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경선 직후 여론조사 ‘文·安’ 초접전 양상 ‘文 떠난 표심’ 회귀, 安의 제3지대 연대 등 변수
김지영 기자 ㅣ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4.10(월) 09:24:30 | 1434호
“결국 이번 대선은 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입니다.” 지난 1월 중순, 안철수 국민의당 경선주자는 이렇게 호언했다. 당시 그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주자 문재인·이재명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보다 지지율이 뒤처져 있었다. 지지율도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안철수·문재인 대결’ 발언은 그래서 그의 희망사항 정도로 치부됐다.
하지만 그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다. 4월3일과 4일, 민주당과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확정되면서부터다. 후보 확정 전까지만 해도 10%대에 머물던 그의 지지율이 30%대로 진입했다. 오차범위 내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1·2위를 다투는 구도다.
‘문·안’ 양강(兩强) 구도가 형성되면서 문 후보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 구도가 대선까지 이어질진 미지수다. 민주당 주장대로 ‘거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거품으로만 평가절하할 수도 없다. ‘갈 곳을 잃은’ 보수층이 그에게 흡수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이다.

4월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전 대표가 후보 수락연설을 마친 뒤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다(왼쪽).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4월4일 대선후보자 선출대회에서 후보 수락연설을 마친 뒤 무대를 내려오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는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우선 태생이 PK(부산·경남)다. 문 후보는 1953년 경남 거제에서, 안 후보는 196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부산은 그들 성장 자양분을 제공한 곳이다. 소속 정당인 민주당과 국민의당 모두 호남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두고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현재 흐름대로라면 대권에 가장 근접한 두 후보 모두 정치 초년병이기도 하다. 군사정권을 제외한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등 역대 대통령 모두 10년 이상 정치경력을 쌓은 후 대권을 잡았다. 그런데 문 후보는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안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와 단일화한 이후 본격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10년도 안 된 ‘일천’한 경력이다. 2012년 대선에선 단일화 파트너로 한 배를 타기도 했다. 둘 다 이번 대선이 두 번째 도전이다.
정치판엔 영원한 동지(同志)도, 적(敵)도 없다. 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한목소리 냈던 그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를 향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공격한다. 사생결단이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가 확정된 후 안 후보 지지율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문·안의 초박빙 승부가 예측된다. 이런 흐름이 5월9일까지 이어진다면 마지막 투표함까지 열어봐야 당선자를 알 수 있을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PK 출신·호남 기반·정치초년병 등 닮은 점 많아
안 후보가 문 후보를 바짝 추격하면서 ‘문재인 대세론’도 사라졌다. 여러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JTBC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4월4일 실시한 5자(문재인·안철수·홍준표·유승민·심상정) 대결 조사에서 문 후보는 39.1%, 안 후보는 31.8%였다. 1·2위 격차는 7.3%포인트로 좁혀졌다. 안 후보 상승세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3위 홍 후보는 8.6%에 그쳤다. 이 조사는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안 후보가 확정된 날 실시됐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경선 직후인 4월5일 서울신문·YTN이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6자(문재인·안철수·홍준표·유승민·심상정·김종인) 조사도 문 후보(38.2%)와 안 후보(33.2%)가 초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안 양자 대결에선 안 후보(47.0%)가 문 후보(40.8%)를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6.2%포인트 차이다. 중앙일보가 4월4일과 5일 실시한 6자 대결 조사도 문 후보는 38.4%, 안 후보는 34.9%로 집계됐다. 모두 오차범위 내에 있다.(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각 당의 경선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세론은 유효했다. 다른 후보를 비교적 여유 있게 따돌렸다. 하지만 국민의당 경선이 끝난 직후인 4월5일을 기점으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민주당 경선 당시 문 후보와 맞붙었던 안희정 충남지사 지지층이 대거 말을 갈아탔다는 것이다. 선의(善意) 발언과 대연정 제안 등으로 중도·보수층 지지를 받았던 안 지사가 경선에서 탈락하자 그의 지지층이 중도 성향인 안 후보에게 몰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안 후보와 같은 당 경선에서 맞붙었던 손학규 지지층과 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 등 다른 경선 탈락자 지지층까지 흡수했다는 분석이다. 4월5일 서울신문·YTN 조사에서 안희정 지사 지지층의 51.5%, 이재명 시장 지지층의 30.2%가 안 후보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당장 문재인 캠프에 비상이 걸렸다.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4월7일 “안 후보의 상승세는 컨벤션 효과에 불과하다”며 “민주당의 안희정·이재명 지지층이 일시적으로 안 후보를 지지하고 있을 뿐 대선 막판이 되면 다시 민주당 지지로 돌아설 것이다. 지금의 여론조사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정황이 감지된다. 여론조사에서 초접전 양상으로 나오자 문재인 후보 측 관계자는 기자에게 “혹시 안철수와 관련해 들은 얘기 없느냐”며 묻기도 했다. 안 후보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네거티브한 정보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얘기였다. ‘문재인 대세론’이 형성됐던 민주당 경선당시까지만 해도 여유로웠던 이 관계자는 “나중에라도 들리는 얘기(네거티브 정보)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 후보 측은 ‘겉으론’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속으론’ 전전긍긍하는 형국이다.
‘안철수-김종인·정운찬·홍석현’ 연대할까
문재인 대세론으로 ‘기울어졌던 운동장’이 평형을 이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안 후보 쪽으로 운동장이 기울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른바 ‘제3지대’에 머물고 있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비롯한 정운찬 전 국무총리,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등과 안 후보가 연대할 경우 판세가 안 후보 쪽으로 기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 후보의 확장력과 포용력 등이 중도·보수 성향 민심을 자극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 ‘안철수-제3지대 연대론’ 한편에 김종인 전 대표가 있다. 김 전 대표는 4월5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김 전 대표는 “통합정부를 세워 나라의 위기를 돌파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각 당의 후보들이 서로 힘을 모아 나라를 꾸려가겠다. 여러 정파를 아우르는 최고 조정자가 되겠다”고도 했다. 표면상 출마 명분은 ‘나라의 위기 돌파’다. 하지만 속내엔 반문(反문재인) 정서가 강하다. ‘반문재인 연대’를 구축하는 ‘최고 조정자’ 역할을 하겠다는 심산이다.
김 전 대표의 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자신을 주축으로 한 ‘제3지대’ 내지 ‘개헌 빅텐트’를 구성해 ‘킹’이 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킹’으로 직접 나서려면 여론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치고 올라가면 그 탄력으로 완주할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미미하게 나오면 바로 ‘킹메이커’로 나설 수도 있다. 킹메이커로 나설 때의 명분은 ‘통합정부’다. 통합정부 형태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일각에선 유럽식연립정부로 해석한다. 현재 흐름으로 봤을 땐 ‘킹’보단 ‘킹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킹메이커로 나서는 대신 차기 정권에서 국무총리 등으로의 입성을 노릴 수 있다. 그와 동조할 잠재적 우군(友軍)도 있다. 정운찬 전 총리와 홍석현 전 회장 등이다. 여기에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김 전 대표의 ‘반문연대’ 구축 움직임은 여러 차례 표출됐다. 3월29일엔 정운찬 전 총리, 홍석현 전 회장 등과 3자 회동을 가졌다. 이날 회동을 언론에 노출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유발시켰다. 이들은 “통합정부·공동정부·화합정부를 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공통분모가 있었다. ‘차기 정부는 함께 구성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김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이날 세 번째 만남이었다. 정 전 총리와 홍 전 회장의 ‘정치 회동’은 처음이었다. 중심축에 김 전 대표가 있었다. 이날 회동에 대해 정운찬 전 총리는 3월30일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공동정부에 대해선 깊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각자 이심전심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제3지대 후보) 단일화 얘기도 안 했다. 다만 나라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보면 된다”면서 “김 전 대표의 ‘경제민주화’나 나의 ‘동반성장’ 취지가 비슷하다. 홍 전 회장이 보수적인 중앙일보와 진보적인 JTBC를 같이 운영했다는 것은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 사람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정운찬-홍석현’ 연대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 대목이다. 실제 이날 회동 이후 이들 실무자 간에 물밑 접촉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홍 전 회장은 최근 ‘강연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홍 전 회장의 강연을 들은 정치권 인사는 “홍 전 회장의 강연 내용은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았다. 사고의 균형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평했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론’과 정운찬의 ‘동반성장론’은 안철수의 ‘공정성장론’, 유승민의 ‘혁신성장론’과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의 연대 명분은 어느 정도 갖춰진 셈이다. 김종인 전 대표가 지난 3월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 등을 만난 것도 ‘제3지대 연대’를 모색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김 전 대표 등은 ‘반문연대’ 구축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와 ‘1대 1 통합’ 내지 ‘연대’를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대등한 입장에서 통합하거나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제3지대 후보군에서 단일 후보가 나와야한다. 그런 다음 안 후보와 유승민 후보에게 연대를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 후보 측 입장은 다르다. 제3지대에서 ‘선출’된 후보가 아닌 안 후보를 중심축으로 뭉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당으로 들어오라는 얘기다.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이런 기류는 더 강해졌다. 대통령은 안철수, 국무총리와 장관 등은 김종인 등 제3지대 인사로 꾸려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4월6일 언론 인터뷰에서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김종인·정운찬·홍석현에 대해 “국민의당에 그냥 입당해 주셔서 저희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를 도와주시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안철수 측 “안철수 중심으로 뭉치자”
안 후보도 제3지대 세력을 마냥 무시할 순 없을 것 같다. 문재인 후보와 막판 초박빙 승부가 예상될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확장성 측면에서도 중도 내지 보수 성향인 제3지대 세력과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국민의당 내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초선 의원은 “안 후보의 일차 목표가 대선 승리라면 ‘반문’ 내지 ‘비문’ 세력과 손잡아야 한다. 특히 보수·중도 성향 유권자를 더 끌어모으기 위해선 김 전 대표 등과의 연대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5·9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대권 고지를 향해 달리는 후보들에겐 짧은 시간이다. 대세론이 무너진 문재인의 수성(守城) 전략과 1위 탈환을 노리는 안철수의 공성(攻城) 전략은 더 치밀하고 과격해질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 두 후보 가운데 제3지대 연대 카드가 남아 있는 안 후보가 다소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안 후보 쪽으로 돌아섰던 안희정·이재명 지지층이 다시 민주당으로 회귀하면 문 후보가 유리할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5월9일 저녁에 파안대소할 후보는 누굴까. 지금부터가 실전이다. 각 대선캠프가 어떤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느냐에 따라 여당과 야당으로 갈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프레시안>이 여론조사 기관 리서치뷰와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는 42.4%, 안철수 후보는 35.1%였다. (☞관련 기사 : 문재인 42.4%, 안철수 35.1%)
안철수 후보가 선전하는 이유는 보수층이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 때문이다. 정두언 전 의원은 7일 기독교방송(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보수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게 돼버렸다"면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표의 경우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하나는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기를 원하지 않아서다. 또 하나는 문재인 후보가 싫어서 '차악' 개념으로 안철수 후보를 뽑는다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보수 통합' 행보로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인 문희상 의원은 이날 평화방송(PBC) 라디오에 나와 "집토끼를 단단히 단속하는 속에서 확장성 있는 공약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희상 의원은 "정책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민생 문제, 경제 문제부터, 외교 문제부터 지금 남북 문제부터 차곡차곡 해서 표를 쌓아가면서 중도를 확대해야지, 그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닌 어정쩡한 안철수의 위치로 확장성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면서 "문재인도 그런 정치공학적 논리에 빠져가지고 (정책을) 소홀히 했다가는 큰코다친다"고 경고했다. 안철수 후보의 '우클릭' 전략을 따라했다가는 프레임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캠프
문희상 의원은 최근 문재인-안철수 캠프가 서로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한 데 대해 "정책적 대안, 정책적 문제를 놓고 토론을 강화해야지 계속 헐뜯는다면 그분 중에 어느 분이 결국 대통령이 될 것인데 이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문재인 후보에게 제기된 '아들 취업' 논란 등에 대해서 문희상 의원은 "명명백백하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게 제일 최선의 방향이다. 어물어물하거나 '마, 고마해' 이렇게 해서 넘어갈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희상 의원은 "근본적으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일부러 네거티브를 생자로 만들어서 하는 그런 것은 국민한테 식상할 것"이라고 '네거티브'의 전략이 결국 낙후될 것이라고 봤다.
구여권 출신인 정두언 전 의원은 문재인 후보가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두언 의원은 "(문재인 후보가) 너무나 적폐 청산이니 청소니 이렇게 과거 지향적으로 가기 때문에 문제"라면서 "대화합, 혹은 아주 적극적으로 나도 연정하겠다든지 이런 식으로 좀 안정적으로 가줘야지 보수층이 거부감을 덜 느낀다. 선거 전략을 화합으로 변동하면 안 찍겠다는 사람들이 찍을 수가 있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후보의 '확장성의 한계'는 경쟁 상대나 다른 정치 세력에 대해 문 후보가 포용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CBS 라디오에서 사회자가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18원 후원금 때문에 안희정 후보가 '질렸다'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감정이 상했다"고 지적하자, 친문재인계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그 말을 안 하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답하며 안희정 충남지사를 탓했다. 반면 정두언 의원은 "쓴소리를 들으려고 해야 하는데 저렇게 안 들으면 자기 손해"라고 맞받았다.
문재인 후보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 폭탄, 18원 후원금에 대해 "경쟁을 흥미롭게 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두둔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문재인 진보, 안철수 보수? 팩트체크 해보니…
5.9 대선이 정확히 한 달 남았다. 여론조사 1·2위를 달리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아침마다 '문모닝'과 '안모닝'을 인사처럼 주고받고 있다.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고, 이미 제기됐던 의혹을 새로운 것처럼 포장해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유권자들은 '문재인이 더 진보적인 후보다', '안철수는 중도적인 인물이다' 등 후보들의 '이미지'를 주로 소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일부 유권자들은 이미 좋아하는 후보와 싫어하는 후보를 마음 속에서 정해둔 후, 좋아할 이유와 싫어할 이유를 찾는 필요를 위해서만 뉴스를 소비하기도 한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는 실제로 어떤 인물이고, 어떤 정책을 내놓고 있을까를 검증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설사 이 기사 또한 '좋아(싫어)할 이유'를 찾는 데 기여함에 그친다 해도, 그 '이유'를 이미지나 뜬소문이 아닌 '사실'에 근거하게 할 수 있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홍준표·유승민·심상정 후보는 왜 제외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홍 후보가 주류적 보수의, 유 후보가 개혁적 보수의, 심 후보가 진보 정치의 아이콘인 것은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이들은 문·안 두 후보와는 다소 처지가 다르다. (이하 편의상 직함 생략)
촛불
이번 5.9 조기 대선이 치러지게 된 배경에 거대한 '촛불 민심'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에 대한 분노는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때문에 '누가 촛불 민심을 이어받아 개혁을 잘 할 수 있는 후보냐'는 질문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중요하게 제기된다.
문재인은 지난 6일 목포신항을 찾은 자리에서 이 문제로 안철수를 공격했다. 문재인은 "안철수는 그 동안 촛불집회에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지금도 적폐 세력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과연 안철수가 '정권교체'를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저는 그것부터 우선 의문스럽다"고 했다. 문재인의 이런 발언은,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문 후보가 더 진보적이다'고 말하는 근거가 됐다.
안철수도 곧장 응수했다. 안철수는 같은날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이 '문재인이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당신을 비난했다'고 전하자 "제가 언제까지 참석했고, 언제부터 참석 안 했는지는 사실이 다 나와 있지 않느냐"며 "(나를 지지하는 이들이 적폐 세력이라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하게 맞받았다.
안철수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부터 계속 촛불집회에 불참해 왔다. 안철수는 그 이유에 대해 "광장은 시민의 것"이라며 "정치인은 시민께서 권한을 위임해준 만큼 제도권 안에서 노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런 안철수의 입장은 '보수 표심에 대한 구애'로 해석되며 진보적 유권자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는 2월 들어서도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촛불집회 참석과 거리를 뒀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촛불 거리두기'…보수 확장 노리나?)
하지만 사실 문재인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안철수는 지난해 11월 12일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일찌감치 공언했으나, 문재인은 마지막까지 참여를 망설였다. (☞관련 기사 : 문재인·안철수·박원순에 김종인까지 "촛불 모여!") 안철수는 작년 11월 2일 오후, 주요 대선주자들 가운데 박원순(같은날 오전)에 이어 2번째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향해 "물러나라"고 공식 요구하기도 했다. 촛불집회를 앞둔 11월 초, 안철수가 거리 서명운동을 시작하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을 때 문재인은 좀더 신중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마지막 요구…박근혜, 국정에서 손 떼라")
문재인은 지난해 11월 초 시민사회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저도 시민운동을 오래 했고 촛불 민심에 백 번 공감하고 지지한다. 개인 문재인으로서는 촛불집회에 함께하고 싶다. '문재인 뭐 하느냐, 촛불집회 나와서 앞장서라' 등의 말도 많이 듣는다"면서도 "그러나 정치인 문재인으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은 당시 "촛불집회가 자발적 순수 집회인데, 정치권이 결합하면 혹여라도 순수한 집회가 오염되거나 진영 논리에 갇힌 정쟁처럼 될 수 있다. 집회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그는 지난 3월 17일 당내 경선 토론회에서까지 "촛불집회를 정치인이 앞에서 이끈다면 그 순수성과 자발성이 훼손된 것"이라고 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성남시장과 비교되며 '고구마와 사이다' 논쟁을 만든 장면이기도 했다.
촛불집회 참석과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요구가 '진보성'의 기준이 된다면, 문재인과 안철수가 이 지점에서 '누가 더 진보적이냐'를 가를 유의미한 차이점을 만들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철수는 일찍 '투쟁'을 시작했지만 중도에 그만뒀고, 문재인은 늦게 시작했지만 오래 머물렀다. 만약 촛불집회 참석을 후보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생각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광장을 지켜온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있고, 반대로 일관되게 촛불집회를 외면해 온 유승민·홍준표 후보도 있다.
정책
'촛불 민심'을 받아 안는 정치를 하려면 법과 제도를 통해 구체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정책이다. '문재인이 더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기대를 실제로 만족시켜 주는 분야는 외교안보 정책 가운데 일부다.
△외교안보(1) -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전작권 환수
문재인은 지난해 12월 29일 "개성공단은 즉각 재개해야 하고, 금강산 관광도 우리 관광객들에 대한 안전 조치에 대한 확답을 받고 빠르개 재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의 이런 입장은 유지되고 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집권하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즉각 재개")
반면 안철수는 개성공단과 관련해 "유엔 제재안 때문에 당장 재가동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2월 9일)라는 입장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입장과 판박이다. 그는 지난 5일, 대선후보 선출 후 가진 첫 기자 간담회에서도 "강력한 제재를 하면서도 적절한 시기에 물밑 대화를 하며 우리가 원하는 협상 테이블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그 테이블이 열리면 금강산 관광을 포함해 거기서 종합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 그것이 없이 중간에 '이것만 재개하자'고 할 수는 없다"고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전시작전전환권 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도 비슷하다. 문재인은 <조선> 인터뷰에서 전작권 문제에 대해 "집권 기간 내에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빠르게 넘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 시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도 "가급적 일찍 환수해야 한다"(3월 6일, 경선 토론회)라고 했다.
반면 안철수는 2월 15일 안보 공약 발표 당시 "원칙적으로 전작권을 가져오는 것이 맞다"면서도 "안보 상황이 안정되고 우리 자체의 대북 우위 능력을 구비할 때까지 국익을 위해 현재의 연합방위체제를 그대로 존속시키겠다"며 전작권 조기 환수에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관련 기사 : 안철수, 4년 전엔 "전작권 환수는 기회"라더니…)
△외교안보(2) - 사드
최근 안철수가 <프레시안> 등으로부터 가장 비판받은 지점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다. 안철수는 6일 관훈토론에서 "사드 배치 제대로 해야 한다"며 사드 찬성론을 폈다. 지난해 7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한 것과는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국가 간의 합의는 뒤집을 수 없다'는 그의 변명에 대해, '그러면 한일 위안부 합의도 국가 간 합의이니 따라야 하느냐'는 비판이 뒤따른 것은 당연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상황 바뀌면' 위안부 합의도 인정하나?)
그러나 "안 후보는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박근혜 정권의 사드배치 결정에 대해 '정부 간의 합의인 만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가 당사자인 피해 할머니들에게 묻지도 않고 일본 정부와 밀실 합의한 위안부 협정도 존중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밝히라"(4월 7일, 권혁기 문재인캠프 수석부대변인)라고 공세를 취한 문 후보 측도 사실 남의 얘기를 할 처지는 아니다.
문 후보는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사드 배치에 대해 찬성이냐, 반대냐'는 안희정·이재명의 집요한 질문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 사드를 배치할지 말지 예단할 수 있느냐"며 "전략적 신중함"을 견지해야 한다고 확답을 거부했다. 사드와 관련한 문재인의 입장은 "사드 배치 문제를 다음 정부로 넘겨준다면,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회 비준동의 과정을 거쳐 안보도 지키고 국익도 지켜내는 합리적인 결정을 하겠다"는 수준이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발끈 "사드 배치 다음 정부로 넘겨라")
안철수의 '사드 찬성' 압장보다야 찬반 자체를 밝히지 않은 게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문재인의 사드 관련 입장도 비판의 포화를 받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프레시안> 기고에서 "문재인의 발언은 본인 집권시에도 사드 배치를 추진하되, 중국·러시아의 반발은 외교적 노력으로 풀고 국회 비준동의를 거쳐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며 "비준동의는 차기 정부도 사드 배치에 찬성할 때 성립할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관련 기고 : 문재인의 '사드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한다)
△사회·경제(1) - 일자리·노동
외교안보 분야 중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전작권 문제에서는 '문재인이 더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 사회·경제분야의 정책 공약은 사드 문제와 마찬가지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일자리·노동 분야에서 문재인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운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만들고,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실을 만들겠다"고 했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대기업 노동자들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공정 임금제를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언제까지 얼마로 올리겠다는 구체적 계획은 제시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점차적으로 올리겠다"고만 했다.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문재인은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는 법으로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정해, 비정규직의 '입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법정 휴가만 다 써도 30만개 창출")
안철수도 비슷하다. 안철수는 "정부는 먼저 질 낮은 일자리를 개선하고, 기업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며 '일자리 몇만 개'라는 공약보다는 "고용정책 기조를 일자리 질적 개선에 두겠다"고 했다.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양산을 억제하기 위해 공공부문 '직무형 정규직'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방안과 "비정규직 억제를 민간 부문으로 확대하기 위해, 공공 조달 제도를 개선해서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업체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규제책을 내놨다.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 방안도 문재인과 똑같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대기업 임금의 80% 수준을 보장하겠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중기 취업 청년에 연봉 3100만원 보장)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4월 6일 관훈토론회에서 "2022년까지 1만 원 정도로 올리는 게 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고로, 유승민과 심상정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경제(2) - 재벌개혁
다음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한 촛불 시민들의 요구이기도 했던 재벌 개혁. 문재인은 지난 1월 10일 '삼성'을 직접 거론하며 "재벌 가운데 10대 재벌, 그 중에서도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구체적 방안으로는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 서면투표를 도입"하는 것과 "노동자 추천 이사제를 도입해 노동자의 경영 참여 길을 여는 것" 등이 제안됐다. (☞관련 기사 : 문재인 "4대 재벌 개혁"…삼성·현대차·SK·LG 정조준)
"재벌의 중대한 경제 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 지주회사 규제 강화와 범국가 차원의 '을지로위원회' 설치 등도 공약했다.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는 3월 17일 경선 토론 때 "기업이 죽으면 어떡하나"라고 이재명의 '인상' 주장에 반대했다. 문재인은 "우리나라 (최대) 법인세율 22%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22.8%에 비해 낮은 편이 아니"라며 이같이 말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법인세 인상? 기업 죽으면 어떡하나")
안철수도 재벌 개혁 공약을 야심차게 준비했다. 안철수의 재벌 개혁 방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공정거래위원회를 '경제 검찰' 수준으로 강화"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도 주장한다. 지주회사 규제 강화도, 자회사 지분 의무 보유율을 현행 '상장사 20%, 비상장사 40%'에서 30%-50%로 높이자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문재인 측은 의무보유 비율을 높이는 것은 맞는 방향이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로 하자고는 말할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비리 기업인을 사면하지 않겠다"는 공약도 문재인의 '무관용 원칙'과 일맥상통한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재벌 특혜 없애야…비리 기업인 사면 안 한다") 법인세율 인상에 부정적인 것도 문재인과 마찬가지다. 안철수는 작년 9월, 국민의당이 법인세 최고구간 과세율을 현행 22%에서 24%로 올리자는 법안을 당론 발의했을 때도 이에 동의할 수없다고 했다. 문재인-안철수 모두 세율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해 실효세율을 최대한 끌어올린 후, 명목세율 인상은 최후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에 수렴한다.
△사회·경제(3) - 복지·여성 등
복지 분야 공약으로, 문재인은 치매 국가책임제, 유연근무제, 출산수당 등을 내놓았다. 안철수는 기초노령연금 지급 확대. 만 3세부터 2년간 보육비용 국가 지급 등을 약속했다. 대선이 다가오며 복지 관련 공약 발표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성 분야에 대해 문재인과 안철수는 모두 여성 대표성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낙태죄 폐지에 대해 입장을 유보한 것도 똑같았다. (☞관련 기사 : 野 대선 주자들 "집권하면 남녀 동수 내각")
△정치개혁
정치개혁 공약도 큰 줄기는 비슷하다. 문재인은 청와대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정원·검찰의 기능 축소를 공언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고도 했다. 검찰 개혁은 수사·기소권 분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등이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에 두겠다")
문재인은 과거 당 대표이던 시절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했고, 2012년에는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말하기도 했으나(☞관련 기사 : 문재인 "대통령제보다 내각제가 훨씬 좋은 제도"),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선거제도 개혁이나 개헌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지금 개헌을 논의하는 것이 '적폐 청산'을 해야 할 차기 정부의 힘 빼기로 이어질 우려 때문이다.
다만 최근의 언급을 보면 '내각제가 더 좋은 제도'라는 생각은 바뀐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대선 전 개헌을 말하거나 개헌을 통한 이런 저런 연대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말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는 사실상의 내각제"라며 "삼권 분립을 강화해서 국회에 견제와 비판의 권한을 높인다든지, 사법부를 강화든지, 책임 총리제, 책임 장관제를 하든지, 본질적으로는 지방 분권을 통해 중앙의 권력을 분산한다든지 이런 것도 다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대선날 개헌? 국민주권 부정하는 발상")
안철수의 정치개혁 공약은 오히려 문재인보다 진보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다. 현실 정치에서 약자의 처지인 소수 정당 소속 후보라는 처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는 대선 결선투표제, 국회의원 선거에 독일식 정당명부제 비례대표 방식 도입, 정치 신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공직선거법 개정, 정당 보조금 배분 기준을 현행 '의석 수'에서 '총선 득표율'로 전환할 것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진보 정당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자유한국당이 개헌 주장? 있을 수 없는 일")
안철수도 '대선 전 개헌은 부적절하며, 개헌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문재인과 같다. 안철수는 개헌과 관련해서는 내각제는 반대, 이원집정부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가운데에는 무엇이 되든 국회 개헌특위 논의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안철수는 지난달 15일 정치개혁 공약 발표 당시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 감사원 국회 이관, 지방자치 확대, 국민투표·국민발안제 도입 등 개헌을 전제로 한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안철수는 문재인의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에 대해 지난 6일 관훈토론에서 "너무 나간 것"이라며 "청와대 비서동 바로 부근 또는 같은 건물에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해 바로바로 참모들과 논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 현실 가능성이 높고 장점이 많은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5년 전 자신이 '국민 소통이 쉬운 곳으로 청와대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와는 입장이 많이 달라졌다. (☞관련 기사 : 안철수 "국민여론 수렴해 청와대 이전하겠다") 다만 안철수는 "행정수도로 청와대와 의회를 모두 이전하자"고 하고 있다.
도덕성
결국 외보안보 정책 일부(개성공단·금강산·전작권 문제)를 제외하면, 1·2위 후보인 이들의 정치적 입장에는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정치개혁 분야 공약을 보면 '문재인이 더 진보적 인물'이라는 통념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공약은 오히려 비슷한 면이 많고, 이 둘과 심상정-유승민-홍준표 간의 차이가 더 큰 면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측면에서의 비교보다 SNS 등에서 더 논란이 되는 문제들은 따로 있다. 도덕성과 자질 등이다. '문모닝', '안모닝'의 소재도 주로 이런 것들이다. 때로는 한 쪽에 악재가 터지면, 다른 쪽에서도 어떻게든 비슷한 내용을 찾아내려고 하기도 한다. '네거티브는 네거티브로 덮는' 게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문재인 아들의 '특혜 취업' 논란이 계속 번지자, 문재인 측은 지난 7일 정면 대응에 나섰다. 문재인의 측근인 전재수 의원은 안철수의 아내 김미경 서울대 교수에 대한 '특혜 임용' 의혹을 제기했다. 안철수의 딸이 조기 유학을 갔고, 재산 공개도 거부하고 있다는 점도 겨냥해 "혹시 공개해서 안 될 자녀 재산이나 돈 거래가 있느냐"고 공격하기도 했다.
문재인이 과거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사돈의 음주운전 사건을 알고도 덮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문재인 측 특보단 부단장인 박범계 의원은 안철수가 과거 기업인일 때 포스코 사외이사와 이사회 의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정준양 회장 연임에 찬성하고, 성진지오텍을 부실 인수를 막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안철수의 측근인 송기석 의원 지역구에서 '동원 경선' 사례가 적발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민주당이 이를 '차떼기'라고 규정하며 비난하자,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제 눈의 들보는 못보고 남의 눈의 티눈만 보는 민주당"이라며 "전북 우석대 학생 동원 사건은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관계없다'고만 한다"고 문재인 지지 단체 행사에 대학생들이 식사 등을 대접받고 동원된 일을 들춰냈다.
안철수가 전주 지역 행사에서 조직폭력배로 의심되는 이들과 같이 사진을 찍어 '안철수 조폭'이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 국민의당 대변인실에서는 청년단체 회원의 소개로 그 회원의 동행들과 사진촬영 요청에 응했을 뿐이라며 '문재인도 해당 단체 인사들과 찍은 사진이 있다'는 취지로 기자들에게 사진을 배포하기도 했다.
'조폭 사진' 논란이나 '삼디(3D) 프린터' 논란을 보고는 정치권이 벌이는 논쟁(?)의 수준에 실망했다는 유권자들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은 이 와중에 트위터에 "우리가 무슨 홍길동인가? '3'을 '삼'이라고 읽지 못하고 '쓰리'라고 읽어야 하나?"라는 글을 올려 빈축을 샀다. '쓰리디'를 '삼디'라고 읽은 게 "너무도 심각한 결함이고 무능"이라는 김종인이나, "일반적으로 누구나 '쓰리디 프린터'라고 읽는다"며 비웃은 안철수나, '그렇게 읽은 게 뭐 어때서 그러냐!'고 강변하는 문재인이나 똑같다는 소리도 나왔다.
두 후보 모두 2012년 대선 때도 출마했던 만큼 기본적인 재산 관계 등은 어느 정도 검증이 돼 있지만, 진흙탕 공방이 더 격렬해지면 이미 검증이 끝난 재산 문제 등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모두 2012년 '다운 계약서'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사과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고개 숙인 안철수 "더 엄정한 기준으로 살아가겠다" / 문재인도 다운계약서 논란 "법 위반 아니지만 사과")
또 지난 2012년 전후로 두 후보에 대해 제기됐던 동작동 아파트 '딱지' 전매 논란, 양산 자택 건축법 위반 논란 등은 모두 당시의 해명이나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일정 정도 해소된 의혹들이지만, 온라인 공간 등에서 지지자들은 아직도 서로 상대 진영을 비난하는 소재로 이런 의혹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도덕성이나 인물 됨됨이야 '누가 낫다'고 평가하기도 어렵고, 평가를 한다고 해도 어차피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을 영역이다. 다만 가족 관련 '특혜' 의혹, 과거 고위공직자 또는 기업 CEO 시절의 행적, 해프닝성 논란('조폭'과 '삼디')이며 그 해프닝을 대하는 후보의 자세 문제 등 양 쪽 후보에게 겨누어진 '검증'의 범위와 강도는 거울에 비친 듯 비슷한 상황이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의혹은 허위 공세이고,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의혹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라는 식의 주장은 이성적이지 않다.
집권세력
두 후보 중 누군가가 대통령이 된다면 누가 '집권 세력'을 구성할지 하는 문제도 문-안 양 진영 간 비난전의 소재가 된다. 문재인 측에서는 '국민의당은 호남 기득권 세력 아니냐'거나 '안철수는 집권을 위해 보수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보수도 집권 세력의 일부가 된다'고 주장한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는 게 "정권교체"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주장은 문재인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6일, 목포신항) '안철수는 좋지만 국민의당은 싫다'는 이들도 제법 있다.
안철수 측에서는 '민주당 친노·486도 기득권 아니냐'고 한다. 최근의 '문자 폭탄', '18원 후원금' 사태를 "패권주의 적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안철수 측에서는 '보수와 손잡겠다는 것이냐'는 문재인 측의 공세에 대해 '집권 후에 연정이나 정책연대 등 다양한 수준에서 협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보수의 도움으로 집권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러면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협치 안 할 거냐'고 하고 있다.
국민의당을 구성하는 의원들이 대체로 민주당 의원들보다 중도·보수 성향인 것은 맞다.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12월 (2일이 아닌) 9일에 하자고 주장한 것이 촛불집회를 국면에서 '탄핵 반대'로 오인받기도 했다. 물론 지난해 당론 발의했던 세법 개정안은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 방향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았고, 비록 당 대선후보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사드 반대'를 처음 당론으로 정한 것도 국민의당이었다. 그렇다 해도 창당 이후 현재까지 보인 국민의당의 모습을 '개혁의 기수'로 평가하는 데는 망설임이 많다.
보수 세력 관련 부분도, 안철수가 "우리 당이 지향하는 방향과 정책을 밝히고 거기에 동의하는 정당이 협치 대상이 된다. 방향이 전혀 다르다면 그건 굉장히 어렵다"(4.6 관훈토론)라고 선을 긋긴 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연정 대상이 아니다' 정도 수준의 입장 표명이 없다면 '촛불 민심'은 의심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쪽도 사실 큰 차이는 없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체로 국민의당보다 진보적인 성향인 것은 맞지만, 문재인 캠프에서 정책 공약을 맡고 있는 김진표·이용섭 등 노무현 정부 관료 출신의 인물들은 진보적 유권자 층에서 호의적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다. 최근 '박근혜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던 김광두 서강대 교수가 캠프에 영입되기도 했다.
관료 출신 인사들이나 보수적 이론가에 대한 의심 섞인 시선 속에, 문재인 측 관계자나 지지자들이 보이는 '문재인 또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어떤 비판도 참기 어려워 하는 태도'도 이들의 집권을 불안하게 바라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문재인은 과거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양극화가 심해졌다거나 비정규직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한계였다"(2012년 11월 21일)며 비판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대선 때에 비해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발언이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안철수가 주도하는 현상 유지 정치로는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없다. 이제 '비판적 지지'를 거둬 달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정의당 후보 심상정이 여론조사에서 때때로 유승민을 위협하며 4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은 문재인·안철수 두 주자 모두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는 진보 성향 유권자층의 존재를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재인 "낙관과 자만 버리고 긴장해야"
문재인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첫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대선까지) 남은 한 달, 우리는 두 가지와 맞서야 한다. 하나는 정권을 연장하려는 부패 기득권 세력이다. 또 하나는 우리 자신과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는 "제가 정권 연장 세력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했는데, 지금 그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그들은 비전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문재인 안 된다'로 맞서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비전과 정책으로 진짜 정권 교체가 뭔지를 국민께 보여드리고 선택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문재인 후보를 따라잡은 데 대해서는 경각심을 표했다. 문 후보는 "우리 스스로 낙관과 안일, 자만과 오만을 일체 버리고 긴장하고 각성해야 한다"면서 "정권 교체를 갈망하는 국민의 절박함보다 더 절박감을 가져야 이길 수 있다. 이번에 정권 교체를 못하면 우리는 역사의 죄인"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후보는 마지막으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등을 호명하며 '용광로 선대위'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어제를 끝으로 선대위 인선이나 자리를 놓고 어떤 잡음도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각 캠프 책임자와 상의해 소외감을 느끼는 분이 없도록 잘 챙겨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추미애 대표도 이날 안철수 후보의 오름세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미애 위원장은 "우리가 혹시라도 대세론이나 '정권 교체 당위론'에 안주했다면, 이제는 그것들과 과감하게 결별 선언을 해야 한다"면서 "단호한 개혁 의지로 가짜 정권 교체를 극복하고 진짜 정권 교체를 이뤄내야할 때"라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의 당선은 '가짜 정권 교체'라고 본 것이다.
이해찬 공동 선거대책위원장도 "열흘 전만 해도 낙관적인 분위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매우 긴장해야 할 중요한 상황"이라고 거들었다. 그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 스스로 만들었다기보다는 촛불 민심에 얹혀 만들었다. 그 민심을 바탕으로 정권 교체를 못 한다면 우리는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지탄과 탄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9일 일부 조정을 거쳐 선대위의 윤곽을 잡았다. 지난 7일 발표한 공동 선대위원장 목록에는 안희정 캠프를 지휘했던 박영선 의원과 이재명 캠프를 지휘했던 이종걸 의원이 포함됐으나, 이종걸 선대위원장은 이날 회의에 참석한 반면 박영선 의원은 직책을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 몰락' 양강구도, 대선 이후까지 '쭉~' 가자
여기까지는 지난 1월 31일 "'친문'에게 고언함…문재인은 아직 대통령이 아니다"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게재한 글에서 한 얘기다. 최근 상황과 연관 지어 쓰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하면, "문재인·이재명·안희정 중에서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고 할 때 만일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면 안철수 말고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다.(☞바로 가기)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프레시안
19대 대선에서 '양강구도'란 용어가 갑작스럽게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과거 일화가 떠올랐다. 누구나 이야기하듯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세가 매우 놀랍다. 대세론이 지속되길 바랐던 문재인이나 기존 정치 공학에 근거하여 안철수가 아닌 자신에게 높은 지지율이 옮아오기를 고대한 홍준표·유승민에게 모두 우려스러운 현상임이 분명하다. 특별히 문재인 입장에서는 대세론이 흔들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하필 안철수여서 정권교체나 적폐청산 같은 구호가 헐거운 나사 같은 느낌을 주게 되었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양강구도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문재인 쪽에서 얼핏 '거품'이란 반응이 나왔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거품은 민주당 쪽에 존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이재명·안희정 3인의 지지율 합이 70%가량을 유지했지만, 그 지지율의 합이라는 숫자는 병렬전지를 직렬로 연결한 것으로 가정한데 불과한 것이어서 외부출력 기준으로는 의미가 전혀 없다. 각 당의 대선후보 선출이 끝나자마자 거품은 꺼졌다.
그렇다면, 안철수의 부상에 따른 양강구도 형성이 그동안 누누이 반복되었던 '비문(非文)'의 연장선에 위치하는 것일까? 이른바, 문재인에게서 불안감을 느끼는 세력이 이재명과 특히 안희정이란 대항마가 사라지자 '비문'을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안철수에게 모여 양강구도가 형성됐다는 설명. 유권자 전수조사가 불가능하기에 '비문'이란 프레임, 즉 19대 대선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 것이냐, 아니냐는 틀로 규정된다는 설정이 유효한지를 검증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19대 대선이 '문재인의 선거'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19대 대선이 '박근혜의 선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보수·진보와는 다르지만 아무튼 우리 정치지형에서 보수·진보의 역학을 고려할 때 홍준표·유승민의 부진은 '비문'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또한 기존 진보·보수 프레임으로도 설명되지 않고, 오직 '반박(反朴)' 혹은 '비박(非朴)'으로 설명된다.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의 탄핵을 찬성한 국민의 비율이 대략 80% 선에서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대선 후보 지지율의 양상 또한 '반박(反朴)' 혹은 '비박(非朴)'의, 말하자면 지지율과 얼추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ABC(Anything But Clinton 클린턴만 아니면)'나, 'ABO(Anything But Obama 오바마만 아니면)'란 미국 정치의 용어를 빌면 'ABP(Anything But Park 박근혜만 아니면)'인 셈이다.
만일 안철수의 지지율이 꺼지고 예컨대 홍준표의 지지율이 갑자기 치솟는다든지 하면 ABP라는 나의 생각이 틀린 것으로 확인되겠지만, 지금까지 현상에 근거하면 안희정·이재명 퇴장 이후 갑작스러운 양강구도의 출현은 '반박' 혹은 '비박' 흐름의 지속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의 탄핵을 지지한 국민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이나 문재인 지지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떠올릴 때 뒤늦게 하는 말이라 용하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양강구도의 등장은 불가피했다.
양강구도의 의의는 무엇일까. 일단 국민들의 정권교체 의지가 확고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들 중 상당수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든 박근혜와 관계를 맺은 세력에게서 지지를 거두고 있다. 박근혜는 물론 그 계승자들을 철저히 외면한다는 얘기다. 확대해석하면 정권교체는 국민들에 의해서 사실상 이미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문재인 캠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진정한' 정권교체를 부르짖는다면, 아집이나 집권욕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적폐청산은 다른 얘기다. 원론적으로 누가 적폐를 더 잘 청산할 수 있는지는 따져봐야 하고, 적폐청산의 시급성까지 감안하여 유권자들이 적임자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양강구도와 적폐청산은 연결되었다고 본다. 우리 정치의 기득권 세력과 엘리트들은 크게 보아 독재권력에 복무하며 자신들의 이권을 유지·확대하다가 산업화의 깃발을 덧씌운 요즘 용어로 '적폐'세력과, 민주화 진영의 가세로 분단 논리에 편승한 친일의 과거를 희석한 '민주' 세력으로 양분된다. 독재 권력에 맞서 싸움으로써 민주세력은 정치세력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뒤늦게 과정을 통해 또 점진적으로 충족시켜 갔지만, 적폐세력은 해방 이후 조성된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과정상의 어떠한 참회 노력 없이 금권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기득권을 대물림하였다.
양강구도는 정치지형의 전면적 혁신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적폐를 청산할 호기로 작동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박근혜를 통하여 만들어진 우연한 기회는 국민적 각성이나, 여전히 적폐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하지 못할 '민주' 세력의 작의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적폐세력의 실수에 기반해 창출된 즉자적 전개일 따름이다.
양강구도에서 품게 되는 기대는, 해방 이후 친일·친미 세력이 반공이란 실체 없는 이념을 지렛대 삼아 조성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더 근본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이나 안철수나 당사자들은 이 역사적 책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정치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지만, 양강구도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대선 이후로까지 연장될 수 있다면 '근본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진보 세력의 등장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의의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구조적이고 뿌리 깊은 적폐의 청산의 시작이라는 데에 있다. 그러나 또한 분명히 할 것은 적폐청산을, 반박 성향의 대통령 한 사람을 선출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모처럼 주어진 호기를 활용하여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적폐가 시장과 깊숙하게 연관되었다면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라고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정치의 적폐는 물론 시장의 적폐까지 청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담으로, 그리하여 장차 해방 이후 근본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바로잡았을 때 목격하게 될 의석 분포를 상상하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생태적이고 다층적 이익을 옹호하는 '정의당 너머 당' 2, 정의당 2.5, 더민주당 3, 국민의당 2, (새롭게 커밍아웃한 극우정당) 새누리당 0.5쯤이 되지 않을까.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자들이 화를 낼지 모르지만, 이 상상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한 개의 정당으로 존재하여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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