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정파 개헌, 졸속 개헌은 위험하다 - 김종인의 '큰 그림'에 빠진 퍼즐 두조각

일취월장7 2017. 3. 16. 10:28
정파 개헌, 졸속 개헌은 위험하다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개헌 시기를 못박는 개헌은 어떤가?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      
2017.03.13 15:21:16

장장 4개월에 걸쳐 연인원 1500만 명 이상이 추위와 싸우며 촛불시위를 진행한 결과 박근혜 탄핵이 이루어지고 조기 대선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촛불시민혁명은 개헌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재편 논의가 무르익고 있으나, 대다수 국민은 정략적 개헌 논의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정국은 급속하게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대선 전 개헌은 정략에 의한 졸속 개헌일 수밖에 없으며, 국민적 공감과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 후 개헌도 결코 쉽지 않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은 누구라도 개헌을 회피하려고 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개헌을 위한 개헌이다. 정치권이 주도하는 정략적 개헌이 아닌 시민이 주도하는 촛불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마무리하도록 차기 개헌의 절차와 일정을 헌법 부칙에 명시하는 원 포인트 개헌안을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이다. (필자)

개헌, 과연 필요한가? 

박근혜-최순실 일당에 의한 권력의 사유화와 국정농단 사태를 바라보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절감하고 이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제도가 나빠서라기보다는 나쁜 지도자가 제도를 악용했기 때문이니 좋은 지도자를 뽑으면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도가 문제라는 생각은 제도 개혁, 궁극적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사람이 문제라는 주장은 박근혜의 퇴진과 정권 교체가 시급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박근혜는 그보다 더 부적합한 사람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쁜 지도자였고, 따라서 시급하게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고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이 생각에 절대 다수의 국민이 공감했고, 그 결과 탄핵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도의 개혁, 특히 개헌이 필요하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을 바꾸는 것이 답이라는 주장의 결정적 맹점은 새로 바뀌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들은 그가 좋은 지도자일 것이라고 믿었다. 곧 치러질 대선에서 우리가 믿고 뽑은 지도자가 또 다시 기대를 저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정치제도를 포함해서 사회제도의 역할은 사람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고, 선한 행동을 보상하고 나쁜 행동을 벌함으로서 누구나 선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만약 우리가 선출한 지도자가 기대와 달리 나쁜 행동을 한다면 이를 견제하고 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은 제도에 따라 선한 행동도 악한 행동도 하는 것이지 원래부터 선하거나 악하기만 한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는 것이 과학적 연구의 결론이다. 필자의 경우, 예를 들면, 과속운전을 단속하는 카메라가 없을 때와 있을 때 운전 속도가 달라진다.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은 제도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광범위한 헌법유린과 상식 이하의 국정농단이 장기간 지속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견제가 거의 없었던 것은 정부의 고위관료, 여야 정당의 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 사법부의 고위법관들까지 모조리 나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대통령 권력이 너무나 비대하고 국회와 사법부까지도 상당한 정도로 지배할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1987년 6.10민주항쟁 이후의 개헌은 대통령 직선과 단임에 초점을 둔 것이고, 과거 유신헌법부터 이어진 초강력 대통령 권력은 거의 바꾸지 않은 것이었다. 87년 헌법에 의해 대통령직을 수행한 사람이 박근혜 이전에도 다섯 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박근혜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측근실세와 문고리 권력의 발호, 정권 초기 여당의 내시화와 후기 본인의 레임덕 현상 등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노정했다. 

그런데 현행 헌법의 문제는 이런 정도를 넘어선다. 현행 헌법에 기초한 소위 '87년 체제'는 원천적으로 절름발이 민주주의이며 재벌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말로만 국민이 주권자이지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원을 선출 할 때뿐이고 의원 선출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노예가 되어 버려,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이 꼭 맞는 정치체제였다. 정치는 민의를 대변하기보다는 소수 정치엘리트에 의해 장악되었고, 이들은 재벌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 카르텔에 포획되었다.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돈도 실력'이라는 '헬조선'에서 대다수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탈조선'을 꿈꾸게 되었다.

촛불시민혁명은 단순히 나쁜 대통령 하나 몰아내고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그러나 실제로 어떨지는 확실히 알 수 없는' 새 대통령 뽑자는 것이 아니다. 시민주권을 바로 세우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 모두에게 공정하게 기회가 보장되고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를 이루고자 함이다. 이런 방향으로 정치와 경제가 개혁되어야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개혁은 좋은 사람에게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개혁을 통해 나라의 주인인 국민 모두에게 권력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제도 개혁의 정점은 당연히 헌법 개정이며, 그런 의미에서 개헌은 "혁명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과거 4.19혁명이나 6.10항쟁도 새로운 헌법을 탄생시켰다. 개헌이 없다면 촛불시민혁명은 미완의 혁명이 되고 말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개헌, 무엇을 바꿔야 하나?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87년 체제'를 통해서 우리 국민의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저급한, 불완전한 민주주의였다. 정치란 무릇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봉합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민주국가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대통령 권한과 미약한 국회권력 때문에 대통령 권력을 누가 쥘 것인가가 항상 정치의 핵심이었다. 일찍이 그레고리 헨더슨이 한국정치의 역사적 특징으로 지적한 '소용돌이 정치'가 지속된 것이다.  

더구나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직선제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등 선거제도가 승자독식 제도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권력싸움 위주로 정치문화가 형성되었다. 생산적인 정치, 정책을 만들어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과거 독재세력과 민주화 세력 간의 투쟁의 연장선상에서 지역주의를 근거로 기득권화 한 양대 정치 세력 사이의 권력투쟁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최근 양대 정당이 분열함으로써 다당제가 성립되었다고는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소선구제가 지속된다면 언제든 양당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과 그 전신, 더불어민주당과 그 전신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수혜자로서 지역할거주의를 활용하여 정치시장을 독점했고,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 대통령 후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 중심의 패거리 정치를 해왔다. 패거리 정치는 반드시 정파의 이권집단화를 초래하고, 그 결과 유력 정치인들은 재벌에 기대거나 조종당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87년 체제' 하에서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재벌공화국은 변함이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 권력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장화 일변도의 정책은 거의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여야 간에 정책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한 사실이다.

새로운 헌법은 '87년 체제'라는 절름발이 민주주의를 온전한 민주주의로 바꾸는 개헌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주권이 바로 서고,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와 민생을 살리는 경제를 뒷받침하는 헌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첫째, 기본권의 강화다.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은 타인의 인권과 공동체의 안전을 현저하게 위협하는 경우 외에는 제한할 수 없도록 해야 하며, 평등권, 노동권, 안전권, 건강권, 환경권 등 사회권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국민소환, 국민발안,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도입이다. 국민은 더 이상 투표하는 노예가 아닌 진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저질 국회의원을 파면할 수 있어야 하고, 국회가 외면하는 민생법안이나 개혁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 있어야 하고, 사대강 사업이나 국정교과서 같은 황당한 정책을 국민투표로 부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권력의 분산으로 견제와 균형 및 협치를 이루어야 한다. 대통령 권력을 국회와 독립기관에 나누어야 하며, 중앙정부권력을 지방정부로 나누어야 한다. 득표수에 비례하는 국회의석 배분을 규정함으로써 승자독식 기득권정치를 끝장내고 비례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넷째, 경제민주화의 실효성 담보다. 현행 헌법 119조 2항은 경제민주화를 담고 있지만, 그 표현이 추상적이어서 선언적 규정에 그치고 실제 입법이나 정책에서 거의 반영이 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개헌의 필요성은 과거에도 여러 번 거론되었고, 개헌의 방향에 관해서도, 특히 권력 분산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헌재의 탄핵 결정 직후 서울경제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의 경우, 49.2%의 응답자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19.8%의 응답자가 의원내각제를 선호한다고 답하였다. 대통령중심제를 선호한다고 답한 사람은 14.4%에 불과했고, 아마 이들 중에도 상당수는 현재에 비해서는 대통령 권력을 줄이기를 원할 것이다. 권력구조에 정답은 없다. 권력분산에 관한 거의 절대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여론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이다. 

개헌, 언제 해야 하나? 

개헌의 시기와 관련하여서는 정치권에서도 대립하고 있고, 국민여론도 양분되어 있다. 의 필요성은 과거에도 여러 번 거론되었고, 많은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권력구조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언제 개헌을 단행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여론이 나뉘어 있다. 위에서 인용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5.1%가 대선 전 개헌 추진이 바람직하다고 답했으며, 36.9%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하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28.1%였다. 오차범위를 감안하면 대선 전 개헌과 대선 후 개헌에 대한 지지가 실질적으로 같다고 봐야 한다. 

대선 전 개헌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졸속 개헌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조기개헌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국회와 시민단체 등에서 오래 전부터 논의한 개헌안도 있고, 최근 국민의 당, 바른 정당, 자유한국당 등이 대동소이한 개헌안을 내놓았으며, 1987년 헌법 개정 때도 짧은 시간 내에 개헌을 마쳤다는 점 등을 들어 대선 전 개헌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1월부터 가동한 국회 개헌특별위원회의 논의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각 당에서 마련한 개헌안은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심사숙고한 안이라기보다는 시간에 쫓겨 대충 만든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87년 헌법이 문제가 많은 것은 당시에도 시간에 쫓겨 개헌안을 대충 만든 것이 한 원인이다.   

둘째는 대선 전 개헌 추진이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한 정략의 소산이라는 점이다. 촛불시민혁명의 정신과 요구를 담아내는 근본적 개혁을 위해 나라의 기본 틀인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는 달리 탄핵 위기에 몰린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정치적 위기에 처한 전 새누리당 세력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로 개헌을 들고 나오는 바람에 개헌이 오히려 정권교체와 개혁을 막기 위한 정략적 방편으로 활용될 여지가 생겼다. 야권에서도 정치적 입지가 취약한 정치인들이 조기 개헌을 매개로 한 제3지대 구축 등 정략의 방편으로 대선 전 개헌을 추진하는 흐름들이 나타났다. 가장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개헌추진파와 국민의 당, 그리고 바른 정당이 중심이 되어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를 확보해서 개헌안을 발의하고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식의 개헌은 촛불시민혁명의 요구를 수렴하기보다는 권력 구조에 관한 정파 간의 타협을 매개로한 그야말로 정략적 개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자칫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세력의 연명과 온존을 돕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선 전 개헌을 지지하는 여론도 반대 여론만큼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 여론조사에 의하면 문재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개헌을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이 많고, 반대로 문 전 대표를 싫어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대선 전 개헌을 선호하는 의견이 많다. 문 전 대표는 당선가능성이 매우 높은 후보이기에 대선 이전에 개헌이라는 변수를 끌어들이지 않고 싶어 하며, 그를 반대하는 정치인들은 개헌을 고리로 반문연대를 구축하고자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높은 지지율로 대세론을 구가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 지지자 못지않게 비토 세력도 많다. 조기 개헌에 대한 양분된 여론도 이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나아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선호와 무관하게 대선 전 개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정파적 이해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를 걱정하는 진정성에 입각해서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은 일단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개헌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고 염려한다. 과거에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고 여러 번 개헌론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한 번도 본격적인 추진이 되지 않았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권력을 쥔 자가 스스로 자기 권력을 내려놓거나 줄이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배우는 사실이다.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공약한 정치인, 심지어 내각제 합의까지 한 경우에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개헌을 반대했다. 임기 전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이 반대하는 일이 정치권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임기 후반에는 차기 대권이 유력시 되는 이들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들이 또 개헌을 반대하는 패턴이 일관되게 반복되었다. 그러니 대선 후에 개헌을 추진하자는 것은 대선 전 개헌 추진 못지않게 정략적인 접근이고 사실상 개헌 회피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개헌, 누가 해야 하나? 

지금 개헌이 본격 논의되는 것은 촛불시민혁명에 기인한다. 박근혜의 탄핵을 이끌어낸 동력은 국회와 정치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엄동설한에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서 나왔다. 개헌의 원동력도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이게 나라냐'고 항의하며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국가 개혁을 요구한 촛불시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주권자로 재탄생한 촛불시민들은 대의 민주주의의 처참한 실패를 목도하면서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외치고 있다. 당연히 이들이 개헌 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30년 만에 국회에 개헌특위가 설치되어 개헌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이와는 별도로 국민의 당 등 몇몇 정당은 자신들이 준비한 개헌안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개헌시기에 관한 논란도 정치권이 주도하고 있다. 반면, 촛불시민은 탄핵의 완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탄핵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 개헌은 국정문란에 책임이 있는 세력의 정치적 연명을 위한 정략이라는 의구심, 시위를 주도한 퇴진행동 집행부의 정치적 균열 등으로 개헌논의를 도외시 해왔다. 이제 탄핵이 완결되었으므로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로서 개헌을 본격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으나, 개헌 시기와 관련한 정파 간 다툼의 와중에서 개헌은 또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야권연정'이나 '공동정부론'등을 앞세워 목전의 대선정국에 대처하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현행 헌법에 의하면 개헌안 발의는 국회나 대통령만이 할 수 있고, 대통령이 유고 상태인 지금 국회가 개헌안 마련을 주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 우리는 촛불시민혁명을 완성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개헌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신헌법의 잔재인 현행 헌법의 개헌절차 조항을 따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신헌법 이전에는 개헌안 발의를 국민과 국회가 할 수 있었는데, 유신헌법에서 국민발의를 빼고 대신 대통령 발의를 집어넣었던 것이 현행헌법에까지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시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개헌 논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최소한 헌법 개정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토론, 공청, 의견 개진의 과정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개헌 논의 방식은 추첨으로 선발한 '시민의회'를 중심으로 한 방식일 것이다. 

시민의회는 이미 선례가 많다. 바로 이 시간에도 아일랜드에서는 시민의회가 소집되어 개헌을 논의 중이다. 2013년에도 시민의회에서 개헌안을 논의한 바 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2012년 시민의회에서 새 헌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을 위한 시민의회 소집으로 영역을 넓히면 그 사례는 크게 늘어난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온타리오 주,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호주 등이 그렇다. 

시민의회에만 맡기는 방안이 불안하거나 너무 생소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국회의 개헌특위와 시민의회가 동수로 참여하여 최종합의안을 만드는 것도 대안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개헌특위에 구성되어 있는 자문위원회가 시민의회에 대해서도 자문기능을 수행하면 양자 간의 의견조율이 어렵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 딜레마와 묘수 

대선 전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의 결정적인 약점은 그들이 실제로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물리적 제약, 그렇기 때문에 졸속으로 마련된 개헌안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국민이 참여하지 못하고 공론화가 부족한 가운데 개헌안이 마련됨으로써 새 헌법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개헌이 아니라 정파의 이익을 위한 정략적 개헌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기에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끌어낼 가능성이 희박하다. 

개헌의 정당성은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에서 나온다. 시민참여, 시민주도의 개헌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시민참여를 제도화할 입법과 시민주도의 논의 과정, 최종 개헌안 마련과 국민투표 절차가 필요하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국민투표 시점으로 설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하지만 과연 대선이 끝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그가 개헌을 하려고 할까?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는데, 스스로 내려놓으려 할까? 지난 말의 적폐를 청산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개혁을 힘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강력한 권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필자가 그 자리에 있다면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모두 그랬다. 남북관계 긴장, 외교적 위기, 경제 위기 등 개헌 논의를 연기할 핑계를 만들기는 여반장이다. 

딜레마다. 대선 전 개헌은 시민참여를 배제한 정략적 개헌으로 인식되어 성공하기 어렵고, 대선 후 개헌도 신기루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제안한 '개헌을 위한 개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치권이 주도하는 정략적 개헌이 아닌 시민이 주도하는 촛불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마무리하도록 차기 개헌의 절차와 일정을 헌법 부칙에 명시하는 원 포인트 개헌안을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이다. 김 전 의장은 차기 대통령 취임 1년 내 개헌과 임기단축을 부칙에 규정하는 '개헌을 위한 개헌'을 제안했으나, 필자는 시민주도의 개헌 절차를 함께 명기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로써 반드시 개헌이 이루어지도록 못을 박는 동시에 개헌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촛불시민혁명의 제도화라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안은 대선 전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개헌이 이루어진다는 확실성을 제공해준다. 자신들의 특권과 기득권을 지키는 개헌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내려놓는 개헌에 동의함으로써, 그들의 개헌 추진이 단순한 정략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한 진정성에서 나온 것임을 입증할 기회를 또한 제공한다. 대선 후 개헌을 말하는 이들에게는 대선 국면에서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재편이라는 교란요인을 제거해주니 환영할 만한 방안이다. 무엇보다 촛불시민의 입장에서는 시민혁명의 제도화로서 개헌을 이룩함으로써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 되는 길이 보장되는 것이니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탄핵의 완결로 이제 촛불시민혁명의 제2단계에 접어들었다. 혁명의 완성에 이를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4월 혁명은 결국 박정희 쿠데타를 낳았고, 서울의 봄은 전두환 쿠데타로 막을 내렸으며, 6월 항쟁은 노태우의 집권으로 귀결되지 않았던가? 설사 정권교체를 이룬다한들 이로써 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주권자의 뜻이 온전하게 반영되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실현해서 '헬조선'을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탈바꿈시킬 때 혁명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탈바꿈의 기초가 개헌이며, 그래서 개헌은 곧 혁명의 제도화인 것이다.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당장 개헌의 절차와 시기를 부칙에 명기하는 '개헌을 위한 개헌'에 관하여 논의와 협상을 개시하기 바란다. 



누구나 알아야 할 교양, 헌법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헌헌법(제1호)이 제정된 이래 아홉 번에 걸쳐 개정되면서 현행 헌법(제10호·1987년)에 이르렀다. 각 헌법의 전문을 비교해보면 그 헌법을 만든 정권, 시대의 정체와 지향을 음미할 수 있다.

장정일 (소설가)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3월 14일 화요일 제495호


광장에서 탄핵 촛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때에, 정치권의 토굴 한구석에서는 개헌 군불을 때느라 분주하다. 주로 제3지대에 모여 있는 정객들은 박근혜의 국정 농단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기 쉬운 대통령중심제 탓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내각책임제로 개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헌법학 교수 김욱과 작가 고종석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헌을 옹호하는 책을 출간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헌법의 상상력>(사계절, 2017)을 펴낸 역사 평론가 심용환은 개헌 논의에 신중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헌헌법(헌법 제1호)이 제정된 이래로 다섯 번의 일부 개정과 네 번의 전면 개정을 했다. 이 상황은 1948년에 태어난 한국인이라면 헌법이 아홉 번 바뀐 나라에서 살아온 셈이라고 말해준다. 또 이 상황은, 사람은 두 번 태어날 수 없지만 바뀐 헌법 아래서는 아홉 번이나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헌법은 우리 일상과 밀접하며, 그 헌법의 규정을 받는 국민 삶을 결정한다.

1948년 7월17일 공표된 제헌헌법 제1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고,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이 두 조항은 아홉 차례의 헌법 개정 중에 글자 토씨 하나 바뀜 없이 이어져 내려왔는데, 박정희가 1972년 12월에 불법 개정한 유신헌법(헌법 제8호)에 단 한 번 예외가 있었다. 그는 감히 제1조를 건드리지 못한 대신, 제2조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라고 변개했다.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라는 말은 얼핏 지당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어마어마한 꼼수가 있다. 첫 번째는 ‘국민=주권자’가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주권자’라는 헌법상의 정당성을 확보해두기 위해서고, 두 번째는 국회나 정당을 제쳐두고 국민과 직접 거래(국민투표)하는 것을 독재자가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악마는 디테일 속에 숨어 있었다.

ⓒ이지영 그림

이영록의 <우리 헌법의 탄생-헌법으로 본 대한민국 건국사>(서해문집, 2006)가 자세히 밝히고 있듯, 제헌헌법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나지 않았다. 제헌헌법은 다섯 차례 수정 끝에 공포(公布)된 1944년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헌장(헌법)의 구조와 내용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제헌헌법 이래로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제1장 제1조부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이라는 임시헌장의 간명하기 그지없는 조항을 군말 없이 계승한 것이고, 제헌헌법은 내용적으로도 임시정부 헌장기초위원이었던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반영된 임시헌장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대한민국 헌법만의 특징은 구체적인 총강과 조항 앞에 헌법 전체의 의미를 압축하여 설명하는 전문(前文)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전문의 효력 유무를 두고 학문적 논란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 혹은 정통성을 서술한다는 뜻에서 전문은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이 전문 역시 임시정부가 제정한 임시헌장을 충실히 따른다. 제정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강도 일본에 패망한 나라가 3·1 대혁명에 이르러 대한민국으로 건립되었다’는 임시헌장의 정신을 승계한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파들은 대한민국이 1945년이나 1948년에 건국되었다고 부르대지만, 제헌헌법 초안에는 없었던 저 구절을 전문에 넣어야 한다고 했던 이가 이승만이다.

역사는 이승만이 헌정사에 남긴 가장 큰 흔적을 내각책임제였던 초안을 대통령중심제로 바꿔놓은 것을 꼽으면서, 내각책임제라면 방지할 수 있었던 독재를 대통령중심제이기 때문에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정치체제 아래서든 헌정 질서를 폭력과 예외(비상조치)를 통해 파괴하고자 드는 독재자 앞에서 배겨날 제도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군인과 계엄령 선포를 통해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헌법을 사유화했다. 여기에 박정희의 쿠데타 수법을 따라잡았던 전두환까지 더하면, 현재 시청 앞에서 성조기 집회를 하고 있는 탄핵 반대 집단이 ‘계엄령이 답이다’ ‘군인들이 나서야 한다’고 외치는 것도 새삼스럽지 않다.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국민이어야”

헌법은 크게 두 가지 조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정치체제에 대한 조항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 기본권에 대한 조항이다. 전자는 권력을 확보하거나 분점하는 것이 목표인 정치인들의 관심사이고, 후자는 헌법을 통해 자유·평등·노동·복지를 보장받고 확대해야 하는 국민의 관심사다. 그런데 70년간의 한국 정치사를 보면 국민 기본권이 중요 의제가 되어 개헌이 논의된 적이 전무했다.

여태까지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의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정권을 창출할 수 없거나, 정치적 궁지에 몰린 쪽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에 무릎을 꿇은 민정당이 제안한 의원내각제 개헌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이 제의를 물리친 이유는 두 사람의 승리가 목전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부터 오늘까지, 개헌과 호헌 논의는 권력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전략적 지렛대로 동원되었다. 국민의당이 지난 2월17일 ‘6년 단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자체 헌법개정안을 발표했다지만, 촛불의 힘으로 개헌의 군불을 때는 이들이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뻔하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우리는 계속 헌법을 만들어가야” 하지만, “헌법을 만드는 주체는 바로 국민”이어야 한다. 아쉽게도 1987년에 우리는 그 기회를 놓쳤다.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 지음
사계절 펴냄

<헌법의 상상력>은 한국인 누구나가 알아야 할 유일무이한 교양은 오로지 헌법뿐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책을 사면 딸려오는 173쪽짜리 별권 부록은 제헌헌법(제1호)부터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제10호)까지 모두 수록해놓았는데, 각 헌법의 맨 앞자리에 놓인 전문을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그 헌법을 만든 정권과 시대의 정체(政體)와 지향을 음미할 수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이 없는 것이 아쉬운데, 한국에서 북한 헌법을 열람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김정은 개새끼’라고 욕하는 것보다 남한과 북한의 헌법을 나란히 비교하게 해주는 일이 대한민국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고단수일 텐데도, 우리 정부는 왜 이렇게 체제 선전을 못하는 것일까?





탄핵 다음은 개헌? 김종인 출마설 솔솔

속도 내는 개헌파 …대선 전 개헌 사실상 불가능
곽재훈 기자       
2017.03.13 11:58:54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열린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고리로 한 사실상의 '반(反)문재인 연대'가 시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의원들이 주축이 되고,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와 민주당 내 개헌파 의원들을 추가 동력으로 삼는 구조다. 그러나 당장 두 달 내에 대선이 치러질 판이라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김종인, '개헌 연대' 구심점으로 직접 대선 출마? 

이른바 '개헌 연대' 혹은 '반문 연대'의 '키맨(key-man)'은 현재 김종인 전 대표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1일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회동을 갖고 분권형 개헌에 대한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인 위원장을 만나기 전에는 국민의당 손학규 전 대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등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김 전 대표가 직접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김 전 대표와 인 위원장의 회동 자리에 동석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13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가 흔히 '박정희 모델'이라고 부르는 권위주의 발전체제가 막을 내렸다"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지금 제3지대에서 김 전 대표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가진 후보를 찾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정치권의 '책사'로 불렸으며, 2012년 문재인 대선캠프의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아 TV 찬조 연설을 했고, 2016년 초에는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아 안철수 전 대표의 멘토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앞으로 걱정하는 게 경제 위기와 안보 위기가 겹쳐서 온다는 것"이라며 "그럴 때는 상당히 경험이 많고 노련하고 과단성 있는 리더십이 필요한데, 그렇게 본다면 그동안 보여준 김 전 대표의 모습이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고 주장했다.  

윤 전 장관은 다만 "20~30대 같은 젊은 층에서는 또 김 전 대표에 대한 거부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다. '셀프 공천' 등에 부정적인 젊은 사람들의 정서를 누그러뜨리는 게 큰 과제"라고 지적했으나 "그것도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실제로 김 전 대표는 13일 저녁 청년 정당을 표방한 원외정당 '우리미래' 주최 토론회에 참석, 방송인 김제동 씨와 경제 정책을 주제로 좌담을 한다.  

이른바 '개헌 연대'의 그림에 대해 윤 전 장관은 "저도 현실적으로는 대선 전 개헌은 어렵다고 보는 사람인데, 개헌을 대통령이 되면 추진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을 하고 선거를 치러서 국민의 선택을 받자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이라며 "이게 꼭 어느 특정 후보에 반대한다 그런 차원이 아니고, 그 사람이 주장하는 가치와 다른, 다수 국민이 더 지지하는 그런 가치를 내걸고 그런 가치를 통해서 세력을 묶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고 또 어차피 시간이 짧아서 힘들기는 하겠으나 또 시간이 짧은 만큼 절박한 사정이니까 오히려 시간이 짧다는 게 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며 "언론을 보면 개헌이 중요한 고리가 된다고 보는 것 아니냐"고 했다. 

'어느 특정 후보'는 물론 문재인 전 대표를 뜻한다. 그는 "지금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를 보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이 80%가 넘는 나라인데 지금 문 전 대표가 가져가는 지지율은 그 절반이 안 된다. 확장성의 견고한 벽이 있는 것"이라며 "(문 전 대표가) 김 전 대표의 탈당을 막았어야 한다기보다, 경제민주화라는 가치를 자기들이 추구하겠다고 국민한테 약속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 김 전 대표가 왜 (당을) 나왔겠느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번에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면 결과야 어찌됐든 민주당이 그런 성의나 진지한 생각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고 그는 부연했다.

한국·국민·바른, 국회 개헌특위 박차 

김 전 대표가 인명진·유승민·남경필·손학규 등 여야 정치인들을 연달아 만나고, 때로는 대선 행보로도 여겨지는 토크콘서트 형식의 대중 행사를 하는 등 숨가쁜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도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민주당을 제외한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의 국회 개헌특위 간사들은 12일 회동을 갖고, 대선 전 개헌을 위해서는 이달 28일까지 단일 개헌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개헌특위는 금주 중 소위 회의와 전체회의를 예정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 탄핵심판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당은 개헌으로 흐름을 돌리려는 모양새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13일 당 비대위 회의에서 "정치권이 나라야 어떻게 되든 말든 오로지 권력 장악을 위해 국민 통합을 저해하고 분열을 부추기고 대결을 선동해선 안 된다"며 "이런 관점에서 개헌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 원내대표는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패권적 대통령 제도의 폐단을 뜯어고치는 개헌을 통해 민주적이고 분권과 협치의 시대정신에 맞는 국가운영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며 "한국당은 역사적 과제인 개헌을 반드시 이루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다른 정당·정파와 함께 신속하게 단일 개헌안을 만들어 정해진 시한 내에 국회에 정식 발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바른정당도 당 소속 대선 주자들이 지지율 부진을 보이는 가운데 개헌으로 판을 흔들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주호영 바른정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당 지도부 회의에서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의 파면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의 낡은 정치 풍토, 승자독식의 정치, 진영 싸움으로 국민을 선동시키는 구태정치를 모두 파면한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지 않고서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주 대행은 "대선 전 개헌은 시대적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당론으로 반대하고, 친문 패권 세력은 당내 서른 명이 넘는 개헌파 의원들의 목소리조차 묵살하고 억누르고 있다"고 민주당을 겨냥하며 "국민 화합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패권주의를 청산하기 위해서 바른정당은 개헌을 주도하는 역사적 소임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도 이날 평화방송(CP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대표가 가진 생각은 '이 체제 가지고는 안 된다. 그래서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며 "저는 적극 공감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김 전 대표가) 우리 바른정당하고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손을 내밀었다. 정 전 대표는 "김 전 대표의 이번 결단이 개헌을 전제로 해서 연대를 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우리 바른정당에 들어오시든 안 들어오시든 개헌을 위해서 '반문 연대'를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실 것"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민주 "1당인 우리 당 빼고 개헌?" 발끈…박지원도 "물리적 가능하냐"

그러나 현재의 대선 구도를 흔들려는 시도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국회 개헌특위 논의도 원내 1당(120석)인 민주당을 빼고 진행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개헌특위 소속 3당 간사들이 모여 조속히 개헌안을 발의할 것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개헌 자체가 너무 정략적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원내 1당을 놔두고 나머지 3당끼리 합의한다고 해서 개헌이 이뤄질 수 없다"고 공개 경고했다. 

우 원내대표는 "계속해서 이런 형식으로 개헌특위를 가동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이해할 수 없다"며 "저는 3당 개헌특위 간사에게, 이런 식의 분파적이고 정략적인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개헌특위에서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4당 간사가 모여서 의논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만약 3당 모임만 해서 별도의 활동을 한다면 지금 운영하고 있는 개헌특위는 의미가 없다는 점을 경고한다. 부디 4당 간사가 모여서 향후 일정과 로드맵을 의논할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주 의원총회를 통해, 개헌 시기를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로 하고, 개헌의 내용은 각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고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도 전날 회견에서 "대선 때 (후보들이) 공약을 해서, 지방선거가 있는 내년 6월에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며 "개헌에 관한 공약은 적절하고 필요한 시기에 따로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당도 개헌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동철 의원이 '3당 간사 회동'에 참석하기는 했으나, 대선 전 개헌 추진에 대해서는 당 내부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 소속 일부 호남 의원들은 개헌에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상임대표는 일관되게 '2018년 지방선거 개헌'을 주장해 왔다. 상대적으로 개헌에 더 적극적이었던 손학규 전 대표 역시 지난 10일 "2018년 지방선거 때까지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 권력 구조의 개혁을 완수하는 헌법 개정을 마치겠다"며 "대선 전에 헌법 개정이 완결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개헌의 필요성은 굉장히 대두되고 있지만, 과연 60일 대선 정국에서 개헌이 합의될까 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며 "따라서 각 당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로 확정해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 발언에 대해 기자들이 '대선 전 개헌 추진이라는 당론과 다르지 않느냐'고 묻자 "개헌은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만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얘기였을 뿐"이라며 "대선 정국 60일 내에 개헌이 합의되면 가장 좋고, 안 되면 안철수 후보의 제안대로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하고 그 안으로 (개헌안을)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에서 확정했으면 좋겠다.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지 개헌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개헌이 뭐길래… 김종인-김제동 '설전'

김종인 "개헌 통해 다선 의원 국가 이끌 지도자로 양성해야"
김윤나영 기자     
2017.03.13 23:26:34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방송인 김제동 씨가 13일 '개헌'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김제동 씨가 '권력 구조 개편'이 핵심인 개헌이 국민의 삶과 동떨어졌다고 지적하고, 김종인 전 대표가 여기에 반박하면서다.

김종인 전 대표와 김제동 씨는 이날 청년들이 만든 신생 정당인 '우리미래'가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연 정책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는 자신이 추진하는 '분권형 개헌'과 관련해 "오랜 기간 경륜을 갖춘 국회의원을 잘 배양해서 국가를 끌고 갈 지도자로 양성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분권형 개헌을 통해 다선 의원들을 내각 관료로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김제동 씨는 "지금 개헌 논의를 보면 '권한(권력) 구조 개편'만 얘기하고 국민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면서 "의원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책임 총리제 등으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국회가 과연 그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느냐. 지금 국회의원이 정부보다 신임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종인 전 대표는 "내각제를 하면 국회의 권한이 세지는 게 아니라 취약해진다"면서 "내각에 들어간 사람들의 내각 권한이 강화되지,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제동 씨가 "그 내각에 각 정당의 의석 수에 비례해 (국회의원들이 장관으로) 들어가지 않느냐"고 재반박하자, 김종인 전 대표는 "국회를 비호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랜 기간 경륜을 갖춘 국회의원을 잘 보호하고 배양해서 국가를 끌고 갈 지도자로 양성해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한다"고 답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국회에 3, 4선 의원이 많은데, 지금 제도로는 3, 4선을 하면 (정치를 계속 해야 할) 모티베이션(동기 부여)이 없어진다. 국회의원을 직업처럼 한 번 더 하는 것밖에 안 된다"면서 "실제로 정치인을 제대로 길러서 나랏일을 감당할 사람을 국회에서 찾아야 한다. 그 사람(3, 4선 의원)들에게는 인센티브가 없어지니까 제대로 된 정치인을 찾을 길이 없어진다"고 부연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여름에 신문사 기자들이 대선 관련 대화를 하자면서 나에게 '어떻게 정치 경험이 초선밖에 안 된 사람이 대통령 후보를 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더라"라며 "사람들의 현실 인식이 '무기력하고 별로 한 일도 없는 국회에다 뭘 맡길 수 있겠느냐'고 돼버렸는데, 그런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지 않나"라고 부연했다.  

반면에 김제동 씨는 "경제 민주화를 하려면 시민이 의회를 상시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개헌안이 나와야 한다"면서 "국회의원들도 4년 내내 (로비하는 재벌이 아니라) 국민을 상시적으로 겁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 소환권이 먼저 이뤄져야 국회의원도 국민의 눈치를 볼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김제동 씨는 "3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법안을 발의하면 국회의장이 심의하도록 국민 발안권을 주고, 지역 주민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과반수가 투표하면 국회의원직을 파면할 권리를 줘야 국회의원들도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겠나"라며 "국회의원 배양은 충분히 하는데, 지금까지 어떤 분이 배양됐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김종인 "탄핵으로 민주주의 성숙"…김제동 "이렇게 통합된 시대 찾기 힘들어"

두 사람은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종인 전 대표는 "탄핵 정국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해졌다.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김제동 씨는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문장만 반말이고, 판결문이 존댓말이어서 굉장히 가슴에 와닿았다. 주권자인 국민에겐 존댓말을 하고, 권력을 위임받은 대통령이나 헌법기관에는 국민이 반말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제동 씨는 또 "정치인들이 자꾸 (탄핵 이후) 국민 통합을 얘기하는데, 제가 보기엔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국민이 통합된 시대를 찾기 힘드리라 본다"고 평가했다.  

김제동 씨는 "경제 민주화의 개념을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지금 경제 민주화가 안 되고 있는 것"이라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해서도 "왜 탄핵됐는지 설명해야 하면 이미 그 사람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설명 안 해도 알아야 하는데. '진실이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본인 스스로 말하는 것에 감명받았다. 성실히 조사받겠다는 것 같아서. (진실을 밝히는 데) 시간은 안 걸리죠. 이미 밝혀졌거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종인 전 대표도 "우리나라 재계 분들은 누가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냐를 잘 파악한다. 그게 작동하는 게 비선 조직"이라며 "비선이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재계가 그 사람을 장악하면 대통령이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인다"면서 "선거 때는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대통령직 당선과 인수위원회를 거치면서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지난 4년 전에 목격했다"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김종인의 '큰 그림'에 빠진 퍼즐 두조각

[분석] 삐걱대는 '反문재인' 연대, 이유는?
곽재훈 기자 최하얀 기자     
2017.03.15 17:46:49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연일 언론 지면을 타고 있다. 김 전 대표의 행보가 관심을 받는 것은, 김 전 대표 개인의 정치적 영향력보다는 그가 이른바 '반문(反문재인) 연대'의 구심점 내지 설계자 역할을 할 인물로 꼽히는 상황 때문이다.

15일, 차기 대선 일자가 5월 9일로 정해지면서 대선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현재 '대세론'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선두 주자는 물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다. 문 전 대표가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지지자들의 기대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세 고비를 넘어야 한다.  

첫 고비는 물론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다. 추격 의지를 활활 태우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와의 일전이기도 하다. 둘째 고비는, 그가 민주당 경선을 통과한다면 맞닥뜨리게 될 정치권의 '반문' 정서다. 이 추상적 '정서'를 현실적인 세력 연합으로 바꾸려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김종인 전 대표다.  

셋째, 만약 세력으로서의 '반문 연대'가 불발된다면 대선 막바지 국면에서 형식적 또는 내용적인 일종의 '반문 후보 단일화'가 이뤄질 수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올해 초부터 "이번 대선은 저 안철수와 문재인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자강론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이런 사실상의 1:1 구도가 되면 문 전 대표에 대한 '비토'가 자신으로 결집할 것이라는 기대에 다름아니다. 

김종인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 그룹은 현재 '반문'의 1단계와 2단계에 나눠 포진하고 있다. 변재일·박영선·박용진 의원 등 김 전 대표가 당을 이끌 때 가까웠던 이들은 현재 안희정 지사를 돕고 있다. 김 전 대표 본인은 당을 나가 '2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진영·이언주·최명길 의원 등이 추가 탈당해 김 전 대표를 도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김 전 대표는 문 전 대표가 민주당 후보가 된다는 전제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며 "만약 안 지사가 후보가 된다면 굳이 뭘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안 지사도 대연정을 한다고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종인의 '빅 픽처'는? 

김 전 대표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일종의 보-혁 간 세력 연합이다. 이들을 하나로 엮을 고리가 개헌이다. 민주당 내의 개헌 그룹은 인적 구성으로 보면 '비문' 그룹과 거의 대부분 겹친다. 국민의당 내에서도 안철수 전 대표의 측근 그룹을 제외한 호남 출신 의원들은 개헌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은 개헌이 아예 당론이다. 한국·국민·바른 3당 원내대표는 15일 오전 '차기 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자'는 일정에 합의하기도 했다.  

김 전 대표의 구상은 이들을 하나로 엮는 것이다. 김 전 대표의 최근 행보는 숨가쁠 지경이다. 자유한국당 인명진 비대위원장, 국민의당 손학규 전 대표,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를 잇달아 만났다. 오는 16일에는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만난다. 남 지사도 이 자리에 동석한다.  

다만 안철수·손학규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도 초청을 받았으나, 이들은 불참하기로 했다. 또 김 전 대표는 민주당 경선 중인 안희정 지사에게도 회동을 제안했지만, 안 지사 측은 "후보가 직접 김 전 대표 전화를 받은 적은 없다고 한다. 누구를 통해 그런 제안을 했는지는 확인 중"이라고 초청된 사실 자체가 주목받기를 원치 않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김 전 대표가 구상하는 '연대'의 동력은 단지 문 전 대표에 대한 사감(私感)만은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여소야대가 만들어졌는데도 변변한 개혁 입법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구 여권 세력 일부를 포함한 대연정이 필요한 증거라는 게 김 전 대표를 포함한 야권 '비문' 그룹의 공통 인식이다.  

이 '연대'를 만드는 데 있어, 누가 그 구심점이 될 '후보'가 되느냐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이들은 본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김 전 대표가 '킹'을 하려고 한다고들 하는데, 그 '킹'은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며 "비패권 연대에 동의한다면 안철수가 후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연대의 명분이 될 '고리'가 개헌이라면,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연대에 참여하는 이들이 얻게 될 이득은 새 정부의 권력 분점이다. 대선 이전부터 총리, 장관 등 요직을 사전에 배분해 "권력을 다 나눠준 '킹'"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권이나 언론으로부터 때로는 '반문 연대', 때로는 '비패권 연대' 또는 '개헌 연대' 등으로 불리는 정치 세력 연대의 밑그림인 셈이다.  

'큰 그림'에 빠진 퍼즐 두 조각 ① 

이름이야 뭐라고 부르든, 이 연대가 현실적인 정치 세력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안철수 전 대표 등 일정 수준 이상의 대중적 표 동원력을 가진 대선 주자들의 동참 여부다. 아무리 정치 세력 간의 합의가 잘 이뤄진다고 해도, 어차피 대선은 직선제이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마지막 변수는 안철수"라며 "안철수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결국 자신과 문재인의 1:1 대결이 돼서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연대를 하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실제로도 안 전 대표는 제3지대 연대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종인 전 대표의 16일 회동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아는데, 제3지대 연대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고 다른 언급 없이 "이미 제가 일정들이 굉장히 많다"고만 답했다.

안 전 대표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연대' 자체에는 우호적인 다른 주자들도 제3지대 후보들의 통합 경선, 이른바 '원샷 경선'에는 반대 뜻을 밝히고 있다. 다른 일정을 이유로 16일 회동에 불참한다고 밝힌 유승민 의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각자의 당 내에서 경선을 지금 치러야 될 상황"이라며 "각 당에서 후보를 뽑지 않고 각 당에 있는 모든 후보들이 원샷을 한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유 의원은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이나 경선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연대나 후보 단일화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여지를 뒀다. 그는 지난달 28일에는 "김 전 대표가 결단을 내려 '제3지대 연대' 등을 제안하면 저나 바른정당이나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겠나"고 말하기도 했다.  

손학규 전 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일은 제가 일정이 있다"며 김 전 대표와의 회동에 불참하겠다고 했다. 손 전 대표 측도 김 전 대표 등 제3지대 인사들과의 회동보다는 국민의당 경선에 집중하는 게 먼저라는 분위기다. 손 전 대표 역시 다만 "대선이 끝나면 어차피 여소야대가 돼서 연립정부 내지 공동 개혁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그것을 위해 대선 전에 각 당이 준비하고 협의하는 것이 필요하고, 앞으로 적극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연대 가능성은 열어뒀다.  

결국 김 전 대표가 제안한 16일 회동에 참석하는 이들 가운데, 대선 주자는 남경필 경기지사와 정운찬 전 총리 등이다. 그러나 남 지사는 오히려 제3지대 연대 자체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남 지사 측 관계자는 "저희는 기본적으로 각 정당이 후보를 배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연정이란 것도 대화가 가능한 쪽과 힘을 합치겠다는 것이지 후보 단일화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앞서 남 지사가 안희정·심상정 등을 언급한 것은 이 분들이 각각 본선에 올라와 치열하게 싸우고 이긴 쪽에서 진 쪽과 함께 힘을 합쳐 정부를 꾸리는 연정을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3지대, 반문연대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학규·유승민·남경필 등의 주자들이 모두 '원샷 경선'에 부정적인 것은, 김 전 대표가 자신들을 제치고 스스로 제3지대를 대표하는 대선 후보가 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경계심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국민의당·바른정당 후보로 선출이 된 이후 시점에서의 단일화는 더욱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내 경선을 거쳐 선출된 후보가 타 정당 후보와 단일화하고 사퇴한다면, 경쟁했던 후보 측 등 소속 당 내에서 큰 분란이 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큰 그림'에 빠진 퍼즐 두 조각 ② 

대선에서 후보로 내세울 '인물' 외에 남은 문제는, 자유한국당을 이 '연대'에 포함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다. 김 전 대표가 구상하는 '연대'에는 국회의원 180~200명, 최소한 150명 이상의 동참이 필수 조건이다. 김 전 대표 본인도 지난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선진화법 등을 고려할 때, 180석 이상의 의원들을 규합할 수 있는 협치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다음 정권은 성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김종인 "180석 연합" 구상, 대선 이후 포석?)

때문에 이런 의석 규모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당 내 일부 의원들의 동참이 사실상 반드시 필요하지만, 직선제인 대선에서 이들과 손을 잡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은 득표 전략 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김 전 대표는 최근 인명진 비대위원장과의 2차례 회동에서 '한국당이 이번 대선에 후보를 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이 독자 후보를 내지 말고 제3지대 연대에 동참하라는 취지로 해석돼 주목을 끌었다. 이에 대해 인 위원장은 처음에는 '어차피 후보로 내세울 이가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으나, 지난 11일 회동에서는 '나오겠다는 사람을 내가 막을 수는 없다'고 후보를 내겠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11일은 인 위원장 등 한국당 지도부가 경선 룰을 확정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이들이 정한 룰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예비경선을 거치지 않고 본경선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내용이었다.  

김 전 대표는 언론에 알려진 이 11일 회동 이후, 한국당에는 문을 닫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구(舊) 여권과 손잡아서 될 일이 있느냐.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한국당 출신 중에 올 사람은 하나도 없고, 내가 그 사람들 초청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15일 황 대행이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한국당 정치인 일부가 친박 세력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제3지대 행을 택할 가능성이 다시 열리게 됐다. 김 전 대표 본인이 직접 나서든 안철수·손학규·유승민·남경필·정운찬 등의 주자들 가운데 한 명을 내세우든 '대선 주자' 부분은 그가 구상하는 '연대'가 대선 국면에서 현실적으로 기능을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반면, 한국당 일부 세력과 손을 잡는 문제는 의석 수 측면에서는 필요하지만 대선 전략 측면에서 걸음을 엉키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기껏 '연대'를 성립시켜 비문 단일 후보를 내봐야, 문 전 대표 쪽의 '정권교체' 주장의 정당성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김 전 대표의 구상은 꼭 대선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대선 이후까지를 노린 다목적 포석이 될 수도 있다. 김 전 대표가 방향타를 잡고 180명 이상의 의원이 동참하는 '연대'가 만들어진다면, 설사 문 전 대표가 대선에서 승리한들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국 주도력을 발휘하기는 힘들게 된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정치권에서, 대선 승리의 기세를 등에 업은 차기 여권의 공세를 이들의 느슨한 연대가 버텨낼 수 있을지 또한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