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미투 생존 보고서
"그는 전공과목 교수였고 학생인 내가 그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았다. 좋은 인상과 태도가 성적으로 이어질 것이었고, 성적은 곧 취업의 문제, 내가 미래에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다. 하교 길이 겹쳐 몇 번의 동행을 하며 대화를 했던 것이 그에게는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던 것 같다. 그는 자주 어깨를 두드리거나 굳이 손을 잡거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등을 만졌다.
불편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 교수라는 상대를 적으로 돌려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학과에 돌게 될 소문이 두려웠고, 피해를 증명하라 강요할 다른 교수들이 무서웠다. 근거 없는 억측에, 각종 소문이 덧붙여진 젊은 여성으로 소비될 게 뻔했다.
이후 학교생활을 상상해보면 더욱 끔찍했는데, 적어도 3년 이상을 더 보내야 할 대학이란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내 경험을 축소했고 사소한 일로 규정했다. 다행히 교수는 다른 사건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지만 돌이켜보면 해임되기 전까지 그와 함께했던 모든 수업, 면담, 학과 소모임, 술자리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다. 스스로의 행동을 검열하며 최대한 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쉽게 말하지 못했던 진실은 강력했다. 2018년 한국의 미투 운동은 수많은 생존자들이 "성폭력의 경험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왜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것인가"라 발화하며 전 사회로 퍼져나갔다. 성폭력 생존자들은 오랜 시간 꾹꾹 눌려왔던 분노들을 터뜨렸다.
성폭력 폭로의 불길은 대학가로도 번져, 동덕여대, 서울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을 이끌어냈다. "나도 겪었다"를 넘어 "함께 하겠다"는 위드유의 외침은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가해자 교수 파면"이라는 공동요구를 만들어나갔다.
대학 구성원들의 요구에 학교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교수의 권력은 그만큼 대학 내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노골적인 '힘'의 작동 원리에 의해 학생들의 목소리는 묵살되었다. 대학은 해당 교수에게 정직 몇 개월, 권고 등의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구성원들의 분노를 잠재우려했다. 또 성폭력을 조사하고 징계하는 과정에서 정교수가 아닌 타 구성원들의 참여는 철저히 배재되면서, 대학 구성원이지만 대학 운영에는 절대로 참여할 수 없는 구성원들간의 기울어진 '권력지도'를 여실히 확인시켜줬다.
여전히 대학은 가해교수가 생존자를 명예훼손으로 역고소를 해도, 몇 개월 쉬고 다시 교권을 잡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공간이다.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더라도 알아서 피하지 못했음을 책망할 공동체이다.
단지 우리가 원했던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대학이, 사회가 자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부정하면서까지 명백한 폭력의 피해에 대해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알아서 잘 참고 살아가라는 무책임한 답을 내놓았던 공동체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였다.
미투 이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를 벼랑 끝에 내몰며 "침묵" 혹은 "폭로"의 양분된 선택지를 고르게 하지 않기 위해 대학은, 사회는, 세상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대학이 교육의 장이며, 그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정의의 실현이라고 배웠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배움이 오롯이 실현되는 대학과 사회일 뿐이다.
(2018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미투' 폭로가 대학 내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학 내에서 교수와 학생이라는 '기울어진 권력 관계'에 기반한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지만, 당사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용기를 낸 학생들의 '미투' 폭로가 쏟아지고 있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은 가해 사실에 대해 철저히 부인하고 있고 동료 교수들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학생들은 고발합니다. 프레시안은 대학 내 '미투' 사건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연속 기고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여자가 시인이 되려면 야해야 된다고?"
2018년 3월, 모교에서 교수가 된 남자 선배가 2008년 당시 신입생이던 여학생을 성폭행했다는 익명의 제보가 학과장에게 전달됐다. 2018년 4월 망설이던 너는 스승에게 연락해서 자신이 10년 전 사건의 피해 당사자임을 알렸다. 사건은 학내 양성평등상담소로 넘어갔다. 2018년 5월 말, 학과와 학교는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했다. 2018년 6월, 너는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이 일을 알렸다. 2018년 6월 25일, 우리는 학과와 학교가 세 달 여의 시간 동안 알아내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어쩌다보니 친구가 되었다. 너와 친구가 된 것은 정말로 어쩌다보니, 그랬다고 말을 해야겠지만 어쩌면 너의 머뭇거림 때문이었다. 너는 대체로 반 박자 가량 느리게 반응하는 애였다. 어떤 제안을 하고서 너를 보고 있으면 아, 저 애가 지금 내 말을 들었구나, 지금은 고민을 하는 중이구나, 알 수 있었다. 너는 남들이 네 생각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천천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작고 느렸지만 늘 분명했다.
또 어쩌다보니 내가 네게서 부끄러움을 배웠다는 사실을 네게만 털어놓지 못했다. 나름의 이유를 찾자면 그 일이 아주 오랫동안 부끄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시간 조정이 비교적 자유롭고 임금도 나쁘지 않으며 업무 강도와 내용이 그리 험악하지 않다는 점에서 퍽 괜찮은 일자리였다. 그곳에 딱 한 가지 나쁜 점이 있다면 현장 주임이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라는 거였다. 우리가 일을 할 때, 그 남자는 우리의 곁에 바짝 붙어 서서 도대체 근본을 알 수 없는 말들만 골라서 해댔다.
나는 쉬폰 원피스가 여름에 시원해서 입는 게 아니라 남자에게 색기를 흘려서 어떻게 좀 해 보려는 의사를 표현하는 복식이라는 사실을 주임에게 배웠다. 굳이 치마를 입은 직원을 찾아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꺼내게끔 하는 주임을 보고 너는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청바지를 입어도 안전한 것은 아니며 도리어 몸의 곡선이 드러나기 때문에 남자를 유혹하기 좋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품이 넉넉하고 활동성이 좋은 옷은 예의가 없는 것이지만 바람이 불면 봐 줄만 하게 예쁘다는 것도. 우리는 무슨 옷을 입어도 결과적으로는 남자를 꼬여내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 주임으로부터 배웠다.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생리가 누구에게는 재수가 옴 붙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말을 면전에서 들은 누군가는 조금 울었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네가 주임에게 근무일 변경을 부탁했다. 생리통 때문에요, 라고 말할 때 나는 근처에서 일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눈치도 없이, 따위의 생각을 했다. 내일은 쉴게요, 할 때 나는 네 어깨 너머로 주임의 얼굴을 봤다. 그는 네 정수리를 내려다보면서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안심했고 그에게 생리가 완전히 재수 없는 것만은 아닌가보다고 생각했다.
하루를 쉬고 돌아온 너는 내게,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임이 그래도 된대? 뱉어 놓고서 그게 굉장히 멍청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내친 김에 너를 말려보기로 했다. 그때의 그는 지금의 우리보다 한참은 더 옛날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그 옛날 사람을 도저히 혼자서는 버틸 재간이 없었으므로. 스무 살은 돈이 없어서 없고 있어도 없게 마련이어서. 참는 수밖에 방법이 없지 않으냐고. 너는 내 말을 다 듣고, 그러니까 네가 가진 속도대로 다 듣고서 대답했다. 그만둘 거야. 주임에게 주려고 편지를 썼어. 내게 총이 있다면 걔를 쏴 죽였겠지만.
너는 내게 편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걸 읽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주임이 그 편지를 내 얼굴에 집어던진 덕분이었다. 복사용지에 써서 두 번 접은 편지에는 주임의 평소 행실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걸 읽으면서 네가 나팔꽃 관찰 일지 같은 것을 잘 쓰는 초등학생이었으리라고 생각했다. 너는 마지막 한 문단을 특별히 할애해서 그간 주임이 네게 보여줬던 행태에 대한 짧은 소견을 밝혔다. 당시에는 남자의 특정한 행동들을 꼬집는 멸칭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너의 문학적 재능을 활용하는 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주임의 행각을 고발하고 조롱하는 편지글을 쓰고 보니와 클라이드처럼 도망쳤다고 지금 여기서 내가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뒤로도 나는 거기에 남았고 꽤 오래 남아 있었다. 다니는 내내 창피했는데도 그랬다. 그만 둔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부끄러웠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는 너를 탓했다. 네가 그럴 수 있었고 나는 그럴 수 없었던 이유를 헤아려보기도 했다. 나는 그때 형편이 어려웠어, 돈을 벌어야 했잖아, 그런 식으로 어쩌다 보니 네게서 부끄러움을 배웠다는 사실을 너에게만 털어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너에게서,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생각지 못하는 생이, 사람이 살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를 처음으로 알았다.
10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 가해자에게 묵은 죄의 값을 묻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네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상대가 우리의 모교에서 교수가 된 남자 선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너는 말했다. 그런 사람이 우리 후배를 가르치는 거야. 나는 너를 만류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유의 사건이 얼마나 많은 의혹과 추문을 남기는지를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네게 의도를 물을 거였다. 사람이 말을 하고 섹스를 해서 남는 증거라는 건 애초부터 없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네게 그걸 요구할 거였다. 그럼에도 너는 하기로 했고 그래서 나도 말리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래도 된대? 따위의 멍청한 질문은 다행히도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네게 갚아야 할 빚이 내게도 있음을 잊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네 곁에서 이번 일을 겪으며 자연스레 많은 제보를 접했다.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었다. 개중에는 신분을 밝히고 인사를 건네 온 사람도 있고 익명으로밖엔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뜻밖의 사람과 알게 되기도 했다. 주변의 많은 이들로부터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학내에서 마주치면 괜히 주위를 얼쩡거리다가 말을 붙여 보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가끔씩 굉장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서 그런 날은 슬쩍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저 일이 잘 풀리지 않았거니 했던 게 다른 이유가 있었다니, 아연했다. 그에 비한다면 가해자의 가해 사실은 별달리 새로울 게 없었다. 흥행에 실패한 신파의 온갖 구성물이 그의 정신세계를 이루는 주재료가 아닌가 짐작하고만 있다. 드물게도, 창의성을 찾아보기 힘든 분이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었다. 고학번인 가해자는 모교 대학원생의 신분이다. 학교에 오래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학내의 사람들은 그를 조교라고도 부르고 선배라고도 부른다. 형이라고도 하고 오빠라고도 한다. 그를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곧 모교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리게 될 일을 짐작한다. 가해자는 학내의 후배들을 살핀다. 개중에 문학에, 특히 시에 재능이 있고 열정을 보이는 자들을 고른다. 시에 대해 얘기한다. 공부를 핑계로 자취방에 후배들을 불러 모은다. 그런 자리에 술이 빠지는 법은 없다. 모두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그가 말하기 시작한다.
여자가 시인이 되려면 술을 마실 줄 알아야 된다고 말한다. 여자가 시인이 되려면 야해야 된다고 말한다. 여자가 시인이 되려면 색기가 있어야 하고 똘기가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여자가 시인이 되려면 경험이 많아야 된다고 말한다. 여자가 시인이 되려면 섹스를 좋아해야 된다고 내숭 같은 건 부리지 말아야 된다고 몸을 파는 자들의 인생을 이해해야 된다고 말한다. 삶이 주는 고통 앞에서 몸을 사리는 법이 없어야 된다고 말한다. 그게 재능이라고 말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자신이 아는 여자 시인의 사생활을 근거로 든다. 그 시인이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야하고 경험이 많고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창녀라서 그렇다고 말한다.
가해자는 때때로 여자 후배 하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평가하고 추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점찍어둔 후배의 반응을 본다. 덜 취한 것 같으면 더 먹인다. 밤이 깊어 모두는 술기운을 못 이기고 잠이 든다. 가해자는 후배의 몸을 만지거나 옷을 벗기거나 키스를 한다. 바지를 벗는다. 그러다 잠에서 깬 후배가 저항을 하면 자는 척을 한다. 없는 일이 된다. 술에 취해서 그런 것으로 치기로 한다. 상대가 해명을 요구하면 그는 그녀를 뮤즈라고 말한다. 좋아해서 그랬다고 한다.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고 시인이라면 이런 것도 사랑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자가 시인이 되려면 파괴적인 관계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니, 자신이 기꺼이 그 사랑의 시혜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차라리 이번 일로 새롭게 배우게 된 점을 말하고 싶다. 여태껏 일을 하는 피해자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스무 살의 너와 내가 그랬듯 우리보다 어른이거나 우리보다 어린, 어쨌거나 많은, 여자들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미래를 도모하는 중인데도 그랬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영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해 사례들을 지켜보았는데도 그랬다. 성적인 희롱과 폭력이 특별히 때와 장소를 가려 일어나는 범죄가 아닌데도 그랬다.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마주하며 밥벌이를 해왔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깜빡 잊고 있었다. 밥줄 때문에, 자신이 책임져야할 다른 무엇이나 누구 때문에 많은 순간 함구했을 그녀들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것도 뭐 어쩌다 보니 그랬겠지만 감히 짐작컨대 밥벌이의 무거움이란, 특히 성범죄와 관련하여 밥벌이의 무거움이란 그간 남자-가해자들에게만 허락된 변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피해자가 외부로부터 격리되었거나 박제된 무언가라도 되는 듯이, 그녀들에게서 피해 사실만을 검출해낼 수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을 알고 있다. 별로 과학자적 면모를 지닌 것도 아니고 그게 그다지 효과적인 것 같지도 않은데 자꾸만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말은 이미 공중에 흩어졌으나 여기에 몸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도 증거를 가져오라고 말한다. 시인으로서도 교육자로서도 그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데 심증만으로 그의 밥그릇을 빼앗기는 어렵겠다고 한다. 지켜보고 있자면 진저리가 나서, 차라리 인간의 실존엔 아무 가치도 없다고 우기고 싶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선각자 행세를 하고 있는 가해자를 보자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네가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놈의 밥벌이가 누구에게 더 무거웠겠는지. 무겁겠는지.
가해자는 오랫동안 침묵했고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침묵은 결단코 너의 침묵과 그녀들의 침묵이 그러했던 방식으로는 단단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가해자는 어쩌다보니 그 입을 열어서 진실을 부정할 수도 있겠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자기의 죄를 인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가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결단코 너의 발언처럼, 그리고 그녀들의 발언처럼 함께하는 이들에게 격려가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다보니 피해자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나는 그녀들의 침묵과 발언에, 그 둘 모두를 가능케 했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ㅎ교수 연구실 앞. ⓒ당신들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기획팀
(필자 최예지 씨는 '단국대 문예창작과 성폭력 교수 진상규명 연대' 구성원입니다.)
'가해' 교수의 성폭력 사과 약속은 1년 만에 증발했다
벌써 1년이다. 연세대학교 A교수가 자신의 강의 시간과 뒤풀이 자리에서 저지른 성폭력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약속한 뒤 어느덧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신고 당사자들은 아직까지도 가해자 A교수의 사과를 받지 못했고, A교수는 여전히 대학원 강의를 하고 있다. 때문에 가해자의 사과와 학교 당국의 적절한 징계를 요구하는 연세대 학생들의 공동행동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 없이 흘러간 1년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학생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A교수의 1년은 가해 사실을 감추고 부정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는 2017년 4월에 열린 학과 간담회에서 진술했던 가해 사실에 대한 인정과 사과 약속을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번복했다. 사건 조사인이자 그의 동료인 S교수는 같은 해 12월, 일부 학생들로부터 "A교수의 행동이 성폭력이 아니었다"라는 취지의 진술을 녹취하였으며, A교수는 이 녹취록을 대학원 강의에서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4월, 학교 건물 곳곳에 허위 사실을 담은 자보를 게재하는 등 2차 가해를 일삼으며 또 다른 피해를 양산했다. 그러나 결국 A교수가 학교로부터 받은 징계는 감봉 1개월 정도의 가벼운 수준에 그쳤다. 많은 학생들의 이목이 집중된 중대한 사건인 만큼 진실성 있는 조사와 신중한 태도로 사건 처리에 임해야 할 학교가 사실 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발언으로 사건 해결의 진척을 저해한 사실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이렇듯 피조사인인 A교수와, 편파적인 태도로 조사에 임했던 S교수를 위시한 기타 동료 교수들, 그리고 징계에 미온한 태도를 보인 학교 본부까지 세 주체 모두 학생들의 요구를 묵살하며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 모든 과정은 교수 권력과 젠더 권력이 작용한 결과다. 당초 피해자들이 요구한 것은 가해자 본인의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과 '약속'뿐이었으며, 그마저도 번복되었고 가해 사실은 부정당했다. A교수의 무책임한 태도와 더불어 지지부진한 사건 처리 과정 속에서 피해자들이 겪었을 2차 피해의 정도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일련의 진행 과정을 지켜본 학생 사회는 어떠했는지 또한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교수와 학생이라는 권력 관계 속에서 용기를 내어 A교수의 가해 사실을 공론화한 피해자들과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학우들은 함께 연대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서는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자의적으로 축소하는 발언은 물론 가해자의 가해 사실을 옹호하는 발언 등의 또 다른 2차 가해가 자행되기도 했다. 우리는 개개인의 정당한 인간적 권리를 보장받으며 학문적 자유를 누려야 할 대학이라는 공동체에서조차 명백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교수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 '이 정도가 무슨 성폭력이냐'라는 식의 기만과 피해 축소 발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피해 사실을 피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사과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공간에서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또 다른 2차 가해의 위험에 노출되어 왔고 학교 공동체는 이들을 보호해야 할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동안 연세대학교뿐만 아니라 서울대, 동덕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이슈화되었고 이를 규탄하는 행동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대학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 가운데 이처럼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공론화한 사건만 헤아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나 그중 가해자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거나 합당한 징계를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대하며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인가.
목소리에 대한 무응답은 우리를 상실감에 빠뜨린다. A교수가 본인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약속한 간담회 이후, 피해 학생들은 사과 요구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요구안과는 다른 내용의 -A교수가 피해 학생을 특정할 수 있는 일방적인 방식의- 대면 사과라는 답변이 돌아왔고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 학생들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약속된 사과 이행을 위한 간담회를 요청하고 올해에는 해당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연대체가 조직되어 여섯 차례의 집회가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않고 교착 상태에 있다. 피해 학생들의 사과 요구안을 거절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A교수와 학교 당국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그 자체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런 태도는 학내에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사건 처리와 사과 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신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을 학생 사회에 안겨준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조속한 문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동류의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우리 중 과연 그 누가 용기 있게 성폭력, 불합리한 권력 관계 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까.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고 사과는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 그 해결 과정에서부터 교수-학생 간의 권력 관계가 명확히 드러난 해당 사건의 본질을 살펴보았을 때, A교수와 학교 본부를 향한 학생 사회의 목소리는 그 권력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더 크게 모이고 더 멀리 울려 퍼져야 한다. 그 목소리는 결코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권력과 무관심의 벽을 넘어 더 평등하고 완전한 공동체를 이룩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연세대학교 공동체와 피해 학생에게 불신과 불안감을 안겨준 A교수 사건에 대한 학생 사회 전 구성원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한다.

▲ A교수 규탄 집회 ⓒ 연세대 A교수 성폭력 대응을 위한 학생연대체
'S급 교수'는 어떻게 학생들을 농락했나?
피해자 B에게 K교수는 정말 훌륭한 학자처럼 보였다. K는 1년에 6,7편의 논문을 내는 'S급 교수'였고, 이제 막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B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비록 직속 지도 제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K교수의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수업을 들으면 스트레스까지 풀린다고 할 정도였다. K교수 역시 B를 많이 아끼는 것으로 보였고, 이에 보답하고자 무리하게 불러내는 술자리에도 모두 참석했다.
그날도 그랬다. 언제나처럼 연구실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열렸다. 연구실 내 칸막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공간에서 K가 B의 손을 쓰다듬을 때,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냥 교수님이 술을 많이 취하셨겠거니 생각했다. 설마 이 분이 그러실까, 아닐 거다 아닐 거라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입했다. 그러나 K교수는 술자리가 파하자 억지로 B를 역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하며 차에 태웠고, 차 안에서 B를 강제 추행했다.
B는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존경심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더 확실히 거절했어야 했는데, 똑 부러지게 대했어야 했는데, 애매하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닌가.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연락 가능한 선배나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들의 조언에 따라 떠올리기도 힘든 일이지만 어렵사리 사과를 요구하는 메일을 K교수에게 보냈다. 이윽고 전화가 왔다. B는 K의 목소리조차 듣기 두려웠다. 그러나 K교수는 끈질기게 메일이 아닌 전화를 통해 연락해왔다. 겨우 전화를 받았다. K교수는 전화통화를 통해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B에게 기록이 남는다며 왜 메일을 보냈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기억도 흐릿해져갈 그 무렵, 2018년 대한민국에 미투의 바람이 불던 어느 날이었다. 페이스북의 '중앙대 대나무숲'에 한 익명의 제보가 올라왔다. 중앙대학교 아시아문화학부의 K교수가 수업이나 쉬는 시간에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것이었다. B는 그 날들이 다시 떠올랐다.
K는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그때 전화로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절망했고, 화가 났다. B는 이번에 정말 큰 용기를 냈다. 처음엔 그저 익명으로 제보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해 과거의 대학원 사람들을 연락하던 중에 더 많은 피해자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B는 그날 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K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지속적이고 상습적으로 대학원 여학생을 불러내어 술을 먹이고 성폭력을 저질러왔다. 그러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으면서 'S급 교수'로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이를 그대로 둘 순 없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B는 학교 인권센터에 정식으로 신고를 했다. 초반에는 혼자라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피해자들과 뜻을 같이하는 대학원 선후배들이 모여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필자도 당시 연락을 받았던 피해자의 대학원 선배다.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고 하나씩 자료를 모으고 알리기 시작했다. 언론에도 알리기 시작했고, 5월 24일 중앙대 인권센터에서 K 교수에게 파면 권고를 내릴 때쯤엔 상당히 공론화가 되었다. 연서명에 함께하며 응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다들 K 교수가 파면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K교수가 인권센터의 권고 만으로 파면되는 게 아니다. 넘어야할 '산'이 많다. 그 중 하나가 사립학교법이다. 사립학교법 제66조의 4 제1항에 따르면 성폭력으로 처벌되는 조건이 5년 이내에 일어난 사건이어야 한다. 2018년 4월 17일에 법이 개정되어 조건이 10년으로 들어나긴 했지만, 이번에 정식으로 신고된 4건의 사건들은 모두 5년이 지난 일이라 소급적용은 불가능했다. B는 5년이 지났음에도 신고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이걸 다시 떠올리기조차 싫은데, 오직 새로운 피해자를 더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 하에 신고를 한 것이다. 아니, 5년이나 지났으니까 이제 겨우 용기를 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이 사건들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권력형 성폭력이다. 권력형 성폭력은 근본적으로 갑과 을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대학원생에게 교수는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존재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당한 갑질과 성폭력을 당했을 때 저항하기란 쉽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실명으로 신고를 하는 건 앞으로 겪을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5년 이내의 피해자 더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실명으로 신고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관련 기사 : 음주 후 제자 상습 성추행한 교수, 그의 징계 가로막는 사립학교법)
현행 대한민국 법령 하에선 성폭력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 혹시 잘못되어서 가해자가 다시 복귀한다면 그 뒤에 따를 수 있는 보복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파면이 된다 하더라도, 어떠한 경로로든 자신이 신고자임이 발각되어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당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 중에는 가족에게 이런 사건이 알려지기를 꺼리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 신고하는 것까지는 온전히 비밀이 지켜지다 해도 후일 교수가 피해자를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한다면 또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결국 가해자는 학교에 남고, 피해자는 학교를 떠나야 하는 최악의 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B는 혹시나 있을 사태에 대비하여 해당 교수를 고소하는 것에 대해 문의해 본 적도 있다. 어디까지나 상담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사례와 증거자료도 첨부했다. 피해자 B가 보냈던 메일과 당시 선배들과 나눴던 카톡 기록 등도 포함했다. 그런데도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피해자가 24시간 녹음기를 켜놓고, 모든 전화통화를 기록하지 않는 이상 선명한 외상이 남지 않은 성폭력 사건에서 더 이상의 증거를 대체 어떻게 마련해야 한다는 걸까.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나마 이조차도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이다. 피해자 B가 성폭행을 당했던 6년 전에는 학교 내 인권센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권센터의 파면 권고도 어디까지나 권고이기 때문에 실제 징계위원회를 통해 징계가 내려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재 K교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수업과 행사에 참여 금지 처분을 받고 학교에도 나올 수 없는 상태이다. 몇몇 언론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고 한다. (관련기사 : 제자 성추행 중앙대 교수 이번엔 연구비 횡령 의혹) 피해자들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이 짧은 자숙 시간이 끝나면 K가 이전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강의하고 S급 교수 대접받으며 지내는 것 아닐까. 그리고 B가 보복행위를 하지는 않을까. 지금은 공론화가 되어 기자회견까지 열렸지만 긴 방학 동안 이 일이 잊히지 않을까 두렵다. 현재로선 피해자를 철저히 보호하고 조속히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미투'를 '하이재킹' 했다
6월 7일. 동덕여자대학교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인권장례식-동덕인의 인권은 죽었다' 공동행동이 진행됐다. "학생 인권 어디 갔냐! 학생 고소 웬 말이냐!" 검은 옷을 맞춰 입고 국화꽃을 든 100여 명의 장례 행렬이 외치는 것은 단 하나였다. 학내 성추행과 여성 비하 문학론 교육 등 H교수가 일으킨 사건의 해결이다. 공동행동 내내 학우들에게 받은 응원과 지지 덕에 '오늘처럼 연대를 이어가면 곧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도 품었다. 그렇게 또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날 저녁, 비대위는 그야말로 비상이었다. H교수를 지지하는 시인 B씨의 게시글 때문이었다. B씨의 SNS에 올라온 장문의 글은 H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 학우를 비방하고 고발의 진정성을 훼손하고 있었다. 동시에 가해 교수의 성범죄와 위계 폭력을 축소하고자 2차 가해를 주도하는 글과 사진들을 배포하는 데도 서슴지 않았다. 피해 학우의 실명을 공개하기까지 한 B씨의 게시물이 퍼지는 걸 막기 위해 비대위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포털 사이트에 부적합한 게시글로 신고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려한 대로 바로 다음 날, H교수의 인터뷰가 M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바로보기)기사는 가스라이팅(가해자가 상황을 조작해 피해자의 현실 인식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자 하는 행위) 그 자체였다.
해당 언론이 어떤 이유로 가해 교수의 인터뷰를 보도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공정한 보도를 지향해야 할 언론이 성범죄 사건을 매우 경솔하게 다룬 것은 분명한 문제이다. 2014년도 한국기자협회 정관 중 성폭력 사건 보도 실천요강을 살펴보면, 기사 작성 및 보도시 주의사항으로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가해자의 일방적인 주장을 진실인 것처럼 여과 없이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마찬가지로 사건 당시 피해자와 H교수 간의 연락이 H교수의 성추행을 부인하는 증거로 사용되려면, 사실관계 확인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M언론은 피해자에게 사건 취재를 요청하지 않았다. 기사 하단부에는 피해 학우가 과거 3월에 밝혔던 입장이 짧게 기재됐을 뿐이었다. M언론이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 피해자는 이미 H교수 측의 주장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모든 진술을 마친 상태였지만 이러한 사실은 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는 H교수 측의 새로운 2차 가해를 신속하게 방어 및 대응할 수 없었다.
"강제성이라 하면 그야말로 완력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키스는 급습한 것", "그걸 강제성이라고 한다면 강제성이 있다고 하겠다" (☞바로보기) 이처럼 H교수는 과거 언론과의 통화에서 피해 학생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M언론은 성추행을 수차례 입맞춤, 키스라고 표현해 '가해자 중심적 성 관념에 입각한 용어'를 사용했다. 또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미치는 사진을 여과 없이 보도함으로써 '언론은 사진과 영상 보도에서도 피해자 등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에 어긋나는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명확했다. 하지만 잘못된 걸 바로잡기가 어려웠다. H교수의 인터뷰가 퍼지면서 그를 두둔하는 이들은 각종 미디어 플랫폼에 피해자를 향한 악성 여론을 형성했고, 이중 몇몇은 본교 총학생회 SNS를 찾아와 비방 댓글을 남겼다. 그들은 피해자가 어렵게 내뱉은 '#MeToo'를 빼앗아 가짜라고 진위를 가리며 조롱하기 바빴다. 현실적으로 피해 학우가 B씨를 포함한 이들 모두를 상대로 법적 대응 하기란 쉽지 않다. 심리적, 재정적 압박에 H교수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상습협박에 의한 고소까지. 아니, 왜 피해를 본 이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가. 가해자들이 만들어낸 여파는 모두 피해자와 그 연대체에 몰아쳤다.
악성 댓글이 학우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자 피해 학우는 Y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다. (☞바로보기) 다행히도 기사는 당시 피해자가 겪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짚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과연 대중이 자극적인 M언론의 보도만큼 Y언론 기사에 관심을 보일까 하는 우려가 계속됐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지난달 19일, H교수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피해 학우의 주장이 상당부분 사실로 파악돼 차별시정소위원회에서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가 나온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권김현영 여성학자는 공동저서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을 통해 "피해자의 증언이 믿을 만한 것인지 등을 가려내려는 여론의 검증은 예전보다 혹독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검증이 되고 나면, 피해자의 직접행동은 사회 전체의 의식 변화를 견인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권위의 판결이 난 현재, '여론의 검증'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걸까.
7월. H교수와 M언론의 인터뷰로부터 어언 한 달이 지났다. 피해 학우는 본인을 두고 H교수를 음해하고자 거짓 폭로를 했다고 주장한 B씨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서울 종암경찰서는 H교수가 피해자를 상대로 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및 상습협박 고소를 '혐의없음'이라 결론 내고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러한 사실이 보도되자 본 사건을 성추행, 즉 범죄로 인식하는 여론도 다시금 생겨났다. 그러나 그 속에 #MeToo를 폄하하고 피해자에게 폭언을 일삼던 이들의 반성은 없었다. 본인이 어떤 범죄를 옹호하고 2차 가해를 저질렀는지 모르는 양, 관련 게시글과 댓글 모두 그대로였다. 여전했다. 가해자들이 형성한 그들만의 여론은 지금도 피해 학우를 검증, 아니 '가해 중'이다.
아직도 피해자 주변에는 H교수가 무고죄로 고소했다는 허위사실이 퍼져있다. 이번 인권위법 34조에 따른 수사 의뢰는 강한 수위의 판결로, 앞선 보도에 따르면 해당 경우는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성범죄를 지우고 꽃뱀 프레임을 생산하는 무고죄 소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더욱이 최근 H교수는 R언론과 두 차례의 인터뷰(☞ 바로보기① / ② )를 통해 외국대학의 교수로 부임하는 등 앞으로도 작품 집필을 이어갈 계획임을 밝혔다. 인터뷰 답변 내내 본 성추행 및 위계 폭력 사건에 대한 일말의 사과 의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대학은 '중립'이라는 투명 망토를 쓴 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껏 분주히 움직여왔다. 자발적으로 모인 몇몇이 연대체를 이룬 것을 시작으로, 7건의 대자보 및 입장서, 3건의 기자회견, 4건의 공동행동 등 점차 그 목소리를 확장해냈다. 그 때문에 이 검증의 굴레를 함께 끊어내자고 자신 있게 요청한다. 이다음은 사회에 변화를 견인할 힘을 끌어낼 차례라고. 당신에게 손을 뻗는다.

▲ H교수 관련 공동행동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
학내 미투운동, 그 시작을 함께하다
2018년 1월 말 서지현 검사의 성폭력 고발 이래, 3월 개강을 맞이한 성균관대학교도 '미투'로 뜨거웠다. 그 과정을 통해 성균관대학교(이하 성대) 역시 성폭력적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남정숙 전 성대 교수는 지난 2014년 문화융합대학원 신입생 MT에서 동료 교수이자 대학원장이었던 이 모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대학 측에 피해사실을 알렸으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커녕,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비난과 함께 이유 모를 재임용 부적격 통보를 받아야 했다. 학교는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 진상조사를 명분으로 꾸려진 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의 구성원들은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웬만하면 용서해라'며 피해자에게 침묵과 용서를 강요했다. '가해 교수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식으로 가해자를 두둔하는 한편, '학교 일을 일, 이년 해보냐. 다 참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며 사건을 덮어 무마하려 했다.
개강 직후 3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간 남정숙 교수는 성대 안 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미투 1인 시위를 단행했다. 성대 문과대여학생위원회를 비롯하여 여성주의를 의제로 하던 학내 소모임이나 단위들이 자발적으로 1인 시위에 다수 연대했고, 여성해방의 날이던 3월 8일에는 기자회견을 거쳐 남 교수를 필두로 성대 졸업생과 재학생이 연대하여 '성균관대학교 미투위드유연대'가 발족했다. 성대 미투운동 소식을 아카이빙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되는가 하면, 미투위드유연대의 '재학생 소통방'을 중심으로 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학내 미투운동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5월 14일, '성균관대학교 위드유특별위원회'가 발족할 수 있었다.

▲3월 초 남정숙 교수의 1인 시위에 연대하는 학생들. ⓒ성균관대 위드유특별위원회
미투를 삭제하고 외면한 당신들은 '공범'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해결을 도모해야할 학내 기관은 행정의 독립성을 잃은 채, 가해자를 두둔하고 학교 편에 서있었다. 이 모 교수의 성폭력은 남 교수를 비롯한 동료 교수에게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공공연히 자행되었었다. 이와 관련하여 학내 성폭력 사건 기구인 양성평등센터에 투서가 들어갔으나, 교무처는 입학 원서 내 학생 얼굴 사진을 대조하여 투서자를 밝히라 지시하는 등 불법을 행했다. 투서자와 피해자는 신변의 안전을 보호받지 못한 채 학교 당국으로부터 지속적인 2차 피해를 받아야 했다. 학교는 이 모 교수에 대한 재판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해당 교수를 파면 혹은 해임하지 않았고 '자발적 사직' 처리 하면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를 연발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1심에서는 이 모 교수의 가해사실에 대한 징계판결이 났지만, 2심, 3심은 또 모르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이 익명으로 투서되면 그 만큼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다 알지 않냐' 등 2차 피해를 종용했다.
학생 자치의 공간인 학교 안에서 학생 행정의 민주적 대표성을 지녀야 할 총학생회는 3월 개강과 동시에 학교를 휘감은 미투운동을 외면했다. 학생들의 삶의 질과 안전을 대표하는 기구여야 할 총학생회는 학교 당국을 대표하는 '어용'으로 전락했다. 때론 학교 당국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학생 복지를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의 목소리에 연대하며, 학생들의 인권이 오롯이 존중받는 '안전한' 공동체 문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총학은 '침묵'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목소리들을 묵살했고, 모든 탓을 피해자들에게로 돌리는 학교 당국의 편에 섰다. 총학의 외면에 문제의식을 느꼈던 사람들의 비판 이래 총학이 '미투 지지 성명문'을 냈다. 그러나 끝내 '남 교수 측 입장과 학교 측 입장이 너무도 상이해, 더 이상 그 어떠한 입장도 편들 수 없을 것 같다. 더 이상 미투와 관련한 행동을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해당 성명문이 글자뿐인 문서에 그쳤음을 증명했다.
거센 백래시에 직면하다
우리의 외침은 곧 거센 백래시와 마주해야 했다. 여성주의적인 공간을 향한 우리의 열망이 커질수록, 온라인에만 머물던 유언비어는 가상공간을 뚫고 나와 우리가 서 있는 현실 사회 속에서 실질적인 위협을 가했다. 미투를 지지하는 수많은 자보는 '페미니즘이 불편한' 학교 당국에 의해, 때론 학생들에 의해 떼이거나 훼손당했다. 남정숙 교수의 미투 1인 시위의 첫날이던 3월 5일, 학내 미투 지지 연대자보 운동을 제안하던 문과대 여학생위원회에서 '#Me_too 나도, 우리도,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라는 이름으로 자보를 게시한 이래, 호암관 맞은편 외벽은 수많은 연대 단위들의 연대글로 뒤덮였다. 그러나 3월 13일 정오를 기해 8개의 단위 및 개인 자보가 모두 떼였고, 이후 '우리의 목소리를 지우지 말라'는 항의문을 부착했으나, 약 2주간에 걸쳐 13개 이상의 자보가 모두 제거되었다. '이런 곳에 붙여봐야 학생 지원팀에서 다 떼어갈 것이다.'는 경비노동자의 말과는 달리 학교 당국은 '자보에 관한한 우리는 모르는 일이다'는 말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 후 해당 벽면에는 '깨끗한 교정을 위해 불법 부착물 게시를 금한다.'는 팻말이 붙었고, 이로써 여성주의의 목소리는 학교 당국에 의해 '불법'이 되었다. 다른 한편 미투 운동 및 여성주의 단체에 가해지는 학교 공간 내외의 백래시를 규탄하며 성대 위드유특별위원회 주관 아래 열린 6월 5일의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 집회 제안 손자보는 심하게 구겨지고 내동댕이쳐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학생 손에 의해 여성주의 의제 자보가 훼손되는 일은 '공공연한' 일이었고 '에브리타임'의 익명게시판 속에서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되어왔다.
여학위 주최로 진행되었던 성폭력 피해생존자 집담회 '#Me_too 말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를 위해 학교당국은 그 어떤 공간조차 내어주지 않았다. 여성주의 의제와 성폭력 문화를 고발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반려'되었다. 피해가자 가해자가 되는가 하면 가해자의 미래만을 걱정하는 '뒤틀린' 세상에서 기꺼이 '외부'가 되겠다는 신념 아래, 결국 600주년 기념관 '밖'에서 집담회는 진행되었다. 학교 당국은 여성주의의 가치들을 여전히 '당위'가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 간주했고, 여성주의는 선택조차 되지 못했다.
여성의 권리와 인권, 안전을 이야기하고 성폭력적 공동체에 문제제기 하는 모든 장에서 우리의 발화는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중단 당했다. 반면 6.13 지방선거를 앞둔 5월 28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초청되어 젊은 연령층의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함이라 방문 목적을 밝혔을 때 학교 당국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학생 자치정치의 공간인 학교에서 '정치적이다'는 이유로 학생 발화와 행동을 통제해 온 학교당국은 국가와 사회의 기성 정치에 대해서는 '정치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 여성주의는 '정치적'이라는 이름으로 삭제 당했지만, '여성혐오'의 정치적 '그름'은 질문 받지 않았다. '정치적'이라는 명분을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가능한 발화를 취사선택하는 학교 당국은 자신의 삶과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삶의 옮음과 가치를 고민할 학생사회를 붕괴시킬 뿐이었다.
성대 위드유 특위 주관의 <결국은 우리가 이긴다> 백래시 박살 대회에 공동주체로 연대한 특정 단위는 '페미니즘 동아리가 아닌데 페미 짓 한다'며 지탄받아야 했다. 미투를 지지하는 공간의 정당성은 의심받았다. '페미니즘'은 사상 검증의 언어가 되어 그들을 공격하는 가운데, 여성주의를 지지하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그 밖의 다른 활동에 참여할 자격을 '박탈당해도 되는' 일이 되었다. 여성주의 의제에 공감하고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다른 문화'를 상상하는 일들이 '불온한' 일인 양 '검열'되는 학생사회에서 그 어떤 개인의 발화나 행동도 타인의 시선과 부당한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여성주의'를 표방한 개인 혹은 단위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높은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었다. 동일한 잘못도 '여성주의자여서' 잘못한 것이 되었다. 개인의 문제 일체는 '여성주의의 문제와 잘잘못'으로 평가되면서 이는 여성혐오와 직결되었다.

▲약 2주에 걸친 시간 동안 '미투' 관련13개의 자보가 떼였다. ⓒ 성균관대학교 위드유특별위원회
결국에는 싸우는 우리가 이길 것이다
여성혐오가 용인되는 세상은 여성주의를 '유별난 행위자'라는 프레임 안에 가둔다. 우리의 이야기와 문제의식을 지우고 '그 자리에 늘 있어왔던' 우리들의 '존재 자체'를 의심한다. 국가와 법으로부터 여성의 성과 몸이 통제받지 않아야 하고, 기계적 평등을 넘어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적인 여성혐오 문화가 성찰되어야 마땅하다는 여성주의 의제들은 쉽게 삭제되어야 했다.
대개의 백래시는 빈약한 논리와 유언비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침범 받지 않는 당위의 영역으로 여성혐오가 공고히 자리한 사회, 그리고 그것을 닮아있는 학교 공간에서는, 백래시의 언어가 어떠한 여성주의적 발화보다도 더 강하게 현실을 흔드는 것이 가능했다.
성별구분에서 자유로운 법의 보호를 주장하며 혜화역에 6만여 명(7월 7일 집회)이 모였으나, 여전히 세상은, 그리고 학교는 미투를 삭제하는 방식으로 '평화'와 '안정'을 말한다. 여성주의 의제에 공감하는 학내 단위들의 연대는 또다시 수많은 유언비어나 근거 없는 비난에 의해 흔들린다. 미투가 불편하던 학교가 기존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두려워하면서 미투를 '소수의 예민하고 유별난 집단의 발화'라며 여성주의 의제를 폄훼하던 그 순간에도, 우리들은 늘 이곳에서 성평등을 외쳐왔다. 세상이 '이퀄리즘'의 언어를 빌려 여성혐오를 자행하던 그 순간에도, 우리는 공고한 백래시에 맞서면서, 타인과의 평등한 관계가 보장된 '옳음'을 고민하면서, 우리들은 늘 '그 곳'에서 싸워왔다.
올 한해를 물들인 미투운동을 비롯하여 여성주의 의제와 관련한 모든 발화는 늘 '삭제'를 강요당했으나, 우리는 그 때마다 저마다의 공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텨왔다. 여성혐오 사회의 '작은 버전'에 불과한 학교 공간에서,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서 끊임없이 싸울 것이다.
세상이 '충분히' 변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여성주의를 '선택'하지 않는 국가 속 여성이 '인간'으로 존중받지 않기에 우리는 멈출 수 없다. 여성혐오를 '문화'로서 인정하는 사회 속 비난이 우리의 존재를 지우기에는, 우리는 이미 오랜 역사 안에서 여성주의를 이야기하며 늘 함께 싸워왔다.
세상은 바뀌어야 하고, 바뀔 것이다. 법의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삭제되지 않기 위해, 여성혐오 사회 속 침묵을 강요받지 않기 위해, 여성주의 의제와 발화가 통제받지 않기 위해, 우리는 늘 당신 곁에 머무르며 싸우고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삭제될 수 없으며,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다고 세상은 바뀐다. 결국엔 우리가 이길 것이다.
- 성대 18.06.05. 백래시 박살대회 <결국엔 우리가 이긴다> 선언문 中
K교수. 이름 세 글자를 밝힐 수 없어 K라는 이니셜로 대체되었지만 그를 고발하는 sns의 글을 보며 모두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 입학해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던 때부터, 가려진 민낯을 드러낼 미투 운동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까지 K교수의 일화는 공공연히 떠돌아다니며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입을 막아왔다.
K교수는 자신의 성범죄를 넘어 '유명한 큐레이터 좀 꼬셔서 좋은 데서 전시도 하고 그래. 내가 여자라면 진짜 성공할 자신 있는데 너희는 왜 그걸 못하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너희도 배 선생님께 허벅지 좀 내어드려야 인생의 의미를 알 텐데' 등 교육자임을 빙자해 혐오로 가득 한 말들을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언행이 범죄임을 지적하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성을 도구화하라고 가르쳤다.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 끝에 올해 4월 초, 학내 성희롱심의위원회는 그에게 파면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K교수는 파면 권고를 인정하지 않고 재심을 신청하였다. 결국 한 달이 미뤄진 5월에 되어서야 1차 심의와 동일한 성심위의 파면 권고를 받고 교원징계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3월 21일, K교수의 진상조사와 처벌을 촉구한 기자회견이 있고 바로 다음날, 학생들은 K교수를 향한 분노를 가라앉힐 새 없이 음악대학 S교수의 만행을 마주해야했다. 조형예술대학과 음악대학의 연이은 미투 고발에서 목격한 대학과 문화예술계의 폐쇄적, 권력적인 구조는 고발 이후에도 해당 단과 학생들을 선뜻 움직일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소속 단대에 상관없이 학생들은 자신들의 분노와 연대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길 바라며 포스트잇에 시, 글, 그림 등을 적어 K와 S교수의 방문을 가득 채웠다. 미투를 응원하고 함께하고자 자발적으로 모인 포스트잇 공동행동을 시작으로 교수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총회 안건에 거수한 1500명, 당신과 나를 위해 행진했던 2800개의 보라색 풍선, 3300명의 이름이 모인 서명운동. 우리는 끊임없이 같은 자리에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합당한 처벌"이라는 당연한 목소리를 냈다.
그에 대한 학교의 응답은 어떠했는가. 선배들의 용기로 오랜 시간 자행되어왔던 K교수의 행태가 폭로된 이후 가장 먼저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교수들의 2차 가해였다. '왜 하필 우리가 먼저냐'라는 발언부터 '이건 개인의 문제다 동조하지 마라' 며 연대하고자 한 학생들에게 가해지는 압박과 심지어 '이런 짧은 치마를 입어서 미투운동이 일어나는 거야'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언행까지 있었다. 이런 소수의 교수들도 지금까지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평범한 "교수님"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본인의 자각하지 못한 발언들이 학생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사회적 문제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어쩌면 이 사회에 만연한 평범한 교수들이다.
개강과 함께 시작된 미투 운동은 1학기가 끝나도록 파면 '권고'만 내려졌다. 학생회는 징계위원회에 학생 참여를 꾸준히 요구해왔지만 학교는 이를 무시했다. 또한 징계위원회 일시와 장소에 대해서는 대외비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회는 3300명의 '교원징계위원회의 조속한 진행과 K, S 교수 파면 촉구 서명'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서 뜻밖에도 한 기자를 통해 서명에 대한 답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미 교원징계위원회는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 '그간 계속해서 징계위원회 진행 상황에 대해 요청해왔는데 왜 그 답을 기자를 통해서 알아야 하냐'고 묻자 학교는 '이미 아는 줄 알았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만 내놓았을 뿐이다.
피해 호소인들은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하는 부담과 교수의 권력에 미래가 단절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한 채 세상에 나섰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합당한 처벌을 위해 학생들은 학생총회, 공동행동, 한 장 한 장 소중히 붙여온 포스트잇으로 연대했지만 그들은 아직, 굳건히 남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더 할 수 있을까. 주변 대학교와 연대해 해당 교수들의 처벌과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토론회를 열고, 교육부 간담회 등도 찾아가봤다. 하지만 가해자 지목된 교수들의 눈치를 보는 대학와 그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교육부 덕분에 우리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관련기사 바로보기)
학내 성폭력 사건들은 만연했지만 피해자가 합당한 해결을 바라기 힘든 구조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교수들이 권력을 갖는 대학 구조 때문에 가해자는 아무런 징계 없이 사표를 수리해 다른 학교에서 교수직을 이어갈 수 있게 하거나, 감봉 등 경징계에 내려 수업을 계속함에 따라 추가적인 피해를 양산하는 등 합당한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화여대는 계속해서 폐쇄적인 징계위원회 절차를 유지하고 있다. 징계위원회가 언제 어디서 열리는지 학생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징계 내용도 알 수 없고, 학생들은 징계위원회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 이는 교수 성폭력 사건이 솜방망이 처벌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원인이다. 지속적인 폭로와 미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없더라도, 학생들이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성폭력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합당한 처벌, 그리고 예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K,S 두 교수의 파면을 촉구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집회.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학생회
"부산대, 우리의 악몽이어라"
부산대학교의 슬로건은 '그대, 우리의 꿈이어라'이다. 그러나 지난 3월 12일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를 시작으로 네 개 이상의 학과에서 터져 나온 미투 고발 이후로 부산대는 학생들에게 깨어날 수 없는 악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이하 예영과) L교수의 성추행 사태를 중심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L교수의 성추행 및 음담패설에 대한 입장은 학부생 179명의 동의를 받아 학생 자치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공동성명문으로, 지난 3월 발표되었다. 예영과 재학생은 약 200여 명이다. 다음은 해당 성명문의 주요 항목이다.
'L교수 매뉴얼은 존재했습니다.'
'L교수의 행각은 명백히 위계에 의한 성추행입니다'
'L교수는 학생과 교수 간 부적절한 음담패설을 수업 중에 일삼았습니다.'
'비대위는 L교수에게 성추행 사실인정과 공개 사과를 요구합니다.'
'SNS를 통해 미투 폭로한 피해자에게 언론 측의 사적인 연락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대위는 1차 성명문 당시 해당 교수의 실명을 밝혔지만, 명예훼손 등 법적 문제에 직면하면서 그의 실명을 밝힐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학부생 모두는 L교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술을 마실 때는 L교수의 옆자리에 앉지 말라'는, 일명 'L교수 매뉴얼'은 여자 신입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퍼진 사실이었고, 남학생들 역시 매뉴얼대로 술자리에서 L교수의 양옆을 지켰다. 수업 중 'VR이 발전해서 혼섹이 가능하게 됐다. 여러분도 구애 받지 않고 할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발언을 내뱉어도 그는 제지받지 않았다. 학과를 창설한 교수. 그것이 그의 폭력을 지우는 면죄부였다. '아름다움(美)'을 가르치던 그는, 본인이 말하는 미학의 개념에 스스로 대적하며 계속해서 성희롱과 추행을 일삼았다.
피해자가 다수임을 자각한 비대위는 진술서를 수집했다. 실명의 진술서는 익명으로 전환되어 대학본부에서 조직한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에 넘어갔다. 수집된 진술서는 총 20건이었다. 피해자들의 학번, 나이, 사건이 일어난 연도, 성별은 모두 달랐지만, 그들 모두는 L교수에게 당했던 고통스러운 일을 힘들게 털어냈다. 이야기를 듣는 비대위원들의 마음도 같았다. 피해자들이 요구한 것은 아주 단순하고 명확했다. L교수의 파면과 진정성 있는 사과. 단 두 가지였다. 진술서는 20건이었지만, 사건은 20번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여러 번의 피해를 겪기도 했으며, 진술서로 작성되지 못한 피해 제보도 여러 건이었다. L교수가 한문학과 교수이던 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는 분께 전화가 오기도 했다. 그 역시 본인이 당시에 겪은 L교수의 성추행 및 성희롱 사건들을 토해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진술서를 쓰지는 못하지만 그때부터 지속되는 악행을 끝낼 수 있길 바란다는 전화였다.
행위자인 교수의 태도는 계속 바뀌었다. 사건 초기, 사건을 제기한 정황이 의심스럽다고 말한 L교수는 비대위의 연락은 받지 않았으나 같은 날 언론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사위 초반, 본인의 모든 행위를 인정하겠다며 '무조건적이고 원천적인 사과'를 하겠다고 밝혔으며 조사위는 처음에는 사건의 중대성을 인지하지 못해 잘못된 발언을 내뱉었다고 L교수의 입장을 전했다. 사과문을 쓰겠다고 말한 그는 계속해서 태도를 바꾸더니 4개월이 지난 지금의 입장은 '사과문을 미루고 싶다'는 것으로 굳어졌다. 더군다나 학교의 인권센터와 조사위는 '사과는 L교수의 자유이기 때문에 강요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사과를 간절히 원했지만, 사과를 받을 수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대 본부에서 조직한 조사위원회도 문제투성이였다. 증거가 없는 성추행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자료를 요청했으며, 자료 제출 이후에도 재차 '확실한' 증거를 요구했다. 조사기관이 아닌 피해자가 증거를 찾고, 제시해야하는 이상한 구조였다. 성추행의 기본 전제가 피해자가 느낀 불쾌감임에도 불구하고 '중요 부위가 아니어서 안 된다'는 발언을 했고, '경찰조사를 하면 원만한 결론을 내기 힘들게 된다'고 이야기를 하며 경찰조사를 진행하려는 피해자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우회적 압박을 제기했다. 법률 안의 균형성을 언급하며, L교수 사건이 파면이나 해임으로 결론난다면 강간에 이르는 더 심한 사건이 발생하면 그에게는 어떤 징계를 내려야하냐는 이야기를 하며 이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한 우려로 해당 사안에 대해 더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기이한 결론을 도출해내기까지 했다.
조사위와 학교가 대비해야하는 경우의 수를 언급하며, 기사를 내는 경우 학교가 힘들어진다는 발언을 피해자에게 직접 내뱉었다. 1차와 2차 가해가 모두 학교에서 발생한 것이다. 피해자를 만나 가해자의 진심을 전하고 싶다며, 가해자의 반성하는 모습을 전하지 못해 무력감을 느낀다는 말을 비대위에 전하기도 했다. '의도성이 없었다'는 가해자의 진술을 조사기관의 가치판단과 동일시하며 조사기관으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들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더욱이, 사건 초반 좋은 마음으로 진행하고자 하는 캠페인이 결과적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좋은 효과를 가지고온 선례가 거의 없다는 발언들을 통해 비대위의 활동을 제지하는 일도 이어졌다. 해당 2차 가해와 가해의 발언들에 대한 문단이 길어지는 이유는 6차에 걸친 조사위 동안 계속해서 해당 발언들이 이어졌고, 비대위원이 해당 발언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짚었음에도 재고되지 않고, 수용되지 않았다.
조사위와 징계위를 거친 결과는 총장의 직인 하에서 결정된다. 6차례에 걸친 조사위에서도, 두 차례에 거쳐 진행된 간담회에서도 비대위는 꾸준히 파면을 이야기했다. 1000여 명의 사람들의 파면 동의 서명이 담긴 종이와 마음과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대가 내린 결과는 해임이었다.
부산대는 학생들에게 '그대, 우리의 꿈이어라'라고 이야기해왔다. 그러나 학교 측의 해임이라는 선택으로 L교수는 복직이 가능해졌고, 퇴직 급여를 모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복직이 가능하다는 점은 다시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같다. L교수가 아닌, 또 다른 이니셜의 교수 역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부산대는 우리에게 끝나지 않는 악몽이 될 지도 모른다.
L교수는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하며 '사과에 대해 고민을 할 시간'을 달라고 인권센터에 요청한 상태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사과를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부산대가 학생들이 학교의 꿈이길 바래왔던 것처럼 비대위는 학교에게 우리가 믿고 지탱할 수 있는 꿈이 되어달라고 지난 4개월 간 외쳐왔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꿈 꾼 '파면'과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 중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산대의 꿈은 일방적이며 폭력적이다.
징계 결과를 받기까지 비대위는 끊임없는 질문들에 부딪혔다. 내부적으로 비대위의 활동 방향을 스스로 묻는 질문부터, 외부에서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 "영웅행세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들에도 계속해서 부딪혀왔다. 비대위는 영웅이 아니고, 영웅이고 싶은 사람들도 아니다. 영웅은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인물이다. L교수의 추행 대상은 정해져있지 않았다. '스승'이라는 지위 하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다. 따라서 부산대의 학생들은 위험에 빠진 사람들이다. 비대위는 스스로가 영웅이라 믿어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위험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에 가깝다.
이러한 위험을 없애는 것은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긴 시간이 걸리고 그 길 또한 험난할 것이다. 하지만 여태 바로잡지 못한 폭력의 화살이 우리 모두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그 화살에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모두가 우리 앞의 폭력에 다 같이 맞서면 조금씩 덜 다칠 수 있을 것이다. 비대위는 영웅이 아니지만 우리는 영웅이 될 수 있다. 부산대는 우리의 꿈으로 남지 못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꿈이 되어줄 수 있길 기도해본다.
"교수 성폭력, 학생들은 절차에 따라 배제됐다"
잔인한 봄이었다. 그리고 잔인한 여름이 되었다. 5개월이 지났지만 고통은 여전하다. 원인은 하나다. 아직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그 날'의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수십, 수백, 수천 종류의 고통으로 각자에게 기억되고 있는 일이다.
2018년 2월 28일은 신입생과 교수들, 학생회 구성원이 처음 만난 날이었다. 학생회는 전날까지 신입생들의 환영 행사를 기획했고 그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설렘과 긴장감이 봄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우리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학생회의 입장문을 썼다. 교수회의 입장문도 나왔다.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고, 고통스러웠고, 슬펐고, 눈물이 났다. 봄의 설렘은 그렇게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해 교수는 교수직에서 물러나겠다 밝혔다.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학교는 수리를 보류하고 자체 조사를 진행하겠다 했다. 3월 9일 졸업생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꾸려졌고, 3월 13일 비대위와 재학생들은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성폭행 가해의 교수와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그 사이 교내 동아리들의 교수 성폭력 해결을 촉구하는 대자보가 하나 둘씩 학교 곳곳에 붙여졌다. 그러나 학교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에서 대면한 것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지지가 아닌, 페미니즘과 여성에 대한 공격들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지지의 목소리는 존재했고 커져갔다. 축제 기간(5월 9~10일)에는 조속한 처벌을 요구하는 연대 서명을 받았다. 1200여 명이 넘는 학생들과 교직원, 시민들이 함께했다.
학교는 절차에 따라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성폭력조사위원회-인사위원회-징계위원회의 순이었다. 조사 기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있다. 조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위원회는 어떤 인물로 구성되는지 등 조사 단계에 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그 사이 가해자는 일부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 졸업생들과 접촉해 회유 및 2차 가해를 행했다. 지금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보도 자료를 내, 세 건의 폭로 중 한 건의 무혐의 처분을 가지고 모든 건이 무혐의 인양 여론을 호도하여 징계위원회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다. 학교의 미온적인 대처와 가해자의 파렴치한 대응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었다. 여러 연대 단체가 참여한 제도 개선 간담회와 교육부에서 자리를 만든 간담회 등 여러 간담회에 참여했으나, 현장과 행정의 온도차를 느꼈다. 여론이 만들어져 무언가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긴 하지만, 갈 길이 멀어보였다.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연락을 하거나 찾아가야 알 수 있었고, 그 과정에 대한 발표는 없었다. 조사 과정 중 가해자와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들과의 접촉을 막을 수 있는 어떠한 장치도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성추행 폭로가 있었던 P교수 경우에는, 학교와의 계약이 끝났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시행되지 않았다.
세종대는 그간 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을까. 학교의 시스템은 굉장히 허술했다. 과거 교육부에서 지침으로 내려와 만들어진 반성폭력 내규의 내용은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번처럼 학교가 '절차'를 운운하며 학생들을 배제하고 징계위와 이사회를 진행한다면 학생들은 어느 곳에도 안전하고도 (성)평등한 학습 환경, 학습권을 요구할 수 있는 통로가 없다. 타 학교의 사례를 참고하여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경우 조사위원회에 제도적으로 학생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해 올바른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향후 유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이 학교의 대처에 대하여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가 불편한 문제를 용기 있게 말해야 하고 이와 같은 불평등한 권력 관계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가해자는 성폭력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 명예훼손은 성폭행 사실을 고발한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성폭력을 가한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명예를 훼손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가해자들은 그것은 합의된 성관계였다고, 동의된 스킨십이었다고 하며 SNS상으로 주고 받은 대화를 상대방도 좋아했다는 증거로 내민다. 거기에는 어떠한 상하관계도 느껴지지 않는 '동등한' 위치의 '남녀'만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취업이, 내 진로가 교수에게 달려 있는 학생들은 상대방의 요구에 부합하도록 자신을 낮추고, 맞추며, 때로는 애교와 웃음으로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상하, 위계 관계에서 '언어'는 겉으로는 동의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비동의'가 있다. 우리는 그러한 맥락 속에서 성폭력을 이해해야 한다.
이 일을 겪은 우리 모두는 이 일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전'과 '이후'를 분명하게 다르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헤아려야 할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 헤아림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상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성학자 전희경 선생의 다음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성폭력에 반대하는 것은 그 반대를 통해 다른 사회, 다른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그 다름에 대한 상상력은 사회적 정의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하는 사이에서만 태어날 수 있다. 다시 한 번 써본다. 지금 우리에겐 '부정의'를 감각/인지할 수 있는 평균적 감수성 자체를 높이는 것, 그 '부정의'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동시에 다시 '정의'를 추구해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환기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생의 조건, 함께 살기위한 조건. 그러니까 이것은 결국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의 문제인 것이다.

▲ 세종대학교 관련 집회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비상대책위원회
'대학 미투' 대하는 학교 측의 '천하 제일 궤변 대회'
지난 6월말부터 프레시안은 대학 미투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당신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기획을 연재했다. (연재 전체 보기)
교수 성폭력에 대한 고발과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하겠다는 목소리는 올 봄부터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지만, 정작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대학은 없다. 프레시안에 실린 8개 대학의 미투 사건도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들은 가해 사실에 대해 부인하고 있고, 동료 교수들로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솜방망이 처벌'로 면죄부가 주어지고 있다. 학교는 형식적인 처벌을 통해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하고, 교육부는 '학교 자율'에 개입할 수 없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하며 '위드유'를 외치며 연대하는 이들이 바라는 '평등하며 안전한 학교'는 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교육의 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한국 사회는 계속 눈 감고, 귀 막고,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있을 것인가? <당신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연재를 마치며 다시 한번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고자 각 대학별로 미투 운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좌담회에는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의장 문아영, 성균관대 위드유특별위원회 함수민, 연세대 A교수 성폭력 대응을 위한 학생연대체 윤영경, 이화여대 조예대 학생회 공동대표 신혜슬, 동국대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쿵쾅' 예진 등 5명이 참여했다. 지난 9일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진행된 좌담회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성균관대 위드유특별위원회
징계 결과는 가해교수에게만 통보, 학생들은 '깜깜이'
프레시안 : 이 좌담회는 '당신을 위한 강의실은 없다' 기획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담당한 학생 중 한 명이 연재 기간이 방학이라 걱정이라고 하더라.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면 학교도 모른 척하고 학생들 관심도 많이 떨어질 것 같다고 걱정을 했는데, 현재 각 학교 상황이 어떤지 듣고 싶다.
함수민(성균관대) : 성대 미투는 남정숙 교수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학교 측이 이후 자신들의 발언을 번복할까 걱정이 크다.
다만 남정숙 교수 사건을 계기 삼아 '양성평등센터'라 불린 학내 성폭력 관련 일을 처리하던 기구가 '인권센터'로 바뀌었다. 물론 학교 측은 남정숙 교수 사건이 계기가 아니라 원래 바꾸려고 했다고 한다. 교육부 방침이 모든 학교에 인권센터를 설치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발 맞춰 인권센터가 생겼는데, 미투에 연대했던 단위들이 이 인권센터의 운영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개입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든 학교가 다 그런 편인데, 새로운 기구의 설치 등에 대해 잘 홍보가 되지 않는다. 양성평등센터가 인권센터로 바뀐 것을 학우들은 잘 모른다. 인권이라는 이름은 엄청 공허할 수 있다. 이 센터가 어떻게 굴러가고, 어떤 하위 분야가 설치돼 그에 대한 실무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등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내용에 대해 총학이나 총장에게 질문하고 제안하는 내용의 공문을 '위드유특별위원회' 이름으로 발송하는 것에 대해 검토 중이다.
문아영(동덕여대) : 지금 방학기간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지방에 내려가는 경우가 많아 회의를 하기 어렵고 학생들 사이에서 공론화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여전히 비상대책위원회 중심으로 대응을 계속 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문제는 학교가 비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 안한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언론사의 취재 요청이 비대위를 통해서 이뤄졌고, 지금까지 언론 기고, 입장문, 대자보를 내는 등 계속 활동해왔다. 우리는 총학생회와도 연계하고 있다 보니까, 학생처장이 총학을 통해 비대위도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고, 6일 처장과의 면담이 이뤄졌다. 그런데 사실상 그 면담이 무산됐는데, 그 이유가 공동의장인 저와 비대위원이 찾아갔을 때 학생처장이 또 다른 공동의장을 전에 만났었다며, 그 의장이 오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반말을 사용해서 바로 제가 '반말을 하지 마시라'고 했더니, '다른 공동의장이 없으면 이 면담을 진행할 수 없다'면서 사실상 면담이 취소됐다. 학생처장과 그 일정을 잡을 때부터 다른 공동의장이 필히 참석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지 받은 적이 없었다. 이에 대한 규탄서를 냈다.
윤영경(연세대) : 최근 교원인사위원회가 열렸고, 감봉 1개월 정도의 징계가 결정됐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태다. 학교 측은 사립학교법에 따라 징계 결과는 당사자가 아니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내 기자들이나, 학생위 대표가 찾아가 얘기해도 '징계 결과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위법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계속 얘기한다. 최근 외국어대 등 다른 학교는 결과를 공개했다고 반론을 제기하니까, '외대는 위법을 저질러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인사위원회 다음 단계가 재단징계위원회인데, 여기서 결정이 최종 결정이다. 이 역시 계속 소문만 무성하게 퍼지고 있다. (결정이) 나왔다 안 나왔다도 학교가 확언을 해주지 않고 있고, 그냥 시기상 '나왔다'는 심증만 있다. 만약 최종 결정이 감봉 1개월이라면, 저희는 계속 활동을 해야 하는데... 학교에 물어보면 '너희들이 알려면 알 수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현재 A교수가 다른 교수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학교 관계자들이 자기가 책임을 지기 싫어서 학생들의 불안감을 방치한다는 게. 교육기관으로 절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혜슬(이화여대) : 해당 과 학생들 사이엔 '그 교수 수업 듣지 말라, MT 가면 같이 있지 말라' 이런 목록이 그 전부터 있었다고 들었다. SNS를 통해 먼저 K교수 비대위가 설립되어서, 학생회 차원에서 함께 대응해도 좋은지 동의를 받고 같이 하고 있다. 조형예술대학 차원에서 기자회견을 가졌고, 그 다음날 음대에서도 미투가 터져 나와서, 현재 음대랑 미대가 같이 '예술계 미투'로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대는 총학생회에서도 같이 대응하고 있고, 그 이후 학생총회나 공동집회 등 많은 것을 함께 했다. 저희는 만족하지 않지만, 다른 학교에 비해 학교 측 대응이 빨랐다고 한다. 성폭력심의위원회도 해당 교수들이 재심의를 신청해 결과 발표가 좀 늦어지긴 했지만 빨리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 측은 징계절차와 관련해 어떤 내용도 학생들에게 공유하지 않고 있다. 일시, 장소 등에 대해 전혀 알려주고 있지 않다. 성폭력심의위가 끝나고 징계위원회 개최가 늦어져, 학생회나 학생들이 대자보도 쓰고, 기자회견도 하면서 계속 의견 표명을 했다. 마지막에 '빠른 징계위를 촉구한다'는 연대성명서를 모아서 전달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는데, 끝나고 돌아가 보니 관련 기사가 나왔다. 그날 기자회견을 소개하는 기사 마지막에 '학생들의 주장과 달리, 이미 징계위가 끝났다'는 내용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교무처에 항의 방문을 갔다. '우리가 수없이 많은 공문도 보내고, 정문에서 빨리 열어 달라는 서명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그걸 보면서 무슨 생각했느냐? 왜 얘기해주지 않았냐?'라고 했더니, '징계위를 빨리 열어달라고 했지, 이미 열렸는지 안 열렸는지를 공개해 달라는 건지는 몰랐다'라고 했다.(웃음)
그래서 '그럼 우리가 징계위가 열 것이냐, 열리냐, 열렸느냐? 라고 어미를 바꿔서 물어봐야 하는 것이냐'라고 따져도 교무처는 홍보팀에 돌리고 홍보팀은 학생처에 돌리고, 계속 회피를 했다. 그래서 3자 대면을 하자고 전화했더니, 칼 퇴근을 하더라.
우리가 '학생들이 먼저 알아야 하지 않느냐. 어떻게 기사를 통해 알게 하느냐'며 사과 요청을 했더니, '지금 이 자리에 온 학생들에게는 사과한다'고 해서 '사과문을 작성해 달라'고 했더니, '여기 있는 학생들에게는 사과하지만, 전체 학생들에게는 할 수 없다'며 사과문 작성을 회피했다.
인권위 결정 나오자 검찰 조사 기다려야 한다는 학교
프레시안 : 현재 미투 폭로가 일어난 뒤 학교마다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과거와 달리 인권센터, 징계위원회 등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형식이나 절차는 갖춰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징계위원 구성, 조사 방식이나 수준 등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정당성을 보장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학생들이 완전히 배제되며, 그 결과조차 통보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인 것 같다.
신혜슬 : 학교에 징계위 결과를 공유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법적으로 가해 교수에게만 공개가 되는 거라면서 피해 신고자에게도 공유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피해 당사자는 가해 교수가 3개월 후에 돌아오는 것인지, 아니면 3년 후에 돌아오는 것인지 알 방법이 없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항의 운동 차원에서 가해 교수 연구실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는데 징계위가 끝났으니 떼야하지 않겠냐고 한다. '이미 끝났다'고 가정하고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저희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징계 결과가 공개가 되어야 합당한 결론인지 논의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 측에 '왜 징계 결과를 적어도 피해 신고인에게는 공유해야 하지 않겠느냐. 언론 기사에서는 결과가 나오면 빠르게 공유하겠다고 얘기하지 않았느냐. 지난 번 항의 방문에서도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징계위가 끝났다는 것을 빨리 알려준다고 약속했지. 언제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느냐'라고 말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결과를 알려줄 때까지 못 나간다고 그 자리에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총학생회에 따로 연락해서 '자기들도 공유하고 싶지만 공유할 수 없으니 학생들이 우회적으로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더라.
교육부에 민원도 넣어봤는데, 교육부도 권고는 할 수 있지만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다행히 피해 신고인은 결과를 공유를 받긴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공유를 못 받았다. 학교 측은 '교수 명패를 뺀다는 것은 인정하고 나가겠다는 뜻이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학생회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명패를 뗐으니 안심하라고 얘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과가 공유돼야 사건이 끝났는지 여부를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문아영 : 앞서 학생처장과 면담이 무산되고 학생처 팀장과 면담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학교 측의 말 바꾸기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H교수 사건과 관련해 학교에서 몇 차례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리다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와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진상위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지난 7월 13일에 인권위에서 결정문이 나왔다. 결정문에 총장에게 가해 교수를 징계를 권고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인권위가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으므로 그 결과를 기다리겠다고 한다. 앞서 인권위 핑계를 대더니 이제는 검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학교에서 얘기를 해준 것이 아니라 언론사 기자가 학교를 통해 취재한 사실에 대한 학생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를 해서 알게 됐다. 피해 학우도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또 진상위 조사 과정에 피해학우가 출석해서 진술하고 싶다고 했는데 처음엔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결국 출석해 진술하게 됐다. 그런데 피해학우가 출석한 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으면 학교로서는 불편하다'라는 식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했을 뿐 아니라 피해학우가 진술하는 동안 진상위원들이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진상위 조사 과정과 결정에 학생들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학교 측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의례적인 답변만 받았을 뿐이다.
함수민 : 성대도 미투 사건과 관련해 교무처장과 면담을 가졌다. 원래 총장과 면담하기로 했는데, 교무처장이 들어왔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재학생 대표인 제가 참여하는 것조차 학교 측에선 처음에는 가로 막았었다. 나이 어린 주제에 어른들 대화에 끼는 사람 정도로 폄하하고, 사과를 요구하자 사과도 없었다. 하지만 학교 측이 듣는 척도 하지 않다가 간신히 면담 자리가 만들어진 것인지라, 자리를 깨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오늘 이 자리의 의의를 잊지 맙시다'하고 엄청 좋은 척하고 그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런데 사실이 확인된 사안이 하나도 없었다. 양측이 이야기하는 바가 여전히 많이 달랐고, 우리가 자료를 요구하니까 그들은 뭉치를 내놓고, 확인하게는 못할망정 '이게 자료야. 됐지?' 이런 식으로 보여줬다.
2차 가해도 엄청 많았다. 남정숙 교수가 정신이 이상하다는 식의 개인적인 음해, 1심에서 가해자에게 징계 처분이 났다고 해도 2심, 3심은 모르니 설레발치지 말라는 등 정말 비일비재했다. 애초에 진상조사위에서 징계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조사위원들의 2차 가해가 너무 심하다'고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해도 위원들이 교체되지 않고 징계위원이 됐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애초에 없다. 그러면서 '일사부재리'라는 이유로 '재조사가 불가하다'며 '파면은 하지 못한다. 학교는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듣는 앞에서 '이번 미투 사안은 굉장히 쉬운 사건이었다. 일사천리로 해결된 아주 쉽고 간결한 문제였다'라고 이야기한다. 미투에 대한 무게를 전혀 실감하지 않고, '쉽다'라는 표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정직 3개월'을 내놓고 '최선이다'라고 하면 누가 학교 공간을 신뢰하겠는가.
피해학생에게 직접 전화해 '수치심을 느꼈나요?'
윤영경 : A교수는 오랜 기간 수업 내 성희롱 행보를 해왔고, 해당학과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저 교수 수업 듣지마' 이런 얘기가 전해 내려왔다. 해당 과에서 여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하자 인사위원회를 꾸렸다. 좀 황당한 게 나이 많은 교수가 인사위원장을 하는 식으로 젠더 감수성과는 완전 무관한 위원회가 꾸려졌다. 피해 여학생들의 진술은 대책위가 직접 걷어서 주겠다. 피해 당사자에게 직접 연락하지 말라고 누누이 얘기했는데, 인사위원회의 교수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수치심을 느꼈냐?'는 식으로 질문을 했다. 이런 것들이 다 2차 가해인데 전혀 제재가 안 되고 있다. 또 인사위원장이 피조사인인 A교수에게 조사 녹취록 중 일부를 넘겨서 A교수가 자신의 대학원 수업에 이 녹취를 틀면서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등 공모와 결탁의 정황이 있는데도 학교는 계속 조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처럼 가장 문제라고 생각되는 지점은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학교의 시스템이 명목상 기구만 있고, 사실상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건은 1년 전부터 문제가 됐다. 학과 내에서 해결을 하려다가 결국 안 풀려서 학교 본부에 성폭력 사건으로 접수를 했는데, 이 과정도 매우 문제적이다. 지금 A교수는 '자기는 성폭력 의도가 없었으니까 성폭력 교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성폭력'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대자보를 문제 삼아 다른 교수 한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다. 학생들에 대한 고소는 아니더라도 나중에 충분히 걸 수도 있는 상황인데, 학교가 성폭력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안 내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성폭력 사건으로 학과장을 통해 대리 제소를 했다. 지난 1년 동안 학생들도 너무 지쳐 있고, 일부 남학생들은 A교수 친위대처럼 '우리 교수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며 감싸고 있는 상황이라서 대리 제소를 하게 됐다. 그런데 학생들은 성평등센터의 성폭력심의위원회를 통하려고 했는데, 교무처에서 학과장에게 윤리인권위원회를 통해 신고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의 주 업무는 김영란법 위반, 즉 교원의 윤리 의무 위반에 대한 신고가 이뤄지는 기구다. 그래서 학과장이 그쪽으로 제소를 했다. 저희가 대리 제소를 수락하는 조건으로, '피해 여학생의 진술서를 이미 냈고, 인사위원회를 통해 그 효력을 인정받았으니 가해자 대질 등 추가적인 진술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원칙'이라면서 계속 피해자들이 출석을 하라고 요구해서 어쩔 수 없이 갔다. 그런데 나중에 학교 교지에서 취재를 해보니 대리 제소일 경우 출석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학교가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규정을 어기고 있는 상황이다. A교수는 자기가 억울한 교수라며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2차 가해로 신고를 한번 더 하려고 했는데, 대책위 차원에서 학과장이 제소한 것과 똑같은 메일 주소로 제소를 하자, 답변이 '윤리인권위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홈페이지에 접수된 사건만 처리됩니다'라고 왔다. 그래서 학교에 항의를 하고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를 하려고 하니, 교수만 로그인할 수 있는 사이트였다. 학생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는데, 담당자가 모르고 교수만 로그인이 되는 사이트를 알려줬을까.
우여곡절 끝에 (A교수 사건을 계기로 발족한 여교수회를 통해) 2차 가해에 대한 신고를 접수했다. 그랬더니 답변이 왔는데, 2017년 7차 윤리위원회와 2018년 1차 윤리위원회 의결로 이미 처리된 사건이기 때문에 재심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고도 하기 전에 무엇을 의결했다는 것인지, 학교 측의 말을 도저히 믿기 힘들다.
프레시안 : 갖춰져 있는 시스템과 절차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인데 학교가 과연 공정한 중재자인가,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피해자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에 대해 학생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윤영경 : 시스템이 없다면 없다는 이유로, 있다면 그 있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학생들을 배제하려고 한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가장 큰 문제다.
문아영 :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사실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교수 성폭력 문제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학교 전체 구성원의 성인지가 부족하다고 인식하지는 않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저희가 성희롱.성폭력 관련 규정을 다른 대학들과 좀 비교해 봤는데, 빠진 내용이 너무 많았다. 특히 피해자 보호와 관련된 내용은 너무 허술하다. 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가해교수 뿐 아니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다수의 누리꾼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데, 이런 걸 학교가 전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함수민 : 동의한다. 저도 사실 시스템을 보면 학교가 만든 것이라는 느낌이 확 든다. 그 의미는 피해자 중심주의, 우리가 흔히 아는 성평등 의식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절차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암암리에 쉬쉬하면서 모든 결정이 내려지는 방식으로 시스템이 운영되는 것 같다.
교수도 교육노동자다. 그런데 엄청난 명예직이라고 생각되고, 그 명예를 주변에서 다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대단한 명예는 '정직 3개월'만 해도 대단히 실추되는 것처럼 말한다. (2편에 계속 됩니다)
'페미는 정신병'? 지성의 보루라는 대학의 실상입니다

ⓒ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
미투는 성별위계에 기반한 대학 문화의 문제다
프레시안 : 대체로 학교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가 가장 큰 문제고, 무엇보다 가해자가 오랜 기간 강단에 있으면서 피해자가 누적되어 온 문제이지만, 미투를 통해 그냥 단편적인 사건으로만 드러났다는 사실도 공통적인 지점이다. 또 이런 성추행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대학 내 문화도 공통적인 문제다.
윤영경(연세대) : 학생들이 학교에 요구하는 것은 A교수가 성폭력을 저지른 것이 맞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게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하는 방식이고, 무너진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는 길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
이 와중에 '에브리타임' 같은 학내 남학생들의 익명사이트 등에서 '내가 봤을 때 A교수가 엄청 좋은 사람 같다.'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 '이런 고발하는 건 다 페미다', '페미는 정신병이다'는 등 발언이 난무한다. 피해 당사자는 심적 부담이 엄청나다. 남녀공학이라서 이런 생각을 가진 남학생들과도 부대끼며 학교를 다녀야 한다. 학교 큰길을 걷기만 해도 '지나가는 쟤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드는 게 사실인데, 학교에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있다.
문아영(동덕여대) : 동덕여대에서 처음 미투 고발이 이뤄진 것은 H교수의 강의실 내 여성 비하 문학론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학생들이 계속 갖고 있었는데, '안희정 미투'에 대한 폄하 발언을 계기로 공론화가 되기 시작했다.
사실 저희가 문제제기를 하는 것의 가장 첫 번째는 강의실에서의 위계폭력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쉽게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함수민(성균관대) : 미투는 문화의 문제다. 지금 보면 강의실 내에서 성차별 발언이나 미투 희화화는 여전하다. 남성들은 성차별적 발언을 아직도 유머로 소비하고, 여성 차별적 발언도 공공연히 이뤄진다. 교재 내에서도 그런 내용이 보이는데 수정도 안 되고 10년 넘게 쓰이고 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아무도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간신히 강의 평가 목록 중에 '성차별 발언이 있다면 쓰라'고 해서 늘 글자 수가 초과될 만큼 쓰지만, 많은 학생들이 이런 내용을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익명으로 쓰는 것이지만, 과연 익명이 보장되는지 의구심을 다들 갖고 있다. 교수들이 가끔 '너네 강의 평가 써봤자 내가 모를 줄 알지? 그거 다 아는 방법이 있다'라는 말을 장난인지 진담인지는 모르겠으나 하기도 한다.
성균관대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이다. 재단도 보수적이고. 그러다 보니 미투와 관련한 모든 행동에 제재가 가해진다. 애초 문화적으로 여성에 대한 존중, 소수자에 대한 존중, 어린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다보니, 그런 기반 위에서 미투가 일어났을 때 과연 누가 보호를 받을 것인가. 심지어는 총학생회조차 연대하지 않는다. 총학은 '남정숙 교수를 지지하는 학우들의 이야기와 학교 측 이야기가 너무 상이하니 자기는 연대할 수 없다'며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또 학교나 총학이나 우리가 다 옳은 이야기를 해서 할 말이 없어질 때 꺼내는 카드는 '위드유특위, 너희가 어디 소속이냐, 정식인준을 받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식의 프레임은 늘 모든 인권 활동이나 소수자 활동을 막아왔다.
최대 형량이 정직 3개월? 판박이 징계 결정
프레시안 : 공정성이 담보되지 못한 징계 절차를 거쳐 소위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는 것도 공통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함수민 : 학교 공간 안에서 최대 형량이라고 내려지는 것이 정말 다들 비슷하게 '정직 3개월'이다. 학교들마다 '정직 3개월은 우리가 교수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처벌'이라는 말을 동일하게 한다. 이런 얘기도 한다. '여기가 학교인데 다 알지 않지 않느냐. 우리가 파면할 것 같아요? 사직서를 내면 그걸 받아들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한다.
조사위나 징계위에 대한 문제제기도 당사자만 할 수 있다. 연대해서 활동해온 사람들은 전혀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오히려 가해자만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권력 관계가 역전되어 있다.
신혜슬(이화여대) : 저희도 계속 파면을 요구했는데, 파면을 해도 5년 후에 해당 학교는 아니지만, 교단에 다시 설 수 있다고 들었다. 해임은 3년 후에 해당 학교로 돌아올 수 있고. 그렇다면 가장 수위가 높은 징계인 파면도 사실 피해 호소인들을 보호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또 정직 3개월과 해임 사이의 징계 수위가 없어서, 해임은 학교 측에서 생각하기에 너무 무거운 것 같으니까 '정직 3개월'이 제일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문아영 : H교수는 작가이기 때문에 다른 예술 활동을 통해 충분히 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미 타 매체 인터뷰를 통해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새 작품을 쓰고, 외국 대학에 교수로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혜슬 : 해임이 되어도 교직원 연금이 나온다고 들었다. 그래서 저희도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저희도 예체능 쪽이기 때문에 교수가 아니더라도 각종 공모전에 심사위원 등으로 어디서나 만날 수 있어 미투 폭로에 나서기 힘든 경우다. 그래서 학생들은 성폭력 피해 신고를 하기도 어려운데, 가해 교수들은 정직이나 처분이 내려졌어도 열려 있는 미래가 있다.
윤영경 : 저희는 '대학에서 수업을 못하게 하고, 대학원 수업에서 학생 녹취 진술을 트는 등 2차 가해를 자행하니까 징계가 결정되면 대학원 수업도 못하게 하라'고 요구했더니, 그렇게 되면 '교수에게 월급을 줄 근거가 없다'며 안 된다고 하더라.
저희는 파면을 요구했는데, 징계위 내에서는 정직 3개월도 너무 심하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왜 이런 인식의 차이를 보이냐면, 징계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교수다. 연세대는 교수들의 성인지 교육 이수율이 제일 낮은 학교 중 하나다. 교수들은 남초 집단이고 권위의식이 강한 집단이다. 이런 사람들이 징계위원을 구성하고 있으니 당연히 징계 수위가 낮을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가해 교수들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한데 처음에는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하겠다고 하다가 실제 징계 절차에 들어가면 말을 번복하는 경우가 많다.
윤영경 : 저희는 처음에 학과 간담회에서 본인이 먼저 '말을 하겠다'고 하고 사실 관계를 인정하냐고 물었더니 인정하겠다고 했다. 사과도 약속을 했다. 그리고 나서 몇 달이 지나도 사과를 하지 않아서 '사과를 왜 안 하시냐'고 메일을 보냈더니 '사과는 합니다. 진상조사위원회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답장이 왔다.
그런데 진상조사위원회가 아니라 인사위원회가 진행 중이었는데, 갑자기 '진상조사위원회'라고 말을 달리하면서 마치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면서 1년이 지나도록 약속한 사과도 안 하고 다른 교수를 고소하는 상황에까지 다다르게 됐다.
'주어' 생략된 유감 표명이 공식 사과?
문아영 : 저희는 H교수가 성추행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상태다. 3월 14일 처음 미투 폄하 발언이 공론화되고, 3월 15일 피해학우가 학내 커뮤니티 통해 성추행 고발을 한 뒤에, 3월 19일 H교수가 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H교수는 학교에 사직서를 낸 상태고, 학교는 아직 이를 처리하지 않았다. H교수는 징계위에 출석하라는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고, 모든 것을 서면으로 제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한다. 이미 사직서도 제출한 상태에서 어떤 징계 결과가 나온들 어떤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저희는 파면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학교는 답변을 하지 않고 있고 교육부 등 정부기관에서도 사립학교 문제에 대해선 '권고' 이상의 강제력을 갖기 어렵다고 답변을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함수민 : 저희는 가해 교수가 성추행을 인정했다. 그런데 어떤 방식이냐면 '나도 안다. 하지만 어떡하느냐. 나도 나를 주체할 수 없다'며 자신의 성폭력을 아주 정당한 일인 것처럼 말했다. 남정숙 교수에 대한 사과도 어떤 방식이었냐면, 가해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나는 누구에게 이런 일을 저질렀고, 정말 죄송하다'가 아니라, '학교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죠?'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것이 사과였다는데, 자신의 가해 사실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사과의 대상이 누구인지로 확실치 않았으며, 반성도 없었다. 학교 측이 이 사건을 계속 쉽다고 말하는 이유는 가해자가 가해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정직 3개월'이다.
프레시안 : 현재 학교와 학생 사이의 내부적인 문제로 학교 차원에서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 등 정책적인 차원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얘기해달라.
함수민 : 사실 내부적인 해결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공간의 문화를 바꾸는 핵심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우리가 공동체 내부적인 해결을 원했는가. 그리고 어째서 학내 기구를 중심으로, 혹은 학내 단위를 중심으로 학우들이 중심이 돼서 문제를 지적하고 이것이 바뀌어나가는 과정에 왜 우리가 목맸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것은 형편없는 시스템을 조금은 더 여성주의적으로, 그리고 미투의 흐름에 맞게 바꿔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말한 대로 우리가 '오히려 너무 고립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리고 학교가 지정한 익명게시판에서 너무 많이 조리돌림을 당한다. 그래서 우리의 안전이 실질적으로 온라인을 넘어서 오프라인에서도 위협을 당한다'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봤을 때 조금 암담하다.
우선은 학교에서 여성주의 자치기구나 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기구 등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이 오히려 전체 학교의 조직 내부의 안정성과 갈등 해소에 필요한 일 아닌가. 성평등위원회라든지 인권위원회라든지 각 단과대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아주 소수의 위원회들이 엄청 많은 부담을 지게 된다. 이런 단위들이 곳곳에 있으면 성폭력 등 문제가 발생했을데, '그것에 맡기면 되겠네' 이렇게 생각되고 절차상 안정되어 있을텐데, 지금은 성폭력이 발생하면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묻어. 묻어' 이렇게 흘러가는 것 같다.
여학생위원회에 군필자 위한 활동을 하라?
프레시안 : 미투 활동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위협을 느낀다는 말이 다소 충격적인데, 좀더 자세히 말해달라.
함수민 : 정말 많다. 미투에 연대한 단위들에 대한 압력이 대표적인데, 중앙동아리는 동아리 중에서 힘이 좀 있다. 학교 측 지원도 받고, 동아리실도 보장된다. 그런데 모 동아리가 미투를 지지하고 관련 학내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앙동아리에 들어가는 자격을 박탈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저는 '위드유특위'뿐 아니라 문과대 여학생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문과대 여학생위원회가 남정숙 교수 미투 운동에 앞장섰던 단위인데, 저희가 관리하는 여학생휴게실에 대해 '재네가 점거하니까 뺏어야 한다'며 이 문제를 특별안건으로 상정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또 여학생위원회는 독립기구가 아니라 특별기구라 매년 인준을 받는다. 인준 절차에 오만 가지 두꺼운 서류를 준비해 가도, 반대에 부딪힌다. '남자를 위한 활동을 하지 않느냐? 군필자를 위한 활동은 왜 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을 한다. 이는 사실 남성의 범위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성소수자, 장애학생들에 대한 인지가 전혀 없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정말 너무 당당하게 요구되니까 우리는 인준받기 위해 덜덜 떨 수밖에 없다. 너무 힘이 없으니까. 그런데 막상 성폭력 사건 등이 문제가 발생하면 온갖 실무는 우리가 다 담당해야 한다. 성평등 문화 조성을 우리가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위상을 인정하고 높이기보다는 깎고 우리의 권리를 하나하나 앗아가려고 한다.
신혜슬 : 저는 교육부에서 움직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육부는 특히 사립학교에 대해서는 권고만 할 수 있고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저희 학교에서 한 번 간담회가 있었다(2018년 4월 11일). 교육부총리와 일부 국회의원들이 참석했는데, 학생들과 참가자들이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이 '그래서 교육부는 뭘 했느냐? 뭘 할 수 있느냐?' 였다. 교육부 미투 담당자가 계속 명확한 답을 못하다가 '솔직히 얘기하면 교육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학교 자치/자율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만 말하더라. 교육부는 '학교 자율'을 말하고, 대학은 '교육부에서도 권고만 내리고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건데, 왜 우리한테 그러느냐'면서 그 틈새를 이용해 빠져나간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도 안에서 가해자는 굉장히 잘 보호되고 있다. 정말 철통같이 보호하면서 피해 호소인이나 학생들은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갭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저는 교육부에서 권고 이상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보여야 한다고 본다. 간담회 이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했다고 만든 게 신고센터를 만들었는데, 지금 신고를 못해서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피해 호소인이나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그걸 교육부에서 충분히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고만으로 끝낸다는 것은 할 의지가 없는 것 아닌가.
또 교육부 내에서 대학 내 성폭력 담당자가 한 명이라고 들었다. 인력도 좀 더 배치해서 권고가 아닌 그 이상의 영향력을 교육부가 행사해야 대학도 움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고' 이상은 못한다는 교육부, '대학 평가'에 성평등 포함시키자
문아영 : 사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처벌이라고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교육부에 대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 없다고 답변을 하는데,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교육부의 대학 평가에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학들이 국립대학, 사립대학 불문하고 대학 평가에 연연한다. 대학 평가 세부 항목으로 학내 성폭력이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전수조사가 매년 이뤄지고 있는지, 교직원과 교수 등이 성평등교육을 얼마나 잘 이수하고 있는지 등을 넣어야 한다. 왜냐면 학교가 교육부가 아무리 권고한들 들을까 이런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윤영경 : 현재 교육부에서 권고를 했을 때, 이를 듣지 않았을 때 벌점 등 실질적인 손해가 있어야 대학들이 이를 따를 것 같다. 그리고 현재 학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규정이나 시스템이 미비하고 구멍이 나 있는 상황인데, 이런 부분에 대해 교육부가 개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측에서 교원 윤리 규정에 품위 유지 규정이 있는데, 여기에 성폭력을 저질렀을 때 어떤 제재를 가하는지에 대해 규정이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해서, 총여학생회에서 찾아보니 세세하지는 않아도 규정이 있긴 있었다. 이런 태도를 보면 학교 측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학생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싶다. 우회적으로 알아봤을 때 '학생들을 지치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방학까지 끌었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것을 보면 학교 내에서 전혀 자정이 안 된다는 얘기다. 교육부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 않더라도 이런 시스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부가 연대 A교수의 징계 문제에 대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학교가 소위 가해자 감싸기를 한다거나 이런 정황에 대해 학생들이 직접 소통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놓으면 대학들도 좀 의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의 교육부 권고는 솔직히 학생들 입장에선 '너희들도 한통속이야?' 이런 느낌이다.
신혜슬 : 2차 가해도 매우 많았는데, 기사에도 나왔지만 '너희들 치마가 짧아서 미투 운동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발언이나 '미투가 있어서 지원금이 끊겼다'는 이런 이상한 말로 학생들을 협박하면서, 모든 게 학생들 때문이라고 탓을 했다. 학생회나 조금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저 말, 들을 필요가 없는 소리구나' 하고 알지만, 일부 학생들 중에는 동요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교수들도 성평등 강의가 필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행을 안 했을 때 어떤 불이익은 없다고 한다. 이런 것도 교육부에서 조금 더 강제해야 한다.
또 교수들이 가진 권력, 본인은 엄청 명예 있고 권력 있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물론 훌륭한 분들도 많겠지만, 성범죄를 저지른 분들까지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건 본인들이지 않나. 꼭 성범죄가 아니더라도, 위계질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도 해소됐으면 한다.
프레시안 : 방금 지적한 것처럼 대학 내 성폭력 문제가 교수-학생 간의 위계, 또 성별간의 위계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문화의 문제이고 많은 교육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책이 있다면 말해달라.
윤영경 : 남학생들 사이의 익명게시판인 '에브리타임'은 폐쇄해야 한다.(웃음)
학내 문화라는 게, 문과대는 여학생 비율이 높은 편인데 '옛날에는 여교수가 들어오면 연구실 안 주고 조교들과 같이 사무실을 쓰게 했다' 이런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교수들이 있다. 해당 과는 여교수가 한 명도 없었다.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우리 과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많아서...'라고 한다.
이런 게 충분히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남학생과 여학생 간 사이에 성인지 인식 차가 상당히 엄청나고, 이런 것들이 여학생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에브리타임이 아무리 익명 커뮤니티라고 해도, 거기서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성차별적 의견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내가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 하나라는 얘기이지 않나. 그래서 사실 학교에서 몇몇 의식 있는 강사들이 '페미니즘 문화' 이런 수업을 열면 발표를 할 때 저 뒤에서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는 저 남학생들, 또 자기들끼리 뒷담화로 '쟤는 페미잖아'라고 낙인을 찍고. '성폭력은 나쁘다'라는 말은 남교수도 하는 말인데, 여학생이 이 말을 하면 '페미'로 낙인 찍히고, 여학생들은 점점 더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된다. 남학생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내야 하고, 그러다보니 남학생들의 발화가 더 많고 권력을 가지게 되고, 이런 학내 분위기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문아영 : 사실 이 자리도 특정 언론사가 아니라 교육부에서 학교의 미투를 고발한 피해 당사자나 혹은 이렇게 비대위나 총학 등 연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면담 요청을 해서 주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교수와 학생 간 위계도 있지만, 그보다 원초적인 것은 남성과 여성간 성별 위계인 것 같다.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된 현실은 성폭력을 '나쁜 사람, 어떤 괴물 같은 사람'이 일으키는 게 아니라 물론 처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 나와 같이 생활하는 사람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그 근원은 성별 간 권력 차이고, 여성혐오에 기반한 것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미투를 지지하는 이유가 개인 간 성폭력 사건에 연대하는 것도 있지만, 이게 결국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고 여성혐오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대해 싸우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학교 측에서는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논의가 확장되지 않는다.
윤영경 : 지금 학교가 길게 못 보고 근시안적으로 숨기기에 급급하다. 학교가 남성중싱적인 학내 문화와 분위기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전혀 없다.
문아영 : 지금은 '동덕여대 H교수 성폭력 비상대책위원회'로 활동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논의한 것은 '이 사건만의 해결을 위해 모인 것이 아니다. 길게 가서 인권센터를 만드는 것까지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인권센터가 있다고 해서 제 역할을 하지는 못하는 학교가 다반수지만, 우리는 그 인권센터조차 없는 학교다.
'미투 이후의 대학'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개인적으로는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이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점을 가장 크게 보고 있다. 대학 미투를 포함한 스쿨 미투는 미래 세대에게 한국 사회가 어떤 미래로 다가가느냐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아영 : 지금 일부에서 말하는 게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고등교육을 받고 있고,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진출하고 있는데 어떤 불평등이 있느냐고 한다. 물론 반박할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대학 내 미투만 봐도 사실 학생들이 입학해서 교육을 받는 동안 이렇게 성추행 당하고, 성희롱 당하고, 성폭력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여성들에게 교육권이 동등하게 보장되느냐 물어야 한다.
윤영경 : 교육기관이라는 것이 학교 건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개별 교수들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징계위원회에 들어갔을 때 딱 교수들의 인식은 학생들은 4년이 지나면 졸업할 것이지만 동료 교수는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교수들 사이에 이런 저런 연계로 다 얽혀 있다면 얽혀 있지 않나. 그러니까 동료 교수에 대한 인식만 공고하지,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 교수에 대한 인식 자체는 부재하다.
문아영 : 사실 같은 위치에 있는 교수가 징계위원이 되는 것이 저희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수는 그런 일을 조사하고 징계 처벌을 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윤영경 : 재단징계위원회에는 학교 이사들이 들어가는데, 이들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는 것도 사실 성인지, 전문성 측면에서 말이 안 된다. 교육부에서 이런 구조적인 모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했으면 좋겠다.
예진 : 처음에 연대체를 구성하고 5.15 기자회견을 통해서 스승의 날에 '가해자들은 스승의 자격이 없으니 파면하라' 이렇게 요구를 하면서 대응 단위를 만나게 됐다. 사실 사회적으로 미투가 엄청 주목된 것과 조금 다르게, 대학 미투는 엄청 많이 제기되고 가시화됐는데도 어떠한 처벌도 내려지지 않고 있는 학교가 대다수인 것 같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각 대학마다 유사한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연세대 A교수 하나, 동덕여대 H교수 하나, 이렇게 해결한다고 결코 '끝났다, 우리 학교가 안전해 졌다'라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몇 개월의 미투 운동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징계위나 절차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이런 제도 개선이 엄청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투 이후'의 대학을 우리가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를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공동기자회견이나 연속 기고를 기획했던 것도 미투가 하나의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이고, 그 중에서도 대학 미투는 모든 대학의 보수 권력과 성별 권력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문제라서, 한 학교의 사건이 해결된다고 학교가 안전해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완전한 공동체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으나, 같이 행동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미투 이후에 실질적으로 미투에서 봤던 학교 권력기관의 한계, 인권센터가 있는 곳은 있는 대로의 한계, 없는 곳은 없는 대로의 한계, 징계위 학생 참여를 배제하는 등 학생을 학교의 한 주체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사실 등이 확인됐다. 이런 문제들에 주목하면서 '미투 이후'의 대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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