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조현병 환자들’ 위험 부른다
약 50만 명 정신질환자 중 10만 명 정도만 치료받아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7(금) 16:58:23 | 1430호
최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40대 여성 황아무개씨(48)가 80대 노모를 향해 칼을 휘두르다가 가족의 제지를 받았다. 황씨는 “엄마는 죽어야 한다”며 부엌칼로 노모에게 상해를 입혔다. 때마침 집에 들어온 오빠가 막지 않았다면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황씨는 중학생 때부터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평소 노모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고, 증상이 심해지자 결국 어머니에게 칼을 휘둘렀다. 경찰은 황씨를 불구속 입건하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도록 조치했다. 이번 사건은 자칫 ‘존속 살해’라는 비극으로 이어질 뻔했다.
조현병을 가진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 1월 포항에서는 40대 아들이 흉기로 아버지를 살해했다. 그는 평소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했다. 오늘도 나를 죽이려고 해서 내가 먼저 죽였다”고 진술했다.
같은 달 전남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조현병 환자인 30대 아들이 60대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아들은 “살해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나를 죽일 것이다”는 환청(幻聽)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조현병이 묻지마 범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50대 남성이 70대 이웃주민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고 넘어뜨린 뒤 “전화하면 죽이겠다”면서 목에 흉기를 들이대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경찰이 출동하자 흉기를 들고 찌를 듯이 달려들기도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가해자는 조현병 환자였다.

© 일러스트 정재환
사회에서 방치된 환자들
조현병 환자의 특징은 대개 망상과 환각, 환청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리 주변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환청이 들린다거나 환영(幻影)을 봤다며 떠들고 다니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이웃에게 욕하거나 의심하는 사람, 반복적으로 괴성을 지르는 사람 등이다.
조현병 환자들은 감정 조절이 되지 않고 증상이 심해질 경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을 갖는다. 대수롭지 않은 상대방의 언행이 피해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이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있다.
조현병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면 병의 진행을 막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하지만 상당수의 환자는 아무런 치료 없이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조현병 환자는 전국에 50만 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치료를 받은 사람은 이 중 5분의 1인 10만 명 정도에 그치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증상이 재발할 위험성도 매우 높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신의학과 허버트 멜처 교수는 “유지요법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 1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60~70%, 2년 이내에 재발할 가능성은 거의 90%에 육박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인근 공용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의 범인 김아무개씨(35)도 조현병 환자였다. 당시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으나 정신상태 등을 감정한 끝에 ‘조현병’에 의한 살인으로 결론났다. 검찰의 정신감정 결과, 김씨는 피해망상과 환청 등의 증세를 보였다. 김씨는 조현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었지만 퇴원한 뒤에는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그 후 가출해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해 왔다. 김씨는 사실상 방치된 상태에 있었다.
같은 해 10월 서울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경찰관을 살해한 성병대(47)도 과거 수감 시절부터 조현병 진단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대한 반감을 키웠고, 결국 살인 사건의 가해자로 돌변했다.
법정에 가면 조현병 환자들은 죄질에 비해 아주 가벼운 형을 선고받거나 감형 요인이 된다. 지난해 5월 수락산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김학봉(62)도 조현병 환자였는데, 그는 15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김학봉은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조현병을 이유로 8년으로 감형됐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씨가 2016년 5월24일 서울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범행 장면을 재연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충동적인 범죄 막는 것 불가능
물론 조현병 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통계적으로 봐도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범죄율은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낮다. 전체 범죄자 중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0.3~0.4%로 매년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조현병 환자들이 범행에 나설 경우 예측이 불가능하다. 조현병 환자들의 사건에서 보듯이 환청이나 망상에 사로잡힌 충동적인 범죄를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령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의 경우 그 원인이 정신질환(36%), 알코올·약물 중독(35%), 현실 불만(24%) 순으로 나왔다. 통계에서 보듯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묻지마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범행 장소의 61.5%가 길거리나 공공장소였고, 피해자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당했다. 길을 가거나 운동하다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지어 출근하던 지하철 안에서도 당할 수가 있다. 이유 없이 흉기를 휘두르는 탓에 방어하기도 어렵다.
조현병의 경우 ‘방치’보다는 적극적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극구 꺼려 한다. ‘조현병’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위험이 야기될 수 있다.
수년 전 경기도 파주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던 30대 남성이 길 가는 여중생을 뒤에서 휴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일이 있었다. 가해자는 함께 살던 노모가 사망하면서 조현병 약을 복용하지 않고 치료도 중단한 채 방치돼 있었다. 범행 이전에도 사전 징후가 있었다. 가해자가 괴성을 지르거나 기이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했지만 이를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주민들은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봐 쉬쉬하며 지내다가 결국 화를 불렀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단지에 조현병 환자가 살고 있을 경우 아파트 관리실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환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가급적 주민들과 마찰이 없도록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는 5월말부터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 사실상 어려워진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해 강제 입원 규정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취지는 정신질환자 인권보호와 강제 입원으로 인한 폐단을 막기 위해서다. 그동안 정신병원 강제 입원을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고, 부작용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거나 체계적으로 관리할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는 분명 문제다.
당장 이 법이 적용되는 5월 이후에는 정신병원에 수용돼 있는 정신질환자 8만여 명이 한꺼번에 퇴원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퇴원하는 환자들 중에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될 경우 또 다른 비극적인 사고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환자 본인도 위험하지만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돼 있다. 경찰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정신질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제44조 2항)에 따라 경찰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을 의사 등 의료 관계자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정신건강 상태를 살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격리 조치해 범죄 위험성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현재는 정신장애가 의심되는 현행범에 한해 경찰관의 응급입원 조치가 가능하다.

‘수락산 살인’ 피의자 김학봉씨가 2016년 6월3일 현장검증을 위해 서울 수락산 등산로 범행 현장에 서 있다. © 연합뉴스
체계적인 관리, 치료 시스템 마련해야
장애인 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전문적 지식도 없는 경찰이 자의적인 판단을 통해서 가두고 수용하는 것은 예방 차원보다는 인권침해 소지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장애인 단체들이 우려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경찰도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를 진단할 ‘정신건강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일선 경찰서에 내려보낼 방침이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정신질환자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체크리스트는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나’ ‘지금 자해(자살)를 하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나’ 등 총 11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고, 문항마다 고·중·저위험 3단계로 분류를 했다. 고위험이 1개 이상이면 경찰관이 곧바로 정신과 전문의의 동의를 받아 강제 입원 조치를 할 수 있다. 강제 입원 환자는 본인과 가족이 거부해도 입원 후 3일(72시간) 동안 퇴원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경찰에서 만든 ‘정신건강 체크리스트’는 3년 전 영국의 한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나 ‘졸속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연구용역까지 발주했는데도 충분한 검토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경찰은 적용 대상과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조현병 환자들을 이방인 취급하거나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해서는 안 된다. 이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실시한 ‘여성안전 대책 당·정·외부전문가 간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의료기관에서 퇴원한 후 지속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영철 대한조현병학회 이사장은 “의료기관에서 정신보건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퇴원 후 환자의 치료 현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사례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의료기관에서 사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절대 결혼 안 해
어쩐지, ‘육아 예능’에 이어 가상 결혼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늘었다 했다. 모든 프로그램이 ‘의도’로만 만들어졌다고 볼 순 없지만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만도 없다. 최근 논란이 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제13차 인구포럼’ 보고서를 보면 심증은 굳어진다.
휴학이나 해외 연수처럼 불필요한 스펙을 쌓게 해서 채용에 불리하게 하기, 가상현실 배우자 탐색 기술을 대학에 보급하기, 하향 선택 결혼을 하도록 문화적 콘텐츠를 만들되,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진행하기.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거센 비판을 받았고, 논란을 초래한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자진 사퇴했다.
우리는 결혼을 많이 한다. 애초에 결혼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결혼할 생각이 없는 인구가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50세 시점에서 한 차례도 결혼한 경험이 없는 인구 비율인 ‘생애미혼율’로 따지자면 한국은 2010년 기준 여성 2.8%, 남성 5.8%에 불과하다. 일본은 같은 해 여성 10.6%, 남성 20.1%, 미국은 2012년 기준 여성 17%, 남성 23%였다. 심지어 모든 나라에서 남성이 미혼으로 남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런데도 아이를 여성이 낳는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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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켈 그림 |
문제의 보고서에서도 인정하듯, 기혼자의 출산율 변화는 크지 않았다. 2015년 총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3000명 늘었고, 여성 1명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기준 1.24명으로 전년 대비 오히려 2.8% 증가했다. 비혼 인구가 늘어났다고 한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수가 결혼하고 결혼한 여성은 아이를 낳는다.
살아 있다면 그렇다. ‘저출생’의 원인은 20~30대 여성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은 데에서 찾아야 한다. 고작 20~30년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용띠니 백말띠니 하는 이유로 태어나기 전에 낙태당하는 여자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때 죽어버린 여자아이들이 지금 출산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이 원인을 모른 척한 건지, 모른 채 국책기관으로서 연구를 진행한 건지 둘 중 무엇이든 문제다.
또한 고학력·고소득 여성을 주원인으로 지목하기엔 고학력은 몰라도 고소득 여성이 터무니없이 적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크며 평균의 2배다. 그러니 이들이 겨냥하는 여성의 고소득이 실제 고소득이라기보다 ‘혼자 벌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을 일컫는 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극소수의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결혼 시장을 대거 이탈했다는 점만은 정확히 짚었다.
여성에게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무엇’
그들을 그 집단에 속하게 한 강력한 동인 중 하나가 바로 그 ‘결혼 시장 이탈’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걸까. 한국 여성은 결혼에 대한 온갖 압박 속에 불안을 품고 자라난다. 불안은 한번 벗어나기가 어렵지 벗어난 뒤에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발에 차이듯 널려 있는 ‘불행한 결혼’의 사례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학습시킨다. 혼자로도 완전할 수 있고, 누군가와 관계 맺고 살고 싶은 욕구를 꼭 이성애 중심의 결혼제도 안에서만 해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낡은’ 제도에 편입되기를 명령하기보다 제도 바깥에서 생겨나는 관계들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결혼이 자칫하면 여성을 어디로 몰고 갈 수 있는지 이미 알기에, 부당한 대우를 견뎌가면서까지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웬만한 여성들에게 결혼은 이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무엇’이 됐다. 그런 마당에 대책이랍시고 나온 게 ‘잉여 남성의 혼사를 위해 여성이 눈을 낮추라’는 말로 들리다니…. 차라리 남성을 결혼에 적합한 상대로 ‘개조’시키는 일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더 배우고 더 버는 여성을 부담스러워하는 남성을 그대로 두고 둘 간의 매칭이 가능하기라도 한가.
가임기 여성 지도(대한민국 출산 지도)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정책을 보면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정책인지 저출산을 독려하는 정책인지 헷갈린다. 각자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게 두고, 그대로도 충분히 살 만하게 하라. 대책 수립은 그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들의 성평등 세상에 성소수자는 없나
밤마다 쌍화탕을 먹고 산다는 글을 본 친구들이 ‘쌍화탕 전도사냐’며 휴대전화로 인사를 건네왔다(<시사IN> 제493호 ‘복잡하고도 연약한 남자를 생각하며’ 기사 참조). 그렇다면 한번 먹어보겠노라고 적극적인 의사를 밝혀온 이도 있어서 내심 뿌듯하였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웃 간에 좋은 게 좋은 정다운 이야기. 산다는 건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야기될 때 살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야기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이야기를 쓰면 안 될 것 같다. 어떤 삶의 사태는 이야기가 되기를 거부한다. 그것은 이야기가 되기 전의 ‘사실’로만 존재하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지난주 내내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사람의 말’이 있었다. 씻다가도, 먹다가도, 자다가도 생각이 났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 우리 삶 전체를 온전히 지배했다. ‘가만히 있으십시오’라는 말이 거짓된 청유가 아니라 진실한 명령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의 발목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말의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이제,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은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감히 쓸 수 없는 말이 되었다. 말은 그렇게나 무서운 것이어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녀노소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혹시 누군가의 뚫린 입에서 버젓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걸 목격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이의 삶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이가 무얼 먹고 무얼 싸며, 무얼 보지 않고 무얼 듣지 않고 살고자 하는지 그 인생을 돌아봐야 한다. 우리, 천만 시민은 그런 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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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월16일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활동가들이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지난 2월16일 유력 대선 후보 문재인씨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선언했다. 그가 바로 직전 보수 기독교 단체를 방문하여 차별금지법에 사실상 반대한다고 말한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바로 성평등한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재인씨의 선언은 조금 더 코미디에 가까웠을 것이다.
나는 그날 현장을 녹화한 짤막한 영상을 보고 한동안 어리둥절해 있었다. 차별금지법 반대에 관해 질문하는 활동가들을 향해 “나중에 발언 기회를 드리겠다”라는 말을 내뱉는 문재인씨의 얼굴을 보기가 당혹스러웠고, 그에 반응해 “나중에”를 외치는 청중의 목소리는 암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포럼의 주제인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를 곱씹으면서는 화가 났다. 엄마(아들), 아내(남편), 딸(아버지)로 이어지는 이성애자 가족주의에 기반한 여성주의 선언의 한계를 모르는 건지, “사람이 먼저인 세상, 성평등한 세상”에 성소수자는 없다는 건지, 성평등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지(그가 말하는 성평등 세상은 양성평등 세상인 건지), “우리 사회 곳곳의 젠더 폭력”을 그 자신이 자행하고 있음을 알고는 있는 건지(남성 육아휴직제가 얼마나 현실과 먼 얘기인지는 실제 노동자 아빠들의 원성으로 대신하겠다), “성평등과 인권 교육을 공교육에 포함시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확산을 막겠다”라는 게 차별금지법 제정의 이유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지 나부터도 그에게 묻고 싶었다. 대답을 들어야만 나의 선거권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묻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은, 청중의 목소리였다. 그걸 어떻게 해석해내야 할지 까마득했다. 단순히 포럼 진행을 위한 정리 발언이었다면….
권리의 주장에 순번을 매길 수 있나
그러나 그때 그 사회의 ‘합의된’ 목소리에, 항의하던 활동가들과 현장에서 투쟁하며 관계 맺던 이도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기운이 쫙 빠졌다. 그들이 그즈음 광장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라고 외치던 천만 시민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날 그곳 활동가들의 외침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3년 전 봄에, 가만히 있다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외침이라는 걸, 그들이 ‘나중에 살라는 겁니까?’라고 생존의 목소리를 내었다는 걸 그들이 알았다면.
혐오와 차별 반대를 교리의 뒤에 두고 평등을 합의의 산물로 전락시키고 권리의 주장에 순번을 매기는 일이 과연 ‘촛불혁명’으로 우리가 배운 것인가를 나는 이즈음 우리가 모두 함께 고민해보길 원한다. 그렇게 고심해야 진정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고심해야 여성주의 선언이 여성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나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고심해야 언젠가 무서운 말의 족쇄를 풀 수 있지 않겠느냐고 지금, 묻고 싶다.
얼마 전 ‘생선과 살구’라는 시를 썼다. 그 시의 첫 연은 잊을 수 없는 사람의 말로 시작된다. ‘저는 여성이자 성소수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가를 수 있습니까?/ 반으로 갈라진 것을 보면/ 소금을 뿌렸다.’
2017년 꼭 알아야 할 창업 트렌드는 이것
싱글족․가성비․O2O․카테고리 킬러․콜라보레이션 등 5대 키워드 주목해야
김성희 창업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3.17(금) 18:02:46
2017년 정유년 (丁酉年)이 3개월 가까이 지나고 있다. 닭은 힘찬 울음으로 하루를 열고, 어둠을 밝히는 상서로움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창업 관련 박람회가 유독 많이 열렸다. 3월2일 서울 코엑스에서 ‘2017 프랜차이즈 서울 박람회’가 개최됐다. 9일에는 서울 학여울역 SETEC에서 ‘제39회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가 열리는 등 창업 열기가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자영업자는 551만2000명을 기록했다. 2016년 2월 530만8000명보다 21만3000명이나 증가한 수치다. 문제는 창업시장이 점차 녹록치 않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외식 시장으로 몰리는 예비 창업자들이 많아지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안정훈 진창업컨설턴트 대표는 “저성장과 불황이 깊어지면서 창업시장도 소비 트렌드에 발맞춘 독특한 아이템 선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며 “싱글족을 겨냥한 아이템 선정, 인건비 등 고정비 절감, 매출 다각화를 위한 카테고리 킬러 도입, 콜라보레이션 등 올해 창업 트렌드를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3월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7 프랜차이즈 서울에서 모델과 프랜차이즈 업체 관계자들이 창업 대표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소비 트렌드 맞춘 창업 아이템 설정 필수”
1인 가구를 겨냥한 아이템은 ‘싱글족’ 증가에 발맞춰 향후 높은 성장세가 기대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싱글족은 최근 싱글슈머(Single+Consumer)나 솔로이코노미(Solo+Economy)라는 새로운 경제용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 맞게 외식시장도 재편을 거듭해 왔다. 혼자 와서도 매장에서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브랜드가 잇달아 론칭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건비 절감과 운영의 편의성을 높인 무인포스시스템 접목 브랜드가 등장하기도 했다. 미사랑인들이 운영하는 한식전문점 ‘니드맘밥’은 매장 인테리어를 바(Bar) 형태로 구성했다. 1~2명 단위의 외식을 위한 공간 구성인 것이다. 공간 활용도를 크게 높인데다, 무인식권발매기를 설치해 종업원 없이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한 게 특징이다.
가성비는 올해 소비자뿐만 아니라 창업자도 주목해야 하는 단어다. 외식업은 투자 대비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친환경 죽 전문점 본앤본은 현재 100% 유기농 쌀과 국산 참기름, 친환경 녹두 등을 사용하고 있다. 가족의 건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주부나 웰빙에 관심이 높은 소비자들이 타깃이다. 최근 입소문이 나면서 병원이나 약국 등 특수 상권뿐 아니라 주택가 상권까지 진출하며 주목을 받고 잇다.
O2O서비스의 확산도 예비 창업자들이 주의 깊게 봐야 할 트렌드다. O2O란 ‘Online to online’의 약자로,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오프라인 매장의 고객을 유치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업종이 숙박업이나 배달업이다. 치킨배달전문점 티바두마리치킨은 현재 배달 어플 등과의 연계를 통해 가맹점의 수익률을 높이고 있다. 소자본 창업자를 위해 가맹비와 보증금, 로열티를 면제하는 ‘3無 정책’도 시행 중이다.
카테고리 킬러(Category killer)는 하나의 상품군 내에서 구색을 갖추고 고객 선택의 폭을 넓인 업태를 의미한다. 콜라보레이션이란 매출 다각화를 위한 아이템 결합을 말한다. 두 가지 모두 고객의 디테일한 취향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창업시장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프랜차이즈 커피가 대표적이다. 공정위에 정보공개서를 등록한 아이템 중 커피 관련 아이템이 가장 많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2010년 이후 커피는 ‘창업 붐’을 이뤘다.
레드오션이 된 커피시장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등장한 것이 디저트 카페다. 카페띠아모는 이태리 정통 아이스크림 젤라또를 내세운 아이스크림 전문점과 커피 전문점을 콜라보한 것이 특징이다. 이 브랜드의 가장 큰 경쟁력은 젤라또와 다양한 사이드 메뉴다. 젤라또는 매장에서 천연 재료를 이용해 매일 직접 만든다. 커피 원두는 브라질에서 직접 가져오는 아라비카산 100% 원두를 전문 큐그레이더(커피감별사)가 선별해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자체 공장에서 로스팅하고 사용한다. 3월부터는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 전 메뉴에 ‘스페셜티 블렌드 커피’를 도입해 커피의 품질도 업그레이드 했다.
앞장서서 가시덤불 쳐낸 ‘김연아 선배’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김연아 선수는 40억원에 이르는 기부를 했다. 김연아 장학금을 받았던 최다빈 선수가 2017년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2010년 2월24일, 캐나다 밴쿠버 서부에 위치한 퍼시픽 콜로세움에서는 세계 피겨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역사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3년간 10차례 세계 신기록 경신, 부상 없는 최상의 몸 상태, 그해 시즌 내내 1위를 유지해온 선수의 경기였다. 그녀가 올림픽 챔피언이 될 거라는 데에 이견은 없었다. 유일한 염려는 라이벌이 바로 다음 순서로 경기에 나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코웃음을 한번 치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빙판 위에 올랐다. 스물한 살의 김연아였다.
마치 빙판을 누비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007 테마곡에 맞춰 활주하는 그녀의 스케이트 날에서는 얼음 지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각국의 해설진은 파란색 의상을 입고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를 온몸으로 연주하는 그녀에게 경탄했다. 영원히 공중에 떠 있을 것만 같은 점프, 손가락 하나 잘못 놀리지 않는 완벽한 연기, 스포츠를 예술로 격상시킨 경기, 밴쿠버의 김연아는 ‘퀸’이라 불리는 이유를 증명하며 총점 228.56을 받았다. 세계 여자 피겨 선수계가 처음으로 맞이한 200점대의 스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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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그림 |
김연아는 피겨 꿈나무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한편 모든 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해 약 40억원에 이르는 기부를 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선수 전용 빙상장 건립을 제안하고, 태릉선수촌에 나가 피겨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개인적 욕심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집중된 여론이 척박한 국내 피겨스케이팅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퍼져나가길 바라며 예능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얼굴을 내비치기도 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여전히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후배들에게 드리워진 가시덤불을 쳐내주는 위대한 선배로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은퇴설이 솔솔 나왔다. 정작 선수 본인은 1년8개월 동안 향후 진로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팬들은 그녀가 부담을 내려놓고 커피 광고의 한 장면처럼 부디 삶을 ‘낭비하길’ 원했다. 평생에 걸쳐 얻어낸 명성과 영광을 누리며 가끔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며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면 또 어떤가. 고된 훈련과 중압감을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되길 바랐다. 김연아 이후의 피겨 선수가 없었다지만 주니어 유망주들이 자라고 있었다. 불모지에 홀연히 나타나 종목의 지평을 바꿔놓은 그녀에겐 쉴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김연아는 선배로서, 언니로서 빙판에 돌아왔다. 팬들에게는 적잖이 속 시끄러운 복귀였다. 김연아는 세계 선수권에서 우승하고 올림픽 출전 티켓을 3장이나 따내며 후배 두 명을 이끌고 소치로 향했다. 2014년 12월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가 펼쳐졌다. 그녀는 후배들이 세계무대라는 경험을 쌓는 데 밑거름이 되기 위해 이미 가본, 고되기 그지없는 길을 또 한번 걸었다.
2017년 2월25일, 최다빈 선수가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싱글 피겨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 대회에서 들려온 7년 만의 우승 소식이었다. 최 선수가 어린 시절 김연아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화제가 되었다. 김연아는 최 선수에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니? 한국 난리 났어”라고 축하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무슨 일이긴, 이게 다 당신 덕에 일어난 일이지. 피겨스케이팅에 관심도 없던 나라에서 선수 전용 빙상장이 추진되고, 박소연·김나현·임은수·차준환·유영·최다빈 같은 유망주들의 이름을 줄줄 외는 모든 일이 한 사람에 의해 시작됐다. 7년 전 2월24일, 자신에게 주어진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 여왕이 된 한 스케이터가 있었다. 지금도 김연아는 후배들에게 드리워진 가시덤불을 쳐내주는 위대한 선배로 그곳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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