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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년, 누가 책임져줄까?

일취월장7 2018. 5. 21. 10:37

당신의 노년, 누가 책임져줄까?

[고령화, 돌봄의 사회학] ① 공공 장기요양서비스가 필요하다
2018.04.20 21:54:57

1. 왜 공공성인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는 우리 사회의 중심 아젠다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장기요양의 공공성에 주목하는가. 안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 중심(person-centered)의 존중받는 서비스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각기 상이한 '돌봄 니즈'에 대해 세심하게 소통하고 배려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중심 서비스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이러한 바람과 거리가 있다. 

장기요양제도는 서비스 공급을 주로 민간에게 맡기는 대신 서비스 질을 담보하기 위해 시장 기제를 도입했다. 다수의 공급자가 자유롭게 서비스를 공급해 경쟁하게 하는 한편, 이용자에게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하여 이용자의 선택권을 통해 서비스 질이 담보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너무 낮은 진입 자격 적용과 함께 한정된 서비스 수요에도 불구하고 공급자 수를 제한하지 않고 자유로운 진입을 허용함으로써 초래된 무한경쟁 시장은 서비스 질을 보증하기 어려운 영세하고 불안정한 서비스 공급을 결과했다. 재가서비스 공급자는 매년 공급자의 30%가 폐업하고 30%가 신설된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시설서비스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서비스 이용자는 불안정하고 부실한 서비스 공급자를 다수 포함하는 공급자들 중에서 서비스기관을 선택해야 하는 위험한 선택에 놓이게 되었다.

장기요양서비스는 경험하기 전에는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경험재(experience good)이다. 따라서 안심하고 믿고 선택할 수 있도록 질이 보증된 서비스 공급자가 선택지로 주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공공재원으로 도입된 장기요양제도가 정책 실패 없이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서비스 전달자로서의 정체성이 취약한 개인기관이 재가서비스의 84%, 시설서비스의 71%를 차지하는 데 비해 국가 및 지자체 서비스기관 등 공공공급자는 재가서비스의 0.6%, 시설서비스의 2.0%로 극히 미미하다. 또한 절대다수의 개인기관을 포함한 민간기관들에 대해 공공적 목적의 서비스 전달자로서의 정책적 공감대를 공유하기 위한 정책 노력의 부재는 공공서비스로서의 질 담보를 더욱 어렵게 했다.

느슨한 진입규제로 인해 안심하고 보증할만한 공급기관 선별 책임을 경험재 특성과 정보비대칭(情報非對稱)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선택으로 전가하는 구조이다. 퇴출 규제 작동 부재로 보증되지 않은(D, E 평가등급) 기관이 서비스 공급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공공성 담보에 상당한 어려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시장기제 도입 기대효과였던 서비스 질 경쟁보다 편법, 불법까지 동원한 이용자 확보에 치중하고, 비용 부당청구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편, 이용자에 대한 자유로운 소비자선택권의 지나친 강조는 서비스 질 담보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왜곡된 서비스이용 문화로 서비스 남용(abuse) 및 오용(misuse) 등 공공성 규범의 훼손을 초래하였으며, 방문요양서비스 편향적 구성 등 서비스 질 담보에 취약함을 초래했다.

특히 재가서비스의 경우, 서비스 공급기관의 과잉과 서비스 수요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높은 경영 위험을 서비스 인력에게 전적으로 전가하는 구조이다. 방문요양서비스 공급기관은 서비스 이용자와 인력의 중개자 역할만 담당하고 서비스기관의 경영을 통한 완충기제가 전혀 작동되지 않은 채, 재가서비스의 불확실하고 빈번한 서비스 수요변동 위험이 서비스 인력의 불안정고용 및 수입 감소로 직결되는 구조이다. 장기요양 재가서비스 노동자를 '일용 호출직 노동'으로 칭하는 이유이다. 이와 같은 불안정고용과 생존임금도 되지 않는 임금수준, 근골격계 질환, 성폭력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된 일자리, 병가, 연차 등 유급휴가권도 보장되지 않는 일자리, 이로 인한 낮은 자긍심으로 역량 있는 인력의 이탈과 신규 유입이 원활하지 않아 이미 서비스 공급기관은 인력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장기요양서비스가 급속한 확대가 이루어졌지만, 시장화(marketization) 정책의 실패로 서비스 질 제고 등 선순환 효과보다는 좋은 돌봄이 보장되지 않는 악순환의 덫에 걸려 공공성(公共性) 담보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 갈무리.


2. 무엇이 공공성인가 

공공성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공(公)은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고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공적인 것'을 의미하며, 공(共)은 '함께' 여럿이 하나로 '합하여 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공공성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공의 일'에 대해 '공공'이 공공의 장에 '참여'하여 함께 투명하게 '소통'하며 '공익'을 추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 석재은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규제의 합리화 방안 연구'(2017) 보건사회연구 37: 423~451 참고.


역사적으로 사회서비스 정책영역에서 공공성 이슈의 등장은 서구 국가에서 사회서비스의 제공자로 직접 역할 하던 것에서 제공자 역할을 민간에게 넘기는 민영화 과정에서 공공재정의 공공서비스가 정책 목적대로 잘 실현되도록 개입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과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나타나게 된 쟁점이다. 한국은 국가가 직접 서비스 제공자로서 역할을 수행한 역사가 없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한국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공공성 역사는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제도화가 이루어지고, 서비스 제공체계가 개인/영리 민간까지 다원화되고 서비스 시장이 도입되어 공급 체계 간 경쟁과 이용자의 선택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공공성 이슈가 등장하게 되었다.  

공공성은 구조적 공공성과 내용적 공공성으로 구분된다. 구조적 공공성은 구조적으로 공공성을 담보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화시키는 것으로, 공공 주체가 공공목적의 실현 주체로 구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내용적 공공성은 공공성 실현 주체의 공공주체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공공성의 속성이 실현되는 것에 주목한다. 공급 주체의 다원화가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다양한 공급 주체가 실질적으로 공공 목적에 효과적으로 복무하여 공공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3. 어떻게 공공성이 담보될 수 있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공공 서비스 공급 체계 확충은 구조적 공공성 확보를 통한 공공성 담보의 가장 확실한 정책수단이다. 한국의 사회서비스 제공의 역사적 특성상 공공 서비스공급체계의 비중이 극히 미미한 부분은 공공성 담보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선진국들의 경우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주로 사적 공간인 개별 가정에서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재가서비스의 경우에는 공공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 비중이 높은 것이 지배적 경향이다. 최근 민영화 흐름 속에서 재가서비스 중에서 가사서비스, 청소서비스를 분리하여 민간 서비스제공자가 제공하도록 민영화하는 경우들이 있지만, 신체케어서비스 등 대인서비스는 공공이 직접 공급하는 것을 지속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것이 정책 목적인 서비스 질의 효과적 담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방문 재가서비스의 경우 개별 돌봄노동자가 공공성을 담보하는 직접적 주체이기 때문에 방문 재가서비스 돌봄노동자를 직접 관리하며 자격과 역량 관리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또한 서비스 제공의 공적 성격을 확보하기 위해 서비스 제공을 복수 이용자 대 복수 돌봄노동자로 매칭함으로써, 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지만 공적 공간화하고 공적 관계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한편, 공공기관은 공공성을 담보하는 주체로서 민간기관과 차별화하여 시장에만 맡겨서는 적절하게 공급이 되지 않는 공공재성 서비스를 공급하고, 민간기관을 지원하고 견인하는 역할을 실질적으로 담당하여야 한다. 

두 번째로, 국가의 공공목적 수호자 및 규제자로서의 역할 강화를 통한 규범적 공공성 담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첫째, 국가가 진입규제 및 퇴출규제, 원활한 소통 및 교육을 통해 민간기관이라도 공적서비스 전달자로서 책무성을 갖고 공익에 우선적으로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사회서비스의 수급자격과 접근권을 공평하게 보장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서비스 수급자격의 공평한 적용, 지역별 서비스 인프라 공평한 분포, 서비스 이용의 경제적 장벽 제거가 필요하다. 셋째, 정보 비대칭성 제거를 위해 서비스 제공자 정보의 투명한 공개, 서비스 제공과정의 투명한 공개, 서비스 재정회계의 투명한 공개가 이루어지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세 번째로, 시민참여에 의한 민주적 공공성 담보가 필요하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장기요양생태계 선순환을 위해 다각적으로 투명한 개방적 소통과 공공적인 문화 규범 확보가 필요하다. 사회서비스 정책 결정, 제공 과정, 평가 과정에 서비스 실천현장의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참여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투명성-개방성 확보, 시민참여를 바탕으로 공공목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공공 모니터링을 해나가는 지역사회 기반 돌봄사회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네 번째로 돌봄노동의 관계적 속성을 고려하면, 돌봄일자리 질 강화는 좋은 돌봄서비스를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돌봄노동자가 갖는 서비스 책무성과 무게감을 고려할 때, 생활임금 보장은 물론이고 일자리의 안정성, 경력 인정, 노동권 보장 등 괜찮은 일자리로서의 직업 비전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자격관리와 역량개발도 중요한 필요 요소이다.

다섯 번째로 이용자 사례관리를 통한 전문적 개입이 서비스 질 제고를 위해 중요하다. 이용자와 소통하며 가장 최선의 사람 중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공공성 실천이다.

다행히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보가 사회적 아젠다가 된 만큼, 공공성 확보로 안심하고 취약한 노년을 의탁할 있는 사회, 사람 중심의 존엄한 돌봄을 이루어질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요양원,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고령화, 돌봄의 사회화] ② 어르신과 요양보호사의 안전과 존엄이 곪고 있다
2018.05.12 22:18:28

노인장기요양제도가 시행된 지 만 10년이 되었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시행 10년을 경과하면서 노인장기요양기관의 수도 증가하고 서비스 이용자 수도 대폭 증가했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제공의 목적이자 본질인 어르신의 건강하고 안전한 노후가 보장되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2010년 11월 12일 포항 요양원, 2014년 5월 28일 장성요양병원, 2018년 1월 26일 세종병원의 화재사고는 많은 어르신과 환자의 생명을 앗아갔다. 해당 사고는 비교적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이고 작은 규모의 안전사고는 비일비재하게 요양원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르신 케어 중에 일어나는 낙상사고, 의료행위로 인한 사고, 어르신의 요양원 이탈에 의한 사고 등 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시기 위한 요양원이 안전의 사각지대로 변하고 있다.

요양원은 구조상 안전사고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안전에 대한 대책임에도 정책과 제도 그리고 노인장기요양제도에 대한 정부의 철학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양적성장에만 관심을 갖고 노인장기요양제도를 운영하는 동안 요양원 내부의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들의 안전과 존엄은 곪아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요양원의 인력은 어르신 2.5명 당 요양보호사 1명이 배치된다. 요양원의 근무형태가 주로 3교대임을 감안하면 실제 인력비율은 2.5대 1이 아니라 7.5~10대 1이 된다. 야간에는 요양보호사 1명이 어르신 20명 이상을 케어하는(돌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이면 야간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화재가 발생해 1명씩 외부로 이동시킨다고 하더라도 다른 어르신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야간에 낙상사고 등이 연달아 일어나면 요양보호사 1명이 이를 케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은 부득이하게 어르신을 침대에 묶고 또 다른 어르신을 케어하기도 한다.

한편 입소자가 10명 이상 30명 미만인 요양원은 간호사를 1명 이상 배치해야 하며, 입소자 25명당 1인을 추가배치 해야 한다. 요양원에서 상주하여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의료인은 간호사밖에 없다. 촉탁의를 1명 배치하나 요양원에 상주하지는 않는다. 의료법상 요양보호사는 투약, 셕션, 바이탈 체크 등의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인력구조상 요양보호사가 의료행위를 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빈번하게 의료사고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이다.  

요양보호사들이 휴게 시간도 없이 장시간 어르신의 안전과 존엄을 위해 노력하여도 역부족이다. 오히려 요양보호사마저 골병이 들어가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휴게시간도 없이 연장, 야간 노동을 거의 매일 하며 쉬는 날도 적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을 받고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는 사업장의 경우 최저임금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요양원의 악덕 사업주들은 법적으로 보장해야 할 휴게 시간을 허위로 기재하여 휴게시간을 빼앗는 한편 해당시간에 임금도 지급하지 않아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해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요양보호사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며 생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요양원 내에서는 누구의 안전도 존엄도 보장할 수 없다. 근본적인 원인은 노인장기요양제도의 양적 성장만을 고려한 정부의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시장화 정책과 행정 편의적 사고이며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요양기관장들의 태도이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과 기관장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어떠한 대책을 내놓아도 수박 겉핥기식의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어르신의 안전과 존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시장화 정책을 폐기하고 공공성 강화로 정책의 방향을 변경해야 한다. 양적 성과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적은 인력으로 많은 수의 어르신을 모시게 되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화재사고, 낙상 등의 안전사고, 의료사고 등은 그 예이다. 공공서비스조차 성과주의의 방식으로 시행한다면 공공서비스의 본연의 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양적 성장조차 더디게 될 것이며 다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어 요양시설은 사설화 되고 계층화된 요양서비스가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의 공공성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요양원을 직접 운영하거나 적극적으로 그 운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한편 요양원 운영의 모범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안전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로서 요양보호사, 간호사 배치 등 시설인력 기준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의료행위, 어르신 케어 등 명확한 업무 구분을 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의료사고를 예방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제도 시행 10년을 경과하는 2018년, 양적 성장만으로는 더 이상 노인장기요양서비스를 지속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며 어르신의 안전과 존엄, 요양보호사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의 공공화가 더욱 절실하다.     


"아줌마, 오늘부터 오지 마세요"
[고령화, 돌봄의 사회화] ③ 장밋빛 성과 뒤에 숨은 요양보호사의 한숨

고령화·핵가족화·여성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노인 돌봄을 '제도'로 추진한 것이 장기요양보험제도이다. 노인을 돌보는 '가족 내 무급노동'을 '사회적 돌봄'으로 전환하는 의미 있는 제도임은 분명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지 10년째를 맞이하여, 정부는 노인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가정의 수발 부담이 경감되었으며 여성의 일자리도 늘었다고 평가를 내놓았다.  

그런데 장기요양보험제도를 지탱하기 위한 10년간 생계부양자인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애써 외면하려 한다. 현재 140만 명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지만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36만 명으로 자격증 취득자의 25%만 일하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시급제 최저 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이다. 특히 재가요양보호사의 고용 불안정은 심각하다. 

시급제 낮은 임금, 불안정 노동 

"아줌마, 오늘부터 오지 마세요." 

어느 날 김 모 요양보호사는 출근 준비를 하는데, 돌보는 82세 어르신의 보호자로부터 문자 하나를 받았다. 근무하는 센터에 전화해보니, 다른 센터로 보호자가 옮긴다며 거듭 죄송하다고 한다. 그날로 김 요양보호사는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다른 재가센터에 전화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해고뿐만 아니라 어르신이 요양원 입소, 사망, 장기 입원을 하면 일자리를 잃는다. 시급제 최저임금이라서 일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다. 재가요양보호사는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해도 언제든지 일자리가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안정적인 노동시간과 임금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방문 요양 3·4등급 이용자가 1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3시간씩 주 6일 일하고 받는 월급은 65만 원 남짓이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하루에 두 군데, 세 군데를 돌아야 하는데 이동할 때 드는 교통비는 요양보호사의 몫이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기면서 자격증을 딴 10년 차 오 모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돌봄 전문가로서 자부심이 크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한탄한다.

"우리 요양보호사는 최저임금에 목매다는 형편이죠. 그래서 처우개선비를 달라고 요구해서 그나마 조금 받았는데, 2018년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싹 없애버렸어요. 여전히 최저임금인데."  

요양기관은 공단이 지급하는 시간당 수가에서 운영비를 제외한 금액을 요양보호사에게 임금으로 지급하는데, 임금은 항상 최저임금에 맞춰진다. 복지부는 저임금 해소 대안으로 2013년부터 시간당 625원 처우개선비를 지급하였다. 요양보호사에게는 상당한 임금 상승효과를 보았다. 그런데 2018년부터는 기관 자율에 맡겼고 기관에서는 지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는 2017년 10월 도입된 장기근속장려금 제도(보건복지부에서 장기요양기관에 3년 이상 동일기관에서 근무한 종사자에게 지급)는 단기근속 비율(근속연수 1년 미만)이 76.4%인 재가요양보호사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 재가요양보호사가 일흔이 넘은 어르신을 부축하고 있다. ⓒ연합뉴스


근골격계 질환∙비인격적 대우 

최근 이 모 요양보호사는 허리디스크 중증 진단을 받았다. 장기요양 2등급 어르신을 휠체어 이동하고 체위를 변경하면서 얻는 병이다. 

"요양 일 하기 전에는 허리가 멀쩡했는데, 5년째 들어서면서 안 좋아졌어요."

요양보호사의 업무 중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 대한 체위변경, 이동, 목욕 등은 신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으며 상당수의 요양보호사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린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생기는 퇴행성 질환으로 여겨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적용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재가요양보호사는 일하는 장소가 가정이고, 여성 혼자 방문해 일하다 보니 이용자와 이용자 가족의 부당한 업무지시나 도둑누명, 언어폭력, 성희롱에도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장기요양기관이 난립하고 기관 생존을 위한 이용자 확보 경쟁 현실에서는 기관의 관리책임의 역할은 결국 이용자나 보호자가 원하는 요구만 들어주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기관에서도 요양보호사 편에 서기는 하지만, 적극적으로 방어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았어요. 진상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요양보호사만 탓하고, 일을 그만두게 하면 그냥 억울한 게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받아요."(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 '2017년 노동상담 사례집')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의 2017년 노동상담 사례 443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노동조건(임금, 실업, 퇴직금, 부당해고 등)에 대한 상담이 64.6%, 업무(부당업무, 업무고충) 7.7%, 건강(산재, 직업병) 5.9&, 인권(성희롱, 폭언/폭행) 3.8%다.

돌봄노동의 고귀한 가치, 존중되어야 

요양보호사의 일은 인간과 인간이 직접 대면하여 혼자 일상이 불가능한 누군가를 보살피는 휴먼 서비스를 특징으로 한다. 돌봄노동 또한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노동처럼 공적인 필요에 따라 국가가 제도를 통하여 만든 직군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돌봄노동의 가치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돌봄의 가치를 국가와 지자체가 인정하고 지지하며 그만큼의 공적 책임과 역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김희강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돌봄이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지탱하고 견인하는 가치이자, 국가운영의 주축이 되는 원리"라고 강조한다.

지자체 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국가와 지자체는 요양보호사가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정한 시급 노동의 고리를 끊을 수 있고, 직업적 자긍심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장기요양기관이 과당경쟁 제체가 아닌 서비스 질로 승부하는 공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가 구립 직영 재가요양기관을 설립하여 지역사회 어르신의 욕구에 대해 선도적인 위치에서 통합적으로 관리, 조율하여 공공으로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조례 제정을 통하여 요양보호사의 노동, 권익, 자부심이 지켜질 수 있는 지역사회 제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