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강간 이데올로기, 이제 반격이 시작됐다" - 여자는 왜 늘 반성할까

일취월장7 2018. 3. 12. 10:11

 
"강간 이데올로기, 이제 반격이 시작됐다"
[프레시안 books] 수잔 브라운밀러의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2018.03.10 21:31:35

        

"강간은 섹스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2018년 한국사회는 '미투(#Me Too)' 운동을 통해 1970년대 서구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이 명제를 뒷받침하는 생생한 증언을 목도하고 있다.

지난 5일 폭로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은 '권력과 강간'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안 지사의 수행비서로 있으면서 4번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한 김지은 정무비서관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지사님과 합의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의 존재가 너무 컸고 상사이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사이였다.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수행비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안 지사가 '미투'를 이야기하며 사과한 날(2월 25일)에도 또 성폭행을 했다. 미투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미투를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으로 알아들었다"고 밝혔다. 이는 강간이 물리적 폭력을 수반하지 않고도 권력의 우위를 통해 행사될 수 있으며, 강간 행위 자체가 그가 가진 권력을 확인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김 비서관은 특히 "인터뷰 이후에 저에게 닥쳐올, 수많은 변화들은 충분히 두렵다. 하지만 저에게 더 두려운 것은, 안 지사다. 실제로 제가 오늘 이후에도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은 '권력으로서의 강간'의 피해 당사자가 느끼는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짐작케 한다. 안 전 지사에게 1년 넘게 7차례에 걸쳐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했다는 추가 폭로도 나왔다. 안 전 지사가 설립한 연구소 직원인 이 여성은 김 비서관과 마찬가지로 1년 넘게 성폭력에 시달렸으나, 안 전 지사의 절대적인 지위 때문에 발설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강간은 권력과 지배를 확인하려는 고의적인 행위이자, 도덕 기준 없는 남성들이 저지르는 모욕 행위이며, 대부분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살해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1970년대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기념비적인 책인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수잔 브라운밀러 지음, 박소영 옮김, 오월의봄 펴냄)는 선사시대부터 계속되어온, 길고도 긴 강간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한국어판 번역은 출간된 지 40여 년 만에, '중국어판 번역'보다도 늦게 나왔다.  

"강간은 강간범의 마음에서 시작될 뿐이다" 


▲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수잔 브라운밀러 지음, 박소영 옮김, 오월의봄 펴냄). ⓒ오월의봄

"강간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결정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에 사로잡힌 상태에 묶어두려고 의식적으로 협박하는 과정이 바로 강간"이라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이 책은 '강간에 대한 통념'이 얼마나 조작된 것인가를 '사실'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어떤 범죄자에게든 있을 법한 개인적 기벽과 인격 장애를 제외하면 강간범을 특징지을 수 있는 고유의 병리적 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강간 행위가 개인의 욕정을 통제하지 못해 우발적으로 폭발한 것이 아니라 71%가 사전에 계획된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강간과 정신병리학적 연관성의 신화를 배격한다.

여성이 유혹한 것이라는 '꽃뱀'이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저자는 강간 피해자의 나이가 15개월에서 82세까지 분포한다는 연구(찰스 하이면 박사의 워싱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반박한다. 이 연구 대상 인원 중 12%가 12세 이하의 어린이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신고된 강간을 다룬 아미르의 연구는 전체 피해자 중 8%가 10세 이하였고, 28%가 14세 이하였다.  

강간이 발생한 장소를 살펴봐도 '여성이 특정 장소를 잘못 찾았기 때문'이란 말이 성립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미 '폭력의 원인과 예방에 관한 국가위원회'가 수행한 17개 도시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강간의 52%는 집(강제 불법 침입에 의한 강간)에서 일어나며, 23%는 야외, 14%는 상업 시설 및 다른 실내 장소, 11%는 차 안에서 발생했다. 저자는 "통계에 따르면 거리와 집, 자동차가 가장 위험한 장소로 떠오른다. 그런데 이 장소들을 빼고 나면 도대체 남아 있는 장소가 있기는 한가"라고 반문하며 "강간은 강간범의 마음에서 시작될 뿐 장소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토론토와 필라델피아를 대상으로 한 두 건의 연구조사에서 강간범의 71%가 집단으로 범행(두 명 이상의 남성이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점 등을 제시하며 "피해자가 동등하게 싸울 가능성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집단 강간이야말로 남성 강간 이데올로기를 극명히 드러내는 현상이며 '남성연대(male bonding)'의 증거"라고 지적했다. 집단 강간에 내재된 이런 정치적 속성은 전쟁 시 발생하는 강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뉴요커>에 베트남전 당시 미군 5인 분대가 한 마을을 수색 정찰한 뒤 그 마을에 살던 20대 여성을 5일 동안 끌고 다니며 집단 강간한 뒤 살해했다. 당시 5명 중 단 1명이 범행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군인이 서열 순으로 돌아가며 윤간을 하는데 자기 차례가 돌아왔을 때 거절하자, 다른 병사들은 '동성애자에 겁쟁이'라며 조롱했다. 범행에 동참했던 다른 병사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 두려워 범행에 동참했다고 군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고백했다. '지배행위'로서 강간은 이에 동참하고 동조하는 남성들 사이의 연대를 강화하며, 일종의 동료의식이자 문화로 존재한다. 이런 '남성연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성은 동등한 인권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철저히 타자화된 '대상'일 뿐이다.

이처럼 저자는 도서관에 4년 동안 파묻혀 수집을 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모든 여성은 강간당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강간당하는 여성은 있을 수 없다", "그녀가 원했다", "어차피 강간당할 상황이면 긴장을 풀고 즐기는 편이 낫다" 등 남성의 강간 신화를 배격하고자 했다.  



강간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테러'다 

저자는 여성들의 관점에서 강간은 '테러'라고 규정한다. 강간으로 피해 여성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간을 통해 '남성지배'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간(상당수가 살해로 이어지는)을 정점으로 하는 성폭력과 이를 둘러싼 공포는 여성 전체를 협박해 가두는 권력 도구였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둡고 두려웠던 과거의 역사만이 아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1970년대는 남성의 시점에서만 정의되고 활용되던 강간을 여성운동의 성과로 재정의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저자가 속한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당시 낙태 경험, 성폭력 경험 등을 공유하고 나누는 '의식 고양 운동'을 조직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성기 삽입에 국한되는 의미의 '강간'만을 성범죄로 인식하던 협소한 시각을 '성폭력'이란 광의의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여성의 시각에서 강간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과정이 곧 강간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2018년 한국의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란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성폭력 경험에 대한 고발과 증언이 터져 나오면서 '피해자의 관점'에서 성폭력을 인식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경험이 축적되고 있다.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대해 "기억이 안 난다"는 남성들의 발뺌은 여전히 강간이 아닌 성폭력은 '별 것 아닌 일'이라는 가해자의 시각이 지배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통용된다. "기억이 안 난다"는 말 한마디로 이후 성폭력에 대한 입증 책임은 피해자에게 떠넘겨진다는 점 역시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어떤 '성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미투' 운동이 당장 어떤 법과 제도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이 혁명적인 시기를 거친 뒤 한국 사회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미투' 운동을 통해 한국 여성들의 의식은 '고양'됐으며, 이런 여성들의 집단적이고 정치적인 움직임에 남성들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됐다. 



미투는 거대한 변혁...'일상적 파시즘'을 해체하라
[이충렬의 정권+교체] 미투운동, 쌍(双)정상회담, 촛불혁명
2018.03.12 15:22:44 
    
1. 천지개벽의 수레바퀴

2018년 들어서면서 천지개벽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 4월에 열리는 것만 해도 상전벽해의 변화인데, 드디어는 미국의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5월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논의키로 하였다. 

변화는 바깥에서만 일어나고 있지 않다.  

차기 대통령후보군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성추문으로 한방에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자 한국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의 유일한 단골 후보로 입담에 올랐던 고은씨, 연극계의 황제로 통했던 이윤택씨도 파렴치범으로 추락했다. 이들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도 엄청난 일이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비하면 도입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거대한 변혁'의 입구에 서 있다는 느낌이다.

한반도 내외에서 용솟음치는 이 거대한 세기적 변혁을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한반도의 중심이 되고 동아시아 변화를 리드하는 당당한 주체로 설 기회로 승화시켜야 한다. 

2. '우리안의 파시즘'을 해체하는 미투운동 

미투운동을 보면서 6월항쟁 직후의 '노동자대투쟁'이 상기되었다. 

87년 6월항쟁으로 군부정권의 항복(6.29선언)을 받아내자마자, 그 당시 산업정책의 최대희생자였던 노동자들의 인권투쟁이 전국에서 불붙었다. 노조설립의 자유와 같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사항을 원칙적으로 지켜달라는 주장이었다. 한마디로 노동자도 인간으로 대우해달라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작년 촛불혁명이 성공하고 민주정부가 출범하자 우리나라에도 여성의 인권을 회복시키자는 미투운동이 본격화하였다. 몇년전부터 헐리우드에서 권력을 배경으로 여배우들의 성을 착취해온 거물들을 폭로하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촛불혁명하에서의 미투운동은 좀더 독특한 의미를 띄고 있다.  

한국의 미투운동을 필자는 '우리안의 파시즘' 또는 '일상속의 파시즘'을 해체하는 운동이라고 보고 있다.  

처음 미투운동이 상륙했을 때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은 자신들을 괴멸시키려는 진보진영의 공작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이 열리자 인권·정의·공정 등을 앞장서 부르짖던 민주인사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왜 그럴까? 

87년 6월항쟁은 정치적으로 패배로 끝났다. 정치적 민주화에서 사회적 민주화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권을 잡기위한 권력투쟁이 다시 전면에 배치되면서 민주화운동권 내부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상층은 ‘요정정치’로 대변되는 구시대 정치 문화가 온존했고, 기층운동권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으로 상징되는 전체주의적 문화의 지배를 받았다. 민주화운동 내에서도 전체주의적이거나 파시즘적 요소가 만연했었던 것이다.

보수진영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 파시즘에서 유래한 요정정치, 권력과 자본의 유착에서 번창한 뇌물과 접대문화를 통해 파시즘적 요소가 훨씬 더 강하고, 그 핵심에는 여성인권이 놓여있다. 

이제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인권운동은 정치권과 진보·보수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소독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성공한 촛불혁명의 후방효과가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남녀 사이의 개인적 원한을 푸는 수단이 아니라 여성인권을 권력으로 짓밟는 파시즘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3. 한국경제를 부흥시킬 북방경제협력의 문이 열리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은 북한 핵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본격 논의되는 장이 될 것이다. 우려와 비관을 표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번에는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필자는 판단한다. 왜냐고? 

이번 협상판이 깔리게 된 4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 직전까지 밀어부쳤다. 

둘째, 미국이 유엔을 앞세운 제재와 압박전략으로 북한의 숨통을 조였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 준비를 실제로 완료하였다.

넷째, 촛불혁명으로 평화를 본령으로 삼는 문재인정부가 탄생하였다.

위의 4가지 요소가 상호결합하여 쌍 정상회담이라는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설명하면, 협상구도까지 만든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고, 이 시기에 김위원장이 협상장에 뛰어들게 만든 것은 트럼프대통령의 군사옵션의지이고, 이번 협상의 미래가 밝은 것은 문재인 정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포인트가 있다. 바둑에 치중(置中)이라는 용어가 있다. 전체 국면을 내다보는 포석을 깔면서 나중에 결정적인 의미를 띌 급소에 미리 돌을 놓는 것을 말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에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북방경제협력위원회(위원장 송영길의원)를 신설하였다. 중국, 몽고, 시베리아,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으로 새로운 경제활로를 찾기위한 장기적 포석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남북대립으로 인해 남북경협이라는 핵심요소가 빠져있었다.  

그런데 이제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북방경제협력이라는 거대한 그림에 용의 눈(畵龍點睛)을 그려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지점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평화체제 구축은 그 자체로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더욱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경제적 활로를 타개하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는 미래가 안보인다는 분석이 많았다. 중국에 맹추격당하고, 일본에 만성적인 적자를 보고 있고,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도 압박을 받고 있다. 철강·석유화학·조선 등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고있고, 새로운 동력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인구절벽과 같은 근본적 경쟁력에서 절망적인 지표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포함하는 북방경제협력이 활성화된다면, 70년대 중동붐을 능가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국민과의 소통, 적폐청산, 외교안보 면에서는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러나 혁신성장과 새로운 미래 먹거리 발굴과 같은 경제 전망에서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은 북방경제협력이라는 급소에 한 수 미리 포석을 둠으로써 만약 한반도의 비핵화가 진행된다면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열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희망이 있다는 것과 희망이 없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일본과 달리 우리에게는 북방경제협력이라는 비장의 한 수가 있다.  

4. 촛불혁명을 불가역적으로 만들어야 

대변혁이 한발 한발 전진할 수록 이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사에서 수많은 혁명이 보수반동의 퇴행을 겪었다. 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 4.19 혁명은 5.16쿠데타로 뒤집어졌고, 10월 유신, 광주학살로 군부재집권을 당했고, 6월항쟁 시에도 역전패 당한 적이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냉전수구세력은 일체의 변화에 딴지를 걸고 있다. 미투운동의 쓰나미는 조금 있으면 기득권세력으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 그들의 저항은 더욱 가열차게 진행될 것이다. 

내부의 사회변혁과 외부의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변혁의 시대를 이끌 수 있는 근본 동력은 촛불혁명을 성공시킨 민주국민과 이 정신을 떠받는 문재인 정부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민주정부가 비틀거리거나 지지도가 떨어지면 이 모든 변화가 없었던 일로 되돌아 갈 수 있다. 

겸손한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고, 평화와 존중이라는 일관된 원칙으로 북한과 강대국을 대하고, 엄격한 반부패와 미래비전을 꾸준히 밀고나간다면 이번에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민주혁명이 될 것이다.  


여자는 왜 늘 반성할까

지금까지 여성은 ‘자기 처벌’ 정서에 익숙했다. 비하적인 혐오 표현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지는 목소리가 ‘정상’이고 ‘일상’이 되는 현실에 모두가 길들여져야 한다.

은유 (작가)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3월 09일 금요일 제546호

북토크 자리에서 한 20대 여성이 질문했다. 친구들과 수다 떨다 보면 남자들 외모 평가를 하게 되는데 페미니즘을 공부한다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지 양심에 찔린다는 거다. 나는 우선 드는 생각을 얘기했다. “이렇게 자기 행동을 객관화하는 분이라면 타인을 대상화할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데요.” 이성애자가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표현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다만 허벅지, 가슴, 허리, 다리, 입술 등 ‘신체 부위별’로 쪼개서 사람을 보다 보면 ‘통합적 인격’으로 보지 못하고 사물화하게 된다. 단톡방에서, 술자리에서, 컴퓨터 앞에서 외모 평가를 일삼다가 실제로 만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성)폭력을 휘두르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것이 문제다. 쟁점은 외모 평가 자체라기보다 ‘누가 외모 평가를 하느냐’ ‘그 외모 평가가 무엇을 파생시키느냐’다. 미국에서 총기 사용이 전 국민에게 허용되지만 가해자의 90%는 남성이라는 통계를 일례로 들려주었다. 페미니즘이 외모 평가를 금지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어떤 말과 행동이 놓인 상황과 맥락을 다층적 관점으로 헤아리는 공부라고 할 때, 외모 평가라는 행위 자체만 떼어놓고 죄의식을 갖는 건 올바른 접근이 아닐 것이다.

ⓒ시사IN 신선영

사실, 그날 내가 느낀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 여자도 외모 평가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조차 왜 여자는 반성을 할까 하는 점이다. 여성은 ‘자기 처벌’ 정서에 익숙하다. 아버지들의 경제적·정서적 무능, 가정 폭력에 대해서도 어머니들은 뒤돌아 가슴을 치며 ‘내 팔자다, 잘해주면 돌아온다, 남편 복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도 ‘밤늦게 술자리에 있어서’ ‘여지를 주어서’라며 자기 행실을 먼저 되돌아본다. 외모 평가를 당할 땐 참아도 외모 평가를 행할 땐 가책을 느낀다. 나도 젠더 이슈로 불화를 겪으면 내 언행부터 점검한다. 말이 공손하지 못했나, 너무 민감했나 수없이 자책한다.

여성의 신체는 거의 자동 반성 모드다. 왜들 그럴까. 남성 지배적 문화에서 여성은 불합리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그때마다 시비를 가리고 싸우고 상황을 바꿔내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남자는 원래 그런 종족이고 여자는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배웠다. 원래 그런 것을 두고 왜 그런지 뿌리부터 따지자니 어렵고 복잡한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건 쉽고 간단하다. 자기반성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또 일상을 살아가고, 그랬던 게 아닐까 싶다.

왜 여성은 ‘자동 반성 모드’여야 하는가

홍성수 지음, 어크로스 펴냄
이 같은 여성의 습관적 반성과 침묵으로 다져진 성차별의 역사에 균열이 일고 있다. 여자도 말을 한다. 남자의 외모와 언행을 평가하고 되갚는다. ‘김치녀’라는 공격에 ‘한남충’으로 맞불을 놓는 일명 ‘미러링’이라는 흐름도 생겼다. 이는 후련함과 통쾌함도 주지만 앞서 질문한 여성이 느끼는 것처럼 혼란과 불편도 남긴다. 나도 처음에는 여성들이 구사하는 거침없고 도발적인 말들이 낯설고 어색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미러링은 혐오가 목적이라기보다 뒤집어 보여주기 (213쪽)” 위한 수단이다. “여성들의 저항이 중요한 것이지, 미러링이라는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반성과 검열의 삶과 작별하고, 욕이 섞여 있든 비논리적이든 울먹이든 막무가내든 말하는 주체의 탄생에 박수칠 때다. “비하적인 혐오 표현에 대해 웃어넘기거나 침묵하지 않고 조목조목 문제점을 따지(222쪽)”는 목소리가 ‘정상’이고 ‘일상’이 되는 현실에 모두가 길들여져야 한다. 섣부른 반성과 침묵으로 복잡한 삶의 문제에서 도망가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복지천국 스웨덴, 성평등부터 시작했다"

[인터뷰]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 저자
2018.03.10 12:52  
    

많은 젊은이들이 '헬조선'이라고 자조하는 한국에서 '복지 천국'이라 불리는 스웨덴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먼 나라다.

68세 할머니가 정치에 도전하고 고용률이 80% 가까이 이르며 '라떼 파파'(유모차 끄는 남성)를 흔하게 볼 수 있고 원한다면 누구나 총리의 이메일을 읽을 수 있는 나라, 스웨덴.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를 그저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스웨덴이 현재의 사회를 이루기까지 사회·경제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촛불집회'로 각성된 한국 사회에 중요한 작업이다. 스웨덴도 100여 년 전에는 가난한 농업국이었다. 


주한스웨덴 대사를 지낸 라르스 다니엘손 유럽연합 스웨덴대표부 대사와 주한스웨덴대사관에서 29년을 근무해 한국에서 누구보다 스웨덴을 잘 아는 박현정 공공외교실장이 함께 쓴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한빛비즈 펴냄)는 15명의 스웨덴인 인터뷰를 중심으로 스웨덴 사회를 보여주는 책이다. 인터뷰를 통해 스웨덴의 정치와 복지제도가 실제 사람들의 삶과 생각 속에 어떻게 녹아 들어가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한국인 입장에서 '아직 멀었구나' 하는 아득한 느낌과 동시에 '이런 것은 해볼 만하겠다'는 의외의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  


한국이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계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다니엘손 대사는 '성평등'을 뽑았다.  

"스웨덴 시스템의 핵심은 '평등' 정신이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과 정치적/사회적으로 동등한 기회와 보상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스웨덴 사회의 변화도 거기에서부터 시작했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을 통해 남성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현 시점에, 그의 말은 되새겨봄 직하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억눌러온 여성들을 포함한 소수자들의 목소리, 그들의 힘과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가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라르스 다니엘손 대사와 박현정 공공외교실장을 지난 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한빛비즈 펴냄) 공동 저자인 라르스 다니엘손 EU 스웨덴대표부 대사와 박현정 스웨덴대사관 공공외교실장. ⓒ프레시안(최형락)



스웨덴과 한국, 다르지 않다  

프레시안 : 책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에는 10살 꼬마부터 정치에 도전하는 할머니, 동성결혼 1호 커플, 두 아이를 키우는 부부, 사회민주당 국회의원 등 스웨덴 사람 15명의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박현정 : 스웨덴 대사관에서 홍보기획 업무를 맡아 29년을 근무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써보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 글 쓰고 말하는 재주는 없어 '내가 무슨 책을'이라고 했다가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쓰려고 하니,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래서 직업의식을 발휘해 '어떻게 기획할까?'를 고민했고, 주한대사로 강연이나 행사에 적극적이었던 라르손 다니엘손 유럽연합 스웨덴대표부 대사와 함께하면 좋을 것 같아 의견을 교환한 뒤 공저하게 됐다.  

다니엘손 대사는 주한대사로 한국에 오기 전 스웨덴 총리실 국무수석으로 국가의 기획조정을 총괄했다. 국무수석은 스웨덴 최고위정무직 공무원으로 모든 정부 부처의 업무에 대해 종합적으로 책임을 지는 자리다. 따라서 스웨덴의 여러 정책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스웨덴은 군주국가이기 때문에 총리실은 한국의 청와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편집자)  

<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는 그래서 스웨덴을 좀 아는 한국 사람의 관점과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스웨덴 사람의 관점이 더해진 책이다.

프레시안 : 한국 사람들에게 스웨덴은 이상적인 나라이기도 하지만 먼 나라이기도 하다.

다니엘손 : 그렇다. 하지만 2011~2015년까지 4년 동안 주한대사로 생활하면서 스웨덴과 한국은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은 2~30년 전 '어떻게 하면 남녀노소 모두가 결속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금 한국도 과거 스웨덴이 직면한 문제들-성평등, 일자리, 육아 및 교육, 복지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 않나. 스웨덴과 한국, 한국과 스웨덴의 고민이 절대 다르지 않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다 

▲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라르손 다니엘손·박현정 지음, 한빛비즈 펴냄). ⓒ한빛비즈

프레시안 : 박현정 스웨덴대사관 공공외교실장이 보기에,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점이 있다면?

박현정 : 한국과 스웨덴의 가장 큰 차이는 '합의 문화'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렇게 여러 번 회의를 하면서까지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웃음)

그럼에도 스웨덴 시스템은 이 '합의 문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마찬가지다. 일부의 의견만 반영된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의 합의를 통해 만든 시스템이기 때문에 잘 유지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스웨덴을 모든 것을 다 이룬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사람들이 하나같이 착하고 능력이 있어서 좋은 사회가 된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합의한 제도를 바탕으로 국가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잘 갖춰진 시스템에서 나쁜 짓을 하기란 어렵지 않나.  

스웨덴은 부과해야 하는 세금의 98.5%를 걷고 있지만, 한국은 70% 수준이다. 스웨덴의 경우 범죄 집단과 같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세금을 내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구성원의 30%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 30%의 사람들은 70%의 사람에게 영향을 끼쳐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대부분 한국도 스웨덴처럼 좋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랄 것이다. 우리가 복지국가 스웨덴을 보며 생각할 점은 '어떤 과정을 거쳐 좋은 사회가 됐는가' 하는 것이다. 스웨덴의 노하우(방법)를 알면 문제 해결이 더 쉽지 않겠는가.  

다니엘손 : 스웨덴이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갖추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첫째,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즉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남녀 구분 없이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 차이가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사회라고 여긴다. 스웨덴에도 부자가 있지만 스웨덴 사람 75%는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구를 기본으로 남녀 두 사람이 일해 얻은 소득을 합하면,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는 개인주의다. 이런 것이 조화를 이뤄 스웨덴이 좋은 사회가 됐다고 본다.

무엇보다 스웨덴은 '성공한 삶'에 대한 정의가 훨씬 광범위하다. 물론 한국처럼 의사나 변호사, 또는 언론인이 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스웨덴은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으며 그것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소개된 17살 고등학생 세바스티앙 엥룬드는 난독증이 있지만, 그림 그리기와 도자기 빚기를 좋아해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난독증이라는 장애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과목을 잘하지 못하"지만 비난받기보다는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한다. 스웨덴은 이처럼 '성공한 삶'에 대한 기준이 다양하다. 또한 사회 전체가 다양성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프레시안 : 스웨덴의 칼 필립 왕자도 어린 시절 난독증을 겪었다. 한국이라면, 왕족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왕자 스스로 장애를 공개하는 일도, 또 대중이 이를 인정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니엘손 : 스웨덴 사회는 필립 왕자의 난독증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필립 왕자가 난독증을 가진 이들을 대변하는 '스피커(speaker)'로 역할을 한다고 본다.

프레시안 : 동성애에 대한 인식도 한국과 다르다. 스웨덴 문화부 소속으로 브뤼셀에서 유럽연합대표부 문화참사관으로 근무 중인 미카엘 슐츠는 동성결혼 1호 커플이다. 그는 스웨덴에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는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차이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며 "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세계의 어느 나라도 스웨덴만큼 편안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현정 : 한국은 자신의 어려움(장애나 성정체성)이 드러났을 때 받는 차별이 두려워 숨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스웨덴은 어떤 종류의 차별도 용납하지 않는 '평등 정신'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 있다.  

스웨덴에는 '평등 옴부즈맨(DO, Diskriminerings ombudsmannen)이라는 특별 행정감찰관 제도가 있다. 평등 옴부즈맨은 여성/남성, 장애인, 아동, 난민 등 모든 종류의 차별 행위를 감시한다.  

대립하지 않고 존중한다  

프레시안 : 스웨덴 사람들은 합의 문화를 중시하면서도 개인주의적 경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복지국가는 집단주의(collectivism)에 대한 구성원의 인식이 철저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 아닌가. 집단주의와 개인주의(individualism),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니엘손 : 중요한 지적이다. 1960~80년대 스웨덴이 오늘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휘된 집단주의는 모두가 공평하고 평등하게 분배받을 것이라고 믿음이었다. 과거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졌다고 하지만, 사회적 합의로 이룬 시스템 아래에서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스웨덴 유권자의 85%는 복지제도가 현재 상태로 유지되길 바란다. 유권자의 15% 정도가 좀 더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고 싶을 때 개인주의를 발휘하는 것이지,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스웨덴 보수당이 2006~2014년까지 8년 동안 집권했지만, 성평등과 보편복지와 같은 기본적인 가치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승리를 위해 '지금은 변화할 시기'라며 새로운 걸 제시하지만, 스웨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스웨덴 정치인은 보수/진보할 것 없이 '현 시스템을 누가 더 잘 운영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논쟁한다. 

▲ 라르스 다니엘손 EU 스웨덴대표부 대사는 2011년 9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주한 스웨덴 대사를 역임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바로 그 점이 한국과 스웨덴의 다른 점인 것 같다.

다니엘손 : 스웨덴도 지난 25년간 정권 교체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현 여당도 다음 선거 이후 야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야당의 이야기를 들으며 합리적인 태도를 보인다. 정당과 정당이 대립하기보다는 존중하는 모습이다.

유권자들도 정당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됨됨이를 보고 뽑는다. 스테판 뢰벤 총리가 사회민주당이라서 총리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인성과 태도 덕에 총리가 된 것이다.  

뢰벤 총리는 고아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입양 가정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용접 기능공으로 노동조합 가입 2년 만에 간부가 됐다. 그렇게 2005년 새로 조직된 금속노조(IF메탈) 초대 위원장을 거쳐 2006년 사민당 최고위원이 됐다. 그리고 2012년 사민당 당수로, 2014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과반은 실패했지만.(2014년 9월 14일 선거로 선출된 현 국회는 총 8개 정당이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전체 349석 중 사민당 등 중도좌파 진영은 과반에서 17석 모자란 158석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스웨덴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복지국가'라는 큰 틀의 합의를 중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합의 자체가 없다.  

박현정 :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에 비하면 스웨덴 정치는 안정적이다. 역시 '합의 문화' 결과다. 우리도 만들어가야 한다.  

협동적이고 독립적이다  

프레시안 : 한국의 스웨덴의 큰 차이 중 하나가 교육이다. 한국의 교육이 경쟁적이라면, 스웨덴과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교육은 협동적이다.  

박현정 : 한국은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학업성취도 평가인 피사(PISA) 순위가 높은 반면, 스웨덴은 낮은 수준이다. 그래서 스웨덴 내부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OECD 회원국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를 살펴보면, 반대다. 스웨덴 청소년들은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한국 청소년들은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스웨덴 교육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원하는 것을 시도할 수 있게 돕는다. 설령 실패해도 이를 배움의 기회로 여기며,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 1억 명 이상이 즐기고 있는 게임 '마인크래프트'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마르쿠손 페르손이 개발했으며, 세계적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는 스톡홀름의 한 캠퍼스에서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예부터 자식이 곧 나의 연금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잘 키운 자식 한 명이 늙은 부모를 봉양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교육을 통한 자식의 성공을 바란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세대보다 잘 사는 자식세대가 별로 없다고 하지 않나. 스웨덴처럼 '그냥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라고 말하는 부모가 늘어난다면 어떨까? 내 아이가 남들 보기에 성공한 사람이기보다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면 어떨까?  

▲ 박현정 스웨덴대사 공공외교실장은 1989년부터 스웨덴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2013년에는 스웨덴 국왕이 자국과의 친선 및 협력에 기여한 인사에게 주는 '북극성훈장'을 수상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다니엘손 : 한국 학생들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자산이다. 그렇지만 부모의 압박과 친구 간 경쟁 등 부작용도 크다. 특히 부모의 투자로 학업을 마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공해 보답해야 한다' '반드시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하다.

두 아이 모두 대학을 다녔는데, 부모인 나는 단 1센트도 쓰지 않았다. 스웨덴 대학 대부분이 국립대학일 뿐 아니라 정부 지원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도 스스로 주체가 돼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전혀 바라지 않는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더라도 남자와 여자 각각이 경제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부모와 자식 간 또 세대 간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해야 한다. 그렇게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관계가 훨씬 바람직하다. 이 점이 스웨덴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박현정
: 다니엘손 대사 소득이 나보다 높은데, 대학에 간 아이들에게 1센트도 안 썼다니. 등록금에 용돈에, 결혼까지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야 하는 한국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운 일이다.(웃음)  

다니엘손 : 고소득자든 아니든 스웨덴 사람이라면 교육, 의료, 연금 등 복지 혜택을 동등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소득자로 분류되지만, 그렇다고 평균 소득자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의 세금에 의존하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내가 세금을 낸 만큼 공평하게 복지를 누리고 있다. 이런 사고 역시 스웨덴과 한국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 취업난과 실업난,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에 국가 차원의 수준 높은 복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도 스웨덴처럼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을까?  

다니엘손 : 기본적으로 정부와 시스템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스웨덴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부패가 적은 편이다. 반면 반부패에 대한 국민의식은 높다. 부패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부패를 저지를 경우 실상이 낱낱이 밝혀질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스웨덴에도 '삼성'과 같은 재벌인 '발렌베리'가 있지만, 경영 방침이나 노조를 대하는 태도 면에서 한국과 다르다. 그래서 노조 활동 역시 대립적이지 않다. 특히 스웨덴 노조는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민주주의다. 흔히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사회주의를 기반으로 한 코뮤니즘이라고 생각하는데 스웨덴 노조는 그렇지 않다. 나 역시 공무원노조에 가입한 노조원인데,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포함해 스웨덴 노동조합 가입률은 75%다.

스웨덴은 은퇴한 노동자나 나이든 노인을 위한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는데, 올해 99살인 장모는 평생 주부로 살았지만 복지 혜택을 풀타임으로 받고 있다. 청소와 요리를 해주고 건강까지 살펴주는 이들이 하루에 다섯 번씩 방문한다. 개인이 부담하는 돈은 월 1200크로나(15만 원)에 불과하다.  

박현정 : 하루에 다섯 번? 가족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 스웨덴 구스타브스베리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 ⓒ박종규


프레시안 : 스웨덴도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등장하는 등 정치적 보수화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유학생들이 스웨덴 내 인종 차별이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유럽 사회 난민 유입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다니엘손 : 스웨덴이 최근 마주한 가장 큰 문제다. 스웨덴뿐 아니라 유럽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극우정당이 확장세다. 스웨덴민주당의 경우, 2010년 10석으로 의회에 입성한 이래 2014년에는 제3당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앞서 일부 시민들의 개인주의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했는데, 이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스웨덴민주당이다.  

2015년 스웨덴으로 유입된 난민은 16만3000명이다. 이들이 스웨덴 시스템에 적응하며 직장을 구해 정당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구성원이 되기까지 적어도 3~4년이 걸린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최종 정착 이전에 난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하위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실업과 교육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로 인해 난민들이 스웨덴 사회에서 배제되는 분위기다. 정치적으로라도 이들의 정착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 남녀평등이 핵심이다 

프레시안 : <스웨덴은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사는가>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과 같은 시스템을 이루었는지, 그 과정에 대해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이 복지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박현정 : 어려운 문제다. 스웨덴은 100년 전만 해도 인구의 3분의 1이 미국으로 이민 갈 정도로 가난했다. 전쟁 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스웨덴과 비교하면, 한국은 정말 빨리 발전했다. 그리고 이제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방향 설정은 잘 된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라며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자세도 필요하다. 제도를 만들고 정착시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스웨덴 육아휴직 제도 '아빠의 달'은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되는데, 12년이 걸렸다. 한국 '아빠의 달'은 이제 시작 아닌가.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다니엘손 : 스웨덴 시스템의 핵심은 '평등' 정신이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과 정치적·사회적으로 동등한 기회와 보상을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스웨덴 사회의 변화도 거기에서부터 시작했고,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복지국가로 가는 지름길은 '평등'이라고 말해주고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