인과 미군 유해도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 자랑의 효력은 이미 떨어졌다. 상당수 미국인들에겐 지겹도록 반복되는 '고장난 라디오'로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끝장 협상' 제안을
그래서 남북한은 다시 트럼프의 흥을 북돋아야 한다. 북한은 미국의 변심을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변심이 굳어지기 전에 비핵화의 의지를 다시 과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 특사 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은 이를 위한 더 없이 좋은 자리이다.
장고에 들어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 고심에 걸맞은 역사적 제안을 내놓길 바란다.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북미공동성명을 구체화하고 신속하게 이행할 수 있는 '끝장 협상'이 아닐까 한다. 북미, 혹은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정상들이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협상을 벌여보자는 것이다.
"중재자 文대통령, 트럼프를 이끌고 가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비핵화 시간표-종전선언 맞교환 성사시켜야"
2018.09.04 17:08:14
6.12 정상회담 이후 북미 협상이 선(先) 비핵화와 선 종전선언을 밀고당기는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이 5일 평양에 방문한다. 민감한 시기에 이뤄지는 방북에 특사단이 어떤 결과물을 안고 돌아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현재 국면에서 일단 남한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서 하고 싶었던 일, 즉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진전된 입장을 끌어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부여된 셈"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특사단이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순조롭게 마치고, 이후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국내 정치적으로 비판 여론의 늪에 빠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이 늪으로부터 건져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라"고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프로세스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대략적인 시간표를 알려주면, 내가 이걸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도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해보겠다고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든 비공개로 메시지를 전달하든 간에 북한을 이 정도로 설득해 놓았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가서 이제 꼭지를 따면 된다고, 대신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뭔가를 가져가야 한다고 전해주면 된다"며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통해 북한을 한발 양보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이 한 발 앞으로 나오는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중요한 것은, 만약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설득에 성공하고 미국에도 이를 전달해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고 해도 그 공(功)을 문 대통령 본인의 것이라고 보여지게 하면 안 된다. 교착 상태에 있던 북미 협상이 풀리는 공적은 트럼프에게 줘야 한다. 그래야 협상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이렇게 판이 흘러가더라도 대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어서 선행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한 발 앞서가면서 트럼프에게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미국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터뷰는 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무산되면서 북미 간 협상이 교착상태에 놓여있는데요.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남북관계가 앞서가면 안된다면서 서울역부터 신의주 간 철도 시험 운행도 허가하지 않았는데요. 이런 와중에 남한의 특사가 북한에 올라가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철도 시험 운행은 사전 점검 또는 설계를 위한 현장조사 수준인데 이것까지도 제재와 관련됐다고 시비를 거는 것은 미국이 좀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 국면에서 일단 남한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해서 하려던 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해줘야 하는 겁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을 통해 종전선언에 대한 별다른 카드 없이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끝내 무산된 것이죠. 결국 우리에게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진전된 입장을 끌어내야 할 책임이 부여된 겁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말이죠.
문재인 대통령이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국내 정치적으로 비판 여론의 늪에 빠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이 늪으로부터 건져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라"고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어떻게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할 것인지 대략적인 시간표를 나한테 알려주면 내가 이걸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도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해보겠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든 비공개로 메시지를 전달하든 간에, 북한을 이 정도로 설득해 놓았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가서 이제 꼭지를 따면 된다고, 대신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뭔가를 가져가야 한다고 전해주면 됩니다.
즉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통해 북한을 한발 양보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이 한 발 앞으로 나오는 그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약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설득에 성공하고 미국에도 이를 전달해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고 해도 그 공을 문 대통령 본인의 것이라고 보여지게 하면 안됩니다.
따라서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이후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고 공표하지 말고 바로 미국에 회담 결과를 전달해주고 이를 통해서 폼페이오 장관 방북 및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라고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북한은 핵 물질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바꾸자는 건데, 실제로 그런 효과가 나오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비핵화가 먼저고 종전선언이 따라오는 모양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그렇게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착 상태에 있던 북미 협상이 풀리는 공적을 트럼프에게 줘야 합니다. 그래야 협상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판이 이렇게 흘러가더라도 대내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있어서 선행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한 발 앞서가면서 트럼프에게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고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결국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보다는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어떻게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되겠네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서 북한과 문제를 풀었다면 제대로 된 의제도 없는 정상회담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판문점 선언 이행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그것보다 더 넓은 합의를 해올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첫 고리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유일한 의제가 될 겁니다.

프레시안 : 특사 방북 이후 종전선언과 북핵 문제가 9월에 급진전할 가능성도 있을까요?
정세현 :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잘 설득해서 북한이 자신들이 한발 앞서서 트럼프 대통령을 끌고 가야겠다고 결심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지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재를 해제시키고 북미 수교까지 가야 합니다. 경제 특구도 가동돼야 국가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의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공을 떠넘기면서 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북한이 어차피 비핵화를 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핵을 없앴던 것처럼 지금 남아있는 핵도 없앨 수 있다. 그러니 미국도 종전 선언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간에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북미 간 대화가 다시 열릴 수 있고, 북미 양자 간 대화를 통해 종전선언의 가안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과 중국도 함께 참여할 수 있죠.
프레시안 : 북한이 종전선언에 목을 매는 것 역시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경제 제재가 일부 완화되길 바라기 때문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경제 제재를 일정 부분 풀어야 합니다. 미국은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경제 제재 완화를 안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될 때까지는 제재가 계속돼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상황 변화 없이 이를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지 않는 이유가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주한미군 문제는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지난 3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는 선대 유훈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는데, 아마 이때 주한미군의 주둔을 전제로 북미 수교를 하고싶다는 것 역시 선대의 유훈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북미 수교와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하면 트럼프는 북한과 수교를 추진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주한미군 문제는 양해됐다고 봤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이라는 표현이 나온 겁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은 주한미군이 남한에 주둔한다는 조건에서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주한미군 철수가 동의어가 아니거든요. 주한미군이 있는 조건에서 동북아의 군사적 충돌이라든가 불안정을 관리할 수 있는 매커니즘은 필요합니다. 독일이 통일된 뒤에도 나토 모자를 쓰고 미군이 구 서독지역에 남아있는 것처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에도 집단 안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겁니다.
미국, 아직도 냉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과 잘지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듯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뭘까요?
정세현 : 처음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변덕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뭔가 줄 것이 없으면 오지 말라고 했다는 편지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 편지를 보고 이번 방북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북한이 저런 편지를 보낸 배경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단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전에 판문점에서 해리 해리스 신임 주한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접촉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최 부상의 이전 카운터파트였던 성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해리스 대사는 대북 협상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김 대사는 국무부에서 근무해왔고 6자회담을 통해 북한과 많이 접촉해 본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소위 '말귀'를 잘 알아듣는 인물이죠.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해리스 대사는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한국 언론들과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 언급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해리스 대사와 최선희 부상 간 접촉 과정에서 양측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해리스 대사의 보고를 듣고 북한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최선희 부상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미국에 그런 사인을 주지 않았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오겠다고 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북한 내부에서는 대체 무슨 대화가 오갔길래 폼페이오 장관이 온다고 하는 것이냐며 의아하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얼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정을 했을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철의 편지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종전선언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가져오지 못하는 미국에게 비핵화와 관련한 약속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7월 방북에 이어 이번에도 빈손으로 귀국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곤란해질 뿐만 아니라 손님을 두 번이나 빈손으로 돌려보낸 북한도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가 없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사전에 보낸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김영철 편지 내용이 말이 되니까 가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만약 북한이 생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됐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히 거친 언사로 북한을 비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이 지난 북미 정상회담 당시 합의했던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미국의 유력 매체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도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동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는데 트럼프 정부는 별로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미국 외교의 일방주의적인 행태가 나타난 걸로 보입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소련과 양극체제를 이뤘던 미국은 당시 소련 영향권 아래에 있던 국가들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소련 때문에라도 상대를 구슬려서 잘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협상도 하고 상대도 존중하는 등 외교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1989년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지금과 같이 부상하기 전인 2010년 정도 까지 미국을 대적할 국가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자신들 마음대로 휘젓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교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나오고 있는 '중국 역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고, 중국 때문에 북한이 핵 목록을 빨리 내놓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즉 북한이 중국의 사주를 받아서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중국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지는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계속 중국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일단 본인들의 책임은 면하고 보자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한 약속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에 나오지 않는 것인데, 이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그 책임이 미국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를 면하기 위해서 중국 책임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책임은 다른 나라에게 떠넘기는 일방주의적인, 비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실제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내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하는데 자꾸 한국이 제재에 구멍을 내서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습니다. 결국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니까 북미관계 개선이나 평화체제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논리인데요. 이는 선(先)비핵화 논리일 뿐만 아니라 예전 정부인 부시-오바마 시절의 북핵 정책으로 돌아간 거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이렇게 방향을 틀고 상당한 정도 북한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말을 해놨는데 우리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통해 이를 뒤집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걸 다음날 뒤집어버렸습니다.
정세현 : 아무래도 미국의 국방장관은 군산복합체와 한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티스 장관의 한미 연합 훈련 재개 가능성 이야기는 군산복합체와의 이해관계라는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미 연합 훈련을 재개할지 여부는 올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매티스 장관이 마치 본인이 결정을 내리면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한국에 대한 대단한 외교적 결례입니다. 여기서 우리 국방부 장관이 논의한 적 없다, SCM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짚어줬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매티스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수교, 평화체제 구축 등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전향적으로 나오도록 하는 압박 카드로 그런 이야기를 해보는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북한은 반드시 이에 대해 세게 대응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곤란해집니다. 북미 간 판이 깨지는 소리가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 훈련에는 돈 많이 든다 등등 이야기를 하면서 매티스 장관의 발언을 하루 만에 수습한 것이죠.
프레시안 : 이런 와중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의 정권 수립 기념일인 9일에 맞춰 방북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무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중국이 이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지금 미국과 무역 분쟁에서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올까봐 조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대미 무역으로 1년에 50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정책 결정 상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9.9절에 참석해서 트럼프 대통령을 욱하게 해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9.9절 기념식은 축하 사절로 다른 사람을 보내도 되고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현재 국면에서 일단 남한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서 하고 싶었던 일, 즉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진전된 입장을 끌어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부여된 셈"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특사단이 남북 정상회담 합의를 순조롭게 마치고, 이후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국내 정치적으로 비판 여론의 늪에 빠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이 늪으로부터 건져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라"고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프로세스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대략적인 시간표를 알려주면, 내가 이걸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도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해보겠다고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든 비공개로 메시지를 전달하든 간에 북한을 이 정도로 설득해 놓았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가서 이제 꼭지를 따면 된다고, 대신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뭔가를 가져가야 한다고 전해주면 된다"며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통해 북한을 한발 양보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이 한 발 앞으로 나오는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중요한 것은, 만약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설득에 성공하고 미국에도 이를 전달해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고 해도 그 공(功)을 문 대통령 본인의 것이라고 보여지게 하면 안 된다. 교착 상태에 있던 북미 협상이 풀리는 공적은 트럼프에게 줘야 한다. 그래야 협상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은 이렇게 판이 흘러가더라도 대내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어서 선행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한 발 앞서가면서 트럼프에게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미국은 이렇게 할 수가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의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터뷰는 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무산되면서 북미 간 협상이 교착상태에 놓여있는데요.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장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남북관계가 앞서가면 안된다면서 서울역부터 신의주 간 철도 시험 운행도 허가하지 않았는데요. 이런 와중에 남한의 특사가 북한에 올라가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철도 시험 운행은 사전 점검 또는 설계를 위한 현장조사 수준인데 이것까지도 제재와 관련됐다고 시비를 거는 것은 미국이 좀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 국면에서 일단 남한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을 방문해서 하려던 것을 문재인 대통령이 해줘야 하는 겁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방북을 통해 종전선언에 대한 별다른 카드 없이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게 끝내 무산된 것이죠. 결국 우리에게 비핵화와 관련된 북한의 진전된 입장을 끌어내야 할 책임이 부여된 겁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말이죠.
문재인 대통령이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국내 정치적으로 비판 여론의 늪에 빠져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이 늪으로부터 건져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라"고 설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어떻게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진할 것인지 대략적인 시간표를 나한테 알려주면 내가 이걸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서 미국도 종전선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해보겠다"고 설득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이후 문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든 비공개로 메시지를 전달하든 간에, 북한을 이 정도로 설득해 놓았으니 트럼프 대통령이 가서 이제 꼭지를 따면 된다고, 대신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뭔가를 가져가야 한다고 전해주면 됩니다.
즉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통해 북한을 한발 양보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이 한 발 앞으로 나오는 그림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약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 설득에 성공하고 미국에도 이를 전달해서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고 해도 그 공을 문 대통령 본인의 것이라고 보여지게 하면 안됩니다.
따라서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이후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고 공표하지 말고 바로 미국에 회담 결과를 전달해주고 이를 통해서 폼페이오 장관 방북 및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넘어가라고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북한은 핵 물질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바꾸자는 건데, 실제로 그런 효과가 나오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비핵화가 먼저고 종전선언이 따라오는 모양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그렇게 트럼프의 체면을 세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착 상태에 있던 북미 협상이 풀리는 공적을 트럼프에게 줘야 합니다. 그래야 협상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판이 이렇게 흘러가더라도 대내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있어서 선행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한 발 앞서가면서 트럼프에게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고 하면 됩니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결국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보다는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어떻게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 되겠네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서 북한과 문제를 풀었다면 제대로 된 의제도 없는 정상회담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판문점 선언 이행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그것보다 더 넓은 합의를 해올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첫 고리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유일한 의제가 될 겁니다.

▲ 지난 4월 27일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 취재단
프레시안 : 특사 방북 이후 종전선언과 북핵 문제가 9월에 급진전할 가능성도 있을까요?
정세현 :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잘 설득해서 북한이 자신들이 한발 앞서서 트럼프 대통령을 끌고 가야겠다고 결심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북한은 지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재를 해제시키고 북미 수교까지 가야 합니다. 경제 특구도 가동돼야 국가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의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공을 떠넘기면서 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북한이 어차피 비핵화를 할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핵을 없앴던 것처럼 지금 남아있는 핵도 없앨 수 있다. 그러니 미국도 종전 선언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간에 문 대통령이 중재자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북미 간 대화가 다시 열릴 수 있고, 북미 양자 간 대화를 통해 종전선언의 가안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과 중국도 함께 참여할 수 있죠.
프레시안 : 북한이 종전선언에 목을 매는 것 역시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경제 제재가 일부 완화되길 바라기 때문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경제 제재를 일정 부분 풀어야 합니다. 미국은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경제 제재 완화를 안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될 때까지는 제재가 계속돼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상황 변화 없이 이를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지 않는 이유가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주한미군 문제는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지난 3월 5일 김정은 위원장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는 선대 유훈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는데, 아마 이때 주한미군의 주둔을 전제로 북미 수교를 하고싶다는 것 역시 선대의 유훈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겁니다. 북미 수교와 주한미군 철수까지 요구하면 트럼프는 북한과 수교를 추진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주한미군 문제는 양해됐다고 봤기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이라는 표현이 나온 겁니다.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은 주한미군이 남한에 주둔한다는 조건에서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주한미군 철수가 동의어가 아니거든요. 주한미군이 있는 조건에서 동북아의 군사적 충돌이라든가 불안정을 관리할 수 있는 매커니즘은 필요합니다. 독일이 통일된 뒤에도 나토 모자를 쓰고 미군이 구 서독지역에 남아있는 것처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에도 집단 안보 시스템을 도입해야 할 겁니다.
미국, 아직도 냉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과 잘지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듯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는 뭘까요?
정세현 : 처음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변덕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뭔가 줄 것이 없으면 오지 말라고 했다는 편지를 보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 편지를 보고 이번 방북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북한이 저런 편지를 보낸 배경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일단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전에 판문점에서 해리 해리스 신임 주한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접촉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최 부상의 이전 카운터파트였던 성김 주 필리핀 미국 대사와 해리스 대사는 대북 협상 측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김 대사는 국무부에서 근무해왔고 6자회담을 통해 북한과 많이 접촉해 본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소위 '말귀'를 잘 알아듣는 인물이죠.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해리스 대사는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한국 언론들과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 언급은 시기상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해리스 대사와 최선희 부상 간 접촉 과정에서 양측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을 겁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해리스 대사의 보고를 듣고 북한에 가도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최선희 부상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본인은 미국에 그런 사인을 주지 않았는데 폼페이오 장관이 오겠다고 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북한 내부에서는 대체 무슨 대화가 오갔길래 폼페이오 장관이 온다고 하는 것이냐며 의아하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얼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결정을 했을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철의 편지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종전선언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가져오지 못하는 미국에게 비핵화와 관련한 약속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7월 방북에 이어 이번에도 빈손으로 귀국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곤란해질 뿐만 아니라 손님을 두 번이나 빈손으로 돌려보낸 북한도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가 없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사전에 보낸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 부정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김영철 편지 내용이 말이 되니까 가지 말라고 했을 겁니다. 만약 북한이 생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됐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상당히 거친 언사로 북한을 비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지난 7월 7일 마이크 폼페이오(오른쪽)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평양 백화원 초대소 영빈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이 지난 북미 정상회담 당시 합의했던 사항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미국의 유력 매체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도 종전선언과 비핵화를 동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는데 트럼프 정부는 별로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미국 외교의 일방주의적인 행태가 나타난 걸로 보입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소련과 양극체제를 이뤘던 미국은 당시 소련 영향권 아래에 있던 국가들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당시는 소련 때문에라도 상대를 구슬려서 잘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협상도 하고 상대도 존중하는 등 외교 행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1989년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지금과 같이 부상하기 전인 2010년 정도 까지 미국을 대적할 국가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자신들 마음대로 휘젓고 다녀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외교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나오고 있는 '중국 역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한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고, 중국 때문에 북한이 핵 목록을 빨리 내놓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만약 이 논리대로라면, 즉 북한이 중국의 사주를 받아서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면, 중국보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떨어지는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계속 중국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일단 본인들의 책임은 면하고 보자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종전선언에 대한 약속을 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이 협상에 나오지 않는 것인데, 이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그 책임이 미국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이를 면하기 위해서 중국 책임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책임은 다른 나라에게 떠넘기는 일방주의적인, 비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실제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내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해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하는데 자꾸 한국이 제재에 구멍을 내서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습니다. 결국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니까 북미관계 개선이나 평화체제 문제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는 논리인데요. 이는 선(先)비핵화 논리일 뿐만 아니라 예전 정부인 부시-오바마 시절의 북핵 정책으로 돌아간 거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이렇게 방향을 틀고 상당한 정도 북한에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말을 해놨는데 우리 정부가 중재자 역할을 통해 이를 뒤집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 하면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다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걸 다음날 뒤집어버렸습니다.
정세현 : 아무래도 미국의 국방장관은 군산복합체와 한 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티스 장관의 한미 연합 훈련 재개 가능성 이야기는 군산복합체와의 이해관계라는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미 연합 훈련을 재개할지 여부는 올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매티스 장관이 마치 본인이 결정을 내리면 최종 결정이 내려지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한국에 대한 대단한 외교적 결례입니다. 여기서 우리 국방부 장관이 논의한 적 없다, SCM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짚어줬어야 합니다.
한편으로는 매티스 장관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수교, 평화체제 구축 등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북한이 비핵화에 전향적으로 나오도록 하는 압박 카드로 그런 이야기를 해보는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북한은 반드시 이에 대해 세게 대응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곤란해집니다. 북미 간 판이 깨지는 소리가 나오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 훈련에는 돈 많이 든다 등등 이야기를 하면서 매티스 장관의 발언을 하루 만에 수습한 것이죠.
프레시안 : 이런 와중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북한의 정권 수립 기념일인 9일에 맞춰 방북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무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중국이 이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지금 미국과 무역 분쟁에서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돌아올까봐 조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이 대미 무역으로 1년에 50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흑자를 내고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정책 결정 상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9.9절에 참석해서 트럼프 대통령을 욱하게 해봐야 별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9.9절 기념식은 축하 사절로 다른 사람을 보내도 되고요.
'정치, 국제정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한미군 철수’ 등 아니면 미국도 종전선언 OK (0) | 2018.09.07 |
---|---|
9월9일 시진핑 주석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0) | 2018.09.05 |
미국은 생각보다 아시아에서 힘을 못 쓴다 (0) | 2018.09.01 |
[한일 수교와 미국의 압력] (0) | 2018.08.30 |
정세현 "이미 판이 바뀌었다" (0) | 2018.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