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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공개 설정,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이유

일취월장7 2017. 11. 9. 09:59

위치 공개 설정,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이유

  • AhnLab
  • 2017-11-08

IT기업에 다니는 이 모 과장.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 돈무앙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 전원을 켜고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추천 알람이 뜬다. ‘ㅇㅇㅇ님 외 친구 ㅇㅇ명이 방콕을 방문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내가 어딜 갔는지, 친구들이 어딜 갔는지, 그리고 해당 인물을 클릭하면 방콕의 어디 어디를 방문했는지도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가. 스마트폰은 내 비밀의 시간마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미지 출처: Maxx-Studio/shutterstock.com)  

 

위치 추적의 장점들

#1. 어느 한적한 비포장 시골길을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섰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방법은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르는 거다. 한적한 시골길이니 이정표나 전봇대도 없다. 보험사 콜센터 직원은 “스마트폰 위치 추적에 동의하면 견인차를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견인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한다. 

 

#2. 어젯밤 부서의 회식이 있던 날. 김 대리는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어떻게 끝내고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핸드폰이 아무리 찾아도 없다는 거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PC의 구글에 접속해 관리자 화면으로 들어가니 구글맵이 뜨면서 정확도 몇 미터라고 뜬다. 지도를 보니 ㅇㅇ 노래방으로 나온다.

 

위의 경우처럼 스마트폰의 위치 추적은 GPS가 내장된 덕분이다. 자동차마다 거추장스럽게 달려있던 내비게이션이 스마트폰으로 대체된 것도 GPS(위성항법장치)가 내장된 위치기반서비스(LBS)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GPS는 해외여행의 번거로움을 해소시켜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대중교통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별도의 앱 없이 구글맵에서 가고자 하는 목적지만 입력하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맵 상에서 내비게이션처럼 움직이는 위치를 보고 있다가 목적지에 내리면 된다. 누구한테 몇 번을 타야 하는지, 어디에 내려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해외여행이 두렵지 않다.

 

해외 여행 시 우버나 국내에서 카카오택시 등을 이용할 때도 자신의 위치 정보 덕분에 내가 있는 곳 바로 앞까지 택시가 멈춰선다. 과거처럼 콜택시 교환원에게 전화해서 여기가 어딘지 꼬치꼬치 약도를 보며 설명할 필요도 없다.

 

편리한 위치 추적, 하지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는 건 흔한 일이 된 지 오래다. 특히 휴가철엔 서로 질 새라 너도나도 여행 사진들을 올린다. “가족과 함께 해외 여행 갑니다”하며 공항 인증샷 올리기, “제주도에 왔는데 맛집 소개해 주세요”하며 올리는 요청 글까지. 굳이 SNS에 장소를 쓰지 않아도 스마트폰은 내 위치를 알고 있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ㅇㅇㅇ에 체크인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 단체 사진을 올리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해서 ‘ㅇㅇㅇ님이 맞습니까?’라며 자동 태그하는 것에 비하면 장소 체크인쯤이야 식은 죽 먹기 일지도 모른다.

 

최근 출시된 디지털카메라들은 GPS와 와이파이 모듈을 장착해 촬영한 사진에 위치정보를 담아 SNS에 손쉽게 올릴 수 있는 제품도 많다. 여기엔 지오태깅이라는 기술이 사용된다. 지오태깅(Geo Tagging)은 SNS에 사진을 올릴 때 위치 정보도 함께 표시해주는 기능. SNS를 이용하면서 지오태깅이라는 기능을 사용하면 사진만으로도 누구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었는지 사생활 노출될 수 있다.

 

이처럼 내 실시간 위치 정보가 결코 달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흑심을 품은 누군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사례가 많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절도를 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페이스북에서 “여행 간다”고 올린 사람들의 집을 골라서 턴 절도범이 검거되기도 했다. 해외 웹사이트인 ‘우리 집을 털어줘(Please Rob Me)’에 접속하면 현재 누구의 집이 비어 있는지 리스트를 보여준다. 이 사이트의 개발자는 사람들에게 위치 정보의 공개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기 위해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오프라인에서는 빈 집이 아닌 것처럼 신문이나 우유 배달을 일시 중지시키지만 온라인에서는 “우리 집은 빈 집”이라고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클릭! 비밀은 없다>라는 책을 보면 현대인들의 생활, 그 많은 부분에 관련되어 있는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는 디지털 감시의 실체와 실태, 수집된 개인정보 때문에 발생하는 사생활 침해를 다루고 있다. 클릭하는 순간, 웹 브라우저에 설치된 추적 프로그램으로 누군가와 주고받은 메일 내용까지 국가가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빌미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사용자가 삭제하더라도 몰래 자동으로 되살아나는 추적 프로그램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위치 정보도 예외는 아니다. 위치 정보를 이용한 앱과 서비스는 개인들의 스마트폰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건 분명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올린 위치 정보로 인해 스스로 위험에 처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고 편리함을 제공해주는 위치 정보를 모두 ‘체크 해제’할 필요는 없다. 앱에 따라, 혹은 게시글의 성격에 따라 공개로 할 지, 비공개로 할 지 선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위치 정보 공개는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조항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