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프랑스에선 성적표가 그래프로 정교하게 나온다"

일취월장7 2018. 8. 1. 11:03

"프랑스에선 성적표가 그래프로 정교하게 나온다"

[한국과 프랑스의 공공성 上] 박흥수가 묻고 목수정이 답하다
2018.07.30 17:05:17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민주당 자체에 대한 지지도로 보기는 어렵다. 정치 권력에 대한 교체 욕구가 '촛불 정부' 시대를 만나 투영된 곳이 하필 민주당이었을 뿐인 것으로 해석된다. 즉, 민심은 정치권에 한국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표로 경고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의 1등 숭배주의, 효율성과 성과 우선의 분위기 속에 공동체 가치의 훼손을 겪어왔다. 안정된 삶을 누리는 일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되었고 이는 여러 형태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으로 오르는 사다리는 이미 걷어 차인 지 오래다.  

학력과 일자리마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이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사회, 평범한 삶조차 목숨 걸고 도전해서 얻어야 하는 사회라면 미래가 없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답은 '공공성'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공화국' 정신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공유되고 실현될 때, 공동체의 희망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민심은 새 지방권력의 집행자로 나선 이들이 제대로 된 개혁을 실천하길 바라고 있다. 재벌과 권력자와 정치가들, 그리고 학력을 배경삼은 이른바 엘리트들의 사적 이해관계를 해체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개혁이란 공화국 시민의 삶이 가장 먼저 고려되는 정책, 즉 사회 공공성을 구석구석 착근하는 일이리라.  

<프레시안>은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한국의 철도정책과 교육정책을 '공화국 정신'이 깊이 뿌리 내린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보자는 취지로 대담을 준비했다. 

철도 정책 연구를 통해 공공성을 이야기해온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과 프랑스에 살면서 '진보'의 가치와 관련해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목수정 작가가 무더위 속에도 프레시안에서 마주 앉았다. 이 대담을 2회에 걸쳐 싣는다. 첫 회는 주로 한국과 프랑스의 교육 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 박흥수 연구위원(왼쪽)과 목수정 작가(오른쪽).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교육에서 바뀌어야 하는 두 가지" 

박흥수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언제 한국에 오셨습니까? 

목수정 : 네. 오랜만이네요. 지난 7월 12일에 도착했으니 한국에 온 지는 열흘 좀 넘었습니다. 8월 14일에 돌아갑니다.(이하 존칭 생략) 

박흥수 : 프랑스 철도, 특히 파리시를 둘러싼 광역철도 정책과 관련해서 현지에서 피부로 느끼는, 시민의 관점에서 느끼는 것을 듣고 싶어서 만나 뵙자고 했는데,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생각정원 펴냄)라는 책도 새로 나왔다. 책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프랑스 교육과 관련된 책인 듯하다. 한국은 알다시피 교육 문제는 늘 중요한 화두다. 막내가 고3이다. '고3 갑질'을 견디느라 요즘 힘이 든다.(웃음). 프랑스란 창을 통해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이나 교육제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인가.  

목수정 : 한국 교육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오롯이 프랑스 교육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박흥수 : 프랑스 교육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도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닌가.   

목수정 : 당연히 속마음은 그런 면도 있지만, 적나라하게 비교하지는 않았다. 사실 내 아이는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다.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풀어냈다. 프랑스 산부인과에서 산모를 대하는 방식, 이후 산모가 누릴 수 있는 사회적 혜택부터 시작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점들을 담았다. 지금은 아이가 중학생인데, 탁아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을 순차적으로 풀어냈다. 단순히 학교 내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의 이야기도 담아냈다, 사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지 않나.  

박흥수 : 중학교까지의 이야기만을 담았나.  

목수정 : 아니다. 출판사에서 고등학교까지 해달라고 했다. 그래야 완성이 된다고.(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부분은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썼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 포맷을 선택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각각 교사 한 명과 학생 두 명을 인터뷰했는데, 고등학교 때는 학생 한 명과 교사 한 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사실 어떤 나라의 교육제도를 한마디 말로 정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사는 동네에 따라, 학교가 사립이냐 공립이냐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런 다양한 상황을 담으려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대체로 어떤 방식의 삶을 사는지 에피소드 중심으로 다루고, 관련해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딱딱한 책은 아니다. 엄마의 시각으로 아이를 따라가며 아이와 나눈 대화도 담겼다. 그러면서 아이의 시각과 나의 시각이 섞이는 구조가 됐다.   

박흥수 : 우리 아이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할 정도로 끔찍하게 공부를 한다. 물론 좋아서 하는 게 아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대학 입학 후로 유예된 삶을 살고 있다. 시험성적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지켜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실 나는 초등학생 때만 해도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만큼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사라졌다. 한국의 많은 아이들이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입사하는 게 성공인 것처럼 생각하는 게 안쓰럽다. 

목수정 :어제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마지막 질문이 '한국 교육과 프랑스 교육의 괴리가 있는데, 이 책을 쓰고 나서 가장 심적으로 바꿨으면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사실 '경쟁'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 있어서 한국 교육이 바뀌었으면 한다. 

▲ 박흥수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서열이 없으니 경쟁이 없다" 

박흥수 : 하나하나 이야기해보자.  

목수정 : '경쟁'을 없애는 건 간단하다. 모든 초·중·고에서 시험을 보지만, 아이들에게 시험 등수를 알려주지 않으면 된다. 등수를 몰라도 누가 제일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아이들은 눈칫밥으로 안다. 하지만 두루뭉술한 아이들이 있지 않나. 그런 애들은 몇등 하는 지 모른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00친구는 공부 잘하냐'고 물어보니 '몰라' 이러더라. 그래서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고 물으니 되레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되묻더라. 관심을 굳이 가지지 않으면, 그리고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그 아이가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서열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는 교육과 관련해 아주 쉬운 방법을 쓴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교육까지 다 받지 않았나. 그 모든 교육을 받은 결과, 나 스스로 판단 내린 게 있다. 한국 교육에서 나를 괴롭힌 건 '경쟁’이었다. 선생은 내 옆에 아이가 나보다 공부를 잘하면 '넌 그 아이가 너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을 증오해야 해, 넌 걔를 잡아먹어야 해. 뛰어넘고 싶지 않니? 2등인데, 1등으로 복귀해야 하지 않니'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것이 매우 싫었다. 그러한 경쟁 트랙이 계속됐다. 당시 나는 온몸이 아팠다.  

박흥수 : 성적이 좋은 아이들도 상처가 많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전교 등수를 따져 학교 내 도서관 입실권을 줬다. 지금은 앞자리나 급식실 가는 순서를 성적순으로 서열화 한다는 곳도 있다고 하더라. 예나 지금이나 줄 세우는 것을 일상화하는 게 한국 교육이다. 그러다보니 온 사회에서 순위를 매긴다. 회사에서도 1등부터 꼴등까지 승진 순위가 있고, 심지어 술자리 건배사로도 순위를 가린다. 

목수정 : 프랑스에선 그런 것을 못 한다. 엘리트 교육을 지양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리 아이는 클라리넷을 배운다. 프랑스에서는 한 구당 음악특성반이 하나씩 지정돼 있다. 그래서 그 구에 있는 여러 학교 중 그 특성반에 들어가고 싶은 학생이 지원한다. 칼리와 아빠가 솔깃했다. 가면 좋을 거 같다고. 그런데 음악특성반의 지원조건이 특이하다. 첫째가 '기존에 음악을 하고 있지 않을 것'. 둘째가 '음악적 동기가 왕성히 있을 것'이었다. 

박흥수 : 음악 하는 학생을 뽑는데, 전혀 음악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조건이 독특하다. 한국 같으면 시험 봐서 음악을 잘하는 애들을 뽑지 않나.   

목수정 : 특성반 프로그램은 엘리트 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다. 음악 천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악이 학교 교육에서 주는 하나의 즐거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음악을 통해서 아이들이 좀 더 학교가 즐거워지도록 하기 위해 진행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이 있다. 아이가 클라리넷을 배우러 간 첫날, 악기를 줬다. 학교 교장은 특성반을 졸업할 때까지 악기를 학교에서 제공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공화국 학교에서는 교육을 유상으로 하지 않게 돼 있다'고 하더라.  

박흥수 :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프랑스에서 사용하니 어감이 다른 듯하다. 한국과 프랑스는 모두 공화국이지만 한국에 내재화 되지 못한 공화국 개념은 낯설게만 느껴진다.

목수정 : 프랑스 사람들은 공화국이란 말을 자주 쓴다.  

박흥수 :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학교'와 '군대'다. 그런데 경쟁이 없는 조건이라면 학교는 다시 다니고 싶다.  

목수정 : 누구도 자기보다 잘하는 친구가 있다고 조바심 내지 않는다. 친구를 칭찬하는데 아무 주저가 없다. 어떤 친구가 잘한다고 '너는 뒤처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누가 잘하는 게 상관없는 식이다.  

박흥수 : 그곳에서의 성적표는 어떻게 나오는가.  

목수정 : 중학교에서는 성적표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교히 나온다. 하지만 이는 누구와 자기를 비교하는 그래프가 아니다. 모두 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주는 수치다. 과목별로 그래프가 있는데, 과목별 반 평균이 있고, 내 점수가 있다. 이 그래프를 통해 아이들은 어떤 과목이 반 평균 이하인지, 이상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과목을 제일 잘하고 못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스스로 자신이 '이 과목은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여기에 자질이 있는 건가. 내가 무엇이 부족한가'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해준다. '내가 지난번엔 스페인어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잘했네' 이런 식이다. 그렇게 그래프를 정교하게 만들어도 내가 몇 등이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순수하게 어제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게 하고, 우정을 깨지 않도록 한다. 심지어 음악이든 미술이든, 경연대회가 하나도 없다. 10년을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데 대회 상장이 하나도 없다. 존재하지 않는다. 학기 말에 하는 축제와 파티가 전부다.  

박흥수 : 아이는 무엇이 하고 싶다고 하나.   

목수정 : 우리 아이는 알아서 한다고 그런 거 물어보지 말라고 한다.(웃음) 그런데 하고 싶은 직업까지는 아니지만 직업 이외의 사회 참여 활동으로 하고 싶은 것은 있는 듯하다. 동물을 구조하는 일을 꼭 하고 싶다고 한다.   

▲ 목수정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한국의 아이들에겐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박흥수 : '경쟁'에 이어 '시간'을 한국 교육에서 바꿨으면 한다고 했다. 프랑스 교육에서의 '시간'은 어떤가.  

목수정 : 한마디로 '시간'이 무척 많다. 그리고 그 시간에 아이들을 내버려 둔다. 여름방학 기간이 두 달하고도 열흘이다. 그리고 그 여름방학 이외에도 1년에 방학이 두 주씩 네 번 있다. 9주 공부하면 2주는 무조건 쉬는 식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수요일에는 수업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바뀌어서 중학교까지는 수요일은 오전만 수업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래서 아이는 클라리넷을 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는 학원이 없지만 가정교사는 존재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평균 10%가 그런 가정교사를 경험했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그렇게 가정교사에게 배우는 시간이 1년에 평균 40시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깐 여름방학 두 달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니. 나머지 10개월 동안 1주일에 1시간씩 가정교사에게 배우는 식인 것이다.  

박흥수 : 경쟁이 없는 것도 좋은데, 시간까지 상당히 많이 주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조건이면 더욱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딸은 여름방학에도 전교생이 의무등교를 하고 있다. 학교에서 문제풀이를 하는 식이다. 이 무더위에. 

목수정 : 물론, 시간이 많으니 아이들이 딴 짓을 한다. 그런데 그 딴 짓이 항상 나쁜 게 아니다. 가치공동의 테마로 시를 쓰기도 하고, 아이들이 각자 악기를 다룰 줄 아니 조그마한 악단을 만든다든가 그런 식으로 논다. 어디로 소풍을 가는 경우도 누구는 돗자리, 누구는 컵, 누구는 요리 프로그램을 짜는 식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무궁무진하게 딴짓을 한다. 바람직한 딴짓이다. 아이들이 '타이트'하게 짜인 시간 속에서 자투리 시간 30분이 남으면 무엇을 하겠나. 할 게 게임밖에 없다. 그런데 시간이 무한대로 남으면 그 시간 내에서 유용한 것도 하는 분위기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 시간이 있다 해도 부모는 그 자유 시간을 또 짜주려고 한다. 

박흥수 : 많은 아이들이 아주 작은 자투리시간 남으면 극도의 집중력으로 게임을 한다. 아이들의 자유 시간을 부모가 더 불안해한다. 조금만 노는 기미만 보여도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압박한다.  

목수정 : 밀가루 반죽을 만들려면 치대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치댄 밀가루를 어느 순간에는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발효돼서 맛이 제대로 퍼지게 하기 위해서다. 그 시간은 스스로가 가진 재료들의 맛이 서로 어울려서 제맛을 만들어 내는 시간이다. 그 마술의 시간이 아이들에게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들 각자가 가진 천부적 재능이 발효될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아이들의 천재성을 죽인다. 매우 기계적인 학습이 진행된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의 기를 질리게 만들고, 제대로 사고하지 못하게 만든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축구도 그렇다. 그런데 이 나라가 이번 월드컵에서 1위를 하지 않았나. (기사 계속)


파리 서민 지하철요금 2억유로를 기업이 내는 이유는?

[한국과 프랑스의 공공성 下] 박흥수가 묻고 목수정이 답하다
2018.07.31 20:44:33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선거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민주당 자체에 대한 지지도로 보기는 어렵다. 정치 권력에 대한 교체 욕구가 '촛불 정부' 시대를 만나 투영된 곳이 하필 민주당이었을 뿐인 것으로 해석된다. 즉, 민심은 정치권에 한국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표로 경고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의 1등 숭배주의, 효율성과 성과 우선의 분위기 속에 공동체 가치의 훼손을 겪어왔다. 안정된 삶을 누리는 일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되었고 이는 여러 형태로 분화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으로 오르는 사다리는 이미 걷어차인 지 오래다.  

학력과 일자리마저 부의 대물림을 통해 이어지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사회, 평범한 삶조차 목숨 걸고 도전해서 얻어야 하는 사회라면 미래가 없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답은 '공공성'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공화국' 정신이 한국 사회에 제대로 공유되고 실현될 때, 공동체의 희망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민심은 새 지방 권력의 집행자로 나선 이들이 제대로 된 개혁을 실천하길 바라고 있다. 재벌과 권력자와 정치가들, 그리고 학력을 배경 삼은 이른바 엘리트들의 사적 이해관계를 해체해야 한다. 국민들이 바라는 개혁이란 공화국 시민의 삶이 가장 먼저 고려되는 정책, 즉 사회 공공성을 구석구석 착근하는 일이리라.  

<프레시안>은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 한국의 철도정책과 교육정책을 '공화국 정신'이 깊이 뿌리 내린 프랑스 사회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보자는 취지로 대담을 준비했다. 

철도 정책 연구를 통해 공공성을 이야기해온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과 프랑스에 살면서 '진보'의 가치와 관련해 끊임없이 한국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목수정 작가가 무더위 속에도 프레시안에서 마주 앉았다. 이 대담을 2회에 걸쳐 싣는다. '교육'에 이어 두 번째에는 서울과 프랑스의 교통을 다룬다.  



▲ 박흥수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파리는 거리에 상관없이 통일된 요금을 낸다" 

박흥수 : 프랑스 사회의 교통은 어떠한가.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고민해볼 지점이 많아 보인다. 사실 정권이 바뀐 이후, 철도공사에서는 CEO부터 '철도공공성'을 이야기한다. 홈페이지에서도 우리의 과제는 철도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고 공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목수정 : 공공성을 이야기한 게 정권 바뀐 이후부터인가.

박흥수 : 그렇다. 철도공공성은 과거 노조나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의 전유물로 여겨질 정도로 터부시됐다. 효율과 수익성이 우선이었다. 아무리 철도공사가 공기업이라고 해도 적자는 악이고 경영개선을 통해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공공성을 주장하는 노조를 두고 기득권을 누리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철도공사 사장부터 공공성 강화야말로 비로소 철도가 제 위상을 되찾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렇게 공공성이 언급되는 한편으로는,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젠다는 변화했지만, '실제적인 공공성 강화를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느냐' 하는 부분에는 회의가 있다.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하철공사든 철도공사든 그 기업의 주 업무에서 공공성을 구현해야 한다. 중소기업과 MOU를 맺고, 소년소녀 가장을 지원하고 사회적 봉사 활동을 활성화하는 게 공공성 강화의 전부는 아닌 듯하다.  

철도 공공성을 구체적으로 구현한다면 우선 수익 지상주의로 출범한 수서고속철도를 통합해야 한다. 지방선 적자 보조를 확대해 지역 열차 운행을 늘린다든지, 철도 이용 약자들이 좀 더 편리하게 철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요금 혜택에 가도록 한다든지, 공기업이 수행하는 주 업무 속에서 공적 역할을 다하는 게 진정한 공공성으로 나아가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대담에서는 파리시와 서울시를 비교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광역 교통정책을 이야기하려 한다. 지난 지방선거 때 자유한국당의 정태옥 의원이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을 언급했다. 그 말의 취지를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면 결국, 교육과 교통, 환경 인프라가 서울·수도권 중심적이라는 이야기다. 서울의 엄청난 집값, 임대료, 전월세 폭등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외곽으로 밀어냈다. 그런데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이 서울로 출퇴근하면서 서울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교통요금을 내야 하는 구조다. 

목수정 : 프랑스도 똑같았다. 일드프랑스(Ile-de-France)라는 지역이 파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아무래도 일자리는 파리 쪽에 집중돼 있다. 그렇다 보니 일드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이 파리로 출퇴근하는 식이다. 거기도 거리가 멀수록 요금을 더 내는 식이었다. 그것이 늘 불만스러운 현실이었다.  

박흥수 : 한국의 경우, 영등포에서 시청으로 출퇴근하면 한 달 5만5000원(하루 왕복, 한 달 20일 기준)밖에 안 든다. 그런데 인천에서 시청으로 출퇴근하면 8만5000원을, 인천공항에서 시청으로 출퇴근하면 18만2600원을 내야 한다. 2012년 파리에서 목수정 작가를 만나 파리 지하철 요금정책 관련 인터뷰를 했었다. 그때 녹색당과 사회당이 파리 1존 구역에서 5존 구역까지 거리요금을 통합요금제로 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그 결과가 과연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던 게 이번 대담을 기획한 이유 중 하나였다. 

목수정 : 그 법안은 2015년부터 적용됐다. 

박흥수 : 그렇다면 프랑스는 멀리 가거나 가까이 가거나 통일된 요금을 내는 시스템으로 전환됐나? 

목수정 : 맞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진행된 게 아니라 프랑스 수도권 안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킨 게 아니라, 도의회에서 결정했기 때문이다. 도의회는 녹색당과 사회당이 다수이고 우파가 소수였다. 사실 파리 외곽에 사는 이들에게는 교통비가 항상 원망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돈이 없어 파리에서 밀려났는데, 일하러 가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가' 이런 분노였다. 이에 대해 녹색당은 한 발 더 나갔다. 외곽에서 일하러 오는 이들이 차를 가지고 오는 경향이 많았다, 교통 정액권이 너무 비싸기에 차라리 차로 출퇴근하는 게 돈이 덜 들었던 거다. 녹색당은 교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 환경 오염도 줄이고 온실가스나 교통혼잡비용 등 사회적 비용도 낮추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녹색당이 법안을 요구했고, 사회당이 받아들이면서 둘이 밀어붙였다. 소수인 우파가 이에 반대했지만 통과됐다.  

그래서 첫해는 70유로로 모든 구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정액권인 나비고 카드(Navigo pass)를 400만 명이 이용했다. 그리고 그중 150만 명은 70유로에서도 할인된 금액으로 나비고 카드를 이용했다. 할인된 금액으로 나비고 카드를 이용한 이들은 학생, 노인, 실업자, 저소득층 등 카테고리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 목수정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정액카드, 기업 부담으로 재정 충당한다" 

박흥수 : 나비고 카드 정액권은 횟수 제한이 있나? 

목수정 : 없다. 하루에 몇 번을 타도 제한이 없다. 그래서 이것을 갖는 순간, 더 많이 움직인다. 그 전에는 파리 안에서 무엇이든 해결하자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교외로도 나가 볼까?' 이런 생각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계선이 무너졌다. 그런데 이 카드가 지하철만 연계된 게 아니라 (서울의) '따릉이'와 같은 공공자전거, 파리 시내 공유 전기승용차, 수상버스 등에도 연계가 돼 있어 매우 유용하다.    

박흥수 : 파리는 지하철도 촘촘히 연결돼 있다, 블록 몇 개를 지나기 전에 새 지하철역이 나온다. 잘 짜인 공공교통체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 수상버스를 비롯해 외곽까지 나가는 광역철도도 있다. 또 여기에 전기차까지 공유 할 수 있으니 공공교통으로서는 매우 이상적이다.  

목수정 : 광역철도가 현재 5개인데, 광역급행철도망 GPX(Grand Paris Express)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파리와 파리 외곽이라는 공간에 교통 그물을 만드는 식이다. 광역철도가 지나가는데 이들끼리 못 만나는 것을 서로 이어준다. 광역급행철도망은 2000km의 철도를 더 놓고 85개 역사를 더 짓는 프로젝트다. 어디는 지하철을 연장하고, 어디는 역사를 새로 지으면서 그물망을 더 촘촘하게 하는 식이다. 한마디로 파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교통의 촘촘함을 외곽에 있는 이에게도 느끼게끔 하려는 것이다.  

박흥수 : 철도는 네트워크 시스템으로 촘촘히 엮이면 엮일수록 그 효율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요금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프랑스는 교통 이용자 중에서 학생, 노인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싸게 공급하는 듯하다.   

목수정 : 1년 치 나비고 카드를 한꺼번에 사면 한 달 치를 할인해준다. 그런데, 학생, 노인, 문화예술봉사자 등은 이렇게 살 경우, 50%를 할인받는다. 

박흥수 : 나 같아도 1년 치를 사서 한 달 치 할인받겠다.(웃음) 거기에 문화·예술인사들은 50% 할인이라니 대단하다. 더 놀라운 점은 그런 정액권 내지 할인권을 수백만 명이 사용하면, 그만큼 적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기업들이 부담했다는 점이다. 

목수정 : 나비고 카드로 매년 4억 유로의 비용이 더 추가됐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했느냐. 2억1000유로를 기업에 교통분담금으로 더 부과했다. 논리는 이거였다. '너희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이 교통비 부담 없이 일하러 올 수 있고, 늦지 않고 올 수 있지 않느냐.' 교통수단의 변화가 기업에도 혜택을 주니, 어느 정도 부담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그래서 도의회와 상공회의소가 합의했고, 재정을 충당하게 됐다.   

"서울, 시민 내는 운임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박흥수 : 프랑스 교통유발부담금제, 즉 나비고 카드 사용에 따른 교통분담금을 내는 기업을 살펴보니 10인 이상 고용사업장에서부터 적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부담률에 차등이 있었다. 신생 기업은 3년까지 면제였고 4년째부터 75% 할인된 분담금을 냈다, 5년째가 되면 50% 할인된 분담금을, 6년째에는 20% 할인된 분담금, 7년째부터는 기업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판단, 전액을 내도록 했다. 대신 그렇게 내는 회사에 다니는 노동자에게는 나비고 카드를 50% 할인해줬다. 이렇게 촘촘하게 설계된 것을 보고 놀랐다. 

나비고 카드가 지금 73유로이니, 한국 돈으로 9만5000원 정도 된다. 이를 한국에 적용해보자. 내가 한 달 9만5000원에서 50% 할인된 4만7500원 요금의 자유이용권으로 수도권 일대를 무제한으로 돌아다닐 수 있다면? 굉장히 획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로 국한해 본다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역시 여러 교통정책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거리에 따라 추가되는 요금제를 파리처럼 통합요금제로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지만 현실을 따져보면 매우 급진적으로 보인다. 결국, 그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둘러싸인다. 안 그래도 지하철공사는 매년 적자 논란에 휩싸인다.  

목수정 : 어느 정도 지자체의 부담이 필요하다. 프랑스도 2억1000유로는 기업에 돌렸지만, 나머지 1억9000유로는 지자체가 부담한다.  

박흥수 : 런던과 파리와 비교해 보면 서울은 운임수입 중심으로 지하철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일드프랑스교통조합(stif)의 2016년 기준 재정구조를 보면 총 90억 유로의 예산 중 교통부담금이 47%, 차표판매수익이 30.4%, 공공보조금이 19.8%, 광고수익 및 벌금이 2.8%다. 결국, 실제 시민이 내는 운임은 전체의 30%밖에 안 된다. 그러니 적자가 안 난다. 처음부터 비용 대비 수익 구조 설계를 하지 않아 적자 논란에 빠져들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사실상 시민이 내는 운임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니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 교통정책의 발목을 잡아 온 '수익자 부담원칙'이란 반공공성 원칙이 지배한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인데 수백만 명이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 인해 얻는 사회적 효용에 대한 반대급부가 없는 것이다. 대중교통의 특징, 특히 철도의 특징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서울 지하철 이용자의 10%만 승용차를 끌고 나와도 출퇴근길은 꽉 막혀버릴 것이다. 승용차 이용자들은 지하철 이용자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이러한 재정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파리나 런던처럼 갈 수 없을 듯하다. 교통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비고 카드를 이야기하면 당장 나오는 말이 '그렇게 하면 좋은데, 그 재정 부담을 어떻게 하느냐. 철도공사나 지하철공사 망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나온다.  

▲ 목수정 작가. ⓒ프레시안(최형락)


"교통, 한 사람 or 한 조직이 해결할 수 없다" 

목수정 : 전제조건에서 또 다른 게 한 가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의 미세먼지가 심각했을 때, 이틀 정도 대중교통을 무료로 하지 않았나. 그때 난리가 났다. 왜 헛돈을 쓰느냐고. 그리고 실질적으로 지하철 타는 사람들이 그다지 늘지도 않았다. 결국, 자가용을 이용하는 한국 사람들은, 요금을 깎아 준다고 해서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 중요한 것이 있다. 제가 한국에서 주로 지하철 1호선을 타는데, 아침 출근 시간은 정말 포화상태다. 누가 더 탈 여지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프랑스에서는 1호선이 1분 30초마다 온다. 사람이 있든 없든. 한 번도 사람에 끼어서 지하철을 이용한 적이 없다.  

박흥수 : 중요한 지적이다. 내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아침 출근시간에 4호선 환승을 하는데 정차 후 내리는 승객을 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그만큼 서울의 공공교통망은 용량이 초과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된 것이다. 운행 간격을 줄이려면 시설도 개량해야 하고 차량도 더 구매해야 한다. 지하철 9호선은 지옥철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민영운영회사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최근에서야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필요하다면 서울시 지하철의 고질적 승객 몰림 구간 해결을 위한 신규 노선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서울 지하철 방치 상태는 개선될지 의문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유독 도로 위주의 정책을 펴온 탓이기도 하다. 교통정책을 책임지는 국토부의 지독한 도로 사랑은 누굴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서울시나 여러 광역시에서도 대량 수송능력을 갖춘 공공교통체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있었는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공공교통에 대한 철학은 있는지 궁금하다.  

미세먼지 관련해서 파리와 서울의 차이를 봤더니 파리는 강제로 차량 2부제를 할 수 있지만, 서울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목수정 : 차량 2부제도 하고 지하철 이용을 무료로 하는 것도 자주 한다. 이는 파리만 하는 게 아니라 일드프랑스도 같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박흥수 : 서울시에서는 2부제를 의무로 할 수 없고 권고만 할 수 있다. 파리시장은 강제할 권한이 있고, 서울시장은 법적으로 그런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자가용에 매우 관대하다, 미세먼지가 심하니 차를 두고 출근하라고 말해도 자가용 이용하는 사람은 다 이용한다. 여기서 짚어볼 부분이 한국 사회에서 교통예산은 도로건설 하는데 제일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그렇게 도로를 건설하기에 자가용 이용자에게 주는 편익은 상당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여러 이익을 주는 대중교통 이용자가 얻는 편익은 상대적으로 적다. 생각해보라. 누구는 '만원 버스' '만원 지하철'에서 고생하면서 출근하는데, 누구는 편히 앉아서 간다. 불편은 한쪽이 지고, 사회적 혜택은 엉뚱한 이에게 몰아주는 식이다. 철도정책과 도로정책이 그런 식으로 유지돼 왔다.  

나비고 카드와 같은 제도가 도입되려면 우선적으로 정리해야 할 일들이 많다. 철도를 예로 들면 철도에는 철도공사 이외에도 지하철공사들과 철도민간사업자들이 있다. 이들 간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다. 버스도 마찬가지다. 준공용제이지만 민간버스사업자들이 있다. 이들 기관 간, 민간사업자 간 교통정리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총체적으로 공공성을 담보하는 교통체계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을 설계하려는 정부나 시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진즉에 논의되고 있는 대도시권 '광역교통청' 같은 조직이 책임과 권한을 갖는 공공교통정책의 진정한 컨트롤 타워가 되길 바란다. 

사실, 서울과 경기도에서 공공교통이 한발 나간 것은 MB 때의 버스준공영제와 버스지하철환승제다. 반 공익적 사업인 4대강, 철도민영화를 추진해 지탄을 받은 MB의 업적이 공영제와 환승제라는 공공적 정책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버스준공영제로 난폭운전 없어지고 정거장 무정차 통과가 사라졌다. 버스·지하철환승제로 실질 혜택을 시민들이 받았다. 그런데 그 단계에서 멈춰버렸다. 딱 거기까지였다. 한 단계 진화할 수 있는 정책이 없었다.  

프랑스에서 녹색당과 사회당이 지방의회에서 통합요금제를 도입했다고 하지 않았나.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 의회는 민주당이 모두 장악했다. 그들이 시민 친화적 교통 정책을 만드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나왔으면 한다. 

▲ 박흥수 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교통 복지'란 개념이 필요하다" 

목수정 : 파리만 이야기했지만, 프랑스 상당수 도시에서는 공공교통시스템을 무료로 운영하기도 한다. 작은 도시가 그렇게 하는데, 재정은 100% 기업 부담이다. 그런데 그렇게 교통을 무료로 하면 그 도시가 교통의 거점이 되면서 그곳 인구가 늘어난다. 그러면서 기업이 들어오고 도시가 활성화된다.  

박흥수 : 지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대중교통은 궁극적으로 무료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당장 대중교통을 무료로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울산이나 포항, 창원 같은 곳에서는 대기업이 책임지고 무료 공영버스 사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꿈같은 이야기인듯하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꾼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웃음)  

목수정 : 교통은 획기적인 복지다. 교육은 혜택받는 세대가 존재하지만, 교통은 모두가 혜택받는 분야 아닌가. 여기에서 변화가 있으면 삶의 질이 달라졌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교통이 복지 아이템으로 들어간 적이 거의 없다.  

박흥수 : '교통 복지'라는 개념은 생소하다. 새로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된다면, '보편적 이동권'이 헌법 조항에 들어갔으면 한다. 이동권이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서비스로 정착되고, 그런 의미에서 국토부 등 관련 부처들도 더 적극적으로 교통복지 개념을 실현하려 노력하고, 보다 획기적으로 서민들을 위한 교통정책과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오늘 많은 시간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다. 앞으로도 프랑스와 한국의 경계에서 우리가 미처 놓치고 있거나 고려해야 할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져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