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그 누구도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하지 않는다? - 북미 정상회담의 '충격과 공포'

일취월장7 2018. 4. 14. 10:06

그 누구도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하지 않는다?

[기고] 격동의 동북아, 미국·중국·일본의 다른 속내
2018.04.10 00:18:57

70년 동북아 냉전의 질곡을 타개할 수 있는 빅이벤트들이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 모두 비핵화를 핵심의제로 다룰 예정이어서 해빙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동안의 오랜 냉전은 우리의 정서와 문화, 정치, 경제에 너무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그래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서구의 냉전이 와해된 것처럼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동북아와 한반도의 냉전 붕괴일로 기록되기를 기대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세계정치의 현실은 섣부른 낙관을 막아선다. 미국, 중국, 일본 모두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바라고,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이들이 펼치는 외교안보전략을 살펴보면 자신들의 국익과 번영을 추구하고 있을 뿐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먼저 미국을 보자. 미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에 위치한 것은 아니지만 동북아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사실상 동북아에서 패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동북아국가로 간주된다.  

1‧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을 넘어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1970년대 베트남 전쟁 실패 이후 이른바 '슈퍼 파워' 지위를 위협받아 왔다. 1980년대 말에는 일본이,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경제패권을 흔들고 있다. 중국은 이미 두 척의 항공모함을 가진 데 이어 지속적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면서 미국의 군사적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미주에서, 그리고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자원과 노력을 쏟고 있다. 작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들'(competitors)로 규정해 놓고 있다.

발표 당시 이를 설명하던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관료들은 중국과 러시아를 '현상변경세력'(revisionist powers)로 분명히 규정했다. 지금의 질서를 바꾸려고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위험한 잠재적국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저지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이다. 아시아 바깥에 있으면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것은 중국 경제 패권 저지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최첨단무기 개발을 계속하고, 항공모함을 한반도 인근에 전개하고,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모든 옵션'을 동원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중국의 군사적 패권을 막으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 파키스탄 등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국을 완전 포위해 아시아에서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을 저색하려는 움직임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활동 강화와 인근 필리핀, 베트남, 타이완 등과의 협력강화는 중국의 아시아 해양패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문제는 미국의 역외균형전략이 한반도의 해빙에는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안보전략도 중국과 러시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하겠는데, 대표적인 것이 MD(미사일 방어체계)이다. 잠재적 적국 중국·러시아를 겨냥해 MD를 지속 개발해오고 있다.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도 그 체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대놓고 '중국·러시아를 향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잠재적 적국이지만 우선 경제를 중심으로 한 협력은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북한과 이란이다. 북한·이란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는 MD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MD 개발에 북한이 중요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미국입장에서는 '조금씩 문제를 일으켜주는 북한'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소련, 북베트남, 이란, 탈레반, 북한 등 많은 적들과 긴장을 지속하면서 군사안보전략을 추진해왔다. 그 속에서 많은 무기도 팔 수 있었다. 국내적으로는 군산복합체를 성장시켜 왔고, 특히 공화당은 군수산업체들로부터 많은 정치자금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시기에 따라 적을 만들면서 미국 위주의 세계전략을 펼쳐온 것이다.

그런 미국이 갑자기 북한과 화해하고 평화로운 한반도와 동북아를 원하게 된 것인지, 그 속에서 더 많은 국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인지, 분명치 않다.

중국은 어떤가? 중국은 진정 북미가 화해하고, 남북이 평화로 가는 것을 바라는 것인가? 아직은 '아니다' 쪽이 답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경제를 지속 성장시켜 미국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국가주석 임기 폐지로 장기집권을 추구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으로서는 민심을 얻기 위해 지속성장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북미관계·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 그에 따른 북한사회의 동요와 탈북자 급증은 중국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니다. 동북3성의 조선족과 대량 탈북자들의 연계는 소수민족의 강화를 경계하는 중국에게는 우려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적 영향력도 확보하려 한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는 먼 옛날 얘기가 됐고, 이제는 분발유위(奮發有爲.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한다)를 내세운다.  

우선은 동북아에서 영향력 확보가 급선무이다. 그러려면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좋아지는 상황은 미국이 중국의 코앞에 창을 들이대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반면, 지금처럼 한반도가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북한이 어느 정도 문제를 일으켜 주는 것은 중국의 동북아 영향력을 점증시키는 데 유리하다. 장막 속의 북한에 사람과 물자를 보내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중국밖에 없다. 실제로 2003년 6자회담이 시작되고, 중국이 의장국을 맞으면서 동북아에서 중국의 목소리가 커졌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북한과 혈맹관계를 존속시키면서, 경제적·정치적으로 이를 활용하는데 커다란 국익을 갖고 있다. 북한의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 지원세력이 아쉬운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외교적 지원도 필요하다.  

중국은 북한과 역사적으로, 이념적으로, 전략적으로 강한 연대도 유지해 왔다. 김일성의 항일유격대는 중국공산당군 내에서 활동하면서 무장투쟁을 했고, 지구상의 몇 안 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으로서는 북한도, 동북아 질서도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유지(status quo)가 바람직한 것이다.  

이제 일본을 보자. 아베 정권은 철저하게 현실주의를 따른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워 동북아 주도권 경쟁에서 중국을 넘어서려 한다.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는 '아베노믹스'로 경제력 확장을 꾀하고 있다. 군사력을 통해 세계와 지역의 평화에 기여한다는 '적극적 평화주의' 기치 아래 군사력 강화도 도모하고 있다. 아예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가려 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외교안보전략은, 동북아에서 부담은 줄이면서 패권은 유지하려는 미국과 이해를 같이 한다. 그래서 미일 동맹은 강화되어 왔다. 일본은 미국의 중국포위전략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강경한 외교안보전략을 추진하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본이 우선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것이 북한이다. 북한이 계속 문제를 일으키니 일본도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은 동북아의 냉전 구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중국-러시아의 대륙세력과 일본-미국의 해양세력이 맞서는 냉전구조가 아베 정부 외교정책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이다. 북미관계의 개선은 이러한 구조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고 아베정부 외교 안보 전략의 바탕을 흔드는 것이다. 그러니 일본은 여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 입장이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 전 아베가 트럼프를 만나려고 하는 이유도 그래서 분명하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위한 시간을 벌려고 하는 대화에 너무 기대를 갖지 마라'라는 얘기를 트럼프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북미 관계 개선에 되도록 찬물을 끼얹고 싶은 것이다. 과거 6자회담장에서도 핵문제 해결보다는 일본인 납치사건 해결에 더 관심을 쏟으면서 회담진행에 부담을 주었던 일본이다.  

남북관계 개선도 일본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남북이 반목하는 것보다 남북이 한 목소리로 동북아에서 지분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일본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인구 8000만 명에 육박하는 큰 나라가 돼가는 상황이 일본으로서는 달가울 리 없다. 영토문제, 역사왜곡, 신사참배 등 일본 보수파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즐겨 활용하는 소재들도 8000만 코리아의 상황에서는 함부로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 납북자문제다. 북한과 관련해서 일본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들먹이면 일본인들은 북한에 대해 곧 싸늘해진다. 보수세력은 북한을 괴이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싶을 때면 납북자문제를 들먹인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후 납북 일본인 5명이 열흘 뒤 귀환을 조건으로 일본에 귀국했다. 당시 관방 부장관 이던 아베 주도로 일본은 약속을 깨고 이들을 귀환시키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아베는 보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2006년 총리가 되었다. 북미관계·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간다면 일본은 또다시 납치자 문제를 인권문제, 인도적 문제로 크게 부각시키면서 북한을 악마화하는 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요컨대, 미국은 중국 견제에 주력하기 위해 이른바 불량국가(rogue state) 북한이 필요하고, 중국은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긴장된 남북관계가 나쁘지 않으며, 일본 역시 북한을 명분으로 강력한 외교안보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동북아 주요삼국 가운데 열일 제쳐두고 한반도 냉전 해체에 발벗고 나서려 하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역은 한반도일 수밖에 없다. 남북이 합의하고, 지향점을 만들어 가면서, 탐탁치 않아 하는 주변국들을 설득해가야 할 것이다.

소련도, 영국도, 프랑스도 모두 처음엔 독일통일에 반대했다. 하지만, 동서독이 신속하게 경제·사회 통합에 합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독의 콜 총리가 고르바초프, 대처, 미테랑을 설득해 내면서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주변국의 입장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차대한 건 남북이다. 



‘포스트 남북, 북·미 정상회담’ 전략 짜는 시진핑

中, 4자회담 통해 한반도 비핵화·사드·주한미군 문제 해결 노려

모종혁 중국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0(화) 11:00:00 | 1486호


지난해 8월말이었다. 필자는 중국의 지방정부 관리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그들은 정청급(正廳級)과 부청급(副廳級) 고위관료였다. 중국의 정청급 간부는 한국의 구청장에 해당한다. 하지만 관할 지역과 인구는 한국보다 5~10배 넓고 많다. 보통 중국인들과의 판쥐(飯局·식사 자리)가 그렇듯이, 2시간 내내 바이주(白酒)를 마시며 다양하고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그들은 당일 판쥐의 ‘목적’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어떤 안보·외교적 성향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3월30일 방한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 사진=연합뉴스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특별대표 자격으로 3월30일 방한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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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는 한국과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의 나라다. 분명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정치체제를 지녔다. 하지만 한 가지 칭찬할 만한 시스템을 가졌다. 바로 정책 운영의 연속성이다. 중국공산당의 수장인 총서기는 5년 임기로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지난 3월엔 헌법에서 국가주석의 2연임 제한을 없앴다. 따라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전임자와 달리 10년 이상 최고통치자로 권세를 누린다. 만약 시 주석이 종신집권을 노리지 않고 15년만 재임한다면, 중국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실제 10년 이상 재임한 고위관료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이가 지난 3월 은퇴한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중국 인민은행장이다. 인민은행은 우리의 한국은행 격인 중앙은행이다. 저우 전 행장은 2002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에게 발탁됐다. 그 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을 거쳐 시진핑 주석까지 3명의 최고지도자를 모셨다. 재임 기간은 만 15년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18년 동안 재임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그린스펀 전 의장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그로 인해 국제금융계에선 ‘미스터 런민비(人民幣)’로 불렸다.

 

반면 박근혜 정부까지 한국 경제부처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2개월 안팎이었다. 이는 기본이 5년, 길게는 10년까지 재임하는 중국 경제부처 장관의 수명과 극명히 대비된다. 실제 중국의 장관은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큰 실책을 범하지 않는 한 경질되지 않는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한국의 현실을 잘 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의 정책책임자는 한국 부처나 기관의 수장과 회담할 때 즉흥적인 제의나 합의를 절대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데다,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올 초까지 중국의 고민은 남북 정부가 정책의 연속성을 가졌냐는 것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직후 예상을 뛰어넘는 친중(親中) 행보를 걸었다. 2013년 방중 시 시진핑 주석의 모교 칭화대학에서 강연 대부분을 중국어로 했고, 2015년 9월 전승절에는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라 시 주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로 인해 중국은 그 어떤 전임 대통령보다 박 전 대통령을 신뢰했다. 따라서 한국이 사드(THAAD) 배치 결정 이전 내세운 ‘3NO(요청·협의·결정 없음)’ 입장을 믿었다.

 

북한은 중국에 한국전쟁을 함께 치른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이다. 우리가 한·미 동맹을 안보·외교정책의 최고 가치로 삼듯, 중국은 북한 체제의 유지를 동북아정책의 최고선으로 삼는다. 하지만 북한이 핵도발을 계속하자 입장을 바꾸었다. 특히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결정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270호에 중국은 적극 협력했다. 그와 더불어 한국 정부에는 사드 배치의 결정 여부를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4월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유엔 대북제재가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7월에 사드 배치를 전격 결정했다. 중국은 “한국이 등에 칼을 꽂았다”고 격분했다. 이는 혈맹의 반발을 무릅쓰고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를 이행하는 와중에, 한국이 뒤통수를 쳤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뒤 중국은 박근혜 정부가 쉽게 조변석개(朝變夕改)한다고 판단했다. 그로 인해 중국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자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책 일관성을 가진 우호적인 파트너인지 탐색해 왔다.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 방중 시 중국의 대접은 여러모로 결례에 가까웠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끈질기게 대중·대북 정책과 입장이 과거 민주당 대표나 대선후보 시절과 다를 바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실제 중국이 내놓은 쌍중단(雙中斷)과 호흡을 같이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동시 중단이다. 이는 한반도의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이라는 쌍궤병행(雙軌竝行)의 선결조건이었다. 결국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쌍중단이 이뤄지며 남북,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탔다.

 

3월25일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방중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따라서 중국은 최근 한반도 화해 분위기 조성이 자국의 역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3월3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 배경을 “중국은 유엔 제재를 충실히 따라 북한에 최대 압박을 가했다”며 “자신의 방식으로 제재를 가해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중국이 일관성을 가지고 북한을 압박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 협상 모델과 비슷한 4자회담을 통해 사드·주한미군 문제 등을 풀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스위스 제네바 협상 모델과 비슷한 4자회담을 통해 사드·주한미군 문제 등을 풀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정상회담 이후 강온 양면책 유지할 듯

 

따라서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행보는 쉽게 점쳐진다. 한반도에서 자국이 원하는 국면을 조성하기 위해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3월30일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대상 기업과 선박 등을 늘리는 데 중국이 적극 동조한 것에서도 드러났다. 방중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최대의 대접을 베풀어 혈맹으로서 대우하되, 경제제재는 계속한다는 정책 일관성을 유지했다. 또한 중국은 북한이 돌변한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강온 양면책을 쓰면서 캐낼 공산이 크다.

 

그리고 과거처럼 6자회담이 아닌 남북, 미·중의 4자회담 틀에서 한반도 비핵화, 사드, 주한미군 등 문제를 풀려 할 것이다. 이는 북·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 관영언론이 연일 강조하는 ‘한반도 문제 역할론’의 핵심이다. 지금은 6자회담을 열었을 때와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데다 경제지원을 할 여력도 없다. 일본은 납북자 문제에 매몰돼 북한과의 관계개선 의지가 없다. 중국은 목적을 위해선 타이틀 없는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도 귀담아듣는 나라다. 이런 나라를 상대하려면 일관성 있는 정책 수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 비핵화 모범 답안은 2005년에 나왔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볼턴, '리비아식' 핵 문제 해결 방법 버려야
2018.04.10 10:58:30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5월로 예정된 가운데 정상회담을 위한 양측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미국 방송 CNN은 지난 7일(현지 시각) "복수의 정부 관료들은 북미 양측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위해 비밀리에 접촉을 진행해오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 역시 미국 정부가 접촉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 이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 시각) 북한과 5월 또는 6월 초에 회담을 하게될 것이며 실제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이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본인이 직접 해당 보도가 사실임을 확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서 보도 내용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정상회담의 시기까지 말했다는 것은 북한과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라는 단어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관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인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미 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비핵화 문제가 진전되지 않았다면 미국 정부 관료가 북한이 비핵화 대화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건 현재로서는 미국이 북한과 회담 전망을 나쁘게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로드맵으로 지난 2005년 체결된 9.19 공동성명을 꼽았다. 그는 "9.19 공동성명은 비록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개수는 달라졌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가장 유력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9.19) 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북‧일북 수교와 경제 지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을 명시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행동 대 행동'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다"며 "북한은 성명에서 합의했던 그 프레임을 계속 가져가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도 정말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를 바란다면, 즉 CVID가 실제 이뤄져서 무기 판매 시장이 좁아져도 괜찮다는 각오를 정말 하고 있다면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비핵화의 반대 급부를 어떻게 협상 과정에서 연계시킬 것이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현 국면에서 외교적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이른바 '패싱' 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과 관련, 정 전 장관은 "우리가 어차피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되기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북일 간 대화 채널을 열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북한 입장에서도 언제까지 북일 수교를 미룰 수 없다. 북일 수교도 북미 수교만큼 중요하다. 우리한테도 북일 수교는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라는 의미가 있다"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에 '곧 북한과 만나게 해주겠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방송 CNN은 북한과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위해 비밀리에 접촉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를 확인했다고도 전했습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도 보도가 사실이라면서 5월이나 6월 말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는데요.   

정세현 : 일단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서 보도 내용을 확인하고 구체적인 정상회담의 시기까지 말했다는 것은 북한과 협상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를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CVID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미국 관료가 언론에 북한이 비핵화 대화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은 곧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즉 북미 간 어느 정도 수준까지 비핵화 문제가 진전되지 않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건 현재로서는 미국이 북한과 회담 전망을 나쁘게 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좀 살펴보자면, 존 볼턴 신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일단 북한 핵 문제가 미국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미 북핵문제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함께 엮여있습니다. 제재든 대화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협조 없이 미국 혼자 비핵화 문제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평화협정 체결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평화협정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관련 당사자입니다. 게다가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볼 때 볼턴이 말하는 리비아식 해법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결론이 난 문제입니다. 반면 2005년 6자회담 이후 채택된 9.19 공동성명은 비록 1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했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개수는 달라졌지만,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가장 유력한 방안입니다.

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북‧일북 수교와 경제 지원,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등을 명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행동 대 행동'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는데요. '행동 대 행동'으로 추진한다는 측면에서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인 리비아식 해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또 북한은 이미 리비아식 해결 방식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미국은 나토(NATO)의 모자를 쓰고 리비아에 개입하면서 정부군이 아닌 반군의 편을 들었는데요. 북한은 이에 대해 리비아식 해결의 나쁜 점이 여기에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먼저 핵을 폐기시켜놓고, 체제에 대한 보장 없이 경제지원과 핵 폐기를 바꿨기 때문에 리비아가 저렇게 됐다는 겁니다.  

북한은 지난 2005년부터 비핵화 문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보였습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비핵화에 대한 보상은 체제 안전입니다. 그리고 이를 구체적이고 법률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입니다. 이미 9.19 공동성명에서 한번 짜여진 틀이기도 합니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13년이 지났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북한의 일관성은 미국의 입으로부터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94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 이후 북한에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미북 협상이 진행됐습니다. 그 때 한미 간 엇박자가 많이 나왔는데요. 미국 측 협상 대표가 나중에 우리 외교부에 "도대체 왜 당신들은 이 때는 이 말하고 저 때는 저 말하냐"라고 따졌답니다. 오히려 북한은 일관성이 있으니까 예측이 가능해서 협상하기가 편했다고 하면서요.  

북한의 이런 전략은 공산당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의 공산당과 국민당이 협상을 하는 과정에 미국이 끼어들었습니다. 전승국이기 때문에 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운전자'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었죠. 당시 미국은 공산당은 일관성이 있어서 이야기하기가 쉬운데 국민당은 너무 왔다 갔다 한다고 불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미국은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한테 확 넘어가 버렸죠.

어쨌든 북한은 일관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했던 그 프레임을 계속 가져가려고 할겁니다. 미국도 정말 CVID를 바란다면, 즉 CVID가 실제 이뤄져서 무기 판매 시장이 좁아져도 괜찮다는 각오를 정말 하고 있다면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비핵화의 반대 급부를 어떻게 협상 과정에서 연계시킬 것이지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핵 물질 신고가 제대로 되면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문제 협의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 정해야 하고, 검증이 끝나고 그 다음 단계를 어떻게 진행할지 로드맵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프레시안 : CNN은 국무장관 후보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현 CIA 국장과 CIA 내부의 한 팀이 비공식 정보 채널을 통해 정상회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미 양측의 정보 당국 관료들이 정상회담 장소에 초점을 맞춰 몇 번 접촉을 가졌고 제3국에서 만나기도 했다는데요. 국무부가 아니라 정보 기관에서 북한과 접촉하는 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불신한다는 점, 그렇다고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북핵 문제를 맡기기도 쉽지 않았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맥매스터의 경력을 보면 북한을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CIA에 일을 맡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서훈 국정원장과 폼페이오 CIA 국장 간 협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국정원의 판단과 북한의 대미 메시지가 폼페이오 국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입력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정원-CIA의 협력을 통해 CIA로부터 들어온 보고가 비교적 정확하다는 점도 고려됐을 겁니다. 

원래 CIA는 일본의 내각 정보 조사실(CIRO)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국정원과 이야기해보니까 내각 조사실보다 국정원의 이야기가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가 트럼프에게 효력을 발휘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외무성이 아닌, 다른 쪽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9일 기자들과 만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에 대해 "지난번 북중 정상회담 때를 보더라도 핵(문제)라든가 부분적으로 외교까지 포함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포괄적인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남북(문제)보다 더 넓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는데요. 북한도 김정은 위원장과 김영철 통전부장이 주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 등 속전속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김 위원장의 직할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 증거로 보입니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와 미북 접촉에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당시 이를 총괄 지휘했던 인물이 김영철이었다는 점을 보더라도 김정은-김영철에 소수의 제한된 인물만 현 국면에 개입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김영철 통전부장의 기본 업무는 대남업무입니다. 그런데 대남뿐만 아니라 남한과 대화 물꼬를 트고 그걸 다리로 삼아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것이 북한의 그림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평창올림픽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간에 외무성 등 다른 기관에 이번 국면의 일처리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참석 차 남한을 찾은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 2월 27일 북으로 돌아가기 위해 숙소인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정상회담, 성공의 기준은  

프레시안 :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 보름 정도 남았는데요. 예전의 남북 정상회담과는 달리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 정상회담의 중심 의제로 오른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실 비핵화는 남북이 아니라 북미가 풀어야 할 사안인데요. 우리가 비핵화에 대해 북한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세현 :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일종의 '대원칙' 정도를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서 비핵화를 정상회담의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교감이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남북이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사안까지 결론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는 보상이 뒤따라야 하고 이 보상을 줄 수 있는 주체는 우리가 아닌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원하는 CVID로 가기 위해서는 핵 물질 신고 및 검증을 거쳐 핵 시설 파괴, 이후 핵 무기 폐기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이러한 비핵화 단계와 수교 및 평화협정 협상을 어떻게 연계시킬지가 관건입니다.  

여기서 수교는 북미 양자가 해야 하는 것이고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등 최소 4자가 관여합니다. 비핵화는 특별히 문제점이 발견된 것이 없고 해롭지도 않다면 6자회담 방식을 그대로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CVID'로 간다는 데 남북이 합의했고 그러기 위해 국제적인 대화 방식으로 비핵화를 추진한다. 또 북미 양자 간 수교 협상을 진행하며 한국을 포함해 직접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평화협정을 진행한다"는 정도의 큰 틀에 합의한다면 대성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중일 정상회담이 계획돼있는데요. 5월 말이나 6월 초에 북미 정상회담이 원활히 열리기 위해서는 한미 정상회담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중국이나 일본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궁금해 할테니 이 이야기를 듣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미 정상회담도 빨리 확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뒷이야기를 미국 대통령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합니다.

말씀드린대로 비핵화 프로세스가 여러 단계가 있어서 비핵화와 수교 및 평화협정 등으로 연계시키는 그림을 미국이 그리려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 대통령이 북한과 주고 받은 이야기를 미국에 제대로 전해줘야 합니다. 이를 통해 북미 정상회담에서 최종적인 결론이 나오는 것이 좋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나오게 될 남북 간 합의를 두고 국회의 비준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정세현 : 1972년 동서독 기본 조약이 만들어질 때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동서독은 사실상 국가 대 국가의 조약 형식으로 합의했습니다. 그걸 가지고 서독 내에서 '어떻게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냐'며 기민당을 중심으로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결국 위 조약이 연방 헌법재판소에 제소되는 상황까지 가게 됐는데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특수 국가 이론'이 나왔습니다.  

동서독은 서로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기 어려운 특수 관계입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볼 때는 양쪽 모두 국가입니다. 따라서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 속에 잠정적인 특수 관계'라는 정의가 될 수밖에 없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노태우 정부에서는 이 합의서를 일종의 '신사협정'이라고 얼버무렸습니다. 서독 내에서 나왔던 비판과 같은 지점, 즉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비판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당시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에서 합의서를 비준 동의 받았지만, 남한 정부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헌법 정신에 모순된다는 시비가 나오는 것보다는 합의 내용의 이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겁니다. 문 대통령도 이런 부분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북일 정상회담 주선해줘야 

프레시안 :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 변화 속에 러시아와 일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에 가고 이제 일본도 북일 접촉을 시도하려고 할 것 같은데요. 러시아와 일본의 움직임이 현 국면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뭔가 움직임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김정은 위원장을 부른다고 해서 그가 쉽게 가지는 않을 겁니다. 가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상대국에 갈 때도, 상대국이 자기들에게 올 때도 항상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3월 19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도 이른바 '재팬 패싱'이 두려워서 현 국면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현 상황에서 납치 문제로 북일 관계의 물꼬를 틀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아베 총리나 고노 외상이 모두 납치 문제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차피 한반도 문제의 '운전자'가 되기로 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북일 간 대화 채널을 열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북한 입장에서도 언제까지 북일 수교를 미룰 수 없습니다. 북일 수교도 북미 수교만큼 중요합니다. 우리한테도 북일 수교는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에 '곧 북한과 만나게 해주겠다'고 먼저 말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현 상황에서의 운전자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정확하게는 한국이 잘 운전에서 만들어진 물꼬가 급류가 됐고 여기에 김정은이 올라탄 거라고 봅니다.  

특히 북중 정상회담이 이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봅니다. 김정은은 그동안 중국에 몇 번 가려고 했지만 중국은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의전을 제공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김정은을 부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이 김정은에게 오라고 했습니다. 또 북한이 원하는 최고 수준의 의전을 보여줬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만든 것은 한국입니다.  

물론 북한도 중국이 필요했기 때문에 방문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국이 트럼프랑 같이 압박하면 2대 1의 싸움이 될 수도 있는데 그 때를 위해 중국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중국에서 얻어온 것도 많을 겁니다. 바로 나타나지는 않을 수 있고 북중 국경의 동향을 볼 필요가 있지만, 제재 문제와 관련해 반대 급부가 있었을 겁니다. 그거 없이 김정은이 움직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페리-임동원 "북미 정상회담 비현실적 목표 버려라"

"즉각적 비핵화보다 프로세스 만들어야"
2018.04.10 16:40:48

북핵 해법의 근본적 대안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 받는 '페리 프로세스'의 주인공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남북‧북미 정상회담 직후 곧바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는 어렵지만, 국가 지도자들이 북핵 이슈를 다루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며 긴 호흡을 가지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 정립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1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뉴스핌> 창간 15주년 기념 서울 이코노믹포럼에 강연자로 나선 페리 전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결과물이 나오겠지만 즉각적인 비핵화는 어렵다. 비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합의를 낼 수 있다면 (북핵 문제 해결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더 좋은 것을 기다리다가 좋은 것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페리 전 장관은 포럼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당장 북한을 비핵화하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북핵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프로세스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비핵화와 (북미 간) 관계 정상화가 같이 가야 한다. 정상화 과정 중에 비핵화가 될 수 있고 비핵화하다가 정상화가 될 수도 있다"며 "남북‧미북 간 합의 체결, 즉 하나의 프로세스를 추구하자는 합의문 체결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1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뉴스핌>주최 서울이코노믹포럼 참석 차 한국을 방문한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스핌 제공

 
페리 전 장관은 북핵 검증 역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북핵 검증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인데 문제는 북핵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며 "기술적 검증을 위해 북한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가 신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페리 전 장관은 "이를 위해 관계 정상화 프로세스가 필요하고 또 한 쪽에서는 북핵을 검증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며 "남북‧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기술 검증이 같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비핵화는) 굉장히 더딘 과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희망적인 것과 동시에 참가 당사국들의 기대치가 다르고 시간이 오래 걸려야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우려도 있다"며 "하지만 국가 지도자들이 이 이슈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다. 즉각적인 성공을 노리면 안된다"고 재차 언급했다.

북한, 관계 개선 진정성 있다 

이날 포럼에서 강연을 맡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에 대해 "김정은이 (한국, 미국, 중국 등을) 기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 국면이) 김정은의 사기극이라면, 사기가 드러났을 때 후폭풍이 가장 최소화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나름의 전략일 텐데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까지 직접 다녀왔다"며 북한의 행태를 봤을 때 기만적인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은 남한의 대북특사단에게 대화 중에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전략 도발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건 사실상 '모라토리움'(중단) 선언이다. 여기에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도 이해한다고 했다"며 "위 두 가지 이슈는 만약 협상을 진행했다면 1년이 지나더라도 결과가 나오지 않을만큼 북한 입장에서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즉 북한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 두 개를 내려 놓고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김정은은 지도자로 취임 이후 세계 경제발전 추세에 맞추자면서 국제적인 기준을 강조했다. 이건 과거 김정일 정권과 다른 점이다. 정상국가를 만들겠다는 뜻"이라며 "김정은은 외국의 자본을 받아들여서 전면적인 개방을 통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북한이 체제 안전 보장과 핵 포기를 교환하자고 말하는 밑바탕에 있는 진정한 목적"이라고 해석했다.  

이 전 장관은 "우리가 북한이 정상국가가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남북관계를 가져간다면 평화정착과 한반도 공동 번영도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 1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뉴스핌>주최 서울이코노믹포럼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임동원(오른쪽) 전 통일부 장관과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뉴스핌 제공


페리 전 장관과 함께 '페리 프로세스'를 사실상 기획하고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역시 비핵화와 관련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날 페리 전 장관과 가진 대담에서 "김정은은 핵 억제력을 확보했고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낮아졌으니 이제는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평화적인 분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남한 및 미국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할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볼턴이 좌지우지 하지는 못할 것 

이날 페리-임동원 전 장관 대담에 특별 게스트로 참석한 정동영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미국 내에서도 강경파로 알려져 있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를 임명한 것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 열흘 정도 후에 미국을 방문해서 존 볼턴 전 대사를 만났는데 그 때 볼턴은 '지난 25년 동안 북한은 약속과 위반을 반복적으로 해왔고 핵무기 능력을 개발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화에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며 페리 전 장관에게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 오른쪽부터 정동영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고유환 동국대학교 교수 ⓒ뉴스핌 제공


이에 대해 페리 전 장관은 "볼턴의 임명이 좋은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무장관도 북한과 협상을 할 때 깊게 관여할 것이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있다. 대통령이 (볼턴으로부터) 아주 강경한 조언을 들을 수도 있지만 중립적인 입장의 사람들도 있다"고 답해 볼턴 보좌관의 생각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관심을 많이 기울이지 않는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든 별로 개의치 않고 본인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페리 전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로 귀결되거나 북한이 검증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북한에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결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과 똑같은 이야기다. 아무리 제한적으로 군사적 공격을 가한다 하더라도 첫 번째 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즉 계속 공격이 이뤄지게 된다면 한국도 포함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야말로 진정성을 가지고 건설적인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북미 정상회담의 '충격과 공포'
[차이나 브리프] 트럼프 시대의 미국 패권과 북핵

지난 3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수락하고, 그 사실을 한국 특사가 발표토록 하는 충격적 조치를 취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는 한반도의 핵전쟁 위협이 북미 정상회담을 강제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11월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미국은 첫째 지구적 차원에서 핵 비확산 체제(NPT)의 붕괴, 둘째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화, 셋째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핵의 위협이라는 세 가지 도전에 직면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대북 직접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가 발행하는 <차이나 브리프> 47호에 실린 이혜정 교수의 글을 연구소 측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외교적 충격과 공포 

2018년 5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이 두 지도자가 2017년 내내 괌 포격과 북한을 절멸시키는 화염과 분노 등의 '말 폭탄'을 교환하며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었던 걸 고려하면, 북미 관계의 놀라운 반전이다. 이 반전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며 남북관계를 복원한 한국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평화·중재 외교의 결과다.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이자 특사인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여건이 갖춰진 이후 남북 정상회담 추진으로 화답한 문 대통령은 3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대표로 하고 서훈 국정원장 등으로 구성된 특사단을 평양에 파견했다.  

5일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하고 6일 서울로 돌아온 특사단의 성과는 놀라웠다. 특사단의 언론발표문에는 4월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개최, 남북 정상 간 핫라인 설치, 북의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조건으로 하는 비핵화 및 북미 대화 의지, 대화 지속 기간 북의 핵과 미사일 실험 중지와 남에 대한 핵‧재래식 무기의 위협 금지, 연례적인 한미 군사 훈련 재개 수용 등이 담겨있었다. 특사단은 8일 미국으로 출발했다.

3월 8일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에서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조야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 부과를 발표한 직후 다음 날 면담 예정이던 한국 특사단을 직접 불러 면담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해 듣고는 이 제안을 그 자리에서 수용했다.  

더 나아가, 이 결과를 한국 특사단이 직접 발표하도록 조치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는 내용은 물론 의전 상으로도 전례가 없는 '외교적 충격과 공포'였다.

▲ 정의용(가운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월 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접견 결과를 발표하며 오는 5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청와대


'충격과 공포'는 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사용했던,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2016년 미국 대선 운동 과정에서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햄버거 협상'의지를 밝히기는 했지만,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안을 그것도 한국 특사단에 의해 전달된 제안을 수용한 것은 분명 예상을 뛰어넘은 일이다. 그리고 이 회담이 성공한다고 해도, 실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의 길은 결코 순탄할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가 왜 '충격과 공포'인가? 왜 미국의 주류 언론과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트럼프의 섣부른 '양보'를 걱정하는가? 트럼프는 분명한 대북정책을 지니고는 있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양보해서는 안 되는 미국의 이익은 무엇인가?  

이들은 북미 정상회담이란 역사적 전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질문들이고, 그 핵심은 결국 '미국에게 북핵은 대체 어떤 위협인가'일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서로 연관되지만 일정하게 독자적인 세 가지 차원, 즉, 지구적 차원에서 비확산과 지역 정책, 그리고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에서 찾을 수 있다. 

핵 비확산(NPT) 체제에 대한 도전
 

첫째, 북핵은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해온 핵 비확산(NPT)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거시적·구조적으로 보면, 핵을 최초로 개발하고 실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이 소련과의 합의를 통해, 핵 국가의 핵 군축은 장기적 목표로만 규정하고 비핵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은 제도적으로 금지한 1969년의 비확산조약은 위선적이었다.  

냉전은 미소가 각자 진영을 통제하면서 핵 억지의 '담합'을 진행한 이중 봉쇄였고, 이 기간 한국의 핵 개발은 미국에 의해 그리고 북한의 핵 개발은 소련에 의해 저지되었다.

냉전이 끝난 이후 미국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핵을 통제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고, 비확산체제의 시효를 영구화하는 것은 그 주요한 과제였는데, 이것이 '소위' 제1차 북핵 위기의 배경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전쟁 초기 트루먼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이후 한반도에서 핵 위기는 상시적이었다. 1995년 비확산 체제의 영구화에 성공한 미국은 2001년 9·11 테러를 배경으로 핵 억지의 주요한 기반으로 미사일 방어를 제한하는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에서 탈퇴하고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을 폐지하는 새로운 핵전략을 내세우며, 이라크와 이란 및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후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것이 '소위' 제2차 북핵 위기의 배경이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비확산 체제를 기반으로 국제제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비확산체제의 현실적·규범적 기반 자체가 일정하게 붕괴되었다. 미국은 ABM 조약에서 탈퇴한 이후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소련과 중국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해오고 있다. 

비확산 체제의 불평등한 규범에 대한 도전도 제기되었다. 핵 국가들이 핵 군축 대신 핵무기 개발에 진력하는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이 2017년 핵무기 금지조약의 체결로 이어진 것이다. 

핵 억지의 국제정치적 현실에서 보면, 미국의 핵우산 혹은 확장 억지정책은 북핵에 대해서도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핵 군축과 협상의 역사에 비춰보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역시 불가피하고 기존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쌍방 과실'이다.

이러한 핵 억지와 협상의 현실론 혹은 보편주의는 미국 내에서 극소수의 견해이다. 기존의 협상이 실패한 원인을 북한의 일방적인 책임으로 돌리는 시각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체제문제이기 때문에 그 체제의 변환 혹은 붕괴 없이는 핵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북한 예외주의도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역안정에 대한 위협 

둘째, 북핵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지역적 안정에 대한 위협이다. 이 지역에서 자신의 패권적 기제와 영향력을 보존하기 위해서, 미국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북핵 문제와 지역안정에 대한 중국과의 협력, 그리고 한국과 일본과의 기존 동맹을 강화하는, 세 가지의 복합적이고 상충되는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북미 간의 핵 협상은 한국전쟁 이후 양자 간의 안보 딜레마를 인정하는 기반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1990년대의 제네바 합의나 2000년대의 6자회담 구도는 모두 이를 위해 평화협정을 통해서 한국전쟁 이후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북미 수교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북핵문제 해결의 이정표를 세운것으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13년이 지났다. 사진은 성명 합의 직후 6자회담 참가국 수석대표들이 손을 맞잡은 모습. 왼쪽부터 당시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알렉산드로 알렉세예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 ⓒ연합뉴스


그런데 북한 위협의 감소 혹은 해소는 한미 동맹의 기반을 침식한다. 현실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의 증강은 미사일 방어망 구축 등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로 이어져왔다. 이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논란이 증명하듯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초래했다. 북핵과 주한미군을 둘러싼 안보 딜레마가 남북한이나 북미 사이만이 아니라 미중 사이에서도 작동하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부상은 가속화되었고, 한국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 심화되었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재건에 집중하면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동시에 포섭하는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였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국의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편승하여 북핵 협상을 중단하고 사이버 비밀공작 등을 통해서 북한의 핵 개발 저지를 시도하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시행하였다. 2008년 이후 6자 회담은 중단되었고 이후 북한은, 특히 김정은 체제 하에서 급속히 핵과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켰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북핵에 대한 억지와 한미일 군사협력의 강화에는 성공하였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자체를 저지하지 못하고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도 견인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2016년 대선 과정에서 대안적인 전략이 등장했다. 기존의 한미일 군사협력과 대북 확장 억지는 유지하면서, 중국을 견인하기 위해서 국제제재 동참에 대한 압력과 함께 한반도 급변사태와 통일 후 한반도에서 중국의 이익을 보존하는 유인책을 제공하고, 북미 간의 협상에서도 당근과 채찍을 보다 강화하는 방안이 외교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서 초당파적인 지지를 확보해나갔다. 

이러한 합의의 이면에는 한편으로는 압도적 다수인 기존의 한미일 동맹의 강화를 강조하는 '동맹파'와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부상이나 북미 협상을 위해서 기존 동맹 질서의 일정한 해체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키신저 식의 지정학적 현실주의 혹은 '미중담합론' 그리고 '북미협상파'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다.  

'동맹파'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불안정하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기존 핵 억지의 작동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즉, 북한 예외주의에 근거해서 국제제재의 강화와 함께 한미일 군사동맹의 일체화/나토화를 중심으로 하는 봉쇄와 억지의 강화를 주창했다. 한미일 미사일 방어망과 동북아판 나토는 북핵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중국에게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협력을 압박하는 군사적 견제 수단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강제한 한반도 핵 위협 

셋째, 미사일 능력의 향상으로 북핵은 미국 본토에 대한 안보위협으로 부상하였다. 그 정점은 2017년 11월 북한의 화성 15형 발사와 이후 국가 핵 무력 완성 선언이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는 기존의 미국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의 전통을 모두 부정하는 이단이었다. 패권과 동맹의 문법은 그에게 미국인의 삶을 위협하는 글로벌리즘일뿐이었다. 미국(백)인의 실제 안녕과 번영을 도모하는 미국 우선주의가 그의 대외정책 목표였고, 그의 평생의 신념이라면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와 동맹에 대한 회의, 그리고 강력한 지도력에 대한 동경이었다. 

트럼프에게 북핵은 무엇보다도 본토에 대한 안보위협이었고, 그에 대한 논리적 대응은 예방전쟁이거나 흥정의 대가로서 김정은과의 담판에 의한 위협의 해소였다. 이러한 그의 본능은 집권 초기'최대의 압박과 관여'정책으로 일정하게 제어되었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로 유엔 차원의 국제제재에 대한 국내외의 합의는 쉽게 도출되었다. 하지만 제재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었고,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한 중국의 협력은 제한적이었으며, 제재의 궁극적 목적이나 관여의 조건에 대한 새로운 정책적 합의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트럼프의 예방전쟁 수사와 군사적 옵션에 대한 주문은 강화되었고, 그 결과물은 '코피전략'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 불가를 거듭 확인하며 미국의 예방전쟁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대북정책 생태계에서 최대 다수를 이루는 '동맹파'도 반발했다. 코피전략이든 그 어떤 예방전쟁이든, 동맹과 미국의 패권적 영향력 자체를 폐기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한반도 핵전쟁 위협이 북미 정상회담을 강제했다. 트럼프가 미국본토에 대한 위협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신의 협상가적 본능에 충실하고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면, 5월의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의 역사적 전기가 될 수 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미동맹은 공존할 수 없다?

[차이나 브리프] 평창 이후, 한국이 직면한 '삼각 모순'
2018.04.11 14:44:46

지난해 12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강릉행 KTX 열차에서 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올림픽 기간 동안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겠다고 밝히면서 한반도 비핵화의 시동을 걸었다. 이른바 '평창 임시 평화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이제 과제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다.

이와 관련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한미동맹의 지속 등 세 가지는 동시에 모두 달성할 수 없는, 이른바 '삼각모순'(trillemma)이라고 지적한다. 즉,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달성하려면 한미동맹의 수정 또는 대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또는 한미동맹을 현상태로 유지하려면 한반도 비핵화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가 발행하는 <차이나 브리프> 47호에 실린 구갑우 교수의 글을 연구소 측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다. 

2017년 4월과 8월 한반도는 전쟁위기를 겪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동맹의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위가 서로의 안보이익을 감소시키는 안보딜레마가 야기한 전쟁위기였다.

다시금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 새벽 고각발사의 형태로 미국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하고, 정부성명을 통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때 또 다시 전쟁 위기가 다가오는 듯했다. 

평창 임시평화체제의 서막 

그러나 극적 반전이 발생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불가를 말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강압정책에 편승했던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9일 서울에서 강릉을 가는 고속열차 안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미국 주관 방송사인 NBC와 회견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과 겹칠 수 있었던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연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미 NBC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앞서 11월 13일(현지 시각) 미국의 뉴욕에서 열린 72차 유엔총회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동안 전 세계 분쟁을 중단하자는 휴전결의안이 채택된 바 있었다. 한국정부가 2017년 9월 유엔에 제출한 휴전결의안이었다. 휴전의 시간은, 2018년 2월 2일부터 3월 25일까지였다.  

시간을 역산해 본다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5형 발사 이전부터 그리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미국과 대북제재의 강화가 아니라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연기를 핵심 의제로 협의했으리라 추론할 수 있다. 한반도 냉전의 해체 조짐이 보이던 1991년 11월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한미합의로 중단했지만 1993년 재개된 한미합동훈련의 첫 연기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12월 19일 기차회견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란 천재일우의 역사적 계기 속에서 평창 임시평화체제를 만든 사건이었다. 평창 임시평화체제는 2018년 3월 25일까지 유효한 임시체제이고, 군사적 분쟁의 중단만을 내장한 소극적 의미의 제도화를 담은 평화체제였다.  

임시와 소극이기에 지속성을 담고 있는 체제란 개념을 붙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반도 안보딜레마를 탈출하는 제도화의 한 형태란 점에서, 12월 19일 이후에 만들어진 한반도 정세를 임시평화체제로 정의할 수 있다. 

두 측면에서 평창 임시평화체제는 미래 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예시적 요소를 담고 있었다. 첫째,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안보딜레마의 한 축인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선제적으로 연기했다. 즉 한미동맹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안보딜레마를 벗어나고자 했다.  

둘째, 안보딜레마의 탈출을 위해 북한이 2015년 1월부터 공식적으로 제안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중단과 북한의 핵·미사일실험을 중단을 교환하는 이른바 '쌍중단'을 사실상 수용했다. 즉 북한에게 양보를 하는 방식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열었다.

만약 2017~2018년의 촛불혁명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없었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불가란 원칙을 제도화하는 방식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없었다면, 한미동맹의 한 당사자인 미국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의 휴전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차회견으로 시작된 평창 임시평화체제는 주변국 동의과정을 거쳤다. 한반도에서 전쟁불가, 한반도 비핵화, 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 남북관계 개선 등의 4원칙에 합의한 12월 14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12월 19일 문재인 정부가 밝힌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연기 제안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2018년 1월 신년사에서 한국의 정권교체를 언급하며 남북관계 개선의 의지를 밝혔다. 북한이 비핵화를 의제화하지 않아도 대화할 수 있는 상대 가운데 하나가 특수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남한이었다. 한반도의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정세"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북한의 논리였다.  

이후 한국정부는 1월 2일 남북회담을 제안했고, 1월 4일 한미 정상은 한미 합동 군사 훈련 연기에 합의했다. 미국도 사실상의 쌍중단을 수용한 것이다. 1월 9일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참가가 결정됐다.

평창 임시평화체제, 격랑의 50여 일 

2017년 2월의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회식에는 북한대표단이 참가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식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북한의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위원장, 미국의 대북제재 대상인 김영철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부장 등이 그들이었다. 김여정 대남특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미국의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 참가하면서 한국의 중재로 북미대화의 길이 열릴 듯 했지만, 시간과 장소까지 결정된 공식 북미대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펜스 부통령이 탈북자와의 만남과 천안함 방문 등의 대북압박 행보를 했고, 결국 북한은 북미회담의 취소를 통보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미국대표단이 참가할 즈음인 2018년 2월 23일 미국 재무부는 다시금 독자적인 고강도 대북제재를 발표했다. 해상차단과 중국이 포함된 제3국 선박까지 대북제재의 대상으로 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빌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신규제재"이고, 효과가 없다면 전쟁을 지시하는 "제2단계"를 예고한 제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3·1절 경축사에서 2019년 3·1절을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출발선"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은 핵 국가 인정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최상의 선호를 밝힌 셈이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3월 5일 대북특사와 대미특사를 보내겠다는 결정을 했다. 예전과 달리 외교부 출신의 청와대 안보실장과 대북정보를 다루는 국가정보원 원장이 포함된 특사단이었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매개로 북미대화를 중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평창 임시평화체제의 형성을 위해 연기한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재개와 관련하여 문재인정부가 어떤 제안을 하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의 입구와 관련하여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가 관찰의 초점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대북특사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의 결과는 경로의존적 예측을 벗어났다. 북한 응원단의 일원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20여 일을 한국에 체류했던 맹경일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과의 대화를 통해 한국정부는 북한이 서울을 경유하여 워싱턴으로 가겠다는 핵무력 완성 이후의 변화된 전략을 숙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3월 5~6일 북한을 방문했던 특사단은 6일 6개항으로 구성된 언론발표문을 공개했다. 남북한의 합의였지만 한국정부의 발표문이었다. 북한 매체는 이 합의문을 게재하지 않았다.

1항은 4월 말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었고, 2항은 남북 정상 간 핫라인의 설치였다. 3항은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의지와 자신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4항은 북한이 비핵화 협의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5항에서는 평창 임시평화체제가 시작될 때 언급되어야 했던 북한의 핵·미사일실험의 중단이었다. 단서는 대화가 지속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핵과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덧붙여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예정인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하고,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면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조절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 지난 3월 5일 평양에 위치한 조선노동당 국무청사에서 정의용(오른쪽) 수석 특사를 비롯한 남한 특사단 일행을 맞이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청와대


특사단 언론발표문에 내재된 함의 

이 언론발표문은 평창 임시평화체제에서 임시를 제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미답의 길을 담고 있다. 네 측면이 주목의 대상이다. 첫째, 남북정상회담의 장소다.

남북정상회담은 과거와 달리 북한의 영토인 평양이 아니라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군사령부와 북한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남측 지역에서 열릴 예정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택한 장소였다고 한다.

북한은 2013년 1월부터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와 평화협정 체결을 연계했다. 만약 예정대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화공존을 제도화하는 합의를 도출한다면, 북한이 남한을 정전체제의 당사자로 인정하면서 남북한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출발점을 만들게 된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처럼, 서로의 국가를 인정하고, 불가침선언을 하며, 경계선을 존중하고, 상주대표부를 설치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953년 중국과 인도 사이의 합의인 평화공존 5원칙과 1955년 반둥선언도 상상력의 원천일 수 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직전인 2017년 6월 24일 북한은 민족화해협의회 이름의 공개질문장에서 한미동맹인가 민족공조인가라는 양자택일적 질문을 던지며, 한반도 핵 문제는 남북대화의 의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대북특사단의 언론발표문에 따르면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의 의지를 먼저 남북대화에서 밝혔고, 한국에게 북미대화의 중재를 요구했다. 북한은 평창 임시평화체제의 공백이었던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의 중단도 한국에게 확약했다.  

북한이 비핵화와 교환하려는 품목은 자신의 체제 안전이다. 2016년 7월 북한은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 사용권을 가진 주한미군의 철수가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의 주장이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지대(nuclear-free zone)에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한반도 정세가 안정될 때까지란 단서조항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한미동맹의 수정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수정된 입장을 밝혔다. 사실상의 한국에 대한 불가침선언과 함께였다. 

셋째, 이 언론발표문에는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현재 대북제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한미일 등의 독자적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만이 제재를 해제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도 대북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방법을 담고 있지 않다. 대북제재로, 석탄은 물론 경공업제품의 수출도 막히면서 북한의 무역수지 적자가 증가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북제재로 북한의 국가적 행동 변화가 발생했다는 담론은 평창 임시평화체제가 발생한 직접적 원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평창올림픽 기간 미국이 취한 해상차단조치에 대해 미국 국내법에 기반한 제재이기에 주권침해이고, "난관을 조성하고 내부를 와해시켜 구미에 맞는 정부"를 세우려는 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즉 북한은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의 의도를 북한 내 '친미정부'의 수립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 참가를 계기로 대북제재를 우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넷째, 3월 6일 언론발표문의 국제정치적 맥락은 과거 남북관계가 개선될 때와 다른 모습이다. 2000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의 전후를 살펴보면, 북미대화, 남북대화, 북중 정상회담을 거쳐 남북 정상회담에 도착했고, 이후 북러 정상회담과 북미공동코뮤니케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특히 주목의 대상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전인 2000년 5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비공식 방문했다는 사실이다. 평창 임시평화체제가 사실상 중국이 동의했던 한반도 안보딜레마의 탈출해법인 쌍중단으로 시작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기차회견 전 중국을 방문하여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의 연기를 협의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중국도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통한 한반도 안보딜레마의 해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평창 임시평화체제에 대해 동의를 밝혔다. 북한은 중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주도하는 대북제재에 참여하는 것을 "미국을 비롯한 대국"이란 표현을 사용해서 비판해 왔다. 

중국이 주장하는 쌍궤병행에 대해서도 6자회담을 통해 실험해 보았지만 실패했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었다. 4월 말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북중 정상회담이나 그에 버금가는 북중 대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서를 달고는 있지만 한미동맹의 인정까지를 포함한 북한의 국가 행동 변화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중국에게는 북한의 '친미노선'으로 읽힐 수 있다. 중국 견제와 경제발전을 위해 전쟁을 했던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한 베트남의 행보를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행동이 변한 이유는? 

2018년 3월 8일 대북특사단의 대표가 북한의 전갈을 전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또 다른 경로의존적 예측이 빗나갔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미치광이'로 불렀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노망한 늙은이'로 불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했다.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의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비핵화와 체제 안전을 교환하겠다는 전갈을 미국이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비공개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까지로 정상회담의 시한까지 정했다. 언론발표를 백악관에서 한국의 대미특사가 하는 파격도 더해졌다. 평창 임시평화체제 완성의 순간이었다.

미국의 국가 행동의 변화도 설명을 필요로 하는 주제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선택이다. 다양한 스캔들로 인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했을 수 있다. 더불어 11월로 예정된 중간 선거를 고려했을 때, 한반도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매개로 한 정치연합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한반도 핵문제의 외교적 해법에 반대하는 정치세력들은 만약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하면, 전쟁과 같은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볼턴 전 유엔대사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것도 북미회담의 악재다. 볼턴 전 대사가 북한은 이라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자 북한은 그 교훈으로 핵 개발을 했다고 응수한 바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미국 내부의 제도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국내정치적 반대에 직면할 수도 있다.

▲ 존 볼턴(오른쪽)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직후인 지난 3월 22일(현지 시각)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폭스뉴스 갈무리


둘째, 트럼프발 동맹의 문법 변화다. 미국이 패권국가로서 동맹국에게 안보를 제공하고 그 동맹국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본토에 대한 위협이 최우선의 해결과제로 설정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은 제거대상들이다. 특히 미국에게는 핵보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이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변화된 정세로 촛불혁명과 같은 민주화 이후 한미동맹의 민주화를 추진하곤 했던 한국의 한미동맹 수정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동맹을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이다. 한국기업에 대한 철강 관세 부과를 둘러싼 논란은, 동맹의 문법을 변경하는 한이 있더라도 패권국가가 아니라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념과 가치 그리고 이익을 공유하는 전략동맹으로서의 한미동맹의 폐기절차를 밟고 있다. 

셋째, 보다 거시적으로 미중관계의 맥락에서 미국의 국가행동의 변화가 발생한 원인을 추론해 볼 수 있다. 2017년 12월 미국 정부는 '새 시대를 위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원칙적 현실주의로 이름붙인 힘에 입각한 개입주의를 표방한 바 있다.

반면 '국가안보전략'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수정주의국가"로 명명된 중국은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19차대회를 통해 평화공존과 인류운명공동체란 신형국제관계의 대강을 제시했다. 미국은 최고의 군사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고, 중국은 강군흥국(强軍興國)을 길을 가겠다고 한다. 경제적 지역으로 미국은 인도태평양을 중국은 일대일로를, 무역정책과 관련하여 미국은 보호무역을 중국은 자유무역을 추구하고 있다.

이 미중관계 속에서 북한을 자신의 세력권 안에 두려는 미국의 정책수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용을 해석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수용 이후 미중 경제관계는 전쟁이란 수사를 동반한 갈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2018년 3월 22일 "중국의 경제침략을 표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를 핵심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본격 서막이었다. 이 행정명령은 2015년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발표한 "중국 제조 2025"가 표적이라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이 선전포고 전인 3월 12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한국의 특사를 만나 북미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3월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대만 공직자 사이의 교류를 허용하는 대만여행법에 서명하면서“하나의 중국”이란 중국의 원칙에 시비를 걸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1일 남북,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미의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을 말했을 때도, 1953년 7월 정전협정 체결 이후 계속 논란이 되어 온 평화협정의 당사자에서 중국은 또 다시 배제되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한국정부가 직면한 삼각모순(trilemma) 

다시 정리하면 평창 임시평화체제는, 한국정부가 한미동맹을 수정하면서 북한과 미국의 국가 행동의 변화를 촉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반도 안보딜레마와 평창 임시 평화체제에서 도출할 수 있듯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그리고 한미동맹의 지속은 한국정부가 동시에 달성할 수 없는 정책목표인, 불가능한 삼위일체 즉 삼각모순(trilemma)이다.

한국정부는 이 세 정책목표를 동시에 말할 수밖에 없지만, 셋 가운데 두 가지만을 달성할 수 있다. 즉 한반도 안보딜레마의 탈출방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상정할 때, 한반도 딜레마의 양 축인 북핵과 한미동맹 가운데 한 축만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반도 비핵화와 한미동맹 지속의 조합은 북한에 대한 강압정책 또는 전쟁을 통한 북한붕괴의 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한미동맹의 지속은, 북한을 핵 국가로 사실상 인정하는 정책조합이 될 수 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미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위한 단초가 마련된 후, 또다른 의제인 한반도 비핵화는 다른 협상테이블에서 핵 동결, 신고, 사찰, 검증, 폐기 등의 복잡한 장기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와 체제 안전을 교환하려 할 때, 북한은 체제 안전이 한미의 정권교체가 있더라도 확보될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며, 최소 10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남북미 평화공존의 제도화 단계에 진입한 북한이 한미동맹을 인정하면 삼각모순이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때의 한미동맹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으로 형태변환을 할 가능성이 높다.

평창 임시평화체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공존은 한미동맹의 수정과 조정이 있을 때만 가능한 정책 조합이다. 한국정부가 이 세 번째 길을 가고자 한다면, 한미동맹을 수정 또는 조정 또는 대체하는 동북아다자안보협력의 모색이 필요하다.


비핵화를 위한 '한반도식 해법' 제안

[현안진단] 한국만의 비핵화 시간표를 가져야 한다
2018.04.12 23:09:03

다시 맞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의 기회

우리 민족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를 위한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이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5월 말 ~ 6월 초에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면 한반도 냉전 구조의 해체, 더 나아가 동아시아 냉전 구조의 해체를 맞이할 수 있는 기대의 문이 열리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구조는 1945년 8월 일본 제국주의 패망 이후 중국 대륙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중국공산당에 맞서 만들어졌다. 1947년 3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된 뒤, 동아시아에는 냉전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52년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형성되면서 냉전 구조는 완성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중국의 참전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하나의 중국을 바탕으로 하는 '상하이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되면서 냉전 구조의 한 축이 무너졌다. 그 뒤 1972년 9월 중·일 국교 정상화(중·일 공동성명)가 이루어지고, 1979년 1월 미·중이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한반도 냉전 구조는 깨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사회주의권이 해체된 이후에도 요지부동으로 남았다. 오히려 북한의 핵 개발로 냉전의 그림자가 더욱 짙어가는 경향을 보였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과 조명록 차수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상호방문으로 10월 '북·미 공동코뮤니케'가 발표되어 한반도 냉전 구조가 해체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1월 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부시 후보가 당선되면서 화해 분위기는 일순간에 사라지고 또다시 냉전의 바람이 몰아쳤다. 그 뒤 노무현 정부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냉전 구조의 해체를 시도했지만, 이미 임기 말에 접어든 터라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 또다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의 기회가 왔다. 우리의 주도력이 바탕이 되고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조적 분위기에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개최될 예정이다. 앞으로 보름 후 먼저 열리게 될 남북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관계 개선의 세 가지로 좁혀져 있다. 이 가운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은 한 달 뒤에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의제와도 맞닿아 있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이나 인도적 사업 등은 남북관계 개선의 큰 틀 속에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시간표와 트럼프의 시간표 

북한은 2012년 헌법 전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했고, 지난 10년 동안 비핵화를 의제로 하는 어떠한 대화도 거부해 왔다. 그러던 북한이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조건부나마 핵 포기 회담에 나올 용의를 표하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3월 5일 우리 측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군사위협의 해소와 체제안전의 보장'을 조건으로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약속했고, 북·중 정상회담에서도 이를 확인하였다.  

▲ 지난 5일 정의용(오른쪽) 수석 특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편지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한 뒤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하지만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두려워해 북한이 비핵화를 서두를 것 같지는 않다. 3월 9일 개최된 북한 당 정치국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을 재차 강조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파기 예고와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등 중동지역에서 커다란 전선이 만들어지고 있어 대북 군사행동의 위험부담도 덜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정은의 비핵화 시간표는 길게 잡혀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급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지만, 각종 스캔들로 시달리고 있어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의 결과가 그의 재선 가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 중국과의 통상전쟁, 중동질서 재편을 준비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서 조기성과(early harvest)를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의 시간표는 2년에 맞춰져 있다.  

임기의 1년을 마치게 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은 4년이다. 4년은 길지도 않지만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니다. 이제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잡은 한국이 우선해야 할 일은 트럼프의 시간표와 김정은의 시간표를 조정하여 양자 모두 동의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명운이 걸려있는 역사적인 남북 및 북·미 연쇄 정상회담을 앞두고 리비아방식, 이란방식, 우크라이나 방식 등 여러 가지 북핵 문제의 해법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의 시간표를 짜기 위해서는 외국의 비핵화 모델을 참고하되 한국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난 5년 반에 걸쳐 진행됐던 6자회담이라는 비핵화 협상의 경험이 있다. 다만 당시와 지금은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에 과거 6자회담 경험에 기초하면서도 새롭고 창의적인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6자회담의 실패가 주는 교훈 

6자회담은 2003년 8월에 제1차 회의가 시작되어 25개월만인 2005년 9월 제4차 6자회담에서야 포괄적 합의인 「9.19 공동성명」에 도달하였다. 여기에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 포기, NPT 및 IAEA 복귀, 소극적 안전보장, 경수로 제공,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경제협력, 평화체제 등이 하나의 바구니에 다 담겨 있었다.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지만, 미 재무부가 북한이 위조달러를 제조했다며 「애국법」 위반을 걸고 나오는 이른바 'BDA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한동안 단계적 목표를 정하는 협상이 진행되지 못하였다. 결국 17개월 만에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2.13합의)를 타결 짓고 그 4개월 후인 2007년 6월에 이행을 완료하였다.

그 뒤 곧바로 협상에 들어가 3개월 뒤에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단계 조치」(10.3합의)를 통해 핵시설의 불능화를 목표로 하는 방안을 타결지었다. 하지만 일본이 의제 밖의 납치문제를 거론하며 자국의 분담 몫인 중유 20만 톤의 제공을 거부하는 바람에 불능화는 80%에 머문 채 중단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12월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에서 미국측과 북한측이 불능화에 대한 검증문제에 합의를 보지 못해 협상이 결렬되면서 이행은 완료되지 못하였다. 

6자회담은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타결 및 이행(가동중단·봉인, 불능화)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개시부터 합의에 이르기까지 장시간이 걸렸다. 이것은 북한의 살라미 회담 전술 탓도 있지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버텀업(Bottom-up)' 방식이었기 때문에 의사결정에도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다. 당시 수석대표의 급도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차관급인 데 비해, 미국은 차관보, 일본은 국장급이었다. 그 외에도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로 정책이 바뀌는 바람에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점도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6자회담이 실패로 끝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이었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북한이 기존의 핵무기 협상-보유 양면전술에서 벗어나 확고하게 핵무기 보유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그 뒤 북한은 일관되게 비핵화를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대화에도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몇 차례의 북·미간 탐색 대화가 있었을 뿐 제대로 된 협상은 진행되지 않았다.

새롭고 창의적인 한반도식 해법의 모색 

그렇다면 이번에 개최되는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최대 의제인 비핵화에 초점을 두고 볼 때, 두 개의 연속 정상회담과 향후 개최될 비핵화 다자회담 간에는 포괄적 합의, 일괄적 타결, 단계적 이행의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먼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모든 핵시설들과 핵무기 폐기, 대북 군사위협 해소 및 체제 안전 보장 방안들, 대북 제재 해제와 경제협력 방안들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는 포괄적 합의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포괄적 합의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우려가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9.19공동성명」의 작성을 위해 남북한과 미, 중, 일, 러 등 6개국이 참가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한·미의 사전협의와 북한의 동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 3월 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정의용(왼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


다음, 뒤이은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합의사항들을 3개의 패키지(현재·미래핵, 과거핵, ICBM)로 나누어 일괄적으로 타결할 필요가 있다. 현재·미래핵이란 북한의 핵 시설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영변원자로와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원심분리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과거 핵은 북한이 이미 생산해 보관하고 있는 핵물질을 가리킨다. 대륙간탄도미사일도 폐기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에 상응하여 한·미 군사연습의 조정이나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완화와 같은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 그리고 경제지원 등의 보상조치를 한국과 미국이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어서, 후속의 비핵화 다자회담에서는 단계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과 검증을 완료하도록 한다. 과거 6자회담에서처럼 가동중단·봉인, 불능화, 폐기의 3단계를 거치는 방법도 있지만, 문재인 시간표에 따른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앞서 제시한 3개 패키지의 특성에 따라 당장 위협이 되는 과거 핵은 즉각 폐기하고, 현재·미래핵과 ICBM은 단계적으로 폐기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상응하여 제재해제나 한반도 평화협정, 미국과의 대사급 외교관계 개설 등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2년 내 핵 폐기 시간표에 맞추어 적극 협조한다면 미국도 초기 단계부터 다양하고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통 크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패는 한국이 자체 시간표를 갖고 미국과 북한의 시간표를 조정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남북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이 서로 자신들의 시간표를 고집한다면 비핵화의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가 새롭고 창의적인 해법을 갖고 미국과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외교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울러 중국, 러시아, 일본 등도 협조와 성원을 보내고 타협의 공간을 넓히는 긍정적 역할을 하도록 좀 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 냉전 구조 해체라는 세계사적 전환은 역내 모든 나라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명분이 될 수 있다.


한반도의 운명, 낙관과 비관과 회의 사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지형이 빠른 속도로 변화 중이다. 정상회담은 항구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서막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갈등을 단칼에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4월 13일 금요일 제551호                       

놀랍다. 지난 한 달의 반전 드라마는 전문가 눈으로 보아도 분명 놀랍기 그지없다. 불과 석 달 전 위기 상황을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새 지평을 여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남북 정상회담 하나만 열린다 해도 고무적일 텐데 이제는 북·미 정상회담에다 남·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열려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과 북·중 관계 정상화는 또 하나의 시그널이다.

관점은 낙관과 비관, 회의론을 크게 오간다. 낙관론자들은 앞으로의 연쇄 정상회담이 핵무기 없는 북한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고, 궁극적으로는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정책 목표로 설정해 노력해왔고 이제 그 열매가 부분적이나마 영글어가는 중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체제, 관계 개선에 대한 선언적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이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의 과정을 거쳐 우리 모두가 안심할 만하다고 느낄 때, 그때서야 비로소 평화는 찾아들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서양 경구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북한의 비핵화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실행해나가고 이를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의거해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연동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비관론이 옳은가. 상당수 비관론자들은 남북 정상회담의 궁극적 성패가 북·미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을 담보해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기 때문이다. 비관론자들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일뿐더러, 열린다 해도 성공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걸 ‘완전하고도 검증 가능한 불가역적인 북핵 폐기(CVID)’의 즉각적 이행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자 그대로 수락할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결국 북·미 정상회담은 결렬되고 그에 따른 파국이 미국의 군사행동으로 이어져 한반도 전쟁까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묵시록적 전망도 어김없이 뒤따른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5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8.4.11


설득력이 있을까. 역사를 되짚어보면 정상회담이 실패하는 경우란 상상하기 쉽지 않다. 아무리 예측불허의 성격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 해도 정상회담 결렬이 몰고 올 국내·국제정치적 파장을 모를 리 없다. 견해 차이가 있어도 외교적 노력을 통해 봉합하려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비관론과는 또 다른 차원의 회의론도 있다. 이들은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미국 정부가 평양의 농간에 놀아나 오히려 손해나는 협상 결과를 떠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려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이 주한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평화체제의 대가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연방제’ 제안을 수락할 것이다. 셋째, 평양이 소위 분리(decoupling) 전략을 구사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만을 검증·폐기하는 조건으로 주한 미군 철수를 들고 나오려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다.

지나친 기대는 금물, 맹목적 비관론과 냉소적 회의론도 역시 금물

이 세 가지 주장 모두 뚜렷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한 미군 위상에 대해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이후의 국내정치적 혼란과 전략적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연방제 수용 주장은 아예 ‘픽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싱턴이 아직 실전 배치도 제대로 안 된 북한의 ICBM이 무서워서 그 폐기를 전제로 핵을 용인하고 주한 미군을 철수한다? 문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남북관계에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더불어 맹목적 비관론이나 냉소적 회의주의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밋빛 환상이든 회색빛 우울이든, 섣부른 예단을 버리고 대안과 전략을 만들어간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만이 우리가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갈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