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미국이 북한에 변심한 세 가지 이유

일취월장7 2018. 8. 28. 10:24

트럼프, 김정은의 약점을 잡았다?

[정욱식 칼럼] 미국이 변심한 세 가지 이유 (상)
2018.08.27 17:54:30

'거대한 럭비공'으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존재감(?)을 과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 8월 말 방북 계획을 발표한 지 하루 만인 24일(현지 시각) 트럼프가 이를 번복하겠다고 트위터를 날린 것이다.

그는 취소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 측면에서 충분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무역에 관한 훨씬 더 강경한 입장 때문에 중국이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가까운 미래에 북한에 가기를 고대하고 있다. 아마도 중국과의 무역 관계가 해결된 뒤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고 싶다. 곧 그를 만나기를 고대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트럼프의 갑작스럽고도 변덕스러운 결정과 관련해 폼페이오의 '빈손 방북'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가시적인 진전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을 경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폼페이오가 빈손으로 가면 빈손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즉 비핵화의 진전 여부는 북미 공동성명의 합의 내용 가운데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및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미국이 어떤 성의를 보일 것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제재는 비핵화할 때까지 유지하겠다고 하고 종전선언도 꺼리고 있다. 사실상 미국이 '선(先) 비핵화' 요구로 회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북미 정상회담 전후와 비교할 때 분명 달라진 것이다. 먼저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이전에 대북 제재와 관련해 "비핵화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최근 폼페이오 등 고위급 관료들은 대북 제재는 북미 공동성명과 별개라며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혹은 완료될 때까지"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비핵화 합의와 완료는 엄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 및 해제의 기준을 높인 것이라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종전과 관련해서도 트럼프는 "축복"이라고도 했었고, "7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한국전쟁을 끝내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7월 이후부터는 종전선언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시기상조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의 진정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급한 용무는 봤으니 

그렇다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반도 비핵화가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 인식'이 있을 수도 있고, 흥행 요소가 많이 떨어졌다는 트럼프의 '흥미 반감'이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세 가지 차원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미중관계 요인은 다음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먼저 미국의 대북 인식의 측면을 살펴보자.

하나는 미국이 '급한 불'은 껐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급한 불은 북한의 핵탄두 장착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보유를 의미한다. 지난해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ICBM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고,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었던 트럼프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트위터를 날렸다.

하지만 김정은은 핵탄두 ICBM 과시를 향해 폭주를 거듭했고 지난해 11월 29일에는 사거리 1만km가 넘는 '화성-15형'을 발사하기도 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기관들은 북한의 ICBM 보유가 "수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 지난해 11월 29일 화성-15형 발사를 감행한 김정은(오른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화성-15형 발사와 관련한 보고서에 친필로 서명했다. ⓒ노동신문


그런데 올해 8월 들어 미국의 평가는 달라졌다. 폴 셀바 합참차장은 8월 10일에 "북한은 I(CBM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필요한 마지막 두 가지 기술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게 우리의 평가"라고 말했다. "북한이 신뢰할 만한 재진입체를 시연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폭발시키고 싶을 때 실제로 폭발하는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는 신뢰할 만한 장전, 격발, 신관 시스템에 대한 시연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의 ICBM의 성능이 그리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며 북한이 실제로 발사해도 "우리는 그 미사일을 격추하지 않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의 북한 위협에 대한 판단이 수개월 사이에 뒤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은 "북한의 미사일 실험 중단이 ICBM 완성을 막은 것으로 보인다"는 셀바의 진단에서 찾을 수 있다.  

ICBM 개발 초기 단계에 있었던 북한은 그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수차례에 걸쳐 추가적인 시험발사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북한은 올해 들어 "새로운 전략 노선"을 채택키로 하면서 ICBM 시험발사를 중단키로 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더불어 서해위성발사장에 있던 미사일 엔진시험장도 해체했다. 북한의 이러한 선택에는 새로운 북미관계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급한 용무는 봤다고 여긴 탓인지, 북한을 대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가 북미정상회담 이전으로 되돌아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측 태도 변화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라면 앞으로의 상황은 대단히 복잡해지고 또한 어려워질 수 있다.

또 하나는 트럼프가 김정은의 약점을 잡았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약점이란 트럼프가 김정은이 경제발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를 압박 수단으로 동원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자취를 감추었던 "최대의 압박" 발언이 최근 부쩍 늘어나고 미국이 대북 제재의 고삐를 또다시 당기고 있는 것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미국이 "최대의 압박" 모드로 되돌아간 데에는 '이제야말로 대북 제재가 통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은 4월 20일 노동당 결정서를 통해 경제발전에 올인하겠다고 다짐했다. 트럼프와 폼페이오도 김정은과의 만남을 통해 북한 정권이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얼마나 큰 열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또한 북한의 시장화가 크게 진전된 반면에 작년의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5%로 뒷걸음쳤다(한국은행의 추정치)는 보도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볼 때, 미국이 북한에 '핵을 포기할래, 경제난을 감수할래'라는 식의 양자택일을 강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얼핏 보면 무리가 아닐 수 있다. 실제로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선 북한의 경제발전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경제발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김정은도 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김정은, 트럼프에 대한 신뢰 접을까? 

향후 한반도 정세의 관건 가운데 하나는 폼페이오 방북 취소를 비롯한 미국식 일방주의에 대한 북한의 반응이다. 얼마 전까지 북한은 미국에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트럼프를 향해선 '당신만은 믿는다'는 식의 메시지를 줄곧 보냈었다. 그런데 폼페이오 방북을 취소한 당사자가 바로 트럼프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덕담(?)을 보내면서도 정책적으로는 북한을 더더욱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언행불일치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려되는 것은 북한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접고 또 다시 북한식의 최대의 압박으로 회귀할 가능성이다. 북한은 미국이 북미 정상회담과 공동성명에 동의한 배경에는 북한이 미국도 무시하지 못하는 "전략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핵탄두 장착 ICBM은 그 유력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북한이 핵탄두 ICBM의 능력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취하자 미국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북한은 미국이 진정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이루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또다시 품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미 전략을 둘러싸고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고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미국이 대화를 중단하고 대북 적대시 정책으로 되돌아갔다'며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발사 유예 선언을 번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러한 퇴행적인 선택은 미국의 '최대의 압박'에 힘을 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한의 합의 사항을 착실히 이행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의지를 더더욱 다져나가야 한다.


트럼프 트윗이 보여준,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들

[기고] 한반도 정세 안갯속? 한국 역할 중요해져
2018.08.27 14:48:53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 글에서는 남북 각자의 주권과 독립성을 인정하는 배경 하에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사용해왔지만 대한민국의 북쪽 영토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북한'이라는 명칭을 '조선'으로 대체하고 남한은 '한국'으로 표기했다.) 제3차 방문이 방문 하루 전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전격 취소되었다.

이를 두고 미국 행정부에서 조선과 직접 협상을 하였거나 조선에 관한 일을 다루었던 전직 관료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한 것은 폼페이오 장관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의 협상에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빈손'으로 귀국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진단했다.  

필자도 이들의 진단은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비핵화'라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비핵화'는 조선의 핵무기를 완벽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폐기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CVID)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과 미국은 '비핵화'(Denuclearization)라는 용어를 사용 할 때 항상 'Denuclearization'과 함께 'of Korean Peninsula'도 같이 적시했다. 즉 비핵화란 조선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Denuclearization of Korean Peninsula)를 뜻한다.  

한반도 비핵화란 일방적인 조선의 비핵화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미국 측에서도 한반도에서의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을 단지 쉬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에서 완패한 패자에게만 요구 될 수 있는 CVID는 조선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다.

CVID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을 약속하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협상과 거래의 대가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방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강요하기 위해 싱가포르까지 가서 세기적인 만남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선과 미국이 전시상황(아직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상황)임을 고려할 때, 비핵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쪽에서 어떤 조치를 취한다면 상대방에서 거기에 호응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대가를 지불해야 해야 하며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보다 높은 단계 협상거래로 넘어가는 것이 상례(常例)이다. 모두 4항으로 이루어진 김정은-트럼프 싱가포르 합의문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 전문 보기)

당시 합의문은 실행 순서대로 기재된 것이 아니라, 중요도의 순서대로 기재됐다. "평화와 번영을 향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새로운 미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 1항은 조선과 미국 간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국교정상화를 하기로 조선과 미국 정상 간에 약속한 것이며 이것이 조선과 미국 정상 간의 합의된 조·미관계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다.  

▲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싱가포르 센토사섬에 위치한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사진은 정상회담 시작 전 악수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것"이라고 명시한 2항은 정전을 종전으로 바꾸고 평화조약을 조선과 미국 그리고 이해당사자인 한국과 이해 공유자인 중국 간에 맺는 것을 의미한다.

3항에서는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 (이하 판문점 선언)에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들어 있는가? (☞ 전문 보기)

흔히들 북한의 비핵화 또는 북핵 CVID의 절차(process)로 인식되어 있는 싱가포르 합의문 3항은 통상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민족공조에 의한 자주적인 통일, 상대방 (한국과 조선)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금지,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를 위해 남북 공동의 노력을 경주(傾注)하자"는 것으로써 여기에 대한 조선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 재차 강구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에도 조선의 일방적인 비핵화 또는 CVID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조선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신원이 확인된 미군 유해를 송환하는 등 위의 싱가포르 합의문에 명시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사항들에 대해서도 최근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을 9월 중 초청한 것에서 보는 것과 같이 조선 측에서 실천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전혀 논의된 적도 없고 따라서 합의문에 조차 없는 CVID 또는 FFVD (Final, Fully Verifiable Denuclearization)를 요구하고 있다. 혹자는 CVID와 FFVD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나 어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의미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조선과 합의하지도 않은 CVID를 여전히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독특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및 거래의 방식(style)과 트럼프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미국 관료집단의 관성,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갖고 있는 힘의 한계성이 뒤섞여 일정한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기 때문에 이점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조미 싱가포르 회담은 매우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리틀 로켓맨(little rocket man)"과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면 핵 전쟁을 운운했던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마주앉아 평화와 번영을 향해 새로운 조미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를 한반도에 구축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것을 전 세계에 천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조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 필자는 지난 5월 28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북한을 둘러싼 미국-중국의 줄다리기 시작됐다'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중국이 조선의 생명 줄을 쥐고 있다고 주장하고 조언하는 소위 '북한전문가'들을 따라 중국에게 조선에 대한 제재압박을 요구하였던 트럼프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조선은 우리의 말도 잘 듣지 않을 뿐더러 조·중 관계가 주종의 관계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북핵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  

미국 그리고 미국의 최고 지도자인 트럼프 입장에서 가장 경계하고 견제해야 할 국가가 중국인데 중국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나라가 조선이며, 조선이 궁극적으로 핵을 개발하는 이유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면, 조선의 관계정상화 요구를 들어주고 조선을 친미국가로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 훨씬 더 미국의 이익이라는 것은 인생의 대부분을 사업을 하면서 적을 아군으로 만들고 경쟁자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굴복시키는 트럼프로서 아마도 당연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이 문제를 푸는데 가장 고질적인 병이며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들의 '북한 문제'에 대한 무지(無知)를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트럼프가 조선(North Korea)과 김정은에 대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알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North Korea와 South Korea를 구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이후인 지난 6월 14일 발표된 허프포스트/유고브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미 정상회담에 대해 설문에 응답한 미국인 중 61%가 찬성을, 21%가 반대를 표했다. 같은 날 발표된 먼마우스 대학교 조사에서는 미국인 71%가 회담에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실천에 옮기는데 큰 문제가 없어야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트럼프가 트럼프기업(The Trump Organization)의 회장으로서 즉, 기업의 총수로서 김정은과 합의한 사항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기업의 총수가 아니라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의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다.

미국은 삼권분립(Division of Power)이 명확할 뿐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도 각 부처의 자율성이 존중되는 나라이다. 싱가포르 조미 합의문 제1항에서 "평화와 번영을 향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새로운 미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했다"라고 천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 재무성은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이 북한에 취해진 유엔 제재를 위반했다며 이들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취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단독으로 두 차례 만나서 그가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며 트럼프의 복심이라고까지 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조차 국무성이 일관적이며 전통적으로 고집하고 있는 조선 핵에 대한 'CVID' 또는 'FFVD' 요구를 꺾지 못하고, 도리어 국무성을 대변하여 조선에 CVID를 강요했다.  

조선은 여기에 대해 <메아리>라는 매체를 통해 "공화국이 누차 강조해왔듯이 미국의 강도적인 선비핵화와 대조선 제재는 악랄한 반공화국 압살책동의 일환으로서 우리에게 절대로 통할 수 없다"며 "상대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고 정세변화도 잘 감수할 줄 모르고 헤덤비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책 작성자들이 대조선 제재의 득실관계를 아직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매체는 "세계 앞에서 싱가포르 조미 공동성명의 정신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미 행정부의 신뢰도가 나날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으며, 주변국들도 미국의 강압적이고 일방주의적인 제재조치가 현 조선반도 정세흐름에 도움이 되지 않아 그 후과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역사적인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자신의 의중을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를 다음과 같이 알리고 설명하였다.  

"나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하여 우리가 충분한 진척을 만들지 못하였다고 느꼈기 때문에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북한을 방문하지 말라고 요청하였다. 또한, 중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우리의 입장이 매우 강경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중국)은 (과거의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국과 무역 갈등이 해결된 후에 빠른 시일 안에 조선에 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때까지 나는 김 위원장에게 훈훈한 안부와 존경을 보내고 싶다. 나는 그를 곧 만날 것을 고대한다!"

트럼프가 폼페이오의 방북 하루 전에 이를 취소시킨 것을 두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안개속에 빠졌다는'는 등 부정적인 견해가 분분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번 트웟은 매우 우회적으로 자신의 전략이 실패했음을 알리고 두 번째로 좋은 것 (second best)을 기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는 위의 트윗에서 "나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하여 우리가 충분한 진척을 만들지 못하였다고 느꼈기 때문에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북한을 방문하지 말라고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위의 트윗에서 분명히 '우리'라는 표현을 하였는데 여기서 '우리'는 '미국'을 지칭하는 것이다. 즉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에서 한 합의를 이행하는 데에서 미국이 "충분한 진척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예전처럼 한반도의 비핵화 과정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폼페이오가 중국과의 무역 갈등이 해결되면 다시 조선을 방문 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미·중 무역 갈등은 갈등을 넘어 전면전(all-out war)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19년 중반께나 이 문제가 협상을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들의 예측이 맞다면 폼페이오의 방북은 적어도 앞으로 일 년 후에나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싱가포르 조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을 미국 측에서 긴 시간동안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싱가포르 합의문을 미국 측에서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다시 조선과 미국은 무력충돌 또는 핵전쟁으로 가는 것일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선은 핵 실험장을 폐기하였지만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과 그것을 운반할 장거리 미사일 능력 또한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과 여전히 전쟁 중인 미국에게는 매우 큰 위협이며 이러한 위협이 해소되거나 제거되지 않는 한 미국은 조선을 선제공격하는 등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어서 안타깝지만, 중국이 조선과 협력적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묵인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을 용인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조선에서 이른바 '구구절'이라고 하는 오는 9월 9일 조선로동당 창건일 축하행사에 초청받아 조선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의 조선 방문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올해 들어 불과 3개월 만에 세 번의 만남을 가졌으며 조·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인 6월 19일 회담에서 시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국제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조·중 관계를 발전시키고 공고히 하려는 중국의 확고한 입장과 조선 인민에 대한 우호,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지지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6월 19일(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워장 ⓒ노동신문


시 주석의 위 발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대목이다. 즉 조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여기에 대한 중국의 지지가 확고할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경제적인 지지를 뜻한다.

결국 미국의 강요에 못 이겨서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에 동참하였으나, 이제는 그것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조선에 대한 경제지원, 협력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중국의 국가 대 전망 (National Grand Vision)이라고 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일대일로의 동쪽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을 반드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이 조선로동당 창건일인 구구절에 조선을 방문하는 것은 시-김 3차 회담에서 시 주석이 국제관계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사회주의 조선에 대한 지지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한 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것을 잘 알고 있고 이러한 조·중관계의 밀착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우회적으로 미중 간에 무역 분쟁이 해결된 이후에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조선을 방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결국 과거 서방세계에서 미국이 가장 마지막으로 베트남과 국교정상화를 한 것과 같이 (아쉽지만) 조선과도 (중국보다는) 한 발자국 늦게 협력적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트윗의 요지인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미국전반의 처지는 이렇지만, 즉 아직까지도 미국은 반(反)조선적이지만 자신은 김 위원장과 약속은 지키고 싶다는 의지를 자신의 트윗 마지막에 표현했다. (In the meantime I would like to send my warmest regards and respect to Chairman Kim. I look forward to seeing him soon!).

중국 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칠 수 없는 조선으로서 매우 심중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의 국제관계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결코 조선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은 과거 중·소 갈등 (The Sino-Soviet Conflict)에서 그렇게 하였듯이 미·중 (US-China)이라는 두 거대 세력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중·소 갈등시대와 다른 점은 조선의 갖고 있는 축의 무게가 중소갈등 시대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여, 조선은 수세적이거나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공세적이고 능동적인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반도의 정세가 다시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등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미국이 아무리 조선을 경제적으로 압박한다고 하여도 중국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중국은 조선 무역 총액의 약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중국도 조선 경제에 큰 레버리지를 갖고 있지 않다. 조선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선 국가(또는 국민)총수입 (National Income)의 20%가 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의 경제제재가 유명무실화되고 조중간의 경제협력이 이루어진다면, 조·미간의 정전이 종전으로 매듭지어 지고 평화조약이 채결되지 않았어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는 실질적(de facto) 평화가 정착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한국이다. 한국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시점을 조절하겠다는 매우 비주체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 뿐만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판문점 선언에서 한국에서 주동적으로 실현한 것은 아직까지 전무하다.  

판문점 선언 제1항에는 분명히 "남과 북은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갈 것이다."라고 명시하고 여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하였으나, 한국은 문제인 대통령의 방북의 일정까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에나 미국의 말을 듣고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 정의하는 '자주통일'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명박근혜' 적폐 정권을 촛불의 함성과 대오로 물리치고 집권한 문재인 정권에게 묻고 싶다. 매우 취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취해진 5.24조치는 왜 철폐되지 않는가? 국정농단의 주역이라는 한 여인의 한 마디에 의해 폐쇄됐다는 개성공단은 왜 재개되지 않는가?

최근 미국과 터키의 관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터키의 모습은 한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미국은 테러 단체로 지정하고 있는 터키 내 소수민족 쿠르드 조직을 지원한 혐의로 가택 연금돼 있는 미국인 브런슨 목사의 석방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나 터키는 이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브런슨 목사의 재판을 오는 10월에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대해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터키, 특히 에르도안 대통령이 브런슨 목사를 매우 불공정하게, 매우 나쁘게 다루고 있다. 우리 행정부는 결코 이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터키가 미국산 자동차·쌀·주류 등에 최대 140%의 보복관세를 부과한 결정에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미국은 8월 10일 터키산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기습적으로 2배 인상했다. 이에 따라 터키 리라화 가치는 하루 만에 18%, 연초 대비 45% 폭락하였으며 터키는 국가부도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외환위기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동맹을 바꿀 수 있다"고 하면서 '굴복' 대신 '항전'으로 미국에 대항하고 있다.

여기서 터키가 동맹을 바꿀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을 두고 혹자는 러시아가 미국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하는데 터키산 철강·알루미늄을 사 줄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밖에 없다.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국이 가장 경계하고 견제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만약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경고와 같이 터키가 동맹을 미국에서 다른 나라(중국)으로 바꾼다면 미국으로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터키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지정학적(geopolitically)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터키가 실제로 미국에서 다른 나라로 동맹을 바꾼다면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지키기 어려워지며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에르도안은 이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초강대국인 미국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엄포를 놓으며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게 다시 묻고 싶다. 판문점 선언의 실천은 싱가포르 조·미 정상 회담의 합의문에도 명시되어 있다. 무엇 때문에 그 누구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고 있는가? 민족공조는 단지 허울 좋은 정치적 수사(修辭)였을 뿐인가? 무엇이 민족과 한국의 이익이 되는지 직시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 이제 한국이 나설 차례이다.

짜고치는 밀월은 없었다…‘진짜 살얼음판’ 걷는 북·미

폼페이오 방북 무산…美·中 무역갈등 속 갈팡질팡하는 韓

오종탁 기자 ㅣ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7(월) 16:57:07



"잡음이 밀월 속 위장(僞裝)이라 봤는데…" 


북한 비핵화 문제가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 계획이 전격적으로 취소되면서다. 그간 수차례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번은 특히 나쁜 상황이다. 한반도 문제를 풀 시간이 촉박함에도 북·미 간 갈등이 투박하게 표면화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24일(현지시간) 미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계획을 발표 하루 만에 취소시키고 "폼페이오 장관은 아마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해결된 이후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배경으로 북한 비핵화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고 중국이 무역갈등 탓에 예전만큼 미국을 돕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24일(현지시간) 미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 계획을 발표 하루 만에 취소시키고 "폼페이오 장관은 아마 중국과의 무역관계가 해결된 이후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 배경으로 북한 비핵화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고 중국이 무역갈등 탓에 예전만큼 미국을 돕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연합뉴스



폼페이오 방북 무산…미·중 무역갈등 결정적인 변수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월24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을 코앞에 두고 취소했다. 게다가 방북 계획을 발표한 지 단 하루 만이다. 북한 비핵화가 지지부진하고, 미·중 무역 갈등 속 중국도 북한의 변화를 독려하지 않고 있어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판단했다.

 

지난 6월12일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 이후 북·미는 언제 웃으며 손을 맞잡았느냐는 듯 으르렁댔다. 일각에서는 이를 짜인 각본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에 따르면, 각본 연출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고, 배경은 미국의 정치 일정이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 2020년 대선을 앞뒀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북한 비핵화 이슈를 최대한 오래, 전략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읽고 '재선될 때까지 북한을 좀 이용하라'고 언질을 준 뒤 '밀월 속 위장 교착 상태'가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주장은 북·미가 교감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리스크가 빈발하면서 힘을 잃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미·중 관계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 방북을 취소하면서 "중국과의 훨씬 더 강경한 교역 입장 때문에 그들(중국)이 예전만큼 (북한)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라며 중국을 정면 비판했다. 그러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아마 중국과의 무역 관계가 해결된 이후 가까운 장래에 북한에 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비핵화가 더딘 가운데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비판 여론에도 별달리 반박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8월26일(현지시간) 논평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이 북·미 정상회담 뒤 두 달이 지나도록 마치 상황이 긍정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P는 폼페이오 장관이 싱가포르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탁월한' 전략이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하고 있다면서 미국 국민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 방북을 취소한 것은 지금까지의 과정이 잘못됐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금껏 협상에 성실히 임한 적이 없는데도 미국은 군사훈련을 양보하고 김 위원장에게 아첨한 대가로 얻은 것이 전무하다고 WP는 비판했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 입장에서 '적반하장'이라고 할 만큼 대미(對美) 비판론을 키우고 있다. 북한은 폼페이오 방북 취소에 대해선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다만 8월26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지면을 이용해 미국의 선(先) 비핵화 요구를 '부당하고 강도적'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8월27일에도 미국과 중국의 최근 마찰 상황을 조명하며 "외신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중국 위협'론은 과장된 것으로서 그를 통해 이득을 보려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논거를 여러가지로 들고 있다"고 전했다.

 

 

靑 "문대통령 중재자 역할 커졌다"지만, 교착 해소 난망 

 

난국 속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온 우리 정부는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와 관련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경제정책 패러다임 변화만큼이나 한반도 문제 패러다임 변화가 지난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엔 이르다"면서 "북·미 두 정상 모두 대화 동력을 살려 나가려는 의지가 여전히 높다고 생각해 기대감을 여전히 갖고 있고, 남북 정상회담도 그런 북·미 대화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무산으로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더 커진 게 아닌가 싶다"며 "북·미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막힌 곳을 뚫어주고 북·미 간 이해 폭을 넓히는데 촉진자·중재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졌다는 게 객관적인 상황으로, 그런 측면에서 문 대통령이 더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북·미를 넘어 북·중·미 간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 우리 의지대로 중재자 역할을 해나가기는 쉽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중국 책임론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김의겸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인데, 거기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이렇다 저렇다 평을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당장 남북 관계도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달 중으로 예상됐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은 다음 달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김 대변인은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계속해서 추진하느냐'는 질문엔 "그렇다"며 "그런 구도에서 남북정상회담 일정과 안건도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 역시 각각 '신속한 비핵화'(남측)와 '신속한 경제협력'(북측)이라는 양측의 선결과제가 상충하는 탓에 원활한 성사와 의제 확정을 장담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미국 언론이 한반도 비핵화에 찬물 끼얹는 보도를?

최근 <워싱턴포스트>, NBC 방송 등에서 비핵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보도를 내보냈다. 이런 보도와 관련해 미국 연방정부 산하의 17개 정보기관의 특성과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8월 27일 월요일 제571호

“백악관만 벗어나면 비핵화 회의론이 태반이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외교 전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네이셔스가 8월2일자 칼럼에서 제기한 지적이다. 북·미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극소수 최고위 인사를 제외하면 워싱턴 외교가에서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액면 그대로 믿는 관리나 핵과학자, 동북아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

북한이 올해 들어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서해 미사일 발사장 해체 등 일련의 비핵화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왔지만 회의론자들은 좀처럼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8월3~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폼페이오 장관이 “궁극적인 비핵화 시간표는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결정할 몫이다. 앞으로 몇 주일 혹은 몇 달간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것이다”라고 확언했으나 회의론을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FP PHOTO
8월4일 ARF 외교장관 회의장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대화하고 있다.

설상가상 미국 유력 매체들이 정보 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잇달아 인용 보도하면서 비관론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때로는 정보기관들이 같은 정보에 대해서도 달리 해석하고, 이런 상황이 언론으로 새어나가면서 미국 내의 불신과 혼란을 더욱 부추긴다. 정보 관리들이 어떤 정보를 언론에 흘리느냐에 따라 비핵화 분위기가 춤춘다.

지난 7월30일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평양 외곽 산음동의 한 공장에서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비밀리에 제조하고 있다는 보도로 비핵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정보 당국이 최근 몇 주일간 촬영한 위성사진 등 증거를 확보하면서 북한이 액체연료형 ICBM을 최소 1기 이상 제조 중이라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영상의 출처를 국가지리정보국(NGIA)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도 직후 로이터 통신은 익명의 고위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관련 사진과 적외선 영상을 보면 문제의 시설에 차량들이 들락날락하는 건 맞지만 미사일 제조가 얼마나 진행됐느냐 여부는 보여주지 않는다”라며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평가절하했다. 특히 이 관리는 “사진을 보면 북한이 운반 트럭을 덮개로 가리고 있다. 무엇을 운반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는 여러 정황을 근거로 한 추정일 뿐 확정적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다. 핵 비확산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박사도 “영상만으론 북한이 실제로 ICBM을 제조 중인지 확인할 수 없다. 사진에서 식별되는 붉은색 트레일러는 ICBM인 화성 15형 부품을 운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다른 화물을 나르는 중이었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앞서 NBC 방송은 지난 6월 말 ‘복수의 정보 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최근 몇 달 동안 여러 비밀 장소에서 핵무기 연료를 증산했다고 전했다. NBC는 다만 “중앙정보국(CIA) 분석가들은 북한이 핵연료를 증산한 것으로 분석하지 않는다”라고 전해 관심을 끌었다. 정보의 진원지가 적어도 CIA는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 NBC 보도와 관련해서 “CIA는 논평 자체를 거부했고, 국무부는 확인을 거부했다”라고 전했다. CIA는 내부 부서인 코리아미션센터(KMC:북한 정보 수집과 분석 총괄)의 앤드루 김 센터장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수행했으며, 북한 측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한다고 알려진 만큼 대북 정보 누설에 각별히 신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보 누설 진원지로 자주 등장하는 DIA


반면 미국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국방정보국(DIA)은 요즘 북한 정보 누설의 진원지로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최근 CNN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소한 현재로선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다”라는 DIA 평가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함으로써 충격을 주었다. CNN은 “DIA 분석 내용에 대한 다른 정보기관들의 동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 문서가 회람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다른 정보기관들도 DIA 분석에 동의할 경우 해당 문서는 이른바 ‘정보 완성품’으로 격상돼 대통령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외교 안보 최고위 실무자들에게 공유된다.

ⓒREUTERS
7월30일 <워싱턴포스트>가 ICBM을 비밀리에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한 북한의 산음동 위성사진.

현재 미국 연방정부 산하에는 모두 17개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대북 정보 수집과 분석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는 기관은 CIA와 DIA 외에도 감청 전문인 국가안보국(NSA), 국가지리정보국(NGIA), 국가정찰국(NRO), 정보조사국(INR) 등이 있다. 국무부 산하인 INR을 빼면 DIA, NSA, NGIA, NRO 등이 모두 국방부 산하다. 연방정부에 속하지 않은 독립 정보기관으로는 CIA가 유일한데, 산하의 코리아미션센터는 북한 정보의 총집합소로 유명하다(<시사IN> 제553호 ‘트럼프를 움직인 CIA 대북 라인 실세들’ 기사 참조). 그밖에 국토안보부 산하에 정보분석실(I&A), 재무부 산하에 테러 및 금융정보국(TFI), 법무부 산하에 국가안보정보국(ONSI), 에너지부 밑에는 주로 핵과학자 집단인 정보방첩국(OICI) 등이 있지만, 대북 정보에 관한 한 CIA 혹은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외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북 정보 수집 및 분석에서 DIA 등 국방부 산하 정보기관들이 CIA보다 보수적인 경향이 짙다. 이를테면 DIA는 북한이 최대 60개까지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하는 데 비해 CIA 등 다른 정보기관은 12~20개로 파악한다. 과거 CIA, INR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마크 로언솔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군 정보기관과 민간 정보기관 간에는 전형적인 문화적 차이가 존재한다. DIA는 군사 정보 분야에 치중하다 보니 다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CIA 북한 분석관 출신인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CIA는 나름대로 많은 증거를 모아 판단하려 시도한다는 점에서 변호사처럼 꼼꼼한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DIA가 기관의 성향으로 인해 과거 한동안 북한의 핵능력을 과대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5년 당시 DIA 국장이던 로널드 버지스 중장은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탄두 미사일 장착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다른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그런 능력을 갖추려면 몇 년 더 걸릴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능력을 가졌다고 DIA에서 확정한 시기는 버지스 전 국장의 증언보다 12년이나 늦은 지난해 7월이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증대된 만큼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가 업데이트될 수밖에 없고 기관별로 평가가 다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확정적이지 않은 정보가 공개될 경우 실제 이상으로 사실을 부풀릴 수 있으므로 오히려 혼란만 부를 가능성이 크다. 시사지 <애틀랜틱>은 최근 북한의 신형 ICBM 개발설과 관련한 여러 기관의 다른 평가를 두고 “같은 정보에 대해서도 누가 평가하느냐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너선 폴록 선임 연구원은 “정보 당국의 기밀 누설로 불안감과 정치적 압력, 심지어 예기치 않은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