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오만한 대접에 대한 유감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굴욕 외교에 대한 비난에 앞서 지혜로운 전략 제시해야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28(목) 14:54:30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성과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수행기자단 폭행 사건은 대통령의 굴욕 외교, 어설픈 국빈 방문 추진 등의 이유와 겹쳐 국내 언론의 분노가 치솟는 계기가 됐다. 성급하게 중국을 방문, 외교적 결례를 스스로 자초했다는 비난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졌다. 국내 종편의 정치 토크쇼에서도 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너무 낮춰 굴욕적인 행태로 일관했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희한하다.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에 대한 모든 비난의 화살이 중국이 아닌 청와대와 외교부에게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갔다면 중국의 오만함이 누그러졌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빈 방문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보여준 중국의 태도는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 대통령이 ‘혼밥’을 했다는 점은 문제의 핵심도 아니고 본질은 더더욱 아니다. 2018년을 ‘한국과 중국 상호 방문의 해’로 지정하자고 건의한 우리 측의 제의를 외면한 점,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조차 내지 않은 점, 양국 정상회담에서 관광 분야 협력을 제외해서 중국의 치졸한 보복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사항 등은 누가 봐도 중국이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준 행위들이다. 더욱이 왕이 외교부장이 대한민국 국가원수를 친구 대하듯 가볍게 두드리는 행위는 외교 결례를 넘어 무례함에 가까운 행위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7월에도 독일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과정에서 팔을 세게 흔들어 주변 인사들을 놀라게 했다. 참고로, 왕이 외교부장은 중국 당 서열에서 정치국 위원 대열에 포함되지 못할 정도로 자국 내 위상이 낮은 인물이다. 이와 관련돼 방송과 신문에서는 “굽신거릴거라면 완전히 굽신거리든지 당당하려면 당당하게 임해야지 왜 매 순간 대통령은 비굴하게 행동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라고 이런 굴욕을 몰랐을까. 모든 수모를 참고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한 달래기와 사드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기 위해 수모를 참아야 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책무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공식환영식이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왜 이렇게 중국 방문 일정을 서둘러 일을 자초했는지 모르겠다는 비난도 있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해 손실을 입는 금액만 하루 300억원에 육박한다. 한 달이면 1조원에 가까운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 이뿐인가. 기업들의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이준석 바른정당 당협위원장이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와 ‘죽고 사는 문제’인 안보는 다르다며 대통령이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안보를 그르쳤다고 비난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와 ‘죽고 사는 문제’인 안보는 서로 중첩되기에 구분돼 생각할 수 없다. 먹고 사는 상황이 위기에 처하면 죽고 사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상당수 학자들과 언론은 중국이 우리를 홀대하는 이유로 힘도 약한데 사드 배치 및 경제적 문제에 대해 자주 말을 바꾸는 국가로 중국이 대한민국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평하고 있다. 국가의 품격, 자존은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기에 보다 당당하게 중국을 상대해야 함을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평소에도 시진핑 주석은 사드 배치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거론하며 우리를 압박했고, 왕이 외교부장은 공식 서열도 무시한 채 대한민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온 인물이었기에 이들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보다 당당하고 주눅이 들지 않는 국가원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결론이다.
그러나 외교안보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절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의도를 숨기면서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당당하게 임해야 하는 것이 외교를 담당하는 대통령 더 나아가 외교안보팀의 숙명이다. 전문가들이 책상에 앉아서 탁상공론(卓上空論)을 이야기하는 건 매우 쉽다. 그러나 외교 현실은 탁상공론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대안 속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국가의 리더로서 국민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국익에 부합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모 정치인은 기자들이 폭행당하면 그 즉시 대통령은 대한민국으로 귀국했어야 옳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은 트럼프 말고는 없다.
외교안보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국가의 대통령은 마음대로 자신의 주장과 힘을 관철시킬 수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취하는 이유는 미국의 힘이 가장 막강하기 때문이다. 푸틴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국가의 정상과 회담할 때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경우, 그리고 개에 물린 경험이 있어 개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푸틴이 큰 검정개를 풀어 넣고 회담장에 나타난 경우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르켈 총리는 푸틴과의 정상 회담에서 끝까지 모욕을 참고 인내하며 국가 정상으로서 해야 할 회담을 모두 마쳤다.
문 대통령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힘이 강하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압박을 취해 대국으로서의 강력한 우위를 자랑할 수 있다. 그러나 힘이 약하면 그들이 굴욕적인 회담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가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숙명이다. 성대한 만찬과 화려한 의전만 받는 것이 대통령의 자리이자 임무는 아니다. 사실 이번 모욕은 지난 5년간 외교적 엇박자를 낸 탓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권의 실책으로 인해 모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색내거나 변명하지 않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그런 면에서 모욕을 인내한 문 대통령과 외교안보팀에 대해서는 경질이라는 차가운 비난보다 따뜻한 격려가 먼저 필요하다.
기자단 폭행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가 억울함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모 정치인의 말대로 수행기자단이 폭행을 당했다고 해서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로 귀국했다면 그 이후 감당할 수 없는 중국의 무례한 보복이 계속될 것이다. 기자단을 밖으로 끌고 가서 구둣발로 짓밟은 중국 경호원들의 행위를 보면서 중국의 품격과 대국으로서의 그릇은 딱 그 정도라고 생각해야 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기자단까지 폭행당했다는 점은 분노가 치밀지만 폭행당한 기자들을 위로하고 다시 의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 역시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은인자중(隱忍自重)하며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인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지난달 초,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자금성을 둘러보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눈을 힐끗 돌리며 쳐다보자 지레 놀란 시진핑 주석이 주머니에 넣던 손을 성급히 뺀 모습이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외교가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다. 누구에게나 우월감과 자신감을 보여주는 중국조차 미국 대통령의 눈길에 압도되는 것이 외교의 현실이다. 힘의 논리에 의해 외교가 좌우된다는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임해야 한다”, “자존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알현하러 갔느냐” 등의 비난은 중국의 환구시보와 같은 선동적 매체에 도움만 줄 뿐이다. 언론과 전문가는 무분별한 비난보다 중국에 대한 향후 대응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국제 협상 교육에서 각 국가의 협상 특성을 가르칠 때, 중국인은 특유의 무례함과 느릿느릿한 태도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박한다고 가르친다. 외국과 거래할 때 상대를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모호한 메시지와 무례함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건 중국의 기본 협상 전략이다. 아쉽게도 안보와 경제적 위기가 중첩되는 상황 속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었다.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는 경제적 위기, 북한 핵에 직면한 군사안보 위기, 미국과 중국의 압박 속 딜레마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많지 않았다. 굴욕 외교를 비난하기에 앞서 중국에게 향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지혜로운 탁견(卓見)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과 전문가들의 역할이다. 비난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지금은 무분별한 비난보다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중관계, 삐걱댈수록 긴 호흡으로 가야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여러 사건으로 묻혀버린 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2017년 정유년 12월에 가장 주의해야 할 이슈 중 하나는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한중관계"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정부와 여당은 이번 한중정상회담의 성과와 의의를 여러 차례 강조하였지만, 야당과 보수 언론 등에서는 중국 측의 홀대와 우리 측의 태도를 굴욕적 외교로 지적하면서 조공외교라고 날선 비판을 하였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는 정말 듣기 민망할 정도의 자극적인 표현으로 헐뜯고 비판하였는데, 이런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한다고 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특히 한중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한중관계를 어떻게 설정해 나갈 것인가를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역사를 통하여 꼬여있는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가장 현명하고 실리적인 방법도 찾아 낼 수 있다. 변함없이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 이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면, 미래를 위한 준비도 가능할 것이다.

▲ 지난 11월 11일(현지 시각)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 계기에 정상회담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청와대
먼저 중국의 역사에는 장기간 분열되어 치열한 경쟁이 시대를 이끌었던 춘추와 전국시대가 있었다. 특히 춘추시대에는 천하를 통치하던 주(周) 왕실이 그 권위를 상실하고, 주(周) 왕으로부터 분봉된 제후들이 거의 독립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렇게 주 왕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세력이 강한 제후가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周)왕을 대신하여 국제질서를 이끌곤 하였다. 이 때 각 제후국 간의 가장 중요한 외교관계가 바로 '회맹'(會盟)이라는 것이었다.
이 회맹은 춘추시대 제후국들이 국방, 전쟁 등 국가 명운을 좌우할 만한 중대 현안에 대하여 맹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국제 관계의 변화에 따라 회맹과 회맹관계를 깨뜨리는 반맹(反盟)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대부분의 회맹은 참여하는 제후국들의 중간 지점 혹은 제3의 장소, 특히 주변에 막힘이 없는 공터나 초지(草地), 호숫가 등을 선정하여 길일(吉日)에 거행하였는데, 이는 다른 제후국의 매복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일단 회맹이 체결되면 관련 국가들은 회맹의 효력이 지속될 동안은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면에서 공동 운명체가 되어 상호 부조하였다. 이러한 회맹을 주도했던 제후들은 중원의 패자(覇者)가 되어 회맹 국가들 간의 협력을 더욱 돈독히 하며 중원(中原)의 평화를 지키고, 천하의 안녕과 봉건 질서를 수호하고자 했다.
이는 당시 천자로 여겼던 주(周) 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주(周) 왕이 중심이 되는 천하질서를 유지하고자, 패자가 등장하여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각 제후국 간의 관계를 이끌어 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나 진(晉)나라 문공(文公)과 같은 제후들은 주변의 크고 작은 제후국들을 모아 회맹을 주도함으로써 패자의 지위에 오르기도 했다. 즉 제(齊) 혹은 진(晉)이 중심이 된 중원(中原)국가가 초(楚)와 같은 변방국가와 대결하면서 주변의 여러 국가와 동맹관계를 성립시켰던 것이 바로 회맹이다. 이 회맹에 참여한 각국 간에는 일정한 규율이 존재하여 각자의 책임과 역할이 있었고, 만약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바로 반맹(反盟)이 됐다.
물론 당시의 상황을 오늘날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당시의 국제 질서를 통해 앞으로의 일을 짐작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제후국가들 사이에는 크고 작음과 강하고 약함에 차이가 있어서 그에 따른 국제질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만약 어느 한 패자(覇者)가 자신들의 부강함만 믿고 서둘러 천자의 지위에 오르고자 하거나 혹은 자기중심적 행태를 보였다면 국제질서가 과연 유지될 수 있었을까? 당시 패자(覇者)들에게는 일정한 권한과 더불어 책임과 의무도 함께 주어졌다. 이를 잘 지킬 때 비로소 그 지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패자(覇者)도 천하의 국제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길게 보고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것이다.
역사 속에서는 조급함 때문에 일을 그르친 경우가 허다하다. 조급함을 중국어로는 '조동'(躁動)이라고 표현한다. 만약 이 조동을 적절하게 사용하게 되면 시간과 경쟁을 하면서 생기(生氣)와 활력(活力)의 근원이 되어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를 균형 있게 활용하지 않고 남용(濫用)하게 되면 일을 그르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풍광(瘋狂) 상태로 이끌어 인류의 재난(災難)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면 근대화 이후의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의 반열에 오르고자 한 무절제한 조급증 때문에 결국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의 세계적 재난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신(新) 중국 성립 이후 이러한 조급함 때문에 문화대혁명이라는 재난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동(躁動)문제를 한중관계에도 그대로 적용하여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와 국가 간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의 관계와 질서는 유지할 수밖에 없고, 또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조동하지 말고 그 차이를 인정하면서 구동존이(求同存異) 혹은 구동화이(求同化異)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공동의 협력을 추구한다면 양국의 관계 또한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존이(存異)와 화이(化異)는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한중정상회담에서 제시했던 '역지사지'(易地思之)와 관련이 깊다. 역지사지는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는데, '처지가 바뀌면 모두 그럴 것이다'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이와 관련하여 맹자 <이루편>에는 또 "다른 사람을 예로써 대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태도를 반성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대해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자함을 반성하고, 다른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반성하라(禮人不答反基敬, 愛人不親反基仁, 治人不治反基智)"는 말도 나온다.
이 말도 모든 일에서 타자(他者)와 관계를 맺고 유지할 때,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고 자신을 성찰하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라는 관계 유지의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국제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면 더욱 미래 지향적 관계 수립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제19차 당 대회에서 21세기 중반까지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특색의 세계적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대국화(大國化)를 완성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럼 대국화를 추구하는 중국이 대국에 걸 맞는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하여 이번 한중 정상회담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사건들을 보면, 중국이 정말 대국으로써 그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의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자국 중심의 대외 정책을 추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국이 진정 대국의 길로 가고자 한다면 크게 보고 길게 생각하고 가야할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중관계는 역사상으로 볼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어느 한 시점에 발생한 일들로 인하여 일희일비하면서 단견적(短見的) 안목으로 양국의 관계를 악화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한중 양국 모두는 결코 절제 없이 조동(躁動)하지 말아야 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으로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물론 중국도 진정 대국의 길로 나가고자 한다면 소심한 복수로 도도히 흐르는 한중관계의 물결을 흐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지원 교수는 현재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혼밥은 죄가 없다
[신동기의 잉여Talk(1)] ‘대통령의 혼밥’ 자체가 중국 국민 마음 사는 고도 정치 행위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 ㅣ dgshin0825@daum.net | 승인 2017.12.27(수) 14:30:00
[편집자주]
시사저널은 앞으로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가 쓰는 ‘신동기의 잉여Talk’를 연재합니다. 신 칼럼니스트는 현재 기업이나 대학 MBA/최고경영자 과정, 정부기관 등에서 인문학&경영학 융합 내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 했을 때다. 기껏해야 3년 서울을 떠나 있었을 뿐인데 낯설어 진 것들이 많았다. 일본 현지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이제 좀 일본을 제대로 즐겨볼까 할 즈음에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이 인사발령이 나 아쉽게 귀국했는데, 이제 다시 또 현지적응(?)에 나서게 됐다.
낯설어 진 것 중 하나가, 나도 주재원 나가기 전에는 그랬겠지만 ‘회사 사람들이 혼자 밥 먹는 것을 매우 불편해 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혼자 밥 먹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인격 문제와 연결 짓기까지 하였다. 다소곳이 혼자 앉아 밥을 먹으니 창피를 살 일이 없고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먹으니 인격이 들어날 일도 없는데도 말이다. 오전 내내 보직자들은 일보다 점심 파트너 찾는데 더 열성인 듯 했고, 점심시간 임박해 약속이 취소되는 불상사라도 벌어지면 얼굴이 사색이 되어(?) 허둥댔다. 혼자 밥 먹는 것이 그야말로 그들에겐 공포였다. 한마디로 ‘혼공증’, 즉 ‘혼밥 공포 증후군’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2월14일 오전 중국 베이징 조어대 인근 한 현지 식당에서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인 만두(샤오롱바오), 만둣국(훈둔), 꽈배기(요우티아오), 두유(도우지앙)을 주문해 식사하고 있다. 왼쪽은 노영민 주중 한국대사. © 사진=연합뉴스
‘혼밥’ 통해 미래 내다보는 시간 가져야
일본에서는 혼자 밥 먹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더 많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당에서 또는 회사 근처 공원에서 혼자 식사를 한다. 도시락으로 공원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캔으로 된 차 마시고 혼자서 담배 피우고 혼자서 쓰레기를 치운다. 혼자 먹는 사람이나 그것을 보는 사람이나 그것을 이상異狀(abnormal)하게 여기지 않는다.
언젠가 책에 그렇게 썼다. 직장인들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혼자 점심 먹는 요일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고. 곰곰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 앞으로를 내다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직장인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힘들다. 회사에서는 일에 치여, 집에서는 집안일 치우느라 늘 정신이 없다. 출퇴근 시간? 그 시간은 전쟁 아니면 모처럼의 평화다. 서서 가면 전쟁이고 자리에 앉으면 몸과 함께 정신도 쉬어줘야 하는 성역의 평화다.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1년이 쌓여 삶이 된다. 지난 한 달 동안 한 시간이라도 자기 혼자 있는 시간, 오롯이 자기의 삶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면 앞으로 1주일, 한 달 아니 사회생활 하는 내내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기 쉽지 않다. 혼밥 시간은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다. 운전할 때처럼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사고를 내거나 할 염려도 없다. 1주일에 하루 점심을 혼밥 시간으로 정해 놓으면 한 달이면 4시간, 1년이면 52시간이나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계획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보면 ‘혼밥 공포 증후군’이 아닌 ‘혼밥 탐닉 증후군’이 생길 수도 있다. 지나친 탐닉도 마찬가지로 병(증후군)이다.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이 논란이다. 기사로, 칼럼으,로 사설로 거의 신문 전체를 도배할 기세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여러 정치행위 선택지 중 참모들은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행위를 선택한다. 국내 아닌 국가 간 문제에 있어서는 당연히 상대방과의 조율이라는 강력한 제약 하나가 더 추가된다.
사드 배치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반한 감정은 시진핑이나 리커창과 같은 중국 지도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도자의 지시든 언론의 영향 때문이든 중국의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반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해지고 있는 중국의 유무형 보복은 중국 지도자의 입장 변화와 더불어 중국 국민들의 정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의 반한 감정 해소에는 한중 최고지도자 간 신뢰 회복은 물론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정치행위가 함께 요구된다.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은 바로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 고도의 정치행위다. 그 중에서도 ‘공감’을 사는 행위다. 중국 국민들의 마음을 사는 같은 외교활동이지만 한류 스타들의 만찬 참석은 ‘선망의 대상’이다. 반면에 서민식당에서 갖는 대통령의 서민 식사는 바로 ‘공감의 대상’이 된다. 정서적으로 한편이 되는 바로 그 ‘공감’이다.
그렇게 되면 이른바 혼밥은 혼밥 아닌 만萬밥이 된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중국 지도자 한 사람과 식사를 하면 그것은 쌍雙밥에 그치겠지만, 13억 인구가 매일같이 이용하는 식당, 매일같이 먹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13억 인구 중 1억의 공감이라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만밥, 아니 1억밥이 된다.
문 대통령의 혼밥, 비난보다 속뜻 알아야
사실 대통령 혼밥의 원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재직 중 관저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혼밥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갖는지 그것을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시간에 중국 일반 서민식당에서의 식사 아닌 어떤 다른 일정을 갖았더라면 국가이익에 더 큰 도움이 됐을지는 알 수 없다.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을 문제 삼는다면 바로 이 부분을 문제시 하는 것이 맞다. 같은 시간에 훨씬 더 국익에 도움이 되는 다른 대안을 제쳐두고 왜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을 했냐고 따지는 것이 옳다. 물론 양쪽 대안의 국익 효과를 평가하는데 사회적 합의는 필수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이른바 ‘대통령의 혼밥’은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중국 국민 13억을 아침 식사에 초대한 거대한 밥상이다. 당연히 혼밥 아닌 만萬밥이고, 어쩌면 1억밥 13억밥일 수도 있다. 1억밥인지 13억밥인지는 지금부터 중국의 여론, 중국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혼밥은 죄가 없다.
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및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현대경제연구원이 ‘휴가철 CEO가 읽어야 할 도서(2015년)’로 선정한 《네 글자의 힘》을 비롯해 《아주 낯익은 지식들로 시작하는 인문학 공부》, 《회사에 대한 오해와 착각을 까는 인문학적 생각들》, 《생각여행》, 《인문경영으로 리드하라》, 《인문학으로 스펙하라》, 《독서의 이유》, 《해피노믹스》, 《직장인이여 나 자신에게 열광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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