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일상의 우울, 광장에서의 조증…방법은? - 이상돈 "비문 연대? 안 될 것이다"

일취월장7 2017. 3. 22. 10:02

일상의 우울, 광장에서의 조증…방법은?

[민미연 포럼] 개인 없는 개인주의의 나라
이지영 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 소장    
2017.03.22 08:02:30


'페미니스트 대통령', '전 국민 안식년제',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유력 대선 후보들의 주요 기조 및 공약을 나열해보면, 현시대의 좌표와 정치적 해석 사이의 괴리를 느낄 수 있다. '페미니스트, 안식년, 기본소득'이라는 키워드에는 사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와 나아갈 방향이 모두 숨어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러한 공약을 들었을 때 우리의 감성과 직관은 '아! 이거다!' 하는 느낌을 받기는커녕 가려운 곳은 놔두고 조금 비껴간 곳을 긁는 것 같아 시원치가 않다. 오히려 '일상의 울증과 광장의 조증'으로 오늘날 대다수 국민의 심경을 표현한 사회학자 엄기호의 직설이 더 와 닿는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억울하고 우울하다. 이 숨 막히는 듯한 '울증'은 생존 여건에 대한 불안 및 이 일상적 불안과 울증을 해소할 능력과 공간의 부재에 기인한다. 인격 유지에 필수적 요건인 생존의 안정과 연대를 통한 사회적 인정의 기회 모두를 박탈당한 한국 사회의 '개인'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피로하고 억울하다. 이처럼 생존과 자존의 자유를 모두 박탈당한 시민들의 억울함은 오로지 허용된 익명의 표출 공간인 인터넷이나 광장에서만 토로 되고 공유된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오직 세 가지의 편협한 의미로만 실현된다. 경제적 비 간섭주의, 소비능력, 형식적인 선거권. 인격적 주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와 같은 '자유'의 용례는 지극히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하게 그럴듯한 자유인 통치체제 구성의 자유는 얼마 전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이 자유밖에 없기에 그나마 광장에서의 '조증'은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는 일상의 '울증'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몇 년 전, 각국의 중산층 기준을 비교해 놓은 '중산층 별곡(別曲)'이라는 자료가 많은 네티즌 사이에서 공유되며 회자되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인들은 중산층의 기준으로 '1개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하고, 스포츠를 즐기고,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공분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꼽고, 영국인들은 중산층 시민을 '페어플레이 정신을 소유하며 신념을 지니고 독선적이지 않으며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하며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자가 소유의 30평대 아파트 보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2000CC급 중형차 보유, 예금 잔고 1억 원 이상 보유, 1년에 한 차례의 해외여행'과 같은 물질적 요소들로만 표상되었다.

우리는 이런 자료를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우울함을 느낀다. 먼저, 자신의 삶이 위와 같은 중산층의 물질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또 한 가지는 왜 우리는 이러한 물질적 기준에만 목매달 수밖에 없으며 더 여유롭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없는가에 대해…. 이는 우리가 기대하는 행복한 삶의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더 우울하다. 우리가 내세운 '중산층'이라는 행복의 조건은 일정 수준 이상의 물질적 여건만으로 충족되는데 이는 사실 상위 10% 정도의 계층에게만 허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각국의 중산층의 기준이 이처럼 획일화된 객관 지표로 정리되는 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고, 이 자료가 공신력 있는 기관에 의해 정리된 명확한 근거를 결여했다 해도 이러한 자료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우리의 무너진 삶의 여건을 '중산층'에 대한 관심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동시에 현세적 물질주의로만 구성된 우리 삶의 지향과 한 명의 주체적 시민으로서의 자존을 성취하는 것을 중시하는 소위 서구 선진국 국민들과의 인식의 격차에 대한 자조적 성찰도 드러낸다.

영화 <거짓말>(김동명 감독, 2013)에는 이처럼 우리의 짓이겨진 인격적 자존감에서 비롯된 울증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아영(김꽃비 분)은 피부 관리실 조무사로 일하며 알콜중독자인 언니(이선희 분)와 변변찮은 일자리를 전전하는 남동생(진희 분)을 거두며 생계를 꾸려간다. 손이 부르트도록 손님의 여드름을 짜내다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두운 집에는 늘 술에 취해 볼이 벌건 언니가 멍하니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고 아영은 이 모든 절망적인 현실에 늘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녀는 점심시간이면 밖으로 나와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보러 다니고 좋은 가전제품들을 구매했다 해지하는 일을 반복하며 가상의 시공간에서 자신의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한다. 그녀는 중고차 매매업체의 직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애인(태호 분)을 만났지만, 작은 방 한 칸과 부엌이 전부인 그의 자취방을 둘러보고는 애인에게 화를 내면서도 동료 직원들에게는 좋은 직업과 상당한 재산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 것처럼 거짓말하며 자신의 자존감을 충족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평생 입성 불가능할 것 같은 브랜드 아파트, 이런 아파트에 어울리는 고급 가전제품, 외제 차 주변을 서성이면서 아영은 현실과 기대의 극복될 수 없는 괴리 속에서 괴로워하고 억울해한다. 이런 아영의 괴로움과 억울함은 어쩌면 많은 젊은이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이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에 투영된 억울함과 피로의 맨살이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 수백만 원짜리 텔레비전 혹은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 중형차, 한 자녀 당 최소 영수 기본과목 및 예체능 하나 정도의 사교육을 시킬 수 있는 소득, 주말에 대형쇼핑몰 나들이 겸 외식, 휴가철 외국여행. 아마 여건과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은 다르겠지만 '중산층'을 표상하는 이 6종 세트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 응당 누려야 할 마음의 짐이자 빚으로 각인되어 있고, 이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우리는 불행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을 사적으로는 공개하기를 꺼린다. 그래서 오직 익명의 광장에서만 표출의 즐거움이 허용된다. 영화 속 아영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자존감 형성에 이와 같은 물질적 요소들의 비중을 상당히 반영하며, 이를 갖추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우리 폐부 깊숙이 자리한 우리의 인격의 종류를 보여준다. 그 인격은 너무나 물질적·획일적이며 또한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우리의 자아는 왜 이렇게 획일적이고 위축되어 있는가? 일제 강점기, 전쟁, 분단, 미 군정기의 급박한 역사 속에서 한국인의 근대적 인성은 생존과 관련된 판단능력으로만 협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세적 생존능력만으로 규정된 인간성은 국가 주도의 양적 경제성장 구도에서 국가의 목표라는 전체에 편입된 도구적 존재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된다. 즉, 한국의 '근대적 개인'은 주체적 변혁의 힘을 가진 독립된 개인의 추동력을 연습할 기회도 없었고 급박한 생존 경쟁 속에서 또 다른 내면의 인격성을 계발하지 못한 채 물질적 요건에만 순응하는 방식으로 가치관을 정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체적 개인들의 '합의'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와 같은 정치 경제적 이념들은 형식적으로만 받아들여져 합리적 주체 간의 '연대성'이 아닌 왜곡된 관계성인 연고주의나 이중적 규범주의를 바탕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호 불신은 일상화 되었고 생존 경쟁에서의 안정적 고지 확보만이 우리가 정립해내야 할 인격과 자유의 전부가 되었다.  

자유방임주의를 위시한 한국 사회의 강자 우선, 약자 방치의 경제 시스템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강자의 독선에 대한 제재를 막은 전체주의에 불과하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의 생존의 자유는 극심히 침해되었다. 최소한의 생존 자립 능력도 없는 개인들이 대다수인데 각자도생의 자유를 표방하는 자유주의는 단지 무책임한 개인주의에 불과하다. 개인의 자존이 사회의 성립보다 먼저라는 개인주의는 개인의 모든 자유를 방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사회가 개인의 자존만큼은 지켜줘야 한다는 중요도의 우선성을 의미한다. 우리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민주공화국을 공동체의 목표로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유와 민주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이 각자의 경향대로 행복을 누리며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수다. 자존을 유지할 수 있는 자유의 보장, 즉 생존의 자유와 자기 인격 형성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주의의 모습이다.

그런데 다수 국민이 희망하는 이러한 생존 여건은 현재 상위 10%에게만 허용되어 있고 이 기준에 도달할 수 없는 국민의 열패감과 자존감의 위축은 각종 분노와 절망으로 드러나고 있다. '헬조선', 'N포세대'라는 절망과 포기의 언어는 이미 청년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으며, 이러한 분노는 각기 다른 성별과 세대를 향한 편향적 인식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맹자도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無恒産因無恒心)'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적인 생존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인간으로서의 신념과 원칙, 신뢰의 덕목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사회 안전망이 결여된 우리의 철저한 개인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고려할 때, 중산층의 삶을 원하는 물질적 욕구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이 지향하는 그 중산층의 기준과 생활 방식이 적정한가의 문제는 남는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의 삶의 수준은 경제 규모보다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이나 대형 아파트, 중형차 보유와 같은 기준에서 볼 수 있듯 실제적 필요 이상으로 부풀려졌으며 그 지출 방식도 지나치게 획일적이다.  

실제로는 투룸 빌라 전월세 감당도 벅찬데 중산층의 최소한의 기준에 맞춰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고 소득의 대부분을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에 쏟아붓고 있는 젊은 부부나, 상위 10%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지만 역시 자신의 경제적 여건에 비해 과도한 투자를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아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일부 기성세대의 경우에서 보듯 삶의 가치를 오직 집이나 차, 소비에서만 찾는 물질적 인격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울증만을 낳는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기본적인 생존 여건이 보장된 상태에서 인격과 물질의 절대량을 무조건 동일시하는 협소한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참여와 연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진정한 개인의 형성이 시급하다. 또한 물질의 향유에 있어서도 그 소비 방식과 충족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이는 자기 삶의 신념을 자율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독립적 인격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개인들이 있을 때 비로소 연대를 바탕으로 한 의미 있는 복지 체제 구성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획일적이고 과시적인 물품의 소비가 아닌 북유럽 스타일의 물품처럼 용도에 맞고 실용적이며 개성 있는 물건의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 반값결혼과 같이 기존의 거품성 과시욕을 자제하고 합리적 인격 간 결합으로서의 결혼의 의의를 강조하는 문화의 확산 등은 이처럼 소비와 생산의 기본 욕구를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물질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며 자존감의 회복을 누리려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공론화되지 못했던 약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상징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나 삶의 질과 여유를 고려한 전 국민 안식년제, 보편 복지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시험해보려는 기본소득 논의는 이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시대의 삶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가치관에 대한 인식과 해법은 지나치게 피상적이며 현실의 울증을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미 생존의 자유를 획득한 일부 계층의 한가한 이야기, 혹은 대다수 국민들의 연대적 합의와는 관련 없는 진보적 복지주의자들의 레토릭 수준 정도로만 인식된다. 우리의 의식은 탈 물질적이며 획일화되지 않은 '자존'과 '독립'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에 맞는 '개인'의 생존 여건도, 사회 문화적 인정과 이해의 여건도 아직은 미비하다. 일상의 우울, 광장에서의 조증이 아닌 일상의 만족, 광장에서의 합리적 연대를 희망하는 이 시대의 필요와 감성을 제대로 해석하고 제도와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번역이 중요한 때다.  


국민 10명 중 6명, 정신 건강 문제 있다

이철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국가 차원의 對국민 정신 건강 계몽 필요”

노진섭 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7.03.23(목) 08:00:00 | 1431호


이철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1989~2015년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있었다. 2003~06년 울산대병원장, 2007~11년 울산대 의무부총장, 2011~15년 울산대 총장을 지냈다. 2016년 10월 국립정신건강센터 2대 센터장으로 취임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과 학술이사, 한국분석심리학회 회장, 대한의학회 임상의학 및 수련교육 이사, 대한의사협회 학술 이사를 역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매년 ‘정신 건강 없이는 건강도 없다(No health without mental health)’는 모토를 앞세운다. 현대 사회에서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세월호 참사, 메르스 파동, 경주 지진 등 잇따른 사건과 자연 재난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은 집단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그러나 국민 정신 건강을 아무도 챙기지 않는다. 지난해 국립정신병원은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명칭을 바꾸고 국민 정신 건강을 보살피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처했다. 최근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운영을 맡은 이철 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을 만나 구체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철 국립정신건강센터장 © 시사저널 이종현

이철 국립정신건강센터장 © 시사저널 이종현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등을 겪은 국민의 정신 건강 상태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까.

 

분노, 배신감, 불안, 우울, 좌절이 뒤섞인 혼란 상태다. 많은 사람이 촛불집회나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고 대통령, 정치인, 고위 관료 등을 탓하고 비난하는 이유다. 이렇듯 모두가 국가적 위기라고 걱정한다. 이 위기는 성숙할 기회이기도 하다. 각자 ‘나는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주적이고, 정직하고, 법을 잘 지키고, 공사를 구분하고, 어려운 이웃을 생각했었나’를 뒤돌아볼 때다. 또 이기적이지는 않았는지 탐욕스럽지는 않았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

  

그 외에 국민 정신 건강을 해치는 원인은 무엇인가.

 

국민 전체의 일반적 정신 건강 측면에서 보면, 우리 사회의 편향된 문화나 가치관이 문제다. 개인의 능력, 자질, 가치관, 취향 등을 무시하고 사회의 고정관념을 따라 남보다 빨리 취직·승진하길 바란다. 학교, 직장, 배우자 선택에서도 체면을 지키기 위해 무리를 한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패배감을 느낀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조사를 시행한 22개국 중 국민행복지수가 최하위다.

  

국민 정신 건강을 위해 개인과 가정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신체적 건강을 위해 공해를 줄이고 담배를 끊는 등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몸에 해로운 물질을 멀리하는 등 건강 습관을 유지하고, 병이 나려고 하면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한다. 정신 건강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와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 정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말고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해야 한다. 암 환자를 암적 존재라고 멀리하지 않듯이 정신질환도 치료의 대상이지 인격 문제로 인식해 수치스러워할 것이 아니다.

  

국민 정신 건강을 위한 우리 사회와 정부의 몫은 무엇인가.

 

우선 정신질환에 대한 국민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은 ‘안 낫는 병’이라거나 ‘수치스러운 병’이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치료를 미뤄 만성화를 초래한다. 국민 4명 중 1명(25.2%)은 생애 기간 중 한 번 이상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받는데,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 중 15.3%만 치료를 받는다. 이는 국민 정신 건강 관점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치료를 받기까지의 기간도 평균 84주로 미국 52주, 영국 30주보다 길다.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만성화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사회와 가정의 부담을 각각 10배와 18배 줄일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실정에 맞는 효과적인 정신 건강 증진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근거 중심의 연구에 투자가 필요하고, 연구 결과를 현장에서 실행하고 효과를 검증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세 번째, 국가 컨트롤타워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학회, 협회가 산발적으로 시행하는 정신 건강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조정해 많은 사람에게 제공해야 한다. 네 번째, 중증 정신질환자를 조기 퇴원시켜 지역사회에 복귀하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어느 정도 치료가 돼서 입원까지는 필요 없지만 가정에서 보살피기에 애매한 중간 단계의 환자가 있는데, 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다음 날인 2016년 12월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가결 다음 날인 2016년 12월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 수준은 어떤가. 

 

국립정신건강센터는 매년 정신 건강 인식 및 태도 조사를 벌인다. 지난해 약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7%가 지난 1년간 자신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나 기분 변화, 우울감, 불면, 불안 등 정신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답했다. 또 68.8%는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답했다. 이 결과는 적지 않은 국민이 정신 건강 문제를 호소하고 있으며 스스로 경각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민 정신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외국에서는 어떤 정책을 펴는가.

 

특정 국가를 완벽한 정신 건강 선진국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 보건의 선진국이라면 정신 건강 서비스 이용이 체계적이고 정신 건강 증진에 대한 투자비율이 높은 나라를 의미한다. 호주가 대표적이다. 보건국 소속 전문가들이 정신질환자의 인권, 정신질환자 치료 제도의 방향성, 시민의 정신 건강 증진 및 제도나 행정 영역 개선까지 정신 건강 전반적인 영역에서 직접적인 업무를 한다. 한마디로 환자 맞춤형 서비스로 환자의 증상과 치료 경과에 따라 지속해서 치료되도록 시스템을 운영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정신질환 치료는 물론 국민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2월 행복한 삶과 건강한 사회 구현을 위해 국민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한 5개 중장기 비전 ‘정신 건강 종합대책 2020’을 발표했다. 이 맥락에서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국민 정신 건강 증진의 비전을 실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4가지 핵심 활동을 시작했다. 첫째는 국민 정신 건강 증진 과제로 정신질환 인식 개선, 고위험군 집중관리, 재난 피해자 심리지원 활동이다. 둘째, 중증 정신질환자의 지역사회 재활 지원이다. 셋째, 중독으로 인한 건강 저해 및 사회적 피해 최소화 사업이다. 넷째, 자살 위험 없는 안전한 사회 구현 활동이다.



이상돈 "비문 연대? 안 될 것이다"

[이상돈 인터뷰] "이명박-박근혜 9년 대실정…인적 쇄신해야"
곽재훈 기자         
2017.03.21 16:49:01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불리는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이 최근의 대선 정국에서 시도되는 이른바 '비문(非문재인)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안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일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이른바 '비문 연대'에 대해 "처음부터 안 된다고 봤다"고 일축했다. 말이 '비문'이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국민의당 등 정치 세력과 인물들의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라서 절대 한 배를 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탄핵 국면 이후 보수 세력이 '긴 겨울'을 맞을 것이라고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재 불복 발언이나, 상대적으로 이에 동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대선 여론조사에서 바른정당을 앞서 나가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보수가 대선 전까지 합쳐지긴 어렵다고 본다"며, 현재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일종의 공황 상태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개혁적 보수'를 내세운 바른정당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회고적 성향의 지지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 그는 그런 면에서 "프랑스처럼 우파의 대표가 극우정당이 되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도 든다면서,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한국의 보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때문에 광야에서 길게 헤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차기 대선에서 보수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많게는 20%의 표를 가져갈 것이기 때문에, 이번 대선은 다자 구도가 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그는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9년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거부감이 널리 퍼져 있기는 하지만 적폐 청산은 잘 해갈 것이라고 우호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대표적인 '적폐'의 사례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나 자원 외교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도둑질"이라고 들며 "통합 이전에 개혁과 쇄신이 중요하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게 인적 쇄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것(쇄신)을 안 하고, 보수 표를 얻겠다고 두루뭉수리하게 연정, 통합 얘기나 하면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2012년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과 함께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냈고,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정치쇄신특위 활동도 했다. 그러나 대선 후 박근혜 정부에 실망하고 야권으로 몸을 옮겨,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했고 총선에서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지난 1월 국민의당 전당대회 때는 전당대회 의장을 맡기도 했다. 다음은 이 의원과의 일문일답.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제3지대? 처음부터 그렇게 될 수 없다 생각해" 

프레시안 : 여전히 '문재인 대세론'이 견고한 가운데, 국민의당을 포함한 야권 일각에서 '비문(非문재인)' 연대가 시도되고 있다.  

이상돈 : 그게 이른바 언론에서 말하는 '개헌을 고리로 한 비문연대' 아니냐.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는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개헌이라는 목적을 공유하는 의원들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제가 소속돼 있는 국민의당 의원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거의 금성인과 화성인만큼 생각이나 가치가 다르다. 심지어 바른정당과 우리 당만 해도, 스펙트럼이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다른 것이 더 많다. 나와 이혜훈 의원 정도면 비슷하지. 그런데 (진보적인) 정동영 의원이 (보수적인) 김무성 의원이랑 같은 당을 어떻게 하느냐? 그야말로 금성인 화성인 아니냐.

프레시안 : 홍석현 전 중앙일보사 회장의 정치 참여가 혹시 대선 판에 영향이 있을까?

이상돈 : 나는 영향을 준다고 본다. 홍 전 회장은 아마 (집권이) 가능한 쪽에 설 것 같다. 가능한 쪽에 서서, 그동안 자기가 공부했던 것, 쌓아 왔던 것을 실천하려 할 것으로 본다. 사실상 분권형 실세 총리를 하고 싶은 것 아니겠나 한다. 그것 외에는 할 것도 없잖나. 이 상황에서 대선 출마를 단독적으로 할 것 같지는 않다. 무모한 일을 할 사람은 아니다.

프레시안 :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행보는 좀 침잠하고 있는 것 같다. 김 전 대표가 이른바 '제3지대' 연대의 기획자로 꼽히지 않았나.  

이상돈 : 그런데 나는 '비문 연대'와 '제3세력'은 조금 다르다고 본다. 진보와 보수가 양극화되고 대립하는 것은 문제 아니냐. 국민의당이 창당된 명목적 명분도 그것이고, 그게 총선에서도 상당히 먹혔다. '제3세력'이라고 할 때는 '비문'이나 '개헌'만은 아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이렇게 제3세력이 묶어지고 희망적인 슬로건을 내세우면 민주당에서도 우리에게 동조하는 의원들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다만 그걸 무슨 '반문 연대'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반문'을 가장 소리높여 외치는 건 한국당인데, 한국당이 '제3세력'은 아니지 않느냐.  

프레시안 : 김종인 전 대표의 구상은 왜 잘 안 되고 있을까?

이상돈 : 보수가 여론조사에서 15%, 투표장 가면 한 20%가 된다. 그리고 민주당이 한 40%의 지지율을 받고 있다. 나머지 40%를 합치자는 게 '제3지대 단일후보론'인데, 앞서 말했듯 바른정당과 국민의당도 다르고, 그 각 당에도 안철수·유승민 등 선두를 지키고 있는 주자가 있다. 이들은 김종인 전 대표 본인이 후보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경계심도 있다.

제3지대를 이끄는 원로 그룹이라고 할 만한 이들은 김 전 대표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정도인데, 정 전 의장은 본인이 대선에 나갈 생각은 없어 보이고, 김 전 대표나 손 전 대표는 다 자기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을 접지도 않는다. 손 전 대표는 그러니까 (제3지대 단일후보론이) 현실적으로 가망이 없으니 국민의당에 들어가서 마지막으로 경선을 해보겠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김 전 대표가 바른정당 들어갈 생각은 없는 것 아니냐. 원천적으로 어려운 거다.  

물론 손 전 대표 같은 경우, 만약 자기가 국민의당 후보가 되면 바른정당과 같이 할 생각은 있다. 반면 안철수 전 대표는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인다. 

또 지금이 과거와는 다르다. 1997년 DJP연합이나 그 이전 80년대에 무슨 야권 지도자 4자회동이니 이런 것을 하면 원로들이 모여서 거중 조정을 하면 야권 전체가 여기에 따르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는 그런 거 안 된다. 의원들이나 당원 등 당 구성원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김 전 대표의 행보가 관심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설사 대선 전에 일정한 성과를 못 낸다고 해도 개헌을 고리로 대선 후 의회 내 다수 블록을 형성할 가능성 때문이다.

이상돈 : 그런데 그건 개헌과는 구분해야 한다. 거기에 무슨 다른 목적이 있지 않다고 본다. 김 전 대표가 원외에 있는 것도 제약 요인이고. 김 전 대표의 움직임이나 '비문 연대'를 개헌과 결부시키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개헌은 개헌이고 선거는 선거죠.

ⓒ프레시안(최향락)


"한국 보수, 광야에서 길게 헤맬 것" 

프레시안 : 이번 대선이 유력한 보수 후보가 없는 최초의 대선이라는 평이 있다.

이상돈 : 이번 대선의 특이점은, 보수 정권이 '정권을 재창출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선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수에서 이른바 '개혁적 보수'가 갈라져 나왔다. 특이한 선거가 됐다. 마치 4.19 혁명 이후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것처럼 됐다.

프레시안 :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새누리당 소속 홍준표 경남지사가 보수 진영에서는 가장 앞서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10%대에 진입할 거라는 전망도 있다.

이상돈 : 홍준표가 아니라 누구라도 보수를 대변하는 후보가 있다면 15~20% 지지율은 나올 수 있다. 여론조사에서 15%는 대선 본선에서 20%와 같다. 대선 투표율이 100%는 아니니까. 홍준표든, 아니면 비교적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사태에 책임이 덜한 정우택 원내대표든, 누군가는 나오겠지. 

프레시안 : 15~20%. 이게 이번 대선에서 보수의 최대 지분일까?

이상돈 : 그 정도. 상당히 많은 보수 유권자들은 기권하지 않겠나? 2007년 대선 때 진보 유권자들이 아예 투표장 안 나오고 기권했던 것처럼. 

프레시안 : 보수에서 갈라져 나온 '개혁적 보수'라고 하신 건 바른정당을 염두에 두신 것 같은데,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 간의 보수 단일화, 또는 통합이 대선 전에 가능할까?

이상돈 : 우리 사회의 영남, 보수 등으로 정체화된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보수가 대선 전까지 합쳐지긴 어렵다고 본다.

프레시안 : 그런데 그 '개혁적 보수'는 잘 안 되고 있다. 보수 유권자의 선택, 왜 유승민-남경필이 아니라 홍준표일까? 

이상돈 : 설 연휴 때 벌어진 일이다. 이른바 '설 밥상 민심'이 내가 느끼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동정론, 구 새누리당 쪽으로 확 기운 것 같다. 그래서 설 지나고 나서부터 '태극기 집회'가 확 늘어난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남 지역이나,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무게추가 바른정당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  

프레시안 : 이유가 뭘까? 

이상돈 : '논리적으로는 탄핵이 맞지만 정서적으로 납득을 못 하겠다' 이런 게 있는 것 같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지켜온 50년의 가치 체계가 한꺼번에 무너진 것이다. 일종의 공황상태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개혁 보수'를 내건 쪽에 힘이 실려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회복력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많이 놀랐다. 보수층 사람들의 반응이 당혹스러울 정도다. 프랑스처럼, 우파의 대표가 극우정당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그렇게 되면 불행해진다고 본다. 다만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것이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보수층이 상당부분 안철수·유승민으로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프레시안 : 대선 전 보수 단일화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한 이유는?

이상돈 : 명분이 없다. 그리고 민주당 경선에서 안희정을 지지한 사람들이 100% 문재인으로 가지 않고, 자기에게 올 거라는 생각을 안철수 전 대표도 하겠지만 유승민 의원도 할 거다. 또 시간이 지나면 자유한국당으로 갔거나 기권 상태에 있었던 중도 보수 표심이 바른정당으로 갈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렇다고 해도 바른정당이 대선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

이상돈 : 그렇다고 후보를 안 내나? 정당으로서는 존립에 대한 문제다. 대선 후보를 안 내는 건 정당이 생존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년에 지방선거도 있다. 대선에서 최대한 선전하고, 거기에 기대서 내년 지방선거를 노려봄직하다.  

프레시안 : 안철수 전 대표나 박지원 대표 등 국민의당 지도부에서는 '국민의당 후보와 문재인의 1:1 대결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나. 

이상돈 : 박주선 부의장이 '꿈 깨라'고 했지 않나. 그렇게 되면 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은 다 해산해야지.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15~20%를 보수가 가져가고, 나머지 80%를 가지고 문재인 또는 민주당 후보와 경쟁을 한다는 가정은 현실적이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때의 닉슨처럼 (통합을 강조하는) 사임사라도 발표하고 나갔으면 달라졌겠지만, 그것을 하지도 않았다. 닉슨 이후 공화당은 수습을 빨리 해서 다시 레이건, 아버지 부시까지 이어지는 12년 간의 공화당 전성기를 열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거꾸로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한국 보수가 광야에서 헤매는 게 길어질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그러면 제3지대 연대도 잘 안 되고, 보수 단일화도 없다면 대선 본선은 5자 구도가 된다.  

이상돈 : 그렇다. 2012년과 달리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제법 표가 나오지 않겠나. 1997년 대선 때도 민주노동당이 제법 득표를 했고, 그런데도 노무현이 당선됐다. 그렇게 될 것 같다. 선거다운 선거가 되려면 심상정 후보 빼고 나머지가 많아도 3명이어야 하는데, 4명은 많다.

"대연정? 이명박-박근혜 실정 정리한 다음 얘기여야" 

프레시안 : 전체적인 판세·구도는 이쯤 하고, 각 당 주자들 얘기를 좀 해보자. 역시 가장 앞서가는 건 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다. 그런데 '팬도 많지만 안티도 많다'는 평이 있다.

이상돈 : 대체적으로 민주당 경선에서 후보가 되는 쪽이 우세하다고 본다. 그 '안티'가 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이 언어가 너무 거칠다. 모 전현직 의원 등 주변 사람들이 '안티'를 자초한 거다. 노무현 정권 때도 보면, 노 전 대통령 본인부터 언어는 상당히 거칠지 않았나. 그런 게 좀 남아 있다고 본다. 상대방을 폄하하고 반민주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그런 것이다. 당선되고 싶으면 이런 걸 불식시켜야 한다. 자꾸 이런 게 커지면 좋을 게 없다.

프레시안 : 문 전 대표에 대해 '적폐 청산은 가장 잘할 것'이라는 우호적 평가를 하시던데?

이상돈 : 지난 7~8년간 쌓인 게 많지 않나. 그 청산은 문 전 대표가 잘 할 것으로 본다. 대연정은, 우리가 내각제도 아니고 말이 안 된다. 우리가 독일의 슈뢰더 연정이나 메르켈 연정 같은 상황은 아니잖아. 그런데 대연정을 하자는 것은 엉뚱한 얘기다. 물론 그 당이 120여 석밖에 안 되니 원내 파트너가 필요하기는 할 텐데, 그것을 자유한국당과 해서 독일처럼 대연정을 한다? 그건 번짓수가 잘못된 얘기라는 거다.  

그리고 통합 이전에 개혁과 쇄신이 중요하고, 그 중에 제일 중요한 게 인적 쇄신이다.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단군 이래 최대의 대실정을 하지 않았느냐.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나 자원 외교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 도둑질로 꼽힌다. 대권 주자가 누구든, 이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을 안 하고 보수 표를 얻겠다고 두루뭉수리하게 연정, 통합 얘기나 하면 자격이 없다. 그것을 정리한 다음에 미래를 얘기하고 통합을 얘기해야지, 밑도끝도 없이 과거는 덮고 미래만 얘기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프레시안 : 국민의당 경선 진행 중인데, 이 의원은 지금 세 후보 모두 돕지 않고 있지 않나?

이상돈 : 제가 뭘 할 수가 없죠. 안철수 전 대표도 손학규 전 대표도 가깝고, 박주선 부의장은 대학 동기라. (웃음) 

프레시안 : 판세를 어떻게 보나? 

이상돈 : 우리 당이 안 전 대표를 지지했던 세력과, 총선 전 민주당을 탈당하고 나온 호남 의원들 간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당 아니냐. 4.13 총선에서는 의외의 성과를 올렸다. 그런데 그것과 대선은 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총선은 유권자들이 '아, 저 당은 안 되겠다' 싶으면 반대 당을 찍기도 하지만, 대선에서는 '누구 안 되겠다' 해서 다른 후보를 찍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당은 지금 경선 중인데, 사실 경선을 하게 된 것도 좀 이상하다고 본다. 나는 '치열한 경선을 하면 본선 경쟁력이 생긴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경선은 어쩔 수 없으니까 하는 거지, 그게 좋아서 하는 건 아니다. 구 새누리당이 저 모양이 된 게 뭐 때문이냐? 2007년 이명박-박근혜 경선 후유증 아니냐. 민주당도 2002년 대선 때 생긴 친노-비노가 아직 있다. 그런데 박지원 대표는 생각이 다르시니 '강한 경선을 해야 한다'면서 1년 내내 손학규 전 대표한테 '콜'을 보내서 결국 경선을 하게 된 건데, 아무래도 당 내의 화학적 결합이 덜 됐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손 전 대표에게 더 우호적이라는 말이 있던데?  

이상돈 : 그런 면에서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죠. 그런 가능성이 없었으면 손 전 대표가 경선에 나왔겠나? (웃음)  

프레시안 : 그런데 박주선 부의장도 나와서, 호남 표가 갈리는 것 아닌가?

이상돈 : 박 부의장이 왜 나왔느냐 들어 보니, 국민의당의 기반이 호남인데 안·손 둘 모두 호남 출신이 아니고 결국 호남 출신 후보가 없지 않느냐.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해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4대강 등 이명박 정권 악행도 바로잡아야" 

프레시안 : 대선 전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이는데, 어떤 일정이 가능할까?

이상돈 : 시간적으로 대선 전 개헌이나 대선 동시 국민투표는 어렵다. 개헌특위에서 대선 전까지 단일안을 만들어서 각 후보에게 제시하고, 후보들의 정치적 약속을 받아내는 정도는 가능해 보인다. 그것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조문화를 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프레시안 : 바람직한 개헌 방향은? 

이상돈 : 나는 사실 대통령제는 이제 그만 해야 한다고 본다. 정의당을 뺀 4당이 지금 상당히 각자 개성이 있다. 그런데 대통령제, 소선거구제를 그대로 하게 되면 2020년에는 도로 양당 체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 4당 체제를 유지하는 게 의원내각제 도입의 명분과 실리가 될 수 있다. 유권자들도 '할 수 없이 이 당 찍는다' 이런 것보다는 선택지가 있는 게 좋지 않나. (양당제에선) 영호남에서는 공천이 곧 당선이 되니. 지난 총선 때도, 호남 유권자들은 오랜만에 '선택'을 했지 않나. 그런 면에서 다양한 의견을 의회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다당제가 좋다는 것이고, 또 아무리 좋아도 소선거구제,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다당제가 유지될 수 없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상돈 : 사실 나는 정치적 색깔로 보면 유승민 의원 등과 더 맞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유 의원이나 바른정당 사람들과 심각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이명박 정권의 악행을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는 면에서 야당에 더 가깝다. '적폐'라는 게 무슨 일제 강점기 시대 얘기를 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 그런 시대 이야기는 학계에, 역사에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7~8년간 계속돼온 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 제2롯데월드 짓겠다고 공군참모총장을 해직시키고, 그걸 지지하는 관제 데모를 만들고, 4대강을 밀어붙이고 거기 반대하는 학자들을 탄압하고, 공영방송은 무력화됐다. 이런 문제를 차기 정권이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본다. 4대강도 지금은 국토부, 국회에서는 국토위 소관인데, 물 관리나 댐 관리 같은 것은 환경부로 옮겨서 독립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새 정권이 그런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