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인터뷰] 아직 우린 한국전쟁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 남북 '공동운전'의 시대

일취월장7 2018. 5. 10. 10:05

[인터뷰] 아직 우린 한국전쟁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인터뷰]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 펴낸 한성훈 박사
2018.05.09 12:22:05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2일 경남 창원을 방문하여 "여기는 빨갱이들이 많다. 성질 같아서는 대번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데"라고 발언해 큰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홍 대표는 지금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횡행하는 우리나라에서 '빨갱이'는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심지어 학살당해도 숨을 죽이고 살아야 되는 비극적인 존재다. 그런데 제1야당의 대표가 대낮에 그런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하고도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있다. 만약에 이런 사람이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현기증이 든다.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의 사과까지 권고한 여순사건에 대해서 국방부가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며 민간인 학살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지난 4일 K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국방부는 지난해 발의된 여순사건 특별법안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지난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한 여순사건 당시 "군인과 경찰이 의심만으로 민간인을 집단 사살했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여순사건 보고서>를 통해 "강태효 외 123명은 여순사건 직후인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8월까지 여수시 일대에서 국군 제2연대·제4연대·제5연대·제12연대·제15연대 소속부대원, 그리고 수도경찰대, 여수경찰서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 사살되었다"며 진실을 규명한 바 있다.  

당시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본 사건 당시 반군 활동 지역에 거주했던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반군에게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담 혐의의 경우 추정만 있을 뿐, 구체적인 가담사실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군경의 가해는 자의적인 성격이 강했다. (또) 본 사건에서 군경당국은 법적 통제를 받지 않고 작전의 편의성이나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즉결처분'을 남용하였다. 이에 많은 민간인들이 반군에 협조한 혐의만으로 재판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됐으며, 이는 '즉결처분'이 사실상 학살이었음을 말해준다"며 여순사건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민간인 학살사건 조사팀장을 지낸 한성훈 박사는 최근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산처럼 펴냄)를 펴냈다. 이 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에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전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참고서이자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을 때면 마치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또 한국전쟁이 우리사회에 남긴 가장 큰 비극적 유산으로서 저자는 "국가와 사회가 대량학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도 정치권력의 잔혹한 행위를 부인하고 살았다"며 "고통과 죽음을 대면하지 않고 피해자와 그 유족을 외면한 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가 (그동안) 유지되어 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의 저자인 한성훈 박사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 저자 한성훈 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역사와공간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연구사업으로 '월남민 구술생애사 조사연구'와 '동아시아 시민사회 비교연구'를 수행했다. 시민사회단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를 만들어 활동했고,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했다. ⓒ김성수


"근대국가의 정치시스템이 대량학살 같은 인류의 비극을 초래했다"

- 이 책은 제노사이드 연구에서 근대의 도구적 이성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는데, 근대문명을 창조한 이성과 대규모 살상을 가져온 관료제와 합리주의, 분업, 산업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근대 지식의 공공성은 민주주의 문명의 토대를 구축해왔다. 근대문명의 합리화는 사회를 과학으로 설명하기 시작하고 과학의 합리성은 인간을 해방시킨 측면이 있지만 삶의 무의미를 증대시켰다. 이성의 도구적 합리성은 정치로부터 도덕과 윤리를 분리시키고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로서 인간의 인식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결국 근대국가의 정치시스템이 홀로코스트나 대량학살과 같은 인류의 비극을 초래했다. 합리주의는 삶의 보편타당한 도덕적 기준과 정치적 가치의 존재에 대한 신념을 뒷받침하지 못한 것이다. 효율과 분업을 최고로 추구하는 산업사회의 합리성은 대량학살이 인류문명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진 과거청산의 주요성과는 무엇이었고 아쉬운 점은 어떤 것이었다고 평가하는지? 

"얼마 전 제주4.3 7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지만, 국가기관이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과거청산의 주요성과라면 첫째, 정보수사기관이 잘못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것을 바로잡게 되는 교훈을 남긴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정부기관에서 공권력을 행사할 때 불법하거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둘째, 피해자 명예회복을 꼽을 수 있다. 국가의 잘못으로 피해자들이 사망한 것을 밝힌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일반 시민들에게 과거청산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성과는 보편정의의 실현이다.

아쉬운 점은 첫째, 정부기관의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정보수사기관의 권력을 분점하고 상호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법의학 분야에 대한 권고도 실효성이 없었다. 둘째, 유해발굴 종합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과 재단을 설립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셋째, 화해를 포함한 가해자 문제와 피해자 손해배상을 진척시키지 못한 부분이다."  

- 노무현 정부 이후 과거의 민간인학살 및 인권침해 사건들과 관련하여 정부기관이 자신들의 잘못을 개혁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권고한 사항을 어느 정도 이행하고 있다고 보는지?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사과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이것은 상징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권고사항은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실제 관련기관에서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 인권교육은 나름대로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기본적인 조치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소속 공무원들에게 나타나는 효과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기관 내부에서 인권침해 사안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이런 기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밝혀지고 있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사찰, 대선개입, 간첩조작, 블랙리스트 이런 사례를 보면 정부기관은 스스로 개혁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 이승만·박정희·전두환·박근혜·이명박 정부의 민간인학살, 인권침해, 민간인사찰 사건들과 관련하여 이러한 불행한 일이 향후 재발하지 않도록 지금 국회와 문재인 정부, 시민사회가 할 과제가 있다면? 

"국회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기본법을 개정해서 진실규명이 안 된 사건의 조사와 유해 발굴, 피해자 현황, 손해배상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한 사항 중에서 각 기관이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게 필요하다. 좋은 방안이 없어서 인권을 침해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게 아니다. 정부기관이 제도와 문화를 개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시민사회는 유족들이 피해자의 지위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고, 피해자 증언채록과 현황 파악을 위해 지방정부와 협업하는 방식의 작업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본다."

- 민간인학살 현장으로서 유해발굴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유해발굴은 유해 그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장소가 학살 현장으로서 갖는 의미도 크다. 발굴한 희생자의 뼈와 유물이 의미를 가지려면 학살 장소가 의미를 가져야 하고, 그 장소는 사건과 연계될 때 의미를 가진다. 현재도 시민사회단체에서 유해발굴에 나서서 많은 애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피해자와 사건현장으로서 장소, 일관된 역사적 의미를 가지려면 최소한 현장을 어떤 방식으로든 보존하려는 정부의 종합대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해를 발굴하고 끝나버리면 그 현장은 사라지는 게 되지 않나. 피해 유족이 지속해서 관심을 갖는 현장이 되려면 국회와 정부가 하루빨리 이에 대한 정책을 제도화시켜야한다." 



▲ 1961년 5월 경찰이 부순 제주 백조일손지지 위령비 조각. ⓒ 한성훈


- 책에서 지난 2000년부터 수집한 증언을 연구 자료로 내놓는다고 했는데, 피해자의 증언은 어떤 의미가 있나? 

"그들의 말은 하나의 소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을 밝히고 진실을 요구하는 증언의 양식을 갖는다.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증언의 형식으로서 정치행위라고 할 수 있다. 개별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전형(paradigm)이듯이, 한 사람의 증언은 모든 사람의 증언이 된다. 독자 중에 누군가 학살피해자 유족의 증언을 처음 듣는다면 상상해보지 못한 낯선 풍경이 흉악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존자의 증언은 세상을 바꾸었고 사회의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무기가 되어 정치를 움직였다. 증언은 자신들의 인생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타자의 삶과 한 시대를 바꾸어 놓았다. 증언에 견주거나 맞설 만한 것은 없기 때문에 희생자와 그 친족의 말은 '절대 언어'에 가깝다. 정제되지 않고 비통한 감정을 토로하는 낯선 문법이지만 그들에게 증언은 어떤 조건이나 구속을 받지 않는 '절대 언어'에 속한다."  

- 피해자의 증언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방대한 1차 사료가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료들을 찾고 수집했을 텐데 이것들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전작 <가면권력: 한국전쟁과 학살>(후마니타스 펴냄)을 펴냈을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이 책의 자료들은 진실화해위원회가 사건을 조사하면서 정부기관으로부터 모은 귀중한 자료들이고 개별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근거로 쓰였다. 모든 문건은 서지정보를 명확히 해서 조사보고서에 그대로 수록했다. 중요한 문건들은 기자회견에서 그 내용을 공개하고 원문을 밝히기까지 했는데, 어떤 책에는 출처 인용 표시도 없이 한국전쟁과 사진에 이 자료들을 영인본 형태로 싣기도 했다.  

내가 진실위 팀장으로 있을 때, 생산기관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는 자료수집 보고를 한 후 조사관들에게 가능한 자세하게 해제해서 보고하도록 했다. 자료는 사건을 밝히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였고 진실규명결정서와 조사보고서에 많은 부분이 기재되어 있으며 국가기록원(서울기록관)에 이관해 보존되어 있다. 관심 있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조사보고서에 실린 근거를 갖고 국가기록원에 열람 신청을 하면 자료를 볼 수 있다."

"생존자의 삶에 죽은 사람들의 몫이 있다" 

-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을 때면 마치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는데, 그 생존자들이 바로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분들이어서 그런 느낌이 든 것인지? 
"이런 현상은 증언으로 떠올리는 이미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은 매우 남다르고 현장에서 벌어진 일은 쉽게 들을 수 없는 서사다. 사건이 일어난 그때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애 전반을 이해하는 것은 생존자의 삶에 죽은 사람들의 몫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화라고 표현한 것은 그런 뜻이다."

- 한국전쟁 중 총칼을 든 인민군의 강요에 못 이겨 짐 한번 져주고 밥 한 끼 제공했다고 이승만 정권은 자국민을 부역자란 이름으로 학살했다. 이승만은 왜 그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고 보나? 
"국가의 우월성 때문이다. 남북한이라고 하는 두 개의 국가가 긴장과 대결관계에 있을 때 정치공동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강력한 국가를 건설한다. 학살은 남한의 '국가 이성(raison d'état)'을 실현하는 통치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 이성'은 다른 모든 사회적 요구와 이익에 대해 우월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없이는 새롭게 창출된 정치적 실체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가해 동기는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반대자나 잠재적인 위협을 제거하고, 공포를 확산시키기 위해 특정한 '정치집단'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된다. 상대방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 학살은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자기들도 언제든지 이 죽음의 대상자가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대규모 학살이 가져오는 통치의 효과는 지배집단의 가치를 국가 이상으로 격상시키고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정치체제를 각인시키는 데 있다." 

- 민간인 학살의 현장에서 총칼로 자국민 학살을 수행했던 가해자도 죽은 사람들이 '좌익사상'에 투철하지 않았음을 명백하게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다고 생각하는지? 
"가해자의 인식은 살해를 거부하는 도덕적 요구와 상식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이성의 도구적 합리성 형태를 갖는다. 군인이나 경찰 등 가해자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애국심이나 반공주의를 자아의 이상향으로 받아들여 살해행위를 자신의 신념과 동일시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민간인을 죽이라는 명령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의 행위를 의식적으로 정당하게 여기면서 학살을 수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장의 가해자는 반공이나 애국심과 일체화되어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을 보호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관료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이 상태에서는 극단적인 이념의 표출이 없이도 인권침해를 일삼을 수 있고 정치적으로 쉽게 동원 될 수 있는 적당한 형태가 된다."

"우리는 아직 한국전쟁의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학살, 그 이후의 삶과 정치>(한성훈 지음, 산처럼 펴냄). ⓒ산처럼


- 책에서 학살 가해자가 자신의 학살행위와 관련된 희생자를 만나 고백하는 장면은 흔치 않다고 했는데 왜 가해자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일에 있어서 그토록 인색하다고 보는지?

"잘못을 시인하는 것은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책임은 반드시 형사 책임이 아니더라도 어떤 종류의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을 준다. 또 하나는 학살을 수행한 행위자가 볼 때 살인이 개인의 행위이긴 하지만 이것이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될 수 없는 현장지휘관과 부대책임자, 최종명령을 내린 권력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기 책임이라고 명확하게 느끼기 곤란한 거다. 촘촘하게 분절화 된 관료제도에서 한 개인이 그 책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해자가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게 된다. 민간인 학살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잘못을 시인하는 자기 고백이 드문 문화도 한몫 하고 있다." 


- 한국전쟁이 우리사회에 남긴 가장 큰 비극적 유산은 무엇이라고 평가하는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것이다. 억울하게 죽었고 명예롭게 죽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항상 도덕적 정당성을 요구하게 된다. 국가와 사회가 대량학살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시민들도 정치권력의 잔혹한 행위를 부인하고 살았다. 고통과 죽음을 대면하지 않고 피해자와 그 유족을 외면한 채 국가공동체가 유지되어 온 것이다. 그렇게 참혹한 일을 당하고도 우리가 정치권력으로부터 시민을 해방시키는 학문의 공공성과 철학 그리고 계몽과 광기의 차이를 구별하는 비판 이성과 도덕에 관한 사회이론을 정립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비극이다."  



남북 '공동운전'의 시대

[이충렬의 정권+교체] 남북 공동운전으로 2+2시대를 열다
2018.05.10 03:19:01


1. 새로운 메가트렌드로 접어든 한반도

지각변동,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남북한 정상회담이 축발시킨 대변동을 일컬음이다. 상시적인 전쟁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대결과 반목에서 협력과 경쟁으로.

무엇보다 감격스러운 것은, 이번의 대변동은 외부로부터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4.27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1945년이래 강요되어온 민족대결의 전쟁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남한과 북한이 새로운 행보를 시작하자마자 전세계는 두 코리아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분석하기 바쁘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중국 역시 남북한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자신들이 패싱당하지 않기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70여년만에 처음 맞이하는 진풍경이다. 우리가 민족분열의 소모전에 빠져있으면, 열강의 먹이감이 될 수밖에 없고, 우리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치면 어느 열강도 우리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한다.   

남북한에 평화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고 있다. 평화, 공존, 협력과 번영 등이 새로운 시대를 관통할 메가트렌드가 될 것이다. 이 메가트렌드에 적응하는 세력은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것이고, 과거의 기준에 머물러 있는 세력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2. 북한의 계몽군주 

이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계몽군주적 리더십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1년 집권했을 때부터 김정은 위원장은 새로운 노선을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만을 초청하기도 하고, 미국식 문화인 미키마우스와 디즈니랜드를 대중들에게 공개하기도 하는 등 외부세계와의 개방정책을 염두에 둔 흔적을 보였다.  

결정적인 것은 2014년 9월 아시안 게임 폐막식 때, 당시 북한 정권의 2인자, 3인자, 4인자를 한꺼번에 파견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남한의 박근혜 대통령은 면담조차 거부하고 그대로 돌려보냈다. 이후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전력투구하게 된다.

국내적으로도 선군정치(先軍政治)를 뒤로 물리고 당 중심의 정치를 지향했다. 장마당을 활성화시키고, 경제개혁을 통해 새로운 경제모델을 지향함을 뚜렷이했다. 

작년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해 '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뒤, 올초 신년사에서 노선변화를 공식화한 이래 그는 이때까지 알려진 것과는 전혀다른 면모와 신노선을 전세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이래 북한은 오랜기간 '유훈통치'의 시대를 보냈다. 국제적인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내부적인 대기근으로 인해 체제유지조차 힘든 시기였다. 이때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종의 쇄국정책을 단행하였다.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였다. 

2018년에 이르러, 김정은 위원장은 사실상 유훈통치를 마감하고 '김정은 시대의 북한'을 세계에 선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북한판 개혁개방시대의 개막으로 보인다. 그의 롤모델이 중국의 경제번영을 이끈 덩샤오핑이라는 평이 많다. 

문화대혁명으로 정치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오쩌둥과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한 덩샤오핑의 차이점을 외국유학경험으로 설명하는 학자들도 있다. 마오쩌둥은 평생 중국 농촌을 중심으로 사유한 반면에 덩샤오핑은 20대초 프랑스 파리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경험이 달랐다는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세계관의 차이는 국가적 진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북한과 같은 수령제 국가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김정은 위원장과 사실상의 2인자인 김여정 노동당부부장은 10대를 유럽의 선진국 스위스에서 유학생활을 하였다. 

김위원장은 그의 관심이 체제안전보장과 인민들의 생활향상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북한체제를 흔들지 않는 이상 국제평화와 비핵화에 적극 협력할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인민들에게 주문할 생각이 없음을 공개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북한에 유럽식 교육을 받은 계몽군주가 출현했음을 우리는 인정하고, 이것을 계기로,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혹자는 그의 진심을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만약에 북한이 국제사회를 실망시킨다면 다시는 신뢰를 회복할 기회가 없어질 것이다. 의심하기보다는 협력하여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

3.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나쁜 일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최근에 정반대 현실을 목격하고 있다. 좋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촛불혁명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역사상 최초의 시민혁명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감격했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세운 민주정부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키고 또 한번 감격했다. 

그런데 촛불혁명은 국내정치의 적폐청산과 개혁에 머무르지 않고 한반도의 대사변을 일으키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작년 북한의 핵미사일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이 전쟁 일보직전의 위기까지 치달았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공개석상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제재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전쟁가능성에 대해서는 확고히 쐐기를 박았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보수정권은 북한붕괴라는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서 대결노선을 고집했었다. 이에 반해 문재인정부는 6.15선언과 10.4 정신을 계승하여 남북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미국과의 정면대결이라는 외통수로 치달려가던 북한의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쟁만큼은 반대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그래도 믿고 상의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은 결단을 내렸다. 문재인정부를 믿고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을 밀어보기로 한 것이다. 한편 북한의 신뢰를 얻은 문재인 정부야말로 미국 트럼프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소중한 '중재자'로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통한 손익분석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문재인대통령이 보증한 북미 빅딜은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일 수 밖에 없다. 

4. 남한의 냉전보수세력은 어디로? 

대변동의 시대에 가장 당혹한 세력은 말할 것도 없이 남한의 냉전보수세력이다. 보수세력 중에서도 시장보수세력은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남북경협과 북방경제밖에는 없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북한과의 화해를 적극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과의 대결을 생존의 밑천으로 삼고 있는 안보보수 혹은 냉전보수세력이다. 이들은 주로 정치권에서 둥지를 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이끌고 있는 홍준표 대표가 '남북정상회담은 위장평화쑈'라는 발언을 했다가 자당의 후보들로부터도 집중적으로 성토를 당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손바닥으로 막아보려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까지 북한과의 대화전략으로 돌아서자 멘붕상태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나서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국회의석(115석)으로 정치를 동결시키고 있다. 입법부를 마비시켜 문재인정부의 발목을 잡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국민들은 현명하게도 자유한국당의 이런 국정마비전략을 눈치채고,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바닥까지 내려가야 보수세력이 정신을 차릴 것인가? 보수세력 내부의 혁신 움직임이 언젠가는 일어나길 바란다.  

5. 남북 공동운전으로 2+2시대를 열다 

새로운 시대는 2+2를 축으로 하는 시대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을 당사자로 하는 새로운 국제관계의 틀이다. 한국전쟁에서 피를 흘린 4개국이 평화체제의 핵심을 이루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이 새로운 체제의 기축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해관계와 안보전략이 공동의 목표를 행해 초점을 맞추기 까지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매우 아슬아슬하고 또 위태로운 국면도 많이 맞이할 것이다. 

내전의 당사자인 두 나라가 체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제1의 협상파트너로 신뢰하고 인정할 때, 두 나라의 국익도 극대화될 것이다. 또 주변 강대국도 한민족의 자주성과 결정력을 존중할 것이다.  

전쟁시대의 대결과 반목에서 평화체제의 협력과 경쟁이라는 미증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같이 개척해야 한다. 어느 한편의 주도권이나 일방적 독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민족적 각성을 바탕으로 한반도는 우리가 '공동으로 운전'한다는 원칙을 갖고 해나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