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 참으면 보수가 살아난다?
한국 보수연합은 지역적으로는 영남, 세대로는 고연령층, 계층으로는 자산을 소유한 중산층을 축으로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이 세 축이 모두 흔들렸다.
새누리당(현재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열) 계열 보수 정당과 더불어민주당 계열 진보·개혁 정당의 대결 구도는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국 정치의 기본 축이었다. 이 진보·보수 구도로 치러진 다섯 차례 대선에서 보수는 1992년(김영삼), 2007년(이명박), 2012년(박근혜) 세 차례 이겼다. 1992년 대선부터 따져 보수 후보가 받은 최악의 성적표는 1997년 이회창 후보(당시 한나라당)의 38.7% 득표다. 이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경선에 불복하고 탈당한 이인제 후보(당시 국민신당)가 19.2%를 가져갔으므로, 보수 분열이 없었다면 득표율은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보수 후보가 패배한 1997년(김대중), 2002년(노무현) 대선도 득표율 차이 3%포인트 이내의 초접전이었다.
이 법칙은 사실상 이미 깨졌다. 2017년 대선은 보수 후보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단 한 차례도 당선권에 근접하지 못한 민주화 이후 최초의 선거다. 2017년 대선 막판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홍준표 후보(자유한국당)는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유승민 후보(바른정당)는 한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산하고, 여기에 대선 당일의 결집효과까지 고려해도, 선두 후보와의 거리가 가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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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4월11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보수 우파 대통합’을 촉구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한 뒤 인사하고 있다. |
‘재정렬(리얼라인먼트·Realignment)’이라는 정치학 용어가 있다. 정당과 지지층의 짝지음이 극적이고 구조적으로 재편성되는 사건을 일컫는 용어다. 이를테면 대구·경북이 더불어민주당 지지 기반으로 넘어가거나 30대 대졸자 유권자층이 자유한국당 표밭이 되는 식으로 심대하고 오래 지속되는 변화가 있을 때 이 용어를 쓸 수 있다. 그리고 이 ‘재정렬’이 확인되는 선거를 ‘중대 선거(critical election)’라고 부른다. 보수의 위기를 바라보는 연구자와 분석가들은 2017년 대선이 과연 이 ‘중대 선거’가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보수의 위기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에 따른 일시적인 수세라면, 2017년 대선은 중대 선거가 아니라 그저 예외적인 선거가 된다. 비슷한 전례도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당시 대통합민주신당)는 26.1%를 득표했다. 진보·개혁 진영의 지지 기반이 붕괴한 듯 보였지만, 이후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며 3년도 되기 전에 팽팽한 종전 구도를 복원했다. 지금 2007년 대선을 ‘중대 선거’라고 부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유권자의 태도는 크게 바뀌었지만, 그 변화가 오래 유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 일각에서는 2007년의 그림을 기대하는 기류가 강하다. 보수에 몸담은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3년만 참자”라는 말이 인사처럼 오가곤 한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 실정으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것처럼, 차기 정부가 집권 3년 동안 국정 운영에 실패하면 2020년 총선에서 보수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국회 의석 분포가 차기 정부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 블록이 국정 과제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차기 정부가 좌초되기 쉽다는 정서도 있다.
유권자 지형의 재편성 징후 뚜렷
하지만 2017년 현재 보수가 처한 상황은 ‘3년 인내’만으로 극복될 만큼 간단치는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반대를 넘어, 유권자 지형의 재편성 징후가 여럿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국 보수 연합은 지역적으로는 영남, 세대로는 고연령층, 계층으로는 부동산 등 자산을 소유한 중산층이 주축이다. 이 세 축이 모두 균열 징후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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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월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창당대회에서 소속 의원들이 국정 농단 사퇴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무릎을 꿇었다. |
지역적으로는 영남의 두 기둥 중 한 축인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의 이탈이 뚜렷하다. 문재인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부울경 지역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갤럽의 대선 전 마지막 여론조사(5월1~2일 조사)를 보면 문 후보는 전국 지지율(38%)보다도 부울경 지지율(42%)이 높다.
세대로는 확고한 보수당 지지층이었던 50대가 ‘스윙 세대’로 변모하고 있다. 민주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며 정치의식이 형성된 이른바 ‘386 세대’들이 50대에 진입하면서, 50대 전반과 후반의 정치 성향이 갈리고 있다. 50대 전반의 정치 성향이 눈에 띄게 진보적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보수화되는 경향보다는, 젊은 시절의 진보적 정치 체험을 유지하는 경향이 이 세대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 균열, 자산 소유 중산층의 이탈 징후야말로 의미심장하다. 지역 축·세대 축의 균열과 달리, 이 마지막 균열은 이념과 노선상의 균열을 암시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보수가 분노한 이슈로 손에 꼽는 의제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였다. 교과서 이슈는 보수 정부가 강성 권위주의로 퇴행하고 있는 증거로, 또한 보수 정당은 그것을 제어할 의지가 없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국가주의 성향이 강한 고령 보수층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자산 소유 중산층에게는 분명 과도한 퇴행으로 비쳤다.
박근혜 정부는 ‘오른쪽 한계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민주화는 북한이라는 강한 압력을 옆에 두고 전개되었기 때문에, 민주화의 축인 중산층이 극단주의를 용인하지 않는 태도가 특히 강하다. 통합진보당은 ‘왼쪽 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간주된 탓에 중도 보수적 중산층이 해산에 찬성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강성 권위주의는 중산층의 ‘오른쪽 한계선’을 넘어갔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권위주의적 대응과 교과서 파동 등을 거치며 그런 불만이 두껍게 축적되어 있었다. 그래서 최순실 스캔들에 대한 분노와 촛불집회의 결집력이 그토록 강하고 오래 유지되었다고 본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체제 전환 중인 국가에서는 권위주의와 민주화 세력 양쪽에서 일종의 ‘온건파 동맹’이 형성될 때 민주화가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민주화 역시 강성 권위주의와 좌파 급진주의 양쪽을 배제하면서 온건파 동맹을 형성하고 유지해온 과정이 있었다. 이 기본 구도를 수호하는 중산층 정서가 용인하는 한계선을, 박근혜 정권이 결정적으로 넘어버렸다.
이 자산 소유 중산층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지역이 서울의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다. 2012년과 2016년 총선에서 강남 3구의 투표 성향 변화는 흥미롭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강남 3구는 당시 새누리당에 정당 투표 52%를 몰아줬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이 비율이 35%로 떨어졌다. 물론 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이라는 유력한 제3당이 표를 잠식했으므로, 두 숫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서울 전체에서 새누리당이 얻은 정당 득표에 대비하여, 강남 3구에서 새누리당이 얼마나 더 많이 득표했는지 계산해보았다. 이렇게 하면 국민의당 변수를 걸러내고 강남 3구의 보수당 결집력 변화를 볼 수 있다.
19대 총선에서 강남 3구는 새누리당에 서울 전체 평균 대비 125%만큼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이 비율이 20대 총선에서는 116%로 떨어진다. 여기에 더해 투표율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강남 3구의 투표율은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전체 대비 1%포인트 더 높았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서울 전체 대비 1%포인트가 오히려 낮았다. 20대 총선에서 자산 소유 중산층은 보수 정당에 분명히 표를 덜 주었고, 투표를 더 많이 포기했다. 탄핵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등장하기 전부터 자산 소유 중산층의 이탈과 균열 징후는 뚜렷이 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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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5월2일 홍준표 후보(왼쪽)와 유승민 후보가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을 기다리며 나란히 서 있다. |
강남 3구 중산층의 보수 결집력 약해져
보수 유권자의 균열은 정치 엘리트들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의 강성 권위주의가 불러온 중도 보수층의 이탈은 심각한 위험신호였다. 박근혜 탄핵 찬성 의원들이 주축이 된 새누리당 분당과 바른정당 창당은 부분적으로 그 귀결이었다. 바른정당은 기본적으로 ‘반기문 둥지 만들기 프로젝트’였지만, 바탕에는 박근혜 정권의 강성 권위주의에 대한 중도 보수 유권자의 이탈이라는 지각변동이 깔려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17년 대선은 보수 본류 정당과 후보가 둘인 채로 선거전에 돌입했다. 1997년 이인제 후보나 2007년 이회창 후보(당시 자유선진당)처럼 보수 출신 유력 후보가 추가된 선거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보수 본류 정당이 분열되어 주도권을 다투는 선거의 의미는 또 다르다.
오른쪽 <그림>은 한국 정치에서 핵심 이슈로 간주되는 ‘경제’와 ‘남북관계’를 두 축으로 해서, 주요 후보들의 위치를 표시한 개념도다. 문재인 후보는 경제는 시장 자유보다 정부 개입 성향에 더 가까운 공약이 많다. 남북관계는 압박보다는 교류를 우선한다. 1사분면 유권자 대부분을 흡수하고 있다. 심상정 후보(정의당)는 문 후보와 같은 1사분면에 있으면서 문 후보보다 더 급진적이다. 유권자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진보 정당 후보 나름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국민의당)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압축하듯 4사분면에 위치한다. 하지만 안 후보의 선거 캠페인은 호남의 전통적 야권 표와 갈 곳 잃은 보수 표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안철수 캠페인은 안보 이슈에서 ‘교류’와 ‘압박’ 양쪽으로 어정쩡하게 걸쳐야 했는데, 이것은 중요한 약점 중 하나였다.
문제는 두 보수 후보다. 홍준표 후보는 전통적으로 보수 포지션인 ‘시장 자유’와 ‘대북 압박’이 조합된 3사분면에 홀로 자리 잡았다. 다른 국면이었다면 중도 표를 공략하면서 대선 승리를 노려볼 수도 있는 위치다. 하지만 2017년 대선에서는 중도 보수 표도 자유한국당 후보를 가능한 대안으로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후보는 3사분면에서도 더 극단적인 구석으로 향해 지지 기반을 발견하는 길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노선이 과할 정도로 선명한 홍 후보는 자유한국당으로서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노리는 포지션으로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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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후보의 포지션은 더 좁았다. 이 신생 보수당의 대선 주자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안철수 후보의 포지션(4사분면)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도 더 구석으로 내달렸다. 2017년 대선에서 유 후보는 대북정책은 홍 후보나 다름없이 냉전적이고, 경제는 문 후보 이상으로 개입주의였다. 유권자가 많다고 보기는 어려운 위치에 자리 잡았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들어가기 직전 발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는 대체로 20%에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한국 보수의 핵심 지지층이자, 강성 권위주의 성향 지지층은 거의 복원됐다. 반면 안 후보가 자리 잡고 있어 비좁은 4사분면 중에서도 더 구석으로 내달렸던 유승민 후보는 지지율 정체에 시달렸다. 바른정당 의원 13명은 5월2일 집단 탈당과 자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다. 이후 탈당을 보류한 의원들이 나타나고, 자유한국당에서도 강성 탄핵 찬성파 의원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친박계가 반발하는 등 5월4일 현재 어지러운 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큰 흐름은 분명하다. 중산층과 중도 보수를 새 지지 기반으로 생각하고 분당을 감행했던 바른정당은 대선에서 신규 지지 기반 확보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보수 핵심층인 강성 권위주의 세력이 15% 안팎의 쪼그라든 결집력으로도 다시 주도권을 회복하고 있으며, 바른정당 일부가 그 힘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강성 권위주의 블록이 다수파를 점한 그 공간은 중원으로의 확장이 사실상 봉쇄된 막다른 골목일 가능성이 있다. 보수는 지지층 균열과 정당 균열이라는 ‘이중의 균열 상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었다.
서울대 박원호 교수(정치학)는 이렇게 말했다. “정당 귀속감은 사실 생각보다 공고하고 잘 안 바뀐다. 그래서 원래 55대45 구도에서 45대55 구도로 뒤집히기만 해도 아주 중대한 사건이다. 선거전 초기처럼 홍준표 후보가 선거비용 보전선인 15%를 밑돌아야만 큰 변화라고 생각하는 건 일종의 착시다. 보수 정당 후보들의 득표율 합이 40%를 밑돌기만 해도 엄청난 변화다. 보수가 소수파인 구도가 이후 몇 차례 선거에서 이어진다면 그건 ‘재정렬’로 볼 수 있다. 그 중요한 징후 가운데 하나가, 홍 후보가 동성애 이슈를 들고 나오며 미국 공화당이 즐겨 썼던 ‘문화전쟁’을 시도한 것이다. 기존 한국 정치에서는 주 전선이 아니었던 이슈다. 이걸 주요 보수 정당 후보가 들고 나와서 기존 전선을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보수 우위의 유권자 정렬이 그대로였다면 할 이유가 없는 시도다.”
이번 대선에서 드러나고 있는 보수의 열세 구도는 앞으로도 지속될 구조 변동인가 아니면 탄핵에 따른 일시적인 휘청거림인가. 보수는, 마치 2007년 이후 진보가 그랬듯이 예전의 연합을 복원할 수 있을까. 딛고 서 있는 지지 기반이 다들 취약하기 때문에, 대선 이후의 정치 지형 변동이 대단히 복잡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박원호 교수는 “대선 이후에 다당제 구도와 선거제도의 불일치가 어떻게 정리될지가 중요하다. 지금의 다당제 구조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헌법과 선거제도가 바뀔까? 그게 아니라면, 다시 진보·보수 양당의 중력에 3당과 4당이 버티지 못하고 흡수되면서 양당제로 돌아가게 될까? 만약 전자라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은 한국 정치의 ‘중대 선거’로 기록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차기 정부가 마치 이명박 정부 때처럼 집권 초기에 민심을 잃는 실수를 했다가는, 쪼그라든 보수가 의외로 쉽게 원래의 지지 기반을 회복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박사모 카페에서 활동하는 2030 청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들이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들여다보았다.
단톡방 가입 절차는 까다로웠다. 박사모 카페의 ‘★2030박사모청년포럼★’ 게시판에 올라온 공지에 비밀 댓글로 이름과 나이·주소·연락처를 남겨야 했다. 댓글은 박사모 카페 정회원만 달 수 있다. ‘승급’한 뒤 비밀 댓글로 정보를 남긴 지 몇 분 후, ‘박사모/국민저항본부 2030’의 대표를 맡고 있는 리더 이군로씨한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이씨는 “태극기 집회 자주 참여하셨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혼자라서 가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샤이 보수들이 많죠. 저희 청년들은 계몽 활동에 힘쓰는 단체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몇 가지 ‘검증’을 거쳐 단톡방에 입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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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조원진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박사모 카페에는 20~30대 회원도 있다. 5월2일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조원진 후보 지지자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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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 2030’ 단톡방에는 이른바 ‘가짜 뉴스’나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합성사진(위)이 오르내렸다. |
탄핵은 언론에 세뇌당한 이들의 책동?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했다. 이들에게 탄핵은 “언론에 세뇌당한” 이들의 책동이었다. “(탄핵 찬성 시민들이) 깨시민인 척 정의니 평화니 좋은 단어는 다 가져가버리는 게 제일 짜증” 난다는 이들에게 단톡방은 “제 또래에 이런 분들 멸종한 줄 알았는데 신기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단톡방은 또한 혐오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들은 “10년 동안 전교조 선동당한 뇌에 우동사리 쑤셔넣은 골빈 좌좀”과 달리 진실을 아는 ‘우파’라고 스스로를 믿으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북한의 김정은을 합성한 ‘적화통1’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공유하고 노란 리본을 “세월충 리본”이라 경멸했다.
탄핵 결정 후 이들의 관심은 차기 ‘대통령 감’으로 옮아갔다. 이들은 단톡방에서 김진태·남재준·변희재·정미홍 등을 ‘그들만의 후보’로 꼽았다. 4월8일에는 조원진 의원이 박사모 등과 창당한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리더 이군로씨도 새누리당 부대변인을 맡았다. 이들은 조원진 후보 유세가 있을 때마다 일정을 공유해 모였다.
“조원진 의원 대선 나오시면 지지율 웬만큼은 다 빨아들일 거 같은데ㅎ”라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조 후보의 지지율은 1~2%에 머물렀다. 이들에게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도 비판 대상이다. 그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의 단일화 주장이 제기되었다. 4월28일 ‘선우’가 “온 힘을 다해 조원진 의원님을 민다면 조원진 의원님이 당선되실 수 있을까요?”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리더 이군로씨는 “홍준표가 대통령이 되어도 대법원에서 유죄판결 내리면 끝이다”라며 조원진 완주 논리를 폈다. ‘선우’는 대선이 일주일 남았다며 ‘현실론’을 내세웠다. 결국 ‘선우’는 “2030 청년분들 한분 한분 정말 사랑하고 아껴요”라며 새벽 1시36분 카톡방을 나갔다. 4월28일 저녁 11시부터 4월29일 오전 7시까지 8시간가량 이어진 논의는 ‘조원진 후보로의 단일화’로 잠정 결론 났다. 그사이 5명이 카톡방을 나갔다.
이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4월29일은 이 ‘단일화 논의’가 끝난 직후였다. 이날 카톡방 개편 의견이 제기됐다. ‘박제우’는 단일화를 말하는 ‘분탕종자’가 많다며 조원진 후보만 지지하는 카톡방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협’은 리더 이군로씨에게 ‘오픈 카톡방’을 제안했다. ‘강퇴’가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이날 저녁 10시19분, 리더 이군로씨가 ‘국민저항본부 2030’ 오픈 채팅방과 비밀번호를 공지했다. 다음 날 그가 “이 시간부로 이 채팅방을 나가주시면 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기존 단톡방에서 삽시간에 20명 가까운 사람이 나갔다. 하루에 메시지 300여 개가 쏟아지던 카톡방에 더 이상 ‘1’이 뜨지 않았다. “이념과 철학이 같은 동지”인 이들은 몇 차례 균열을 겪은 뒤 모임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강퇴’가 가능한 오픈 채팅방으로 옮겨 갔다.
“심상정이 다녀가면 늘 눈물이 남았다”
문재인 후보는 아이돌 같았다. 홍준표 후보는 자기 말만 했다. 안철수 후보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유승민 후보는 지켜보기 안타까웠다. 심상정 후보는 눈물을 남겼다. 현장 기자들의 평이다.
주적은저쪽(주):경선 과정부터 취재했다. 벌써 옛날 일처럼 아득하다.
일분쓰겠다(일):국민의당 광주 경선 때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아저씨들이 전화 돌리느라 정신없더라. ‘주민등록증만 들고 오면 되니 한 번만 찍어주소’라고. 손학규 지지자들이었는데 결과는 안철수 1위, 박주선 2위였다.
이보세요쫌(이):국민의당 광주 경선 때 원광대 학생들이 불법 동원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입구에 대학생들이 서 있기에 처음에는 다른 행사가 있는 줄 알았다. 스마트폰을 보며 삐딱하게 앉아 있고 딱히 정치에 관심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백바지’를 입은 남성이 바람을 잡으니까 재밌는 듯 다 같이 따라하더라. 굉장히 이상한 광경이었다. 결국 선관위가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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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5월3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전북 남원시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주:더불어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안희정 후보 연설을 듣다가 깜짝 놀랐다. 연설 말미에 뜬금없이 “서천 앞바다 꼴뚜기가 제철입니다. 전라남도 바닷가에 봄 도다리가 제철입니다. 2017년 제철, 제 음식 저 안희정의 도전입니다” 하는데 응? 도다리쑥국 먹고 싶어지는 연설이었다(웃음).
따뜻한보수(따):스피치라이터가 쓴 느낌이 아니었다. 원래 준비했던 원고는 세대교체를 강조하는 메시지였는데 연단에 올라 안 후보가 즉흥적으로 평소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안희정 마크맨’ 단톡방이 난리가 났다. 준비된 연설이 아니라서 공보 쪽에서 기자들에게 완성본을 바로 보내주지 못했다. ‘사고 아니냐’는 말에 공보 담당자는 허허 웃으며 ‘잘했잖아’라고 얼버무렸다.
이:이재명 후보 연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더라. ‘욕설 논란’ 같은 자신의 치부도 먼저 이야기했다. 호응이 대단했다. 지지자들이 현장 분위기와 다른 경선 결과에 항의하며 물건을 던졌다. 홍재형 선관위원장이 ‘안정희’ 등 안희정 후보 이름을 계속 틀려 조용하던 안 후보 지지자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일:더불어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안희정 후보 장남 안정균씨를 <시사IN>이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정균씨가 “아버지가 집에서도 민주주의 얘길 많이 한다. 제가 늦잠 자는 사소한 문제로 100분 동안 잔소리를 하신다. 듣다 보면 정신을 잃…(웃음)”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캠프의 비뚤어진 태도가 사람을 질리게 한다’고 격정적인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는데, 당시 집에서 경선 토론을 보다가 썼다는 비화도 공개했다. 정균씨는 더불어민주당 유세단에 합류해 활동했다. 이때 한 번 더 인터뷰했는데 이후 더불어민주당에서 따로 정균씨를 인터뷰해 보도자료로 뿌렸다.
주:경선 직후 안철수 후보 지지율이 오르면서 문재인·안철수 후보 유세를 비교하는 기사도 많이 나왔다. 실제로 어떻게 다른가?
누굽니꽈아(누):지지자 연령대가 확 차이 난다. 안 후보와 문 후보가 하루 차이로 연이어 부산 서면을 찾았다. 현장에서 보니 안 후보 유세를 보러 온 분들은 40대, 50대 300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지나가다가 ‘와, 안철수다’ ‘신기하다’ 하며 멈춰선 유동인구다. 문 후보 유세에는 확실히 일부러 찾아온 2030 여성이 많았다. 유세 전 카페에서 기다리는데 여성 지지자 2명이 색종이를 오려서 응원 팻말을 만들고 있더라. 멘트는 ‘달님 취뽀’. 지금 백수니까 대통령으로 ‘취업 뽀개기’하라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대깨문’.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이:2012년 대선 때 안철수 후보 지지자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였다. 격세지감이다. 지지자 수나 밀도는 어떤가?
누:안 후보 유세 때는 어느 정도 움직이면서 찍을 수 있었다. 문 후보 유세에선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민주당 유세의 경우 한 시간 전부터 지역 의원들이 나와서 사전 유세를 한다. 문 후보는 꼭 주제곡과 함께 ‘모세의 기적’처럼 뒤에서 지지자들을 가르며 등장하도록 동선을 잡아둔다. 유세차 앞 발판에 올라 꽃다발을 받거나 아이를 안는다. 스마트폰 플래시 퍼포먼스도 꼭 한다. 안 후보는 상대적으로 지지자 스킨십을 덜 한다고 느꼈다. 경호원과 수행원에게 둘러싸여 사진기자도 제대로 접근하기 힘들었다. 선거가 진행되면서 스킨십도 늘고 퍼포먼스가 점점 문 후보와 비슷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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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5월3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사 앞에서 사전투표 참여 독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맞다. 안철수 후보도 꼭 아이를 들어올린다. 서울 유세에서 비서진들이 아이를 섭외해 올려놓았는데 안 후보 연설이 길어져 곧바로 율동으로 넘어갔다. 결국 아이를 다시 내려보냈다. 그리고 ‘떴다 떴다 안철수’ 율동을 하는데… 안 후보가 계속 같은 쪽 팔다리를 동시에 올렸다(웃음).
따:문재인 후보 유세에 가면 각종 ‘굿즈’를 판다. 하늘색 응원봉이 하나에 1만원인데 엄청 잘 팔리더라. 상인들이 수요를 잘 파악했다. 문 후보 유세는 아이돌 콘서트를 보는 듯하다.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단연 압권이다.
누:반박하겠다. 여러 면에서 더 압도적인 건 조원진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들이다.
따:아, 그건 이길 수 없다(일동 웃음).
누: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앞 유세에 갔다. 지지자도 울고 조원진도 울먹였다. 조 후보는 자신의 유세 현장인데도 자기 이름이 아니라 박근혜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박)정희곰 근혜곰 원진곰’으로 시작하는 새누리당 선거송 ‘곰 세 마리’를 ‘떼창’하면서도 아무도 율동을 하지 않더라. 조 후보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절하는 걸 앞에서 영상으로 찍다가 지지자들에게 끌려나왔다. ‘(구치소로 가는) 기운 전달을 막는다’고(웃음).
주:조원진 후보 유세는 특이하다. 보통 ‘신촌 유세’ 하면 신촌에 있는 지지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조 후보는 시청 앞에서 ‘자, 시청 유세가 끝났습니다. 우리 모두 신촌으로 갑시다!’라고 한다. 시청에서 신촌까지 한 시간 동안 걸어간다. 신촌 유세가 끝인가 했더니 ‘자유한국당으로 갑시다!’라고 하더라. 지지자들 사이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단일화 여부를 두고 싸워서 난리가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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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인턴 기자 김민수 3월25일 국민의당 광주 경선에 불법 동원된 원광대 학생들이 관광버스에 오르고 있다. |
이:다른 후보는 카메라로 찍으면 의식하면서 살짝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홍준표 후보는 예외다. 영상을 대놓고 앞에서 찍어도 전혀 신경을 안 쓴다(웃음). 카메라뿐 아니라 관중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강남 유세에서 ‘12월9일 대선’이라고 말실수를 했다. 현장에서 지지자들이 ‘5월9일이에요!’라고 했는데도 전혀 듣지 않고 반복했다. 결국 캠프 관계자가 알려줘 바로잡았다. 박근혜가 아직 대통령하는 줄 알고 그랬다고(웃음). 이날 나경원 의원과 복당한 이은재 의원이 지원 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따:홍준표 후보는 어딜 가든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것 같다. 5월3일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를 격려차 방문했는데 ‘범죄 발생이 많다’는 애로사항을 듣더니 결론이 ‘집권하면 폭력시위는 용서 안 한다’고(웃음). 4월21일 관훈토론회가 끝난 뒤 ‘돼지흥분제’ 논란 해명을 할 때도 뜬금없이 ‘그 하숙집에 있던 S대 사람들이 한국 경제를 쥐고 있는 분들’이라고 했다. 뒤에 있던 민경욱 미디어본부장 표정이 몹시 안 좋았다. 홍 후보 지지율이 오르자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찍으려는 지지자들이 자주 보였다. 하지만 ‘개그감’이 있는 것과 별개로 홍 후보의 ‘성범죄 모의’나 혐오 발언은 심각했다.
일:그런 점에서 심상정 후보의 존재가 돋보였다. 4월26일 심상정 후보가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조선산업 노조연대 협약식을 할 때였다. ‘기자분들 질문 있으세요, 없으면 정리할까요?’ 하는데 갑자기 한 청년이 구석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기자는 아닌데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고, “어제 토론에서 성 소수자 위해 1분 써줘서 고맙다. 그 말 하려고 시험공부도 안 하고 왔다”라고 말했다. 부들부들 떨며 양손을 꽉 쥐면서 말하는데 얼마나 긴장했는지 전해졌다. 그때 심 후보가 “아유, 안아줘야지”라며 일어서서 앞으로 나왔다. 다른 주요 후보보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던 후보가 이런 희망도 줄 수 있구나 싶었다.
이:<시사IN> 페이스북에 올라온 그 영상을 보고 울었다는 이들이 많았다. 800회 넘게 공유됐다. 다음 날 심 후보가 성신여대를 찾았는데 성신여대 성 소수자 모임 ‘Qrystal’ 회원들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우는 회원들을 심 후보가 안아주었다. 심 후보를 만나면 소수자가, 2030 세대가 우는 게 하나의 ‘현상’으로 주목받았다. 심 후보는 연설 때 ‘애드리브’도 많이 했다. 시장에 가면 끊임없이 먹으면서 캠프 사람이나 기자에게도 권했다. 전도 뒤집고(웃음). 인간적 매력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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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인턴 기자 나경희 4월26일 심상정 후보가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성 소수자를 안아주고 있다. |
따:‘동성애 발언’이 있던 토론회 다음 날인 4월26일 문재인 후보 일정 중에 성 소수자들이 항의하는 일이 있었다. 물론 경호가 허술했던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항의자들이 후보 멱살을 잡았다’는 잘못된 정보가 꽤 오래 바로잡히지 못한 채 돌았다. 캠프에서 경찰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빠른 대처가 아쉬웠다.
누:안철수 후보의 ‘대형 단설 유치원 설립 자제’ 발언 후폭풍이 거셌다. 이후 안철수 후보가 4월14일 ‘학부모와 함께하는 육아정책 간담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 온 학부모들이 좀 이상했다. 병설·단설 등 국공립 유치원 확충이 아니라 사립 유치원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정책을 설명하려고 참석한 이옥 교수가 “원장님이세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학부모들에게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니 사립 유치원에서 연락을 돌렸다고 했다. 이해관계자보다는 진짜 현장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학부모 목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기획을 어설프게 한 것 같았다.
따:유승민 후보가 4월21일 열린 ‘희망페달 자전거 유세단 발대식’에서 너무나 해맑게 자전거를 탔다. 발대식 직후 의원총회 소집 요구가 있었다고 주호영 원내대표가 백브리핑을 했다. ‘웃픈’ 장면이라 기억에 남는다. 바른정당 후보 선출 때 랩배틀 공연이 있었는데 김성태 의원이 손으로 ‘피스’ 모양을 만들며 선글라스 끼고 춤을 췄다. 김무성 의원은 가수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고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바른정당 의원들의 탈당 사태가 일어나고 보니, 신나게 몸을 흔들던 두 의원의 그때 모습이 자꾸 겹쳐진다.
일:촛불집회가 탄핵으로 이어져 시작된 대선인데 중간에 안보 국면으로 접어들더니 홍준표 후보가 떠오르면서 ‘촛불 대선’이라는 점이 잊히는 것 같다.
따:그래도 지금과 같은 구도와 지지율은 촛불 대선이 아니었다면 달랐을 거라고 생각한다. (진동 소리) 방금 문자가 왔는데, 안철수 후보가 걸어서 120시간 동안 유세를 한다고 한다.
박찬종 변호사 “새 대통령은 부패종식과 정치개혁에 올인해야 한다”
[인터뷰] ‘국무총리·장관 절반 야당 배분’ 조언한 박찬종 변호사
김지영 기자 ㅣ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5.09(화) 10:36:56 | 1438호
정계 원로이자 평론가인 박찬종 변호사는 제9·10·12·13· 14대 등 5선 의원 출신이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6.4% 득표하기도 했다. 현재는 매스컴을 통해 정치권을 향해 강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의 화법은 직설적이다. 여느 정치인처럼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거침과 막힘이 없다.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도 실명을 거론하며 쓴소리를 날린다. 요즘도 후배 정치인들과 자주 접촉하며 조언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5월3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박 변호사를 만났다. 그에게 ‘새 대통령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묻자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부패종식과 정치개혁이다”며 “새 대통령은 헌법의 틀 안에서 정치개혁과 부패종식에 올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찬종 변호사 © 시사저널 최준필
새 대통령은 당선 확정 순간부터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데, 산적한 과제가 많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외교·안보 위기는 남북 분단 상황에서 일상적인 것이다. 경제 위기도 일상적인 것이다. 언제나 있는 위기들이다. 따라서 새 대통령은 외교·안보와 경제 위기는 일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부정부패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고 조기대선이 실시됐다. 이에 새 대통령은 부패종식과 정치개혁 과제를 1순위에 놔야 한다. 마지막 대선후보 TV토론까지 그것을 핵심적으로 지적한 후보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렇다면 부패종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정부패가 근원적으로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새 대통령이 대국민선언을 통해 ‘저는 대기업으로부터 매수당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먼저 대기업에 돈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다’고 천명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제가 임명하는 장·차관,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에게 임명장 줄 때 백지사임서도 미리 받아놓겠다. 부정부패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면 해임하고 수사에 넘기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없앤다는 공약도 나왔는데, 왜 없애느냐. 오히려 특별감찰관제를 확대 강화해야 한다.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해 그런 문제를 다루면 되지 않나.
공수처는 신설되기 힘들다. 당장 국회에서 법률이 통과되지 못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공수처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겠나. 이에 대통령 직속으로 반부패특위를 구성했으면 한다. 특위 활동에 대통령도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특별감찰관제와 반부패특위가 함께 가야 한다. 특위에서 조사하다가 감찰관실에 넘기는 사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은 이전 정권의 비리 의혹을 파헤치면서 자신의 정권 비리 의혹도 파헤치겠다고 하면 된다. 부패종식의 두 번째는 사법정의를 이루는 것이다. 사법정의는 전관예우를 없애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 출신 전관이 재벌이나 고위공직자 사건을 맡아 뭉개는 일을 없애야 한다. 유전무죄, 유권무죄(有權無罪) 부패를 없애야 한다. 강단 있는 대통령이라면 전관예우를 없애야 한다. 검찰도 개혁해야 한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인사부터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검찰총장 인사위원회를 만들어 그 의견을 따르면 된다.
“공수처 신설 힘들어…반부패 특위 만들어야”
새 대통령이 역점을 둬야 할 정치개혁 사안은 무엇인가.
국회 의석 과반수 정당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대통령이 좋은 안을 내놔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정당은 중앙집권적 관료 조직화돼 있다. 국회의원을 정당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놨다. 헌법 8조에 나오는 정당의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조항을 위배한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 수호 최고책임자다. 여야 불문하고 각 정당은 국회의원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정당의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도 광역단체장과 의원은 놔두고 기초단체장과 의원은 없애야 한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왜 없애야 하나.
기초단체는 특별히 자치(自治)할 만한 일거리가 없다. 서울에 25개 구청이 있는데, 상수도와 하수도를 25개 구청별로 나눠놨나? 버스 노선 등 교통망도 서울시가 하고 있다. 전국 235개 기초단체장 절반이 각종 비리 등으로 사법 처리되고 있다. 기초단체장은 임명직으로 하면 된다. 기초단체장과 의원은 혈세의 낭비다. 하지만 새 대통령도 기초선거를 폐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당에 소속된 기초단체장과 의원들이 가만히 있겠나. 강하게 반발할 텐데.
다른 정치개혁안이 있다면.
300개에 달하는 국영·공기업의 상임감사직을 폐지해야 한다. 낙하산으로 비전문가가 가서 업무에 관여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러나 이것도 쉽지 않다. 대통령 후보를 따라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정치개혁을 얘기하면서 개헌도 언급되는데.
그동안 헌법대로 안 했기 때문에 개헌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국회의원 자율권 등 헌법에 명시된 조항조차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개헌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국회의원인데 친박(親박근혜)이 뭐고, 친문(親문재인)이 뭐냐. 친(親)국민만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국민을 위한 호위무사가 돼야지 왜 대통령을 위한 호위무사가 되느냐.

© 시사저널 최준필
“기초단체장·의원, 공기업 상임감사 폐지해야”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등 권력 형태를 바꾸는 개헌안도 나오는데.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되면 이 썩은 정당 체제로 제대로 될 것 같은가. 중임제를 하더라도 정당 체제를 바꾸고 나서 해야 한다. 정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새 대통령은 5당 체제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야당들이 새 정부에 협력하지 않을 것 같은데.
비민주적인 정당 체제이긴 하지만 새 대통령이 국정을 잘 운영하려면 각료를 배분할 수밖에 없다. 연정(聯政)을 해야 한다. 국무총리와 장관 자리 절반 정도를 야당에 배분해야 할 것이다. 거국적 탕평책을 써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국론이 분열됐다.
국론을 꿰매기 위해 여야 간 협치를 할 수밖에 없다. 각료 배분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대통령 스스로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패종식과 정치개혁, 야당과의 협치(協治)를 하게 되면 저절로 해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 대통령에게 손가락질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 아닌 실천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바른정당 의원이 집단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려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다.
바른정당에서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가려는 의원들은 정계에서 축출해야 한다.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낙선시켜야 한다. 유승민 후보는 (바른정당에 가기 전에) ‘나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 남아서 개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먼저 탈당한 의원들이 유승민을 불러냈는데 100일도 안 돼 한국당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소신과 양심이 없는 철면피들이다. 정치를 희화화하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사드 배치 비용으로 10억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폐기 또는 재협상하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다. 안보도 비즈니스 차원에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대등한 거래)’하려 한다. 동맹 관계도 비즈니스로 전환한다. 새 대통령은 ‘우리는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10억 달러 이상을 손해 보고 있다. 사드 배치가 한국의 이익만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도 있는 것 아니냐. 중국과 러시아 등을 견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만든 것 아니냐’고 트럼프 대통령한테 말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피해 본 청구서를 내밀어야 한다.
끝으로 새 대통령에게 특별히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부패종식과 정치개혁이었다. 새 대통령이 헌법의 틀 안에서 정치개혁, 부패종식에 올인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통합이 된다. 북한은 정치권력의 3대 세습이고, 남한은 자본권력의 3대 세습이다. 이 자본권력에 의해 온갖 부패가 발생하고 조장되고 있다. 그걸 개혁하는 데 대통령이 목숨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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