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강의실 혁명 '무크'가 뭐기에?

일취월장7 2018. 4. 24. 10:31

강의실 혁명 '무크'가 뭐기에?

[김윤태 칼럼] 대형 공개 온라인 강의(MOOC)와 교육의 미래
2018.04.24 11:13:30

세상이 급속하게 변하지만 교육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분야다. 지금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사람들이 돈을 주고 변론술을 배우던 방법으로 공부한다. 공자가 돈을 받고 학생을 가르친 것처럼 아직도 사립학교에서 학생들의 수업료로 학교가 운영된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학생들은 받아 적고 암기한다. 때때로 토론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한국의 입시는 선다형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이 유지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보통신 혁명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의 기본적 교육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최소한 수 년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무크 강의의 충격 

비영리 온라인 교육 플랫폼 '칸 아카데미(Kahn Academy)'의 설립자 살만 칸은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2012)라는 저서에서 무크를 통한 교육 혁명을 예고했다. 대형 공개 온라인 강의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 MOOC) 강의는 수강 인원에 제한 없이, 모든 사람이 수강 가능하며, 웹 기반으로 만든 강좌로 운영된다. 대학에서는 아무리 많아도 수백 명을 넘기 힘든데, 무크에서는 전 세계에서 수십 만 명, 심지어 수백 만 명이 들을 수 있다. 
 약 20년 전 MIT 대학에서 시작된 오픈코스웨어(OpenCourseWare: OCW) 운동이 일어난 이래 대학의 문턱은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나도 고려대에서 내 강의계획서와 강의 자료를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대학공개강의 KOCW). 이러한 오픈코스웨어 운동은 대학 강의를 시민에게 개방하는 방법이지만, 무크는 아예 처음부터 대학 외부에서 더 많은 수강생을 고려해 만든 강좌이다.  

에덱스(edX)는 노벨상 수상자인 컬럼비아 대학 제프리 삭스 교수의 강의를 무료로 제공한다. 오픈코스웨어와 달리 수업 진도에 맞춰 시험(퀴즈)을 수행해야 하고, 상호평가와 토론도 이루어지면, 강의에 따라 수료증도 발급한다. '지속가능한 개발' 강좌를 마치면 제프리 삭스 교수가 직접 서명한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무크는 미국과 유럽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전통적 교육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사이버대학 온라인 강좌는 돈을 주어야만 수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폐쇄적이다. 지식의 대중화라는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테드(TED) 강연'도 대학 외부에서 만들었지만, 대학 강의 수준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무크는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온라인 교육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한국에서도 3년 전 부터 교육부의 지원으로 각 대학별로 무크가 324개 강좌가 개설된 이후 수강 인원이 총 20만 명이 넘었다. 나도 2017년부터 '모두를 위한 사회학' 강의를 운영했는데, 첫 강의에 500명이 참가했다. 무크는 학습자가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던 기존의 온라인 학습 동영상과 달리 교사와 학습자, 학습자와 학습자 사이의 질의응답, 토론, 퀴즈, 과제 제출 등 양방향 학습이 가능하다. 나도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도 영리 목적으로 거액의 수업료를 받고 학위를 부여하는 사이버대학의 온라인 강의와 달리, 무크는 철저히 무료이다. 사이버대학은 등록금을 낸 학생만 참여하는 폐쇄적 교육이지만, 무크는 기술적으로 수십 만 명의 수강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크가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는 비판도 많다. 특히 등록 비율에 비해 이수 비율이 낮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등록하는 인원이 워낙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50퍼센트의 이수율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심지어 미국의 코세라, 에덱스(edX), 유다시티에서 강좌 이수율은 평균 6.5%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에덱스에서 강의하는 노벨상 수상자 예일 대학교 로버트 실러 교수는 30년 넘게 가르친 학생 수보다 그의 강의를 학생 수가 더 많았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대학 교육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의 소통, 학생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만들어 리더십과 협동 정신을 키우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무크 강의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특히 무크는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대학에 갈 학비가 없는 학생들에게 무료로 우수한 강의를 수강할 수 있게 돕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한국에서도 무크 강의를 통해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친 후에도 교양과 전공 지식을 쌓을 수 있으므로 평생 교육의 차원에서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교육이야말로 노후를 위한 가장 좋은 대책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러면 무크 강의가 대학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최상위권 대학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오랜 전통과 풍부한 재정으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 개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대학은 온라인 강의를 확대하여 과목 수를 줄이고 대학의 운영비를 줄이려 할 것이다. 대신 새로운 교양 교육을 강조하거나 새로운 융합 학문의 신설을 통해 학문의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무크는 대학에도 서서히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대학에서 무크와 수업을 결합하는 혼합 방식의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 강의를 '플립 클래스(flipped class)'를 운영하는데, 학생들이 미리 온라인 강의를 수강한 후, 오프라인 수업에서는 토론 시간을 갖는다. 플립 클래스는 말 그대로 '교실 뒤집기'를 통해 학생들은 각자 혼자 강의를 듣고,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과제를 수행하고, 팀 프로젝트를 통해 협력하고, 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다양한 학습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교육 방법이 확대되면서 교수가 혼자 말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적기만 하던 강의실 풍경은 역사 기록실에만 남게 될 것이다. 

인터넷이 온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대학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강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젊은이나 노인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한국 사람이든, 캄보디아 사람이든, 콩고 사람이든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세계 최고의 강의에 접속하여 공부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학문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다. 물리학과 기계공학에서 역사학에서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수 천 개의 동영상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2012년 미국에서 설립된 코세라(Coursera)의 교육 프로그램에는 200개 국가의 학생들이 등록하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600개 이상의 강의가 운영되고 있다. 무크는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대학 강의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획기적인 실험으로 커다란 주목을 끌고 있다.  

빅 데이터(big data)도 인터넷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온라인 강의를 듣게 되면 학습자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축적될 수 있다. 공부하는 학생의 관심과 자질이 상이하고, 학습하는 방법도 다양하기 때문에 맞춤식 교육을 받으면 가장 좋을 것이다. 원래 전통 사회에서 귀족이나 부자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교사를 두었다. 나는 캠브리지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학부 학생도 교수와 1대 1 개인지도(supervision)의 전통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는 훌륭한 엘리트 교육이지만, 교수의 수가 많아야 하고, 막대한 재정이 필요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교는 독일의 전통을 따라 공장식으로 표준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만, 미래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제공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앞으로 빅 데이터를 통해 개인의 성과에 따른 강의 내용과 방법을 즉각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될 것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데도 공장식 수업에 그대로 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양 교육의 중요성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운명은 오직 젊은이를 위한 교육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 당시 젊은이는 주로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국가의 운명은 남자 뿐 아니라 여자, 그리고 청년 뿐 아니라 중년과 노인 등 모든 연령대 사람들의 교육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무크 강의의 가장 큰 장점은 학생의 규모이다. 또한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20세기에 공공도서관에서 무료로 노동자들에게 책을 빌려 준 것처럼 21세기의 무크 강의는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한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물론 무크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무크 10대 이슈>에서 지적했듯이 무크의 제작 비용이 매우 큰데 비해 수익 모델이 불확실하고, 한국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경우 규제가 간섭이 역효과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무크 수강생이 대졸자가 많고 사실상 저소득층에 큰 도움을 못 주고 직업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미국이 무크 강의를 주도하고 전 세계적으로 70퍼센트 이상이 영어 강의이가 때문에 19세기 기독교 선교사처럼 서구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신식민주의에 대한 우려도 있다. 물론 이제 시작한지 10년도 안 되는 무크 강의가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무크는 과거의 전통적 대학 교육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실험을 추구할 것이다. 

나는 무크는 앞으로 돈 벌이를 위한 실무 기술 뿐 아니라 인문학 강좌를 통해 광범한 교양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취업훈련과 실무지식을 배운 사람들도 페르시아의 시와 영국 문학부터 중국의 도자기사와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에 이르기까지 교양 교육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다. 이렇게 교양교육을 광범한 사람들이 수강하게 된다면 지적, 문화적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공학과 경제학의 지식을 얻는 동시에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세계가 등장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무크를 수강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취업을 위한 지식만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사 등 다양한 교양 지식을 얻기 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나는 올 해 10월 '네이버열린논단'에서 '빈곤, 불평등, 국가의 역할'에 관한 사회학 강연을 할 예정이다. 무료로 온라인, 오프라인 강연이 동시에 이루어지만, 수강생이 돈을 벌고 취직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3년 전 시작한 '네이버열린논단'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에 개별 강연은 연 인원 1만 명 이상이 수강했다. 특히 토스토예프스키 문학에 대한 강연은 7만 명이 넘었다. 왜 사람들은 돈도 벌수 없는 지식에 그리도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앞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단순 노동을 모두 대체한다면 결국 인간은 창의적 활동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오페라를 작곡하고, 아이를 돌보고, 아픈 가족을 돕고, 친구와 이웃이 함께 모여 행사를 즐기는 등 새로운 기술을 인간을 위해 활용하려는 창의적 사고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교육이 중요했던 것처럼 21세기에 디지털 기술의 시대에는 역설적으로 교양 교육이 새롭게 각광을 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 수학, 물리학, 건축,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교양 교육이야말로 디지털 혁명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교육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무크를 통한 교양 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은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촉진하는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인간의 미래는 교육에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서도 ‘고딩’ 때 학원을 못 벗어나는 학생들

대학에 가서도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학원을 못 벗어나는 학생이 있다. 대학 과제물이 안 풀린다며 옛 학원 선생에게 도움을 청한다. 일부 학부모는 자식을 대신해 학점 관리와 리포트 작성법을 배워간다.

해달 (필명·입시학원 강사)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4월 23일 월요일 제553호

대학생이 된 학원 수강생들이 찾아왔다. 으레 그렇듯 밥을 사주고, 대학 생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한 학생이 애교를 떨며 물었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아이가 내민 종이는 대학 과제물이었다. 생각보다 잘 안 풀린다며 옛 학원 선생인 내게 도움을 청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신문에서만 보던 ‘사교육 받는 대학생’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호의로 잠깐 봐줘도 될 일이었지만, 왠지 기분이 씁쓸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재수 생활을 마친 후에도 학원 강사와 꾸준히 친분을 유지하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학창 시절 다니던 학원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교무실에서 틈틈이 본인의 과제를 하다 안 풀리면 강사들의 쉬는 시간을 기다려 도움을 받는다. “대학을 가서도 학원을 못 벗어나느냐”라고 핀잔을 주긴 했어도 그 요청을 외면한 적은 없다.

ⓒ김보경 그림

그런데 학원을 못 벗어나는 것이 학생만은 아니다. 일부 학부모는 대학생이 된 자식들의 근황을 알리며 안부 인사를 남기곤 한다. 본격적으로 진로 상담이 필요한 날에는 샌드위치나 음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불시에 들이닥쳐 옛 학원 강사를 기다릴 때도 있었다. 각종 취업·유학 박람회를 비롯해 인터넷이라는 엄청난 정보 창구가 있는 시대이며, 대학의 취업센터를 통해 충분히 진로 탐색이 가능하고, 학교 인맥으로 현업 직장인의 실질적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시절인데도 이들은 고등학교 때 다니던 학원에 왔다. 대학 생활에 부지런하지 못한 자식을 대신해 부모는 하소연을 빙자해 학점 관리와 리포트 작성법을 배워갔고, 가끔 전공 분야가 겹치면 내게는 대수롭지 않은 정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무척이나 유용할 정보를 수월하게 얻어갈 때도 있었다. 

얼마 전 학원 교무실에 2년 전 졸업한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학원 다닐 때부터 워낙 치맛바람이 거센 분이었다. 그는 화장품을 전 직원과 강사에게 돌리며 고3 때 자기 아이를 담당했던 강사의 퇴근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는 강사에게 부탁을 쏟아냈다. 강사가 나온 그 대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다, 조기 졸업이 목표인데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자기소개서와 학업 계획서를 위해 어떤 활동이 유리한지, 그 학과 교수진의 성향은 어떠한지, 대학원 입학 준비를 위해 핵심적인 논문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속사포처럼 물었다. 결론은 강사가 짜줄 그 계획을 ‘사고’ 싶다는 거였다.

입시학원 강사가 자녀 진로 탐색의 브로커?

그날 그 강사가 어떻게 대처했는지 모른다. 이수 과목이야 졸업 조건에 맞춰 들으면 될 일이고, 대학원 입시야 학과에 재학 중인 아이가 가장 잘 알 것인데, 학생이 의지가 없어 안 알아보는 것을 왜 여기 와서 찾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까운 인맥이 없고 학원 강사에게 그 조언을 구해야 할 만큼 그 학부모가 절박하고 불안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학원에서 일하며 가끔씩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입시학원 강사들을 대학 입학 뒤에도 진로 탐색의 ‘브로커’로 삼겠다는 모습을 보고는 입맛이 씁쓸한 한편, 사교육 업계가 또 한 번 팽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강사들은 수요자의 ‘불안’을 토대로 아주 빠르게 개인 맞춤형으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극이 넘치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자극은?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건강한 감각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봄비가 내리던 어느 퇴근길. 라디오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이 일 년에 9~10권이란 소식과 함께, 문고판 책에 교통카드를 넣어 무료로 배포한 브라질 출판사의 사례와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요금을 받지 않는 루마니아의 한 도시를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진행자는 책을 통해 전해지는 인생의 의미를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묘하게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정보들은 넘쳐나는데 왜 세계 각국은 책을 읽지 않는 것을 걱정할까. 정보의 바다를 채운 이야기들이 가치가 없어서? 책을 통해 전해지는 인생의 의미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종이책이 아니라 전자책을 통해 전해지면 다를까? 임신 중에 종이책을 많이 본 엄마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성향이 다를까? 어쩌면 그런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저녁을 먹고 요즘 읽는 <마라톤에서 지는 법>이란 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독서란 단순히 그 내용만을 취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 손의 감각과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종이의 냄새, 책을 읽는 동안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 그리고 잠시 세상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 같은 고립감. 물론 같은 책이라도 수험서처럼 목적이 뚜렷한 책이나 함량미달의 책이 주는 느낌은 다르겠지요. 하지만 사람을 몰입시키고야 마는 좋은 책을 읽는 일은 컴퓨터게임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풍부한 자극을 몸과 마음에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어쩌면 구세대 인류의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요.  

환자를 살피다보면 몸과 감정의 감각들이 저하된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삶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만날 그 밥에 그 나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의 단조로움 이상으로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한다고 우리는 착각하지만, 실상 그것이 우리 내면에 일으키는 파문은 과거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색깔만 다른 막대사탕을 먹는 것처럼 포장과 향은 다양하지만, 먹고 나면 설탕 맛만 남는 것처럼요. 

게다가 요즘 사람은 과거보다 몸을 적게 쓰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수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감각의 양이나 종류, 그리고 즐거움이 줄었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운동을 하고 아웃도어라이프를 찾아 떠나기도 하지만, 몸보다는 머리와 감정의 노동이 많아졌지요. 

반면 스마트폰과 컴퓨터로부터 받는 자극은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화면의 글자나 그림, 혹은 영상만을 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로 훨씬 많은 정보가 우리 뇌를 흥분시킵니다. 거북목과 같은 신체적 증상뿐만 아니라, 신경계 과부하로 인한 다양한 증상이 생기게 됩니다.  

접하는 정보의 양적 과부하가 커지는 반면, 정보의 깊이는 얕은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정보의 깊이란 대체로 그만그만하고, 다양한 듯 보이지만 일정범주에 머무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접하는 사람 또한 그만그만한 수준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자칫 우리는 얄팍하고 수명이 짧은, 별 것 아닌 정보가 일으키는 자극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이유도 모른 채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 되기 쉽지요.  

그리고 이 예민함과 피로함의 끝에는 둔감함이 따라옵니다. 동일한 자극의 반복은 더는 흥분을 일으키지 못하니까요. 이런 상태가 환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생기가 저하된 상태입니다. 이런 환자는 매사에 시큰둥하거나 때론 사소한 것에 과민반응을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 상태를 정상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일부 사람은 약물이나 엽기적인 행각을 통해 더 강한 자극을 탐닉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추세는 아마도 갈수록 더 해질 것 같습니다. 현대인이 컴퓨터와 스마트폰, 그리고 인터넷을 포기하는 일은 더 나은 도구가 생기거나 전 지구적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저 또한 이 글을 쓰는 데, 진료기록을 정리하는 데 모두 컴퓨터를 이용하고 있고요.  

인터넷 자극에는 뭔가 결여된 것이 있어 보입니다. 같은 식사라도 집밥과 식당밥이 다른 것처럼 말이지요. 맛있어 보이지만 계속 먹으면 맛도 못 느끼게 되고 건강도 나빠지는 것 또한 비슷합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집밥과 같은 자극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이전에 인간종이 과거에 해왔던 일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지만, 적어도 산업화 이전에 사람들이 했던 일들에서 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단순히 다른 취미가 없어서, 남에게 지적으로 보이기 위해 말하는 용도가 아니라 미친 듯 돌아가는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속도를 조정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읽기 운동을 펼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고요. 몸을 움직여서 얻는 순수한 즐거움, 가공되지 않은 식재료에서 느끼는 맛과 향, 흙을 밟고 자연을 접하는 감촉, 인위의 소리가 아닌 자연의 소리나 고요함과 같은 것들이 편안한 집밥과 같은 자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민해지고 지친 마음과 몸에는 이러한 자극들이 가장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사람도 있지만, 저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자극을 받느냐에 따라 아주 정직한 반응을 보이며 살아갑니다. 환자를 치료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현대사회에 넘치는 휘발성 자극들은 꽤 위험해 보입니다. 없앨 수도, 피할 수도 없다면 그 자극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알고 거기서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휴대폰 광고처럼 잠시 그 자극들을 꺼 두고 회복을 위한 자극을 접하는 것이 좋은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