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개최됐다. '축제'라는 수식어가 멋쩍을 만큼,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온갖 논란이 벌어졌다. 정부의 꾸준한 '구애'로 결국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고 예술점검단을 파견하자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평양올림픽"이라며 비아냥댔다. 때마침 다가온 문재인 대통령의 생일(1월 24일)에는 야권 지지자들과 여권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평양올림픽', '평화올림픽' 검색어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창 논란이 정치권 밖으로까지 번진 것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때문이었다. 출전 선수 가운데 북한 선수 세 명을 포함하는 조건으로 단일팀이 꾸려지자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됐고,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비난 여론이 조성되면서 2030세대의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다. (☞관련기사 : 고개숙인 靑 "2030의 '공정' 문제제기, 반성한다")
여권은 당황했다. 단일팀 극적 성사에 대한 칭찬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날아온 것은 뭇매였다. 단일팀에 열광하지 않고 되레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2030세대를 그들은 신인류 보듯 낯설어했다. 각종 여론조사가 진행됐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일팀 반대(58.7%)를 넘어서 '통일을 하지 않거나 미루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게 더 좋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도 88.2%에 달했다. (☞관련기사 : 2030 세대가 통일을 싫어한다고 누가 그러나?, 86세대 오만을 향한 2030의 경고)
단일팀 논란에서 드러난 '공정성', '통일'에 대한 견해 차이를 과연 세대의 차이로 봐야할까. 평창 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이었던 지난 10일, 동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와 4050세대 다섯 사람을 불러 긴 대화를 나눴다.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이틀에 걸쳐 싣는다.
직장인 : 50대 중반 남성. 87항쟁 당시 대학생이었던 386세대. 현재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종이컵 : 40대 중반 남성.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양꼬치 : 30대 초중반 여성.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오향족발 : 올해 딱 30 남성. 취업준비 중.
떡볶이 : 20대 초반 여성. 3월이면 대학교 2학년생이 된다.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10일 오후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B조 조별리그 1차전 남북단일팀과 스위스의 경기가 끝난 뒤 영부인 김정숙 여사(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선수들을 격려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일팀 논란, 열심히 일했는데 상사가 '엎으라'는 꼴"
프레시안 : 우선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에서부터 차차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자. 단일팀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양꼬치 : 사실 그런 이슈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최근에서야 이런 논란이 있다는 기사를 봤는데, 처음 든 생각은 '북한 어쩌고', '공정성 어쩌고'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내가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라면 그냥 단일팀을 한다고 한 데서부터 일단 화가 날 것 같았다.
분명히 선수들은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한 뭔가가 있을 텐데, 본인들과 아무 상관 없는 세력, 그것도 스포츠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너네 단일팀 해라'라고 하면 화가 날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다녀보면 제일 화나는 순간이 열심히 했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상사나 누군가 와서 "그거 아니야, 엎어" 할 때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도 똑같은 상황 아닌가.
다들 공정성을 문제 삼는데, 이번 논란의 핵심이 과연 공정성인가 싶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애초에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자력으로는 올림픽 출전권 자체가 없을 수도 있었는데, 연맹에서 여러 협상 과정을 통해 개최국 어드밴티지를 받아 출전하게 된 것 아닌가. 앞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선수들에게 이번에는 조금 양해해 달라는 식으로 잘 설명한 뒤 엔트리를 꾸렸다면 어땠을까. 결론적으로 정치권에서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게 화가 났다.
프레시안 : 소통의 문제, 이를테면 직장 상사의 '갑질'과 비슷하다는 의견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떡볶이 : 이번에 논란이 됐던 것은 남북 단일팀 자체가 아니다. 단일팀이 꾸려지는 과정이 문제였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완전히 자력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미 팀이 꾸려져있었다. 그런데 정부 주도로 단일팀이 너무 빠르게 추진됐다. 정부는 선수단에 해당 사실을 일방 통보했다. 그런 뒤 선수나 국민들로부터 반발이 나오자 대응도 제대로 못했다.
오향족발 : 이낙연 총리가 '어차피 메달권 밖'이라는 식으로 말한 게 가장 논란이 됐다.
떡볶이 : 그렇다. 소통도 잘 안 되고, 무엇보다 이 문제에 대해 반발하는 의견에 대해 공감을 못 하는 것 같아서 분노가 느껴졌다. 정부에 비하면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약자인데,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영 아니었다. '사람이 먼저'가 이번 정부가 내걸었던 슬로건인데, 선수들을 너무 배려하지 않고 밀어붙였던 것 같다.
오향족발 : 사실 세상의 많은 문제가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다. 어떤 결정을 하든 어떤 사람은 손해보고 어떤 사람은 이득을 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희생한다는 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무엇을 위해 희생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한국 선수들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단일팀을 해서 얻으려는 가치가 무엇이었나. 정부가 원하는 것은 남북의 화해 협력이나 통일의 그림이었다. 저는 그 지점이 약간 불편했다.
제가 초등학생 때로 기억하는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으로 소떼를 끌고 갔다. 이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남북 정상 회담이 열렸다. 어렸지만 그 뉴스를 보면서 가슴이 벅찼고 한국이 이제 통일이 되려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10대를 보내고 2008년이 되니 갑자기 북한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피살당하고 연평도 사건, 천안함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
한국과 북한이 계속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에서 그런 일회성 이벤트로 대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나. 스포츠 단일팀, 합동 공연과 같은 이벤트 뒤에 돌아온 결과가 갈등과 대립이었다. 올림픽에서는 평화적인 그림을 그리는 게 감동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을 위해서 노력했던 선수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일회성 이벤트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일 오후 서울 국립중앙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가수 서현이 함께 '우리의 소원'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서로 안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88올림픽 '사회 정화 운동' 생각났다"
프레시안 : 어제(9일) 개막식 다들 보셨나. 남북이 공동 입장하는 것을 보면서 뭉클해진다든지 그런 감정은 못 느꼈나.
오향족발 : 어쨌든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리는 올림픽이다. 단일팀이 잘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 한편으론 극적 화해와 같은 한 편의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들긴 했다.
떡볶이 : 확실히 의미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우리나라가 유일한 분단국가인데 올림픽에서 단일팀이나 공동입장 등을 통해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줬다고 생각했다. 단일팀을 꾸리기까지 과정이 불합리하고 공정하지 못했을지라도 어차피 이미 된 거, 응원하고 다 같이 좋은 결과로 마무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시안 : 좀 더 앞선 시대를 경험했던 분들의 생각도 궁금하다.
종이컵 : 저는 기본적으로 올림픽,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에 대해서 거대 권력에 의해 기획된 행사라는 냉소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국가들끼리는 눈치 싸움을 하고 국가 안에서도 이런 스포츠 행사를 정략적으로 활용해온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지켜본 세대로서 당시엔 들뜨고 감격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탁구나 축구 단일팀 같은 숱한 이벤트들을 봐왔다.
지난 정부까지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했고 대립이 심했기 때문에 이번엔 단일팀 같은 이벤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이야기가 1월에 갑자기 나왔다. 가장 처음 든 생각은 '정부가 수완이 좋네'였다. 옳고 틀리고를 떠나서 어떤 정부든 치적을 만들기 위해 올림픽 같은 국제 행사를 앞두고 머리를 굴리게 마련인데, 갑갑한 상황에서 후다닥 잘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었다.
개인 선수들을 보면서 청년들의 커리어 문제라든지 자기실현 문제를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올림픽이라는 기획된 행사에 대해 냉소적인 입장인데도 이렇게 선수 개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그러고 나니 떠오른 생각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실시했던 사회 정화 운동이었다. 당시 거리 정화라는 명분하에 빈민촌을 강제 철거했다. 거리가 깨끗한 게 당연히 보기에는 좋지만 오늘내일 살아가는 노점상인이나 빈민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냈지 않나. 이번 단일팀 논란을 지켜보다 보니 그 기억이 떠올랐다.
직장인 : 저는 서울올림픽 때 대학교 4학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제 딸이 대학교 3학년이다. 딱 30년 차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가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인 것 같다. 이전 정권 때도 그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젊은 세대 다수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이렇게 공정성이 사회적 화두가 돼 있는 상태에서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선수 개개인이 피해를 보게 되니까 젊은 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저는 이번 논란이 이해가 됐다.
누군가 국가를 위해서 희생을 한다면 그것은 자발적이어야지, 강제적으로 하라고 하는 것은 모양이 안 맞는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렇게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것 자체는 우리가 좀 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었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 같다.
프레시안 : 단일팀 문제와 공정성을 연관시켜 생각하면 또 다른 측면에서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원래 올림픽 엔트리는 23명인데 북한 선수들 12명이 추가되면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은 35명으로 엔트리가 사실상 확대됐다. 물론 경기에 출전하는 인원은 22명으로 똑같지만, 역으로 다른 나라가 피해를 본다는 지적도 일부 나왔다.
종이컵 : 올림픽은 원래 정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시적이라도 사람은 누구나 '쇼'를 좋아하지 않나. 신파극 영화를 안 좋아해도 막상 영화관에서 슬픈 장면을 보고, 스피커에서 슬픈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잠깐이라도 뭉클하기 마련이다. 역차별 논란이 어떤 철학 논쟁처럼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 같다.

▲9일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 대표팀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만큼 먼 나라"
프레시안 : 이번이 11번째 공동 입장이고 단일팀이 성사된 것은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과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 대회 이후 세 번째다. 20대 초반인 떡볶이 님은 남북 단일팀을 처음 봤을 텐데, 아마 북한을 우리 일상에서 이렇게 가깝게 보는 것 자체도 처음일 것 같다. 평소 북한을 떠올리면 이미지가 어떤가.
떡볶이 : 한마디로 안하무인.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레시안 : 통일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있나?
떡볶이 : (한참 고민 후) 학교 다닐 때 워낙 통일을 주제로 표어나 그림 그리기 대회를 많이 하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고는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래도 통일은 해야 한다고 추상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통일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적어도 저희 세대에서는 통일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양꼬치 : 저는 통일이 그렇게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만 유지할 수 있으면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통일로 인해 불어닥칠 사회적인 혼란을 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된다. 그런 혼란 속에서 사회가 나를 제대로 돌봐줄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미 각개전투인데, 그런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노력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피곤하다.
프레시안 : 남쪽 사람들에겐 오히려 기회가 되지 않을까. 북쪽의 자원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직종이 많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나. 같은 조건이라면 북한 청년보단 남한 청년이 상대적으로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
양꼬치 : 주변 사람들이랑 '나중에 통일 되면 무슨 주식 사지' 그런 이야기는 한다. 아니면 '전쟁 나면 나중에 통신망 다시 깔아야 하니까 통신사 주식을 사는 게 좋겠다' 그런 이야기도 농담 식으로 하고. 통일이 되면 건설업이 호황일 거란 생각은 들지만, 그런 막연한 기대 때문에 혼란 상황을 감당하느니 지금 상태에서 북한이 얌전히만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물론 북한 청년에 비해 지금 내가 가진 게 더 많으니 땅을 더 살 기회는 비교적 쉽게 얻겠지만, 그만큼 계층 격차 구조가 지금보다 더욱 심해질 거고, 그럼 사회가 불안정해질 것이다.
만일 통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정치적 상황이나 북한 내부의 붕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정도지, '우리가 한민족이니까 통일이 꼭 돼야 해'하는 생각은 없다. 결국 나에게 가장 좋은 상황은 지금 이 체제가 평화롭게,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오향족발 : 저도 비슷한 생각이다. 제 윗세대와 저희 세대의 가장 큰 차이는 '북한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고 분단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라는 가정이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다. 어르신들을 보면 북한을 미워는 하지만 그 미움의 감정이, 미운 가족을 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그런 느낌이 없다.
저한테 북한은 너무 다른 나라다. 그냥 다른 나라도 아니고 매우 먼 나라. 지리적으로만 가깝지, 심리적으로는 거의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있는 국가나 같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를 하다 보면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북한 사람과는 그런 기회가 없다. 북한의 대중문화를 접할 기회도 없고.
북한 사람들과 우리는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에서 하도 띄워주길래 궁금해서 북한 예술단 공연 영상을 봤는데, 제가 평소 듣는 음악이랑 너무 다르고 너무 촌스러웠다. 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런 단일팀 같은 이벤트가 더 일시적으로 느껴지는 거다. 우리가 그들이랑 연락처를 교환하고 페이스북 친구로 지낼 것도 아니고. 정주영 씨가 끌고 갔던 소가 북한에 남아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 모르겠고....(일동 웃음)
이렇게 다른데 차라리 유럽처럼 왕래는 가능한 별개의 나라로서 각자 체제를 유지하고 사는 게 낫지 않나 싶다.

▲김여정 북한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통일 후 北 주민, 우리 일자리 뺏으면..."
종이컵 : 오향족발 님이 갖는 의구심, 과연 통일과 화해에 이벤트가 필요하나. 이것에 대해 제가 말씀드리자면, 그런 이벤트들이 통일에 큰 도움은 안 될 수 있지만 적어도 남북이 파국으로 향하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정도의 효과는 있다고 본다. 대화가 정말로 단절돼서 어떤 정보도 교류되지 않고 싸우는 것밖에 안 남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감성적인 이벤트가 도움은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올바른 이행전략을 통해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 받았던 반공 교육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 헌법에 명시돼있는 영토 조항을 보면 북한 지역은 수복되지 않은 우리 국토다. 아주 형식주의적으로 말하면 북한도 우리 땅인 셈이다.
그런 건 의미가 없다는 게 저보다 젊은 세대들의 말씀인데, 나 같은 경우는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중간쯤에서 멈춰있는 모순적인 상태다. 체제를 더 중시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선지 모르겠지만 한반도 바깥으로부터 남북한 주민이 지킬 이득이 더 커졌으면 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그런데 남한이 북한의 낙후 지역을 개발해서 거기서 이득을 보기 전까지 수십 년이 걸릴 테고 그 과정에서 세금도 많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여러 우려들이 나오는 것 같다. 앞서 지적해주셨다시피 계층 문제도 있을 것이다. 주변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통일이 됐을 때 북한 주민들의 위치가 지금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같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큰 것 같다.
프레시안 : 2500만 명의 3등 국민이 생기는 셈이다.
종이컵 : '통일 되면 공장 사장님들이야 좋겠지만 우리 일자리 뺏는 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퇴행적이고 충격적인 감각이긴 하지만 진짜 그러면 통일이 어렵겠다는 생각은 든다.
프레시안 : '올바른 이행전략'을 언급하셨는데, 어떤 게 통일로 가는 올바른 이행전략이 될 수 있을까. 통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관용적으로 많이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상을 가진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종이컵 : 1990년대에 민간인 대학생, 종교 지도자가 정부 반대를 무릅쓰고 민간 영역에서 교류의 물꼬를 트겠다고 하는 것을 봐왔다. 적어도 학술, 대중문화와 같은 민간 영역에서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게 먼저 아닌가 생각한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을 손보거나 폐지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그런 구체적인 통일 계획과 프로세스를 준비하는 연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이 대박'이라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통일 대박' 모델을 보여준 게 독일이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도 동독 출신 사람들은 여전히 동독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다고 한다.
양꼬치 : 우리만 바뀐 게 아니라 북한도 바뀐 것 같은 느낌이다. 김정일 때만 해도 남한이랑 교류를 하고 있었다면 김정은 체제 와서는 북한도 그쪽(남한)이랑 우리는 아무 상관 없는 것 같다고 느끼는 것 같다. 우리만 멀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러니 과연 우리가 교류하자고 해서 될까. 이미 통일은 현실적으로 멀어진 게 아닐까 싶다.
떡볶이 : 다들 북한이 멀게 느껴진다고 하시는데, 제가 이 중에서 가장 어린데도 저는 북한이랑 연결돼있다고 느낀다.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사시다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내려오신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할아버지가 남한에 안 내려오셨다면 지금 배고픔에 죽어가고 억압받는 북한 주민이 내가 될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가끔 든다. 어제 개회식을 보니 거북선도 나오고, 금동대향로 같은 문화재가 등장하던데, 그건 북한과 우리가 다 공유할 수 있는 역사다. 그걸 생각하니 북한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남과 북이 떨어진 70년이란 세월이 한 사람 인생으로 보면 길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긴 시간이 아니다. 분명히 어떤 세대에선 혼란이 가중되고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도 막상 통일이 됐을 때 혼란을 떠안을 상황을 생각하면 마냥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과거에서부터 흘러온 시간들을 생각하면 통일 과정도 시대의 흐름처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프레시안 : 2010년 이명박 정부 당시 통일세 논란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다. 지금 여론조사를 봐도 통일을 원하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2030세대만 회의적으로 답하지만, 통일을 위해 세금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전 세대를 막론하고 다 부정적으로 답한다. 관념적으로는 통일을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통일 국가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직장인 : 저는 이 중에서 나이는 가장 많지만, 통일에 대한 감성적인 느낌이 없다. 가족 중에 이산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라 통일에 대한 당위보단 실생활이 우선이기 때문에 내 삶에 무슨 영향이 있는지 그런 점에서 보게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양꼬치 : 그러니까 각자 체제를 유지하면서 평화만 지키고 살면 되지 않나. 북한 안에서 민주주의를 하든 혁명이 일어나든 진심으로 관심이 없다. 북한이 신경이 쓰인다면 그건 미사일을 쏠 때다. 자꾸 미사일 쏘니까 '전쟁 나면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이 들 뿐이다.
종이컵 : 북한을 적어도 관리할 필요는 있다. 남북한이 싸우지 않더라도 북한이 다른 국가에 도발을 해서 한반도가 다른 국가들의 전쟁 사이에서 병참기지 노릇을 하는 상황이 와선 안 될 테니까.(계속)
평창 논란이 정치권 밖으로까지 번진 것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때문이었다. 출전 선수 가운데 북한 선수 세 명을 포함하는 조건으로 단일팀이 꾸려지자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됐고,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비난 여론이 조성되면서 2030세대의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다. (☞관련기사 : 고개숙인 靑 "2030의 '공정' 문제제기, 반성한다")
여권은 당황했다. 단일팀 극적 성사에 대한 칭찬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 날아온 것은 뭇매였다. 단일팀에 열광하지 않고 되레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2030세대를 그들은 신인류 보듯 낯설어했다. 각종 여론조사가 진행됐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일팀 반대(58.7%)를 넘어서 '통일을 하지 않거나 미루더라도 평화를 유지하는 게 더 좋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도 88.2%에 달했다. (☞관련기사 : 2030 세대가 통일을 싫어한다고 누가 그러나?, 86세대 오만을 향한 2030의 경고)
단일팀 논란에서 드러난 '공정성', '통일'에 대한 견해 차이를 과연 세대의 차이로 봐야할까. 평창 올림픽 개막식 다음 날이었던 지난 10일, 동시대를 살아가는 2030세대와 4050세대 다섯 사람을 불러 긴 대화를 나눴다.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14일에 이어 싣는다. (☞관련기사 : 2030은 남북문제 '현실' 고민하는 최초의 한국인)
직장인 : 50대 중반 남성. 87항쟁 당시 대학생이었던 386세대. 현재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종이컵 : 40대 중반 남성.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양꼬치 : 30대 초중반 여성. IT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오향족발 : 올해 딱 30 남성. 취업준비 중.
떡볶이 : 20대 초반 여성. 3월이면 대학교 2학년생이 된다. 평창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평창 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연합뉴스
"지금의 2030은 쩨쩨하다? 언젠 안 그랬나?"
프레시안 :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과 관련해 특히 청년세대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청년세대가 공정성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기성세대는 놀랐다고 하지만, 정작 청년세대가 공정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기성세대 아니었느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오향족발 : 애초에 단일팀 이야기가 왜 공정성 논란으로 튀었는지 잘 모르겠다. 공정성이란 어느 시대나 어느 세대에게나 중요한 가치 아닌가. 386들이 지금 사회에서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젊은 세대는 그런 기회가 없고, 이런 식으로 세대로 나누어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어느 시대에나 권력을 잡은 사람과 못 잡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2030세대 내부를 들여다 보면 저도 기득권이다. 얼마 전에 면접을 보러 울산까지 갔다. 케이티엑스(KTX) 할인을 받고도 7만 원이 들었다. 그 때 든 생각이 울산에서 취업 준비해서 서울로 면접 보러 오는 친구들은 힘들겠다는 거였다. 서울 사는 게 기득권이다. 그런데 내가 30대라는 이유로 무조건 약자다, 이렇게 환원할 수 없지 않나.
프레시안 : 논란이 과잉됐다고 보는 건가?
오향족발 : 불필요한 논란인 것 같다. 공정성이란 화두는 물론 중요하고 이야기해볼 수 있는 주제이지만, 그래서 누가 기득권이고 누가 비기득권인지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이것을 억지로 세대론으로 좁혀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양꼬치 : 지금 이야기 나오는 '공정성'이란 말이 약간 '쩨쩨하다'는 뉘앙스 같다. 남이 나보다 조금이라도 이익을 볼 때 배 아파하는 상황을 비꼬는 식으로 '공정성'이란 말을 가져다 쓰는 것 같다. 물론 저도 남이 잘되면 배가 좀 아프긴 하다. (일동 웃음)
프레시안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이 비정규직 교원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것을 두고도 공정성에 집착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정규직 교사 입장에선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붙은 자리인데...'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양꼬치 : '쟤가 잘 돼서 내가 피해 보는 거 아니면 반대할 필요까진 없다'라고 스스로 인지하려고 하면서도 그게 어렵다. 저도 이제 슬슬 기성세대에 편입하는 나이가 되어 가니 당장 주식 사서 돈 불려야지, 내가 잘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구나 그런 욕망이 있지 않나. 이런 상황이 유시민 욕한다고 해결되는 건가 싶다. (<88만원 세대> 저자 박권일 씨가 최근 <한겨레> 칼럼을 통해 유시민 씨를 겨냥, 지금의 청년 세대가 공정성에 집착하게 된 상황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물었다. 편집자주)
프레시안 : 기성세대 입장에서 보기엔 어떤가. 지금의 젊은 세대가 공정성에 집착한다는 느낌이 드나.
종이컵 : 저도 직장에서 젊은 직원들을 만나지만 지금의 20~30대가 치사하거나 쩨쩨하고, 그것이 그들만의 특질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제가 봤을 땐 그건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자본의 분배 문제인 것 같다. 이를테면 통일 문제도 그렇다. 비교적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미 어느 정도 자원을 가지고 있는 상태니까 통일 비용을 이야기할 여건이 되는 것이다.
세대 담론은 기본적으로 정교하지 않은 의식체계라고 본다. 예전에 사회 개혁을 부르짖었던 386 세대가 지금 세상이 썩어들어 가는 상황을 방치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데 대한 비판 정도로만 유효한 것 같다.
프레시안 : 지금의 청년 세대는 과거 기성세대에 비해 취업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게 특정 연령대에 겪은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이 각자의 의식 속에서 다르게 작동할 수 있지 않나.
직장인 : 우리 세대와 청년 세대의 일자리 기회를 단순 비교하면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쉽게 사회에 진입해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어려운 상황이다.
양꼬치 : 제가 취업한 지 8년 됐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취업하기가 어렵진 않았던 것 같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비정규직을 정규화하자고 하는 집회에 나가기도 했다. 저랑 7살 차이 나는 동생이 지금 교사인데, 비정규 교사 정규직 전환 반대 집회에 나가더라. 그래서 동생한테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본인도 떨떠름하긴 하지만 당장 임용 인원도 줄어드는데 어떻게 하냐고, 언니 동생이 먼저지 않느냐고 묻더라. 일단 내가 먹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는 것 같다. 기회가 줄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종이컵 : 젊은 분들도 알다시피 우리나라가 고도 성장을 했지만 건전한 성장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내부 비용을 줄이고 노동에 대해 분배를 적게 하는 식으로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한 한국의 방식이 어둡게 나타난 결과가 지금인 것이다.
프레시안 : 축적 자본의 문제라는 것인가.
종이컵 : 그러니까 결국 부딪히는 것은 나와 시스템이다. 세대와 세대 간의 갈등은 시스템 문제로 인해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다.

▲가상화폐(암호화폐·가상통화) 대장 격인 비트코인이 연저점을 경신하며 하락세를 보인 6일 오후 서울 중구 가상화폐거래소 빗썸 전광판에 표시된 비트코인 가격이 600만원대를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숨만 쉬고 돈 모아도 집 한 채 못 사는데 비트코인이 왜?"
프레시안 : 젊은 세대의 암호화폐 투기 열풍도 세대 담론의 틀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양꼬치 : 저는 최근 2030이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린 가장 큰 이유는 비트코인 규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 정부가 잘해', 혹은 '못해' 이런 게 아니라 '뭔데 감히 내 돈을 빼앗아' 같은 정서를 직접 체감했다. 언론 지면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로 제 친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름대로 이성이 있는 친구들인데도 요새 코인이 폭락하니까 '한강 가자'고 그런다.
프레시안 : 과거 코스닥 열풍 불 때 주변 기자들이 주식 넣었다가 망하니까 정부를 원망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제 눈엔 남 탓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지금 코인 규제에 대한 반발 심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사실 잘 이해가 안 된다.
오향족발 : 지금 암호화폐 투기는 세대를 막론한 전형적인 신분 상승 욕망 때문 같다.
양꼬치 : 저희 세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고 돈 모아도 아파트 한 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 광풍이 불고 주식 투기하기 좋았던 시절이 다 가고 나니 '이제 우리가 살면서 그런 기회가 오겠어' 하는 생각이 있는 거다. 부모들이 '과거에 부동산 투자 왜 안 했을까' 후회하는 것처럼 우리 세대는 '지금 이때 못 버는 게 바보 아니야'라고들 생각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투자인지 투기인지 따지는 것을 떠나서, 지금처럼 희망 없고 기회를 잃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정부 규제가 일종의 기회 박탈로 느껴졌다는 얘긴가.
양꼬치 : 그렇다. 회사에서 보면 이미 부동산 자산으로 돈을 많이 축적한 분들은 암호화폐 투기 안 한다. 위험자본인데 뭐 하러 해, 이런 마인드다. 자본이 애매하게 있는, 이미 회사 다녀서 어느 정도 연봉은 받지만 집에서 부동산을 지원받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기회가 없을, 월급이 전 재산인 계층이 이번 암호화폐 투자에 가장 열광했던 것 같다.
제 회사 동기가 비트코인 투자로 30억 원을 벌어서 퇴사했다. 그런 것을 바로 옆에서 보다 보면 안 하는 게 바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장이 급락하면서 애들이 부들부들하는 것을 지켜보니, 그거에 비하면 단일팀이 무슨 이슈인가 싶다. (일동 웃음)
떡볶이 : 저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런 투자에 관심이 없고 제 주변에서도 못 봤다. 돈을 좀 모으면 모르는데 제가 대학 다닌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알바해서 버는 돈이랑 한 달 40만 원 용돈 가지고 밥 먹고 쓰기도 바쁜데, 넣을 돈이 없다. 그리고 넣는다고 해도 얼마 안 될 테니 불어나 봤자일 것 같다. (웃음)
종이컵 : 비트코인 투자 가치가 떨어진 것은 정부가 규제를 발표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향이 그랬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절하게 관리하고 투자 광풍을 멈추게 하는 것은 맞았다고 저는 생각한다. 사실 그러니까 '내 돈 뺏어갔다'고 하는 개개인의 상처는 비본질적인 것인데, 그런 정도로 세대가 압박감을 느낀다면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닌 것 같다.
과거 부동산 투기 시절 신화를 듣고 자란 세대가 '우리한테 다신 안 올 기회'라고 느낀 정서는 이해할 수 있다. 월급만 받아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데, 그렇게 투자를 안 하면 삶이 쪼그라들고 하위계층이 되는 풍토가 사회문제인 것 같다. 모든 것을 사회 탓하면 안 되지만 그런 정서는 일리 있다고 본다.

ⓒ연합뉴스
"학교 나와 직장 얻어서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프레시안 :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기회'가 오늘의 주제인 것 같다.
직장인 : 기회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 정부에서는 청년 세대 일자리 늘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는데 근본적으로 그게 해결이 돼야 다른 이슈들도 해결될 것 같다.
종이컵 : 실업률 통계는 악화되는 상태다. 잠깐 바닥을 찍는 것도 아니고 계속 안 좋아진다.
프레시안 : 4차 산업혁명 변수까지 생각하면 그런 추세는 대세로 굳어질 듯하다.
오향족발 : 취업준비생인 제 입장에서는 사실 취업만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또 주변에서 취업하는 친구들을 보면 밤 11시까지 일해서 퇴사하고 싶다고 하니, 되게 모순적인 기분이 든다. '취준생'이라는 신분이 정말 애매하다. 재수생은 재수학원이라도 다니는데, 취업 준비생은 어디 소속돼 있는 것도 없이, 그저 정처 없이 떠도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11시까지 일해도 좋으니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취업이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여건이 더 좋은 곳을 가려면 더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지니까, 그렇게 악순환이 이어지는 점이 힘들다.
종이컵 : 일터에서 사람을 많이 뽑아야 하는데 조금 뽑아놓고 일을 엄청 시키는 구조가 만연해있다.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지'라고 하는데, 막 입사해서 일을 잘 할 리가 있나. 선임들이 잘 키워내는 시스템도 없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없고. 그런 문제들도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 같다.
직장인 : 친구 중에 IT 기업 다니는 사람도 있고, 공장 관리하는 사람도 있고 기자도 있고 하지만, 노동의 질 문제를 보면 특정 업종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공기업 중에서도 아주 괜찮은 곳이 아니라면 장시간 노동 문제는 어디든 심각한 것 같다. '칼퇴'는 군대에서밖에 못 봤다. (일동 웃음)
떡볶이 : 이제 대학교 2학년인 제 입장에선 아직은 취업 이야기가 멀게 느껴지지만, 불과 1~2년 안에 닥칠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암담하다.
프레시안 :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됐으면 좋겠나.
종이컵 :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전망을 갖게 해줬으면 좋겠다. 일하는 사람이 그냥 월급 받고 살아도 괜찮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직장인 : 앞서 말했듯이 일자리도 많아져야 하고 사업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그런데 사업 기회를 가로막는 주요인이 임금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 문제인 것 같다. 중소기업을 보면 회사 지출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임대료 비중이 훨씬 커서 부동산 문제 때문에 사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을 잡지 않고선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스트리아에 사는 한국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거기서는 사람들이 집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대계약이 보통 장기계약이고, 임대료 올리는 것도 정부가 개입하고 세입자가 원하면 재계약을 하도록 돼있다. 그래서 집값이 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상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건물이 비싸지 않으면 뭔가 사업하려고 할 때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데, 이 문제가 해결되면 일자리도 많이 늘어날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기회가 많이 열리기를 바란다.
양꼬치 : 저는 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흙수저이긴 하긴 하지만 대학에 잘 갔고 지금 '워라밸'도 좋고 취미 생활도 잘 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나만 운이 좋다는 느낌이 든다. 친구들은 너무 일이 힘들다고 저랑 잘 안 놀아준다. (웃음) 제 삶이 특별히 운이 좋지 않은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제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지금 너무 좋으니까 이만하면 됐다, 그만 살아도 된다'는 말이다. 올해 5월에 해외여행 가는데 '여행 가서 생을 마감하고 올까' 이렇게 농담 식으로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이 삶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란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저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만, 이 생활도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유지가 안 된다. 문제는 이 회사를 얼마나 더 다닐지 모른다는 것이다. 저희 회사 직원 연령대를 보면 30대가 주력이고 40대는 임원급이라서 앞으로 이 회사에 있을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0년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10년 후엔 뭐 하고 살아야 하나 싶다.
10년 후가 안 보이는 것도 갑갑하지만 그런대로 저는 운이 좋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다른 친구들은 대체 어떻게 사나 그런 생각이 든다. 불안감 완전히 없는 사회는 없겠지만, 불안감이 그래도 좀 덜한 사회가 좋은 사회 아닐까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 행복하니까 그만 살고 싶단 이야기가 나오는 사회는 아니지 않나.
떡볶이 : 사회가 갑작스럽게 바뀌지는 못하지만 서서히 변했으면 좋겠다. 요새 <살아있는 민주주의>(프란시스 무어 라페 지음, 우석영 옮김) 책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요점은 민주주의가 점점 변화하고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그 책을 보고서 내가 무기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지배 계급에 있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것뿐이란 무기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를 배우고 실현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천천히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화여대 학생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집회를 열었고, 이대 사태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의 도화선이 됐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을 보면서 일종의 희망을 느꼈나.
떡볶이 : 그렇다. 처음 촛불집회 시작했을 때는 제가 재수 공부를 하던 중이어서 시험 끝나고 나서 집회에 참가했는데 뿌듯했다.
오향족발 : 저도 촛불집회에 나갔었다. 그런데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은 당연히 해결돼야 하는 것이고, 그런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더불어서 제 삶의 문제도 꾸준히 향상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레시안 : 촛불집회에서 박근혜 퇴진 외에도 시민 삶과 연관된 여러 구호들이 나오지 않았나.
오향족발 : 그 당시엔 일단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박근혜가 퇴진하거나 탄핵된다 하더라도 제 삶이 한 번에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은 들지 않았다. 제가 취업준비생이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이었는데 최근엔 그렇지 않다. 사회 이슈에 굉장히 덜 예민해졌고 어떤 사회의 추상적인 문제나 거창한 목표에 관심을 두기보다 모두가 특별히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저희 어머니가 요즘 인생이 너무 후회된다는 이야기를 하신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자영업을 하신다. 그 세대분들이 대체적으로 그러셨겠지만 맞벌이하면서 일만 하셨다. 제가 취업을 못하니, 안타까워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일만 하면서 살았다고 후회하신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열심히 일해서 나라 경제가 성장한 덕분에 지금 우리가 여유 부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만 하다가 나이 드는 게 아깝다고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냥 학교 졸업해서 취직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일도 열심히 하지만 가끔씩 쉬고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 이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