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

일취월장7 2017. 9. 25. 12:07

사드배치=MD편입, 한반도는 이제 '전장'이 됐다

[인터뷰]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 저자 이만열 ①
전홍기혜 기자      이명선 기자   2017.09.22 14:40:37

22일 현재 미국 뉴욕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총회 주인공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날렸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은 22일 성명을 발표해 "우리도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맞섰다. 


이 같은 미국과 북한 간의 '말 폭탄' 싸움은 남한의 무기 배치로 이어진다. 유엔총회에 참석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을 연달아 갖고 '한국의 최첨단 군사 자산 획득'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첨단 무기'는 미국의 핵 추진 잠수함을 한국이 사는 것 등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고 언론들은 해석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결정한 사드 배치를 사실상 완성한데 이어 또 '최신 무기' 구입을 검토하는 형국이다. 지난 19일 뉴욕에서 '세계시민상'을 받고 "나는 촛불 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며 "세계 평화와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소감을 밝힌 문재인 대통령은 왜 전임 대통령과 외교안보정책에 있어서 아직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을까?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레드우드 펴냄)의 저자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이 질문에 대해 "사드 배치와 외교안보정책 등은 문 대통령의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 문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 및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협정(GSOMIA)과 연결"된 한미일 군사 협력 체제의 '큰 그림'의 일환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이런 '큰 그림'이 "과거와 달리 남한을 보호한다기보다는 한반도(남한)를 전장(戰場)으로 보고 있고, 그 전쟁의 결정이 과거와 달리 대통령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전쟁 여부를 결정하고 실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칫 문재인 대통령이 부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중동에서 군사적 긴장을 이어갔던 오바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이 교수는 우려했다. 


문재인 정부가 전임인 보수 정권과 다른 정책 노선으로 자신감 있게 옮겨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전략 부재"를 원인으로 찾았다. 과거 노무현 정부도 대미 관계에서 "힘 있는 공화당 사람만 찾았던 것"처럼 현재 문재인 정부도 정치적 색깔을 같은 정계, 학계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이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는 또 '안보'의 개념에 대해서도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현실화될 가능성보다 '북한의 사막화'가 훨씬 더 가능성이 높고 위험한 일인데, 남한의 정부와 언론은 어느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이 기후변화 문제에 앞장선다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고 친미(親美) 혹은 친중(親中)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2년 전 쓴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세기북스 펴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휴가 기간 읽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교수와 인터뷰는 지난 9월 13일과 19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인터뷰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한국 이름은 '이만열(李萬烈)'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유통기한 지난 사드, 대단히 위험하다 

프레시안 :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사드(THAD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가 한반도에 전격 배치됐다. 박근혜 정부가 들여온 사드를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완성했다. 어떻게 보고 있나.

이만열 : 많은 전문가들은 사드를 '과거형 무기'라고 말한다.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는 미국이 유통기한 지난 우유나 달걀을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다. 비싸게 샀는데, 미안하다.(웃음)

사드 배치 문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MD) 체계 및 한국과 일본의 군사정보협정(GSOMIA)과 연결되어 있다. 한·미·일 군사 협력은 한반도에서 언제든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한·미·일 군사 공동체 구축에 대한 워싱턴의 의도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

특히 MD는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대의 미사일 발사가 확인되는 순간, 곧바로 군사 작전에 들어간다. 발사된 미사일이 실전인지 훈련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대단히 위험하다. 전쟁은 대통령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만, MD는 시스템에 따라 전쟁 여부를 결정하고 실행한다. 다시 말해 한·미·일 군사 복합체 내에서 내려진 애매하고 불투명한 결정으로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위험성이 크다.

2002년 미국 부시 행정부는 1972년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을 파기하고 MD를 통해 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했다. 간혹 MD로 저항 비행 미사일의 일부를 막을 순 있겠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교란할 경우 핵을 장착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막을 수는 없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 즉 북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역설적으로 미·소 냉전시대 당시 체결한 전략 무기 제한 협정(SALT), 유럽 재래식 무기 감축 협상과 같은 조약뿐이다.  

프레시안 : 민주진보 진영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사드 추가 배치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외교·안보 노선에 있어 보수 정권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만열 : 사드 배치와 외교·안보 정책 등은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결단이 아닐 수 있다.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 미국 정치를 예로 들면, 예전에는 대통령이나 의회가 정책을 결정했다. 하지만 요즘은 싱크탱크나 제3자에게 위탁해 의견을 받고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여러 사람과 악수하는 모습이 보도되지만, 실상은 싱크탱크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도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최형락)


문재인, '한국의 오바마' 되려나  

프레시안 : 사드 반대 이유 중 하나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한·미·일 군사 협력에 따라 이뤄진 일이며, 군산(軍産) 복합체 내지는 거대한 외교라인의 결정에 따라 한반도가 전쟁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수 정권인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일이었기에 사회적으로 큰 불만 없이 끌려들어 간 측면이 있다. 그런데 진보 정권인 문재인 정부도 다른 바 없다는 말인가. 

이만열 : 군산 복합체 입장에서는 박근혜 정부보다 문재인 정부가 낫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상황이 비슷하다. 오바마 정권이 2009년 부시 정권을 대신에 백악관에 입성하자 '오바마는 부시보다 낫다. 그러니 당분간 참아 보자'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큰 실수였다.(웃음)  

오바마 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처럼 '변화'를 외치며 당선됐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그의 주변은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같은 월스트리트 은행가로 채워졌다. 또 부시 정부가 8년간 끌어온 아프간 전쟁을 자신의 임기 안에 끝내겠다며 병력을 대규모로 추가 파병했다. 미국의 국방·안보 관련 지출과 정책의 큰 방향을 규정하는 국방수권법(국방예산법) 수정안에 사인하고, 새로운 사이버보안 행정명령에 서명한 사람도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그렇다고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부시 전 대통령보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기득권 세력이 됐든, 군산 복합체가 됐든, 싱크탱크가 됐든, 제3자가 됐든 이들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잘 이용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흑인인데다가 진보적인 성향이었기 때문에 비판적 지식인들이 자신들의 사업과 군사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그를 통해 방어할 수 있었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정권 초기이기 때문에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의견이 주다.  

이만열 :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의 오바마'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바마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반대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정권에 반대하면, 오히려 곤란해지는….(웃음)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끝까지 추진하지 못한 정책을 오히려 쉽게 밀어붙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리버럴을 표방함으로써 사실상 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험한 정책을 펼쳤던 오바마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촛불을 배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잘못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을 감추는 '트로이의 목마'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미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한국 문재인 대통령은 각각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 표지를 장식했다. ⓒ프레시안


한국은 '원투 펀치' 날리는 미국에 구걸하고 있다
 

프레시안 : 책에서 미 육군대학원 전략연구소가 "서울은 군사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도시"이며 "소모전을 벌일 장소로 간주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썼다고 했다.

이만열 :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국방연구가 전반적으로 달라졌다. 옛날처럼 남한을 보호한다기보다는 한반도를 전장(戰場)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시각이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 내일이라도 북한과 전쟁을 할 것처럼 강한 발언을 쏟아내는 동시에 한미FTA 재협상을 요구했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타격하는 동시에 남한에는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말이다. 1950~80년대에는 안보 문제가 있다고 경제 문제를 이처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원투 펀치를 날리듯 군사적, 경제적 무기 모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의 한반도 안보관에 대해 "과거 냉전 시대로 돌아"갔다며 한국이 "트럼프 정권의 시대착오를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다.  또 한국의 외교 전략이 지나치게 미국 의존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만열 : 현재 트럼프 정권이 한국에 내뱉는 발언에는 자유, 민주주의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자는 뜻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대신 비용을 더 지불하라는 요구만 있다. 이는 반(反) 지속적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안보 관련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쟁 무기상에게 구걸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전을 비교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부시 정권을 마주한 노무현 정권은 힘 있는 공화당 사람만 찾았다. 하지만 만나기도 어렵고, 만나도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오바마 정권과 미국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구(舊)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과 '통합민주당' 등을 거쳐 현재 '더불어민주당'이 됐다. 편집자)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보다 냉정한 태도로 외교전에 임한다. 보수, 진보할 것 없이 공화당이나 민주당 양쪽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대통령이 어느 당 출신이든 외교 라인을 강하게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한국은 일본과 같은 외교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나? 미국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지한파(知韓派)'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활용하려는 생각을 왜 안 하는지 의문이다.(웃음)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011년부터 7년 연속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이다. ⓒ프레시안


한반도 통일, 왜곡될 수 있다 

프레시안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핵실험을 연이어 성공시키는 등 초반 우려와 달리 3대 세습 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특히 핵실험을 할 때마다 아버지 김정일 때와는 또 다른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이만열 : 북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한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과거와 분명히 달라졌다.

한국은 북한을 '김 씨 왕조'라며 '고립된 나라'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해외 언론의 동향, MD 체계와 한·미·일 군사 협력 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계획에 따라 핵실험과 미사일 훈련을 실행하고 있다. 물론 일반적인 외교 상식에는 어긋나지만, 북한은 이미 글로벌 시스템의 일부가 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책에서 "한반도 통일 과정은 이미 시작됐다"며 "한국이나 미국의 정책과 무관하게 북한은 글로벌 경제 속에 편입되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만열 : 그게 현실이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남북한의 이념 장벽도 무너지고 있다. 공산주의 이념에 지배되던 당과 군이 사익을 추구하는 과두 집단으로 변하면서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가 계속 흐려지고 있다. 농담이지만, 김정은 정권이 미국 군수업체 주식을 사서 군사적 긴장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웃음) 

프레시안
: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는 이유는 정권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해서다. 남한과의 통일이 아닌, 하나의 국가로 체제 유지를 확고히 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대다수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흡수 통일'과 거리가 있다. 통일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만열 : 동의한다. 북한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핵미사일을 내세운 갈등과 충돌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곡된 통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통일이 되더라도 우리가 원했던 통일이 아닐 수 있다. 한국이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한 채 외부 세력에 의해 통일이 된다면, 왜곡된 통일이 될 것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엄청난 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800만 달러(9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만열 : 대북 지원을 마치 정치적 쇼처럼 하고 있다. 북한과 기본적인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먼저다. 인도적 지원은 2차적인 문제다. 또한 북한을 위협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NO), 그만해라'라고 말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 분명히 표현하지도 못하면서 대북 지원이 가능할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북 지원이 큰 의미가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한국, 안보의 정의를 바꾸어야 한다 

프레시안 : '북한 사막화'에 대한 경고가 신선했다. 한국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개입할 여지가 없어 답답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만열 : 무리한 벌목과 무책임한 농사 관행 등으로 지난 20년간 북한에서 100만 헥타르 이상의 산림이 훼손돼 손댈 수 없을 정도로 토양이 망가졌다(서울대 김승일 교수 주장). 그 결과 매년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사막화는 아시아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매년 50만 헥타르의 토지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은 안보의 정의(definition)를 북핵 위협에서 사막화 위기, 즉 기후변화로 바꾸어야 한다. 북한의 사막화는 군사적 위협과 대조적으로, B-2 스텔스 폭격기나 MD 같은 방법으로 멈출 수 없다. 또한 이런 환경적 위협은 북한을 고립시키는 조치로도 해결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장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미국은 북한, 한국, 몽골, 중국의 사막화 확산을 고려해 북핵 대응 방식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책에서 "'안보'를 기후변화를 포괄한 개념으로 확장해야 한다"며 "기후변화 대응 계획을 주도하는 것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의미인가.  

이만열 : 한국이 기후변화 문제에 앞장선다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특히 한국은 기후변화 대응 계획을 통해 친미(親美) 혹은 친중(親中)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 갈등을 일으킨다면, 한국은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합의한 기후변화 협력과 군사 협력을 상기시켜야 한다. 이런 평화적 행동은 트럼프 행정부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외교 전략일 수 있다.
 
[인터뷰]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 저자 이만열 ②
2017.09.25 10:19:12 
    

2016년을 거쳐 2017년, 한국 사회는 큰 전기를 맞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분노한 국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열었고, '1000만 촛불'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정권이 교체돼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로 이끌어낸 정권교체에 대해 전 세계가 주목했고, 우리 국민들은 큰 자부심을 얻었다.

하지만 촛불집회의 효용이 정권교체로 '끝'이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적폐 청산'은 문재인 대통령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과제다.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레드우드 펴냄)의 저자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촛불시민들이 "장기적이고 구체적으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지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투표로 사회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초인(超人)'을 뽑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초인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감시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지난겨울 칼바람에도 지치지 않고 촛불을 들었던 것처럼, "'습관적 정치'가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특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또 다른 '독재'는 아닌지 소비문화에 대해 성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 사용에 자기 선택권이 있나? 사용자인 우리는 페이스북 운영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어떤 사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할 수도 없다. 페이스북에 공유된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소통하고 투표했다며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자축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민주주의일까? 독재 아닐까? (...) 일상생활에 선택지란 없다. 기업의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 역시 독재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체제만 독재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또한 자유가 없는 '새로운 독재'의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변화의 첫걸음은 절제"라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차분하게 준비하라(Don't get mad; organize!)"고 당부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 인터뷰 2편이다.

(☞ 이만열 교수 인터뷰 ① : 사드배치=MD편입, 한반도는 이제 '전장'이 됐다)

▲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0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확산되는 데카당스, 공동체의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에서 "오늘날 한국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북한도, 경기 침체도, 특정 정치인의 행태도 아"닌 "문화적 데카당스(Decadence, 퇴락)의 확산"이라고 지적했다. 압축적 근대화로 개인화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가 지금에서야 '개인에 대한 발견'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문제는 이런 욕구가 퇴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지만.  

이만열 : 공동체의 미래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음식과 술, 성적 쾌락, 휴식과 스포츠 등에 탐닉하며 단기적인 만족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것이 데카당스다. 이를 '개인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데카당스'가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 이는 단지 한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장 우리 가족만 해도 기후변화나 빈부격차 등 공동체의 미래에 관심이 없다.(웃음)  

프레시안 : '데카당스'와 '개인주의'의 차이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있느냐, 없느냐'로 보는 것인가?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는 그런 기본적인 책임감도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만열 : 많은 경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기업이 주관하는 세미나에 참석해 자문하곤 했다. 그런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부분 예산, 즉 돈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한국 사회를, 우리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 아무도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SNS와 스마트폰, 과연 민주주의의 산물일까?  

프레시안 : SNS는 공동체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토론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간조차 기업과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은 "그저 단발성 쾌락을 얻기 위해 남용"되고 있다.  

이만열 : 사람들은 SNS, 특히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토론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논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페이스북 검열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또 수많은 토론과 아이디어가 2~3일이면 지워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기업 페이스북에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 수출품인 스마트폰 역시 비디오게임과 의미 없는 채팅으로 하루하루 낭비되고 있다. 기업이 스마트폰을 만드는 목적은 돈벌이가 아니라 건전한 사회 조성이어야 한다.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기술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를 거쳐 스마트폰 사용을 제약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첨단 기술과 민주주의의 결합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 기술의 개발과 발전을 이끄는 게 기업과 자본이라는 점에서 더 어려운 문제다.  

이만열 : 페이스북 사용에 자기 선택권이 있나? 사용자인 우리는 페이스북 운영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도, 어떤 사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할 수도 없다. 페이스북에 공유된 게시물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으로 소통하고 투표했다며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자축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민주주의일까? 독재 아닐까?(웃음)

일상생활에 선택지란 없다. 기업의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 역시 독재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 체제만 독재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또한 자유가 없는 '새로운 독재'의 모습이다.  

이 같은 내용이 미국의 정치사상가인 셀던 월린(Sheldon S. Wolin)(전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책 'Democracy Incorporated: Managed Democracy and the Specter of Inverted Totalitarianism'(국내 번역본 출간 안 됨)에 재미있게 기술되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1000만 촛불에도 '민주화'는 없었다  

프레시안 : 지난겨울 촛불 집회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 역시 '촛불시민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시작한다. 그런데 "정치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이만열 : 한국의 문제점 중 하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민주주의'라면서 '민주주의 국가여서 성공했다'고 자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民主化)'가 어디 있나? 나는 촛불 정국에서도 민주화를 보지 못했다.(웃음)  

촛불 시민들이 박근혜 정권을 탄핵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박근혜 나쁘다'라고만 했지, 장기적이고 구체적으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 토론하지 않았다. 탄핵 촛불 이후 집과 마을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토론하지 않았다. 각종 연구소와 싱크탱크 등 세미나와 토론회를 열었지만, 참석한 시민들이 거의 없었다.  

프레시안 : 당시에는 박근혜 정권을 중도 하차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탄핵과 조기 대선을 치른 뒤, '이제 됐다'는 생각으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만열 : 정권을 누가 잡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득이 될 때만 발 벗고 나선다. 정치인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라. 정치인은 항상 때려야 한다.(웃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투표로 사회의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초인(超人)'을 뽑으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초인은 어떤 경우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뽑은 정치인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감시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러면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스스로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변화는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지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스스로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도 자신의 변화가 가져올 희망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이 이 기사를 보고 자극받았으면 좋겠다.(웃음)

"투표만 잘하면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생각은 문제의 핵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정당은 가장 낮은 단계의 정치 문화에 부응하며 발전한다. (중략) 시민들이 하지 않는 일을 정당이 대신해 줄 거라는 기대는 어리석다."(36쪽) 

"상업화된 언론, 비판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 <조선일보>조차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했다. 그런데 책에서 "'촛불시민은 위대하다'고 부추기는 언론의 감언이설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만열 : 그래서 의심스럽고, 믿을 수도 없다.(웃음) 시민은 언론으로부터 정확한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나날이 언론은 살아남기 위한 선정성 경쟁에 몰입돼 비판의식을 잃어가고 있다. 더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분석 기사 역시 찾기 힘들다.  

▲ 이만열 교수의 1월 15일 자 '다른백년 주간논평'에 실린 이미지. 이만열 교수와 김기도 작가가 공동 작업했다.


프레시안 :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 권력과의 결탁이다. 일종의 거래를 하는 건데, 이런 언론이 다수다. <프레시안> 같은 작은 매체가 목소리를 높여도 잘 전파되지 않는다.(웃음) 미국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이만열 : 어찌 보면 한국보다 미국 언론이 더 심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평균 교육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지역신문이나 독립언론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세상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교육과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교육의 목적은 윤리 의식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갖추게 해 옮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점을 지적해 사고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언론은 '정치인 누가 누구를 만났다', '정치인 누가 SNS에 이렇게 말했다'라는 것만 보도한다. 국회에 어떤 법안이 상정되어 있고, 이 법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기업이 새로 출시한 물건을 홍보만 하지, 그 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만, 볼 게 없다.(웃음)  

미국의 언론학자인 로버트 맥체스니(일리노이드대학 교수)는 책 'Rich Media, Poor Democracy: Communication Politics in Dubious Times'(국내 번역본 출간 안 됨)에서 '정부가 언론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과 마찬가지로, 언론이 상업화에 물들어 선정성 경쟁에만 몰입하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시장경제에 내몰린 언론은 정보 제공과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도 여러 단계를 거쳐 예산이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하지만.  

"한국을 바꿀 DNA, 역사 속에 살아있다" 

▲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음, 레드우드 펴냄) ⓒ레드우드

프레시안 : 책에서 효(孝)를 비롯한 유교(儒敎) 사상의 회복을 주문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의 유교는 정치 철학이나 윤리관이 아닌 가족 간의 위계 질서 정도만 남아있다. 그래서 유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란, 조금 공허한 것 같다. 



이만열 : 유교에 대한 한국인의 일반적인 생각과 개인적인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유교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환경적 사고와 절약을 바탕으로 한 반(反)자본주의 성격을 띠었다. 또 선비들은 도덕과 윤리를 공부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행정과 정치를 하는 구조였다. 지금 사람들은 그냥 옛날 선비를 좋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웃음)

프레시안 : 조선이 망하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 이후 일제 치하에서는 자본주의가, 미군정 시대에서는 민주주의가 이식됐다. 조선시대는 불과 100년 전 일이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은 몇 세기가 지난 일이라고 여기는 실정이다.  

이만열 : 한국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를 경시하며 문화적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본다. 한국을 바꿀 DNA가 역사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는데 말이다.

중국과 무역 및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던 통일신라시대 최치원, 장기적 관점으로 조선의 정치 철학을 구축한 정도전, 안보 중시 사회에 필요한 용맹함과 리더십을 보여준 이순신, 무분별한 물질주의에 대처하는 청렴(淸廉)의 롤 모델이자 정조의 정책을 통해 조선의 변화를 끌어낸 정약용 등 선조들에게서 한국인만의 잠재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숫자로 변환하고 순위 매기는 사회  

프레시안 : 10년 동안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마주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학생은 '왜?'라고 질문하지 않으며, 교육의 주체들은 교육을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만열 : 한국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수준이 높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교육 수준과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유가 뭘까?(웃음) 

한국 학생들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학습을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 발자국 떨어져 생각해 볼 기회가 거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대처하는 훈련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견해를 조율해 나가는 훈련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한국 학생들은 엄청난 내용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독립적인 사고를 못 한다.

프레시안 :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다. 학교폭력 문제 또한 경쟁 교육이 낳은 부작용이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2013년 9월 '교육 강박증에 걸린 한국인'이란 기사에서 '한국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일지 모르지만 가장 불행한 학생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이만열 : 한국 교육이 미국의 일반적인 교육보다 낫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한국처럼 불행해 하지도 자살하지도 않는다. 공동 목표를 향한 호기심과 협력에 의해 결론을 도출하는 자유 토론, 책 읽기와 글쓰기 등의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한국 학생들의 배움은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은 매년 대학의 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학생들은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이냐, 지잡대(지방의 잡다한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신분이 나뉜다.

이만열 : 다른 나라도 서열을 매기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를 문제 삼지 않는다. 취업할 때도 영어는 몇 점을 받았는지, 자격증은 몇 개인지 등 숫자가 중요하다. 교수들 또한 좁은 범위의 학술지에 논문 몇 편을 게재했느냐로 평가된다. 숫자로 변환하고 순위를 매긴 다음에야 가치를 인정받는 식이다.

프레시안 :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만열 : 첫 번째,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라. 특히 정치인에게 기대하지 말라. 두 번째, 차분하게 준비하라(Don't get mad ; organized!). 세 번째, 소비문화에서 벗어나라.

젊은이들은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따라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친구 두세 명과 함께 진지하게 토론하고 조직화해 장기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 없는 것은 먹거나 쓰지 않아야 한다. 변화의 첫걸음은 어떤 의미에서 절제다. 정치인이 아닌,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습관적 정치'다. 문화는 정책을 통해 바뀌기보다 각 개인이 습관을 바꿈으로써 서서히 변화한다. 일단 위기를 넘기고 법안만 통과시키면 된다는 단기적 사고에 머물기보다, 사회 문제가 각 개인의 일상적 행위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