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경제특강] “상위 10% 특권 내려놔 불평등 줄이자” - 무모한 긴축보다 영리한 확대를!

일취월장7 2017. 2. 24. 10:46

[경제특강] “상위 10% 특권 내려놔 불평등 줄이자”


헬조선 부른 불평등, 위기의 한국경제 해결책은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을 만나다 

세계 7위의 경제대국 그러나 대한민국 청년과 소외계층은 ‘헬조선’을 말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진보적 경제학자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상위 10%가 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불평등 구조를 바꾸기 위해 기득권층의 특권 내려놓기가 필요하지만 여야 정치권이 이들 여론주도층을 의식해 개혁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임대수입에 과세하고 과도한 집값, 교육비 등을 잡지 못하면 성장동력마저 상실해 아르헨티나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지난 21일 중앙일보사 5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정 소장의 강연회에 7명의 TONG청소년기자들이 참여해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1020세대의 고민을 나눴다. 2회로 나눠 싣는다. 1회는 강연 요지다.

정대영(63) 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8년부터 34년간 한국은행에서 근무했다. 금융안정분석국장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등을 지냈으며 퇴임 후 한국은행 터 이름을 딴 송현경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와 『한국경제 대안 찾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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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미래는 아르헨티나?

한국경제의 성과는 대단하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였다. 지금은 2015년 기준으로 2만 7000달러. GDP(국내총생산) 세계 11위, 수출규모 6위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인구 5000만 이상 국가로 치면 7위다.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영국, 이탈리아 다음이다. 스페인도 인구가 3500만이고 호주도 스스로 ‘스몰 컨트리’라고 부른다. 땅은 크지만 사람은 2000만 정도. 남북통일이 되면 8000만으로 독일과 비슷하다. 살기 좋은 나라라 자부심 가질 만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젊은이들은 불안해하고 힘들어 한다. 일자리 문제, 흙수저-금수저 논란, 자칫하면 중산층 내려갈 위기, 살인적 집값…. 앞으로는 어떨까.

한국경제는 갈림길에 있다. 미래에 어두울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미래는 결정돼 있지 않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따라 다를 것이다. 정조가 1800년대 죽고 50년 정도 경제가 나빠지면서 조선이 망해 갔는데 지금과 상황이 비슷하다. 어떤 이는 일본을 뒤따라 장기침체할 거라 말하는데 그건 오히려 희망적인 얘기다. 일본은 이룬 게 훨씬 많은 나라다. 95년에 이미 4만 달러가 넘었다. 복지, 사회인프라가 잘 돼 있고 소득불평등도 적다. 부동산 거품이 꺼져 현재 집값이 우리보다 싸다. 금융자산이 축적돼 있고 노후 준비도 잘 돼 있다.

한국은 이대로 가면 일본과 아르헨티나 중간쯤 될 것 같다. 아르헨티나가 옛날에 어떻게 살았는지 아나? 통계는 없지만 소설을 보면 경제상황을 알 수 있다. 소설 ‘엄마 찾아 삼만리’가 1903년에 나왔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사는 13살 마르코의 엄마가 집안이 어려워져 아르헨티나로 돈 벌러 떠난 이야기다. 당시 유럽의 못 사는 나라 주부들이 부자 나라 아르헨티나로 가정부를 하러 갔다. 우리도 잘못하면 아르헨티나가 된다.

일본이 95년 이후 정체돼 있어 우리가 따라잡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 ‘한국이 가장 잘 살았던 시기’가 될 수도 있다. 경제를 끌고 가는 두 요인, 물건을 생산하는 능력과 소비하는 능력 두 가지가 다 악화되고 있어서다. 잠재 GDP를 결정하는 요인인 노동과 자본 생산성 다 나쁘고 고령화와 소득불평등으로 수요도 나빠지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필요한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60~70년대는 일을 많이 하고 차관을 들여오거나 저축을 많이 해 자본을 늘리면 성장이 쉬웠다. 그 뒤엔 좋은 기술을 도입하거나 좋은 경영기법, 금융기법을 가져오면 됐다. 세 번째 단계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이 이뤄지는 건데 이게 미흡하다. 이건 불평등 문제와 연관돼 있다. 불평등이 해소돼야 국민들 기분이 좋아지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성장을 막는 불평등 구조의 특징과 원인

소득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있다. 노동자가 가져가는 노동소득분배가 기업이 가져가는 자본소득분배보다 많을수록 불평등이 적다. 지니계수가 1이면 아주 불평등하고 0이면 완전 평등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2014년 지니계수는 0.302로 OECD 가입국 중간이다. 하지만 부실한 조세 제도와 기초 통계의 부족 등으로 국민들의 체감 불평등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픽=양리혜 기자]
[그래픽=양리혜 기자]

그래서 피케티 방식의 소득집중도 통계를 참고하고자 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가 쓴 『21세기 자본』은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낸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렸다. 소득세 자료를 분석한 결과 8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주장이다. 동국대 김낙연 교수가 이 방식으로 연구한 표를 보면 미국은 상위 0.1%가 7.5%를 가져가고 한국은 4.46%를 가져간다. 상위 1%는 미국이 17.45%, 한국은 13%를 가져간다. 여기까지는 미국의 소득집중도가 높다. 하지만 상위 10%에서는 미국 46%, 한국 48%로 우리가 더 높다. 세금을 안 내서 잡히지 않는 주택 임대소득까지 포함하면 48%가 아니라 52~53% 될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보다 심한 거다. 

미국은 경쟁과 시장 원리로 움직인다. 달리기를 해서 등수가 높은 순서대로 가져간다. 장애가 있든 없든 (배려는 부족하지만) 어쨌든 달릴 때는 동일한 조건으로 달린다. 우리나라는 달리기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똑같은 출발선도 아니고 누구는 다리를 묶어 달리는 식이다.

그렇다면 누가 상위 10%인가. 20세 이상 성인 재벌, 기업 경영진, 임대 사업자, 의사, 전문직, 성공한 정치인과 관료, 판검사, 교수, 금융기관과 공기업 임직원, 대기업 정규직 등을 합하면 370~380만 명쯤 될 거다.

우리나라는 주택 임대소득에 과세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동산 보유 세금도 적은 편이다. 국민의 꿈이 임대사업자인 나라는 비정상이다. 부동산 투자를 안 하려면 도덕적 자제심이 필요할 정도다. 중소기업이 돈 좀 벌면 전부 역세권에 작은 빌딩이라도 하나 사고 싶어 한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의사가 꼭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물론 공부를 열심히 했을 텐데 (그 이상으로) 돈을 많이 버는 건 의사 수가 적어서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가 2.2명(한의사 포함)인데 OECD 평균은 3.1명이다. 게다가 성형, 피부 등 질병 치료와 무관한 의사가 너무 많다. 현재 의사가 10만 명인데 5만 명은 더 늘어야 한다.

판검사, 관료, 공기업 직원은 어떤가. 이 수는 정부가 정해 준다. 일단 공무원이 되면 ‘달리기(시장 경쟁)’에서 제외다. 고위 판검사는 전관예우 등으로 상상할 수 없는 돈을 받는다. 이름 올리고 사인만 하는데 굉장한 특혜다.

한국의 금융산업이 낙후돼 있다는 얘기 들어봤나? 산업은 낙후됐다는데 금융계 종사자는 월급을 많이 챙긴다. 왜? 은행이 새로 생겨나질 않아서다. 1992년을 마지막으로 20년간 은행이 안 생겼다. 제도적으로 신규 진입을 어렵게 해놔 독과점 상태인 거다. 대기업 정규직도 노조를 통해 잘 단합돼 있다. 상위 10%가 국민경제의 성과를 기여한 것 이상으로 가져간다.

나머지 90%는 어떤가. 상위 10%가 경쟁이나 시장 원리 아닌 경제 외적인 보호를 받고 있다면 이하 90%는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 보호막이 없다. 자장면 값에 거의 변화가 없는 이유는? 옆집에서 싸게 파는데 비싸게 팔 수 없다. 경쟁이란 것 자체가 엄청난 규제다. 신자유주의적 시장 원리의 희생자들이다.

판검사나 관료는 직업안정성도 높지만 권한도 크다. 가진 사람이 또 가진다. 독일 교수는 존경받지만 월급은 적다. 박사가 교수 되려면 시험을 또 보고 논문을 내야 한다. 공고나 전문학교 나와 10년 정도 일하고 자격증 얻어 자기 업체를 운영하는 마이스터가 되면 고급차를 몬다. 소득과 명예가 분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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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완화 왜 어려운가
상위 10%는 사람들이 다양한 데다 여론주도층이다. 정치권은 표를 잃을까 개혁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각자 조금씩 문제가 있으니까 서로 탓을 돌리기가 쉽다. 재벌 탓, 국회의원 탓, 공기업 탓, 전문직 탓, 임대사업자 탓, 정규직 노동자 탓 등등.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주장하고 야당은 재벌개혁을 외친다.

10%가 나머지 45%의 부를 놓고 싸워야 하니까 괜찮은 일자리가 나오기 어렵다. 또 상위 10%는 법과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로 경제가 좋아져도 늘어나지 않는다. 교수, 교사, 공무원 수는 한정돼 있다. 기업은 대우를 잘해 줘야 하는 정규직을 잘 안 뽑는다. 정부 말대로 경제가 좋아져도 비정규직만 뽑는다. 좋은 일자리가 늘기 어려운 구조다.

주거비, 교육비 등 고비용 구조도 문제다. 직업이 좀 괜찮아도 사는 게 쉽지 않다. 소득이 좀 높아도 집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 집 가진 사람들은 이익을 지키는 공동체(카르텔)다. 여야 똑같다. 야당이 강하게 주장했으면 주택 임대소득 과세를 안 했을 리 없다. 우리 국민들은 보유자산의 70~80%를 부동산으로 갖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30~40%만 부동산이고 나머지 금융 자산이다.

[사진=중앙포토]
[사진=중앙포토]

교육비도 큰 부담이다. 우리는 사립대의 비중이 75%로 매우 높다. 등록금은 미국, 일본 다음이고 대학진학률도 78%로 높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42%, 스위스는 30%밖에 안 간다. 독일은 초등 4학년 때 인문계와 실업계를 나눈다. 4년을 지켜본 한 선생님이 결정한다. 부모들도 거부감이 별로 없다. 실업계 가도 잘 살 수 있으니까. 공부 소질 없는데 인문계 가면 고생하는 거 아니까. 오히려 부모가 왜 우리 애 인문계 보냈냐 항의하기도 한다. 우리는 의사, 교수, 관료, 판검사 되려면 좋은 대학 가고 시험 붙어야 하니 사교육에 매달린다. 미국은 좋은 일자리를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 시장에서 만드는데 우리는 정해진 자리 놓고 시험으로 싸운다. 제로섬 게임이다.

#어떤 개혁을 해야 하나
진보 학자나 시민운동가들은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한다. 과도한 경쟁, 시장 원리가 미국 같아서라고 말한다.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편의점, 치킨집, 택배, 비정규직 이런 분들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교수나 판검사, 관료, 금융기관 직원이 경쟁을 하나. 진입은 어렵지만 일단 되고 나면 경쟁이 없다. 상위 10%에는 경쟁이 부족하다.

어떤 분은 규제가 너무 많고 잘못됐다고 한다. 이것도 부분적으로 맞다. 그러나 10%를 보호하는 규제는 너무 많다. 젊은이들 눈높이가 높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눈높이가 높을 수밖에 없다. 경제성장을 왜 하나.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하는 거다.

불공정한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미국은 경쟁을 통해 불평등이 생기지만 우리는 경쟁보다 다른 걸로 불평등이 생긴다. 미국은 달리기라도 했으니까 그래도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달리기조차 불공정하니까 받아들이기 어려운 거다. 상위 10%에는 경쟁이 더 필요하다. 특혜를 축소해야 한다. 상위 90%에는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아동수당, 최저임금 인상 등 취약층 지원 확대는 이뤄질 거다. 그러나 특권층 개혁은 재벌 빼고 어느 정당에서도 나올 게 없다. 임대소득을 과세하겠다는 정치인이 없다. 엄청난 반발 때문이다. 취약 계층만 지원하면 잘 살까? 그랬던 나라가 아르헨티나다.

그럼 누구의 특권부터 내려놓게 해야 할까. 이건 여러분이 생각해야 한다. 모두 적으로 돌리면 안 되니까 하나씩 뽑아 개혁해야 한다. 젊은이들 좋아하는 직업 순서대로 하면 된다. 이걸 주장하는 정치 지도자를 고르자. 모두 ‘너부터 개혁하라’고 하는데 ‘내 탓이오’에서 시작해야 한다. 

재벌개혁을 말할 때 지배구조 개선, 공정한 하도급, 일감 몰아주기 방지 등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실제 재벌이 무서워하는 건? 경제민주화 이런 거 안 무섭다. ‘법대로’란 말을 가장 무서워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은 5억 원 이상을 횡령하면 3년 이상 유기징역을 보낸다. 이걸 7년 이상으로 바꾸면 어떨까. 검사가 3년을 구형하면 판사들이 절반으로 깎고,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면서 집행유예를 시켜준다. 3년 이하의 형은 집행유예가 가능하다. 그러나 7년은 최대 절반을 감형해도 3.5년이라 집행유예가 안 된다. 그러면 소위 재벌도 옥살이를 하느니 한발 물러서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지 않겠나.

의사를 5만 명 늘리면 의대 교수, 병원 간호사와 직원, 약사 등 관련 일자리도 덩달아 20만 개 는다. 의사 수가 적은 건, 의대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학이 많은데 정부가 허가를 안 해 줘서다. 그 외에도 발치료사, 카이로프랙틱, 사립탐정, 독립금융상담사, 로비스트 등의 직업을 기득권층이 막고 있지만 허가해 주면 어떨까. 우리나라는 직업 숫자가 1만 1000개에 불과하지만 미국 3만 개, 일본 2만 5000개가 넘는다. 희망이 없는 게 아니다.

정리=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choi.jeongdong@joongang.co.kr

강연 참석자=박주민(고양일고 1), 최상인(영일고 1), 최민(대동세무고 2), 이하나(신서고 1), 이도현(천안여고 1), 강희영(태원고 2), 배다연(이화여자외고 2) TONG청소년기자



무모한 긴축보다 영리한 확대를!

진보 정부와 보수 정부 모두 국가부채를 경계한다. 국가부채 상승은 공격당할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활성화를 위한 통화정책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재정확대 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7년 02월 23일 목요일 제492호


한국의 제도권 진보와 보수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양측이 모두 공감하는 ‘공리(公理)’ 하나가 자연스럽게 성립되었다. ‘국가부채는 나쁘다!’ 국가부채(대표적 지표로는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상승은, 야권이 정부를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권 교체에 따라 야당으로 전락한 이전의 여권도 똑같은 논리로 공격한다. 심지어 복지 확대를 강력히 주장하면서 국가부채 증가를 비난하는 이율배반적인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집권 세력은 재정확대 정책을 꺼리게 된다. 돈을 빌려야 하기(국가부채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부채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불길하다. 개인이 큰 빚을 지면 빈곤해지게 마련이다. 파산하기도 한다. 개인(가계)의 과다한 빚은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비윤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부채를 개인의 빚에 견주어 평가해도 되는 것일까?

국가부채란, 정부가 주로 자국의 민간 부문으로부터 빌린 돈이다(해외에서 빌린 돈의 비중은 크지 않다). 정부 지출이 절실한 시기는 불경기다. 세수가 줄어든다. 그러나 빈곤층 증가로 인해 복지 수요는 오히려 증가한다. 결국 빌려서 지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부채가 확대된다. 국가는 빚이 많다는 것만으로 더 가난해지지는 않는다. 개인은 빚을 ‘남’으로부터 빌리기 때문에 파산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국가부채는 국가(국민)가 국가 자신(국민 자신)으로부터 빌린 돈이기 때문에 파산의 위험이 적다. 극단적인 경우, 국가의 권능으로 화폐를 더 발행해서 갚아버리면 그만이다. 일각에서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후대의 상환 부담이 커진다”라고 한다. “후대의 부를 가로챈다”라고도 한다. 국가경제 전체로 보면, 채무자 ‘철수’가 진 빚은 채권자 ‘영희’의 자산(철수에게 빌려주고 원금 및 이자를 받는)이다. 엄밀히 말하면, 후대에도 채권자와 채무자가 각각 존재하고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후대 전체가 지금의 국가부채를 떠안는 것이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학 교수는 개인 빚과 국가 빚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권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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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21일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재정긴축 정책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부채와 재정확대 정책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어왔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8년여가 흐르는 동안 윤곽이 잡힌 논점이 있다면, 개인 빚과 국가 빚에는 각각 다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이라면 일단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부채를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른바 ‘긴축’이다. 그러나 불황기에 국가가 빚을 줄이려고 긴축(정부 지출 삭감)을 하면 상황이 더욱 악화된다. 국가 차원에서는, ‘철수’의 소비가 ‘영희’의 수입이다. 모든 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 매면 모두가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경제성장이 지체되면, 세수가 줄고 국가부채는 폭증한다. 2010년 재정위기 이후 강도 높은 재정긴축을 강요당해온 그리스가 대표적 사례다.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지체되고 실업률은 여전히 유럽연합(EU) 중 최고 수준이다. 국가부채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월7일 내놓은 그리스 관련 보고서에서 “그리스의 채무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결국 폭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정책은 왜 금기가 되었나


그리스 경제를 사실상 신탁통치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IMF-EU집행위원회’ 트로이카는 재정위기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재정긴축을 대안으로 고수해왔다. 폴 크루그먼 교수,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리처드 쿠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 등 저명한 지식인들이 그리스의 재정 확장을 권유했지만 씨도 먹히지 않았다. 글로벌 정부들과 경제 관료, 학계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재정확대 정책’이 금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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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15일 ‘G20 금융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재정확대 정책이 재평가받았다.

어느 나라에서든 경제학 기초 과정에서는 ‘광의의 정부(중앙은행 포함)’가 경기를 조절하는 양대 수단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거론한다. 실제로 재정정책은 193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 사이에 대공황과 불황을 극복하면서 사상 초유의 장기 호황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접어들어 레이건(미국)과 대처(영국)가 집권하면서 재정확대 정책은 급격한 위상 추락을 경험했다. 초국적 금융기관 골드만삭스의 경영이사인 앵겔 유비드가 영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정책 포털(VOX)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경기순환은 통화정책만으로 조절할 수 있다. 재정정책으로는 국가부채나 관리하면 된다’라는 사고방식이 도그마로 굳혀진” 상황이다.

시장근본주의 보수파들이 재정정책을 혐오하는 근본적 이유는, ‘큰 정부’를 반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가 특정 산업 부문이나 계층에 복지 지출, 인프라 건설 등의 수단으로 자금을 투입하는 재정확대 정책은 엄연히 ‘정부의 시장 개입(큰 정부)’이다. 재정확대 정책은 시장주의 특유의 ‘개인 책임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평소 남의 돈을 빌려 흥청망청 소비하거나 게으르게 살아온 사람은 불황기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시장 규율이 바로잡히면서 경제성장이 다시 이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가 지출을 늘려 ‘책임성 없고 게으른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막는 행위로 간주된다. 또한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인기를 끌기 위해 재정확대로 ‘선심성 정책’을 남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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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긴축을 기조로 했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왼쪽)와 도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재정긴축에 이론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의들도 학계에서 다수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구축 효과(crowding out)론’이 있다. 정부가 정부 지출을 늘리기 위해 돈을 빌리면 금융시장 차원에서 자금 수요가 증가한다. 이에 따라 돈의 가격, 즉 금리가 상승한다. 이로 인해 기업들이 금융시장에서 ‘구축되어(돈을 빌리지 못하게 되어)’ 민간 부문의 투자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괜히 돈을 빌리려 들면 민간경제의 활력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긴축을 해야 경기가 부양된다’는 논리(Stimulative Austerity)도 있다. 정부가 돈을 빌리는 시점에, 민간의 경제주체들은 다음과 같이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고 한다. ‘정부가 지금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앞으로 세율을 올릴 거야.’ 앞으로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민간 경제주체들은 자신감과 의욕이 떨어져 투자와 소비를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긴축을 실시하면, 납세자들이 세금 인상에 대한 우려를 떨치고 열심히 투자하고 소비해서 경기를 활성화한다는 결론이다.

이런 논리와 감성에 근거해서 서방국가의 시장근본주의 보수파들은 1980년대 이후 정부 지출을 법률적으로 규율하는 방법까지 도입한다. 연간 재정적자를 GDP의 3%로 묶는다거나, 재정적자가 쌓인 결과인 국가부채를 GDP의 60%로 한정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는 EU의 ‘안정과 성장 협약(Stability and Growth Pact)’이 있다. 한국의 기획재정부도 비슷한 내용의 입법을 준비 중이다(40~43쪽 기사 참조).

이와 대조적으로 통화정책은 글로벌 차원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정당한’ 불황 정책으로 각광받았다. 불황기 통화정책은 금리 인하나 통화 공급 확대를 통해 총수요를 자극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부자는 물론 가난한 사람들도 이전보다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재정확대 정책과 달리 통화정책에서는 빈곤층을 겨냥한 복지 지출 따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통화정책의 주체는 중앙은행이다. 정부나 정치권이 중앙은행의 의사 결정에 개입할 수 없도록 보장하면(중앙은행 독립성), 국가의 시장 개입도 원천봉쇄할 수 있다. 더욱이 중앙은행이 금리와 통화 공급을 조절한다고 해서 정부 부채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통화정책이 주로 부자와 금융자본에 봉사한다는 지적도 있다. 재정정책의 경우, 국가경제 발전에 필요한 부분이나 빈곤층을 짚어내 자금을 투입한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을 수 있고 이에 따라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통화정책으로 금리를 인하하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평등하게’ 자금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부자가 은행 문턱을 넘기 쉽고, 싼 금리로 큰돈을 빌려 부동산이나 증권 등 자산에 투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차원에서 실물경제가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증권, 부동산 등의 시세는 크게 올랐다. 수혜자는 당연히 부유층이다.

‘통화정책의 독재’가 해체되기 시작한 계기는 2008년 가을 세계 금융위기다. 글로벌 정부들은 공공자금을 파산 직전의 금융기관, 공공 인프라, 복지 프로그램 등에 투입하는 방법으로 대공황을 막아냈다. 천대받았던 재정확대 정책이 세계를 구원한 것이다. 경제위기가 대충 봉합되고 다수의 금융기관들이 정부의 구제금융(재정 투입)으로 붕괴 국면에서 벗어난 2010년 들어, 재정정책은 다시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통화정책이 복귀한 것이다.

경제정책 축 서서히 이동 중

이후 선진국 정부들은 경기회복을 위해 통화정책을 극한까지 몰아세웠다. 2010년 당시 이미 선진 각국의 기준금리는 사실상 0%인 상태였다. 경제학 교과서와 달리 이토록 낮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민간 주체들은 좀처럼 돈을 빌려 투자하거나 소비하려 들지 않았다. 금융위기 이전에 빌린 돈을 갚는 데 급급하거나 혹은 미래의 불안감으로 인해 저축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지출하지 않으면 모두가 돈을 벌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을 통해 민간 부문이 저축보다 투자와 소비에 관심을 갖게 할 것인가?

물가 인상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금리가 0%인데 물가인상률이 2%인 상황에서는 돈을 저축해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실이 발생한다. 이렇게 된다면 민간 부문이 저축을 포기하고 투자·소비를 선택할지 모른다. 각국은 통화공급량을 금융위기 이전의 3~4배까지 늘리는 방법으로 물가를 올리려 했다(양적완화). 물가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과 EU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일반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겨둔 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를 내야 하는 제도다. 일반은행들에 대해 ‘중앙은행에 돈을 맡겨두지 말고 시중에 대출해서 경기를 살리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비록 기업이나 소비자들에게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다’는 금융의 기본 원칙을 포기한 ‘극단적 통화정책’이었다. 결국 ‘통화정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더니, 2014~2015년쯤에는 IMF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재정정책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돈이 널려 있는데도 민간 부문이 대출해서 투자·소비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그 돈을 빌려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재정확대 정책의 반대 논거였던 ‘구축 효과’론에 따르면, 정부가 돈을 빌리는 것은 민간 부문이 사용할 자금을 가로채는 행위다. 그러나 지금은 민간에서 아예 대출을 포기한 상태다. 더욱이 금리가 역사적으로 최저 수준이므로 정부의 이자 부담도 낮다. 정부가 재정정책을 잘 설계해서 미래의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본에 투자해 국가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일 수도 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투자된다면) 정부 지출은 해당 규모만큼의 편익을 스스로 창출한다(self-financing)”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정부의 재정지출로 경기가 상승하기 시작하면, 민간의 사업 의욕을 자극해서 투자 수준을 높일 수도 있다. 민간 부문을 구축(crowding out)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실물경제로 끌어들이는(crowding in)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IMF는 2015년 10월 발간한 <세계 경제 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낮은 수준의 총수요가 투자 의욕을 꺾고, 저투자가 다시 글로벌 경기회복과 성장률을 침식하는 악순환’을 거론하며 재정확대 정책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지난해 2월 보고서에서는 “G20 국가들이 재정지출 여력을 활용해서 공공투자를 확대하는 공조 계획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에는 일본·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이 재정확대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영국의 보수 정부는 2020년까지 균형재정을 이룬다는 목표하에 맹렬히 추진해온 긴축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었다. 이와 관련, 영국 BBC 방송의 전 이사장이자 저명 경제학자인 개빈 데이비스는 <파이낸셜 타임스>(2016년 9월25일) 기고문을 통해 “경제정책의 축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글로벌 차원에서 단기간 내에 정책 프레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 EU 등 주요 국가의 엘리트들이 재정확대 정책을 여전히 기피하고 있다. 그만큼 통화정책의 독재 시스템 및 도그마는 강고하다. 일반 시민들 역시 빚에 대한 혐오와 공포가 강하다. 국가부채로 정적을 공격하는 정쟁 방식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다만 국가부채가 증가했다는 이유만으로 분노하거나 국가재정을 둘러싼 정쟁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라 빚’에 대한 착각이 재정정책 망친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0년 전 366조원에서 지난해 말 900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편이다. 또한 정부 자산이 부채보다 훨씬 많다. 긴축적 재정정책이 아니라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 webmaster@sisain.co.kr 2017년 02월 23일 목요일 제492호


한국인들은 ‘나라 빚’에 대한 아픈 기억들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 직전의 ‘국채보상운동’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 모으기 운동’이다. 나라 빚 증가는 곧 국가의 위기로 직결되었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가채무(나라 빚)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행한 채권 잔액(나라가 직간접으로 빌리고 아직 청산하지 않은 돈)이 처음으로 900조원을 넘었다. 10여 년 전인 2006년의 366조원과 비교하면 2.5배쯤 늘어난 규모다.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국가채무까지 급증하고 있다니 시민들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회심리를 배경으로 정부와 일부 국회의원들은 국가채무를 늘리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각종 재정건전화 법안을 발의해둔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0월 초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재정건전화법을 제안했다. 첫째, 국가의 순(純)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상의 적자가 연간 GDP의 3%를 넘어서지 않아야 한다. 연간 재정적자가 여러 해를 거치며 쌓인 것이 국가채무다. 이런 국가채무 역시 GDP의 4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관리한다. 둘째, 정부나 국회 등이 국가 예산을 추가로 소요하는 법안을 내면, 기존 국가사업을 축소·폐지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반드시 첨부해야 한다(이른바 ‘페이고(pay-go) 원칙’). 새로운 정부 지출만큼 기존 지출을 깎아, 총지출을 현재 수준에서 묶겠다는 이야기다. 셋째, 5년 주기로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사회보험의 수입과 지출 상황을 강력히 통제하겠다는 소리인데, 예컨대 연금급여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정부 지출의 증가를 막아서 그동안 기획재정부의 조세-재정 기조(‘감세와 작은 정부’ ‘복지 억제 및 축소’)를 제도화·영속화하려는 의도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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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22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6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가운데)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가채무 공방의 숨은 1인치



이토록 강력한 정책이 필요할 정도로 한국은 국가채무가 많은 상태인가? 특히 노무현 정부 이후 국가채무를 둘러싸고 치열한 정치 공방이 전개되어왔다. 당시 보수 진영은, 정부가 국가채무를 축소 발표해서 국민을 현혹한다고 공격했다. 결국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신뢰와 지지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노무현 정부가 발표한 국가채무 규모는 대체로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 의거한 것이었다. 정부가 원금 및 이자의 상환 의무를 직접 부담해야 하는 ‘확정채무’를 중심으로 국가채무를 산정한 것이다.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원금과 이자, 상환 일자를 명시한 국채를 매각해서 돈을 빌리는(원금과 이자를 명시한 국채를 발행·매각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은 확정채무 이외에도 공기업 부채, ‘정부보증 채무’ ‘4대 연금의 잠재부채’ 등을 모두 국가채무에 포함시켜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방식으로 계산하면 ‘나라 빚’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데, 노무현 정부가 정권 안위 차원에서 국가적 위기를 감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수 진영이 국가채무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항목 가운데 정부보증 채무는, 중소기업이나 서민층에 대한 정책금융을 의미한다. 금융기관이 정부의 보증을 받아 해당 개인 및 기업에 대출하는데, 채무자들이 빚을 상환하지 못하는 경우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한다. 한편 연금공단들은 미래의 어느 순간 연금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에 대비해서 일정한 규모의 자금을 ‘책임준비금’으로 쌓아두어야 한다. 그만큼의 돈을 책임준비금으로 축적해놓지 않았다면 그 차액(적립해야 할 책임준비금이 100조원인데 이 항목으로 적립해둔 돈이 40조원이라면, 차액은 60조원)을 ‘연금의 잠재부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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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감세와 작은 정부’ ‘재정건전성 유지’라는 보수적 기조로 조세 및 재정정책을 설계했다.

공기업의 부채 가운데 일부를 국가채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정부보증 채무, 연금의 잠재부채 등까지 국가채무에 포함시키라는 보수 진영의 주장엔 정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국제 기준으로 봐도 정부보증 채무, 연금의 잠재부채 등은 국가채무로 잡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2005년 기준 OECD 국가들의 총부채 수준을 보면(아래 <표 1> 참조),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국제적으로 매우 우량한 편에 속한다. ‘GDP 대비 국가 총부채’ 비율의 경우, 일본 169.5%, 미국 67.4%, OECD 평균 77.9%인 반면 한국은 25.6%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은 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종합부동산세’까지 빌미로 삼아 공격을 이어나갔다. 노무현 정부는 대폭 증세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살리지 못한 데다 과다한 복지로 나라를 빚더미에 올린 무능한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썼다. 이런 부정적인 평판이 확대되면서 결국 정권 재창출에도 실패하게 되었다.

이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감세와 작은 정부’ ‘재정건전성 유지’라는 전형적인 보수적 기조로 조세 및 재정정책을 설계했다. 박근혜 정부도 대체로 그렇게 했다. 이명박·박근혜 시대에, 야권이 ‘국가채무 급증’ 카드를 꺼내들어 정부를 공격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감세정책 때문에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급증했다는 논리다. 이렇게 되어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국가채무에 관한 한 비슷한 견해를 공유하게 되어버렸다.


재정건전성은 OECD 최고 수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한국의 국가채무 규모는 결코 문제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보수 정부들은 노무현 정부 당시 반영되지 않았던 항목까지 합쳐서 국가채무 규모를 발표했다. 2012년에는 기존 국가채무 개념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채무까지 포함한 ‘일반정부 부채’를 최초로 공표했다. 2014년에는 비금융 공기업까지 포괄한 ‘공공부문 부채’를 발표했다. 둘 다 국가채무의 다른 이름이다. 국가채무를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그 규모가 수백조원 단위로 달라진다. 예컨대 2014년 일반정부 부채는 620조6000억원으로 GDP의 41.8%다. 같은 해 공공부문 부채는 957조3000억원으로 GDP의 64.5%다. ‘빚 때문에 나라가 망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OECD의 평가는 전혀 다르다. 2014년 OECD 통계(41쪽 <표 1> 참조)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GDP 대비 순부채(총부채-총자산)’는 150.1%에 달한다. 일본 정부의 순부채가 이 나라 GDP의 1.5배에 달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도 각각 91.2%, 81.5%에 달한다. OECD 평균은 74.1%다. 그렇다면 빚 때문에 망국의 비운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한국은 어떠한가? 마이너스 35.9%다. 한국 정부의 자산이 부채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OECD에서 가장 우량한 재정 상태다.

보수 정부가 채택한 국가채무 기준인 ‘공공부문 부채’로 보면,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꽤 높아 보인다. 그런데 순부채 비율이 오히려 마이너스(‘부채보다 자산이 많다’는 의미)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지출의 상당 부분이 융자로 수행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대 정부는 예컨대 저소득층의 주거 마련을 위해 해당 계층에게 대출(융자)하는 방법을 사용해왔다. 예컨대 정부가 저소득층 주택자금을 조달하려면 국채 매각 등의 수단으로 돈을 빌리므로 이 과정에서 국가부채가 증가한다. 그러나 부채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이후 받을 수입도 발생한다. 그 돈을 저소득층에게 융자해준 것이므로 대출금을 상환받기 때문이다. 시중금리보다는 낮지만 이자까지 붙여서 돌려받는다. 국가채무가 엄청나게 많아 보이지만, 순부채는 오히려 마이너스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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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국세청 청사 앞에서 보수 시민단체가 종합부동산세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정부가 국채 매각으로 1000억원을 빌려서 저소득층 주택자금으로 융자해줬다고 치자. 이 경우, 재무제표상으로는 정부가 1000억원을 지출했고, 따라서 국가채무 역시 1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산정된다. 원금과 이자를 상환받는데도 말이다. 저소득층의 혜택도 대출금 전액(1000억원)이 아니라, 시중금리보다 낮은 정책금리로 인한 이자비용 절감 정도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대출금 전액을 예산 지출로 잡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부 지출은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매우 적은 편인데, 그 공식적 정부 지출 규모마저 ‘뻥튀기’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2011년 기준 OECD의 평균 재정지출 규모는 GDP 대비 43.3%인데 한국은 32.3%에 불과하다. 그만큼 복지 지출이 적다.

한국은 이미 다른 국가보다 현저히 ‘작은 정부’를 갖고 있다. 저부담·저복지 국가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에 발표한 ‘2013~2017년 국가 재정운용’ 방향에서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규모를 점차 줄여 2017년에는 균형재정(정부 수입=정부 지출)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균형재정에 이를 때까지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보다 지속적으로 2~3%포인트 이상 낮게 유지했다. 2014년과 2015년 예산안을 보면, 재정지출 증가율이 명목 경제성장률을 밑돌 만큼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영했다. 현대경제연구원(2015)에 따르면, 한국의 재정정책은 세계 금융위기 와중인 2008~2009년에는 확장적이었지만, 이후 줄곧 긴축적이거나 균형적 기조를 고수해왔다.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 국가로


그러나 실적은 좋지 않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연속으로 각각 8조5000억원, 11조1000억원 규모의 세수 결손을 겪었을 정도다. 이는 결국 긴축적 재정 운용이 경기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 감세로 조세부담률이 매우 낮아진 가운데 그 수준에서 정부 지출을 관리하려다 보니 재정정책을 긴축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간 수요가 침체된 상황에서 정부마저 돈을 쓰지 않으니 경기가 침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경기가 바닥을 기니까 세수가 줄어들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된 경우다.

왼쪽 <표 2>를 보면, 한국 정부가 G20의 다른 국가에 비해 얼마나 긴축적으로 재정을 운영했는지 알 수 있다. 표에 등장하는 ‘구조적 재정수지’는, 해당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재정정책을 펼쳤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G20 소속 국가들의 경우(2012년), GDP 대비 ‘구조적 재정수지’가 선진국 평균은 마이너스 5.1%, 심지어 신흥국 평균도 마이너스 2.2%다. 그만큼 정부 지출을 확대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국은 2.3%에 달한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발생 이후 대다수의 G20 국가들이 적자재정을 편성하면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한국은 독야청청 흑자재정을 고수해왔던 것이다.

물론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주장을 원용하면, 감세 역시 일종의 ‘확장적 재정정책’이다. 어떤 감세인지가 중요하다. 경기를 살리려면, 감세로 소비나 투자를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그런 효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위한 감세로는 경기를 호전시키기 어렵다. 오히려 돈이 과도하게 남아도는 계층으로부터 증세한 돈을 소비·투자 성향이 높은 계층에게 정부 지출 형태로 배분하는 방법의 효과가 훨씬 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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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복지 재정 절감 계획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와중에 양극화까지 심화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조세 및 재정정책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통화정책의 무력화가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저성장·양극화의 수렁에서 한국 경제를 건져낼 수 있는 유력한 수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다. 저부담·저복지에서 중부담·중복지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복지를 확대하되 증세를 동반하면 중장기적으로 균형재정을 이뤄낼 수 있다.

한편 경기침체로 세수가 떨어지고, 이로 인한 재정 상태 악화로 정부 지출을 줄인 끝에 경기가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에 대비해야 한다. 경제가 일단 악순환에 빠지게 되면 벗어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정부 지출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국가채무 급증은 다음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기획재정부가 법률적 차원에서 정부 지출 증가를 차단하기 위해 추진 중인 재정건전화법은 저지해야 한다.



그들은 왜 '좋은 노동'에 입을 다무나

[서리풀 논평] 누구를 위한 '노동 공약'인가?
2017.02.27 12:35:05


부처 이름이 고용복지부로 바뀐 때부터 알아봤다. 노동은 사라지고 고용, 즉 일자리만 살아남은 것이 현실이다. 곧 다가올 대선에서도 노동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도, 단연 일자리가 초점이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선동성 구호가 힘이 세다.

일자리? 당연히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자리를 얻어 월급, 일당, 시급으로 사는 것은 숙명과도 같다. 누가 이 운명을 피할 수 있으랴. 일자리를 잃는다는 '협박'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한 줌에 지나지 않는다.  

사태가 이런 바에는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주장이 '먹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유지하겠다는 약속이 정책이 아니라 정치인 것도 당연하다. 이때 정치는 시대에 맞추어 특수한 형태로 발현된다. 일자리를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도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이 시대의 노동 정치.  

고유한 노동 정치는 성공했으니, 노동은 앞뒤, 아래위가 완전히 바뀌었다. 누군가 상상한 노동의 유토피아에 이른 것도 아니건만, 노동은 그 자체로 고귀한 목적이 된 것처럼 보인다. 몸과 마음이 어떻게 되든 말든, 가정과 생활이 어떤 영향을 받든, 무슨 일의 보람이나 행복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그 노동과 그 일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희생해야 한다.  

이 시대 노동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도덕은 신격화된 노동의 산물이다. 여가와 놀이, 휴식은 본래 가치이자 목적이었으나 이제 노동을 위한 '재충전' 수단이 되었다. 몸과 마음을 다시 충전하여, 그는 더 건강한 노동자가 되어야 하고, 그의 노동은 더 많은 생산에 기여해야 한다. 나아가, 일하지 않을 때조차 그런 노동자가 되기 위해 준비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대통령 선거를 맞아 후보와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은 정확하게 이런 노동의 틀 안에 있다. '현실성'을 추구하는 한, 앞으로도 이런 패러다임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또는 다른 차원에서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현실성이 있는가?

먼저, 노동과 삶의 역전을 되돌려 회복할 수 있는지 묻는다. 자본주의가 발흥한 이후 노동과 일이 인간과 삶보다 우위에 있도록 '통제'하는 것이 노동 정치의 핵심이었다면, 역전은 해방을 상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노동과 일을 객관화하고 상대화하는 것.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체제에서 좀 더 느슨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은 노동자에게는 자유를 뜻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통제력을 잃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제는 노동을 넘어 삶과 생활, 개인의 내면에 이르는 넓은 것이었다.  

"시장질서의 외부에서 누리는 날마다의 휴식 같은 (…) 활동은 산업 문화와 시장질서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었다. 자유 시간은 현대적 노동 규율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는 동시에 일터 외부에서 누릴 무언가를 향한 자유를 의미하기도 했다. 노동, 구매, 소비의 시장질서와 고용주, 상사, 광고업자, 전문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는 자유말이다."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지음, 김승진 옮김. <8시간 vs 6시간>, 이후 펴냄. 102쪽)

한국 사회에서 이런 노동을 말하면, 엄중한 현실을 모른다는 답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오늘의 경제, 일자리와 실업, 냉정한 노동과 삶의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대통령 선거와 이에 필요한 공약이 가장 두려워하는 평가가 '탁상공론'이라면, 현실론 때문에 한 걸음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남은 길은 현실의 제약을 인정하되 노동 정책(이를 하려는 공약)의 목적을 역전하여 본질에 다가가는 것, 그리고 그에 기초하여 현실의 앞뒤, 아래위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혹 같은 결론에 이를지 모르고, 정책 수단이 비슷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질문이 다르면 경로가 바뀌고, '악마적 디테일'의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  

노동과 노동자(그리고 그 몸)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노동이 되려면 노동과정과 조건, 그 구조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어떤 정책이 어떻게 행복한 노동에 봉사할 수 있나? 그런 노동을 위해 경제와 산업정책을 어떻게 '조정'해야 할 것인가?  

첫째,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보장할 것. 그 악명 높은 산업재해(직업병을 포함)가 중요 의제가 되지 못하는 것이 노동 정치와 정책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주요 대선주자의 일자리-노동 공약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를 참조. 대선 주자들 일자리-노동 공약, 정책선거 가늠자 되나?). 


"노동을 해야 살 수 있는 사회에서 노동 때문에 목숨과 건강을 걸어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서 다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역설은 사라져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만큼은 원청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며, 위험한 업종이나 직종은 외주화를 금지해야 한다."(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6시민건강실록>.) (바로 가기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면, 산재를 줄인다면서 내놓은 정책들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리라. 그런데도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에 별 다른 관심이 없는 것은 노동 공약이 그만큼 '비현실적'이라는 뜻이다. 무엇인가 다른 정책과 가치를 위해서는 건강과 생명 얼마는 희생할 수도 있다는, 가치의 끈질긴 뒤집힘.

둘째, 노동시간 단축. 산재만큼이나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을 해결해야 한다. 두 말할 것도 없다. 더 우선되는 가치, 즉 여가와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을 위해서, 수단이자 도구인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국가 순위를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러 관련 정책이 함께 이런 본질적 가치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노동시간 단축에는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 인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일자리 만들기나 일자리 나누기도 마찬가지.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 여러 정책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셋째, 비정규 노동(자) 대책.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같은 임금을 받아도 비정규 노동자가 덜 행복하고 더 아프며 건강이 나쁜 이유다. 소득보다 안정감, 소속감, 자긍심, 보람 같은 것을 더 높은 가치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만으로는 사람으로서의(그리하여 부모, 자식, 친구와 친지로서의) 노동자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사람이 왜 일을 하는지 그 본질을 생각하면, 비정규 노동을 줄이고 결국은 없애야 한다.  

이런 '좋은' 노동을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되물을 것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제4차 산업혁명, 새로운 산업구조, 또는 한국이 처한 국제 경제환경을 운운하면서 '노동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 되풀이 하는 질문이다(관련 기사 : "대선주자, 노동개혁 외면…일자리 공약도 인기영합").  


우리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그런 개혁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실체도 없고 목적어도 불명확한 발전과 성장, 경쟁력, 경제라면, 그런 개혁의 종착점은 필시 소수 특권층(집단이나 계급이라 불러도 마찬가지다)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냐고.

이 때문에 우리는 덧붙여 노동(자)의 '참여'를 주장한다. 참여는 결과를 더 좋게 하는 수단이면서, 그 자체로 의미이자 가치다. 참여가 건강을(도) 좋게 한다는 연구결과가 한둘이 아니라면, 참여는 그 자체로 노동자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 틀림없다.

대선 주자 가운데에 정의당의 심상정 의원만이 참여에 해당하는 것을 공약에 포함했다. 바로 노사공동결정제도(관련 기사 : 심상정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노동자 경영참여').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비단 기업 단위에서만 참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 하겠다. 정치와 정책 수준에서 참여할 수 있어야 기업과 작업장에서도 참여할 수 있다. 


첨언. 이 글을 작성하는 동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원이 발표한 저출산 대책이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정확하게는 비판이 대부분이다). (바로 가기) (관련 기사 : 여성들의 고스펙이 저출산 원인?).  


불필요한 스펙 쌓기를 막고 여성의 하향선택결혼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에다, 이를 위해 '음모' 수준으로 문화 컨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저출산 대책이 필요한가도 의심스럽지만, 이 수준으로는 어떤 대책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다만, 오늘 주제를 상기할 때 노동을 바꾸지 않고는 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적어둔다.



[BOOK] 이 난감한 책이 왜 200만부나 팔렸을까



2014112702109976753001_『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원저, 신현주 글, 조혜진 그림, 아이세움)

“당신이 기관사라고 생각해보세요. 근데 만약 5명과 1명을 중 누군가를 구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은이는 책의 도입부에서 이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이 책은 ‘정의’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그 중 평등과 돈의 가치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교육, 그리고 불평등

학원이 밀집한 대치동 상가. [사진=중앙포토]
학원이 밀집한 대치동 상가. 인근 부촌에서 거주하는 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다. [사진=중앙포토]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속에서 살아간다. 자유시장사회의 기본이념은 “누구나 자유롭게 재화를 사고 판다”이다. 얼핏 들으면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간다 여길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평등과 자유에 관한 여러 가지 정책의 핵심은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갖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유시장에서 부를 얻을 수 있는 능력위주의 사회’ 구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대입해 보면 많은 허점이 드러난다. 그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육이다. 사교육 열풍이 강하고, 교육에 관한 관심도 남다른 한국. 정부는 소외계층 혹은 한부모가정 등 사회적 약자인 학생을 돕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정책들이 학생에게 평등한 교육환경을 제공할까? 학교라는 공간에서 함께 지내는 학생들은 경제적 지위에 따라 학교 밖 환경이 판이하다. 중·상위층 학생은 교육의 양과 질이 더욱 뛰어난 ‘비싼’ 학원에서 사교육을 받는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학생에겐 학원은 사치다.

한국 정부는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가지며, 능력이 있다면 뭐든 쟁취할 수 있는 사회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진정한 능력 위주의 사회를 만들고 있나? 출발선은 같지만 기능성 신발과 운동복을 챙겨 입고 프로 코치의 지도를 받는 학생과, 도움 없이 맨발로 뛰는 학생이 서로 평등한 관계에 놓여있는 것일까.

책에선 미국 법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론’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개인의 선택에 따른 차이는 긍정하지만, 개인의 능력이나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생기는 불평등에 대해선 적극적 개입을 통한 평등한 분배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날로 심각해지는 배금주의는 인간소외와 불평등을 낳는다. [사진=중앙포토]
날로 심각해지는 배금주의는 인간소외와 불평등을 낳는다. [사진=중앙포토]

책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체코의 한 담배회사가 사람들이 담배를 끊지 않는게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는 사실을 비용 대 편익으로 계산한 일, 돈을 받고 전쟁에 대신 나가 목숨을 바칠 사람을 찾은 일, 돈을 받고 아이를 대신 낳아주는 대리모 이야기다. 이런 일화를 접하면 ‘과연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재화가 존재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고, 심지어 인신매매를 통해 사람의 생명까지 값을 매겨 사고 파는 이 상황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한국은 OECD국가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달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 할 만큼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어냈으나 날로 늘어만가는 자살률은 돈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이 책은 공리주의와 관련된 철학적 문제부터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등의 사회적문제까지 다양한 예시를 들어 소개한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소개’가 아닌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하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질문에 대한 답이 없고 나만의 결론을 내려야 하는 것이 이 책의 특별한 점이다. 나는 이런 구성방식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니.

하지만 사람들은 이 난감하고 어려운 책을 왜 200만부(원작 번역서 『정의란 무엇인가』 기준)씩이나 팔리도록 읽었을까. 도대체 이 책의 무슨 내용이 우리 사회에 정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 걸까. 우리 사회에 정의가 없다는 방증이 아닐까.

글=노혜진(송림고 1)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이매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