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엔 국민의당, 이번엔 문재인…왜?

"광주 시민들의 정치 감각이 웬만한 재선 의원 정도는 되거든요. 우리를 '묻지 마 야당'으로 판단하면 곤란하지요."
26일 광주광역시에서 만난 곽재훈(남·62) 씨가 말했다. 광주에서 공직 생활을 하다 지금은 은퇴한 곽 씨는 2016년 총선 때는 지역구 후보로 국민의당을, 비례대표는 민주당을 찍는 '전략 투표'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찍을 계획이다. 왜 작년엔 국민의당이고, 지금은 문재인일까?
먼저 2016년 총선. 그때 곽재훈 씨는 민주당에 실망했다. "진보라고 지지해줬더니 민주당이 기득권층이 돼버렸다. 시민을 위해 한 게 없다. 민주당이 각성하라는 취지에서 국민의당 후보를 찍었다. 대신 너무 야당이 작으면 안 되니까 비례대표는 민주당을 찍어줬다. 우리 집 네 식구가 다 똑같이 찍었다." 호남 민심이 '묻지 마 민주당'이 아니라고 혼을 내준 셈이다.
일 년 만에 국민의당에서 문재인으로 바뀐 이유는 이렇다. "국민의당을 찍어놨더니 하는 게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곽재훈 씨가 보기에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 쥐어불고 요리조리 좌우 눈치나 보고 자빠졌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법안이나 발의했을랑가 모른다." 문재인은? "개혁성은 이재명보다 약한데, 실현 가능한 얘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도 문재인이어야 정권 교체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광주 시민의 정치 감각이 재선 의원 정도'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광주에는 광주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기자가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 주인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채널을 돌려 다른 종편 뉴스 대신 굳이 JTBC를 틀어놓았다. 마침 세월호 인양 보도가 나오고 있었고, 그걸 보던 다른 손님이 혼잣말로 정부를 비판했다.
벽에 붙은 광고 전단 문구도 범상치 않았다. "사드 보복 조치로 수출이 막혀 재고만 쌓여 더 이상 버티질 못해 모든 상품을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이 땡처리합니다." 지금 기자가 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카페 화장실 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욕이 낙서로 적혀 있다. 이 모든 것이 기자가 26일 하루에 겪은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하루 앞둔 26일 광주 민심은 크게 둘로 나뉘었다. 젊은 층들은 대체로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했고, 노인층은 대체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지지했다. 기자가 느낀 광주의 분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권 교체가 반드시 돼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야권을 지지하기는 하지만, 함부로 표를 주지는 않는다는 '자존심'이 엿보였다는 것이다.
광주광역시에서 물어본 질문은 딱 세 가지였다. 첫째, 대선 후보 선호 순서가 어떻게 되나. 둘째, 본선에서 문재인, 안철수가 붙으면 누구를 찍을 것인가? 셋째, 2016년 총선에서 어느 당을 찍었나.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을 찍었는데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마음이 옮겼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안철수 지지자나 문재인 지지자는 대체로 안희정 충남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이하 문재인, 안철수, 안희정, 이재명 호칭 생략)에게도 호감을 표했지만, 안철수에서 문재인으로, 문재인에서 안철수로 호감이 옮겨가지는 않는 경향이 있었다. 즉, 문재인 지지자와 안철수 지지자의 표심은 잘 겹치지 않았다.
광주의 한 경로당에서 만난 정경순(여·66) 씨는 안철수 지지자다. "사람이 정직하고 깨끗하게 보이고, 재산도 사회에 환원하는데 세상에 그런 사람이 누가 있나"라고 했다. 정경순 씨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을 찍었다. "박근혜가 미워서"다. 2016년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을 찍었다. "안철수가 좋아서"다.
정경순 씨는 문재인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문제도 "말 바꾸기"를 하고, "대통령 된 것처럼 행동하고", "약속도 안 지킨"다. 정 씨는 "무식한 사람도 말 바꾸는 건 알기에" 문재인이 싫다. 다만, "문재인이 신뢰감이 안 가서 싫을 뿐이지, 문재인이 호남을 홀대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편을 들어줬다.
김순임(여·78) 씨는 이번 만은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지금 정부에서 너무 국민을 우롱해분당께. 무조건 바꿔야 되죠잉. 이대로 쓰겄어요?" 김순임 씨도 안철수 지지자다. "안철수도 100%는 못 믿지만, 문재인보다 나아서"다. 김 씨는 "문재인은 호남이 자기 텃밭인 것처럼 생각하는 게 웃기다"고 했다.
김순임 씨가 보기에 이번 대선에서는 정권 교체가 될 것 같다. 박빙이라면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표를 몰아줘야겠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소신 투표'를 할 계획이다. 즉, 안철수를 찍어줘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안희정 충남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에게도 호감은 있다. 안희정은 "당을 위해 감옥도 갔다 오고 헌신했다. 말도 점잖게 하는 좋은 사람"이다. 이재명은 "사람은 좋던데, 검증이 덜 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작년에 실직한 김장옥(남·45) 씨는 안희정이 좋다. "젊고, 패기 있어 보기고, 성실할 것 같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이 떨어지면, 민주당 내 다른 후보가 아니라 안철수나 손학규 전 의원(이하 호칭 생략)을 찍을 계획이다. 문재인이 호남을 홀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또 그런 말은 듣기 싫단다. "광주 사람도 한국 시민인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말 같아서"라고 한다.
딸을 데리고 주말 나들이를 온 직장인 이상호(남·39) 씨는 이번에도 문재인이다. "지금 상황에 가장 필요한 분 같다. 나라에 원칙과 기본이 안 서 있는데, 잘 바로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안희정, 이재명은 "좋은 분들인데, 아직 때가 이르다". 다음에 나오면 밀어줄 계획이다. 안철수는? "대통령 후보보다는 총리 정도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 대통령으로서의 비전을 추진하기에는 무리" 같아 보인다.
이상호 씨는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은 민주당 후보를, 비례대표로 정의당을 찍었다. 당원은 아니다. 민주당은 규모가 커서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고, 안 드는 사람도 있다. 정의당같이 작은 정당 비례대표 하나쯤 밀어주고 싶어서 찍어줬다. 그럼 안희정의 대연정에 반대하는지 물으니, 꼭 그렇지도 않다. "(표를 위해 한 말이지) 큰 의미가 있나요?"라고 반문했다. 정의당 지지자인데, 이재명의 기본 소득에 대한 생각은? 시기상조란다. "복지보다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무너진) 원칙과 기본을 세우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광주에서 자영업을 하는 천정수 씨(남·39)는 민주당 당원이다. 당 경선 ARS(자동 응답 시스템) 투표에서 세 번 고민 끝에 결국 문재인을 찍었다. "안희정이나 이재명 할까, 그래도 문재인 할까" 끝까지 고심이 깊었다. 찍긴 찍어줬는데 기분이 개운하지 않다. "문재인 본인은 인물이 좋은 것 같은데 왜 주변 분들은 말실수하는 분들을 뽑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전두환 표창장' 발언도, '부산 대통령' 논란 때도 전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안철수도 솔직히 괜찮게 생각했는데, 국민의당이 아직 민주당보다는 좀 더 별로다. "내가 문재인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국민의당 의원들이) 문재인 흉보는 것은 또 그것대로 싫다"고 했다. "같은 정치인하면서 한솥밥 먹다가 나와서 헐뜯는 게 마음이 안 좋아요.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문재인 욕)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편 가르려고 하지 말고."
의견을 유보하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직장인 김 모(여·28) 씨는 "다 좋아서 고르기가 힘들다."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문재인하고 이재명이 낫다. 김 씨 역시 2016년 총선에서 전략 투표를 했다. 후보는 국민의당을 찍었고, 비례대표는 민주당을 찍었다.
은퇴한 김 모(남·73) 씨도 아직 고민 중이다. 그때 가서 판세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문재인도 거시기하긴 한디, 누가 더 박력이 있을랑고. 아직 문재인이 박력이 거시기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될지. 그때 가서 판이 바뀔지도 모르지." 호남 민심은 어디로 흐를까.
‘유력 대선 주자’ 문재인의 5大 약점
“강점은 알리고 약점은 ‘최대한’ 감춰라!”
김지영·박혁진·유지만 기자 ㅣ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7(월) 09:46:26 | 1432호
2011년 5월24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남구청역 인근의 한 사무실. 기자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만났다. 강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자’. 2012년 8월2일 뇌종양으로 60세에 별세했다. 강 회장과 마주한 날은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5월23일) 다음 날이었다. 전날 봉하마을 추모식에 참석한 후 귀경한 직후였다. 강 회장은 이날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 등을 솔직히 털어놨다. 그날 화제 가운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포함됐다. 강 회장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가 터졌을 때) 노 대통령은 많이 외로워했다. 문재인이고 뭐고 누구도 봉하마을 사저에 찾아오지 않았다”며 “정치인들은 불똥이 자신들한테 튈까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가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강한 서운함을 드러냈다. 심지어 문 전 대표에 대해 “친노는 무슨 친노냐”며 욕설에 가까운 강한 어조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 문 전 대표가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에서 ‘유력 대선 주자’가 됐다. 모든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30%대 초반으로 1위에 올라 있다. 지난해 10월 촛불 정국 때부터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안안문(안 되려야 안 될 수 없는 문재인)’ ‘이저문(이래도 저래도 대통령은 문재인)’이란 말까지 나돈다. 그의 ‘공고한’ 대세론을 상징하는 표현들이다. 문재인·안희정·이재명·최성 네 후보 지지율을 합하면 60%대에 육박한다. ‘민주당 경선=5월9일 대선’으로 불리는 이유다.
대선까진 40여 일 남았다. 짧다면 짧다. 하지만 그리 짧지만도 않다. 그 기간 동안 어떤 돌발 변수가 터질지 알 수 없다. 치명적인 변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섣불리 문재인 대세론이 본선까지 이어질 거라 장담할 수도 없다. 현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 가능성은 크다. 물론 ‘이변(異變)이 없다면’이란 전제가 필요하다.
4월초 각 당마다 대선 주자가 확정된다. 무소속 출마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면 경쟁 후보의 아픈 구석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사생결단, 혈전이다. 문 전 대표도 ‘아픈 구석’이 있다. 아킬레스건이다. 아킬레스건이 끊기면 주저앉을 수도 있다. 아들 특혜 채용 의혹도 커지고 있다. 리더십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영입자와 측근들이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의 말 바꾸기와 안보 콤플렉스도 대선 정국에서 빠질 수 없는 약점이다. 장점을 최대한 알리고 약점을 최대한 숨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여느 때와 다르다. 철저하고 혹독한 검증이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그런 그의 비참한 말로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검증해야 하는 이유다. 유력 주자 문재인도 예외는 아니다.
▒ 도마에 오른 리더십
3월1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3차 합동토론회. 이날 지지율 1위 문재인 전 대표와 2위 안희정 충남지사 간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의 리더십에 직격탄을 날리면서다.
안희정 “손학규, 김한길, 박지원, 안철수 등도 모두 당을 떠났다. 그 모든 책임이 문 전 대표에게만 있다고 돌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당 대표이자 실질적인 리더로서 이 과정에서 통합의 리더십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이것이 당내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그 비판을 제가 겸허히 받겠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우리 당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고 혁신에 반대하는 분들이 당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은 혁신을 해냈고 총선에서 승리를 했다. 우리 당은 이제 정말 정권교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정당으로 성장하지 않았느냐.”
“당내에서도 효과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끄느냐”는 게 안 지사 지적이다. 이후에도 ‘문재인 리더십’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이렇다 할 어젠다(의제)를 던지지 않고 있다. 여기엔 문재인 캠프의 ‘말조심 전략’이 작용한다. 그나마 ‘적폐청산·정권교체’와 ‘일자리 창출’을 역설하는 정도다. 하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촛불·탄핵 정국이 빚어낸 당연한 이슈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되레 어젠다를 던진 쪽은 안 지사다. ‘대연정’과 ‘선의(善意) 발언’ 등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왼쪽부터)이 3월19일 KBS 스튜디오에서 열린 ‘경선 후보 합동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문 전 대표와 다른 주자들은 안 지사의 대연정 제안을 맹공한다. “어떻게 적폐 대상인 자유한국당과 연정하느냐”고. 안 지사는 “적폐청산에 동의하는 자유한국당 인사라면 끌어안아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위 문재인을 끌어내리려고 안희정·이재명 등은 그의 리더십을 파고든다. 문재인 리더십 문제는 민주당 경선뿐 아니라 본선에서도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중진의원은 “문 전 대표의 리더십 문제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논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자업자득이다. 문 전 대표가 리더로서 포용력을 가져야 하고, 그 사람들을(손학규 등) 끌어안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어차피 안철수 전 대표는 민주당을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 모두 권력의지가 강하다. 한배를 타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문 전 대표가 안 전 대표에게 책임총리 등을 제안했다면 안 전 대표도 한번쯤 탈당을 재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가 우물쭈물하면서 그걸 못하더라”고 지적했다.
권력의지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다. 권력을 잡으려면 권력의 일부를 나눠주든지 인간적인 면모로 매료시키든지 당사자를 설득하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문 전 대표에게 그런 면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당내에서도 나온다.
수도권 중진의원은 이런 말도 했다. “문 전 대표가 당 경선에서 승리한 직후 안 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 등에게 대선 선대위원장이나 국무총리 등을 제안해 꽉 잡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플러스에 의뢰한 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3월17~18일 실시한 대선후보 리더십 조사에서 ‘안희정 지사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신뢰하는 쪽’이라는 응답은 53.6%였다. 이에 비해 문 전 대표는 40.1%에 그쳤다. 문 전 대표의 리더십이 불안하다는 응답도 52.9%, 안 지사는 33.4%였다. 문 전 대표보단 안 지사 리더십을 더 신뢰한다는 얘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은 문 전 대표 리더십을 “분열의 리더십”이라고 규정했다. 이 의원은 “문 전 대표는 포용이 아닌 배제의 정치를 하고 있다”며 “문빠(문재인 오빠부대)가 문 전 대표와 경쟁하는 당내 주자들에게 욕설과 비난이 담긴 문자메시지 폭탄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자신의 팬들에게 자제해 달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전혀 제어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당 분열을 간접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2012년 6월17일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마친 후 부인, 아들과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아들 특혜 취업 의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미 2012년 대선을 거쳤기 때문에 후보 개인과 관련한 신상 검증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문 전 대표 측의 이 같은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아들 준용씨의 특혜 취업 의혹에 대한 대응에서 이런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준용씨의 특혜 취업 의혹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그는 2006년 12월 한국고용정보원 5급 일반직에 채용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2명을 뽑는 공공기관에 2명이 응시한 점 △12줄짜리 응시원서와 귀고리·점퍼 차림의 증명사진에도 합격했다는 점 △당시 권재철 고용정보원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전 대표 아래서 행정관을 지낸 점 등이다.
준용씨 의혹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의혹은 2007년 문 전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을 때 처음 제기됐다. 2012년 대선 때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청문회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곧 수그러들었다. 당시 청문회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일차적으로 “문 후보 아들에 대한 채용은 어떠한 특혜도 없다는 것이 2007년 노동부 감사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상임위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충분히 다뤄졌다”는 민주당 해명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새누리당에는 ‘박근혜’라는 강력한 후보가 있었기 때문에 네거티브 필요성이 적었던 이유가 더 컸다.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문 전 대표가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니만큼 경쟁자들은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의혹 제기는 보수 언론이나 보수 성향 온라인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조차 경쟁 후보들이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럼에도 문 전 대표 측은 이 사건에 대해 “이미 선관위에서 가짜뉴스로 결론 내렸으며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식으로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에서 허위라고 결론 낸 것은 제기된 의혹 모두에 대해서가 아니다. 선관위는 △고용정보원 직원은 공공기관 직원이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5급 공무원’이란 표현이 틀렸고 △고용정보원 외부에서 2명이 지원해 2명이 합격했기 때문에 ‘1명이 지원해 1명이 합격했다’는 표현이 틀렸다고 지적한 것이다.
문 전 대표 측의 안이한 현실 인식에 대해 문 전 대표 측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온다.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만 봐도 최태민 같은 묵은 때를 묵은 때가 아니다는 식으로 해명하다 오늘날 이 사달이 났다”며 “준용씨가 특출한 실력을 가진 인재라는 식의 온라인 대응은 반드시 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 영입인사 및 측근들 구설
어느 대선후보나 마찬가지겠지만 캠프의 인재영입은 후보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끌어오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김종인씨를 끌어들여 경제민주화를 강조했고, 한화갑씨를 끌어들여 국민대통합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문 전 대표 역시 자신의 약점으로 평가되는 안보관이나 경제정책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인사를 영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만 보면 문 전 대표의 인재영입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다. 영입인사들이 구설에 휘말리면서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경우가 우선 꼽힌다. 그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에 대한 불신을 종식시킬 적임자로 꼽혔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비리로 인해 법정 구속된 데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5·18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캠프를 떠났다.
최근 영입한 김광두 전 국가미래연구원장도 구설에 휘말렸다. 김 전 원장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일했던 인물로, ‘박근혜 경제교사’로 알려져 있다. ‘무능한 대통령의 경제교사’를 영입했다는 비판에 더해, 탈세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문 전 대표 측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김 전 원장은 1990년대 말부터 금융사와 대기업 여러 군데에서 사외이사를 맡았다. 그중 일부 기업에서 자신의 보수 중 일정액을 해당 회사가 비용으로 처리하게끔 요구해 소득 총액을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진 찍으려고 영입한 것에 불과하다”며 “문 전 대표 주변에 자리 사냥꾼들이 넘쳐난다”고 평가절하했다.
문재인 캠프의 인재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이 바로 문 전 대표라는 점에서 인재영입 작업은 오히려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문 전 대표는 최근 외부인사 영입에 이의를 제기했던 당내 인사를 직접 불러 경고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영입했던 측근들이 계속해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문 전 대표에게는 부담이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 케이스다. 손 의원은 3월12일 공개된 한 팟캐스트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산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다음 날 문 전 대표가 이에 대해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연 시국 비판 풍자 전시회로 논란을 빚었다. 당시 전라(全裸)의 박근혜 대통령 그림을 전시했던 게 화근이었다. 표 의원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영입인사 1호’. 표 의원은 이후 민주당 윤리심판원으로부터 당직 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받았다. ‘영입 7호’인 양향자 최고위원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를 제기해 온 인권단체 ‘반올림’을 “전문 시위꾼”으로 폄하했다가 사과하기도 했다.
▒ ‘말 바꾸기’ 논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몇 차례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였다. 주요한 이슈에서 과거에 한 발언과 다르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마치 대통령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는 비난이 나오기도 한다.
가장 큰 논란은 사드 배치 관련 발언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7월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드 배치는) 국익의 관점에서 득보다 실이 더 많다”며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10월9일에도 “사드 배치 절차를 중단하고, 외교적 노력을 다시 하자”며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된 후에는 “사드 배치 문제는 다음 정부로 미뤄야 한다”며 입장 변화를 보였다. 언론 인터뷰에서는 “이미 합의가 이뤄진 것을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하며 과거와는 달라진 입장을 명확히 했다. 당시 경쟁 후보였던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가 신뢰 없이 말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바른정당도 “말 바꾸기로 국민을 혼란하게 하고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을 가중시키지 말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내 경선 토론회에서도 이 논란은 계속됐다. 3월17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4차 합동토론회에서 이재명 시장은 문 전 대표를 향해 “문 후보가 촛불 정국 초기엔 거국중립내각을 말하다가, 그다음엔 (대통령의) 2선 후퇴와 명예로운 퇴진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야 탄핵으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 전 대표는 “정치라는 건 상황에 따라 흐르는 것”이라고 답해 토론회가 끝난 후 대변인을 통한 장외 설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월19일 KBS ‘경선 후보 합동토론회’에서 특전사 시절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 YTN 화면 캡쳐
▒ 과도한 안보 콤플렉스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해 10월 ‘송민순 회고록’으로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자신에게 색깔 공세를 펼치자 “망국적이고 소모적인 종북 논란을 기필코 뿌리 뽑겠다”고 강조했다. 2012년 대선 때부터 따라붙은 ‘색깔 논란’에 맞서겠다는 단호한 태도였다.
그래서인지 문 전 대표는 유독 특전사 출신임을 강조한다. 최근 논란이 된 ‘전두환 표창’ 발언 역시 특전사 시절 사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3월19일 KBS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그는 ‘내 인생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사진’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특전사 시절 사진을 공개하며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 막다 총 맞아서 참군인 표상이 됐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고 전두환 장군, 그때 그 반란의 가장 우두머리였는데, 제가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도 표창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발언 이후 “전두환에게 표창 받은 것을 자랑이라고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발언 이후 안희정 지사 측은 “과도한 안보 콤플렉스에 걸린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가했다. 3월20일 전남도청을 방문한 자리에선 “전두환에게 표창 받은 것이 자랑이냐. 당장 사과하라”는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안보 논쟁’ 피해자였던 문 전 대표가 사실상 ‘안보’를 자신의 대선 전략으로 사용한 셈이라는 지적이다.
강력한 조직력 등 문재인의 네 가지 강점
‘정권교체’ 바람으로 ‘대세론’ 유지할까
소종섭 편집위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8(화) 11:13:48 | 1432호
더불어민주당 경선전이 본격화했다. 지지율 1위를 달려온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세’가 유지될지, 아니면 이변이 일어날지가 관심사다. 문 전 대표가 지난 연말부터 지금껏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의 자질일까, 시대적 흐름일까,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일까. ‘문재인의 강점’이 무엇인지 톺아봤다.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는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 바람을 타고 날기 때문이다. 높은 하늘의 ‘바람’을 업으면 힘 안 들이고 높이, 멀리 날 수 있다. 비유하자면 문 전 대표가 지금 그런 형국이다. 그는 ‘정권교체’라는 강력한 바람을 타고 있다.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이 ‘최순실 국정 농단 게이트’가 터진 지난 연말부터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 한 방증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실망한 민심은 일단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7~8명은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이런 흐름의 제일 앞에 서 있다. 정권교체의 상징 인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강력한 흐름과 그 대표주자로 자신을 상징화하는 데 성공한 것, 이 두 가지가 문 전 대표의 첫 번째 강점이다. 2012년에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는 것, 당 대표를 지냈다는 것 등이 그를 ‘정권교체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문 전 대표는 이 첫 번째 강점으로 인해 부수 효과도 거두고 있다. 당내 경쟁자들이나 다른 당 대선 주자들의 웬만한 공격에도 지지율이 크게 타격을 입지 않는다. 다수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권을 교체해야 하고 현 상황에서 대안은 문재인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대안부재론’과도 통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3월20일 광주 전남대학교 후문에서 대학생·시민과 함께 대선 경선 홍보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후광 효과 힘입어
최근 안희정 충남지사가 ‘후보 적합도’에서 문 전 대표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즉 안 지사가 ‘정권교체의 대표 주자로 상징화’하는 측면에서 상당 부분 문 전 대표를 따라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만을 놓고 볼 때 안 지사는 여전히 문 전 대표에게 여러 걸음 뒤처져 있다. 본선 경쟁력은 문 전 대표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뛰어넘고 있지만 후보 경선 경쟁력은 문 전 대표에게 뒤져 있다.
문 전 대표의 두 번째 강점은 강력한 조직력이다. 민주당 한 핵심 당직자는 “다른 후보들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조직력이 막강하다. 조직본부만 해도 9개로 역할을 분담해 촘촘한 그물망 식으로 전국 조직을 관리하고 있다. 선거인단 모집 과정에서도 어떤 조직에서 몇 명이 선거인단에 응모했는지 등도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내 지역위원장 다수로부터 지지를 확보한 것은 물론 이미 더불어포럼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직능단체들을 상당수 조직화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 경선에서 문 전 대표에게 상당한 힘이 될 전망이다. 3월22일 마감한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에는 214만3330명이 지원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경선 때는 선거인단 108만여 명 중 61만4257명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이 56%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참여 열기가 더 높아 투표율이 70%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게 가정하면, 투표자는 150만 명에 달한다. 문 전 대표 측에서는 결선투표까지 가지 않고 1차에서 과반 이상을 확보해 후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거인단 신청에는 당원이 아닌 이들이 다수 참가했더라도 실제 투표에서는 당원이나 조직표의 투표율이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준비된 후보 이미지도 도움
세 번째 강점은 ‘한 번 출마한 경험이 있는 후보’라는 점이다. 재수한다고 꼭 성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내놓고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때로는 도움이 된다. 특히나 지금 같은 불안정한 정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것은 문 전 대표 측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준비된 후보’와도 맥락이 통한다. 3월3일 CBS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민주당 대통령후보 예비후보자 첫 합동토론회에서 문 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전체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잘 준비된 후보라고 자부한다.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으면 이 난국 속에서 국정을 감당하기 어렵고, 실패하기 십상이다. 저는 인수위 없이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이자 이미 검증이 끝난 후보다. 전국에서 모두 지지를 받고 보수·진보를 뛰어넘어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후보이다”고 강조했다.
이번 19대 대통령선거는 5월9일 치러져 당선된 후보는 다음 날부터 바로 업무에 들어간다. 과거 정권처럼 인수위원회를 거칠 시간이 없다. 이 때문에 아무래도 불안해하는 국민에게는 ‘준비된’ 이미지를 심어준 후보가 유리하다. 이런 측면에서 문 전 대표는 어느 정도 심리적으로 국민의 마음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문 전 대표가 틈날 때마다 ‘인수위 없이 당선되자마자 곧바로 국정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외곽조직인 ‘더불어포럼’ 등에 수천 명의 교수와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고 있는 것도 ‘준비된 후보’ 이미지에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김부겸 의원의 지지모임이 문재인 캠프 합류를 선언하는 등 지역적으로 영남권을 아우르는 세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부분은 향후 문 전 대표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 ‘성공의 역설’이다. 만약 정권을 잡게 되면 논공행상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권력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지 못하면 오히려 배가 산으로 가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른바 ‘문빠’라고 불리는 열성 지지자들의 존재도 지지 형태가 배타적으로 표출된다면 ‘하나 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문 전 대표의 네 번째 강점은 ‘노무현’이라는 강력한 후광 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비서실장 문재인’은 그의 정치 이력을 상징한다. 물론 이 또한 그가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노무현 프레임’은 후광 효과와 동시에 강력한 안티 효과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세론 앞 ‘반박비문’의 선택은?
탄핵과 정권교체에 찬성하면서 문재인 지지층으로 흡수되지는 않은
'반박비문’ 유권자층의 선택이 관심을 모은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분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 구도가 급속히 정리됐다. 대선 일자는 5월9일로 정해졌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궤멸 위기로 몰린 보수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또다시 유력 주자를 잃어버렸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대선 레이스에서 사실상 조기 탈락 위기에 몰렸다. 더불어민주당은 창당 이후 최고 지지율을 유지하며 순항 중이다. 민주당 경선은 1차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올 경우 4월3일, 결선투표로 갈 경우 4월8일에 결과가 나온다. 국민의당은 4월4일 대선 후보를 확정한다.
반기문 전 총장이 대선 레이스에서 조기 탈락한 이후,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의 대세론은 2017년 대선의 상수였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층은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은 15~20%로 간주된다. 이 두 층의 여론은 결집력이 높고 대선 투표 성향도 비교적 예측 가능하다. 변수라기보다는 상수다. 남아 있는 변수는 나머지 50%, 즉 탄핵과 정권교체에 찬성하면서 문재인 지지층으로 흡수되지는 않은 ‘반박비문(反박근혜·非문재인)’ 유권자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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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3월16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서울에서 ‘전국 지역맘 카페 회원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반문연대의 기획자 관점에서 보면, 이 반박비문 50% 블록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서, 박근혜 정권의 책임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후보가 필요하다. 탄핵 반대 여론 20% 표는 일단 잊어야 한다. 탄핵 반대 유권자층에 구애하려는 후보는 반박비문 유권자로부터 버림받기 쉽다. 이 자리에 가장 어울려 보였던 반기문 전 총장은 정치력 부족을 노출하며 조기 탈락했다. 반문연대는 문재인 전 대표에게 맞설 경쟁력 있는 대선 주자가 반드시 필요한데, 반 전 총장 이후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경쟁력에는 다들 물음표가 붙었고, 그 와중에도 후보군은 합의가 어려울 만큼 많았다.
이런 맥락에서 돌출한 카드가 개헌이었다. 대통령 파면 확정 나흘 뒤인 3월14일, 개헌을 고리로 한 사실상의 반문연대 기획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날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3당 원내대표는 ‘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한다’라고 합의했다. 대선 전 개헌을 고리로 의회 내의 개헌파를 결집시키는 그림으로, 잘만 되면 민주당 내 개헌파의 호응까지 끌어낼 수 있어 보였다. 민주당 내에서 적극적인 개헌파는 35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민주당 개헌파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개헌 지지 여론이 성숙하지도 않은 국면에서 ‘대선 전’으로 시점을 못 박은 것은 여론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자유한국당이 한 축을 맡은 모양새도 난관이었다. 개헌파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대선 전 개헌에 동의하는데도 3당 합의에 비판적이다. 그는 “국정농단 책임자인 자유한국당이 주도하는 개헌론에 어떻게 손을 들어주나. 3당 합의 때문에 개헌이 아주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3당 합의 자체도 위태로워졌다. 국민의당에서는 박지원 대표와 유력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가 나란히 반대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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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신선영 3월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자택 주변에서 보수 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
개헌은 두 차원의 논란이 뒤섞여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어떤 형태로든 분산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3당 원내대표 합의와 별개로, 20대 국회에 설치된 헌법개정 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유권자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선출하는 총리의 역할을 분담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지방정부에 권력을 대폭 이양하는 지방분권형 개헌 등이 논의될 수 있다.
원론적 개헌론은 찬성, 정략적 개헌론은 반대
하지만 정략 차원의 개헌론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특히 궤멸 위기에 몰린 보수 처지에서는 개헌론으로 반문(反문재인) 진영을 한데 모을 수 있다면, 대선 승리까지는 아니더라도 권력 분점을 제도화해 살아남을 길이 열린다. 원론적 개헌론과 정략적 개헌론을 무 자르듯 나누기는 어렵지만, 대선 전 개헌 합의는 후자에 가깝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60일도 남지 않은 대선까지 국민 공론화 단계를 사실상 생략해야만 개헌 일정을 맞출 수 있다. 무리수다. 여론 추이를 보면 대체로 개헌 자체에 대한 찬성은 높게 나오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 지지가 많은 가운데 분권형 대통령제, 의회제(내각제) 지지 여론도 엇갈려 분포한다. 개헌 방향에 국민적 합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보수 후보가 사실상 의미를 잃고 개헌 카드도 동력이 처지면서 여러 변수가 정리되었다. 정치권 안팎의 분석가들은 이제 반박비문 유권자들이 움직일, 남은 경로로 크게 세 가능성을 본다. 첫째, 안희정 충남도지사. 둘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셋째, 분산과 퇴장이다.
안희정 지사는 ‘선의’ 발언으로 빠져나간 지지율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안 지사는 인물 호감도 조사에서 대선 주자 중 가장 호감이 높은 인물로 꼽힌다. 3월17일 발표된 한국갤럽 3월3주차 조사에서 안 지사에게 ‘호감이 간다’가 56%, ‘호감이 가지 않는다’가 37%를 각각 기록했다. 호감-비호감 격차가 19%포인트로 호감도가 단연 높았다. 문재인 전 대표는 호감 47% 비호감 50%, 이재명 성남시장은 호감 39% 비호감 53%, 안철수 전 대표는 호감 38% 비호감 57%였다. “탄핵이 되느냐 마느냐”라는 불확실한 국면이 해소되고 “다음 대통령으로 누가 더 좋은가”를 따지는 국면으로 진입하면 인물 호감도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안 지사는 문 전 대표와 대선 본선이 아니라 당내 경선에서 겨뤄야 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문 전 대표 선호가 확고한데, 완전국민경선이라 해도 당내 경선에는 지지층의 참여가 비지지층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반박비문 유권자층이 민주당 경선에 화력을 집중할 가능성은 본선보다 떨어진다.
만일 민주당 경선이 문 전 대표의 승리로 끝난다면, 반박비문 지지층의 거점은 현실적으로 안철수 전 대표다. 안 전 대표가 되풀이해 강조하는 “이번 대선은 안철수와 문재인의 대결이다”라는 메시지는 이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안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책임에서 자유로워서 반박비문 유권자층이 몰려갈 가능성이 있는 선택지다. 더욱이 안 전 대표는 당내 경선만 통과한다면, 예선이 아니라 본선에서 문 전 대표와 맞붙게 된다. 보수가 유력 후보를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렸기 때문에, 반박비문 유권자층이 정권교체를 위한 문재인 결집 압력도 거의 받지 않을 구도다.
하지만 이 그림도 간단치는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론 분석 전문가는 “반문에 못지않게 반안(反안철수) 유권자도 층이 상당히 두껍다. 2012년부터 안 전 대표의 정치 궤적을 보면서 그가 리더감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층이 있다. 반박비문 유권자 중에서도, ‘문재인 대 안철수라면 차라리 문재인이 낫다’고 판단하는 유권자가 있다. 반박비문 표를 안 전 대표가 독식할 가능성은 낮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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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반박비문’ 성향 유권자들의 대안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왼쪽)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오른쪽). |
문재인 대 안철수 최종 대결 가능성을 높게 점쳐온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단순히 ‘문재인 대 안철수’ 구도가 잡히는 것만으로는 안 전 대표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누구에 대한 반대만으로는 투표 결집력이 떨어진다. 보수적이지만 박근혜 정권에 분노하는 유권자층은 문 전 대표보다는 안 전 대표에게 더 우호적이겠지만, 그것만으로 투표장으로 결집하지는 않는다. 안 전 대표가 미래의 비전을 보여줘서 이들에게 투표장에 나올 동력을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반박비문 유권자층의 존재 자체는 문재인 캠프도 인정하는 이번 대선의 마지막 변수다. 하지만 이 표를 독식하는 후보가 등장할 가능성은 현재까지는 높지 않다. 박근혜 정부 탄생에 책임이 있는 후보는 애초에 이 유권자층의 선택지가 아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후보가 이 표를 가져갈 가능성은 낮다. 안희정 지사는 잠재적으로 이 층에 호소력이 높지만, 본선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이 주도하는 경선 문턱부터 넘어야 한다. 안철수 전 대표는 미래 비전을 가진 리더로 인식되어야만 표의 결집력을 기대할 수 있다.
현실적인 경로는 ‘분산과 퇴장’이 될 듯
하나같이 가정이 너무 많다. 그래서 현실적인 경로는 분산과 퇴장일지 모른다. 반박비문 유권자층이 일부는 ‘차선책’으로 문 전 대표를 지지하고, 일부는 안희정 지사(민주당 경선)나 안철수 전 대표(본선)를 선택하며, 또 일부는 정권교체는 확실하지만 최선의 선택지는 없다며 아예 대선에서 퇴장하는 그림이다. 여기에 더해, 대선 국면이 시작될 때까지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은 유권자 그룹은 본선 투표율도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다. 반박비문 유권자층이 산술적으로 50%라고 해도 실제 투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보다 낮을 수 있는데 이들을 노리는 주자들은 이 ‘낮은 투표 성향’ 문제를 추가로 해결해야 한다.
분산과 퇴장 모델에서 반박비문 유권자층의 투표 효과는 물타기되고 대선 결과에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 정두언 전 의원은 2007년 이명박 캠프에서 ‘본선 같은 예선’을 이기고 ‘싱거운 본선’을 치러본 경험이 있다. 정 전 의원은 3월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인, 재미 하나도 없는 대선이다”라며 문 전 대표가 무난히 이길 것이라고 봤다. 정당만 바뀐 2007년 대선의 재판 구도로 본다는 의미다.
'호남 신화'에 가려진 '부산 혁명'을 주목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지역주의'의 장벽을 깨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한국갤럽 3월 3일자민주당 44%, 자유한국당 12%, 바른정당 6%, 국민의당 5%문재인 35%, 안희정 15%, 황교안 7%, 이재명 6%, 안철수 5%- 조사기간: 2017년 2월 28일, 3월 2일-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10명-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 20%(총 통화 5,124명 중 1,010명 응답 완료)- 의뢰처: 한국갤럽 자체 조사한국갤럽 3월 10일자민주당 40%, 자유한국당 15%, 국민의당 9%, 바른정당 5%문재인 33%, 황교안 13%, 안희정 11%, 안철수 9%, 이재명 6%- 조사기간: 2017년 3월 7~9일-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5명-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 20%(총 통화 5,055명 중 1,005명 응답 완료)- 의뢰처: 한국갤럽 자체 조사한국갤럽 3월 17일자더민주 38%, 자유한국당 20%, 국민의당 9%, 정의당 5%문재인 33%, 안희정 13%, 안철수 9%, 황교안 9%, 이재명 5%- 조사기간: 2017년 3월 14~16일-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4명-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 22%(총 통화 4,551명 중 1,004명 응답 완료)- 의뢰처: 한국갤럽 자체 조사한국갤럽 3월 24일자민주당 42%, 자유한국당 13%, 국민의당 8%, 바른정당 5%문재인 41%, 안희정 13%, 홍준표 11%, 안철수 5%, 이재명 4%- 조사기간: 2017년 3월 21~23일-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응답률: 19%(총 통화 5,254명 중 1,007명 응답 완료)- 의뢰처: 한국갤럽 자체 조사자세한 사안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통령 후보들은 '브로커'가 돼야 한다
대통령 선거가 40일 남짓 남았다. 정당마다 후보를 뽑는 경선이 시작되었으니, 분위기는 더 달아오를 것이다. 여느 사람들도 모인 자리마다 대선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요 정치의 시기다.
안타까운 것은 이 선거에서 전혀 '진보'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와 정치가 주체와 그 역량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라면, 강점과 함께 모자람과 약점도 그대로 드러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강점이 커졌거나 약점이 극복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갑자기 치러지는 선거라고 하지만, 꼭 그 때문만이겠는가. 한국의 정치는 지지부진이다.
정당의 현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대의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정당의 역할은 구태의연하다. 구성원 개인이 아니라 정치세력이 경쟁해야 하건만, 정당은 어떤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그리하여 정치세력을 대표하지 못한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 서로 나누어 경쟁할 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결국 이번 선거도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다. 정치세력이나 정당이 아니라 개인에 의존하는 한, 누가 대통령 노릇을 잘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용모, 언변, 분위기, 인터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어디를 찾아다니나 누구를 만나나 주변 사람이 누구인가로 판단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성명서와 발표문, 연설로? 어떤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보라고 하지만, 그도 다 무용하다. 언론이 즐겨 쓰는 말을 빌려오면, 이번에도 '깜깜이' 선거가 불가피하다.
우선 우리부터 패러다임을 바꾸자. 개인 대통령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직을 '만드는' 것으로. 이미 그들이 준비한 지향과 정책도 어느 정도 사회적 여망과 압력에서 출발했지만, 어떤 약속을 더 내놓을지 또는 선거에 이겨 무엇을 할지는 유권자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렸다. 백 퍼센트 그리된다고 할 수는 없어도, 지금보다는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 틀림없다.
그들뿐 아니라 시민(유권자, 주권자, 인민 등 무엇이라 불러도 마찬가지다)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들이 이미 내놓은 약속이나 앞으로 나올 공약은 유력한 제안일 뿐,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공약이 개인과 정당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선거 시장의 상품이 아니라 '공동의 약속', '공동의 생산물'이어야 한다.
무슨 요구나 아이디어, 한두 가지 정책을 제안하는 것으로는 '공동'이 되지 못한다. 대통령과 정권이 차이가 난다면, 개별 정책과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체이자 구조, 지향이어야 한다. 정책, 사업, 프로그램은 당연히 그 '보편성'에 복무하기 마련이다. 공동으로 만든 보편성이야말로 공약의 진정한 특성이 되어야 한다.
전체, 구조, 지향이 보편성을 갖겠다는 순간 공약은 논쟁적이고 경쟁적이다. 기성품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그것을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더 적극적으로 토론을 조직하고 논쟁하라. 여러 단체와 조직, 운동은 요구와 이해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이들을 압박해야 한다.
어떤 의제가 논쟁의 한복판에 들어와야 하는지, 이 자리에서 모두 열거할 수는 없다. 우리의 관심은 권리와 불평등을 중심으로 주로 '사회정책'에 집중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그중 몇 가지만 꼽는다. 이는 중요한 것 전부가 아니고 같은 차원도 아니지만, 논쟁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1. 불평등
소득, 교육, 건강, 주거 등 모든 영역에서 불평등은 시대적 현상이다(☞바로 가기 : <서리풀 논평> 2017년 3월 20일, 대선에서 '불평등' 이슈가 사라진 이유). 어느 불평등 할 것 없이 구조적, 종합적, 정치적이란 점이 정말 어렵다. 불평등이 무슨 문제냐고 하는 쪽도 있고 보면, 논쟁과 (잠정적) 합의는 피할 수 없다.
2. 노인 빈곤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판단과 예측은 차고 넘친다. 현실을 아는 가운데에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심각한 딜레마다. 국민연금이 정착되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고, 기초연금은 크게 올리기 어렵다. 경제활동을 통해 소득을 올려야 한다고 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가능성은 적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3. 일자리
산업구조가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데다, 경제성장은 정체 또는 후퇴할 것이 명확하다. 공공부문에서 추가 일자리를 찾고 기업을 압박한다고 하지만, 누가 이를 근본 대책이라 생각할까. 다들 내세우는 '제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줄이지 않을까?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4. 비정규 노동
설마 비정규 노동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중요하다는 정도와 해결 방법은 일치하지 않는다. 다들 비정규 노동을 줄이는 데 동의하는가, 또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구조적 문제 그리고 시장의 문제라면, 정부는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5. 저출산
출산을 수단으로 보는 한(예를 들어 경제성장, 노동력, 부양 등), 모든 저출산 대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만한 사회 애를 낳고 기르는 것이 행복한 나라가 되어야 결과적으로 저출산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 정부는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사회 구조와 삶의 방식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면, 그 준비가 되어 있는가?
6. 교육
한국에서 교육은 직업과 소득, 권력과 직접 연관된다. 그 어떤 미시 정책도 자본주의 시장의 압력을 이기기 어려운 이유다. 고리를 끊는 구조적 변화가 없으면 진전을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근본 대책이 가능하기는 한가?
7. 노인의 의료와 요양
모든 개인과 가족을 짓누르고 있는 문제다. 더 큰 비용이 들겠지만 생산과 경제로는 연결되기 어려우므로, 현재의 사회경제체제와는 모순되고 충돌한다. 누가 얼마나 많이 내고 누가 쓸 것인가? 개인은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악명 높은 '시장'의 역할은?
아직도 한참 남았지만, 이 정도에 그치는 것이 좋겠다. 논쟁하자고 들면 한 가지만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정답이 없으니 결론을 내기도 어렵다. 그뿐인가, 구조와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가 수두룩하니 사회적 토론과 논쟁의 성과도 장담할 수 없다.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현실 조건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다. 지금 이대로 가면, 누가 집권하든 다음 정권 또한 성공은 고사하고 역사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논쟁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최소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당사자들은 다들 열심히 공약을 만드시라. 다만 한 가지, 그 공약은 우리 사회를 둘러싼 두려운 의제들과 그 실마리에 봉사해야 한다. 제발 화끈한(?) 해결 방법이라고 약속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고 싶은 유혹도 물리쳐야 한다.
그 대신, 논쟁을 촉발하고 끌고 가는 좋은 '브로커' 노릇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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