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靑의 '한미중 대화' 제안, 사실이라면 고도의 전략이다

일취월장7 2017. 8. 18. 10:27

靑의 '한미중 대화' 제안, 사실이라면 고도의 전략이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문재인 정부, 북미 대화에 대비해야
2017.08.17 14:26:23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지났지만 한국을 둘러싼 한반도 안보 환경은 정부 출범 때보다 악화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인 '화성-14형'을 연달아 발사하며 안보 위기를 고조시켰고, 여기에 미국은 군사적 조치를 언급하며 동북아 긴장은 여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북미 간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할만한 이렇다 할 제안이나 선언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되고 우리와 협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라며 "미국에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것 자체가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양 정상의 통화 이후 미국에서는 외교적인 해결책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지난 13일(현지 시각)에는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함께 <월스트리트 저널>에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화성-14형 발사 이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잔여 발사대를 배치한 것은 성급한 조치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논리적으로 사드의 완전한 배치는 곧 북핵 문제는 어차피 해결되지 못할 거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와 관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사드 문제를 논의하는 한미중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는 보도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적절한 제안이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이 미국에 뺨 맞고 우리한테 눈 흘기는 상황에서 3자가 만나서 대놓고 이야기하자는 제안인 것 같은데, 북핵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사드 문제도 해결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상당히 고도화된 전략"이라며 "또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맥락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전 장관은 북미 간 회담이 시작되고 북핵 해결 논의가 들어가면 미국이 비핵화가 아닌, 비확산 수준에서 그칠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의 핵을 없애려면 미국이 내놓아야 할 반대 급부가 커진다. 특히 김정은이 이전과는 달리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남한에서 철수하면 지금처럼 태평양을 지키지 못한다. 그래서 미국이 보기에 북한의 비핵화는 비확산 정도의 수준에서 묶고 남한에 미군을 남기는 것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보장하는데 최상의 시나리오 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하지만 이건 미국이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며 "당장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갈' 상황에 놓인 우리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13일(현지 시각)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공동으로 기고문을 발표했습니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인 해법을 강조하면서 "기꺼이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북한과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이 다소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1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괌 포위 사격 계획을 보고 받았다는 자리에서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하면서 양측이 일단 최악의 시나리오인 군사적 충돌 위기는 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대체 한국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8.15 경축사에 눈에 띌만한 새로운 내용도 없었다는 지적입니다.

정세현 : 틸러슨·매티스 양 장관이 공동 기고를 하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를 마치고 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까?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안되고 우리와 협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요. 미국에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것 자체가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 북미 간 소위 '말 폭탄'이 '치킨게임'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전쟁으로 가기 때문에,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렇게 일을 벌이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한 건데요. 이러한 문 대통령의 입장이 틸러슨·매티스 양 장관이 외교와 대화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계기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 북한이 엄포를 놓은 괌 포위 사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발사해서 미국 본토에 다다르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을 괌 부근에 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북한이 이런 길을 택하지 않게 하려면 미국이 다소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해야 하는데, 미국 입장에서 그냥 물러날 수가 없죠. 이런 와중에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대화가 나왔고 이것이 미국에 '톤 다운'할 수 있는 명분이 됐다고 봅니다.  

실제 ICBM의 경우에는 미국 본토까지 가지는 못할 거라고 봅니다. 실제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는 지난 12일 한미일 3국 정부가 북한의 ICBM인 화성-14형의 낙하 영상을 분석해본 결과, 미사일의 섬광 궤적이 해수면에 도달하기 전에 소멸됐다면서 ICBM으로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IRBM은 충분히 미사일로 기능이 가능합니다.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미사일이 됐든 북한이 괌 주변을 포위 사격한다면 미국은 정말 북한한테 따귀 맞은 셈이 됩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북한이 괌 주변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미국은 당연히 보복하는 수순으로 들어가지 않을까요? 미국의 반격 때문에라도 북한이 그렇게 쉽게 발사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요.  

정세현 : 그래서 괌 발사가 북한이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과거 사례를 보면 미국과 북한이 이렇게 허장성세를 부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국 미국이 상황을 수습해왔습니다.  



▲ 지난 15일 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프레시안 : 경축사로 다시 돌아가서요. 문재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한국의 동의 없이 전쟁은 안된다고 했지만,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말 운전석에 앉아서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면, 북미 대화를 끌어내야 하고, 그러려면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군사 훈련의 동결 내지 축소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북한에는 핵과 미사일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왜 미국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던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난 1991년 한국 정부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릿을 중단한 전례도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지금 국면에서도 역할을 하고 싶다면 문 대통령이 지난 6월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제안했던 "북한이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미국과 논의할 수 있다"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즉, 북미 간 대화를 붙이기 위해 군사 훈련 축소 정도는 던져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문 대통령의 경축사가 나름의 정교한 전략이 아니라 대국민 홍보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정세현 : 북한에 대한 메시지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공개적으로 할 수 있지만, 미국과 관련한 이야기는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전에 조율이 필요하고 합의를 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거부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문 특보가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방안을 시작으로 삼아 조율을 해야 하지만, 아직 한미 간에 제대로 조정이 되지 않았다면 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또 북핵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경축사 같은 공개적인 자리가 아니라 실제 협상장에서 상대를 보고 말해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다음주부터는 또 다른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열립니다. 훈련을 목전에 두고 훈련 중단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핵 문제를 협상하려면 결국 중국이 말한 쌍중단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미국 내 싱크탱크에서도 결국 쌍중단 쪽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미국 정부는 아직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에서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사실상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말로만 운전석에 앉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도하려면 사드의 잔여 발사대 4기를 갑자기 배치하는 식의 행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세현 : 북한의 핵 미사일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동결 대 동결이든 유예 대 유예든 간에 6자회담이 이렇게 시작해서 북핵 문제의 해결 전망이 보이면 사드 문제도 해결 기미가 있다고 봅니다. 북핵의 위협 때문에 사드를 갖다 놓아야 한다는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사드 잔여 발사대를 급하게 배치한 것은 다소 성급해 보입니다. 사드의 완전한 배치는 곧 북핵 문제는 어차피 해결되지 못할 거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리적 연결 관계를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어떻게 감당할지도 걱정입니다. 러시아는 이미 필요하면 사드 부대를 공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군부대만 정밀 타격한다고 해도 사드 발사대를 파괴하기 위한 미사일이 날아오면 인근 지역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프레시안 : 이와 관련해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한국, 미국, 중국이 회담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정세현 : 청와대는 부인하는 모양인데, 만약 정의용 실장이 그렇게 움직였다면 순서를 잘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드를 가지고 미국과 중국이 직접 해결하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았습니까? 중국이 미국에 뺨 맞고 우리한테 눈 흘기는 상황에서 3자가 만나서 대놓고 이야기하자는 제안인 것 같은데요. 북핵 문제 풀기 위해 중국이 노력해야 하는데, 북핵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사드 문제도 해결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식으로 접근했다면 적절한 제안이었다고 봅니다.

사드와 북핵은 붙어있습니다. 사드를 배치하지 않으려면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개념으로 한미중 대화를 제안했다면 상당히 고도화된 전략입니다. 또 이는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맥락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북미 충돌 전 핸들 꺾었다 

프레시안 : 미국은 군사훈련 규모를 늘릴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줄일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요. 그렇다면 결국 훈련이 끝나는 8월 말까지는 회담의 모멘텀이나 계기가 없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긴 하지만 일단 UFG는 북한 입장에서는 매년 봄에 열리는 훈련인 키리졸브에 비해 물리적으로 더 큰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그리고 시기적으로 북한의 핵 활동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북한이 훨씬 아파하는 키리졸브는 내년 봄에 열립니다. 아직 시간이 좀 있기 때문에 협상 카드로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지금 군사 훈련을 중단 또는 축소한다고 미리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대화 모멘텀을 만들기 전에 정부가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관련해 대책을 세워야 하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북한의 핵 활동과 미사일 발사는 불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중단해야 하고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합법적이기 때문에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건 위험한 발상입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 대응해서 중국과 러시아가 서해에서 합동 해군 훈련을 한 적이 있는데, 만약에 북한과 중국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유사한 훈련을 하면서, 이건 양국 간 합의한 '합법적'인 행위라며 시비 걸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대응하겠습니까? 한미 양국의 훈련이 합법적이듯이 저 훈련도 합법적이라고 나오면 우리가 할 말이 없어지는 겁니다.  

따라서 불법과 합법의 개념으로 이 사안을 몰아가서는 안 됩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활동을 잠정 보류하고 군사 훈련도 보류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회담을 열 수 있는 길입니다.  

당장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중단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은 서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입니다. 따라서 한미 훈련의 규모를 축소하고 대신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유예하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북한이 확실하게 약속을 지킨다면 내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규모 축소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면서 일단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에 대해 반발하거나 미사일 발사와 같은 또다른 군사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정세현 : 그런 부분은 충분히 예견된 사안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키리졸브에 비해 UFG의 물리적 위협이 적기 때문에 북한이 이 훈련을 핑계대고 화성 14형과 유사한 수준의 군사적 행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SLBM 정도의 미사일을 쏠 가능성은 충분히 있죠.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도 그런 징후를 포착했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미사일이 미국 본토나 미군 기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북한이 다시 '치킨게임'을 시작했다고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위협적인 퍼포먼스이긴 하지만 이미 그거보다 강도가 높은 도발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북한이 엄청나게 센 도발을 했다고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는 와중에 미북 간 직접 접촉을 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훈련 기간 중에는 못하겠지만 훈련 이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이 9월 이후 미국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미북 양측이 정면으로 충돌하기 직전 미국이 먼저 살짝 핸들을 틀었고, 북한도 괌 포위 사격을 이야기 해놓고 미국의 태도를 지켜보겠다며 살짝 틀었습니다. 결국 말대 말 경쟁은 끝났고, 협상을 위한 접점을 찾는 국면으로 넘어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럴 경우에 최선희 국장의 방미가 사실이라면 미북 협상이 생각보다 빨리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조지프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까지 나서서 전쟁 없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군인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닙니다. 미국은 확실히 외교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틀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미국도 체면이 있는데, 북한이 아무런 제스처를 보이지 않아도 대화로 무게중심을 갑자기 옮길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지난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이 북한에 먼저 만나자고 했죠. 미국 체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을 죽일 것처럼 위협하다가도 국면이 협상으로 바뀌면, 체면보다는 실리를 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이 더 이상 위험한 짓을 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는 겁니다. 그를 통해 실리를 챙기겠다는 것이죠.  

프레시안 : 하지만 지금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입니다. 어디로 튈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라서 안보 우려가 더 높아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정세현 : 물론 그렇긴 하지만, 미국에는 트럼프 대통령만 있는 게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히 들쑥날쑥하고 있는데도 국무부·국방부 장관이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톤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트럼프가 북한에 핵 미사일을 쏘라고 하더라도 합참의장을 비롯해 미국의 외교·안보 라인이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내내 북한 문제에 매달릴 수가 없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아무런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자칫 '전략적 인내 시즌 2'를 하지 않도록 우리가 계속 미국을 찌르고 설득해야 합니다. 특히 미북 간 마주보고 달리던 형국에서 대화 쪽으로 틀려고 할 때 그 틈새로 들어가서 남북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발언권을 높이고 외교적 힘을 키울 수 있는 겁니다.  

▲ 지난 14일 송영무(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만난 조지프 던포트 미 합참의장 ⓒ사진 공동취재단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주한미군 주둔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현재 세계의 핵 보유국을 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외에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정도가 있는데요. 미국은 사실상 이들의 핵 보유를 묵인해줬습니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과 북한은 성격과 양상이 좀 다릅니다. 북한은 드러내놓고 반미(反美) 성향을 보이고 있고 심지어는 미국과 전쟁도 했습니다. 지난 1960년대 핵을 가진 중국 이후에 이와 유사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핵을 가지겠다고 하니, 지금 미국도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요.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북핵 해결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제임스 클래퍼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북핵을 인정한 상태에서 핵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세현 : 핵 협상을 시작하는 것과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건 별개입니다. 미국은 설사 나중에 비핵화를 마무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비핵화를 목표로 걸고 6자회담 재개하기로 했다, 비핵화를 위해 북한이 바라는 것이 평화협정이라면 그것도 같이 묶어서 협상할 수 있다는 식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핵을 없애려면 미국이 내놓아야 할 반대 급부가 커집니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내가 그것까지 내주면서 꼭 북한을 비핵화 시켜야 해?" 라는 의문이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미국은 내심 북한이 지난해 당 대회 때 이야기한 것처럼 핵에 대한 비확산 약속을 확실히 지킨다면 수교까지 갈 수 있는거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려면 북한이 요구하는 여러 불리한 조건을 미국이 다 들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건 미국이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당장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갈' 상황에 놓인 한국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미국의 북한에 주는 반대 급부중에 가장 큰 것이 북미 수교 아닌가요?

정세현 : 그런데 주한미군 주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인 1990년대 초에서 2000년대 까지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없이 미국에 수교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북한은 미군 철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면 지금처럼 태평양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보기에 북한의 비핵화는 비확산 정도의 수준에서 묶고 남한에 미군을 남기는 것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자신들의 국익을 보장하는데 최상의 시나리오 일 수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와 남한의 주한미군 주둔 중에서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북한의 비핵화를 포기하더라도 남한 내 주한미군 주둔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불 낸 사람이 불 끄는 사람한테 난리 

프레시안 : 그런데 이 와중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문재인 정부가 안보에 무능하다며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 정당들에서 안보가 무능하다고 비난할 자격이 있나요?  

정세현 : 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한반도 문제에서 운전석에 앉으려면 남북관계가 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북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조정자 역할을 하지 못하게 남북관계를 파탄낸 세력이 자유한국당 입니다. 그런데 안보에 무능하다구요? 누가 안보를 망쳐놨습니까? 불낸 사람이 누군데 불 끄지 못한다고 난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어렵게 만든 장본인들이 되려 지금 외교 무능·안보 무능 이라고 떠들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가 남겨놓고 떠난 유산이 너무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하도 마이너스가 커서 이걸 다시 제로(0)로 만드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상황이 어려워진 맥락에 대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적절히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북핵 문제가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생긴 문제도 아닌데,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게 된 배경을 자세히 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세현 :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남북관계 복원하기도 어렵고 미국에 대해 발언권을 행사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외교 무능·안보 무능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과연 누가 만들었냐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정권을 교체시킨 대통령이 책임을 이전 정부에 넘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좀 비겁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가 꺼려진다면 외교·안보 참모들이라도 나와서 대국민 설명 작업을 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막아둔 것은 이전 정부고, 이 때문에 외교적 역량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점을 국민 앞에 솔직히 밝히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국가안보실장이나 통일부·외교부·국방부 장관 등이 정책 환경과 구상, 추진 결과,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 사회 원로를 포함한 전문가, 시민단체 등에게도 말하고 일반 국민들에게도 공개 가능한 수준에서는 좀 열어둬야 합니다. 각계의 사람들과 다양한 자리에서 소통하도록 식사뿐만 아니라 간담회 또는 강연회 축사 등을 통해 충분히 뜻을 전달하고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드라인' 설정은 '자승자박' 될 수 있다
[정욱식 칼럼] 문재인 "한반도 전쟁 안된다" 옳은 말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 이어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전쟁 불가' 의지를 거듭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두 번 다시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제가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며 "우리 국민은 안심하고 믿으시길 바란다"고 역설했다.

특히 "대한민국 결정 없이 누구도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옵션을 사용하든 사전에 한국의 동의를 받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한미간의 굳은 합의"라고 강조했다. 

전쟁 위기설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반복되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에서 대통령이 반전(反戰)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전쟁사를 돌이켜보면 오판과 오인, 격화되는 안보 딜레마 속에서 터진 '원하지 않는 전쟁'도 있었다.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인류사에서 첫 번째 세계대전으로 기록된 1차 세계대전이 대표적이다.

한반도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자명하다. 하여 문 대통령의 강력한 반전 의지는 전쟁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낮출 수 있는 정책과 전략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이러한 정책과 전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대목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거기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게 되는 것을 레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점점 레드라인 임계치에 다가가고 있다"며, "만약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북한은 더욱 강도 높은 제재 조치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이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북한에 "위험한 도발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문제는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이 상호 간에 상당한 긴장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독자적인 군사 행동에 대한 단호한 반대 의사는 그 자체로 상당한 구속력이 있다. 미국이 동맹국이자 한반도 전쟁 발발시 최대 피해자가 될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탄두 장착 ICBM 완성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하면서 그 선을 넘으면 "견뎌내지 못할" 제재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는 실질적인 억제 효과를 가질 수 없다. 제재의 강도는 핵탄두 ICBM 보유를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김정은 정권의 전략적 선택을 바꿀 만큼 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 개념을 놓쳐서도 안 된다. 아무리 강력한 제재라도 북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북한은 이 시간을 '전쟁불사론'을 앞세운 고도의 '헤드 게임'으로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설사 "견뎌내지 못할" 순간이 다가오면, 북한은 '굶어죽느니 싸우다 죽겠다'는 태세로 맞설 것이다. '레드라인' 발언과 추가 제재 경고가 전혀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잉태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발등의 불을 완전히 끄는 게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말 폭탄이 쏟아지던 북미관계에서 반전(反轉)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4일 전략군 사령부를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에 미국에 날린 '괌 포위 사격 경고장'을 일단 서랍 안에 넣어둔 셈이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김정은이 매우 현명하고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화답했다. 

이로써 급한 불은 꺼졌다. 하지만 잔불은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잔불을 언제든 큰불로 만들 수 있는 화염물질도 도사리고 있다. 당장 위험한 화염물질은 괌 발(發)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및 이에 대응한 북한의 괌 포위 사격 가능성이다.

그래서 위기관리의 핵심은 예방외교가 되어야 한다. 현재 한미 양국은 다음달 21일부터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합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관건은 이 훈련에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전략 자산의 투입 여부로 모아진다. 지휘소 훈련인 UFG에 전략 자산 투입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2013년 이후 이 훈련 시기나 이를 전후해 전략 자산을 투입하곤 했다. 

만약 전략 자산, 특히 괌 발(發) 전략폭격기가 한반도로 전개되면 북한은 고도의 '헤드 게임'으로 응수할 것이다. 일단 북한이 사전 경고한 4발의 '화성-12형' 미사일을 괌의 동서남북 30~40km 인근으로 탄착시키는 '초고강도 도발'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1~2발의 미사일을 괌에서 더 멀리 떨어진 바다로 떨어뜨릴 수도 있고 일종의 성동격서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할 수도 있다. 북한엔 한미 양국을 골치 아프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의 평화 의지는 미국에 전략 자산 투입 자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북한의 레이더망에 전략폭격기가 잡히지 않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추가 도발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러한 냉각기를 거쳐 대화의 문도 열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은 작년 9월 9일 이후 아직까진 없는 상태이다. 이에 더해 북한이 어떠한 형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자제하면 한미 양국이 내세운 대화의 조건은 '일부' 충족되는 셈이 된다. 트럼프가 김정은이 괌 포위사격 유보 방침을 밝힌 것에 대해 "매우 현명하고 아주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 만큼, 한미 양국이 이러한 해석을 내리면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할 수 있는 근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을 선언하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와 같은 일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는 기간을 활용해 대화의 문을 열고 협상을 통해 북한의 약속을 받아내는 게 필요하다.     

한반도 위기 해결할 구원 투수로 주목받는 북유럽

중립국 스웨덴, 분쟁해결사 노르웨이가 중재자로 거론되는 이유

김회권 기자 ㅣ khg@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7(목) 17:57:30


한 고비 넘긴 걸 지도 모르겠다. 북한이 8월10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으로 미군 괌 기지 주변을 ‘포위사격’하겠다고 말한 지 하루 뒤인 11일,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공개하면서 한 때 북미간 충돌은 격화됐다.

 

“우리가 발사하는 화성-12형은 일본의 시마네현, 히로시마현, 고치현 상공을 통과하게 된다. 사거리 3356.7㎞를 1065초간 비행한 후 괌 주변 30~40㎞ 해상수역에 탄착 될 것이다.”

북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의 실행 의지는 미국과 한국을 자극했다. ‘인내심의 한계’를 먼저 언급한 쪽은 미국이었다. “김정은이 괌에 무언가를 하려 한다면 누구도 전에 보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가 나오자 한반도 8월 위기설이 증폭됐고, 전쟁은 실현 가능한 옵션처럼 얘기됐다.

 

8월14일,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은 “미국놈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며 괌 포위사격을 유보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1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이 한발씩 물러난 것은 결국 전쟁이 아닌 외교를 통한 해결을 모색하는 시도로 풀이되고 있다. 갈등의 중재를 통한 국면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국교정상화교섭을 위해 일본과 협상에 나선 송일호 담당 대사에 몰려든 취재진. 북한이 신뢰하는 중재자인 스웨덴은 북한이 서방과 교섭할 수 있는 루트를 제공한다. © 사진=EPA연합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국교정상화교섭을 위해 일본과 협상에 나선 송일호 담당 대사에 몰려든 취재진. 북한이 신뢰하는 중재자인 스웨덴은 북한이 서방과 교섭할 수 있는 루트를 제공한다. © 사진=EPA연합


 

스웨덴을 ‘정직한 중재자’로 생각하는 북한

 

중재자는 누가 될까. 미국이 무역 전쟁까지 선포한 중국일까, 북한이 최근 친밀함을 표현하고 있는 러시아일까. 하지만 의외로 멀리 떨어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을 주목하는 눈도 있다. 

 

뉴스위크는 “스웨덴이 갈수록 국제적인 고립이 강화되는 북한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있는 점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북미간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스웨덴이 북한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중재자’로 일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라고 되물었다. 

 

뉴스위크가 스웨덴에 주목한 이유가 있다. 스웨덴과 북한의 관계 맺음 역사 때문이다. 뉴스위크는 “스웨덴이 1970년대에 수출한 대량의 볼보자동차는 지금도 북한의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아직 그 대금은 지급되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하며 수십 년간 유지돼 온 양국 관계에 포인트를 뒀다.

 

한반도는 아직 평화 상태가 아닌 휴전 상태다. 중립국인 스웨덴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멤버로 한반도 문제에 참여해 왔다.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1975년 평양에 대사관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북한의 신뢰가 깔려 있었다. 당시 스웨덴은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며 비동맹 운동의 한 축을 맡았고 국제무대에서 한 쪽으로 쉽게 쏠리지 않는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대북 인도적 지원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곳도 스웨덴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과 세계식량계획(WFP)의 ‘국제사회 대북 지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북한에 도달한 각국 인도주의적 지원은 2640만 달러였다. 지난 해 같은 기간 3400만 달러에 비하면 22% 감소했다. 특히 북한에 계속 지원해 왔던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지난해 7개국에서 올해 6개국으로 줄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올해도 지원국 명단에 포함돼 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서방에 대해 회의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는 북한이지만 스웨덴만은 서구와 소통해야 할 때 ‘정직한 중재자’로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다.

 

뉴스위크는 “스웨덴은 베일에 쌓인 북한 정부의 외교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서방 국가의 시민이 북한에서 문제에 휘말릴 때 스웨덴은 서방을 대표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8월9일 북한에서 풀려난 캐나다 국적인 임현수 목사의 석방 과정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게 스웨덴이었다. 임 목사는 2015년 1월, 북한 나선지역에서 평양으로 이동하다 반국가 활동 혐의로 체포된 뒤 ‘국가전복 음모’ 혐의로 무기노동교화형을 받고 복역하고 있었다. 임 목사가 풀려난 뒤 마르곳 발스트롬 스웨덴 외무장관은 “북한에서 우리의 존재가 대화와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스웨덴은 이 역할을 중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의미를 뒀다.

 

아직 스웨덴 외무부는 북한과의 소통을 단순한 영사 임무 이상으로 두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핵 위기 해결책과 같은 무거운 역할과는 거리를 둔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중재자로 누군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미국과 북한 양쪽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 스웨덴이 우선 후보로 거론된다는 게 뉴스위크의 분석이다.

 

4월29일 이집트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교황은 “미국과 북한의 긴장이 너무 가열되고 있다”며 협상을 중재할 제3국으로 노르웨이를 꼽았다. © 사진=EPA연합

4월29일 이집트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교황은 “미국과 북한의 긴장이 너무 가열되고 있다”며 협상을 중재할 제3국으로 노르웨이를 꼽았다. © 사진=EPA연합


 

프란치스코 교황, “격화된 북미 갈등, 노르웨이가 중재자 돼 달라”

 

스웨덴을 대신해 노르웨이도 중재자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노르웨이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4월29일 이집트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특별기 안에서 교황은 “미국과 북한의 긴장이 너무 가열되고 있다”며 “나는 항상 외교적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황은 직접 협상을 중재할 제3국으로 노르웨이를 꼽았다.

 

노르웨이는 역사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분쟁을 중재해 온 실적이 있다. 1993년 중동 분쟁을 마무리하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탄생시킨 ‘오슬로 협정’에서 중재자 노릇을 했다. 1996년 내전에 휩싸인 과테말라를 평화협정 체결로 인도해 36년간의 분쟁을 종결시키는 중재자도 노르웨이의 몫이었다. 스리랑카에서도 노르웨이가 나섰다. 26년간 계속된 스리랑카 정부와 반정부군인 '타밀반군'(LTTE)의 내전을 종결짓는 역할을 맡았다. 이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러 분쟁의 중재자로 존재감을 보인 국가가 노르웨이다.

 

노르웨이가 두각을 나타내는 건 스스로의 이해를 배제하고, 장기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가며, 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분쟁 당사자들도 안심하고 협상할 수 있는 국가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그럼 정말 노르웨이가 북핵 문제에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교황의 얘기는 실현될 수 있을까. 뉴스위크는 “2006년 노르웨이 언론에서 북한 당국이 국제 사회와의 중재를 노르웨이 측에 요구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민간 부문에서도 북한과 노르웨이는 접점이 있다. 북한은 2016년 5월 노르웨이 출신 예른 안데르센을 북한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물론 이런 인연들 탓에 북핵 해결사로 노르웨이가 주목 받았지만 교황의 말이 실현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