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와의 질 수 없는 싸움
아동 학대는 해외에서도 큰 숙제다. 법을 강화하고 지원을 늘려도 증가 추세다.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한 캐나다·프랑스·영국·스웨덴· 독일 정부의 다양한 노력을 살폈다.
■캐나다
위험에 처한 아이 모른 척해도 범죄
토론토·성우제 편집위원
그런데 토론토에 자리 잡고 살다 보니 그런 간섭은 퍽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내 자식, 남의 자식 할 것 없이 어린아이에 관한 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스스로 보호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 모른 척할 수도 없거니와, 만약 그랬다가는 그것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10월 미국령 괌에서 승용차 안에 어린 자녀 둘을 두고 쇼핑하다가 체포된 한국인 판사 변호사 부부가 있었다. 부모도 문제지만 그것을 보고 신고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 어린이 보호에 대해서는 캐나다나 미국이나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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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port Canada 캐나다에서는 스쿨버스가 멈춤 표지판을 올리고 서 있으면 주변의 모든 자동차가 정지해야 한다.실수로라도 움직이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
캐나다에서 사회 안전을 이야기할 때 어린이 보호에 앞서는 가치란 없다. 학교 주변에서 자동차는 늘 속도를 줄여야 하고, 등하교 시간에는 아예 차량 진입이 금지되는 도로가 많다. 스쿨버스가 멈춤 표지판을 올리고 서 있으면 주변의 모든 자동차는 정지해야 한다. 실수로라도 움직였다가는 교통 위반 가운데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캐나다 각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개 만 12세가 되기 전까지 어린이들은 보호자 없이 바깥에 나가거나 홀로 집에 있을 수 없다. 교사나 의사는 어린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학대받은 흔적을 발견하면 관계 당국이나 경찰에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온타리오 주의 경우 주정부 내에 ‘어린이·청소년 서비스부’가 있고, 토론토에는 주정부 지원을 받는 비영리기구 아동보호협회(CAS)가 설치되어 소속 전문가들이 어린이 학대 등에 관한 문제를 전담한다. CAS는 캐나다 건국 8년 만인 1875년에 설립되었다.
캐나다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초기 이민자의 가정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대부분은 체벌에 대한 문화 차이에서 연유하는 ‘범죄’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체벌은 할 수 없고 정신적 학대도 그것 못지않게 엄격하게 다루어진다. 대개 부모와 자녀가 격리되어 조사받는데 현장에서 체포된 ‘현행범’은 자녀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받게 된다. 이후 내려지는 판결에 따라, 극단적인 경우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할 수도 있다. 설사 자식이 부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 해도 부모의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는 젊은 한국인 부모는 잠든 아이를 집에 두고 잠깐 외출했다가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잠에서 깬 아이가 문을 열고 나와 우는 것을 보고 이웃 사람이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은 부모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그들을 보호하고 키우는 것은 사회 공동체이다. 어린이들은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하는 사회의 일원이니, 낯선 할머니가 공원에서 그렇게 간섭하고 나서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곳이 바로 캐나다 사회이다.
어린이에 대한 보호는 경제적 지원으로도 나타난다.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최저 생계비, 곧 자녀 양육수당(Canada Child Benefit)은 가구 소득에 따라 차등을 두는데, 1명당 최대 월 646 캐나다 달러(약 55만원)까지 지원받는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18세 이하 모든 어린이·청소년은 어떤 환경에서도 굶지 않을 권리가 있다.
■프랑스
신체기록서 작성해 아동 학대 감시
파리·이유경 통신원
프랑스에서도 아동 방임이나 학대는 고질적인 문제다. 공식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꼽아도 매년 수십명에 이르는 아이가 부모의 방임이나 학대로 사망한다. 2017년 1~2월에만 9명이 이 같은 피해를 당했는데 그중 21개월 된 켄조는 학대로, 다섯 살배기 야니스는 이불에 오줌을 눴다는 이유로 가혹한 체벌을 받아 숨졌다. 지난 1월12일 프랑스 아동보호관찰기구(ONPE)는 2016년 말까지 보호 대상에 속하는 아동이 약 30만명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보다 1.4% 오른 수치다. 아동보호 단체 앙팡 블뢰(Enfant Bleu)의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인 73%가 아동 학대를 ‘빈번한 일’이라 여기고 그중 22%가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프랑스 아동보호 시스템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이뤄진다. 2004년에 설립한 국가기관 위험아동관찰기구(ONED)는 아동보호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위험 상황을 분석하며 아동 기구를 지원하는 일 등을 맡는다. 또 다른 국가기관으로 1989년 공식 번호로 인정받은 119(SNATED)가 있다. 알로 앙팡스(Allô Enfance)라 불리는 119는 학대나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아이 혹은 그 지인이 직접 전화를 걸어 상담이나 보호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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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ô Enfance 갈무리 프랑스의 ‘알로 앙팡스’는 학대나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아이 혹은 그 지인이 전화를 걸어상담이나 보호 조치를 요구할 수 있는 서비스다. |
지역기관 중 지역 의회에 속하는 아동사회지원기구(ASE)는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의 정보를 수집해 평가하고 입법을 지원하는 구실을 한다. 아동학대 예방과 부모를 잃은 아이의 입양 문제도 처리한다. ASE에 속한 긴급정보수집기구(CRIP)는 지원 여부를 결정할 정보를 수집하고, 지역아동보호관찰기구(ODPE)는 국가기구인 onED처럼 지역 내에서 총괄 업무를 맡는다. 또 다른 기구인 모자보건센터(PMI)는 6세 미만 아이들의 위생과 심리 상태를 점검한다.
지난해 3월 프랑스 정부는 강화된 아동보호 정책을 내놓았다. 가족부는 학대 의혹을 받은 아이들의 신체기록서를 작성하는데, 2020년까지 그 대상을 5만명으로 늘리고, 각 병원에 담당 의사를 배치하며 학교나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설문을 하겠다고 밝혔다. 가족 내 신뢰를 깰까 두려워 신체기록서 작성을 피해왔던 의사들에게 의무를 지워 아이들의 상태를 더 상세히 관찰하게 하고, 보호기관이 방문해도 아이만 집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아 직접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직접 다가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로랑스 로시뇰 가족부 장관은 “많은 사람들이 아동 학대로 의심하면서도 착각일까 두려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사회에는 부모가 훈육을 위해 자녀를 체벌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체벌하는 행위 등은 전면 금지되어 있지만 부모가 아이 뺨이나 엉덩이를 때리는 정도의 체벌은 용인되어 왔다. 아동보호단체연합 마르탱 브루스 대표는 “우리는 올바른 제도나 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이 따라주지 않는 것도 있지만,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동 학대의 근본 원인이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영국
아이를 양육하는 어른 정신 상태도 중요
런던·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2014년 3월, 43세인 타니야 클레어런스는 아이 넷 중 셋을 목 졸라 죽였다. 네 살배기 딸과 세 살배기 아들 쌍둥이였다. 세 아이는 모두 근육이 수축되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혼자 힘으로는 앉거나 먹을 수도 없었다. 사건 당시 남편은 유일하게 장애를 갖고 태어나지 않은 다섯 살 큰딸을 데리고 휴가를 떠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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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 online 갈무리 우울증으로세자녀를목졸라죽인타니야 클레어런스(왼쪽)와 살아남은 그녀의 딸. |
집에 남은 엄마는 먼저 자고 있는 쌍둥이를 목 졸라 죽였다. 그러고는 딸을 죽이기 전에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 둘을 죽이기도 힘들었지만 딸을 죽이는 것은 정말로 더 힘들다. 아들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딸이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만일 나만 죽어버리고 딸이 남아 아빠와 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면 그건 굉장한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정말 미안하다. 유일한 위안은 고통스러울 미래로부터 딸을 구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들 시신 주위에 인형을 가져다 둔 다음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다.
영국 법원은 중증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돌보다가 지친 엄마가 부담과 좌절을 이기지 못한 끝에 충동적으로 벌인 사건으로 보았다. 이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해온 부유한 중산층 백인 가족이었다. 남편은 투자은행 중역이었고, 런던 근교의 큰 집에서 살았다. 경제적으로 부족하거나 아쉬울 게 없었다. 장애 아동이 있는 저소득층 가족이 받는 금전적·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사회복지사나 장애 아동 전문 의료진의 방문 같은 복지 서비스는 받았다. 집을 방문하거나 아이들을 진료하는 등 이 가족과 접촉한 복지 인력은 무려 60여 명에 달했다. 문제는 이런 광범위한 조력이 있었음에도 사건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거의 1년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타니야의 정신 상태는 사건이 발생하기 한 해 정도 전에 이미 좋지 않은 징후를 보였다. 즉, 아이들뿐 아니라 엄마의 정신적 상태에 관한 개입 또한 더 일찍 이루어졌어야 했다.
자살에 실패하고 살아남은 타니야는 정신 상태를 고려한 책임 경감으로 모살죄(謀殺·murder)가 아니라 고살죄(故殺· manslaughter)를 적용받아 감옥이 아닌 병원에 수용됐다(영국 형법은 살인을 모살과 고살로 나눈다. 범행 당시 범의(犯意· mens rea)가 있으면 모살이고, 그런 마음이 없이 사람을 죽게 한 경우가 고살이다). 3개월 정도 지난 후에는 주말 동안 남은 딸과 남편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아이를 죽인 엄마는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라 조력이 필요한 환자로 보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남편은 내내 아내를 옹호하고 지지했다. 아내가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고 늘 아이들을 자신보다 먼저 고려했으나 사랑과 헌신 끝에 우울증과 절망만 남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이들에 집중한) 사회복지 서비스의 압박이 아내에게 늘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이 비극적 사건이 앞으로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014년 영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잉글랜드 및 웨일스 지역에서 부모에 의해 직간접으로 살해되는 아이가 한 달에 세 명에 달한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를 살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알코올의존증이나 약물 남용 등으로 아이를 방치하기도 하고 직접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아이를 양육하는 게 익숙지 않거나 정신적·물리적으로 힘든 나머지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도 있다. 때로는 부부 관계의 악화가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떠나간 상대에 대한 복수로 아이를 살해하는 일조차 있다. 아이를 죽이고 나서 자신도 자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런 극단적인 선택은 사건을 저지르는 부모 자신의 절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아이를 둘러싼 물리적 여건 못지않게 아이를 양육하는 어른의 정신 상태가 중요하다. 양육비 지급 등 경제적 지원 및 보육 시설·인력에 대한 투자 같은 물리적 지원 문제를 논의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스웨덴
신고 체계 간소화 익명으로 신고도
예테보리·고민정 통신원
영화감독 한나 스쾰드는 2015년 <Granny’s Dancing on the table>(한국에서는 <에이니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2016년 부천국제 판타스틱영화제 상영)라는 작품을 연출했다. 영화에는 산골에 고립되어 사는 아버지와 어린 소녀 에이니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폭력을 일삼는다. 소녀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할머니를 상상한다. 소녀는 아버지가 왜 폭력적이고 가학적인지 그 이유를 유추해 나간다. 감독은 영화에서 잔혹한 폭력 장면을 배우들의 실사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다. 이유가 있다. 감독 자신이 바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한나 스쾰드 감독은 그 이야기를 꺼내 영화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폭력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상처를 치유하듯 감독 자신도 영화 작업을 통해 평생 자신이 웅크리고 숨겨온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감독은 자신이 직접 겪은 폭력의 메커니즘을 파고들면서 자신과 과거의 아픔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며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거친 셈이다. 그는 “장편영화를 통해 아동 복지와 인권의 선진국이라는 스웨덴 사회에서도 이웃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아동 학대와 아동 인권 문제를 토론해보고 싶었다. 아이를 소유물로 여기면서 자녀들을 마음대로 대하는 부모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은 약 40년 전인 1979년 세계 최초로 아동학대방지법을 제정했다. 아동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체벌을 가하는 행위를 하면 처벌받는다. 아이를 꼬집거나, 엉덩이를 때리는 훈육 과정의 매도 법으로 금지되었다. 체벌뿐 아니라 어른이 분에 못 이겨 아이에게 욕설을 해도 처벌받는다. 보호자가 어린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에도 학대에 해당된다. 어린이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고 한 명의 인격체로 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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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S 갈무리 스웨덴의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인권단체 BRIS.어린이나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채널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
사소해 보이는 경우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아동 학대 범죄가 처리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 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며 아이가 말을 듣지 않자 욕설을 하고 때렸다. 어린이집 교사는 지방자치단체의 어린이 및 청소년 지원부서(SOC)에 익명으로 신고했다. SOC는 경찰에 알렸다. 경찰이 출동하자 엄마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아이와 엄마를 격리했다. 경찰은 조사 뒤 아동학대법에 규정된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아이 엄마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5년간 범죄 기록이 보존되었다. 엄마는 전과 기록 탓에 취업에 불이익을 받았다.
이렇게 스웨덴에서는 어린이집이나 학교 교사 등이 적극적으로 아동 학대 감시자이자 아동의 보호자 노릇을 한다. 경찰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6세 이하 아동에 대한 학대 신고가 증가 추세이다. 2006년 1351건이었던 신고 건수가 2016년 4255건으로 늘었다. 물론 이 통계치만 보고 스웨덴의 아동 학대 범죄가 증가 추세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건수는 늘었지만 내용을 따져보면 사안이 경미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 국립범죄예방협회는 지난 10년간 신고 체계가 간소화되면서 건수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전에는 아동 학대와 관련해 경찰에 신고하려면 의사 소견서 등이 필요했다. 최근에는 위의 사례처럼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이 경찰에 직접 신고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담당자에게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 외에도 다양한 어린이·청소년 인권단체가 스웨덴 전역에서 활동 중이다. BRIS는 대표적인 어린이·청소년 인권단체이다. 18세 이하의 청소년 및 어린이들이 익명으로 가정폭력, 학교폭력, 친구 왕따 문제 등을 털어놓으면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BRIS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전화뿐 아니라 실시간 채팅이나 메일 등 다양한 채널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
‘이른 도움’이 아이를 살린다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독일의 아동보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른 도움’이다. 이른 도움은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아이들 성장의 위험 요소를 발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뿐 아니라 임신 단계에서부터 부모에게도 아동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포함한다. 2012년부터 독일 아동보호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아이와 부모들에게 이른 시기부터 도움을 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했다. 각 지자체들은 산부인과 간호사, 조산사, 사회복지사, 교육치료사, 상담사 등을 연결하여 아동을 보호하고 부모의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터 차이퉁>에 따르면 첫아이를 출산하는 부모 가운데 상당수가 육아 경험이 부족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이고 입혀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부모는 자신들이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직접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문제가 있는 가정을 빠른 시기에 발견할 수도 있다. 슈투트가르트 청소년청의 보고에 따르면 양육할 때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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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a 독일의 ‘아동 성폭력 진상 규명을 위한 독립 담당관’ 요하네스 빌헬름 뢰리크. |
독일 사회에서도 아동 학대는 심각한 문제다. 2017년 각 지역 청소년청의 보고에 따르면 아동 학대 가운데 방치(61.1%)가 가장 높았다. 그다음으로 심리적 학대(28.4%), 육체적 학대(25.7%), 성폭력(4.4%)이 뒤를 이었다. 특히 아동 성폭력은 여러 해 동안 독일 사회에서 주요 이슈로 다뤄졌다. 최근 한 엄마가 2년 동안 자신의 아홉 살 아들을 인터넷으로 성매매한 것으로 드러나 독일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사건이 드러난 직후 ‘아동 성폭력 진상 규명을 위한 독립 담당관’ 요하네스 빌헬름 뢰리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위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관찰 보호하기 위해 청소년청의 인력을 늘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독일에서 아동 학대 가운데 성폭력 예방에 집중하게 된 계기가 있다. 2009년 언론을 통해 한 가톨릭 학교에서 수십 년간 사제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성적 폭력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아동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연방정부는 2010년 3월 ‘아동 성폭력 진상 규명을 위한 독립 담당관’을 처음 임명했다. 당시 첫 독립 담당관은 가족부 장관을 지낸 크리스티네 베르크만 박사였다. 연방정부가 아동 성폭력을 뿌리 뽑기 위한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2만 건이 넘는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다. 독립 담당관은 아동 성폭력 실태를 조사하고 정부에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조언을 한다. 또한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접적 활동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도움의 전화’는 피해 아동과 그 가족에게 피해 신고 접수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3만5000건에 이르는 전화 상담이 이루어졌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위한 지원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인터넷 포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해당 포털 서비스에 접속하면 피해 아동과 가족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담과 치료기관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또한 피해 아동의 법적 권리와 행정적인 조치에 대한 안내도 제공한다.
한편 2007년부터 독일 아동보호 단체들은 아동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성인과는 다른 아동만의 권리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남매 끔찍히 사랑한 광주 ‘리틀맘’은 왜 불을 질렀나
2016년 한 해 1만8700명의 아이가 학대당하고 36명이 학대받다가 죽었다. 아이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무엇이 달랐다면 그 아이가 살 수 있었는지 3주에 걸쳐 연재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If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it takes a village to abuse one).” 영화 <스포트라이트> (2015)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추적하는 <보스턴 글로브> 기자에게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아동 학대 가해자는 소수의 악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주연’이라면 그와 아이를 둘러싼 사회와 정부는 적어도 ‘조연’이다.
2016년 한 해 동안 1만8700명에 이르는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 그 가운데 36명은 학대받다가 숨졌다(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통해 접수된 사례만이다. 접수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수치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가해자는 주로 부모였다. 전체 아동 학대의 80.5%, 아동 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의 86%를 친부모, 계부모, 양부모가 저질렀다. 도대체 왜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학대하다가 급기야 죽이기까지 하는 걸까. 아이들이 더 이상 자기 집에서 자기 부모 손에 죽어나가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죽인 ‘악마’만 처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최근 몇 년 사이 아동 학대 사건 수십 건이 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어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오늘 일어난 더 끔찍한 사건으로 덮여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질 정도로, 사건은 점점 더 잦고 참혹해졌다. <시사IN>은 사건의 표면에서부터 거슬러 들어가 이 비극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아동 학대 가운데 부모가 가해자인 사건, 특히 부모의 학대로 인해 아이가 사망에 이른 사건들을 중심으로 그 전말과 배경을 추적했다. ‘아이가 왜 죽었을까’를 찾는 것은, ‘만약 무엇이 달랐다면 그 아이가 살 수 있었을까’를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발견되는 ‘빈틈’을 채우는 방법도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 앞으로 3주에 걸쳐 연재된다. 이미 많은 아이들을 잃었지만, 앞으로 다시 반복될 게 분명한 이 비극을 단 한 건이라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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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어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 오늘 일어난 더 끔찍한 사건으로 덮여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질 정도로아동 학대와 아동 살해 사건은 더 잦고 참혹해지고 있다. |
지난해 11월 김주미씨(가명·33)는 ‘중고나라’ 사기를 당했다.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아이 분유를 사기로 하고 판매자에게 9만원을 입금했는데 물건이 오지 않았다. 판매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환불을 미뤘다. 알고 보니 비슷한 피해자가 여럿 있었다. 김씨가 독촉 문자를 계속 보내자 판매자는 자기가 애가 셋인데 애가 아프고 남편이 다리 한쪽이 ‘아작나’ 병원에 입원해 있어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거짓말 마라”는 김씨에게 다섯 식구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주민등록등본과 세 아이 사진을 전송해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던 판매자는 스스로를 ‘리틀맘’이라고 칭했다. 열여덟 살에 첫아이를 갖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런데 남편이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고, 철없는 엄마 아빠 밑에서 건강하게 커주는 아가들이 고마울 뿐이라고도 말했다. 긴급생계비 신청을 해뒀으니 그 돈이 들어오면 바로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했다. 12월1일 김씨 통장에 진짜 9만원이 들어왔다. 판매자는 남편 의료비 등을 제외하고 5인 가족 생계비로 난방비 포함 99만원을 받았다며 “기다려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한 달 뒤인 올해 1월1일, 김씨는 끔찍한 뉴스를 들었다. 하루 전날 새벽 광주광역시 두암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세 아이가 죽었다는 뉴스였다. 다섯 살(남), 세 살(남), 두 살(여) 3남매였다. 경찰에 따르면 불이 났을 때 스물세 살 아빠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스물두 살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다. 베란다에서 홀로 구조된 엄마는 밖에서 술을 먹고 들어와 가스 불에 라면 물을 올렸다가 깜빡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담배를 피우던 중 막내가 울어 급히 끄다가 불이 난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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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북부소방서 제공 2017년 12월31일 광주광역시 두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세 아이가 숨졌다. |
뉴스 속 새까맣게 그을린 3남매 집 거실 사진을 보고 김씨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한 달여 전 중고나라 판매자가 보내준 3남매 사진 속 배경이 거기 있었다. 꽃무늬 벽지, 이불 무늬, 흰색 3단 기저귀함 위치까지 똑같았다. 사진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V자를 그리던 3남매는 작은방 안 이불 속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다. “철없는 엄마 아빠 밑에서 건강하게 커주는 아가들이 고마울 뿐이다”라던 3남매 엄마는 아이들이 화장장 불 속에 들어가던 1월3일 오후 경찰 손에 이끌려 현장검증에 나섰다. 경찰은 1월8일 중과실치사·중실화 혐의로 엄마 정 아무개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 벼랑 끝 3남매 가정에 벌어진 비극
“아이들 데리러 온 엄마는 ‘오늘 고기반찬 먹자~’ 하면서 밝게 손 흔들었어요. 아마… 실수였을 거예요. 아이들이 어디라도 아프면 눈물 글썽이며 울먹였던 사람이에요.” 지난해 12월31일 화재로 목숨을 잃은 광주 3남매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은 “애들 엄마는 그럴(방화나 학대를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빠도 막내딸 보면 눈에 하트가 뿅뿅한 ‘딸바보’였고…. 나이도 어린데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거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첫째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의 담임교사도 엄마 정씨에 대해 “준비물도 빠트리지 않고 학부모 관련 참석할 일에도 열심이었다”라고 말했다. 정씨 집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요구르트 판매원은 “선하고 착하게 생긴, 가끔씩 요구르트 한 봉지씩을 사간, 외상을 진 적이 있지만 이내 갚은” 정씨네 부부를 기억했다.
하지만 적어도 1년 전부터 3남매의 가정은 서서히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광주광역시 두암동주민센터 직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정씨의 시아버지가 찾아와 “아들네 사정이 궁핍한 것 같다”라며 대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요청했다. 증명 자료를 요구하자 3남매 아빠 이 아무개씨가 다음 날 각종 체납 통지서들을 갖고 왔다. 부양가족 수가 많아서 기대했지만 정씨의 친정 부모가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3월 수급 신청에서 최종 탈락했다.
3남매의 부모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아빠 이씨는 PC방이나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 (중고나라 분유 구매자가 들은 것처럼 실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고, 사건 발생 당시 실직 상태였다. 엄마 정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세 아이 육아와의 병행을 오래 이어갈 수 없었다. 전에 살던 집 월세도 밀렸고 지난해 6월 새로 이사 간 임대아파트 관리비를 한 번도 못 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전기도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내내 다섯 식구는 긴급생계비로 버텼다. 2017년 2월부터 7월까지 5인 가족 앞으로 137만원씩 6회 지급됐다. 지난해 말 아빠 이씨가 다리를 다친 뒤 추가로 한 번 더 지급된 긴급생계비 125만원을 받아가면서 엄마 정씨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연방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긴급생계비 외에 확인된 이 가정의 소득이라곤 중고나라에서 분유 허위 판매로 얻어낸 ‘사기 수익’ 정도다. 지난해 10월부터 12월 말까지 정씨는 분유 사기로 돈을 벌고 피해자들에게 다시 돈을 입금해주기를 반복했다. 분유 값으로 6만원을 입금한 한 피해자에게 정씨는 “애들 아빠가 가정에 책임을 안 져서 그랬다”라며 9일에 걸쳐 하루 5000원이나 1만원씩 나눠 갚았다. 아이들이 숨지기 나흘 전 부부는 협의이혼했다. 주변 사람들과 경찰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는 문제를 두고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엄마 정씨가 3남매의 양육을 맡고 아빠 이씨는 매달 양육비 9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혼했지만 아직 함께 살던 이씨는 사건 당시 아이들이 잠들자 밤 9시44분쯤 친구들과 게임을 하러 PC방에 갔다. 저녁 7시40분쯤 외출한 엄마 정씨는 친구와 술을 마시고 동전 노래방에서 4000원어치 노래를 부른 다음 편의점에 들렀다. 큰아이의 헐렁한 옷을 고정하기 위한 옷핀을 사서 새벽 1시50분께 집에 들어갔다. 이날 밤 정씨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남편 이씨에게 “죽고 싶다” “나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야. 죽을 거야” 등의 카카오톡을 보내고 수차례 전화를 걸었다. 작은방에서 세 아이들과 잠들었다가 방 앞에서 불이 난 것을 깨달은 정씨는 방 안에서 10분여간 남편 이씨와 이씨의 친구, 112에 전화해 구조를 요청했다. 몸에 2도 화상을 입은 채 베란다에서 손을 흔들던 정씨는 홀로 구조됐다.
경찰은 이 사건을 ‘방화’가 아닌 ‘실화’로 판단했다. 하지만 사건 보도 초기부터 많은 이들이 정씨를 단박에 ‘자녀 살해 방화범’으로 의심했다. 경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특히 벼랑 끝에 선 어리고 궁핍한 부모가 자녀를 학대하고 죽이는 끔찍한 이야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출산, 실업, 가난, 고립, (술·담배·게임) 중독, 철없는 부모, 불균형한 양육 부담…. 여러 자녀 학대·살해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목격되던 위험 요소들을 정씨네 가정도 안고 있었다.
(경찰과 달리 검찰은 정씨가 일부로 불을 낸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정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작은 방 바깥에서 담배를 피운 뒤 이불 위에 담배꽁초를 올려둔 채 라이터로 불붙이는 장난을 하다 작은방에서 휴대전화를 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자살할 생각에 전화하지 않고 내버려 뒀다”라고 진술했다. 광주지검 형사3부는 1월26일 정씨를 현주건조물방화치사로 구속기소했다.)
■ 고립된 아빠는 보호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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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4년 4월17일 26개월 된 아들을 살해하고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린 혐의를 받던 정 아무개씨가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
‘고립된 어린 부모’가 저지른 비극의 또 다른 대표 사례가 2014년 3월 경북 구미시에 사는 스물두 살 아빠 정 아무개씨가 26개월 된 아들을 죽여 시신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주택가에 버린 사건이다. 사건 당시 정씨가 아이 사체를 담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을 손질하던 모습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게임 중독’ 혹은 ‘사이코패스’ 친부의 아들 살해 사건으로 기억한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고립’이 부른 범죄였다. 태어난 지 26개월, “엄마” “아빠” “고모” 정도의 말을 할 줄 알고 기저귀를 차고 중이염을 자주 앓던 약하고 작은 아이는 미성숙하고 경제적·정신적으로 완벽하게 고립된 아빠 손에 홀로 맡겨졌다. 고립된 아빠 밑에서 아이는 2주일을 버티지 못했다.
아이는 스무 살이 안 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아빠 정씨는 고등학교 1학년 중퇴 후 아이 엄마를 만나 동거를 시작했다. 일정한 직업이 없던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자 PC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렸다. 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지인이 마련해준 일자리였다. 그 지인은 정씨 가족을 위해 원룸도 얻어줬다. 아빠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엄마는 새벽 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교대로 일하며 아이를 돌보았다. 아빠 정씨가 출근하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고 퇴근하며 집으로 데려왔다. 1심 재판부 판결문에도 “그 당시 피해자 양육에 관련해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라고 나와 있다.
위태롭게 유지되던 가정은 아빠 정씨가 그를 도와주던 지인과 다투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부부가 PC방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원룸에서도 나가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부부 싸움도 잦았고 결국 별거에 들어갔다. 엄마는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취직해 짐을 싸서 떠났다. 아빠 정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연락해 아이와 함께 (모친의) 집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의 어머니가 거절했다. 정씨는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예전에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공과금을 내지 못해 전기와 난방이 끊긴 채 비워둔 집이다. 바로 그 집에서 열하루 뒤 아이가 숨졌다.
아이와 단둘이 남게 된 날부터 아빠 정씨는 온라인 세계로 도피했다. 인터넷 게임에 빠져든 것이다. 아내와 헤어지고 빈집으로 들어가던 2014년 2월24일부터 아이가 숨진 3월7일까지 정씨는 짧게는 8시간, 길게는 49시간 동안 PC방에서 게임을 했다. 이즈음 정씨를 목격한 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평소 게임 중독에 이를 정도로 게임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는데 2월24일(혼자 아이를 맡기 시작한 날)경부터는 평소와 달리 게임에만 빠져 있었다”.
아빠가 PC방에서 게임 레벨을 올리고 있을 동안 26개월 된 아이는 난방과 전기가 끊긴 집에서 홀로 견뎠다. 정씨는 게임을 하다가 중간중간 음식을 사서 집에 들러 아이를 먹였다고 진술했다. 아이가 숨진 2014년 3월7일, 정씨는 전날 저녁 8시33분부터 당일 새벽 4시25분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한 뒤 집으로 와서 잠을 잔 뒤 분식집에 가서 먹을 것을 샀다.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고 오후 1시쯤 다시 PC방에 가기 위해 아이에게 잠을 자라고 했다. 아이가 자지 않고 장난을 치자 손날로 아이의 명치를 3회 내리쳐서 죽게 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아빠 김씨가 아이의 입과 코를 막아 죽이려 했다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비관하고 있던 중 순간 격분하여”라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그날 정씨의 휴대전화 인터넷 검색 기록에는 ‘유아살해’ ‘아버지 유아살해’ ‘자살약’ ‘수면제 과다복용’ ‘가장 편하게 죽는 방법’ 등이 남아 있었다(정씨는 1심에서 살인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는 ‘전기와 난방이 끊긴 상태에서 아동이 돌연사 등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살인 혐의를 무죄로 보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폭행치사 또는 상해치사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파기환송했다. 2016년 3월 징역 8년형이 확정됐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 아이를 놓다
2016년 3월 초 경기도 부천시에 사는 한 젊은 부부도 정씨의 전철을 밟고 있었다. 어린 딸을 학대하고 방치하다가 죽였다. 2016년 3월9일, 자신의 집 작은방에서 두개골이 함몰되고 곳곳의 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든 주검으로 발견된 아이는 태어난 지 84일 되었다.
아이 아빠 박 아무개씨(23)와 아이 엄마 이 아무개씨(23)는 만난 지 4개월 만에 양가 부모 몰래 혼인신고를 하고 아기를 가졌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었다. 엄마는 아기를 지우려고 했지만 아빠 박씨가 함께 키우자고 설득했다. 직업이 없던 박씨는 2015년 12월 아이가 태어나자 인근의 소규모 가방 공장에 취직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무단결근과 지각 등으로 2016년 1월 해고당했다. 신용카드 대금, 월세,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 태아보험료가 밀리기 시작했다. 대부업체의 고금리 대부금으로 생계비를 충당했다.
엄마 이씨는 출산 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3월 들어서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먹이거나 씻기지 않았다. 이씨의 출산을 설득하면서 양육을 전적으로 자청한 아빠 박씨는 야간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와 아이를 돌봤다. 박씨도 음주와 인터넷 게임이 잦았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빚, 밥벌이, 독박 육아의 압박을 술과 게임으로 누르던 아빠 박씨는 아이가 생후 40일이 되던 날 처음으로 아이를 학대했다. 부부 싸움을 하고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중 옆에 누워서 분유를 먹고 있던 아이의 이마를 긁고 뺨을 때리고 피멍이 들 때까지 눈두덩을 눌렀다.
이후 한 달여에 걸쳐 학대는 점점 잦아지고 심해졌다. 부부 싸움을 하다 넘어진 엄마의 몸에 깔려 갈비뼈와 오른팔이 골절된 아기를 부부는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박씨는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엉덩이를 꼬집고 분유를 안 먹는다고 얼굴을 할퀴었다. 목욕시키고 물기를 닦아주다가 갑자기 화가 나 팔을 잡아당겨 팔꿈치 관절을 탈구시켰으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얼굴을 쳤다. 엄마 이씨도 이런 사실들을 알았지만 방치했다.
급기야 2016년 3월9일 새벽 5시께 박씨는 아이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피를 흘리며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입에 억지로 분유병을 물렸다. 창문이 3분의 1쯤 열려 있어서 3월 초순의 찬바람이 들어오는 작은방에 담요로 둘러싼 아이를 혼자 눕혀두고 안방으로 자러 갔다. 그날 최저 기온은 영하 4℃였다. 4시간 뒤 잠에서 깨어난 아빠 박씨가 작은방을 들여다봤을 때 아이는 바닥에 얼굴을 대고 입 부근에 피를 흘린 채 차갑게 식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스스로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던 생후 80여 일의 피해자가 온몸에 멍이 들고, 여러 곳의 뼈가 부러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은 오직 부모를 향해 살려달라고 우는 것밖에 없었다. (…) 결국 이 사건은 한 생명을 양육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책임감과 절제심, 부부 사이의 깊은 신뢰와 애정을 갖추지 못했던 어린 부모가 자신들이 만들어낸 소중한 생명의 빛을 스스로 꺼트린 비극적인 사안이다”라고 규정했다.
■ 몰랐거나 무기력했거나 철없거나
2017년 광주 3남매 사건, 2014년 구미 26개월 아들 살해 사건, 2016년 부천 84일 아기 학대 사망 사건의 가해자인 엄마 또는 아빠는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태였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하며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잘 키워낸 상당수 선량하고 장한 어린 부모들과 달리 이들은 장애물을 뛰어넘지 못했다. 이들은 자신이 꾸린 가정 안에서 가장 약자인 아이를 향해 그 분풀이를 했다. 김희경 전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은 2016년 즈음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련의 아동 학대 사건들을 조사하는 작업을 하면서 일정한 유형을 발견했다. “상당수 가해 부모들이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는 점이 가장 큰 공통점이었다. 이들 가정이 깨지기 직전, 위기 시점에 학대가 시작되거나 심화됐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고 사회적 지지망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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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16년 6월20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아동 학대 신고의무자 교육’ 현장의 아동 학대 근절 메시지. |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 못지않게 안타까운 경우는, ‘몰라서’ 혹은 ‘무기력하게’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고 죽이는 사건이다. 전국의 아동 학대 사건을 맨 처음 접하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사회복지사들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가해자들의 특성을 확인해보면, 공통적으로 ‘양육 태도 및 방법 부족’(35.6%, 오른쪽 인포그래픽 참조)이 가장 높았다.
2016년 10월 인천시에서 생후 2개월 된 둘째 아이를 영양실조로 죽게 둔 20대 부부가 이에 해당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찍 아이를 낳은 서 아무개씨(21)는 둘째 아이 생후 한 달쯤 되던 시기, 한 손으로 분유를 타다가 다른 쪽 팔에 안고 있던 아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엄마 서씨는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1~2시간 지나니 괜찮아져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라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이후 아이는 잘 먹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았다. 3.06㎏으로 태어난 아이가 1.98㎏까지 야위어가는 동안 서씨와 남편 정 아무개씨(25)는 한 번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아이가 영양실조로 죽기 이틀 전 서씨는 그간 미뤄온 신생아 예방접종을 하러 아이를 안고 인근 보건소로 갔지만 운영 시간이 지난 탓에 그냥 집에 돌아왔다. 2016년 10월11일 아침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우유병을 물지 않자 부부는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심폐소생술로 아이를 살리려 했다. 제3금융권에 2000만원 빚을 진 상태에서 생계를 책임지던 정씨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그나마 있던 배달 일자리도 잃은 직후였다. 경제적 위기에 더해 부모의 무기력과 무지가 아이를 죽인 것이다.
경제적 궁핍, 사회적 고립, 무지와 무기력에 더해 어린 부모의 비상식적 행동 패턴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아무리 방화의 고의성이 없다 하더라도 거실의 이불에 담뱃불을 비벼(혹은 튕겨) 꺼 결과적으로 아이들이 숨지게 한 엄마나, 아무리 아이들이 자고 있다 해도 집을 비우고 PC방에 게임하러 간 아빠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린 부모들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범행 당시 스무 살을 넘겼지만 거의 10대에 첫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 당시 이들은 ‘부모’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욕구를 통제하는 법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미성년자’였다. 법적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이들은 정서적으로 미성년자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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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서울의 한 교회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을 자원봉사자들이 돌보고 있다. |
지난해 5월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한 미혼모(22)는 생후 2개월 된 아기를 재워놓고 8시간 동안 집을 비웠다가 아이가 질식사해 경찰에 붙잡혔다. 그녀가 아이를 두고 친구와 함께 간 곳은 놀이동산이었다. 신생아 딸이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부천 생후 84일 영아 학대 사건’의 엄마 이 아무개씨(23)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또래 친구들은 즐겁게 살고 있는데 자신은 아기를 낳고 돌보게 되어 아기가 밉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어린 부모를 둔 아이들이 놓인 위험은 통계치로도 나타난다. 지난해 발생한 아동 학대 가운데 아이가 사망에 이른 사건은 가해자가 20대 미만인 경우가 17건(34%)으로 다른 연령대보다 제일 높았다(오른쪽 인포그래픽 참조). 권태훈 강원도 춘천 아동보호 전문기관 팀장은 아동 학대 신고가 들어와서 현장 조사를 나가보면 뱃속에 둘째가 있고 품에 첫째 아이를 안은 10대 엄마가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종종 만난다고 말했다. “‘술과 담배는 태아에게 위험하다’고 얘기하면 ‘아 진짜요?’라고 답한다. 어떻게 이런 걸 모를 수가 있나 싶은데, 그 친구들은 모른다. 어느 열아홉 살 엄마는 아이 기저귀가 무거워서 흘러내릴 정도인데 갈지 않기에 이야기했더니 ‘하루에 두 번만 갈면 되는 거잖아요’라고 하더라.” 권 팀장은 현장에서 ‘학대의 대물림’도 자주 실감한다. “한 어린 엄마는 가정 내 아동 학대 가해자로 신고되어 살펴봤더니 10년, 15년 전 학대 피해자로 등록된 적이 있더라.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준비되지 못한 출산에 노출됐고 또다시 그 밑의 아이에게 학대를 가한 것이다.”
아이들이 ‘죽어가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다섯 살, 세 살, 두 살 광주 3남매가 불길에 휩싸이기 최소 1년 전부터 그 가정은 경고음을 내고 있었다. 주택가의 100ℓ짜리 쓰레기봉투 안에서 발견된 구미 26개월 아이에게도 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멍이 든 채 눈을 감은 부천의 생후 84일 된 아기, 영양실조로 1.98㎏의 몸무게로 숨진 인천의 생후 2개월 된 아기도 살아생전 그 아이가 속한 가정을 한번이라도 들여다보는 사회적 ‘눈’이 있었다면 지금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그 아이들이 죽을 줄 몰랐을까.
어린 부모 방치하면 아이들이 죽는다
‘청소년 한부모’ 관련 지원정책이 있지만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정보의 차이가 양육의 판단 근거가 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만삭의 임신부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젖병소독기와 세척 솔이 놓인 조유실을 지나는 그녀의 등 뒤로 문 열린 방 안이 보였다. 겨울철 아기 방한복인 ‘우주복’이 옷장에 걸려 있었다. 실내 건조대에는 신생아 배냇저고리가 잔뜩 걸려 있고, 상담실 책장은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첫아기 안심하세요> 같은 육아 서적으로 가득했다.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 위치한 ‘애란원’을 찾은 1월10일 오후, 4층짜리 건물은 온통 고요했다. 유일하게 떠들썩한 곳은 저녁 식사를 앞둔 식당이었다. 산모 다섯 명이 모여서 재잘대고 있었다. 모두 앳된 얼굴의 10대 엄마들이었다.
애란원은 분만을 앞두거나 갓 출산한 청소년 미혼모에게 숙식과 분만, 산후조리를 제공하고 양육과 자립을 돕는 미혼모자 생활 시설이다. 1960년대에 설립돼 미혼모 복지시설로 운영되다가 2017년 ‘청소년’ 미혼모 전용 시설로 증축되었다. 전국 한부모 가족 복지시설 129개 중 청소년 미혼모 특화 시설로는 유일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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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미혼모자 생활 시설 ‘애란원’에서 10대 산모들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배식을 받고 있다. |
미혼모자 시설 5개와 센터 2개, 학생미혼모학교 1개 그리고 취업사관학교 1개를 운영하던 애란한가족네트워크본부가 ‘청소년’ 엄마를 위한 시설을 별도로 만든 이유가 있다. 10대 미혼모는 다른 성인 미혼모들과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공해야 할 서비스의 종류부터 그렇다. 출산과 양육 이외에도 생활습관, 청소법, 요리법, 빨래법, 인성교육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청소년 엄마들은 시설의 사회복지사들을 학교에서처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최주옥 애란원 사무국장은 아기뿐 아니라 어린 엄마를 지원하는 일 역시 “아이를 길러내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10대 청소년 부모 역시 미성년자로서 돌봄 대상이라는 것이다.
애란원은 청소년 엄마뿐 아니라 청소년 아빠의 자립도 함께 돕는다. 10대 부모의 특성 때문이다. 청소년 미혼모 가정은 성인 미혼모 가정에 비해 오히려 원가정(미혼 부모의 원래 가정)이나 아이 아빠와의 단절이 덜한 편이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잠적했던 아빠가 고심 끝에 돌아와 가정을 꾸리기로 한 사례가 종종 있다.
아이 아빠가 군대에 다녀올 동안 엄마가 아이와 미혼모자 공동생활 시설에서 지내며 자립 교육을 받은 뒤 독립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20~30대보다 10대 미혼모가 더 많다. 최주옥 애란원 사무국장은 “그 시기의 부모들은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게 도와주고 지원해주면 자립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초기 지원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주로 고등학생 나이의 청소년이 찾던 애란원에 점점 중학생 나이 미혼모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19세 이하 청소년 가운데 최소 3335명이 출산을 경험했다(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이 중 일부는 아이를 길거리에 버리고(2016년 영아 유기 109건), 일부는 ‘베이비박스’에 눕히고(2016년 168건), 일부는 혼자서 키우고(2015년 청소년 한부모 가구 1만6140가구), 일부는 부모가 함께 키운다(‘청소년 부모’ 통계는 따로 집계된 바 없다).
‘가서 닿기만 하면’ 유용한 정보인데…
애란원 같은 시설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어린 부모들에게는 정보의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 주로 인터넷을 통하는데 얻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많다. ‘청소년 한부모’ 관련 지원책이 있지만 이 용어 자체가 낯선 이들도 적지 않다. 정보의 차이가 양육 혹은 입양을 결정하는 판단 근거가 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사례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는 미혼 임신부를 대상으로 ‘베이비박스 지원 사업’을 한다. 베이비박스는 한국에서는 영유아를 ‘안전하게’ 유기하는 상자로 더 알려져 있지만, 원래 핀란드에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국가가 지원하는 아기 용품 선물을 이르는 말이었다. 이 단체는 본래의 의미를 살려 아기 용품을 미혼모에게 지원하고 있다. 신청자 중 80%가 10대다. 그간 주로 성인 미혼모를 접해온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도 놀랐다. 김 대표는 10대들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보가 퍼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추측했다. 이렇게 일단 ‘가서 닿기만 하면’ 유용하게 쓰이지만, 문제는 이렇게 전달되는 정보가 매우 소수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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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베이비박스는 영유아를 ‘안전하게’ 유기하는 상자로 알려졌지만 원래 아기 용품 선물을 일컫는 말이다. |
김 대표는 청소년 부모들의 정보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 (어설픈 검색으로) 얻는 정보가 전부다. 영아 살해·매매·유기 등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보면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단돈 10만원의 병원비가 없어서 그런 결정을 하기도 하는데, 지원받을 방법을 찾아보면 있다. 많은 어린 부모들이 그걸 모르고 또 찾지 못한다.” 대구미혼모가족협회의 ‘베이비박스 지원 사업’은 물품 지원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상담으로 이어진다. 주거 시설, 양육 환경 등 미혼모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고립’을 방지하는 효과다.
2016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청소년 한부모 268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 패키지 개발 연구보고서’를 보면 어린 부모가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생활비를 충당하는 경로는 정부 지원금(75.4%), 가족의 지원(33.2%), 근로소득(25.5%) 순서였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부모는 넷 중 하나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가운데 25%는 월수입이 50만원 이하, 21.3%는 25만원 이하였다. 일자리를 가진 청소년 부모는 16.4%에 그쳤고, 그 가운데 54.5%가 비정규직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학업 중단율이 77.6%나 되었다. 당장의 빈곤이 평생 이어질 확률도, 힘들게 지켜낸 자녀 역시 취약한 환경을 대물림받을 위험성도 높다.
어린 부모는 빈곤과 불투명한 미래에 더해, 사회관계망의 단절 때문에 고통받는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한부모가 받는 스트레스는 미래에 대한 걱정, 경제적 어려움, 아이 돌보기, 집안일, 사회적 편견과 차별 순서였다. 친부(친모)와의 관계, 원가족과의 관계도 그 뒤를 이었다. 크게 나누면 경제적 부담, 육아 문제, 관계의 고립이다. 이들은 현실적 여건이 열악한 데다 사회관계망 속에서 이른바 ‘정상 가족’의 이탈자로 낙인찍혀 심리적으로도 위축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어떻게 이들을 돕고 이들을 도움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들의 아이가 제대로 자라나게 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정책이 있기는 하다. 2010년 4월부터 여성가족부에서는 한부모가족지원법을 근거로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사업’을 시작했다. 18세 이하의 아동을 양육하는 24세 이하(기준 중위소득 60% 이하) 청소년 한부모를 대상으로 현금을 지원한다. 2018년 기준 아동양육비 월 18만원, 검정고시 학습비 연 154만원 이내, 고등학생 부모의 수업료 및 입학금, 자립지원촉진수당 월 10만원 등이 지원되고 있다.
이런 지원은 한부모 가정에 한한다. 청소년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경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다. 저소득층 복지정책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청소년의 부모가 부양 의무자로 등록된 경우가 많아서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광주 3남매 화재 사건 부모의 경우가 그랬다). 이른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원가정과 갈등을 겪은 뒤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많다. 그러면 부모로부터 어떤 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 서류상으로는 그들의 부모가 부양자로 등록되어 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상담하다 보면 두 사람이 결혼은 안 했지만 왕래하면서 키우는 경우도 있고 형태가 다양하다. 미혼모나 한부모라는 틀에만 맞춰 지원하지 말고 취약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있던 청소년 한부모 자립지원 예산도 매년 줄고 있다. 2012년 33억700만원에서 2017년 20억1700만원으로 최근 5년 사이 13억원가량 줄었다. 정책 시행 초기에는 청소년 한부모에 대한 통계 자체가 미비했던 데다 ‘어린 부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지원 신청률이 낮았다. 해를 거듭하며 현금 급여 정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그 밖의 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여러 지원 사업 가운데 이용률이 가장 높은 아동양육비(현금) 지원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청소년 한부모 아동양육비가 18만원이고 (보편)양육수당이 별도로 있는 데다 올해 9월부터는 아동수당까지 나와 (현금 지원이) 이들에게 나름 의미 있는 소득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책의 수혜자, 즉 정부가 정한 기준 안에 들어오는 한부모 청소년의 수가 원체 적어서 지원 금액을 올리더라도 재정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임대주택에 청소년 부모 할당 고려해야”
또 하나 지원이 절실한 분야가 주거다. 10대의 경우 시설에 머물거나 원가족에게 돌아가지 않고는 자립하기 힘들다. 지금 ‘시설’은 상당수 비어 있다. 여성가족부가 파악하기로 한부모 가족 관련 시설의 정원 대비 현원은 80% 정도다. 또래 집단 내의 갈등, 공동생활 규칙 등으로 시설을 기피하는 어린 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시설 형태보다 주거 지원 형태를 선호하고 독립생활에 대한 욕구도 크다. 임대주택 입주 우선권이 있지만 기초생활수급자, 탈북자, 장애인 등 다른 우선순위자와 경쟁해야 하기에 순서가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린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다문화연구센터장은 “임대주택에서 청소년 부모의 할당을 고려해볼 수 있다. 시설 중심에서 더 나아가 가정에서 지내는 청소년 한부모에 대한 주거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양육을 위해서는 청소년 부모의 교육과 취업 지원도 필수적이다. 정부는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학습비를 지원하고 위탁형 대안 교육기관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성인 부모의 ‘일·가정 양립’도 쉽지 않는 사회에서 청소년 부모의 ‘일(학업)·양육 양립’이 수월할 리 없다. 학업과 취업 활동이 이뤄지는 동안 돌봄 지원이 강화되어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지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주거·취업·양육·학업을 지원하는 방법보다 하나씩 단계별로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지금은 양육과 자립을 한꺼번에 지원해 어린 부모들이 그 많은 것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일단 육아가 익숙해진 다음 가사, 학업, 주거, 취업 순서로 지원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청소년 부모의 초기 상담과 조기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의 임신·출산 시부터 작동하는 초기 대응 채널을 국가 차원에서 하나의 기구로 일원화하자는 제안이 나온 지는 오래다. 지금은 각 민간단체에 기능이 산재해 있고 서로 통합 관리도 잘 되지 않는다. 어디에서 어떤 정보를 최초로 접했는지가 출산 이후 부모의 태도와 행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초기에 한번 연결된 끈은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동아줄’이 된다. 그 동아줄에 약하고 작은 우리 아이들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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