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통일 문제

핵실험에 담긴 김정은의 노림수

일취월장7 2017. 9. 29. 17:47

“방법론 없는 핵무장 주장, 실현 불가능”

핵무장 반대론 “국제사회 제재 버틸 수 없어…美도 원치 않는다”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2(화) 10:00:00 | 1456호

북핵 사태가 초래될 때마다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다.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동일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는 방식이다. 상대가 핵무기를 보유했으니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면 곧바로 핵 반격을 받게 된다’는 공멸에 대한 두려움은 1945년 이후 핵무기가 실전에 등장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핵무장론’이 힘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 도발이 있을 때마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핵무장론이 제기됐다. 핵무장 주장은 선명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형용사로 해석됐다.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선 ‘최후의 카드’ 역할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야권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유사한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도발이 레드라인을 넘나들자 강경론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북한이 핵을 실질적으로 보유한 뒤 북·미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등의 상황을 대비해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당위성은 있지만, 방법론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핵무기 개발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핵을 보유하기 위해 국제사회를 설득할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반발을 뚫고 핵을 개발할 수 있을지, 핵 개발이 한반도와 동북아에 가져올 영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다. 핵무장론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국의 핵무장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유엔은 7월7일 새로운 핵무기 금지 협약을 채택했다. © 사진=AP연합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국의 핵무장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유엔은 7월7일 새로운 핵무기 금지 협약을 채택했다. © 사진=AP연합

 

“핵무장 선언과 동시에 국제 제재 못 버틴다”

 

지난 7월7일 핵무기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유엔(국제연합)은 미국 뉴욕에서 총회를 열고 핵무기 전면 폐기와 개발 금지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국제협약을 채택했다. 122개국이 찬성했지만, 유엔 회원국 3분의 1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과 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핵보유국은 모두 협상부터 ‘보이콧’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스라엘 등 실질적 핵보유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과 일본도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이유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우선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한다. 현실화될 경우 한국의 NPT 탈퇴 선언은 북한에 이어 두 번째 사례가 된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면 국제사회는 당연히 제재에 나설 것이다”며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묵인해 주지 않는 이상 미국도 제재에 동참해 한·미 동맹이 위태로워질 것이다”고 내다봤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체제는 국제사회의 저강도 제재에도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북한처럼 고립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내부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은 미국산 핵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파기되면, 원전 연료는 물론 X레이나 CT 촬영에 쓰이는 의료용 핵물질까지 모두 공급이 끊긴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장은 “우리가 핵무장에 나서면 한국에 원전 연료를 판매하는 것부터 국제적으로 불법이 된다”며 “당위를 떠나 지금 상태로는 현실적으로 추구하기에 제한이 많다”고 지적했다.

 

핵 전면금지를 추구하는 국제사회를 일일이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NPT 10조 1항에는 ‘본 조약상의 문제에 관련되는 비상사태가 자국의 지상이익(supreme interests)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탈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돼 있다. 여기에는 모든 조약 당사국과 유엔 안보리에 3개월 전에 통고하고, 비상사태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북핵 상태가 비상사태라고 동의하는 국가는 현재까지 없다. 안보리에서 설명이 받아들여지면 탈퇴가 가능한데, 실제로 탈퇴가 인정된 사례 역시 아직은 없다. 북한에 이어 한국마저 NPT에서 탈퇴할 경우 NPT 체제가 사실상 붕괴될 수 있다. 핵보유국들은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를 막으려고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동의가 불가능한 이유다.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자체 핵무장을 하면 ‘북한과 같은 길을 걷는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며 “경제적 충격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자적 핵무장은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미 동맹이나 NPT 탈퇴 등 국제사회로부터 큰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며 부정적으로 봤다.

  

‘한국→일본→대만’ 동북아판 핵 도미노 우려

 

한국의 핵무장은 곧바로 동북아의 핵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핵 도미노란 한 국가가 핵을 보유하면 인접 국가들 또한 연쇄적으로 핵을 보유하게 되는 현상이다. 과거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으로 이어진 사례가 동북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64년 중국은 핵실험을 통해 공인 핵보유국 지위를 얻었다. 그러자 이에 자극받은 인도가 1974년 핵실험을 단행하며 핵보유로 나아갔다. 인도와 숙적 관계였던 파키스탄은 1998년 5월말 이틀 동안 연쇄 핵실험을 하면서 인도와 더불어 ‘비공인 핵클럽’에 가입했다. 접경국인 중국-인도, 인도-파키스탄 사이의 상호 갈등과 불신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벌어지기 이전인 8월8일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북한의 이웃들이 더 치명적인 무기(deadlier weapons)의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며 “급속도로 진전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일본과 한국 정치인들이 더 강력한 무기 배치를 밀어붙이도록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역내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곧 현실이 됐다. 실제로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국만큼이나 일본 또한 핵무장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잇따라 일본 상공을 통과하면서 불안감이 증폭된 상황이다. 일본은 그동안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견지해 왔다. 다만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는 잠재력을 유지하고 있다. 핵연료 재활용을 명분으로 ‘핵연료 주기’를 운용하고 있다. 일본에는 약 6000기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47.9톤, 2015년 12월 현재), 핵탄두 제조 기술이 있고 올해 1월 현재 32번 발사해 31번 성공(성공률 96.9%)한 H2A라는 놀라운 성능의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미·중 간 갈등이 첨예해질 경우 대중국 억지력 확보 차원에서 미국이 주도 또는 용인하는 핵보유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동북아 연쇄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며 “지금은 한국과 일본이 비핵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북핵 위협이 고도화할 경우 핵보유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생성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핵무장론이 현실화된다면 일본·대만으로 핵 확산이 이어져 세력 균형이 완전히 깨지고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면서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고 가능성도 없다”고 전망했다.

 

전술핵 재배치 등이 언급되자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술핵 재배치 등이 언급되자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전술핵 재배치? 미국이 원하지 않을 것”

 

핵무장론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방식과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방식이다. 함께 묶여서 언급되지만 파괴력과 운용범위에서 차이가 크다. 현실화 가능성과 영향도 다르다는 의미다. 그래서 파괴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전술핵 재배치 논란이 오히려 더 뜨겁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데다 상대적으로 현실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효용성 논란 등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계기로 전술핵 재배치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8월30일 미국에서 열린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 과정에서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 가능성 수준 등을 언급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북한의 6차 핵실험이 이어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실제로 한국에는 1958년부터 1991년까지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가 있었다. 항공기 투하용 핵폭탄도 있었고, 핵탄두 미사일이나 대포용 핵폭탄도 있었다. 가장 많을 때인 1967년에는 950발이 배치돼 있었다고 한다. 미·소 핵 군축협상과 우리 정부의 비핵화 선언으로 전술핵무기는 1991년 모두 철수했다. 미국은 해외 배치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줄여왔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전술핵 자체가 전투기·전폭기에 장착하는 폭탄인데, 그걸 갖다 놓는 것은 억지 효과가 크지 않다”며 “8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ICBM 미니트맨3의 경우 30분이면 미국 본토에서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평양 Insight]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시켜라”

김정은, 김정일 시절엔 상상하기 힘든 강경발언 쏟아내

이영종 중앙일보 북한전문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07(목) 11:00:00 | 1455호


7월25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강원도 원산에 머물고 있었다. 동해에 접한 갈마반도에서 벌어진 북한군 특수부대의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는 백령도와 대연평도 점령을 위한 가상훈련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의 남측 최북단 섬을 차지하기 위한 북한군의 훈련을 김정은이 직접 지휘한 셈이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서해 섬 점령을 가상한 훈련을 동해안에서 벌이는 것도 특이했지만 가장 관심을 끈 건 김정은의 발언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김정은의 언급은 충격적이다. 그는 유사시 대남 침투의 선봉에 설 특수작전부대에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적인 대남 비난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김정일은 내부적으로 어떤 호전적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같은 언급을 관영매체로 떠들썩하게 공개하지는 않았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달랐다. 2011년 12월 집권한 김정은은 이듬해 3월 서해 최전방 섬 방어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적진을 아예 벌초해 버리라”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항복 문서에 도장 찍을 놈도 없도록 수장(水葬)시키라”라는 언급도 했다. 이번 언급은 6년 전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진 것이란 게 대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선군절’을 맞이해 북한군 특수부대의 백령도와 대연평도 점령을 위한 가상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월26일 보도했다. © 사진=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선군절’을 맞이해 북한군 특수부대의 백령도와 대연평도 점령을 위한 가상훈련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8월26일 보도했다. © 사진=연합뉴스

 

레드라인 넘은 김정은의 ‘혀’

 

김정은이 처음 격렬한 대남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할 때 정보 당국은 그저 젊은 호기에 큰소리를 치는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김정은의 입에서 온갖 거친 말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불바다’ 발언은 물론 ‘통일성전’ 운운하는 전쟁 협박 언급도 더해졌다.

 

지난해 말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 국면이 전개되자 김정은의 발언은 더욱 노골적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군부대를 방문한 김정은이 “남조선 것들 쓸어버리라”는 말을 거침없이 토했고, ‘미제와 그 졸개들’이란 표현으로 남한을 조롱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발언을 놓고 김정은의 북한이 남한 전체를 적대시하는 노선으로 돌아선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과거에는 북한 관영매체나 김정은이 ‘남조선 집권 세력’ 또는 ‘군부 호전광’ 등의 표현을 동원해 대상을 한정했다. 표면적으로라도 ‘남조선 민중’과 ‘통치세력’을 구분해 비난 대상을 특정하는 방식을 써왔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의 대남 비난은 ‘남조선 것들’ 운운하며 아예 대한민국을 뭉뚱그려 멸절(滅絕)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만큼 김정은이 무차별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매체나 기구들도 공공연히 위협 발언을 내놓는다. 7월31일 북한의 이른바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우리 정부의 대북 미사일 대응을 거론하며 “남조선 판도가 쑥대밭으로 화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크고 작은 선동매체들은 김정은의 발언 수위에 맞춰 ‘핵 불바다’ 등으로 위협하며 대남 비방과 공갈을 일삼는다.

 

이런 행태를 두고 우선 김정은의 대남 콤플렉스가 강경한 대남 발언으로 나타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0대 시절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남한 사회의 발전상을 체감했을 수 있다. 김정은이 조기 유학하던 시기는 1990년대 중후반이다. 대홍수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고 남한으로부터 중국산 옥수수를 지원받아 버티던 시기다. 당시의 체험이 남한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빅터 차(Victor Cha)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저서 《The Impossible State》(불가사의한 국가, 2012)에 담았다. 이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이 공부하던 반에는 ‘성미’라는 또래 한국인 여학생이 있었다. ‘박운’이란 가명을 쓴 김정은은 이 한국인 친구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이 학교에 소문이 난 상태라 김정은을 상대해 줄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밀어주려던 김정은은 성미가 “하지 말라”며 거절하자 그네를 거칠게 밀어버리고 달아났다고 한다. 서방국가에서 북한인으로 살아가야 했던 시기의 불편했던 추억이 김정은에게 남한에 대한 열패감을 깊이 느끼게 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에 의해 옴짝달싹못하게 사로잡혀 있다는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 제국주의의 대북 고립 압살 책동’으로 북한 체제가 지난 70년간 정치·경제적으로 고립과 궁핍을 면키 어렵게 됐다는 식의 주장을 통해 북한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나 김일성 유일 지배의 폐해를 덮어버리는 방법을 구사한다. 27세의 나이에 세습권좌에 오른 자신을 노회한 고령 간부들이 무시할 것이란 생각도 김정은의 감정에 기복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학 시절, 대남 콤플렉스의 발현”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이 기치로 내걸었던 반미와 자주·주체 등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이 ‘미제 식민지’라고 혐오해 온 한국은 경제발전과 번영을 성취해 가고 있다. 이런 격한 감정에서 김정은은 수시로 “남조선이 발편잠을 못 자게 할 것”이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북한은 한동안 남한 체제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연일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 드라이브를 걸면서 워싱턴 당국과 담판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 정부가 개입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핵 문제는 북·미 간의 의제”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던 북한이 대남 비난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북한을 비난하는 책자를 소개했다는 이유로 남한의 언론사 기자와 사주에 대해 처형 운운하며 관영매체를 통해 협박하고 나서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제안에 대해 거부 입장을 드러내왔다. 남북 당국 간 대화나 이산상봉 같은 교류행사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비난의 화살을 남한 쪽으로 돌린 북한이 어떤 대남 전술을 구사하고 나설지 주목된다. 


대한민국에 전술핵이 필요악(必要惡)인 이유

[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전술핵, 치킨게임 멈출 수 있는 역설적인 협상 카드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2(화) 16:00:00


북한은 결국 대한민국 정부가 그토록 염려한 레드라인을 넘어서고 말았다. 8월17일 취임 100일을 맞이한 문재인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북한의 레드라인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을 장착하는 순간’이라고 명확히 그 지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경고에 대해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남조선 집권자가 어처구니없는 나발을 불어댔다”며 뒷일도 감당할 수 없는 주제넘은 망동이라는 비정상적인 독설을 날렸다. 그 후, 김정은은 대한민국 정부의 레드라인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6차 핵실험 도발을 강행했고 또 다시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불확실한 우려까지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은 정말 수행하기 어려운 직무임에 틀림없다. 이미 수많은 전문가가 강조했듯이 대통령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풀 수 없는 대한민국의 난제가 바로 ‘교육’과 ‘북한’ 문제이다. 역대 정부가 온갖 혜안을 모색해서 정책을 도출했지만 입시 교육과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결과적으로 그 어떤 것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북한 문제는 교육 문제보다 더 처치 곤란한 일이다. 상대는 역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광기 어린 집단이다. 아울러, 북한의 배후를 자처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속적인 제재 협력 요청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인 동문서답을 통해 대한민국의 입장을 줄곧 무시하고 있다. 

 

8월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전술핵 배치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의 모습. 정치권에서도 전술핵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8월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전술핵 배치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의 모습. 정치권에서도 전술핵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이 체득한 ‘핵’이라는 학습효과

 

북핵 문제와 관련된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하나씩 살펴보자. 북한이 위험수위를 넘나들며 대놓고 도발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이 미치광이라서가 아니다. 대한민국과의 체제 대결에서 경제적으로 승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절대적으로 밀리는 경제력을 한 번에 뒤집을 수 있는 분야 그리고 외교적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군사력이고 그 무기는 오직 ‘핵’만이 가능하다는 추론을 김정은은 했을 것이다. 아울러, 핵을 갖고 있으면 대한민국 내 여론을 ‘전술핵 재배치’와 ‘평화를 위한 대화 제안’으로 분열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또한 그는 학습효과를 통해 체득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가 핵개발을 멈추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북핵 개발에 대해 강 건너 불구경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이달 초 주도적으로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력한 대북 추가 제재 결의를 추진하고 나섰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제재 결의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 이슈와 미국과의 자존심 경쟁에서 우위를 서려는 중국과 러시아는 끝까지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에 설 것이 분명하다. 추가 대북 제재를 거부하고 오히려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개발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 확장을 더 불편하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 역시 북한에 대해 압박과 제재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의 추가적인 압박과 제재는 암묵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무관심으로 인해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이 전 세계적 압박으로 대화의 장에 나설 리는 없다. 이미 북한 내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그에게 전 세계적인 압박과 제재 동참은 북한 인민들을 힘들고 궁핍하게 할 뿐이지 정작 자신에게 다가오는 실질적인 타격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특성상 군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날리 만무하다. 경제적 압박이 점점 심해질 경우 이에 대한 인민들과 군부의 분노를 외부 세계(가령 대한민국과 미국 등)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핵은 김정은에게 필수적으로 놓쳐서는 안 될 카드이다. 미국의 제재 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미국은 결국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면 선제 타격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키느냐 두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역사적으로 미국이 상대의 입장을 존중해서 한발 물러선 경우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 앞에 무력시위를 벌인 국가 또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던 단체는 무차별하게 짓밟혀왔다.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이 상대에게 화해 제스처를 취하고 대화를 내미는 건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으로서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북한이 만약 대한민국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북한은 이미 미국의 엄청난 화력에 의해 전 지역이 초토화 됐을 것이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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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협상카드가 될 지도 모를 필요악

 

결과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핵개발 대립을 중재하고 풀어낼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에게 달려 있다. 힘의 과시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마음대로 공격하지 못하자 트위터를 통해 이에 대한 분노를 오히려 우리를 향해 쏟아내고 있다.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 자매지인 환구시보 역시 매일 사설과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 야심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며 북한에 대한 압박을 멈출 것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침묵하며 대한민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서 온갖 폭언을 일삼는 중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유화책을 비판하며 전쟁 불사와 한미 FTA 폐기를 동시에 주장하는 미국, 대한민국은 향후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첫째, 모든 걸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제재에 대한 전세계적인 동참 호소에 주도적으로 나서자 이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처럼 되어가고 있다”며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북 대화를 복원할 것을 강조했다. 유시민 작가 또한 “북한은 합의대로 협상이 시작되면 추가적으로 핵,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북한의 김정은이 웃을 일이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지금까지 대화를 통해 북한의 군사력 억제와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거나 해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화는 상대가 이성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설령 북한이 대화에 나선다고 하면 과연 대한민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겠는가. 북한은 지금도 핵보유국 인정, 주한미군 철수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들 주장을 대한민국 차원에서 수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문 대통령은 안쓰러울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 노력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북한에게는 한미일에 맞서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 배경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미국이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군산복합체 수출 등)보다 전쟁을 통해 잃게 될 비용(대한민국 또는 일본 등에 투자한 미국의 자본)이 클 경우 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트럼프는 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이상으로 돈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은 전술핵 재배치를 최후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우리 정부를 대신해 “국민 여론이 전술핵을 원하고 있다”는 발언을 미국에 전달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 개발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 확장을 두려워하지만 이것보다 대한민국, 대만, 일본 등이 연쇄적으로 핵개발 또는 전술핵 배치를 전개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렇게 되면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위축될 것이고 대만과 일본은 본격적으로 중국의 주장에 대해 강경하게 맞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핵을 핵으로 맞서자는 주장은 공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설득할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약 미국과 북한이 비밀리에 협상을 한다면 안건은 뻔하다.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양보하는 대신 북핵 동결에 대한 막대한 보상금액을 미국과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다. 트럼프는 돈을 중시하기에 이 부담금을 우리에게 부과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북한 제재 또는 설득에 동참시키고 미국과 우리가 지불해야 할 핵 동결 비용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전술핵이 최후의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해야 한다. 상대는 총을 들고 있는데 우리는 총이 없다. 협상은 둘 다 총을 든 상태에서 평화와 체제 보존을 위해 서로 총을 내려놔야 한다는 결론으로 전개돼야 한다. 미국과 북한의 치킨게임을 멈출 수 있는 전술핵은 역설적으로 공포가 아닌 안정을 위해 이제 대한민국에게는 필요악이 되어가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 미국이 원하지 않는다

[기고] '국가 안보 전략' 없는 무책임한 발상
2017.09.13 09:03:01

한반도에 '대화'의 단비가 내리지 않아 남북관계가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다. 오랜 가뭄 탓이다. 주변 정세를 둘러보아도 단기간에 가뭄이 해소될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한국이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미국과 중국이 큰 물꼬를 터주기를 기대했지만, 현재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정권수립 69주년인 9월 9일 <로동신문> 사설을 통해 '핵보유국'으로서 국력이 높아졌다면서 '최첨단 주체무기'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강력한 국가 핵무력이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확고히 담보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정은이 이참에 미국과 담판을 지을 기세다. 

반면에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배치로 여론이 악화되자 9월 8일 '입장문' 형태로 밝힌 글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드 임시배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탄생에 일조를 한 진보진영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이다. 불과 집권 5개월 만이다. 

여기에다 핵무장 담론의 둑이 터졌다. 여기저기서 전술핵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1000만 서명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은 워싱턴으로 가서 국내 분위기를 전달하겠다고 한다. 어차피 핵무기를 완제품으로 구매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 한국 핵무장 허용을 잠시 언급하기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을 어떡하든 설득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상군 개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국내정치적 문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상군 개입도 최소화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핵무기로 미국과 동맹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실제 일부 연구 자료를 보면 당시 전술핵 배치는 미국의 군사원조 감축과 한국군의 병력 감축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적 성격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술핵 재배치(再配置)는 주한미군 축소 내지 철수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과 배치(背馳)되는 셈이다. 

미국이 1957년 1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결정에 따라 1958년 1월에 배치하고 이후 1991년 12월에 일방적으로 뺀 전술핵을 다시 한반도에 반입하기에는 적지 않은 난관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질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한반도 내에 배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전협정을 위반한다는 주장은 논외로 하더라도,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1991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야당과 일부 여당 인사들은 어떤 '정치·경제·군사적 전략'으로 미국 행정부(국무부와 국방부도 의견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려움)와 의회(공화당과 민주당)를 설득하려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언론 보도에 나타난 이들의 주장만 보면 마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격렬한 반발이다. 전술핵을 도입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망(THAAD‧사드) 배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경제·외교·군사적 보복조치가 불가피하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전술핵 배치가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미국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1956년 9월에 작성된 프로크노우(Prochnow)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전술핵을 배치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한국에 대한 단순한 군사원조가 아니라 외부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역내 군사동맹국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었다. 한·미·일 대 북·중·러 세력 대결의 재현이다. 게다가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진보성향 정부가 국가적 응집력을 결속시킬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셋째, 세계를 관리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당장 전술핵을 한반도에 배치함으로써 얻을 이익이 현상유지를 통해 얻는 이익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는 방안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이는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 관점에서 한반도는 여전히 우선순위가 낮은 지역이다. 전술핵 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감(反感)도 미국으로서는 적잖은 외교적 부담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지지하는 미국 정치인과 워싱턴 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고도의 정치·경제·군사적 전략을 필요로 한다. 주한미군분담금 협상, 자유무역협정 협상, 전시작전권 환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한미원자력협력협정 등 외에도 중국, 러시아, 북한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설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단칼에 해결할 수가 없는 구조다.  

정부 내에서도 이를 두고 다각도로 검토 작업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러지 않고서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관계자에게 청와대 고위급 인사가 전술핵 이야기를 꺼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는 "힘의 균형이야말로 평화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마주하고 살면서 어느 정권도 힘의 균형은 고사하고 '국가핵안보 전략'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개탄할 일이다. 설계도 없이 집을 짓지 않듯이, 국가핵안보 전략도 마련하지 않고서 전술핵을 요구하거나 핵무장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명분과 이치에도 맞지 않다. 자칫 본래 의도와 다르게 포퓰리즘적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핵무장의 깃발은 높이 드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현실 속에 깊숙이 묻어 두어야 할 '내밀한 과업(mission)'일 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북한 핵에 명민하게 맞상대하기 위해서는 일시적, 감정적 접근이 아닌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자세로 국가핵안보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기술적 이행은 그 다음이다. 한반도에서 안정적인 평화를 유지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핵전쟁이 돌발적으로 일어날 확률이 역대 최고로 높아졌기에 하는 말이다.


“美, 30분 안에 북한 초토화”

美 핵잠수함과 핵항모로 미사일 대량 발사 가능

김원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9.13(수) 15:00:00 | 1456호


“북한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은 철저히 레드라인(Red-line)을 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을 공격할 명분이 없다.”

 

최근 극도로 악화하고 있는 한반도 위기에 관해 전쟁 가능성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익명을 요구한 미국 군사전문가가 밝힌 내용이다. 이 전문가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하든 예방전쟁(Preventive War)을 하든 군사행동을 하려면 ‘정당화(Justification)’가 필요하지만, 아직 그럴 만한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미사일과 핵실험으로 한반도 위기가 가중되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미국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버금가는 미사일도 공해상으로 발사했고, 핵실험은 북한 땅 안에서 진행한 것이라서 미국에 직접적인 공격이나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은 사실상 핵보유국 인정을 받는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이 과거 핵실험을 실시했지만, 그 이유만으로 군사공격을 받지는 않았다. 또 이들 나라가 북한과 마찬가지로 현재도 탄도미사일 실험을 감행하고 있지만, 그 이유만으로 미국이나 다른 강대국들이 해당 국가에 군사공격을 감행한 선례도 없다.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의 최대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북한이 핵무기 고도화에 성공하고 이를 미 본토를 공격할 수도 있는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탑재해 실전배치할 경우엔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9월3일(현지 시각) 백악관 긴급 국가안보회의(NSC) 직후 성명을 발표하며 북한에 경고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9월3일(현지 시각) 백악관 긴급 국가안보회의(NSC) 직후 성명을 발표하며 북한에 경고하고 있다. © 사진=EPA연합


 

美, 北 핵무기와 지도부 제거 훈련 마쳐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도 점점 더 교묘하게 미국의 의중을 시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괌 포위사격’이 대표적이다. 공해상에 탄도미사일을 떨어뜨리지만, 점점 더 미국 영토에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또 최근 일본 상공을 통과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이어 곧 미국 본토에 더 가까운 태평양 공해상에 떨어지는 ICBM 발사에 나설 것도 분명한 상황이다. 이미 9월3일 6차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언제라도 추가 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담판을 노릴지는 모르나, 현재는 가지고 있는 모든 군사적 위협을 동원하면서 군사전문가들이 말하는 넘지 말아야 할 ‘임계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북한이 소형화된 핵무기를 SLBM에 탑재하고 공해상으로 나가 핵무기를 태평양 상공에서 터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미국 국민이 느끼는 공포는 거의 극에 달하게 된다. 불을 보듯 뻔하게 전개될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어떠한 사전 조치를 취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하지만 지상 발사가 아니라 탐지가 거의 불가능한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탄도미사일을 미리 차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북한이 임계점인 레드라인을 넘겠다고 발악하는 것을 현실적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 미국의 최대 고민이다.

 

사실 미국의 북한에 관한 선제공격이나 예방전쟁 등 군사행동이 개시되면, 일방적인 전쟁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은 모든 군사전문가가 동의하는 사항이다. 동해안에 비밀리에 진을 치고 있는 미국의 핵잠수함에 이어 핵항모인 로널드 레이건호가 상주하고 있는 일본의 미군기지에서 북한에 대량의 미사일만 발사해도 불과 30분 안에 북한이 초토화된다는 것은 거의 상식에 속하는 사항이다. 또 미국이 매년 한·미 연합군사훈련 등을 통해 실전을 방불케 하는 ‘워 게임’(War Game)을 진행해 왔고, 최근에는 최고의 특수부대원들이 북한의 핵무기 제거와 북한 지도부 제거에 관한 훈련도 마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미국이 아무리 강력한 대북 선제공격을 감행하더라도 휴전선 일대에 배치된 북한의 장사정포를 비롯한 모든 군사무기들을 제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들 무기가 1000만 인구가 사는 서울에 집중 포격을 가할 경우 최소한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지금은 사임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진짜 대통령’으로 불린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군사공격은 잊어버려라”고 말한 이유다. 그는 “누군가 전쟁 시작 첫 30분 안에 재래식 무기의 공격으로 서울에 사는 1000만 명이 죽지 않을 수 있는 방정식(Equation)을 풀어서 내게 보여줄 때까지, 어떠한 군사적 해결책도 없다”고 백악관이 처한 딜레마를 그대로 드러냈다. 쉽게 말해 평양을 초토화하고 핵심 군사시설을 제거하는 것도 순식간에 가능하지만, 이에 대한 보복으로 서울이 치명타를 입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北 보복공격, 서울 시민 1000만 사망할 수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전쟁’(Invisible War)이다. 선제공격이나 예방전쟁은 즉각 심각한 보복 공격을 초래하는 만큼 눈에 띄지 않는 전쟁으로 북한의 핵능력이나 혹은 북한 지도부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가장 쉽게 거론되는 것이 이른바 은밀한 ‘참수 작전’ 등 김정은 제거지만, 이 또한 쉽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무리 은밀하게 진행해 성공하더라도 발각될 경우 북한의 보복 공격 등으로 선제타격에 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이른바 ‘레짐(Regime·정권) 체인지’ 등 북한 체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 중국이나 러시아가 이를 묵인할 리도 없다. 여기에 대한 대안이 북한 군부세력 일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지만, 이 또한 유일사상으로 김정은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북한의 상황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같은 차원에서 미국은 전쟁과 같은 혼란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원유 공급 중단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고 있다.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도 거론되지만, 북한에 대한 압박이 아니라 미·중 경제전쟁을 초래해 자칫 미·중 간의 충돌로 확대될 수 있어 미국도 실행을 머뭇거리는 상황이다.

 

결국,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극빈국으로 치부되는 북한이 핵을 가지고 덤벼드는 상황에서 아무 대책도 꺼낼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 하지만 ‘레드라인’을 넘어가고 있는 현 상황이 정말 군사적 충돌 상황을 초래할지, 아니면 극단의 임계점에서 북·미가 극적인 합의를 도출할지,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머지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핵실험에 담긴 김정은의 노림수

1960년대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양탄일성’ 체제를 구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김정은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한다. 중국 내부 상황을 보면서 마무리 실험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문희 기자 bulgot@sisain.co.kr 2017년 09월 13일 수요일 제522호

ⓒ평양 조선중앙통신
9월6일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시험의 성공을 축하하는 평양시민 경축대회’가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

4월로 돌아가 보자. 3월 말까지 북한 북부 핵시험장인 풍계리에서 지하갱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토사 배출량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16년 9월9일 5차 실험 때와 비교해 엄청나게 많았다. 핵 폭발력 기준으로 28배가 예상됐다. 그러나 핵실험은 없었다. 몇 달 뒤 밝혀진 바에 따르면, 3월 말까지 북한과 중국이 북핵 폐기 대가를 둘러싸고 벌여온 비밀 협상이 무산되자 북한이 중국에 핵실험을 통고했다. 4월18일 주중 북한 대사관이 “이틀 후인 4월20일 핵실험을 하겠다”라고 통보한 것이다. 중국 측은 즉각 북한에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석유 및 원유 수출 중단과 국경 폐쇄 등 5가지 조처를 담은 비망록을 전달했다(<시사IN> 제506호 ‘4월 한반도 위기설 어떻게 지나갔나’ 기사 참조).

4월 사례는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북한 핵실험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서는 중국 눈치를 보지 않지만, 핵실험의 경우 지리적으로 맞닿은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중국은 왜 막지 못했을까. 지난 9월3일 오후 3시(서울 시각 3시30분)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낮 12시 북부 핵시험장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고,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 단계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매우 의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6차 핵실험의 폭발 위력은 국가별로 50kt에서 170kt까지 추산하는 등 천차만별이지만 3월 말 예고한 대로 전례 없는 위력을 과시했다는 점은 입증됐다(24쪽 인포그래픽 참조). 폭발력을 의도적으로 축소 조정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리 신한슬 기자
디자인 최예린 기자

중요한 것은 4월에는 중국이 전력을 다해 핵실험을 막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4월의 핵실험 무산 이후 중국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위험수위까지 도달했다. 5월3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철 명의의 기명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은 ‘중국이 북·중 관계의 붉은 선을 난폭하게 짓밟으며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 ‘북·중 친선과 핵을 맞바꾸지 않겠다’는 등 중국을 직접 거론하며 격렬하게 성토했다. 또 중국으로서는 북한 특유의 등거리 외교로부터 오는 압박도 부담스러웠다. 북한 외무성에서 대미 핵전략을 담당하는 한성렬 부상이 4월30일 이례적으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를 면담한 게 그 신호탄이었다. 북·중 관계는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상태’에 이른 반면, 북·러 관계는 긴밀해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 요인은 중국의 대미 불신 증가이다. 중국이 4월에 핵실험을 막은 것은 트럼프 정부와의 무역 전쟁을 피하고 남중국해에 대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포석이었다. 당시 트럼프와 협력하는 게 중국의 국익에는 부합했다. 하지만 그다음 미국이 보여준 행태는 중국으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5월 말 샹그릴라 회의(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안보회의)에 가는 도중 비행기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남중국해 인근 아시아 국가들을 배려한 발언으로 비쳤다. 중국이 보기에 ‘가시’가 숨어 있었다. 미국은 그즈음 그동안 중단했던 해군의 ‘항행의 자유 작전’을 재개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했다. 항행의 자유 작전이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인공섬과 암초 등 주변 12해리(약 22㎞) 안으로 미군 군함이 진입하는 훈련을 말한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총 4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쳤다.

미국은 또 6월 말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와 단둥은행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시범 실시로 중국의 뒤통수를 때렸다. 이른바 ‘화염과 분노’ 발언을 계기로 이뤄진 8월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통화는 중국의 대미 불신을 키운 결정판이었다. CNN이 미국 행정부 고위 관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및 강제 기술이전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지시하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8월14일 트럼프는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통상법 301조 카드를 꺼내들었다(28~31쪽 기사 참조). 

중국으로서는 북한과 거래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미국과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대북 압박용’인지 ‘중국 봉쇄용’인지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4월에는 미국과 협조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자칫 ‘북·중 간 전면 대립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이로써 미국과 한국은 북핵 문제를 중국에 떠넘기려는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니 이는 중국의 국가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환구시보> 9월3일자 사설) 상황에 처했다.

셋째 요인은 시진핑 주석의 상황이다. 매년 8월 원로들이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 이어 오는 10월18일 제19차 당 대회가 열린다.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당 대회는 피를 말리는 권력투쟁의 시기다. 시진핑 주석은 장쩌민계의 후계자 쑨정차이를 자신의 직계인 천민얼로 교체했지만,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왕치산 당 중앙기율조사위원회 서기를 유임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의 권력 약화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중 관계의 틈이 벌어질 때 핵실험을 해왔다. 이번 6차 핵실험도 시진핑 주석이 권력투쟁으로 손발이 묶여 있을 때 이뤄졌다. ‘절묘한’ 타이밍을 노린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상황을 의식한다는 점은 향후 스케줄을 예측하는 데 참고가 된다. 북한의 권력 동향에 밝은 고위급 탈북자 출신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두 가지 경로가 점쳐진다. 10월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까지 현재 준비 중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추가 발사 및 7차 핵실험까지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다. 속도전을 마친 뒤에는 바로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로 ICBM이나 SLBM의 추가 발사에 대해서는 국정원이나 국방부 측에서 이미 동향을 확보했다. 7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풍계리의 3·4번 갱도에서 언제든 가능하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이처럼 10월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을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판단의 이면에 바로 중국공산당 제19차 당 대회라는 변수가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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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ICBM 장착용 수소탄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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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 화성 12호 발사 모습.

10월18일 제19차 중국공산당 대회가 전환점

베이징에 있는 카네기-칭화국제정책센터의 자오퉁 연구원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북한에 대해) 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다음 달(10월18일)로 예정된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에 일정 부분 달렸다”라고 말했다. 당 대회를 앞두고 “권력투쟁이 아주 빨리 정리된다면 시진핑이 더 강력한 대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만 권력투쟁이 계속되면 그럴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19차 당 대회를 앞둔 중국 내 권력투쟁이 시 주석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습되거나 당 대회 이후라도 시진핑 주석이 힘을 갖는 구도가 예상될 경우 북한은 10월10일을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는 권력 정비를 마친 시진핑 주석과 굳이 맞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은 10월10일을 계기로 그동안 벤치마킹해온 마오쩌둥의 옷에서 덩샤오핑의 옷으로 갈아입을지 모른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중국의 핵 개발 과정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국과 서방, 소련까지 나서서 반대했다. 1964년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중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실험 장소인 신장 지역과 베이징을 폭격하겠다고 공언했다. 마오쩌둥은 1964년 원폭 실험, 1967년 수소폭탄 실험, 1970년 인공위성 발사까지 밀어붙여 ‘양탄일성(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인공위성)’ 체제를 갖췄다. 지금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밟아온 길이다. 마오쩌둥은 그다음 전격 개방 정책을 선언해 1971년 핑퐁 외교를 통해 키신저를 만났다. 1972년에는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이어받아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에 속도전을 냈다.

10월10일 국면 전환설은 바로 이 모든 과정을 지금부터 한 달 사이에 압축적으로 마무리해 국면 전환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과의 교섭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과거 마오쩌둥 역시 핵 개발의 목표를 ‘소련을 견제하고 미국과 수교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북한 역시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및 수교, 주한미군 철수, 핵 동결·폐기를 둘러싼 보상 협상 등의 목표를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응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회의적이라는 판단이 들 때 오히려 일방적으로 국면 전환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 결과를 특별히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경우 북한은 그동안 제시했던 스케줄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직후인 9월1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 확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2017년에 6차 핵실험을 실시하는데, 5대 핵 타격 수단 개발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에 따라 5개의 연구개발 주체들이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핵탄두들을 동시에 터트려라.” 5대 핵 타격 수단은 수소폭탄, 이동식 ICBM, SLBM, 핵어뢰, 핵배낭을 말한다(사이버 공격 능력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공개 발언 내용을 종합하면, 2017년 말까지 5대 핵 타격 수단을 완성하고 2018년에는 2015년부터 시작된 남한과의 통일대전을 완성하는 해로 잡았다는 것이다. 5대 핵 타격 수단의 완성과 관련해서 현재 준비 중인 북태평양 상으로의 ICBM 발사 및 SLBM 능력 입증이 남았다. 이 가운데 SLBM은 미국 본토와 가까운 태평양까지 진출할 수 있는 핵잠수함 능력을 갖추는 게 기본 전제다. 그동안 알려진 3500t급 핵잠수함을 뛰어넘어 6000~6500t급 핵잠수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새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 러시아에서 고물로 들여온 5500t급 핵잠수함을 연말까지 재건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추가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으리라 본다.

5대 핵 타격 수단이 완성되면 미국도 더 이상 협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북한의 계산이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전후 처리를 끝내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핵 동결과 폐기를 대가로 경제개발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단순 동결, 비확산, 불능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핵 폐기(CVID) 등 여러 단계로 나누어 비용을 차등화해서 거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이 그동안 중국과의 협상 및 5월8~9일 오슬로 북·미 대화 등에서 제시한 금액을 합치면 550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에는 북한 내에서 3000억 달러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앞으로 변수는 미·중 관계다. 트럼프 정부의 목표가 ‘북핵 억지’인지 ‘중국 봉쇄’인지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라 중국과의 무역전쟁과 키신저의 조언인 러시아와의 제휴라는 지정학 전략을 양대 축으로 중국 봉쇄 전략을 주머니 속에 감춰왔다. ‘러시아 게이트’ 등이 불거지면서 러시아와의 제휴가 틀어졌다. 대북 전략뿐 아니라 대중국 전략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북핵 대책 역시 제각각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론에서부터 중국과 협조를 통한 핵동결 유도론, 냉전 시대 대소련 봉쇄와 비슷한 대북 봉쇄론까지 극단을 오가는 대책이 모두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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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6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도 중요 변수


미국의 논의가 어떻게 모아지든 분명한 건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의 대응 방향 역시 그에 준할 수밖에 없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병행해 갖춰나가야 한다. 하드 파워란 북한의 핵 공포로부터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억지력을 말한다. 하드 파워를 갖추는 것은 우리의 장점인 소프트 파워, 즉 경제와 문화와 사회적 힘을 가지고 북한과 교류해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애매한 분단 체제에서 벗어나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양자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공존을 통해 교류하면서 공영의 발판을 구축하며 차이를 극복해갈 필요가 있다. 북핵 앞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인가?

[민미연 포럼] 북핵과 민족 통일
2017.09.13 15:11:40 
   
1.
최근 북미대결이 첨예하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두고 언론이나 SNS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는 민족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남한과 북한처럼 이미 70년 동안 단절되어 양쪽 사람들의 삶과 생각이 너무 달라진 경우 민족이라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군만 철수하면 민족애(民族愛)에 의해 저절로 평화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다 나름의 정치적 견해에 따른 주장이다.  

며칠 전에 한 SNS에서 어떤 분이 민족과 관련한 다른 주장을 반박하며 먼저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윤형숙 옮김, 나남 펴냄)를 읽고 와서 이야기하라고 충고했다. 그 글을 보고 민족과 관련해 약간의 지식을 제공하는 것도 사람들이 민족문제에 접근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 지식인이나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민족이나 민족주의 관념은 1980년대에 서양에서 확립되고, 1990년대 말 이후 한국 사회에 널리 확산된 '근대주의'에 속하는 것들이다. 민족이 원래 있던 것이 아니라, 근대인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 인위적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발명'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공학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실체는 없는 것인데 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있는 것으로 '상상'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민족이 길게는 수천 년 전에 만들어져 지속된 것으로 보는 전통적인 생각과 배치되는 것이다.

'근대주의' 편에 서 있는 서양학자들은 따라서 민족이나 민족주의가 만들어지게 된 근대의 여러 조건들을 강조한다. 자본주의나 산업화, 근대국가의 형성, 의사소통체계의 발전 같은 것들이 그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근대에는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당연히 우리가 어느 민족의 특질이라고 생각하는 언어, 혈통, 신화, 역사, 영토, 문화, 관습 같은 종족적 요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상황에 따라 쉽게 변화하거나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이제 '지구화' 시대에 들어와서 인류가 하나가 된다고 하는 마당이니 그들에게 그런 종족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런데 이들의 결정적인 결함은 역사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대개 사회학이나 정치학 등을 하는 사회과학자들이니만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연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같은 서양사 전공자라 하더라도 서양 중세나 고대에 접근하려면 전문적인 언어나 사료 훈련을 받지 않는 한 어렵다. 하물며 다른 전공자들 입장에서는…. 그러나 민족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현상인데, 역사를 빼고 어떻게 설명하겠나.

2. 
20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연구자로 <민족주의 시대>(진덕규 옮김, 박영사 펴냄)을 쓴 한스 콘은 중세시대에는 교황이나 신성로마제국 황제처럼 왕국을 넘어서는 보편적 권력들이 존재했고, 왕국 안에서는 많은 봉건영주들이 왕과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므로 왕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또 중세시대 주민들은 대개 자기가 살고 있던 좁은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보다 큰 주민들의 단위인 민족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세 말에나 민족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본다. 근대주의자들은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시켜 18세기 말까지도 민족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러나 중세사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서양 중세시대에는 왕국이 최고의, 가장 중요한 행정 단위로 생각됐다. 따라서 제국이나 교황은 통치자의 원형으로서의 왕의 최고권과 정치공동체의 원형으로서의 왕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지 못했다. 봉건영주들의 힘이 큰 경우에도 왕의 정당성에 함부로 도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중세유럽의 왕국들은 우연히 왕에게 속한 영토가 아니라 거기 사는 주민들의 집단에 속하는 영토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정치는 왕과 영주들의 책임이었으나 그들만의 것은 아니라 관습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신민들의 충고와 동의에 의존했다. 즉 왕국은 왕만이 아니라 그 주민들의 공동체로 인식되었다. 그 공동체가 바로 영어로 nation이나 people(라틴어로는 natio와 populus)로 불린 '민족'이었다. 

또 왕국은 정치 단위뿐 아니라 공통의 혈통에 묶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6, 7세기부터 조상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7세기의 프랑크족은 자신들의 혈통이 트로이에서 기원한 것으로 주장했고, 10세기의 브리티시족은 자신들을 로마 건국자의 조상인 아이네아스의 후손이라고 믿었다. 다른 민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중세시대에 특정 민족의 특질의 하나로 언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10세기 초에 죽은 프륌 출신의 레기노다. 그는 프랑크왕국이 언어에 따라 동, 서로 갈릴 때(843년) 그 경계선 부근에서 살았는데, '여러 민족들은 혈통, 풍습, 언어, 법이 다르다'고 분명히 말한 바 있다.

이 점은 중세 말인 15세기 초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1414~18년 사이에 로마 교황청이 각 나라의 교회 대표들을 모아 콘스탄츠공의회라는 것을 열었는데, 거기서 백년전쟁으로 서로 앙숙이 된 영국 대표단과 프랑스 대표단 사이에 대표권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붙었다.

그 과정에서 영국 대표단은 "민족이 다른 사람들과 혈통이나 관습, 언어에서 구분되는 사람들로 이해되든 말든, 또 민족이 프랑스 민족의 영토와 마찬가지로 영토로 이해되든 말든 잉글랜드 민족은 진정한 민족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보면 중세시대에 민족의 요건으로 언어, 혈통, 관습, 법체계, 영토 등을 모두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민족 개념과 별 차이가 없다.  

3. 
이렇게 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 그 개념이 오늘날과 별 차이도 없는데, 전근대에는 민족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비판을 받으며 전근대와 근대를 단절적으로 보는 자신들의 주장이 너무 지나치고 불합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근대주의자들 가운데도 전근대를 검토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존 브릴리이다((케임브리지 대학 펴냄). 그는 전근대에 민족과 그 계통의 언어들이 사용된 단편적 증거들이 있으나 그것이 일관성, 지속성, 정치적 중요성을 가지고 사용되지는 않았다며 근대주의적 주장을 계속 유지하려 하나 그럼에도 전근대를 고려 안에 집어넣고 있다는 점에서는 근대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한국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부터 사용되었으므로, 그때 한민족이 형성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횡행하나 위에서 말한 종족성과 관련해 보면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 민족 형성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보면 한민족의 형성은 서유럽보다 이르거나 비슷한 시기일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북핵이나 민족 통일과 관련한 논의에서도 민족이 상상의 공동체가 아니라, 종족성에 기반한 오랜 실재(實在)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