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은 화해시키고, 치유하고 구원한다"
[이야기 聽] ① '노인들의 이야기 집'을 꿈꾸며
화가 김정헌의 '이야기 청(聽)'을 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김정헌은 '경청'을 통해 노인들의 삶과 이야기에 주목할 것을 사회적으로 제안합니다. 그는 '서사적 인격'의 맥락에서 노인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시대, 그리고 마을의 소중한 기록이자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그 경청의 주체로서 청년들을 등장시켜 세대 사이의 소통과 공감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화가 김정헌이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이야기 청' 프로젝트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편집자.
'이야기 청'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담는 집이다.
나는 그동안 '이야기' 주위를 돌고 돌아 다시 이야기에 꽂혔다. 나 개인적으로도 어느 자리에서건 주로 듣는 경청자의 자세를 견지하려 노력해 왔다. 사실 50년에 이르는 나의 화업(畵業) 자체가 그림 자체를 시각언어로 담아내는 이야기로 생각하며 작업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실제로 젊은 예술가들과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를 만들고, 몇 년 전 충북 제천 대전리의 폐교를 빌어 '마을 이야기 학교'를 만들어 주로 마을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활동을 한 바도 있다. 페이스북에 80여 회에 걸쳐 '나의 옛날이야기'를 실어 작년에 열린 내 전시회에 맞추어 <그림이야기-이야기그림>라는 자그마한 책을 내기까지 했다.
촛불 시민 혁명이 대선으로 어느 정도 갈무리 되어 갈 즈음 예전부터 벼르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이야기 청'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 프로젝트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노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젊은 예술가들이 자기의 작업으로 전환하는 일을 구상한 것이다. 노인들의 살아온 삶과 청년예술가들이 결합하는 공익적인 프로젝트인 셈이다.
이야기 청 활동은 지난봄 몇몇 젊은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들과의 작은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노인들의 이야기와 예술 창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노인, 구술, 창작 등에 대한 자유로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 온 구술 전문가, 노인 연구자 등을 초대하여 경험을 나누었다. 이 과정에서 이야기 청 활동은 서울문화재단과 성북문화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사회적 프로젝트로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6개월여에 걸친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으로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의 '선잠52'라는 대안공간에서 11월 17일부터 12월 10일까지 노인들과 작가들이 함께 만드는 워크숍과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이야기 청을 제안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노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종로 탑골공원 주위에는 할 일 없는 노인네들로 넘쳐흐른다. 내가 자주 이곳을 지나며 봐온 이 노인네 군단(?)이 '단순히 급식 정도의 복지정책으로 해결한다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국가나 지자체가 저마다 복지정책을 열심히 펼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 말고도 그들의 품위를 지켜줄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여기서 문화란, 자기의 삶을 성찰하고 되돌아봄으로서 생기는 일종의 자각이며, 자기 존엄이며 자기의 삶에 대한 자긍심이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치유인 셈이다.
노인네들은 누구나 기회만 있으면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 한다. 기회만 있으면 '발화(發話)'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많은 노인네들이 이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들에 싸여있음에도 발화의 기회는 좀처럼 없다. 독거 노인네로 살거나 핵가족 시대에 젊은이나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야만 하기 때문에 더욱 발화의 기회는 없다. 서울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노인네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젊은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그들의 살아온 삶을 '발화'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창훈 지음, 한단화 그림,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한창훈의 우화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한단화 그림, 한겨레출판 펴냄)에는 '쿠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이라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쿠니는 공원에서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발화'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준다.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반복되어 쿠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전문가가 된다. 그래서 쿠니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집'을 만든다. 여기에서 노인네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쿠니에게 '발화'함으로써 자기의 삶에 활기를 얻고 자기들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든다.
7, 8년 전 나와 젊은 예술가들이 만든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에서는 제천에 있는 대전리라는 마을에 폐교를 이용해 '마을 이야기 학교'를 만들고 몇 년간 이런 활동을 펼친 바 있다. 마을 노인들이 살아온 척박한 농촌마을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으로 그들은 어느 정도 행복감과 자신감을 갖는 것을 실제로 목격한 바 있다(이는 마을 만들기 활동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마을의 활력 증진에 이바지했는지는 의문이다).
또 다른 중요한 사례가 있다. 전문적인 연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20세기 민중생활사 구술열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현수 영남대 인류학과 교수의 주도로 100여 명의 연구교수와 연구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로 '20세기 민중생활사 연구단'이 그 주축이었다.
이는 근현대를 살아온 많은 이름 없는 민중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두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들은 역사학에서는 취급되지 않는 수많은 민중들의 살아온 이야기에 주목했고 그들이 살아온 여러 자취들, 부엌살림 살이나 어린이 장난감 같은 생활 물증 등의 민속자료에서부터 개인이 간직해 온 사진과 서류 등 메모 형식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의 기록을 수집하고 채록했다.
그중에 가장 빛나는 성과가 6권짜리 <20세기 한국 민중의 구술 자서전>과 46권으로 펴낸 <한국민중구술열전>이다. 이들은 전국 각 지역에서 비교적 고르게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선정하고 한 사람의 연구원이 장시간에 걸쳐 면담과 구술 채록, 현장 방문으로 이 민중들의 구술 채록을 완성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노인네들은 민중들의 극히 일부분이지만 '이름 없는 개인의 역사를 사회의 역사 속으로, 또 사회의 역사를 개인의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였다.
위에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이름 없는 민중(노인네)들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발화)'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들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고 기억을 끌어 올려 누구에게 이야기할 때, 그들에게는 자기의 잃어버렸던 존엄을 되찾는 일이 될 것이다. 또 누구에게는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마르셀 프루스트가 어렸을 때 먹었던 마들렌 과자와 차 한 잔의 맛을 기억해 냄으로써 그는 저 유명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라는 긴 소설(전 6권)을 쓰게 되었듯이, 누구에게나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거나 기억을 더듬는 일은 단순히 과거를 불러 드리는 일이 아니라 지금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아 현재와 앞으로의 자기 인생을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에는 '발화자(發話子)'가 있듯이 '수화(受話子)'도 있어야 한다. 즉 '듣는 이'가 있어야 한다. 노인네 발화의 수신자는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될 수 있겠으나, 노인네들만큼 삶의 경험이 없는 20대나 30대의 젊은이일수록 좋다. 왜 젊은이여야 하는가? 대물림의 원칙이다. 즉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대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 정의란 무엇인가>(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와이즈베리 펴냄)에서 저자 마이클 샌델은 "모든 인간은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는데 이는 고립된 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미래까지 이야기(서사)의 한 부분"이라며 '서사적 인격'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한 인간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에서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한 인간의 권리와 의무는 그의 서사적 인격, 즉 대물림받은 이야기와 관련돼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은 노인네들의 다양한 삶의 경험을 들을 의무와 권리가 있고, 그들로부터 다양하게 살면서 느껴 온 감성을 물려받을 수 있다. 여기서는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하지만 젊은이들이 현대의 여러 매체를 활용해 그들의 이야기와 여러 물증을 다양한 방법으로 기록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수화자는 단순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모든 이야기(발화된 말)는 듣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철학자 한병철이 말한 대로 '경청(敬聽)'해야 한다.

▲ <모모>(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 ⓒ비룡소
한병철은 그 예로 미하엘 엔데의 <모모>(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를 사례로 든다. 모모는 단지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말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일으킨다.
"그럴 때 … 상대는 자기 안에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경청하면 혼란에 빠지거나 어찌할 줄 모르던 사람들도 갑자기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 사람들은 말하는 도중에 이미 자기가 자신을 아주 잘못 생각했고, 정확하게 자신과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이고, 그래서 자신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모는 이렇게 경청할 줄 알았다!"
"경청은 누구에게나 그에게 속한 것을 되돌려 준다. 경청은 화해시키고, 치유하고 구원한다"는 것이 한병철의 지론이다.
'노인들의 이야기 집'은 노인들 자기의 삶을 '발화'함으로써 자기의 삶에 대해 긍정적인 자부심을 갖게 하고, 이를 경청할 줄 아는 '젊은 예술가(경청자)'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진 서사적 인격을 갖게 하는 두 가지의 의미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앞으로 '노인들의 이야기 집'이 전국 곳곳에 만들어져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세대를 뛰어넘어 만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적 사랑방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모든 이야기는 나를 중심으로 출발한다
[이야기 聽] ② '이야기 듣는 길' 그리고 '이야기 담는 집'
2017.12.08 17:14:20
인류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소멸했다.
개인이나 가족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미시(微時) 서사부터 부족이나 국가 같은 큰 집단의 거대 서사들-신화, 전설 등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생성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나를 중심으로 한 미시 서사로부터 출발한다.
예술의 기원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한 브라이언 보이드는 예술을 '이야기'와 동일 선상에 놓고 설명한다. 특히 만들어진 이야기인 픽션에는 예외 없이 가상의 세계와 상상력이 작동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나와 같은 시각예술 작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거대하고 스펙터클한 그림이 경탄을 자아낼 수도 있지만 관객은 작고 소소한 그림에서 더 큰 감동을 가질 수도 있다.
모든 노인들의 살아온 이야기는 기억을 소환하여 실제와 같이 이야기하지만, 대부분은 현재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생존에 맞추어 재가공 된다. 어떤 기억이 희미하거나 망실된 부분은 현저히 자신의 처지에 맞추어 가공된다. 그러나 대부분 노인들의 이야기는 그 자신만이 가지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는 회한과 슬픔으로 가득 차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또 다른 노인들은 이야기 도중에 흥이나 노래와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런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예술가들이 자기의 작업으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청'에 젊은 예술가들의 참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이런 제안을 하게 된 데에는 작년에 내가 개인전을 했던 '아트스페이스 풀'이 연관되어 있다. '아트스페이스 풀'(이하 '풀')은 알려진 대로 대안공간이며 젊은 미술가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나처럼 늙은(?) 화가는 전시회를 잘 허락하지 않는 공간이다. 이런 데서 내가 전시하기를 원한 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기질 때문인데, 기존 화랑의 돈 냄새가 싫어서이기도 하지만,(기존 화랑에서 나에게 먼저 제안을 해 오지도 않아서였다가 맞을지도 모른다) 젊은 미술가들과의 어울림이 나의 그림에도 생기를 주기 때문이다.
'풀'은 매년 젊은 미술가들을 공모해 지원자 중 3~4명을 뽑아 1년 동안의 워크숍이나 숙의 과정을 거쳐 매년 말 전시회를 열어준다(이를 '풀·앱' 공모전이라고 한다). 모든 예술 판이 다 그렇듯이 미술판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풀·앱'에 한 해에 약 200여 명 정도가 지원한다고 하니, 미술판의 실정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내가 이 공모 프로그램에 매년 1000만 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젊은 미술가들에게서 얻는 생기와 영감을 이 자그마한 지원으로 보답하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을 마친 젊은 작가들과 같이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이야기 청' 활동을 제안하게 되었고, 그들은 대부분 나의 설명을 듣고 '이야기 청'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 '풀·앱' 1기 작가들을 중심으로 마침 성북동에 '선잠52'라는 자그마한 문화공간을 만든 황지원·이원재 부부의 합세로 이 노인이야기 구술과 젊은 작가들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성사되었다.(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나와 함께 활동한 오랜 동지다. 그는 지금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에서 활동 중이고 일찍 성북구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 활동을 해왔다)
이외에도 이 프로젝트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주로 성북구에서 활동하는 지역 작가들과 노인 구술을 전문적으로 시도하려는 젊은 민속학자 등이 합류하면서 6개월여 걸친 일정이 진행되어 지금 그 결과물들이 전시 중이다. 그들의 작업을 차례로 이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무진형제의 '태각'
'무진형제'는 정무진, 정효영, 정영돈 삼 남매로 이루어진 팀이다. 이들은 각각 문예창작, 조소, 사진을 전공했다. 이들은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낯설고 기이한 감각과 이미지를 포착해 우리 삶의 새롭고 낯선 지점을 조명한다. 우리 삶에 깊이 감춰져 있던 신화나 전설의 이야기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역사적 탐색, 고전 텍스트의 재해석 등을 영상 언어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들은 이번에 노인 참여자들에게 각자의 '태몽'과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그 후 태몽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예를 들면 동물, 과일 등)을 자유롭게 그리게 하고, 이를 성북동에서 오랫동안 도장집을 운영한 주인에게 부탁해 고무인장을 만든다, 참여 노인들은 각자의 태몽과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인간의 삶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한다. 흔히 태몽 같은 노인들의 이야기를 다른 노인들과 젊은 예술가들이 이를 함께 소통하고 공유함으로써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적인 서사로 바꾸어 나간다.

신정균의 '은신술 특강'
신정균 작가는 실제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가 맞닿는 지점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일상에 존재하는 상징과 그 안의 단서들을 찾아보고 있다. 그는 이번에 특수임무 유공자회 소속의 노인이 주체가 되는 강좌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소위 'HID'라 불리는 북파공작원은 이름이나 군번, 뚜렷한 부대 명칭 없이 비밀 활동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들은 국가로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공적을 인정받지 못해 사회적 갈등을 겪어왔다.
이들이 과거에 경험한 특수 훈련의 상당 부분은 발자국이나 채취 등의 흔적 제거나 잠복과 같은 몸을 숨기는 활동이었다. 작가는 이들의 노하우 요령 등의 전수 활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스스로를 감추고 가리는 행동 양식을 이야기함으로써 잊힌 과거의 경험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시간을 기대한다. 이를 통해 노인 스스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에게는 분명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고찰해 볼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북파공작원과 관련된 대형사건으로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실미도 사건'이 있다)
실제로 워크숍 때 이 북파공작원 출신 노인이 '선잠52'에 와서 은신술 특강을 직접 했다.

강기석의 '기념극 퍼포먼스'
강기석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자아의 탐구 과정을 작품의 중심주제로 놓고 여러 매체를 활용해 작업한다. 작가는 수개월 동안 성북구 석관동에 위치한 의릉 앞에서 노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가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들게 했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반복하기,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떤 이야기는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인'이라는 계층은 언젠가 나도 경험할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하나의 목소리이면서 인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과정을 수개월에 거쳐 이야기를 듣고 알아가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로 다시 들려주어야 할 당위를 갖게 되었다.
그는 워크숍 전에 개인전 형식으로 이 자기의 목소리 퍼포먼스를 가진 바 있고, 이를 이번 전시에서 영상으로 제출했다.

박건희의 '듣기 위한 거리'
박건희 작가는 마음의 상처와 치유의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상담사이며 임상심리사다. 그리고 미술작업을 동시에 하는 프리랜서 작가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행위다. 그러나 만약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한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면 그것은 특별한 '무엇'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특별한 무엇을 위해 어디쯤 서 있으면 좋을까?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적정한 거리란 얼마만큼일까? 그래서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무수히 많은 요소에 따라 그 거리는 달라질 것이다. 작가에게 노인이란 부정하고 싶은 미래이며 그래서 거리 두기를 하는 대상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 나아가 마음을 주고받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도전이며 실패를 감수한 모험이 된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이번 박건희 작가의 퍼포먼스는 노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거리를 두고 있던 대상과 그리고 낯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로의 적절한 거리를 가늠하고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거리를 찾는 과정이 이번 퍼포먼스로 보여준 것이다. 가까워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 되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원칙이 이 '소통의 거리'에도 적용된 것이 아닐까?

이은희‧정혜원의 '내 이름은 ○○○입니다'
이은희 작가와 정혜원 작가는 각각 시각예술과 다큐멘터리를 전공한 영상작가들이다. 이들은 여성 노인이 가진 이름과 그들의 사연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신 여성 노인들과 함께 그들의 삶의 내력을 공유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들은 참여 노인네들과 다과상에 둘러앉아 그들의 이름, 별명, 호칭에 관한 일화를 통해 자신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다 현대무용 안무가 주혜영을 초대하여 오갔던 대화와 이야기를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워크숍을 통해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움직임을 해보고 일상 속 즐거움을 공유하게 했다. 타인의 추억과 기억을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갖고, 그들이 그린 그림을 두루마리 그림으로 인쇄해 그들의 이야기 가운데 짤막한 대목을 같이 프린트해 전시했다.
노오력탐방단의 '노인과 (긴장한) 우리 사이'
소준철, 이민재, 최혁규로 구성된 '노오력탐방단'은 사회학, 민속학, 문화연구를 하는 소장 학자 팀이다. 이들은 노인들의 노력(그들 방식으로는 '노오력'으로 표기한다)을 추적하고 탐방하여 주로 구술 채록을 하며 논다. 그들은 노인들을 찾아가 일하고 밥 먹고 수다 떨면서 노인의 생활양식을 기록한다.
이들은 성북구의 한 경로당에서 노인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소일거리를 하고 수다를 함께 떤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이 현장을 기록하고 정리한다. 이렇게 생산하고 수집한 연구 자료들을 모아 그들의 서로 간의 관계, 그들과 경로당과의 관계, 자기들과 그들의 관계를 여러 가지 사회적인 관계망으로 추적하고 분석한다.
전시에는 그동안 노인들의 추적 경로를 담은 자료들과 그들이 분석한 과정을 내보인다. 이들의 작업은 노인 구술의 정수가 될 것이다.

이 작가들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인들과의 접촉 과정에 참여한 이들이 있었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50년을 붙박이로 살아온 이장재 선생의 정릉동 이야기를 '이야기 청'에 관계된 젊은 작가들이 집단으로 청취하였고, 이야기 구술전문가인 최현숙 선생을 모셔 노인 구술에 대해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다.
또한 워크숍 기간에 노인과 함께 예술 활동을 해 온 다른 작가들의 사례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클리라멘의 '망우방 : 삶을 이야기 나누고 금심을 덜어내는 방', 작업장봄의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인천이야기', 예술공동체 스케네의 '청춘랜드 그림책 관람차' 등이 자신들의 사례와 경험을 발표하였고, 이 자리에 이야기 손님으로 나와 최현숙 선생이 자리를 같이했다. 이외에도 이야기 청의 이번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자치문화센터의 김재상, 유진호 등 청년들의 참여와 공로가 컸다.
세상 어디에서나 이야기가 존재하고 계속되듯이, 이야기 청의 작업은 이번 프로젝트 이후에도 세상 곳곳에서 계속될 것이다. 이야기 청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서사적 인격'들이 함께 마주하고 공감하며 협력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마을 곳곳에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