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평화통일시민강좌]

일취월장7 2018. 8. 27. 10:33

북한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평화통일시민강좌] <1>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2018.05.24 11:08:16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는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올해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비한 북한사전'을 주제로 7월 15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5월 12일 서울 종각역 인근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북한혐오를 파헤치다'를 주제로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이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 강좌 소개 바로 가기)  

혐북현상 1. "우리도 북한처럼 국정교과서 택하고 망할 것인가"


현실 속에서 혐오는 존재 자체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은 것이다. 북한이 그냥 싫은 것이다.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는 '북한을 혐오와 조롱, 냉소나 적대의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태도'를 혐북이라고 규정했다. 소위 민주진보개혁 세력에서도 북한에 대한 혐오가 너무나 많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국정교과서 채택한다고 할 때 굉장히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때 한 TV 토론에 출연한 유명 작가가 "북한은 국정교과서 채택하고 다양성이 말살되어서 망했다. 북한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북한식 국정교과서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이 망했는가? 망할 뻔 했지만 망하지 않았다. 망했다 치더라도 국정교과서 채택해서 다양성이 말살되어 망했다는 건 섣부른 결론이다. 물론 논란은 많다. 중요한 점은 북한이 이렇게 안 좋은 것의 사례로만 소비된다는 사실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포스터를 패러디한 포스터가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 남녀 주인공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바꾸고 욕을 써 놨다. 뜬금없는 일이다.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화가 나서 거리로 나갔는데, 갑자기 '우리도 북한이랑 비슷하다' 이렇게 가버린다.

우리는 북한에 빗대지 않아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충분히 싸울 수 있다. 촛불항쟁 당시 광화문광장에 선 유명 방송인은 "촛불 든 우리는 한 번도 불의에 저항한 적 없는 북한 사람들보다 위대하다"는 발언을 했다. 맥락상 그 전 발언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인데 뜬금없이 북한을 끌어 들인다. 

▲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혐북현상 2. 남한 수구세력과 "짬짜미"하는 북한 

또한 적대적 공생이라 하면서 북한이 남한 수구세력과 "짬짜미"한다고 한다. 2011년 12월 김정은 위원장이 사망했다. 그때 남한은 10월 재보궐 선거 당시 선관위 디도스 공격으로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하고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꿀 때다.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자 이명박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라 하며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그때 <딴지일보>에 '괴물의 죽음'이라면서 죽는 타이밍도 수구에게 도움을 준다고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이 굉장히 많다. 4.27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고, SNS상에서는 세기도 힘들 정도다.

혐북의 토대 1.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분단체제' 

평화공존의 상대인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못보고 있는데 그 토대를 살펴보자.

우리는 북을 적으로 규정하는 '분단체제' 속에 살고 있다. 헌법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유엔 회원국이기도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괴뢰고, 휴전선 이북은 괴뢰가 점령하고 있는 수복 대상 지역이 된다.

대한민국은 형법이 제대로 만들어지기 전에 국가보안법이 먼저 작동했다. 근대국가에서는 인신을 구속하고 벌주고 죽이는 폭력행위를 법에 근거하여 국가만이 할 수 있다. 그 법이 형법이다. 형법은 근대국가의 중요한 지표 중에 하나인데 형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일제가 만든 국가보안법이 북한이란 존재를 핑계로 먼저 작동된 것이다.

백낙청 선생은 분단을 핑계로 주권자들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해 온 관행을 '이면헌법'이라 지칭한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헌법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이미 폐기되었어야 마땅하다. 분단체제에서 북은 적이기 때문에, 북과 친하거나 북을 좋다고 하거나 북을 이롭게 하면 잡아가는 것이 당연한 나라에서 혐북은 당연하게 되었다.

혐북의 토대 2. 우리가 볼 때 납득 안되는 북한발 사건들

우리가 볼 때 쉽게 납득이 안되는 북한발 사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3대 세습문제가 있다. 3대 세습, 연평도 포격, 장성택 처형 등 사건의 배경과 원인이 무엇인지를 떠나 민주주의, 인권 등의 잣대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2009년 5월 25일 우리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상중인데 북은 2차 핵실험을 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북이 핵실험을 했고 이명박은 이것을 핑계 대며 북이 핵실험하는데 초상만 치르고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쌓여가며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만들어졌다.  

혐북의 토대 3. 왜곡과 오보 넘쳐나는 북한뉴스 

북한에 대한 왜곡된 기사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혐북 인식을 조장하는데 기여했다. 2016년 9월 <뉴욕타임스>가 한국발 북한 정보는 조작이나 부정확한 것이 많으므로 잘 가려서 봐야 한다는 기사를 쓴 적도 있다("Rumors, Misinformation and Anonymity: The Challenges of Reporting on North Korea" The NewYork Times, 2016.09.15.).

2015~16년 대북제재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기자들이 단둥에 가서 '숨죽인 단둥...북한 제재 이번엔 심상찮아'라고 기사를 쓴다. 압록강 대교는 차가 없고 북한 식당은 문을 닫았다는 기사들이 나온다. 그러나 사실은 문 닫았다는 북한 식당은 바로 옆 100미터 거리로 옮겼고, 원래 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압록강 대교를 찍어놓고 경제 제재로 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이 '북, 전기요금 300~3000배 인상...주민 쥐어짜기'란 제목으로 기사를 낸 적이 있다. 실제로 기본요금 기준에서 300배, 누진제가 적용되면 최대 3000배 인상한 것은 맞다. 문제는 인상 전 북의 전기요금이 거의 공짜였다는 것이다.

기사 내용도 20여 년 전부터 전력난을 겪었던 북한이 이제야 전기요금을 현실화하고 사람들이 경제관념을 가지고 아껴 쓰도록 하기 위해 인상했다는 건데,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제목만 보면 천하에 이런 나쁜 정권이 없다. 이런 기사를 별 생각 없이 제목만 보고 넘어가면 북을 혐오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북한혐오의 토대 4. '이명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대북 대결정책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북한 붕괴론이 기승을 부렸고 이명박 정부는 곧 붕괴할 북한과 대화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북한과 대화를 하려고 하는 오바마 행정부를 대화하면 안 된다며 적극적으로 설득까지 했다.  

2008년 관광객 피격 사망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자 김정일 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사과하며 재발 방지 약속을 했다. 그런데 정부는 못 믿겠다며 문서로 약속해달라고 했다. 북의 입장에서 최고지도자가 한 약속을 믿지 못하겠으니 문서화해달라는 요구는 굉장히 치욕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이 문서화를 거부했다고 일관되게 거짓말을 했다.

▲ 금강산 관광지구 내 버스정류장. 2008년 이후 사용하지 않아 낡은 상태 그대로 방치됐다. ⓒ프레시안(이재호)


그러나 2012년 홍익표 의원이 그 당시 북이 한국 정부의 요구안을 담은 초안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폭로했다. 남쪽 협상단이 논의해 놓기로 하고 논의를 안했으면서 북에서 종이 문서를 안 써줘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안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런 식으로 남북대화를 거부해왔다.  

한국 정부의 종북몰이도 대단했다. 2013년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되었다. 발언 녹취록이 400군데 이상 조작되고 나중에 재판에서도 내란음모는 무죄, 내란선동이 유죄였지만 국회에서는 정의당은 모두 찬성했고 민주당도 대부분 찬성했다. 오히려 반대와 기권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려는 시도가 펼쳐졌다.

지난 9년 동안 대북인식이 안 좋아진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히려 대북 적대 의식이 약화되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가 남북분단 70년사에서 비정상적인 시기였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1. 북에 대한 무지

혐북이 만연하니, 그 후과도 크다. 분단문제와 북한문제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우리 머릿속의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어 사람들의 불만이 높고, 그래서 권력은 불안정하고 폭압적이라 생각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북한에 살고 있을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도가 50% 이상이었다고 생각했나'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해마다 높아져 2017년에 63.4%였다. 2016년 36년 만에 열린 7차 당 대회, 6개월마다 개최되는 전원회의 등 북한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안정화되어 있다.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 경제성장률을 남한보다 앞선 3%대 초반으로 추정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주요 경공업, 식품공장의 생산라인이 자동화되어 있고 컴퓨터로 원격조종 하고 있다. 통합생산체계를 구축해 노동력을 절감하고 컴퓨터로 품질관리를 하니 효율이 높아졌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에서 탈북자들의 북한 거주 시 식생활에 대해 물었다. 85%이상이 하루에 세끼 이상 먹고 한 끼도 못 먹는다고 하는 사람은 0%이다. 탈북 직전 고기 식사 횟수도 물어봤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 37.1%, 거의 매일이 17.4%, 한 달에 한두 번이 32%이다.

물론 평양 외곽으로 나가면 여전히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고 남한의 70년대 수준 집들이 있는 지역들이 있지만, 평양에는 여명거리라든가 과학자우대정책으로 인한 과학자 전용 휴양시설이 있다. 이런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혐오로 인해서 북한의 못사는 장면만 그것도 90년대 후반의 극심한 경제난 당시의 못사는 장면만 떠올린다. 북한의 20대에게도 고난의 행군 시절은 옛날이야기이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2. 북한은 호전광이란 잘못된 인식

북한은 호전광이란 인식도 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절실하게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나라가 북한이다. 동북아 긴장 때문에 가장 힘들고 손해 보는 나라가 북한이었다.

북은 일관되게 핵을 포기하기 위해 핵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합의되자마자 미국 재무부가 북한이 위조 달러를 유통시켰다는 명분으로 뱅코델타아시아 은행을 제재했다. 하지만 미국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2009년 <뉴스위크>가 2006년 당시 미 재무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위조 달러는 중국 고위 장성들의 비자금을 위한 것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은 지금도 위조 달러를 명분으로 북한을 제재하고 있다.  

북한이 2006년 1차 핵실험을 하고 2007년 2.13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때부터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가 하나씩 실현되어 갔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한다.  

진보커뮤니티에서는 냉각탑 폭파를 안 해도 되는데 북한이 쇼하려고 폭파시켜서 주변이 광범위하게 방사능 오염되어 주민들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냉각탑 폭파는 극적인 장면을 위해 미국이 요구한 것이다. 한국 정부한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크리스토퍼 힐이 북한에 가서 미국 국내 여론용으로 사진 찍고 왔다.  

▲ 2008년 6월 북한 영변 핵시설 냉각탑 폭파 장면. CNN 방송 갈무리


이 과정에서 북한이 1만 9000쪽에 달하는 1980년대부터의 핵 활동 관련 문서를 미국에 넘겼다. 이렇게 하면 미국이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약속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문서를 받은 이후 사전에 약속되지 않았던 '검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김정일 위원장이 쓰러지고 합의는 흐지부지 된다.

그 뒤로 북한은 계속 핵개발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북한은 꾸준히 대화 제안을 했다. 2015년 6.15 공동선언 발표 15주년을 맞이하여 북한은 공화국 정부성명을 내며 대화 제안을 했다. 매해 대화 제안을 하는데 사람들은 모르거나 진의를 믿지 않는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 취임 한 달여 뒤 인도 주재 북한대사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은 핵실험을 중단하겠다고 제안했다. 예전보다 요구조건을 낮춘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한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는 거의 동시에 한미군사훈련은 합법이고 북한의 핵실험은 불법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11월 29일까지 달려갔다.

지금의 대화국면도 북한이 먼저 구체적 행동을 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그만큼 북한은 평화가 절박하다. 북한이 '우리가 왜 굳이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냐'는 이야기를 20여 년 동안 했는데 이제야 조금씩 믿어주고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해서 긴장과 위기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다. 한반도 위기는 북미 대결의 산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북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미 항공모함 3척이 한꺼번에 한반도로 몰려들면서 미국이 한반도 긴장 고조의 주범임을 알아서 보여주었다.

북한은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 실거리 시험을 한 번도 안했다. 위로만 쐈는데 그것을 계산해서 사정거리가 미 본토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다. 미국은 작년에 미니트맨3라는 ICBM을 여러 번 실거리 사격을 했다. 이것을 조금만 방향과 각도를 조절하면 평양까지 간다. 그런데 미국이 ICBM을 발사하면 메시지를 탑재했다고 하고 북한이 하면 도발이 된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3. 누가 더 '반북'적인지 경쟁하는 사회


국내 이념 지형이 보수화 되어간다. 종북 공세에 무기력하게 밀려오면서 우리가 종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누가 더 반북인지 경쟁한다.  

2016년 당시 한 야당 의원이 5.18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했던 박승춘 보훈처장을 색깔론으로 공격했다. 김일성 주석의 외삼촌 강진석은 13년 형을 선고받을 정도로 독립운동을 열심히 했고, 해방 전에 사망해서 북 정권을 만드는데 참여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수십 년 간 싸워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이 이루어졌는데, 그 의원은 '김일성 집안'에 주었다고 박승춘을 공격했다. 당장 박승춘은 난처했겠지만 속으로는 웃었을 것이다. 박승춘은 앞으로 사회주의자에게 서훈 줄 때 더 신중하겠다고 대답했다.

한 유명 기자님은 페이스북에서 '북한이 예전처럼 연석회의 주장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땅에 정체성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쪽의 주장에 생각 없이 부화뇌동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연석회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면 틀린 이유를 합리적으로 제시하면 하면 된다. 만약 내가 이것저것 따져보고 연석회의를 하는 게 맞다고 결론 내려도, 나는 북의 주장에 생각 없이 부화뇌동하는 사람이 된다.  

14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했던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다. 시민운동가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던 인사들이 정치권에 들어온 뒤 국가보안법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김정은 위원장의 후계구도가 결정되었을 때 한 변호사는 TV토론에 나와서 '김정일 000' 해보라고 했을 때 못하면 종북이라고 규정했다. 지금 여당 지지자들 중 일부가 실제로 SNS나 팟캐스트에서 북한 관련 발언을 할 때 '김정은 000', '김일성 000'를 먼저 쓰고 시작한다.  

혐북이 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4. 혐오와 폭력을 합리화하는 사회

혐북은 인권의식과 지적능력을 파괴시킨다. 아이들에게 혐오와 폭력을 자연스럽게 가르친다. 3년 전 초등학생들에게 통일교육 한다고 군 장교가 북한과 관련한 끔찍한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들이 울면서 뛰쳐나갔다. 

그나마 뛰쳐나갔던 아이들은 그런 내용을 거부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그냥 흡수한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김정은은 총으로 쏴 죽여야 하는데 왜 친하게 지내라고 해요?'라고 묻는다. '김정은을 죽여야 우리가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 중 일부도 공공연하게 '간첩 고문하는 게 죄야?'라고 생각한다. 고문이라는 반인륜적 행위가 간첩에게는 허용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이다.

< 한겨레> 오철우 기자의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라는 책이 있다.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 아님을 증명했다기보다는, 그 당시 천안함 민관합동조사위원회에서 북한 소행이라 결론 내린 여러 가지 과학실험 결과가 부실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과학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것들을 부실하게 해놓고 믿음을 강조했다. 그래서 이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북한 탓이라 하면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냉철한 이성이 사라지고 전반적인 사회지능이 떨어진다. 혐북이 확산될수록 지적능력이 파괴된다.

▲ 강연하고 있는 변학문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여전히 합리성이 결여된 '세련된' 혐북, '적대적 공생론' 

적대적 공생론도 있다. 북한이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이명박 정권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분노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 시험은 오바마 미국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다.

되돌아보면 2009년 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에 대화 제의를 했고 2월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를 할 권리가 있느냐에 대해 이견이 있었다.  

모든 나라들이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인공위성과 장거리 로켓을 개발하고 발사할 수 있는데 북한만 못한다. 장거리 로켓은 미국을 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이 북의 주권을 보장하느냐에 대한 중요한 판단 기준 중에 하나가 자신들의 인공위성 발사 권리를 보장하느냐이다.  

이것을 두고 이견이 벌어지다 북한이 4월 광명성 2호를 발사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으로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 연설을 준비할 때이다. 물론 그는 연설만 하고 행동은 하나도 안했지만 노벨상을 수상했다. 바로 이 연설 당일 새벽에 광명성 2호가 발사됐고,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 북한을 비난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이때부터 둘의 사이가 더욱 안 좋아지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북이 5월 25일 핵 시험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국면에 '이명박이 위기에 빠졌으니 한번 쏴줘야지'가 아니라, 우리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미국의 메모리얼 데이 몇 시간을 앞두고 쏜 것이다. 미국 여론에 대한 영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였다. 우리로서는 아쉽고 야속할 수 있었겠지만, 이것이 이명박과 짜고 치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분단 구조를 해체해야 하고, 이를 위해 혐북에서 벗어나 북한을 합리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혐북하다 전쟁 직전까지 간 김영삼 정권
 

김영삼 대통령은 '핵을 가진 상대와 악수할 수 없다'며 남북대화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을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협박한 것처럼 알지만 실제는 달랐다.

북한과 미국이 물밑 접촉 끝에 1994년 2월 비무장지대의 긴장 완화와 양국의 적대행위 중단을 잠정 합의했고, 이것을 3월에 공식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정부는 북미대화를 반대하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남북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클린턴 대통령이 남북 특사 방문 이후 북미 발표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특사방문을 위한 실무회담이 열렸다. '불바다' 발언이 나온 그 회담이다.  

그전부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비롯하여 한반도 분위기는 험악했다. 이 회담에서 북한은 그동안 남한이 해왔던 행위들을 열거하며 이렇게 하면 '전쟁이 나고 휴전선에서 서울이 멀지 않고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고 말했다.  

남북회담은 녹화는 하지만 공개하지는 않는다. 이것을 청와대가 편집을 해서 방송사를 돌아다니고 MBC가 제일 자극적인 부분을 편집해서 반복해서 내보냈다. 북미협상은 물 건너갔고 94년 6월 북한 폭격 직전까지 갔다. 김영삼 대통령이 북한을 싫어하고 대화를 거부해서 전쟁 직전까지 갔다. 

혐북에 사로잡혀 있으면 김영삼 정부 때처럼 전쟁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 혐북에 머무르면 결국 우리의 안전과 이익을 침해당하고 지성과 감성마저 저하된다. 혐북을 극복해야 한다.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가 만드는 북한 가짜 뉴스
[평화통일시민강좌] <2>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
2018.07.11 17:39:51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번에는'알고보면 쓸모있는 신비한 북한사전'을 주제로 8월 11일까지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6월 30일 서울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바실리오홀에서 '우리 언론을 통해 본 북한'을 주제로 장용훈 <연합뉴스>기자가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 강좌 소개 바로 가기 

북한취재나 남북관계를 취재할 때 북한 정보 원천의 첫 번째는 정부다. 통일부, 외교부, 국가정보원이 북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굉장히 중요하다.

두 번째는 북한에서 살았거나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북한이탈주민이나 남북교류를 하던 사람들이다.  

북한이 발표하고 있는 공식 담론도 매우 중요하다. 북한의 외무성,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노동신문>, 조선중앙TV, <조선중앙통신>이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고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북한의 매체는 국가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 매체에서 전달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강연하고 있는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 ⓒ평화통일시민행동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가 만들어 내는 가짜 뉴스 

그러나 각각의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남북교류를 위해 평양에 다녀온 사람들의 경우 그 사람이 속한 단체나 기관의 사업적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북지원단체나 교류단체 관계자들이 보고 들은 북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북한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들이 많다. 따라서 이 정보를 가지고 북한에 대한 입장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이 북한 정보 출처로 이용되는 것은 큰 문제다. 국내에 3만 명이 넘는 탈북민이 있는데 대부분 평양이 아니라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출신이다. 함경북도, 자강도, 평안북도나 북중 접경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한민국도 서울이 모든 정치, 행정, 경제의 중심이듯이 북한도 평양이 중심이다. 평양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주요한 정보를 습득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우리는 신문이나 언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에 그나마 알 수 있지만 북한처럼 정보가 통제되는 사회에서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습득하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는 망명자들이 가지는 신분적 한계다. 북한 체제에 대한 염증이나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자신의 고향에 대해 좋게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이야기하거나 봤더라도 부풀려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기사로 쓰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대표적 사례가 이라크의 아흐메드 찰라비다. 찰라비는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반체제 인사로 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알카에다와 연관이 있다는 주장과 정보를 제공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데 주요한 명분을 제공했다. 결국 그의 주장과 명분은 대부분 허위로 밝혀졌다. 망명자의 증언을 가려듣지 않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북한 이탈주민들은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서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언론인한테는 더욱 그렇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면 대부분 오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에 노출이 되어 자신의 이름값이 올라가야 또다시 언론에서 불러주거나 정부에서 불러주게 된다. 이런 생각으로 북한 정보를 부풀리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탈북자 증언의 실패사례를 살펴보자. 고위층출신 탈북자 박 모 씨가 CNN과 인터뷰(2015년 5월 12일)를 했다. '김정은이 김경희를 죽이라고 지시했다. 당시 김정은의 경호를 담당하는 974부대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지금은 고위 관리들도 김경희가 독살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CNN과 인터뷰는 거꾸로 한국에 들어와서 굉장히 크게 기사화되었다. 이것은 국정원이 국회현안보고에서 김경희에 대한 이상 징후를 발견한 것이 없고 독살설은 근거가 없다(2015년 5월 13일)고 하면서 진정됐다.  

고위층 출신 탈북자 박 모 씨는 사실 고위층 출신도 아닐뿐더러 설사 고위층 출신이었다 하더라도 탈북한 고위층과 북한의 고위관리들이 지속적으로 네트워킹을 하면서 북한에서 벌어진 일들을 전달하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을 북한에서 알 수 있는 사람은 한두 명밖에 없을 것이다.  

종편 프로그램에 탈북 여성들이 나와서 김정은 위원장의 어린시절을 이야기 하는데 김정은 위원장과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이라면 탈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종편을 중심으로 국내 프로그램들이 북한을 희화화하고 악마화하는 경향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작가나 피디들이 그런 이야기를 유도하기도 한다. 북한관련 TV프로그램은 일반 예능프로그램처럼 대본에 의해서 방송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처형된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도 하는 정부 발표 

정부가 제공하는 북한 정보에도 오류가 있다. 북한 관련 기사를 쓸 때 90% 정도는 정부 발표에 의존하게 된다. 정부는 정보기관을 가지고 있고 북한 관련한 정보의 양이 일반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정부 발표내용을 사용하고 전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는 정부가 어떤 정책적 방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이질적인 형태로 공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 붕괴론'이었고 그와 관련한 정보만 전달하게 된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문제는 덜하기도 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은 변화하고 있고 우리가 변화를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를 과도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정부의 정책적 지향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정부가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지 않으면 잘못된 보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정부가 의도적으로 흘리는 경우도 많다.  

북한변화론이나 북한 붕괴론이나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책에 부합되는 사례들이 북한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그와 유사한 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경우도 있다. 정부 발표에 굉장히 의존적일 수밖에 없지만 정부 발표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 지난 2016년 5월 1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북한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리영길이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상장(별 3개) 계급장을 달고 있는 리영길 ⓒ노동신문

정부의 입장을 가감 없이 썼다가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2월 개성공단 중단발표를 하던 같은 날 통일부 기자들에게 '북한 리영길 처형'관련한 메일이 전달됐다. "리영길이 종파분자이고 세도 비리로 처형"되었고 "김정은에 대한 군부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결과"라는 보도자료에 덧붙여 기사에는 "군부가 김정은에 대해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기자의 해석이 들어간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형되었다는 리영길은 7차 당대회에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되며 건재함이 확인되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리영길이 처형되었다는 보도를 정부 소식통발로 다 썼는데, 굉장히 허망한 것이다. 정부를 믿고 기사를 썼는데 완전히 틀려 버린 것이다. 이것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정보 조작을 한 대표적인 사례다.  

같은 사진, 다른 해석이 있는 북한 기사 

한 사진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란 글자가 박힌 쌀자루를 북한의 아주머니와 아이가 수레에 싣고 가는 사진이 있다.  

진보적 성격의 정부나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고 한국이 지원한 쌀이 북한에 들어가서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고 보고 공급이 많아지니 시장가격이 떨어져 대북지원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그러나 보수진영에서는 같은 이 사진을 보고 지원한 쌀이 도중에 누군가 빼돌리고 있고, 그래서 쌀을 주면 안된다고 한다.

북한과 관련한 일들은 늘 끊임없이 시각적 대립과 해석이 있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를 쓰거나 읽을 때는 이점을 유의해야 한다. 북한 관련한 기사를 읽고 쓸 때는 자신의 정확한 북한관이 필요하다. 

대북지원단체가 전하는 오류 

북한 식량 사정에 대한 증언도 조사기관에 따라 다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국내에 들어온 탈북민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통한 설문조사를 한다. 북한에 살 때 하루 세끼를 먹었다는 응답이 86.9%이고 거의 쌀밥을 먹었다는 응답도 61.4%다. 강냉이나 옥수수를 주로 먹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 굉장히 다르다.  

그러나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2015년 9월 발표에서 북한 당국이 주민 한 명당 하루에 250g 밖에 식량을 배급하지 못한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하루에 세끼를 먹는다고 증언하는데 말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나 유엔기구들은 대북지원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단체들이다. 그러니 북한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야 자금이 많이 들어오고 운영이 되는 단체다. 북한은 시장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배급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결국 자기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공식담론을 읽어야 북한이 읽힌다 

그래서 사실 북한공식담론을 읽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부 발표,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의 증언, 유엔기구 발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북한의 공식담론을 통해 북한을 읽어내야 한다. 북한 매체라고 하면 선전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 매체도 굉장히 많은 북한의 사회상을 전하고 있다. 행간을 읽어내고 패턴도 읽어내야 한다.

북한의 기사나 발표는 전형적인 미괄식 구조다. 맨 마지막에 북한의 생각이나 정책적 방향이 나온다. 노동신문 뿐만 아니라 외무성이나 조평통 담화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 매체에서는 군에 대한 강조가 많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로 모든 것에 군을 앞세우는 방식이었다면 김정은 시대에는 당을 앞장세우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김정은 체제는 이런 지향과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흐름을 알아야만 매체를 읽었을 때 매체에 나와 있는 북한의 주장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판단 할 수 있다.

< 노동신문>이 2015년 4월 석화협동농장의 성과를 소개하면서 '가령 어느 강냉이 품종을 심는다면 한 평당 15포기가 들어가는데 그중 10포기는 분배 몫이고 나머지가 수매 몫이 된다'는 기사를 쓴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통해 북한의 협동농장에서 실시되는 포전담당제를 통해 생산물의 70%를 개인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북한 농업에 있어서 획기적 부분인데 이런 부분들을 <노동신문>의 기사를 읽고 한줄 찾아내서 기사를 쓰게 되는 것이다.  

북한매체들을 정확히 읽으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북한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의 사이트도 있지만 2007년 방통위에서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국이나 일본, 미국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노동신문>을 읽을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볼 수가 없다.  

2013년에 방영된 김정은 위원장이 나온 기록영화가 있다. 처음에는 장성택이 있었는데 나중에 없어졌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장성택이 북한 내에서 굉장히 나쁜 죄질로 처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최고권위에 도전하는 죄명을 가진 사람은 1호 영상 속에서 사진을 들어낸다. 출판물에서도 저 사람의 사진을 다 없앴다.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장성택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측이 된다. 북한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다면 북한의 공식담론을 봐야 한다.     


전 국민의 '이과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시대

[평화통일시민강좌] <3>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2018.07.24 14:23:49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평화통일시민강좌는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비한 북한사전'을 주제로 8월 11일까지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7월 14일 서울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바실리오홀에서 '북한을 읽는 키워드, 과학기술 강국'을 주제로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이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 강좌 소개 바로 가기 

▲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주체과학'을 바탕으로 한 자립경제건설 계획 

과학기술 주도로 국가발전을 이룩하겠다는 북한의 구상은 짧게는 1990년대 말부터, 길게는 해방 직후부터 이어져 왔다.  

김일성은 식민잔재 청산과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 발전은 필수적이라 생각했다. 1950년대 말 소련의 원조가 줄어들자 북한은 자립경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가기 위해 과학기술에서의 주체를 강조하고 연료, 원료, 인력,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기본방향을 설정했다.  

우리는 '천리마 운동'을 '새벽별 운동'이나 '천 삽 뜨고 한번 허리 펴기' 등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노동력이 부족하고 하루도 24시간으로 정해진 상황에서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만으로는 공업 생산성을 연평균 30% 이상 상승시키기는 어렵다.

실제 과학계와 생산현장에서 크고 작은 기술혁신들이 있었다. 석유가 아닌 북한에 풍부한 석회석과 석탄을 원료로 하여 만든 합성섬유 '비날론' 생산 공장이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북한은 소련의 도움 없이도 과학기술 발전으로 경제건설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공업 국가를 건설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1962년 안보위기를 겪으며 북한은 경제와 국방을 같이 발전시키겠다는 병진노선을 택했다. 소련과 중국의 갈등, 쿠바 미사일 위기(1962)·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1962) 등에서 미국에 대한 소련의 타협적 태도 등으로 인해 북한, 중국, 소련의 삼각 동맹에 큰 균열이 생긴 반면, 남한에서는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한미일 동맹이 강화될 가능성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은 안보위기를 느끼게 되고 경제에 일부 지장이 있다 하더라도 국방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1960년대 말에는 국가 예산의 30%가 국방으로 들어가게 됐다.  

국방과학기술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고 과학연구 주제도 경제와 결부시켜 연구주제를 통제하게 되니 과학자들이 정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과학발전 속도도 떨어졌다. 이로 인해 1970년대 말까지는 과학계에 대한 감시와 통제 위주의 과학기술 정책이 유지됐다.

그러다가 1970년대 말부터 변화를 모색하여 과학자의 사기 진작과 과학기술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는 과학영재들을 가르치기 위해 평양에 제1고등중학교를 설립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김정일 시대의 도전과 성과 

과학에 대한 지원확대와 과학기술 전문성을 높여나가는 정책은 김정일 위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주석은 영재교육에 부정적이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과학기술 영재는 어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때부터 이공계 분야에 탁월한 학생들은 군대 지원 없이도 바로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고, 과학기술 예산 및 과학기술 우대정책 확대, IT 등 첨단 과학기술 육성과 같은 정책들도 모색했다. 1990년대 들어 소련 및 동구권의 몰락, 김일성 주석 사망과 경제난을 거치며 10년 정도 중단됐던 이 정책은 1998년 '과학기술중시정책'이란 이름으로 재가동됐다.

2001년 3월 김정일 위원장이 당 간부들 앞에서 "새 세기, 21세기는 정보산업시대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정보화시대에 맞게 경제정책을 바꾸고 간부선발 방식도 학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중학교를 다닌 탈북자에 따르면, 이때부터 북한 학생들은 '컴퓨터를 잘 하면 좋은 직장에 갈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전공이 아니더라도 C언어를 대부분 할 줄 안다고 한다(이 탈북자는 남한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 진학을 선호하지만, 북한에서는 2000년대 이후 인재들이 이공계로 간다고 했다).

2002년부터는 초중등 교육에서 컴퓨터 영재교육이 강화되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컴퓨터 관련 학과가 신설됐으며,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도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김정일 시대는 선군시대 경제 발전 노선을 채택했고,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를 그 대표적인 성과로 꼽는다. 2009년 4월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2호 발사와 5월 2차 핵실험에 성공했는데, 이때부터 CNC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인공위성과 수천 km를 올라가야 하는 로켓은 부품의 정밀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컴퓨터로 정밀공작기계를 제어해야 한다. 그래서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나라들은 자체 CNC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북한은 CNC를 필두로 국방 과학기술을 민간으로 이전하면 민간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 2009년에는 '지식경제시대'와 '과학기술 강국' 담론도 등장했다. 그리고 2009년은 김정은 위원장이 후계자로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김정일 시대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식경제 강국 건설'을 목표로 한 '새 세기 산업혁명론'이 후계자의 과제로 정립됐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의 과학기술 정책은 김정일 시대의 10여 년의 모색과 실행의 결과이며 연속성이 크다.

▲ 지난 2017년 1월 26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사중인 여명거리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전 국민의 '이과화'를 추구하는 김정은 시대 

북한은 과학기술 강국을 위해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중요시한다. 전 인민들이 대학 졸업 수준의 과학기술지식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무교육 과정에서 과학기술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11년 의무교육과정을 12년으로 늘리면서 38% 정도였던 수학·과학 비중을 45% 정도까지 높였다.  

학교 실험실과 교실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평양중등학원 교사를 새로 짓고 교실마다 컴퓨터와 시청각 기기를 설치했다. 전자열람실, 생물, 화학, 물리, 기초기술 실습실도 만들었는데, 생물실습실에는 책상마다 현미경과 노트북이 비치되어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강의실도 컴퓨터에 기초한 '다기능화된' 강의실로 바꾸고 있고, 이공계 실습을 강화하기 위해 실습용 설비와 기자재를 확충하고 있다. 이렇게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본보기를 만들고 전국에 전파하고자 한다.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가 평양 쑥섬에 지어진 과학기술전당이다. 대중들에게 과학기술을 보급하는 것이 목적이다.  

남한의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과학공부 하라고 하면서 본인들은 하지 않는다. 과학관은 학생들이나 가는 곳으로 인식한다. 과천에 있는 국립과학관의 2배 규모인 평양의 과학기술전당은 학생은 물론이고 성인들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북한은 우리처럼 개인 PC로 자료를 검색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학기술전당에 과학기술 자료를 축적해 놓고 사람들이 직접 방문하거나 공장·농장의 전자열람실에서 접속해 필요한 자료들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이곳은 김정은 시대에 만들어진 전국적인 과학기술보급망의 '허브'다.  

과학기술보급망 확충은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를 위해 북한이 강조하는 사업이다. 공장에 과학기술보급소를 만들고, 공간이 부족하면 공장 곳곳에 무선공유기를 설치해서 태블릿PC로 접속하여 정보를 찾아볼 수 있게 한다.  

주민들은 과학기술보급실에서 과학기술전당만이 아니라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등 대학들이 운영하는 원격교육대학 사이트에 접속하여 대학교육을 수강한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도 인터넷 강의처럼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전자교과서를 이용해 수업을 한다.  

과학자 우대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평양에는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가 차례대로 건설됐다. 연구성과가 좋은 현직 과학자나 이미 은퇴했으나 국가에 공헌이 큰 과학자들이 이 단지들의 아파트를 무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전체 과학자에 비하면 적은 수이겠지만, 현역에 있는 과학자에게 열심히 하면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신호를 준다.  

과학자 전용 휴양소도 있고 최근에는 '국가 최우수 과학자·기술자상'을 신설하여 연구성과가 뛰어난 과학자와 엔지니어에게 시상과 상금을 주고 <노동신문>에 한명 한명의 사연을 기사화한다. 이렇게 과학자들의 연구 의욕을 북돋아 준다.  

"평양서는 중국산 제품 안 쓰고 안 먹습네다" 

새 세기 산업혁명의 핵심은 '정보화', 즉 생산과 경영 전반에 컴퓨터 이용을 확대하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역점은 통합생산체계 구축이다. 평양을 중심으로 주요 경공업 공장, 식품공장 대부분이 정보화, 현대화됐다.  

룡악산비누공장은 주요공정이 전부 자동화되고 컴퓨터망으로 연결되어 종합지령실에서 컴퓨터로 특정 공정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류원신발공장도 통합생산체계가 완성되어 일 년에 백만 켤레 이상을 생산한다. 통합생산체계를 도입해서 품질관리를 표준화하고 생산력도 높였으며 노동력은 절감됐다. 이제 평양에서는 중국산보다 질 좋은 '국산' 소비재를 더 많이 쓰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대학이나 연구기관도 자체적인 상품 개발과 판매를 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일성대 첨단과학연구원이 자외선가시분광광도계(투과율을 이용한 농도측정기)나 백신 프로그램 '클락새'를 만들고, 생물공학 분원이 줄기세포 화장품이나 건강식품을 만들어 판다.

북한은 공장이나 기업소, 농장의 신기술 개발도 독려하고 각종 과학기술 전시회를 개최한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하여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은 여전히 국가나 협동조합 소유지만, 기업들에 최대한의 경영권을 보장하여 이윤을 창출하도록 한다. 과학기술에 기초해 좋은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 수익이 늘면 개인이 가져가는 수익도 늘어나게 해서 생산 의욕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제활력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북한은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여전히 전기 사정이 안 좋은 상황에서 생활에너지를 최대한 친환경 에너지로 충당하려고 한다. 평양 소재 음대에 가면 강의실 창문마다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것을 볼 수 있다.  

생산현장에도 친환경 에너지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류원신발공장에는 400kw 태양광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북한 보도에 따르면 이 시스템으로 생산에 필요한 모든 전기를 충당하고 남는 전기는 국가전력망에 넣어준다고 한다. 평양화장품공장도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지하에는 분산형 지열설비도 갖추었다고 한다.  

아직 대규모 중공업 공장이나 화학공업 공장에는 통합생산체계나 친환경 에너지 비중이 높지 않아 보이지만, 평양의 경공업이나 식품공장에는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 변학문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평화통일시민행동


김정은 위원장의 새해 첫 현지지도는 '국가과학원' 

김정은 위원장의 2018년 첫 현지 지도는 '국가과학원'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을 갈 때도 과학원이나 농업, 에너지 분야의 연구기관을 방문했다. 북한은 올해 4월 20일 3차 전원회의에서 경제와 핵의 병진노선 종결을 선언하고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집중'이라는 전략적 노선을 발표했다. 과학기술과 교육의 힘으로 강제강국을 건설하겠다고 한다.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가 핵심 구호이고,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경제 강국 건설의 대통로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5월 인민군 최고위급 인사를 단행했다. 국내언론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에 대한 군부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온건파로 교체했다는 해석이 주로 소개됐다. 하지만 과학기술 측면에서 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총정치국장 김수길은 인민군 중장을 하다 2014년 4월 평양시당위원장으로 발령이 났다. 오늘 강연에서 예로 든, 과학기술 중시 정책에서 비롯된 최근 평양시의 변화는 대부분 김수길이 시당위원장으로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즉, 그는 4년 동안 평양시가 과학기술정책에 따라 확 바뀔 때 총책임자였던 사람이다. 이 사람을 군 서열 1위로 보냈다.

인민무력상 노광철은 직전까지 제2경제위원장, 그러니까 군수공업과 국방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인민무력상으로 새로 임명한 것이다. 경제 국방의 병진노선을 종결하고 경제건설의 총력집중으로 바꾸었으니, 거기에 맞춰 군 사업 전반도 재조정한다는 것이다.  

2013년 북한이 경제-핵 병진노선을 채택할 때 내세운 첫째 목표는 핵 억지력을 갖추는 것이었고, 둘째 목표는 국방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이를 민간으로 옮겨 민간경제를 빠르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핵 무력 완성과 병진노선의 종결 선언 이후 군 최고위급 인사 단행은 전략적 노선의 변화에 맞게 국방과학기술의 민간이전을 가속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앞으로 국방 과학기술의 민간이전이 대대적으로,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그간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을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은 시대, 모란봉 악단 띄운 이유는

[평화통일시민강좌] <4·끝> 전영선 건국대학교 HK 연구단 연구교수
2018.08.26 15:37:08

인민을 교양시키기 위한 수단인 북한의 문화예술 

남북 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욕망을 창조하는가 아니면 거세하는가 입니다. 시장경제체제는 개인의 욕망을 분출시킵니다. 끊임없이 소비하게 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개인의 욕망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사회를 위해서 개인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를 위한 교양사업으로 문화예술이 활용됩니다. 남북경제구조 시스템의 차이가 문화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남한 문화 구조의 핵심은 시장원리입니다. 얼마나 흥행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심지어 흥행에 실패하면 상영을 조기 중단하기도 합니다. 영화 투자사는 최대한의 흥행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게 됩니다. 예술은 산업입니다. 예술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선택되어야 하기 때문에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북한에서 예술은 곧 정치입니다. 보는 것, 듣는 것이 모두 정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민을 교양하기 위해 예술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예술은 당에서 계획하고 유통하고 관리합니다. 계획경제는 단순히 시장에 생필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무엇을 보고 듣는 지도 계획합니다.  

남한에서 문화는 경쟁구조이지만 북한의 예술은 독점구조입니다. 우리는 TV채널이 300~400개이지만 북한은 조선중앙텔레비젼 채널 1개입니다. 다양성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잡지는 <조선여성> 하나, 직장인을 위한 잡지는 <천리마> 하나, 문화인들을 위해서는 <조선예술> 하나면 됩니다.  

북한은 인문학을 학문체계로 따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사회과학입니다. 언어, 문학, 예술은 사회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언어는 나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과 혁명을 위해 필요하며 예술도 사회적 필요에 의해 존재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노래는 사냥을 하기 전에 대상을 그려놓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혹은 모내기처럼 공동으로 작업을 할 때 호흡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 지난 4일 강연하고 있는 전영선 교수 ⓒ평화통일시민행동


북한 문사철(文史哲)의 핵심은 '수령' 

북한 정체성의 핵심은 수령입니다. 문화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은 문사철(文史哲)입니다. 문(文)은 문학예술이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아름다운 것은 수령과 수령을 따르는 인민의 모습과 수령의 지도에 의해 변화 발전되고 있는 사회주의 조선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예술의 대상입니다. 사회주의 조선의 역사는 수령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가치를 판단하는 철학도 '수령님의 말씀'이 기준이 됩니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인민들이 수령을 모시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김일성주석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넘어갈 때는 후계자론을 강조했습니다. 능력을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논리는 지금은 주체시대이고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것은 주체사상인데 이것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지도자가 수령의 아들이란 점이 후계자가 되지 못할 이유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2008년에서 2010년 북한 문화정책의 핵심은 인민들이 수령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를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협동농장화 시대를 다룬 연극 <산울림>(2010년)은 6개월 이상 전국순회공연을 다녔고 북한의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시기를 다룬 <오늘을 추억하리>(2011년)는 1년 동안 전국순회공연을 진행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80년대 음악인들이 회고음악회를 진행합니다. 그리웠던 시대를 이야기하며 감성화 작업을 합니다. 이제는 우리 인민들이 수령을 모실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문화적으로 전파하였습니다. 이렇게 김정은 시대에는 수령과 인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문화예술의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북한의 문화예술은 근본적인 갈등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그려지는 갈등은 수령의 말씀을 겉만 받아들이는 자와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는 자와의 갈등입니다. 그 기반은 '정치사회적 생명체론'입니다. 육체적 삶은 부모님이 주시지만 주체시대를 살아 갈 수 있는 역할과 정치적 의미는 수령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회정치적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의 3대 혁명가극은 <당의 참된 딸>, <피바다>, <꽃파는 처녀>입니다. <당의 참된 딸>은 인민군에 갓 입대한 소녀병사가 당이 제시한 명령에 따라 부상병을 후송하는 과정을 그린 연극입니다. <피바다>는 주인공 '을남 어머니'가 일제시기 자식들을 항일유격대에 보내고 자신도 해방전투에 참가한다는 내용입니다. <꽃파는 처녀>는 일제시기 평범한 소녀 '꽃분이'가 시대적인 분노를 깨닫고 계급모순에서 해방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이름 없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영화는 전쟁을 그릴 때 전쟁의 전 역사를 그리지 않으며 높은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전쟁은 사상전이므로 인민들이 전쟁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찾기 힘든 부상병을 후송하는 소녀 병사, 평범한 어머니, 이름 없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여 인민들이 이 상황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혁명화 되는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모든 예술은 민족성을 기반으로, '민족예술' 

북한 문화 예술의 두 번째 특징은 민족예술입니다. 북한은 민족예술을 '민족생활을 바탕으로 삼고 자기나라 인민들의 생활감정과 정서, 미감에 맞게 창조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통하여 구현되는 문학예술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봅니다.  

북한은 '예술의 보편성'은 없다고 합니다. '보편성'은 자본주의 세력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봅니다. 민족마다 생활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데 예술이 같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모든 예술은 민족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이야기하며 민족문화 가운데 우수한 것은 받아들입니다.  

우리와 차이는 있습니다. 남한의 민족문화정책의 핵심은 원형보존이지만 북한은 현대성에 중점을 둡니다. 옛날에 만들어진 민족문화는 그 당시에는 굉장히 우수했겠지만 오늘날 인민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역사관이 달라서 이런 차이가 생깁니다.  

우리 사회는 역사는 퇴보한다고 봅니다. 동양에서 어느 때가 가장 좋았냐고 하면 요순시절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배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보고 그 이후는 점점 더 타락해 나간다고 봅니다. 서양의 기독교는 인간은 타락의 역사로 봅니다.

그런데 맑스·레닌은 기존의 관념을 뒤집어 역사는 발전한다고 봅니다. 과거에 형성된 문화는 시간적으로 뒤처져 있기 때문에 현대 인민들에게 맞게 고쳐져야 한다고 보고 고전문학은 재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만들어진 문화유산 중에 교양이 될 만한 것들을 선별합니다. 종교 무용 중에 불교 무용은 안되고 조선 시대를 착취의 시대로 보기 때문에 궁중무용도 안됩니다. 남는 것은 탈춤이나 민요가 있고 이것을 현대에 맞게 바꿉니다.

남한은 전통의 개념이 대부분 조선 시대 문화입니다. 고요하고 선적이고 여성적인 것이 우리의 정서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고구려 시대를 전통문화의 근간으로 두고 있습니다. 북한무용의 기본정신은 상무 정신입니다. 활달하고 씩씩하고 빠르고 동작이 경쾌합니다.

예술을 통한 집단감성의 공유, 정치와 예술의 결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0돌을 맞이하여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이 올해 9월 진행됩니다. 북한은 2002년 김일성 주석 탄생 9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대집단체조 '아리랑'을 공연했습니다. 출연진은 10만 명에 달하며 2002년에는 6개월 동안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아리랑 공연은 '아리랑 민족'이라는 민족사를 새로 씁니다. 민족은 수난을 겪어 왔지만 강성대국을 만들 것이라는 메시지를 공연하는 10만 명과 공연관람자가 공유하게 됩니다. 정치와 예술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 지난 2007년 열린 북한 아리랑 공연 ⓒ청와대 사진기자단


연극 <오늘을 추억하리>에서 '오늘'은 북한의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입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할 데 대한 당의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는 어느 한 산간의 인민들의 노력을 보여주는 연극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키워드는 '추억'입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은 20만 명에서 60만 명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추억하기 힘들죠.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를 불러내기 시작합니다. 불러낸다는 것은 과거로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아리랑 공연처럼 북한은 이 연극을 통해서 그 시대의 감성체를 짚어 나가며 사람들을 하나로 결집시킵니다.  

'창조기풍'과 '일본새'의 으뜸 '모란봉악단' 

김정은 시대에 모란봉 악단이 등장했습니다. 2012년 7월 모란봉악단이 평양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시범공연을 했습니다. 2012년이면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8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국상기간이었을 시기에 모란봉악단이 창단공연을 했습니다. 굉장히 큰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2012년을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경건한 분위기로 갈 것인가,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에 스포트라이트를 주면서 비전을 줄 것인가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를 인민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모란봉악단은 공연에서 '미니 마우스' 같은 할리우드 만화와 캐릭터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마이 웨이>나 영화 <로키>, <백설공주>의 OST를 연주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 시대는 '무엇인가 다르긴 다르구나'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모란봉 악단은 북한의 주요 행사 때마다 현지 공연을 주도합니다. 북한 내에서 핵심적 예술단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모란봉악단이 이와 같이 핵심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창조기풍'과 '일본새'입니다. <로동신문> 2013년 7월 9일 자에서는 "완전히 때벗이를 하여야 한다. 주저앉아 우는 소리나 하고 조건타발만 하는 패배주의적 관점과 일본새를 결정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시기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침체되어 있는 시기였습니다. 북한은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었지만 인민들이 지도부를 완전하게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최고지도자가 사망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등장했고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라오라'는 메시지가 필요했습니다.  

문학예술부분의 모든 예술인들이 근본적인 혁신을 일으킬 것을 주문했고 실제로 모란봉악단에 관여했던 인물들에게 노력영웅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올해 봄 서울에서 공연을 한 '삼지연 관혁악단'의 현송월 단장은 모란봉악단의 단장입니다. 상징적으로 모란봉악단을 보낸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