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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남북 실화 첩보전 《공작》이 갖는 차별화

일취월장7 2018. 9. 14. 15:33

90년대 남북 실화 첩보전 《공작》이 갖는 차별화

다른 분단 소재 영화들과 다른 이유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금) 17:00:00 | 1504호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은 ‘북으로 간 스파이’ 이야기다. 1997년 12월 열린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설계한 ‘북풍 공작’ 실화가 중심에 놓인다. 영화는 존 르 카레의 작품인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 고전 스파이 소설의 무드를 입고, 1990년대 요동치던 남북 정세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현란한 액션이 아닌 서로의 신뢰를 얻기 위한 자들의 말과 감정이 거래되는 첩보 스릴러. 기존 남북 분단 상황을 중심에 둔 여타 한국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결의 영화가 탄생했다.

 

영화 《공작》​

영화 《공작》​

 

《공작》이 갖는 힘과 차별성

 

스파이는 냉전시대의 부산물이다. 이념이 충돌하는 장막의 시대. 서로의 장막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필사적인 국가적 노력은 수많은 스파이들을 낳는다. MI6, CIA, KGB, 모사드 등등의 조직이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문학과 영화는 그들이 겪었던 고뇌와 갈등에 착안해 스파이물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에서는 이를 어떻게 소화했을까. 스파이물의 공식을 한반도의 상황에 대입하면 여지없이 분단이라는 국가적 갈등이 중심에 놓인다. 남과 북의 이념 차이가 냉전시대의 그것만큼이나 견고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코미디, 액션 등 다양한 장르에서 소화되어 왔던 이유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를 시작으로 한국영화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바뀌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시작이자, 남북 이념의 대립을 안타까운 멜로에 녹여낸 작품이었다. 김광석의 노래 가사에 감동하고, 함께 초코과자를 나눠먹을 수 있는 ‘인간적 북한군’의 묘사로 북한에 대한 편견을 걷어낸 《공동경비구역 JSA》(2000) 역시 색다른 시도였다. 

 

이는 특정 임무나 사건을 통해 처음 만나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이념을 넘어 우정을 나누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의형제》(2010), 《공조》(2017), 《강철비》(2017) 같은 영화들이 등장할 수 있는 단초가 된 셈이다.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요원들의 이야기를 액션으로 풀어내는 시도 역시 많았다. 《베를린》(2012), 《용의자》(2013) 등은 할리우드 첩보 액션의 대명사로 불리는 《본》 시리즈(2002~)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이 함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오늘날, 현실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웬만한 픽션은 현실을 넘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지난해 핵전쟁의 위험을 현실적으로 강조한 《강철비》의 상상력은 흥미로운 것이었지만, 비핵화와 종전선언이 오가는 오늘날의 한반도에서 관객의 경각심을 촉구하는 이 같은 영화적 논의는 조금 무력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공작》의 선택은 영리했다. 기존 영화들과 달리 《공작》이 갖는 힘과 차별성은 이것이 실화라는 점이다. 과거의 일을 들여다보고 재평가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현재 한반도 분위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든 의미 있는 작업이다.

 

《공작》의 배경은 1990년대다.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싸고 한반도를 감싼 위기와 긴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다. 정보사 소령 출신 박석영(황정민)은 북핵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대북사업가로 위장, 북측 수뇌부들과 접촉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에게 주어진 암호명은 ‘흑금성’. 이 존재를 아는 자는 오직 석영의 상사이자 안기부 해외사업팀 최학성(조진웅) 그리고 대통령뿐이다. 

 

박석영은 베이징 주재 북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다. 리명운은 북한에 필요한 돈을 구하려 하고, 두 사람은 북한을 배경으로 한 CF 촬영 허가를 얻는 데 합의한다. 당연히 박석영의 진짜 목적은 CF 촬영 답사 목적으로 북한에 잠입해 핵 개발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과장 정무택(주지훈)은 리명운과 달리 박석영을 향한 의심을 쉬이 거두지 않는다. 그러던 박석영은 대선을 앞두고 남과 북의 수뇌부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거래의 기운을 감지하고 갈등한다. 

 

위부터 《쉬리》 《베를린》 《강철비》 © cj 엔터테인먼트·삼성픽쳐스·NEW

위부터 《쉬리》 《베를린》 《강철비》 © cj 엔터테인먼트·삼성픽쳐스·NEW

 

액션이 아닌 말과 눈빛의 스릴러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이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즉 여기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분단의 상황을 이용하는가. 혹은 이용해 왔는가. 《공작》은 격동의 90년대 안에서 그 증거들을 찾아내 조심스레 제시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조망하려는 이 영화의 열망은 분명해 보인다. 적 아니면 우정의 관계로 남북을 조명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한반도에 비극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분단을 안고 와야 했는지, 그 안에서 희생된 것은 무엇인지 역사 안에서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공작》은 ‘말(言)과 눈빛의 스릴러’다. 첩보영화에 으레 기대하게 되는 주인공들의 액션 장면은 등장하지 않으며, 흔한 총성 한 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는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치열하게 탐색하던 이들이 결국 서로의 신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중요하게 묘사한다. 박석영과 리명운은 적이 아니라 다른 신념을 지닌 인간이며, 서로의 조국을 위해 노력한 자들일 뿐이다. 이들의 여정은 서로의 이념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에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과정이다. 

 

이는 최근 영화들이 ‘브로맨스’로 남북의 인물들을 엮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다. 2004년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실제로 한 기업 광고 CF를 찍었던 일화 뒤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감독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공작》은 그렇게 처음으로 정권이 바뀌었던 90년대라는 한국의 격동기, 분단 상황에서 개인의 신념이라는 문제를 들여다본다. 

 

《공작》의 흥행 호조 분위기를 타고 이후 하반기 개봉을 기다리는 분단 소재 영화 두 편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는 시기다. 강형철 감독의 《스윙 키즈》는 관객의 사랑을 받은 뮤지컬 《로기수》가 원작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 포로들이 붙잡혀 있었던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우연한 기회에 탭댄스에 빠져든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념 아래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이 강조되는 작품일 것으로 보인다. 김병우 감독의 《PMC》는 판문점 30m 아래 지하 벙커 회담장에서 글로벌 민간군사기업(PMC) 블랙 리저드가 펼치는 군사작전을 그린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블랙 리저드의 리더 에이햅(하정우)과 북한 군의관 윤지의(이선균)가 조우한다. ​ 


[인터뷰] 《공작》 원작자 김당, 기사로 다 풀지 못한 ‘흑금성’ 이야기

“남북 대치 상황을 이용하려는 세력은 언제나 있다…90년대 냉전 상황 재연돼서는 안 돼”

조해수 기자 ㅣ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8.09.14(금) 11:44:03 | 1509호


영화 《공작》이 9월 13일 현재 약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 《공작》은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정원)가 자행한 이른바 ‘북풍(北風) 공작’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1990년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사찰을 거부하고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른바 ‘제1차 북핵 위기’가 도래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암호명 ‘흑금성’으로 통하는 박채서씨다. 박씨는 국군 정보사령부 소령 출신으로, 안기부에 스카우트되면서 대북(對北) 공작원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른바 안기부의 블랙요원이 된 것이다.


박씨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수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무역업자로 위장해 북한에 침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위해 박씨는 북한의 금강산·백두산·개성 등을 배경으로 한 TV광고를 찍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물론 대북 공작의 일환이었다. 박씨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실제로 대면하기도 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사업은 김대중 정권으로 첫 정권교체가 이뤄진 후인 1998년 3월 ‘이대성 파일’를 통해 좌초하게 됐다. 안기부 전 해외실장 이씨가 작성한 대북 공작원 리스트가 공개됐고, 이 리스트에 박씨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모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안기부가 김대중 당시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해 달라”며 북측에 거액의 돈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안기부는 북한과 관련해 이른바 ‘햇볕정책’을 주장했던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북한과 짜고 국민들에게 ‘전쟁 공포심’을 조장했다.


박씨는 이와 관련해 “1997년 대선 당시 안기부가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북한에 1억 달러를 주겠다며 휴전선과 서해 5도 일대 전시상황 도발을 요청했다”면서 “전면전에 준하는 긴장감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공식적인 이야기였고 제시한 액수가 1억 달러였다. 영화에서는 이 금액을 국민들이 받는 충격을 고려해 400만 달러로 축소시켰다”고 밝혔다. 


이처럼 1990년대 한반도는 여전히 냉전의 한가운데 있었다.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 핵무기 카드를 꺼내들었고, 남한은 대북 공작으로 응수했다. 또한 안기부는 자신들의 조직 보호 논리를 앞세워 대북 강경책과 거리가 멀었던 대선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 북한 역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여기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와중에 수많은 개인들이 대의라는 이름 아래 희생됐다. 현재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이뤄졌던 수많은 적폐가 청산되고 있지만 1990년대 당시 시대 상황은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기부와 대북정책과 관련해 집요할 정도로 취재를 진행해 온 기자가 있다. 영화 《공작》의 소재가 된 흑금성 사건도 이 기자의 펜에서 시작됐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시사저널에서 근무하며 ‘안기부 북풍공작 추적보도’ ‘최초 공개 안기부 조직표’ 등의 기사를 보도한 김당 기자(현 UPI뉴스 정치부 선임기자)가 그 주인공이다. 김 기자는 1998년 주간지 기자로는 처음으로 한국기자협회의 ‘한국 기자상(30회)’을 수상했다. 김 기자는 이후에도 2003년 ‘현대그룹, 5억 달러 불법 대북 송금’ 기사를 단독 보도했고,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현 민주평화당 의원)의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탐사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낸 소설 《남한산성》의 저자 김훈 작가는 “김당 기자와 함께 일한 세월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의 기사는 거듭되는 박해와 간섭을 불러왔고, 때로는 짓밟히고 몰수됐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의 힘에 의해 그 난관을 돌파했다”면서 “김당은 사실의 아들(the son of facts)”이라고 극찬했다. 시사저널은 김당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흑금성을 둘러싼 당시 시대상과, 기사로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북한 측이 김당 기자에게 보낸 초청서 ⓒ 김당 제공

북한 측이 김당 기자에게 보낸 초청서 ⓒ 김당 제공

 

흑금성(박씨)을 어떻게 만나게 됐나.

“시사저널은 1996년 ‘김영삼 정부가 월드컵 남북한 공동개최를 추진하기 위해 현대그룹이 제공한 100만 달러로 구입한 밀가루 5000톤을 극비리에 북한에 제공했다’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를 놓고 당시 김광일 대통령 비서실장이 소송을 걸었고, 기사가 보도 직전 삭제된 바 있다. 그때 내가 이 문제를 야당 쪽에 ‘청와대가 사전 검열을 한 게 아니냐’며 문제제기를 했고, 야당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해 정부에 공식 항의를 했다. 말 그대로 시사저널과 청와대 간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흑금성이 시사저널에 제보를 하면서 관계를 맺게 됐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삐삐(호출기)를 사용했는데, 흑금성이 전화번호 마지막에 ‘88’을 붙이라고 했다. 그 때부터 ‘뭔가가 있다’는 감이 왔다. 흑금성의 제보를 바탕으로 3개월 만에 밀가루 북송 기사는 복원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 흑금성과 2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영화 《공작》을 보면 흑금성 황석영(황정민 분)이 북한 측과 만날 때 녹음테이프를 들키지 않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런데 이 일이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던데. 

“흑금성을 처음 만났을 때 동료 기자가 녹음테이프를 통해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있었다. 1990년대 당시에는 지금처럼 핸드폰이나 초소형 녹음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테이프 녹음기밖에 없었는데, 녹음이 다 되면 녹음 버튼이 솟아오른다. 흑금성과 대화 도중에 녹음이 끝나면서 ‘툭’ 하는 소리를 냈다. 몰래 녹음했다는 것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스파이 앞에서 어설픈 스파이 놀음을 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흑금성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대통령을 포함한 직속상관 3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묘사돼 있다. 실제는 어떤가. 

“공작원을 관리하는 중간관리책이 있다. 공작원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상대편에 포섭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관리책은 이에 대한 관리·감독까지 책임진다. 관리책이 공작의 또 다른 핵심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재 도중 관리책과 공작원이 접선을 위해 실제 사용하는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다.” 


일부 언론을 통해 ‘흑금성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흑금성은 나에게 ‘김정일 위원장을 한 번 만났다’고 밝힌 바 있다. TV광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흑금성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흑금성이 주도했던 CF사업은 ‘이대성 파일’이 공개되면서 좌초됐다고 알려졌는데.

“이대성 파일이 공개되면서 흑금성의 존재가 북한 측에도 알려졌다. 당연히 사업을 추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북한 CF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었고, 계약 단계까지 진행됐다. 그런데 황장엽 당시 노동당 비서가 계약 당일에 남한으로 귀순했다. 황장엽의 귀순이 하루만 늦었어도 계약이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흑금성 외의 안기부 다른 라인을 통해 황장엽의 귀순이 이뤄졌고, 흑금성의 CF사업은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CF사업에는 당초 삼성이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2005년 가수 이효리가 북한 무용수 조명애와 실제로 CF를 찍은 바 있다. 

“영화에서 북한의 경제전문가로 나오는 리철(리명운)은 실존 인물이다. 리철은 흑금성의 존재가 공개된 후에도 숙청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이후에도 흑금성과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했고, 이효리 CF도 주도했다. 리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정책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조명애와 관련해서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이후에 흑금성은 남북 간 중매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었는데, 조명애 역시 남한 남성과 결혼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중간에 안기부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안기부가 방해공작을 펼쳤고 결국 파경을 맞았다. 중국에서 이효리와 CF를 찍을 당시, 조명애는 이미 심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계속 울기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90년대 냉전기와 현재를 평가한다면.

“현재 남북한 관계는 연내에 ‘종전선언’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있을 정도로 해빙 무드다. 1990년대 혼란했던 시대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에는 남북 대치 상황을 이용하려던 세력들이 존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의(大義)’라는 명목으로 개인들이 희생을 강요받기도 했다. 이런 세력들은 현재도 존재한다. 1990년대와 같은 상황이 재연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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