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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어디만큼 왔니?

일취월장7 2018. 9. 6. 16:03

인공지능 시대, 어디만큼 왔니?

8월14일 ‘2018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가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국내외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강연과 상호 토론이 이어졌다. 객석에 있는 젊은 세대의 관심이 컸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8년 08월 28일 화요일 제571호



객석 300석이 꽉 차 의자를 더 펴야 했다. ‘2018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SAIC)’가 ‘인공지능(AI), 인간의 선택을 묻다’라는 주제로 8월1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표완수 <시사IN> 대표이사 겸 발행인의 환영사와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 박원순 서울시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류 문명이 만들어온 모든 신기술은 본디 사람을 위한 길이었습니다. ‘사람이 먼저다’는 우리 정부의 국정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번 콘퍼런스가 인공지능 시대에 과학과 사람이 손잡고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좋은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축사를 보내왔다. 박선숙·박영선 의원,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대변인이 대신 참석)이 참석했고, 정세균 의원(전 국회의장)이 축전을 보냈다.



ⓒ시사IN 신선영
‘세션 2: 인공지능 토크콘서트’에서는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허일규 SK텔레콤 IoT/Data사업부장, 앨런 윈필드 영국 브리스틀 로보틱스랩 교수, 폴 메이슨 영국 방송인 겸 저널리스트,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로널드 아킨 미국 조지아 공대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의 기조 강연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기’로 오프닝 세션 ‘인공지능, 이미 와 있는 미래’가 시작되었다. 정 교수는 “아톰(atom)의 세계(현실세계)와 비트(bit)의 세계가 일치하는 세상에서는 완전고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불고용 시대’로 나아가게 된다. 완전히 새로운 솔루션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 로봇을 노동의 주체로 간주해 ‘기계세(machine tax)’를 물리는 아이디어, 기술을 잘 사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 계급이 나뉘는 ‘기술 계급사회’, 자율주행 자동차에서 논의되는 ‘인공지능 윤리’ 등 쟁점을 짚었다. 일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시민들이 자신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기업에 팔 수 있다면, 이것이 기본소득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소개했다.

‘세션 1: 인공지능, 세 가지 쟁점’은 로봇윤리 부문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널드 아킨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 교수의 강연 ‘킬러 로봇은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나’로 막을 올렸다. 아킨 교수는 “우리는 절대로 전쟁을 벌여선 안 된다. 문제는 전쟁이 계속 발발하고 있고, 우리가 전쟁을 계속 할 것이라는 점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전투요원이 아닌 무고한 사람들이 인간의 전쟁범죄 혹은 실수로 죽는다. 기술을 이용한 ‘치명적 자율 무기’를 (금지 대신) 잘 규제해서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킨 교수는 자신의 제안에 대해 “모든 전투 요원을 로봇으로 대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로봇에게 역량을 부과해서 인간의 판단 권한을 주자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비전투 요원을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 연사로는 로봇 자동화세 주창자인 앨런 윈필드 영국 브리스틀 로보틱스랩 교수가 나섰다. 윈필드 교수는 ‘로봇윤리:원칙에서 정책으로’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먼저 로봇윤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우려를 지적했다. 그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년간 로봇의 원칙과 표준을 수립하는 데 참여해왔다며, 특히 표준기관인 IEEE의 ‘투명성의 윤리(P7001)’를 만드는 데 가장 깊게 관여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무인자동차라는 기술이 우리 삶에 적용됐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도 자율 시스템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항상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 연사로는 <포스트 자본주의:새로운 시작>의 저자인 폴 메이슨 영국 방송인 겸 저널리스트가 나서 ‘인공지능 시대는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정보기술이 자본주의 고유의 적응 능력을 방해한다면서, ‘포스트 자본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P2P(Peer to Peer·개인 간 직접 연결)와 협동조합, 오픈소스와 같은 비시장 부문의 생산을 촉진하고, 자동화를 촉진하며, (우버 등 플랫폼 기업의) ‘지대 추구’를 규제하고, 지식재산권을 혁신 단계로 제한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이로써 시장-국가-비시장 부문이 균형을 이루게 하고, 전 사회적 수준에서 인공지능 윤리를 고민해 기술로 삶을 더 낫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미래는 우리가 의도해 만들어나가는 것”

‘세션 2: 인공지능 토크콘서트’에서는 정재승 교수의 사회로 세 연사와 허일규 SK텔레콤 IoT/Data사업부장,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가 패널로 나서 토론을 벌였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로봇을 만들면 안 된다’는 윈필드 교수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일종의 ‘자아’가 없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에 도달하기 어렵지 않나”라고 물었다. 이에 윈필드 교수는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인공지능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사람은 사실 아무도 없다. 인공지능을 연구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우리 스스로가 자연지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허일규 사업부장은 아킨 교수에게 “보안카메라 사업에서는 이미지 인식 머신러닝이 중요하다. 이 기술을 가장 발전시킨 국가가 중국이다. 개인정보 수집 규제가 없어서다. 규제 문제를 글로벌 차원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라고 물었다. 아킨 교수는 “로봇윤리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문화적 차이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보편 답안 하나로 해결할 수 없다. 일부 문화권은 개인 사생활 보호에 더 민감할 수도, 다른 문화권은 일반 대중 안전을 중시할 수도 있다. 지역별로 대안을 선택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정재승 교수는 폴 메이슨에게 질문했다. 자본주의 붕괴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보는지와, 공유경제와 자본주의, 포스트 자본주의 간 관계에 대해서다. 폴 메이슨은 “공유경제보다 ‘플랫폼 독점’이라는 말이 더 옳다고 본다. 규제 당국이 더 이상 기술기업들의 독점을 참지 못할 때 자본주의가 붕괴할 것이라 생각한다. 10년 안에 일어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방청객도 질문을 했다. 자신을 사이버 보안 전문가라 소개한 한 방청객은 “아이스크림을 배달하는 드론과 테러에 쓰이는 드론, 피자 배달 로봇과 폭탄 배달 로봇을 어떻게 구분할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아킨 교수는 “무기인지 피자인지 알 수 없는 건 피자 배달원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공지능이든 우버든 피자 배달 로봇이든, 영수증에 적힌 세세한 정보로 추적하고 제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인사말로 윈필드 교수는 “미래는 우연히 이뤄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의도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폴 메이슨은 “오늘 이 자리에 젊은 세대가 많이 왔다. 모든 일에 대해서 의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이 꼭 적절할 필요는 없다. 항상 물음표와 호기심을 갖길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경제 위기 몰린 문재인 정부, ‘인공지능’서 답을 찾다

제조 넘어 서비스업도 비용 경쟁…산업 체질 개선 열쇠로 주목

송주영 시사저널e. 기자 ㅣ jy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8.08.30(목) 14:19:35 | 1506호



#1 시가총액 1조 달러 돌파를 앞둔 아마존은 혁신의 상징이다. 대표적으로는 무인매장 ‘아마존고’와 물류혁신을 상징하는 ‘키보’가 있다. 아마존고에서 구매자가 물건을 잡으면 센서와 카메라로 상품 종류와 가격을 즉시 감지한다. 구매자는 그냥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쇼핑이 끝난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아마존 결제 시스템을 통해 비용이 처리된다. 

 

현대백화점은 아마존과 손잡고 2020년 이 같은 형태의 매장을 국내에 선보일 방침이다. 아마존 온라인 물류창고에서는 지게차와 사람 대신 로봇 ‘키바’가 일한다. 키바는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물건을 분류하고 선반에 적재까지 한다. 작고 납작한 모양새지만 물류 적재 시간을 기존 75분에서 15분으로 줄였다. 비용도 20%가량 낮췄다. 

 

최근 우리나라 고용지표가 최악의 수준으로 내려간 가운데, 정부는 ‘혁신성장’을 키워드로 내놓았다. 신기술 지원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수소차량 등이 포함됐고, 이 중에서도 인공지능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은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해 온 반도체를 이어갈 후속 주자로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관련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기술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게 진행돼 자칫 잘못하면 우리나라가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공지능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제조업과 더 나아가 서비스 산업까지 전 사업군에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 세계는 이미 인공지능 열풍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연간 조 단위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으로 국내의 역량 있는 기업 인수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미국은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막강한 소프트웨어 역량을 바탕으로 이미 인공지능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캐나다 역시 인공지능에 대한 오랜 투자로 3대 석학을 배출하며 전 세계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5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강서구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SKT 관계자로부터 5G를 이용한 스마트 미디어월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5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강서구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SKT 관계자로부터 5G를 이용한 스마트 미디어월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中, 정부 차원서 조 단위 투자

 

각국이 이 분야에 사활을 거는 것은 인공지능이 가진 파급력과 폭발력에 주목해서다.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없던 서비스를 탄생시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현장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이 가진 파급력은 기존 산업의 ‘비용절감’에서도 나온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의 마른걸레 쥐어짜기 방식이 아닌 다양한 영역에서 관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쉬지 않고 24시간 가동해 작업 효율은 높이고 비용을 줄이면서 극단적인 경우 사람을 대체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 유통 등 서비스 분야와 미디어 분야 역시 인공지능의 비용절감 효과에 주목하면서 ‘혁신’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대체하는 부문에서 인공지능과 일자리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인공지능 산업계는 단기적인 효과보다 경제 전체의 큰 그림을 바꾸는 패러다임 시프트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에서 성장에 가속도를 붙여줄 마중물이 ‘혁신’이고, 그 혁신을 가져올 액셀러레이터가 바로 ‘인공지능’이라고 설명한다. 

 

장준혁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혁신성장이 담고 있는 거대 담론에서 혁신은 산업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일자리도 창출하는 수단이란 의미”라며 “인공지능은 혁신에 최적화된 기술이며 우리나라가 선도하는 메모리 산업처럼 다양한 부산물을 양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 간 응용을 결합하면 2, 3차 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산업 현장에서 다양한 혁신을 이끌고 있는 산업 컨설턴트들의 의견 역시 비슷하다. 김영석 어니스트앤영(EY)코리아 디지털 리더는 “기업 성장의 핵심은 서비스 혁신과 가격 파괴”라며 “블루오션을 찾기보다는 인접 영역에서 그 업종을 파괴할 만한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한다. IT 기술을 이용한 비용절감이 이를 실현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사업을 효율화해 똑똑해지면 전통산업도 새로운 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준혁 교수는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발휘할 수 있다”며 “알파고와 같은 바둑 두는 인공지능이 음성, 영상인식, 번역기술 분야로 확산되고 있고 나중에는 자율주행은 물론 로봇과도 결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6월8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하남시 스타필드에서 열린 ‘혁신성장을 위한 기업 현장 간담회’에서 인공지능 로봇 서비스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6월8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하남시 스타필드에서 열린 ‘혁신성장을 위한 기업 현장 간담회’에서 인공지능 로봇 서비스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은 혁신에 최적화된 기술”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도 인공지능 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혁신성장 정책을 발표하면서 혁신 대상 3대 축으로 데이터경제, 수소경제와 함께 인공지능을 선정했다. 또 내년에만 인공지능 분야 지원 예산으로 800억원을 책정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인공지능 핵심기술에 800억원, 빅데이터 네트워크에 800억원, 블록체인에 300억원 등 총 1900억원 예산을 투입하는 등 3대 전략투자를 통해 혁신성장을 이끌어 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먹거리에 민감한 민간기업들도 앞다퉈 인공지능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네이버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모두 인공지능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캐나다 몬트리올대에 인공지능연구소를 설립하고 인공지능 분야 3대 석학이라 불리는 요시오 벤지오 교수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LG전자, SK텔레콤 내에도 인공지능 연구소나 연구센터가 있다. KT는 최근 AI테크센터를 통해 이 분야 연구에 나섰다. 네이버, 카카오 등 포털 업체도 마찬가지고 엔씨소프트나 넷마블과 같은 게임업체들까지 인공지능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실제 입증한 사례가 많지 않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파괴적 혁신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산업분야에서 사용되는 인공지능 사례를 살펴보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금융권은 콜센터를 대신해 채팅로봇이 상담을 하거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대출심사를 하는 방안을 시험하고 있다. 일부 화학이나 항만 회사는 CCTV를 활용한 사고예방 업무를 추진 중이다.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이미지를 인지해 위험 상황을 경고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김영석 디지털 리더는 “사람을 도와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산업 측면에서 이제 초창기 적용단계로 커다란 혁신을 이뤄낸 사례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가 쌓이면 거대한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또 초창기에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인공지능 투자 흐름 속에서 기술과 응용 분야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적인 비교 대상이 구글이다. 구글은 수년 전부터 딥마인드 등 인공지능 전문기업에 투자를 진행해 인공지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구글과 우리 기업들의 음성인식 등 인공지능 관련 기술 격차를 5년 정도로 보고 있다. 최근 들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격차를 줄였지만 아직은 차이가 크다. 

 

중국도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이 우리 기업들에 앞서 인공지능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이 중 바이두의 경우 지금은 회사를 떠났지만 세계적 인공지능 석학으로 꼽히는 앤드루 응 교수를 영입하기도 했으며, 지난 1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회사와 손잡고 자율주행차 시험운행에 나섰다. 

 

우리나라 인공지능 기술 육성의 가장 큰 과제로는 인력양성이 꼽힌다. 기술개발을 주도할 석·박사급 인력이 태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최근 인공지능 선행개발 인력을 국내에서 600명, 해외에서 400명 등 1000명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서는 “1000명을 어디서 뽑을 것이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한때 구글이 우리나라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우수 인재로 평가해 앞뒤 재지 않고 입도선매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인재 유출은 크게 줄었다. 인공지능으로 유명하다는 교수들의 연구실에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등 IT기업 뿐 아니라 현대자동차와 같은 제조기업들까지 몰려와 인재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다. 관련 업계에서는 “단순히 인공지능 인력은 채용 문제가 아니라 우수인력을 뽑아 육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왔다. ​ 

 

※연관기사

☞인공지능의 모든 것, ‘미래혁신포럼 2018’



인공지능에게 민주주의를 맡기시겠습니까?

<사이언티픽 아메리칸>빅데이터·인공지능 시대에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기사를 실었다. 알고리즘, 집중·분산 처리 시스템 등은 민주주의의 미래에 화두를 던진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8년 09월 03일 월요일 제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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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에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 거대한 질문은 답은커녕 무엇을 묻고 있는지도 간단치 않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 시대가 어떤 모습일지 아직 모릅니다. 민주주의는 그보다야 낫겠지만, 역시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안다고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좀 헐겁더라도 도발적인 상상력이 도움이 됩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놀라운 통찰과 과감한 비약 양쪽으로 유명한 슈퍼스타입니다. 하라리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썼는데, 경제학·인류학·컴퓨터과학·생명과학 등 여러 전공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인류사의 큰 줄기를 엮어가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각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거의 동시에 비약이라고 비판을 받았지요.

4월11일, 하라리는 캐나다 밴쿠버의 ‘2018 테드(TED) 콘퍼런스’ 무대에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18분짜리 강연을 합니다. 여기서 하라리는 우리의 주제를 압축할 만한 화두를 던집니다. “알고리즘은 나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권력은 내 느낌과 감정까지 조종할 수 있게 될 겁니다. 민주주의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온라인 쇼핑몰 인공지능이, 내 심박수·체온·활동량·수면상태 등 온갖 정보를 파악하여 마음을 재빨리 예측하고 그에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세상을 상상해봅시다. “당 떨어지셨군요? 여기 당신이 즐겨 먹던 초콜릿 리스트가 있습니다!” 이것이 충분히 자연스럽고 유혹적이라면, 결정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내가 아니라 알고리즘입니다. 그리고 알고리즘이 초콜릿을 넘어 특정 선거 후보자나 정부 정책을 지지하도록 내 감정을 기막히게 조종하는 세상을 상상해봅시다. 하라리는 이런 맥락에서, 비약을 적당히 섞어서,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어렵다”라고 말합니다.

하라리는 역사학자이지 인공지능 엔지니어가 아닙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라면 <시사IN>이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만난 ‘네이버랩스유럽’ 소속 연구원 크리스 댄스가 훨씬 믿을 만한 전문가입니다. 댄스가 개발한 ‘주차 최적화 알고리즘’은 교통난으로 악명 높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적용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알고리즘은 교통 상황을 파악해 주차요금을 실시간으로 정하며, 운행 경로에 따라 최적의 주차장을 안내합니다.

주차 알고리즘은 원리상 ‘조언’을 할 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결정’에 가깝게 작동합니다. 주차 위치 정도야 누가 결정하든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예를 들어 최적의 소득세 세율을 결정하는 문제를 알고리즘이 맡는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조언과 결정. 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우리의 질문에 답할 첫 번째 열쇠입니다. 

최적의 세율을 알고리즘이 판단할 수 있을까요? 댄스에게 물어봤습니다. “데이터가 충분하고 기술이 더 발전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세율은 민주주의에서 대단히 중요한 결정입니다. 그런 세상을 민주주의라고 불러도 될까요? 댄스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민주주의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한두 가지 문제에 알고리즘이 조언을 줄 수는 있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질문은 민주주의를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같네요.” 이런, 한 방 먹었습니다.

ⓒ시사IN 조남진
크리스 댄스 ‘네이버랩스유럽’ 소속 연구원(위)은 ‘주차 최적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결정’과 ‘조언’의 경계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는 2016년 5월, 대단히 논쟁적인 기사 ‘Machine Bias(기계의 편향)’를 썼습니다. 미국에는 형사 범죄자가 재범을 저지를 확률을 알고리즘으로 평가하는 민간 기업이 있습니다. 이것을 ‘위험 점수(Risk Scores)’라고 부릅니다. 민간 기업들은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영업비밀로 보호받습니다. 판사들은 자기 앞에 도착한 위험 점수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조언이란 우리의 토론과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와 의견입니다. 이쯤 되면 이미 조언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결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프로퍼블리카>는 이 알고리즘을 검증하기 위해 플로리다 주의 한 카운티에서 2년 동안 체포된 7000명의 위험 점수를 구해 분석했습니다. 21쪽 표는 각각 흑인과 백인 범죄자들이 받은 위험 점수입니다. 흑인은 1점부터 10점까지 비교적 고르게 받은 반면, 백인은 절대다수가 낮은 점수의 저위험군으로 분류됐습니다. 혹시 흑인이 실제로도 재범을 많이 저지르기 때문일까요?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백인 중 23.5%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반면 고위험군 흑인 중에는 44.9%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흑인의 위험도가 과대평가된 겁니다. 반대로 저위험군 백인 중에서는 47.7%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저위험군 흑인은 28%만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백인은 알고리즘의 예측보다 더 위험이 높았습니다. 알고리즘은 인종주의자였습니다. 그리고 법원은 이 인종주의자 알고리즘의 결론을 참고할 만한 조언으로 보았습니다. 기사가 작성된 시점에서, 미국의 9개 주에서 위험 점수를 판사에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민트 맛 초콜릿을 추천한 이유를 알 수 없어도 삶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저 초콜릿에서 치약 맛이 날 뿐입니다. 하지만 의료 진단이나 형사재판처럼 사람의 기본권이 걸린 문제라면, 인공지능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특히 딥러닝 알고리즘에서 이게 문제가 됩니다. 지금 기술로는 딥러닝 알고리즘이 어떤 이유로 결론을 내렸는지 개발자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봇윤리와 인공지능 안전 이슈의 세계적 전문가로 ‘<시사IN> 인공지능 콘퍼런스’의 강연자로 나선 앨런 윈필드 교수(영국 브리스틀 로보틱스랩)는 “안전이 필수인 시스템에서는, 투명성이 확보되기 전까지 딥러닝 알고리즘을 써서는 안 됩니다”라고 단언합니다.

조언과 결정 문제를 파고들다 보니, 우리의 질문에서 중요한 두 번째 열쇠에 도착했습니다. 투명성과 불투명성 문제입니다. 투명성이 있어야만 ‘인공지능이 조언하고 인간이 결정한다’라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그렇게 조언한 이유를 알아야 공론장에서 토론에 부칠 수 있고, 그럴 때만 조언이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서는 유럽연합이 앞서 있습니다. 올해 5월25일부터 유럽연합은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했습니다. GDPR이라는 약어로 불립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알고리즘이 어떤 결정을 하여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개인은, 왜 알고리즘이 그런 판단을 했는지 설명을 들을 권리를 GDPR은 보장합니다.

ⓒ<프로퍼블리카> 갈무리
<프로퍼블리카>는 ‘범죄자의 재범 확률을 알고리즘으로 평가하는 민간 기업’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백인에 비해 흑인의 위험도를 과대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퍼블리카> 갈무리

조반니 부타렐리는 유럽 정보보호감독기구(EDPS) 감독관입니다. EDPS는 유럽연합의 개인정보 감독기구인데, 여기서 GDPR의 초안을 잡았습니다. 현지 언론은 부타렐리 감독관을 ‘미스터 GDPR’이라고 부릅니다. 7월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부타렐리 감독관을 만나 이 ‘설명을 요구할 권리’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GDPR이 제공하는 새로운 기본권입니다. 자동 결정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입니다.” 알고리즘의 결정이 갈수록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에, 영향을 받는 이유를 시민이 알 권리가 있다는 취지입니다.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유럽연합을 넘어서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을까요? 부타렐리 감독관은 “그렇다”고 자신합니다. “우리는 그 회사의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 의사결정이 어디서 내려지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간단합니다. 유럽 시장에 들어오고 싶으면 GDPR을 준수해야 합니다.” 글로벌 기업 중에 유럽연합 시장을 통째로 포기할 기업은 사실상 없습니다.

‘설명을 요구할 권리’, 과연 실현 가능한가

<프로퍼블리카>가 보도한 사례로 예를 들면, 위험 점수를 받은 범죄자는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위험 점수를 평가하는 기업은 적절한 설명을 제공해야 합니다. 물론 미국은 이런 권리를 보장하는 법조항이 없으므로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기업이 유럽에서 같은 사업을 하려면, 그때는 미국 기업이라도 ‘설명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민주적인 원칙으로 들립니다. 어쩌면 투명성 원칙이 이렇게 해결되고, 첫 번째 문제였던 조언과 결정을 구분하는 문제도 해결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런, 아니라는군요. 부타렐리 감독관의 야망을 듣고 제동을 건 사람은 조경현 교수(뉴욕 대학 컴퓨터과학과)입니다. 딥러닝 개념을 창안한 전설적인 엔지니어 제프리 힌튼이 꼽은 차세대 스타입니다(<시사IN> 제570호 ‘번역 앱 똘똘해졌죠? 조경현 덕분입니다’ 기사 참조). “우선은 딥러닝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아주 어려운 기술적 도전입니다. 그 후에도 문제는 남는데요, 복잡한 과제일수록 여러 딥러닝 알고리즘을 조합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결론이 나오는 과정도 아주 복잡하죠. 이 과정을 다 알려준다면 너무 복잡해서 이해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너무 요약하면 사실상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중간지점을 잡는 것도 매우 까다롭고, 아예 중간이란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까지 설명해야 ‘설명’일까요?”

고학수 교수(서울대 로스쿨)는 개인정보 보호법 전문가입니다. 그의 생각도 정책가인 부타렐리보다는 엔지니어인 조경현 교수와 비슷합니다. “미래 인공지능까지 가지 않더라도, 예를 들어 지금도 대출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공식이 꽤 복잡합니다. 다 설명하면 사실상 설명이 아니고, 너무 간략해도 역시 설명이라고 볼 수 없죠.”

이것은 보르헤스의 ‘완벽한 지도’가 떠오르는 이야기입니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단편소설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에서 완벽한 지도를 다룹니다. 어느 제국의 지도 제작 능력이 너무나 완벽하게 발달한 나머지, 제작자들은 마침내 실제 제국의 크기와 정확히 같은 지도를 만들어냅니다. 이 지도는 완벽히 정확했고, 완벽히 쓸모가 없었습니다.

끝이 아닙니다. 인공지능과 민주주의의 불화는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 잠재되어 있습니다. 다시 하라리의 통찰력 있는 비약으로 돌아갑시다. 같은 강연에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직면한 최대 위협은, 정보기술 혁명으로 독재 체제가 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독재는 중앙집중형 정보처리 시스템이고 민주주의는 분산형 시스템입니다. 20세기 기술로는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시스템이 훨씬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이겼습니다. 하지만 중앙집중형 정보처리가 늘 비효율적이라는 자연법칙은 없습니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은 엄청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매우 효율적으로, 한 장소에서. 중앙집중처리 시스템은 20세기에는 독재의 핸디캡이었습니다. 이제 최대 장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시사IN 천관률
조반니 부타렐리는 유럽 정보보호감독기구 감독관이다.
ⓒ시사IN 조남진
현지 언론은 그를 ‘미스터 GDPR’이라고 부른다.

분산처리 시스템과 중앙집중처리 시스템. 우리의 질문에 답할,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20세기 경제사상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장을 분산적 정보 생산 메커니즘으로 보았습니다. 시장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은 각자 선호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면서 ‘분산적으로’ 정보를 생산해냅니다. 이렇게 생산된 정보는 가격신호에 반영되어 역동적으로 조정됩니다. 공산주의는 반대입니다. 정보는 중앙으로 취합되고, 생산량과 가격 등 중요한 결정을 ‘중앙’에서 정합니다. 비누는 남아도는데 신발은 품귀인 식으로 끊임없이 삐걱댑니다. 

민주주의도 분산처리 시스템입니다. 정보는 개별 유권자들이 선호를 밝히는 방식으로 각자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합산된 결과로 권력이 생성됩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에 따르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근이 발생한 적이 없습니다. 기근은 공공자원을 적시에 투입하기만 하면 막기가 꽤 쉬운 재난입니다. 가난한 국가라도 얼추 대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재국가는 종종 기근 대응에 실패합니다. 분산처리 시스템인 민주국가에서는 기근의 징후가 있다는 정보가 재빨리 생산되어 정부에 도달합니다. 독재국가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원리를 가장 비싸고 잔인하게 깨달은 사람은 중국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입니다. 대약진운동의 결과로 무려 3000만명이 기근으로 사망한 후인 1962년, 마오쩌둥은 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민주주의가 없다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분산처리 시스템의 승리는 20세기를 압축하는 키워드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일종의 자연법칙에 가깝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라리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그리고 그 기술을 권력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면, 집중처리 시스템이 더 우월한 날이 올지 모른다고요.

하라리의 악몽은 그대로 중국이 꿈꾸는 미래입니다. 중국은 감시 카메라와 얼굴 인식 인공지능을 결합해 거대한 감시국가 체제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전국에 깔린 감시 카메라가 2억 대로 추산되고, 2030년까지 3억 대로 늘어날 전망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중국 정부는 얼굴과 의복은 물론이고 걸음걸이로 개인을 식별하는 기술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반목이 심한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서 스마트폰을 쓰려면 반드시 정부의 스파이웨어를 깔아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습니다.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은 ‘사회 신용’ 제도도 중국은 야심차게 추진 중입니다. 주민들의 온갖 개인정보를 취합해 하나의 점수로 만들고, 이를 기준으로 상과 벌을 국가가 내린다는 발상입니다. 이 점수가 낮으면 비행기나 기차표도 사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은행 대출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의 명문대 합격이 취소 통보를 받은 사례마저 나왔습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힘으로 중국 정부의 주민 통제력은 갈수록 강해질 전망입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인 마르틴 코르젬파는 최근의 중국을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정부가 사회와 경제를 통제하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목표는 알고리즘 통치(algorithmic governance)다.”

이것은 확실히 새로운 길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신기술은 독재자의 친구라기보다는 적에 가까웠습니다. 성균관대 조석주 교수(정치경제학)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딱 떨어진 결론은 없습니다만 느슨하게는 이렇습니다. 원래 기술발전은 새로운 직업군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다양성과 개방성에 좋고 독재에 나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경우, 만약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하고 투자하고 활용하는 이들이 전부 소수 엘리트로 제한된다? 그러면 기술의 영향력이 분산적이기보다는 집중적일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모르겠네요(웃음). 확실히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신기술은 대체로 분산처리 시스템의 친구였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이런 경향의 중요한 예외가 될까요? 하라리는 “그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명 더 있습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입니다. 그는 “빅데이터 시대에는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보다 우월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2030년 정도에 역전될 것이다”라는 지론을 갖고 있습니다.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충분히 큰 데이터를 중앙권력이 다룰 수 있는 시대에는, 분산처리 시스템보다 중앙집중처리 시스템이 승리한다는 얘깁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독재정부의 친구일까?

ⓒ연합뉴스
2018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한 방문자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안면 인식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있다.

두 사람 다 이 주제의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라리는 역사학자이고, 마윈은 중국공산당의 총애를 받는 기업가입니다. 하지만 정치학자 중에도 있습니다. 떠오르는 스타 정치학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올해 나온 책 <How Democracy Ends>(국내 미출간)에서 “디지털 기술은 비민주적 정부의 권력을 오히려 강화시켰다”라고 대담하게 주장합니다. 정보가 지나치게 풍부할 때는, 정보보다도 오히려 ‘중요한 정보에 집중하는 능력’이 희소한 자원이 됩니다. 넘쳐나는 정보 중에 중요한 것을 발견·취합·가공하는 경쟁은 국가기구가 일반 시민보다 훨씬 끈기 있게 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보 기술은 독특한 예외가 된다고 런시먼은 주장합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17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월간 과학 잡지입니다. 대중매체 중에서는 최고의 신뢰도를 자랑합니다. 지난해 2월, 이 매체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기사를 씁니다. 쓰인 단어가 1만 개가 넘고 A4 용지로 30장이나 되는 장문의 기사로, 사회과학·경제학·분자생물학·과학사회학·기술윤리학·정보과학·국제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 석학 9명이 참여한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분산처리 시스템이 미래에도 중앙집중처리 시스템보다 우수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미래 사회는 매우 가변적이고 복잡할 것이므로, 분산처리 시스템의 장점이 더 극대화된다고 봤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라리와 다릅니다. 하지만 그 다음 문제의식은 같습니다. 알고리즘의 힘은 분산처리 시스템의 성능을 떨어뜨립니다. “강력한 알고리즘으로 의사 결정을 조작하면 복잡한 세계에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집단지성’의 기반이 손상될 수 있다. 집단지성이 작동하려면 개인들의 정보 수집과 의사 결정이 독립적이어야 한다. 집단지성은 고도의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의 개인 맞춤형 정보 시스템은 이것을 위협한다.”

이제 질문이 분명해졌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분산처리 시스템을 훼손하고 중앙집중처리 시스템에 힘을 실어줄까요? 더 노골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은 독재정부의 친구일까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여러 미래 중 하나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해야 할 일도 좁혀졌습니다. 첫째, 조언과 결정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리는 인공지능에 맡길 수 있는 문제와 맡길 수 없는 문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조경현 교수의 접근법이 도움이 됩니다. 인공지능이 최적 세율을 인간보다 더 잘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능합니다. 다만 오히려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 최적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국민소득이 극대화되는 것이 최적인지, 불평등이 적절히 완화되는 어떤 지점이 최적인지, 이런 건 사람이 정해야지요. 그 다음에야 인공지능이 적절한 조언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상태가 ‘최적’인가는 결국 민주 사회 구성원들이 결정할 몫입니다. 이 규칙이 확고한 세상에서는, 인공지능은 기술적인 논란을 줄여줄 잠재력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정책의 영향 자체를 놓고 벌이는 논란은 꽤 줄여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민주 사회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입니다.

둘째, 투명성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딥러닝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책 입안자들은,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보르헤스의 ‘완벽한 지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이 알고리즘 작동 원리를 영업비밀로 보호하려 한다면, 그런 기업이 ‘안전이 필수인 시스템’이나 ‘기본권이 걸린 시스템’의 조언자(결정자는 물론이고)를 해도 되는가라는 토론이 필요합니다. 기업이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GDPR이 천명한 원칙이지만, 앞서 보았듯 아직 위태롭고 취약합니다.

셋째, 가장 핵심이 되는 분산 대 중앙집중의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데이터의 집중과 독점,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데이터 처리능력 폭발은 우리 시대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 될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시대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누가 데이터를 통제할 것인가?” 이 답이 하나(정부)나 소수(엘리트·대기업)가 되게 두어서는, 민주주의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세계는 다양한 시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모든 개인이 자신과 관련된 데이터의 ‘사본을 가질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소개합니다. 정부나 기업이 수집하고 가공한 데이터를 개인이 언제든지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게 될 때, 정부나 기업이 데이터를 통제하는 힘은 줄어듭니다. 하라리는 엔지니어들에게 이런 부탁을 남깁니다. “정보를 분산처리하는 것이 집중처리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그것이 낫다고 시민들을 믿게 만들어야 합니다.” 중앙집중처리 시스템에 대한 분산처리 시스템의 승리가 자연법칙이 아니라면, 둘의 경주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 경주에 민주주의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공포? 아직은 먼 미래다”

[인터뷰]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캘리포니아대 교수 “로봇 발전 속도 인공지능에 비해 더뎌”

송주영 시사저널e. 기자 ㅣ jy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8.09.06(목) 11:38:01 | 1507호


“로봇산업을 육성하려면 빨리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교수가 로봇산업에 뛰어들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건넨 조언이다. 로봇이 실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고들 얘기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10여 년 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예견한 ‘1가구 1로봇’ 시대는 아직도 멀기만 하다. 로봇을 대하는 두 가지 인식, ‘혁신’과 ‘두려움’ 중 적어도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아직도 먼 미래다. 로봇 대신 ‘말하는 가전’들이 이제 막 가정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정도로 생활밀착형 로봇이 걸어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홍 교수는 시각장애인용 자동차와 재난로봇 등으로 유명하다. 2007년 미국국립과학재단 젊은 과학자상, 2009년 제8회 과학을 뒤흔드는 젊은 천재 10인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홍 교수는 강연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9월13일에는 시사저널이코노미 주최로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미래혁신포럼(FIF) 2018’에 연사로 나서 ‘인공지능이 아닌, 로봇의 기계적 지능에 관하여’란 주제로 발표할 계획이다. 다음은 홍 교수와의 일문일답.  

 

© 시사저널e 송주영

© 시사저널e 송주영



로봇에 대한 시각이 ‘혁신’과 ‘두려움’으로 양분됐다. 로봇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인가, 인간과 유사한 존재인가. 


“둘 다 아니다. 로봇을 인간 같은 존재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지도 않는다. 로봇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로봇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3가지를 갖춰야 로봇이라고 한다. 첫째는 감각, 둘째는 계획, 셋째는 실행능력이다. 로봇은 사람의 감각처럼 정보를 받아들이는 센서가 있어야 하고, 정보를 가지고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즉 두뇌 기능이 필요하다. 여기에 물건을 집어 드는 등 실행능력을 갖춰야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엘리베이터는 센싱, 판단, 실행능력 중 일부를 갖췄지만 로봇이라 부르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 속 로봇이 사람을 닮다 보니 자꾸 로봇을 사람 같은 존재로 그리게 되는 것 같다.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C3PO나 《터미네이터》의 살인로봇은 사람처럼 생겼다. 사람에게 친숙해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만든 것 같다. 유명 건축가 루이 설리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말했다. 어떤 물건의 모양은 왜 생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로봇의 모양은 다양할 수 있다.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로봇이라 할 수 있는 로봇청소기는 큰 원반처럼 생겼다. 책상 밑에도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형태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로봇과학자들이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을 위해 설계된 공간 속에 로봇을 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문손잡이도 열 수 있어야 하고 계단도 오르내릴 수 있어야 한다. 가위나 망치 등을 쓰기 위해 손도 있어야 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도 똑똑해지고 있다. 앞으로 로봇의 발전 속도는.


“로봇과 인공지능은 다르다. 인공지능은 몸체가 없는 생각이고 로봇은 물리적인 일을 하는 기계다. 인공지능은 정말 빨리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실생활에서도 많이 쓰인다. 소프트웨어는 물리법칙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에 반해 로봇의 발전 속도는 굉장히 더디다. 로봇은 물리적인 것이다.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스마트폰은 5년 전과 큰 차이를 갖지만 자동차는 그렇지 못하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미디어에서 로봇이 거의 대부분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고 했는데 발전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지금도 공장이나 물류창고 등 특화된 영역을 중심으로만 활용되고 있다.”


로봇 상용화에 걸림돌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다. 전력 문제도 있다. 30분 움직이고 배터리가 나가면 사용할 수 없다. 새 전력원이 필요하다. 더 나은 센서들도 필요하다. 더 잘 보고, 인식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안개가 끼는 등 여러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사람의 근육에 해당하는 액추에이터(Actuator)는 기어를 달아서 쓰는데, 작동을 위해서는 탄성이 필요하다. 컴퓨터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지만, 더 많은 메모리와 컴퓨팅 파워도 필요하다. 즉 로봇은 융합적인 학문이다. 나도 ‘내 로봇’보다는 ‘우리 로봇’이라고 표현한다. 협업해 만들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로봇을 만들 수 없다.” 


국내에서도 로봇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많다.


“로봇산업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빨리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단기적으로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면 새로운 요소기술을 개발하는 게 좋다. 새로운 종류의 감지기나 액추에이터 등을 만들면 사업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런 요소기술들이 중요하기도 하다. 짧은 시간 안에 값이 저렴하고 쓸모 있는 로봇 완성품 개발은 어려울 수 있다. 

 

10여 년 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라는 잡지에 기고하면서 PC가 보급된 것처럼 ‘1가구 1로봇’ 시대를 예견했는데, 그 후 10여 년이 흘러도 실현되지 않았다. 로봇으로 수익을 남긴 사례는 공장자동화 등 옛날 로봇에 한정됐다. 다만 시도는 계속해 봐야 한다. 연구실을 나와 실생활에 로봇을 적용하면 배우는 것이 많다. 용감하게 시도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도 있다.” 


향후 계획을 소개해 달라.


“새로운 액추에이터를 개발 중이다. 액추에이터는 움직이게 하는 구동장치다. ‘Bear’라고 이름 붙였는데 탄성이 있어 이 장치를 사용하게 되면 새롭고 안전한 동작을 할 수 있다. 로봇팔이 사람을 잘못 치면 즉사할 수 있어 로봇과 함께 일하는 작업이 위험한데, 새로 개발한 인공근육은 힘은 더 센데 안전하다. 

 

개발한 액추에이터를 기반으로 학생들과 창업을 준비 중이다. 연내에 창업할 계획이다. 1년 전부터 준비를 해 왔다. 창업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과거에도 토크(TORC)란 회사를 창업한 적이 있다. 무인자동차를 개발하는 회사인데 지금도 번창하고 있다. 창업은 학생들과 협업하기 위한 것으로, 새로 창업하는 회사에는 최고기술책임자(CTO)나 어드바이저로 합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