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승부사 트럼프-김정은 막판까지 밀당

일취월장7 2018. 6. 1. 17:10

[북·미 특집] (1) 승부사 트럼프-김정은 막판까지 밀당

북·미 정상회담 개최 직전까지 남은 5대 변수 (上)

송창섭·구민주 기자·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1(금)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평소 외교에 있어 3가지 원칙을 강조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우선 힘은 외교정책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힘을 군사적으로 사용할 경우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둘째, 외교정책은 뜻을 같이하는 나라들의 지원을 얻을 수 있을 때만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파월은 동맹이나 연합을 만들어내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외교란 완벽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그는 오히려 부분적으로 이뤄내는 게 목표달성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봤다. 필요하다면 상대에게 퇴로를 열어주는 아량도 필요하다.

 

결렬 직전까지 갔던 북·미 정상회담이 막판 극적으로 봉합된 것도 북한과 미국 양측이 파월이 말한 대로 서로 퇴로를 열어줬기 때문이다. 4성 장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파월은 자신의 외교술을 협상과 대화로 일관했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현재 협상에 있어 미국과 북한 사이의 가장 큰 장벽은 ‘신뢰’다. 국가 간 신뢰는 개인 간 신뢰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은높은 수준의 검증과 사찰을 요구할 것이며, 북한은 주권국가임을 강조하며 이를 최대한 회피하려들 게 뻔하다. 이 과정에서 어쩌면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가 아닌양쪽 모두로부터 비난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한·미·중·러·영 5개국 취재진이 5월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한·미·중·러·영 5개국 취재진이 5월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1. 비핵화 모델 간극 좁힐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앞서 한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 데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심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김 위원장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재차 드러내면서 북·미 회담 준비는 어렵사리 다시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북·미가 디테일한 비핵화 논의에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5월27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협상팀 목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3단계 절차를 문서화하기 위한 북한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3단계 절차는 핵 프로그램을 어느 선까지 되돌릴지와 어떻게 폐기를 이행할지, 마지막으로 폐기 후 어떻게 검증할지다.

 

이에 대해 어떻게 합의가 이뤄지느냐에 따라 백악관에서 강조한 ‘트럼프 모델’ 또한 틀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모델은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 방식의 ‘리비아 모델’에 북한이 반대 입장을 보이자, 백악관이 대안으로 제시한 새로운 비핵화 방식이다. 북한 역시 북·미 간 협상을 통해 완성될 트럼프 모델에 공식적으로 기대감을 표한 바 있다.

 

현재로서 트럼프 모델은 단계적 비핵화를 일부 수용하는 대신 신속하게 진행하려는 방식이 될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특히 미국은 초반에 북한 핵물질·핵무기를 국외로 반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북한이 수용할 거란 관측이 많다. 단, 최대한 오랫동안 단계적으로 이를 진행하려는 북한과 서둘러 반출·폐기하려는 미국 간의 입장차가 생길 가능성은 남아 있다.

 

미국이 강조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수준과 북한이 이행할 비핵화 사이 간극도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물질·핵무기 등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완전히 폐기하는 데 합의해야만 북한에 대한CVIG(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안전보장(Guarantee))도 가능하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이러한 약속을 믿고 핵물질 반출과 폐기에 얼마나 응할지, 또 북한이 반출하고자 내놓는 핵물질을 미국이 얼마나 신뢰할지도 여전히 두고 볼 일이다.

 

 

▒ 2. 미국이 제시할 北 체제보장 카드는…

 

CVID를 카드로 내민 미국에 북한이 반대로 요구하는 것은 ‘체제보장’이다. 한반도 정세가 해빙 모드로 돌입한 올 초부터 북한은 한·미 양국에 줄기차게 체제보장을 요구해 왔다. 올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정원장 등이 방북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방북단에 “체제보장과 군사적 위협을 없애 달라. 그러면 (우리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쉽게 풀리기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 6월12일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취소로 이어질 뻔했던 것도 비핵화, 체제보장을 놓고 양측이 평행선을 그어서다. 회담 취소의 빌미를 제공했던 5월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에는 쉽사리 비핵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뜻이 내포돼 있다.

 

김계관은 이날 담화에서 “우리는 이미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용의를 표명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 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그 선결조건으로 된다는 데 대하여 수차에 걸쳐 천명했다”고 강조했다. 경제 지원과 같은 보상책은 후순위라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이는 김계관의 입을 빌린 것일 뿐 사실상 김 위원장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를 할 경우 미국에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정을 보장하겠다는 것에 대해서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체제안정을 대미 협상의 의제로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3년 제1차 6자회담 때부터 북한은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대북(對北) 적대의사 불보유 △대북 침공의사 불보유 △북한 정권교체 불추구 등 3불(不) 정책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중에서도 북한이 가장 요구하고 있는 것은 강압적 정권교체 철폐다. 핵 개발을 포기한 후 대미 협상력이 줄어들면서 생을 마감한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의 전례는 북한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북한이 ‘리비아식 비핵화 모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불가침 조약과 같은 실효성 있는 조치다. 물론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2013년 10월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진정성 있는 협상에 나선다면 북한과 불가침 조약(Non-aggression agreement)을 맺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불가침 조약은 미 의회 승인을 거쳐야 한다.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은 역사상 전 세계 어떤 국가와도 불가침 조약을 맺은 적이 없다”면서 “북한과의 신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의회 승인을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회 통과가 힘들다고 판단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 직권으로 행정협약 또는 지침을 내릴 수 있다. 

 

그런 다음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하는 경우다. 현재 정부는 남·북·미 3국이 참여하는 종전선언 후 중국을 포함시켜 4자가인정하는 평화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선 일본·러시아는 물론 유럽연합 등이 협정에 함께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조건 없는 북·미 수교도 북한의 체제안정을 도모하는 측면에서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체제안정 협상 과정에서 적잖은 난관도 예상된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객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미국의 적대 정책 철폐, 국제 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 이후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군사훈련 철폐, 한·미 동맹 해체를 요구할 것이며 이는 지난 수십 년간 북한 외교의 숙원”이라면서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변경되면 주한미군 주둔 의미가 모호해진다”고 우려했다.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5월28일 미국의 소리(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목적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한국을 사형시키는 데 서명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2016년 7월 북한이 발표한 △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남한 내 모든 핵무기 및 기지 철폐와 검증 △미국 핵 타격 수단의 전개 중단 △대북 핵 위협 중지 및 핵 불사용 확약 △주한미군 철수 선포 등 체제보장 5원칙도 한·미 보수층 사이 우려를 낳게 만드는 이유다.​



[북·미 특집] (2) 트럼프의 변심 가능성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직전까지 남은 5대 변수 (下)

송창섭·구민주 기자·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1(금) 


▒ 3. 中, 한반도 문제에서 어떤 역할 할까

 

5월27일 중국 관영 CCTV 뉴스채널은 아침부터 한반도 문제를 주요 뉴스로 채웠다. 특히 현지 시각 9시부터 3시간 동안 방송되는 뉴스쇼 《신원즈보젠(新聞直播間)》에선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톱뉴스로 10분 동안이나 다뤘다. 지난 10년 동안 CCTV가 한국 대통령의 발언을 생중계한 것은 4월27일에 열린 1차 남북 정상회담과 이번밖에 없었다. 

 

중국의 신속하고 지대한 관심은 언론매체만이 아니었다. 루캉(陸慷) 외교부 대변인은 2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매체의 질의에 서면으로 답변했다. 외교부 대변인이 일요일에 언론매체의 한·미·중·러·영 5개국 취재진이 5월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질의에 답변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는 중국 정부가 최근 한반도의 정세 변화를 얼마나 주목하는지 보여준다.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할 때만 해도 중국의 입장은 아주 난처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취소된 원인이 중국에 있다는 ‘중국 배후론’이 미국 정계와 언론에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랭크 셰(謝田)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중국이 북한 핵무기의 처리에 간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비핵화를 추진하더라도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비핵화를 원한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로드맵을 진행하면서 정권 유지와 체제보장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경제개발 지원 등도 동시에 빅딜하자는 것이다. 중국의 쌍궤병행에는 이런 의도가 숨겨져 있다. 또한 중국 역할론과도 맞닿아 있다. 평화협정을 맺으려면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인 중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남북도 이 점을 고려해 판문점 선언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논의 주체를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로 명시했다. 

 

중국 역할론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던 중국은 2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뜻밖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5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북·미 정상 회담이 성공할 경우 남·북·미 3자 정상 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이 추진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는 종전선언의 논의 주체에서 중국을 뺀 것이다. 전례에 비춰보면 중국 언론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꼬투리잡아 공격했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평소와 달리 조용했고 외교부도 5월28일 정례 브리핑에서 아무런 언급 없이 지나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판을 살리면서, 종전선언이 아닌 평화협정에 참여한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차이나 패싱’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실제 중국은 북한의 유일한 안보 동맹이자 경제 파트너다. 중국은 북한에 석유를 공급하고 북한 자원에 투자하며 북한 상품을 사들인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아래 북한은 중국에 대한 의존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2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새로운 국면마다 중국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반도 문제는 중국에 있어 대미 관계의 전초장이다. 따라서 중국은 자국의 영향력을 줄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 4. ‘협상의 달인’ 트럼프의 변심 가능성

 

“필요할 땐 과감하게 흥정 테이블을 떠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40세 때 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 나오는 그의 협상 전략 중 하나다. 그는 부동산 투자자로서 성공을 이끈 전술을 그대로 북·미 정상회담 협상에 적용해 우위를 점했다. 

 

북한 특유의 ‘벼랑 끝 전술’을 트럼프는 ‘북·미 회담 취소’라는 승부수로 되받아쳤다. 깜짝 통보를 받은 북한은 도발은커녕 곧장 한껏 부드러운 성명을 내놓았다. 전에 없던 스타일의 미국 지도자를 만나 북한이 적잖이 당황했을 거란 분석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이 같은 깜짝 전술을 뒤집어 보면, 북·미 회담에 있어 가장 예측 불가한 ‘리스크’가 될 가능성도 크다. 그가 북·미 회담을 진행하거나 향후 합의된 사안을 이행하는 동안 또다시 돌연 테이블을 떠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참모들 간의 갈등도 남아 있는 큰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5월24일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북·미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한 데 대해 “참모들 간 깊은 분열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미국 안팎에선 초강경 대북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매파에서 비둘기파로 돌아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의 힘겨루기가 부각되고 있다. 행정부 내에서 어느 쪽의 목소리가 더 크냐에 따라 트럼프가 또다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두 참모가 결국 트럼프의 결정을 충실하게 따를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5. 비핵화에 대한 北 내부 반발은 없을까

 

북한은 이번 북·미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본전도 못 찾고 체면만 깎였다. 한 대북 전문가는 “미국인 인질을 석방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파괴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취소하자 북한이 거의 읍소에 가깝게 매달려 정상회담 재개를 요구했다”면서 “이번 2차 정상회담을 북측에서 먼저 제안한 것도 이런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남한·미국과의 협상에서 외교라인, 정보라인만을 가동해 왔다. 사실상 군은 모든 논의 과정에서 빠졌

다고 할 수 있다. 북한 군부가 최근 열린 남북 관련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4월27일 1차 판문점 회담에서 박영식 인민 무력상과 리명수 총참모장이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할 때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북한은 총정치국장을 김정각에서 김수길로 교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김정각은 올 2월 황병서가 실각한 이후 세 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치국장은 북한군 서열 1위며, 2위 자리가 총참모장이다. 잦은 군 인사가 군의 피로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비핵화에 따른 북한 내부 권력층의 암투도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6차례나 군수뇌부를 교체해 군 장악력을 높여왔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김정은이 CVID를 받아들여 완전한 비핵화를 하게 되면 선대의 유훈을 어기는 셈이 되기 때문에 군부나 당 원로들로부터 ‘혁명의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하에서 군은 4중 체제로 감시를 받고 있어 내부 동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현재로선 압도적이다. 이준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각이 3개월 만에 물러난 것은 북한군 실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며 이미 5월 중순 당중앙군사위 회의에서 결정 난 상태였다”고 말했다. 김정각이 4·27 1차 정상회담에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해 검열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미 특집] (3) “구체적인 핵 폐기 방법까지 합의하면 대성공”

[인터뷰]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 출신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창섭 기자 ㅣ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1(금) 15:00:00 | 1494호


이수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내 대표적 통일·외교·​안보통이다. 비례대표인 문미옥 의원이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과학기술 보좌관에 임명되면서 후순위로 지난해 6월 국회에 입성했다. 올 들어 남북관계가 해빙 무드로 접어들면서 6자회담 초대 수 석대표 출신인 이 의원의 당내 활동반경은 넓어지고 있다. 

 

이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와 독일 대사, 국정원 1차장을 지내 통일·​안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1997년 주미대 사관 참사관 시절에는 제네바 4자회담 성사를 이끌어냈다. 남북관계의 전환기마다 이 의원은 그 중심에 있었다. 최근 여권 내 이 의원의 주가가 한창 높아지는 이유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는 뜻의 CVID(Complete, 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는 이 의원의 창작물이다. 부시 행정부 1기 때 북핵 해결의 원칙으로 사용된 이 용어의 원 저작자는 이 의원이다. 같은 공 화당 정부인 트럼프 행정부는 비핵화의 기준으로 이 용어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초대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24일 오후 국회 의원실에서 다음달 열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초대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24일 오후 국회 의원실에서 다음달 열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  의원과의 인터뷰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인터뷰는 5월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당일 김계관 북한 외무 성 제1부상의 대미 비난성명이 있었지만, 이것이 북·​미 정상회담의 걸림돌로 작용할 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있었던 그날 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취소로 늦은 밤에 다시 전화로 2차 인터뷰가 이뤄졌으며, 회담 재개에 따른 정세 분석을 논하기 위해 5월 30일 전화로 3차 인터뷰를 가졌다. 그만큼 남북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보유 핵무기 처리 방법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현재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 과정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이 취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은 세부적 합의를 만드는 데 진통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현재 미국은 핵무기 반출에 최우선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비핵화에 대한 미국 내 시각은 여전히 부정적 데,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합의해야 할까.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 상징성은 보유 핵무기 처리에 달 려 있다. 지금 플루토늄탄, 우라늄탄 몇 개를 갖고 있는지 솔직하게 밝히고  폐기에 주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정될 때 미국의 우려는 줄어들 것이다.”

 

일부에선 미래의 핵은 쉽게 해결되지만 과거의 핵, 다시 말해 과거 북한이 얼마나 핵무기를 만들어 은닉했는지는 알기 힘들다고 말한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과거의 핵은 진실 하면 된다. 북한이 사실대로 말하면 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미래의 핵은 그렇지 못하다. 핵 과학자와 기술인력 등 핵 분해를 비롯해 서류, 도면 등을 어떻게 완벽히 불능화 시키겠는가.”

 

그런 면에서 트럼프가 비핵화에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큰 변화로 봐야 하는가. 

 “지금까지 몰랐던 사안을 트럼프  대통령 이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단정할 수 없지만, 핵 폐기의 구체적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핵무기 반출만이 핵 폐기가 아니다.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 핵 시설 등도 폐기돼야 한다.”

 

과거 6자회담 수석대표 시절 경험한 존 볼턴 백 악관 안보보좌관은 어떤 인물인가. 

 “원칙주의자다. 특히 대량살상무기 (WMD) 폐기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다. 볼턴은 과거 국무부에서 일했고, 폼페 이오도 CIA(중앙정보국) 국장을 거쳐 국 무장관으로 일하고 있다. 반대로 북한에서 김계관과 과거 6자회담에서 통역을 맡았던 최선희가 나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 느냐면 결국 핵 협상은 전문가들이 만나 실무협상 과정에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 이다.”

 

김계관의 등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계관의 담화를 읽으면서 그냥 읽은 게 아니라 바로 옆에서 김계관이 말하는 느낌이었다. 나와 협상할 때 쓰던 수사나 용어 들을 똑같이 사용하더라. 변한 게 없었다. 이번에 김계관과 최선희가 ‘나는’이라는 1 인칭 수사법을 써가며 담화를 발표했던데 차관(부상)이 개인 담화를 내는 것은 외교 사에서 보기 힘든 것이다. 장관도 ‘우리 정 부는’이라는 3인칭 단어를 쓴다. CVID를 놓고서도 조사로 ‘~니’를 말하던데, 우리 가 ‘~니’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지 않는가. 먹느니, 가느니, 자느니 등등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CVID와 완전한 비핵 화가 같은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이다. 비핵화의 범위나 속도에 양측 간 이견이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은 불가침 조약과 같은 체제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 선언은 가능할 것이지만 조약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양자 관계에서 불가침 조약을 맺지 않고 있다. 미 의회가 이를 승인해 줄 리 있겠는가. 북한은 북·​미 수교를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기본 입장은 양자 간 문제가 다 해결될 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양자 간 문제에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들어가 있다. 그게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핵 문제 해결에 우선을 둔다면 인권 문제에 유연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불가침 선언 정도는 가능하다. 유엔 회원국은 유엔 헌장에 따라 불법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할 수 없게 돼 있다. 과거 6자회담 시절 내가 여러 차례 설명한 바이기 때문에 북한이 불가침 선언을 조약이 아니라고 해서 거부할 것 같지는 않다.”

 

북·​미 정상회담을 놓고 취소와 재개를 반복했는데 이건 어떻게 봐야 하나.

“일부에선 이번 협상 과정을 미국과 북한 의 주도권 쟁탈로 보는데, 그보단 그만큼 핵 협상이 어렵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미 정상, 큰 틀에서 비핵화 합의해야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합 의할 것 같나.

 “큰 틀에서 비핵화 일괄타결을 할 가능성 이 크다. 일괄타결을 하되 구체적인 핵 폐 기는 양측이 추후 협의를 한다는 수준에서 합의를 볼 것이다. 만약 이번 회담에서 핵무기 폐기에 구체적 합의, 다시 말해 구체적 방법까지 합의한다면 첫 번째 회담 치고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다시 정상회담이 취소될 수도 있을까. 

“물론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증 과정에서 북한의 주권 문제가 충돌하기 때문에 그럴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 단언할 수 없다. 다행히 미국과 북한 양쪽 모두 정상회담이 열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굳이 결정하라면 나는 북·​미 정상회 담이 열리는 데 베팅하겠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나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핵 협상은 일거에 한두 달 안에 끝나는 게 아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또다시 한반도 위기론이 나올 수 있다. 국가 간의 협상이란 양쪽 모두 자국에 이익이 된다는 판단이 서야만 합의가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 국민 모두 다 인내가 필요하다.”


[북·미 특집] (4) 한반도 연구하는 스웨덴 싱크탱크 ‘ISDP 코리아센터’

이상수 센터장 “정치적 중립국에서 객관적인 한반도 연구 가능”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1(금) 16:00:00 | 1494호


5월15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선 한반도의 평화와 관련한 유의미한 학문적 움직임이 있었다. 아시아의 정치·외교적 상황에 대한 연구로 명성이 높은 스웨덴 안보정책개발연구소(ISDP) 산하에 한반도 문제를 특화한 코리아센터가 문을 연 것이다.

 

ISDP는 스웨덴의 평화, 분쟁 방지, 위기관리 등의 학문적 이론과 방법론을 통해 아시아 분쟁국 간의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대표적인 스웨덴의 안보 싱크탱크.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협력으로 ISDP 안에 코리아센터가 개설된 것이다.

 

ISDP 코리아센터의 센터장을 맡은 이상수 박사는 “유럽 최초로 한반도의 평화를 기조로 북유럽과 한국의 정책을 연구할 목적으로 ISDP 연구소에 코리아센터가 설립됐다”며 “ISDP 코리아센터는 중립국인 스웨덴에 위치한 이점을 살려 유럽 내 한반도 평화 정착을 지원하는 소통창구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안보정책개발연구소(ISDP)와 이상수 ISDP 코리아센터장 ⓒ이석원 제공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안보정책개발연구소(ISDP)와 이상수 ISDP 코리아센터장 ⓒ이석원 제공

 

 

“한반도 분쟁 관리에 차별화된 역할 할 것”

 

이 박사는 “ISDP 코리아센터는 남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이 참여하는 ‘1.5 트랙다이얼로그’라는 사업을 비롯해 남북한 학자들이 함께하는 회의 및 교류 프로그램을 개최하고, 한국과 북유럽 학자들 간의 교류와 학술 진흥 등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왜 스웨덴일까. 한반도에서 무려 8000km나 떨어진 스웨덴에서 한반도의 급박한 정세를 진단하고 분석해 연구하는 이유가 뭘까. 이에 대해 이 박사는 “스웨덴은 역사적으로 평화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해 온 나라로서 평화, 분쟁 방지, 위기관리 등의 학문적 이론과 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중립국이라는 특이성을 활용해 분쟁국들을 중재하는 역할도 해 왔다”면서 “스웨덴은 서울과 평양에 각각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립적인 환경이 남한과 북한의 학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대화 채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양국의 입장과 정보 공유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의 학자들이 남한과 북한을 동시에 방문할 수 있어 각국의 상황을 직접 파악할 수 있고, 따라서 스웨덴이 정치적으로 중립국이니만큼 한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다른 입장에서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반도의 분쟁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수 박사는 한반도 상황은 기복이 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앞으로 북·미 관계 개선과 비핵화 등 어려운 문제들이 숱하게 남아 있다”며 “ISDP 코리아센터는 긍정적인 상황에서는 협력과 통합에 관한 주제로, 혹시 다시 악화되는 상황이 온다면 분쟁 방지와 위기관리 측면에서 차별화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두고 북한과 미국이 기 싸움을 벌이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하루하루 예측불허인 가운데 향후 ISDP 코리아센터가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 평화 구축에 대한 어젠다를 제시할지 관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