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반기문 이후 - 대연정, 사드, 호남은?, 세월호, 법원, 경찰개혁?

일취월장7 2017. 2. 15. 16:24

대연정? 이것은 거짓 진보다

[기고] 반기문 이후① 촛불, 국민운동체로 승화돼야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2017.02.03 11:19:32

야당 간의 개혁 선명성 경쟁으로 전환되다

보수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희망이었던 반기문이 예상대로 중도 하차했다. 반기문이 하차하면서 여러 변수가 생기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정권교체라는 이슈의 강렬함과 긴급성이 약화되면서, 이제 정권교체의 차원을 넘어 개혁 경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수, 유의미한 후보 나올 수 없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황교안은 보수 세력의 대선 주자로 나오기 어렵다. 집 떠나면 고생, 관료 출신으로서 역시 관료 출신인 반기문처럼 현실 정치판에서 선수로 당장 뛰기란 너무 고단하다. 그렇다고 다른 위협적인 후보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여당 보수 세력은 유의미한 후보를 배출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로 지금 펼쳐지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박근혜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서의 보수 세력이기에 그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선거이며, 민심에 의해 이미 철저히 심판을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남은 변곡점, 탄핵 후 박근혜 구속을 보는 관점 

대선 가도에서는 향후 몇 고비의 변곡점이 예측되는데, 특히 박근혜 탄핵 후 박근혜 구속을 둘러싸고 이에 대한 유력 주자 간 입장이 갈리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호남 민심의 향배도 계속 주목거리다. 물론 사드 배치와 관련한 변수 역시 상존한다.

향후 국면은 비단 정권 교체의 차원만이 아니라 촛불 민심을 반영하여 선명한 개혁을 둘러싼 경쟁의 장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차기 정권은 시민으로부터 개혁 수행을 위임받아 시민과 함께 개혁을 수행하는 '개혁 책임 정부'로 자리매김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제도정치권은 국민과 다른 별세계에 산다 

야당은 언제나 그랬듯이 스스로 변화하기 참으로 어렵다. 왜냐면 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일반인과 다른 별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옆에서 제도 정치권을 관찰하는 기회가 있는 필자가 보기에, 야당은 사사건건 항상 여야 간 게임으로만 판단하고 정치공학적으로만 사고하는 관성에 깊숙하게 빠져있다.

또 야당은 (사실 많은 부분 명백한 보수 그 자체이지만) 자신들이야말로 현실적 진보이며, 시민 세력의 목소리는 비현실적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성이 높다. 이렇게 하여 밖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것은 단지 하나의 변수 혹은 참고사항일 뿐 결정을 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제도권일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야당판(版) 관존민비 사상'도 존재하게 된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관성화되어 외부 세계와 전혀 다른 별세계를 이룬다. 하지만 이들을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재야 세력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다른 대체 세력도 없다. 시민운동이나 진보 성향의 언론도 오히려 상당수 이미 야당 의존성이 강한 '같은 편' 혹은 일종의 '하부구조'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당연하게 제도정치권은 독주, 독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만의 잔치'는 계속된다. 제도정치권을 개혁시킬 열쇠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선거제도 개혁에 있지만, 이에 대해 콧방귀도 뀌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대연정? 우려스럽다 

지금 일부 대권 주자는 참여정부의 가장 큰 잘못으로 평가받고 있는 대연정의 실현까지 주창하고 있다. 박정희를 위한 박근혜의 한풀이가 오버랩된다. 이것은 거짓 진보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참된 반성과 평가로부터 가장 강력한 힘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우리가 다시 명심해야 할 점은 우리의 제도정치권은 강력하게 견제받지 않으면 절대로 바뀌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제 촛불로 타오른, 그를 토대로 하여 힘을 기른 새로운 시민 세력은 야당에 대한 야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촛불 시민세력은 야당을 개혁의 방향으로 견인해내고 때로는 견제, 비판하는 국민운동체로 승화,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길이 우리 정치를 개혁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애초 제기되었던 '촛불 시민대표론'은 준비 모임 등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보여주며 태동되어야 했지만, 그런 준비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온라인에서 선발하는 등 약간 급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좌절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보다 철저한 준비 단계와 소통을 거치고 촛불의 진실된 마음들을 모아 지혜롭게 국민운동체를 조직해나가야 할 것이다.

야당이 집권한 후에도 필요하다면 촛불은 광화문에서 그리고 전국에서 계속 타올라야 한다. 우리의 개혁은 나라다운 나라가 이뤄지는 그 날까지 계속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드, 중국을 적으로 만들고 우리는 생존할 수 있을까?

[기고] 반기문 이후② 사드 배치,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2017.02.06 11:03:17


중국의 입장에서 사드는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다

중국인들은 무조건 중국 정부가 강요하고 조종을 당해서 중국인들의 한국 여행이 감소하고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는 경향이 주변에 적지 않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우리 한국인들이 일본을 싫어하는 것이 우리 정부가 시켜서 하는 일인가? 일본이 역사에 전혀 반성을 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며 독도 문제를 항상 억지 주장만 늘어놓고 왜곡과 날조만 일삼기 때문에 모두들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지금 중국인들은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드를 한국이 극구 배치하려 하기 때문에, 모두들 스스로 한국에 가기 싫어하게 되고 한국 물건을 사기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무조건 중국 정부가 시켜서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중국인들에 대한 모욕이고 근거 없는 우월감의 발로다.  

사드 배치를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코 앞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을 어떻게 미국이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우리 한반도의 형상을 토끼 형상으로 묘사하는 우리와 달리,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심장부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망치의 모양이라고 표현해왔다.

안보를 위한다는 사드, 안보를 가장 위험에 빠뜨리다 

주지하는 바처럼, 우리 경제는 이미 모든 측면에서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그 비중이 대단히 높다. 사드 배치는 이러한 중국을 곧바로 적으로 만들고, 이로 인하여 최소한 우리나라 경제의 30%가 와해될 수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리 재벌기업들도 사드에 커다란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중요 사업 방향과 활로가 모두 중국과 긴밀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드 배치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장기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중국을 적으로 만들고서 과연 우리는 생존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길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하여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이 한국에 보복을 할 수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했었다. 이는 임진왜란 직전 일본이 전혀 전쟁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강변했던 무책임한 조선 관리들의 판박이다. 또한 사드가 배치된 지역은 유사시 중국이나 러시아의 제1의 공격 목표가 되며, 한반도는 평화 대신 긴장과 무력경쟁의 도화선으로 된다.
   
사드 배치 명분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안보가 내세워지지만, 이게 어찌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안보가 될 수 있는가? 안보를 위한다는 사드 배치는 거꾸로 안보를 결정적으로 붕괴시키며, 이 땅의 경제안보, 민생안보를 무너뜨려 나라를 망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안보는 국민안보, 민생안보다 

안보란 전통적인 국방안보의 차원만이 아니다. 안보란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주권안보, 영토안보, 식량안보, 정보안보, 기술안보, 에너지안보 그리고 경제안보, 환경안보를 포함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안보 중 가장 중요한 안보는 국민안보, 즉 민생안보다. 보수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국방 안보란 단지 이 커다란 범주의 안보의 부분일 뿐이다.

정작 한국 방위에도 별 효용성이 없고, 더구나 미국 군산복합체 록히드와 최순실의 '범죄 행위' 개연성이 높은 사드배치로 인하여 우리 국가안보와 국민안보는 지금 가장 커다란 위험에 봉착하고 있다. 

사드 배치, 일본의 속국으로 가는 길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오늘 이 땅에서 친미 사대주의는 조선시대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정도라 할 수 있다. 보수파는 친중파 주장 운운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사실 친중파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일부 대권주자들은 보수층 표의 눈치를 보며 사드 배치에 대해 머뭇거리고 있다. 현재 사드 배치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사드 배치 반대는 51%에 이르고 있고, 지지 응답은 39% 그리고 "의견 없다"가 10% 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금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위안부 합의에 대한 지지율은 자그마치 30%에 달한다. 언어도단, 어불성설인 위안부 합의를 지지할 정도로 그 '정신없는 표'는 절대로 민주 진영에 올 리가 없고, 사실 와서도 안 되는 표다. 

사드 배치는 미국의 세계 패권구도의 일환으로서 중국 포위를 목표로 하는 '동아시아판(版) 나토'의 군사적 시스템으로서 세계적 범주로서의 MD(미사일방어시스템) 체계에 한국을 편입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구도 하에 일본과 한국 간에 위안부 합의와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 등이 강행되었다. 사드 배치는 한국이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길이며, 한일군사정보협정은 그 첫걸음이다. 

사드, 엄청난 군사비용 부담 뒤따른다 

또한 사드 배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발생시키게 된다. 사드 1개 포대 배치 비용은 1조50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차 사드 1개 포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논리로 두 대 이상 배치될 가능성이 높고, 사드 운용비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사드 배치만으로는 수도권 방어를 할 수 없어 별도로 수도권 방어를 위한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해야 한다는 군사논리로 또 다시 엄청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지금 사드 배치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미 간 역학관계상 그리고 관행상 이 주장을 믿기 어렵다. 실제로 전에 주한미군의 평택이전 사업에서도 한국 국방부는 이전 비용의 절반만 한국 측이 부담한다고 했지만, 정보공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는 93% 이상의 엄청난 비용을 한국 측이 부담했다는 주한 미국 대사관의 비밀전문을 공개한 바 있었다.  

더구나 사드가 배치된다면,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이 자국 방어 시스템 강화를 위하여 군비를 증강하게 되고 이는 다시 동북아에 연쇄적인 군비경쟁을 격화시킨다. 결국은 우리도 엄청난 무기수입을 해야 하고, 지금도 미국의 최대 무기수입국인 우리는 지속적으로 엄청난 무기를 미국에게 구입해야만 한다. 사드는 돈 잡아먹는 하마이고, 우리는 군산복합체의 호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호남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기고] 반기문 이후③ 호남의 시민사회 성장이 진보와 민주주의를 키운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2017.02.08 14:21:01




우리 사회의 소외 세력이지만 언제나 진보와 민주주의를 선택해온 호남

호남은 우리 사회 양극화의 한 단면이자 이 땅의 지배구조 역사에서 분할통치의 피해자로서 기득권 세력에 소외된 세력의 상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은 우리 근현대 정치사에서 언제나 민주주의와 진보를 선택하고 실천해왔다. 호남에서 지지를 받지 못한 야당 후보는 그 민주주의와 진보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호남은 어떻게 권리를 찾을 수 있는가?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대권주자들 대부분은 영남 출신이다. 또 권력 실세였던 김기춘과 우병우는 물론이고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과 구속된 유명 소설가 이인화 교수도 모두 영남 출신이다. 야당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의 잘 나가는 비례대표도 영남 출신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남과 호남의 관계는 비유하자면 거대자본과 자영업자 간의 관계와 똑같은 것이다. 이들 간에 아무리 공정한 경쟁을 하라고 해도 "이미 기울어도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부익부 빈익빈의 비극은 더욱 심화되고, 해결할 길은 없다.  

행정부 중앙 부처에서 이제 호남 출신이 과장급까지도 씨가 마를 지경이라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필자가 직장에서 받은 명절 선물은 몇 년째 줄곧 영남산 과일이고, 지인이 보낸 '김영란법'에 맞춘 조그만 선물 역시 영남 쪽 상품이다. 모든 게 대부분 이렇게 연결되어 강화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주위에 쓸 만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끌어주고, 부동산이며 고위 벼슬자리 등 알짜배기 정보를 교환하며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뭉친 인적 정보 네트워크가 철저하게 작동된다. 

유행에 민감한 어떤 영남 출신 논객은 피해자의 시각을 중시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지만, 호남 문제에서만은 한사코 피해자로서의 호남의 시각을 부정한다.

최근 일부 대권주자가 주장하는 이른바 대연정 논리도 기실 호남을 배제하는 지역연합의 논리이고, 영남 기득권에 대한 아첨이자 투항이다.  

지역안배의 '탕평책' 조항, 기본권으로 헌법에 규정되어야


이제 지역 차별이라는 문제는 단순한 차별 억제 등의 소극적이고 수동적 차원이 아니라 이제 국민의 기본적 권리 실현이라는 적극적 차원에서 주장되어야 한다.

독일기본법(헌법)은 "연방의 최고 정부기관(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각 주 출신들이 적절한 비율로 채용되어야 한다(제36조)."라는 '탕평책'의 명문 조항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법관 임명에서도 출신지역의 적절한 안배를 항상 고려한다.

우리도 이와 같이 지역 차별 금지 및 지역균형의 원칙이 기본권의 차원에서 존중되고 헌법에도 명문화해야 한다.  

오늘의 난맥상은 기본적으로 제도권 야당의 '갑질'로 초래되었다

예전 평민당 시절부터 민주당을 거쳐 지금의 국민의당까지 모든 호남 지역의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대부분 토호나 보수주의의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5.18 관련 단체 역시 패권주의와 심지어 보수와 전혀 다름이 없는 부정부패 현상으로 물의가 빚어지고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쓸 만한 인물은 없고,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관계들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이뤄지는 일이 없다. 

이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DJ 평민당 시기부터 오늘의 국민의당에 이르기까지 "제도권 야당의 갑질" 요인으로 초래된 현상이기도 하다. 제도권 야당은 자기들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사람만 영입하고 자리를 보장하면서 반면 자신들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은 철저히 배제하고 보복하는 전략으로 일관하였다. 

사실 이는 전국적으로 민주운동 진영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작동하였고, 운동 진영 역시 이러한 요인으로 분열과 좌절을 거듭해왔다. 이런 의미에서 호남과 운동 진영은 일종의 운명공동체였다. 호남과 운동 진영은 이렇게 수십 년을 지나면서 지리멸렬, 희망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다만 반목과 무력감만이 자욱해졌다.  

배반의 정치 

돌이켜 보면, 총선 뒤 호남의 맹주로 부상한 국민의당은 총선 뒤 "호남 딱지 떼는 일"에만 전전긍긍한 셈이었다. 마땅히 기득권만 지키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호남의 상처를 개선하며 참된 민주주의를 반영하고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사실 야당의 이러한 행태는 민주당 역시 동일했다. 왜 자신들이 호남에서 버림 받았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근본적 성찰과 변화도 없이 선거철이 되자 또 다시 이번만 봐 달라 하며 손을 내밀고 있을 뿐이다.  

호남은 그들에게 단지 선거 때만 필요한 '앵벌이'였을 뿐이고, 이 '배반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호남, 시민 사회의 성장을 중심 과제로 삼아야 

그러나 세상만사, 모름지기 남 탓을 하지 않고 먼저 나 자신의 성찰과 반성으로 시작하는 것이 옳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언제나 올바른 길이고,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호남 문제의 해결은 호남 바로 내가 해낸다는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기본 정신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더 이상 중앙 정당의 좋은 사람(후보)을 밀어줘서 호남의 한을 풀어보자는 환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 그러한 대리통치 혹은 위임통치는 언제나 자괴감만 남겼다.

이제 사고의 중심을 호남의 자주적인 시민 사회 성장과 발전에 둬야 한다. 언제나 이 땅의 민주주의와 진보를 여는 선구자이고 실천자였던 호남은 이제 자주적이고 주체적 역량에 의거하여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지역에서 스스로 민주주의 조례를 제정하고 모든 지역 권력이 시민과 주민으로부터 나오는 시민 주권, 주민 주권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출발점은 당장 이번 대선 국면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호남은 각 지역별로,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전체 대표자회의를 선출하여 시민 대표자회의를 구성하고 박지원 및 유력 주자들과 담판하라. 그들에게 지난 총선 민의와 촛불 민의를 받들어 호남 지역차별에 대한 개선과 정당한 대우 방안을 마련하고 차기정부가 민주개혁을 충실하게 실천할 것을 강력하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각 지역과 각 단체의 특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각 시민 대표를 선출하는 것 자체가 큰 진전이다. 이 과정은 지혜가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명망가를 배제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명망가 중심으로만 구성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현재의 촛불집회 주최 측이 임시로 산모 역할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호남인들이 열망하는 '호남의 인물'도 이러한 실천으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전두환 치하의 암흑기에 감옥에서 옥사한 박관현 전남대 학생회장은 참으로 아까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광주 호남의 토양이 너무도 양호하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좋은 인물들이 배출되리라 기대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호남의 시민 지도부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으며, 호남지역의 자주적 민주주의도 성취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과 경험, 그 성과는 이 나라의 진정한 민주주의의 선도적인 토대로 역할할 것이다.  


대선 주자들, 한시라도 세월호를 잊지 말라

[기고] 반기문 이후④ 촛불투쟁, 이것은 '인생투쟁'이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2017.02.13 14:53:27


이것은 인생투쟁이다

광화문 광장은 해를 넘기고서 계속 타오르고 있다. 이것은 '인생 투쟁'이다.

돌이켜 보니, 박정희 유신 시대부터 전두환 철권 통치를 거쳐 이제 다시 박정희의 딸 박근혜 정권의 끝을 목도하고 있다. 내 수십 년 삶을 그대로 관통하는 '인생 투쟁'이다.

박정희 유신 시기이던 1978년 6월, 1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이 광화문 거리에서 기습적으로 유인물을 뿌리며 유신 반대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록 매우 작은 사건이었지만, 어떠한 형태의 반정부 운동도 철저히 탄압하던 당시 청와대에 가까운 광화문에서 가두시위를 전개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1년여 후 유신정권은 붕괴되고 말았다. 

비단 필자만이 아니라 이곳 광화문 광장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북풍한설 휘몰아치는 이 모진 추위에도 여기 기어코 참여하고자는 하는 것은 모두에게 삶을 건 인생투쟁일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수많은 젊은 청년들에게도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붓는 인생투쟁이며, 중고생들과 또 초등학생에게도 민주주의의 참 교육장으로서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다. 그리고 각자 삶의 빛나는 지표로서 향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밑거름으로 내내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에 기소권을 허하라 

바야흐로 대선 국면이다. 온통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언론은 초 단위로 대선 기사만 쏟아낸다.그러나 지금 우리가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어떤 시대든 그 시대의 상징이 존재한다. 박근혜 정권을 관통하는 하나의 상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우리 시대의 상징 혹은 표지가 될 이 사건의 해결은 반드시 우리가 수행해야 할 시대정신이다.  

물론 박근혜 정권에게 그 대부분의 책임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야당 역시 책임 있는 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대선 주자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세월호 농성 현장을 방문하고, 철저한 해결을 약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가 내일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금석이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해결하지 못하고서 우리 사회는 한 걸음도 의미 있는 전진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현대사가 일제 잔재의 청산 과정이 수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왜곡, 굴절되었고 결국 이로 인하여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었던 점을 잘 알고 있다. 이제 다시 그러한 착오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지금의 국정농단 청산 과정은 박근혜의 구속과 함께 세월호 참사 사건의 완전한 해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강제성 없는 조사권만이 아니라,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기소권을 부여해야 마땅하다.  

검찰의 기소권 독점은 일제 잔재 

우리나라의 무소불위 검찰 권력의 핵심인 기소권 독점은 헌법에 규정된 것도 아니고 단지 형사소송법 규정일 뿐이다. 형사소송법 제246조는 "공소는 검사가 제기하여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일본 형사소송법을 그대로 이어받은(계수, 繼受) 규정이다.

하지만 일본 형사소송법도 본래 그 기원이 되는 1880년의 '치죄법'은 "공소는 검사가 이를 행한다"와 "사소(私訴)는 피해자에게 속한다"는 두 조항을 동시에 규정하고 있었다. 즉 일본 역시 프랑스의 입법례를 본받아 공소권과 사소권이 병존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후 국민주권을 부정하고 '천황주권'만을 인정하여 사소권(私訴權, Action civile)을 삭제했다. 

프랑스의 형사소송 절차는 범죄 피해자에게 직접소추를 할 수 있는 사소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법인격을 갖춘 시민단체들도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또는 단독으로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사소를 제기하거나 공소에 참가할 수 있다.  

정의당 그리고 선거법 쟁취 투쟁, 그린피스를 본받는 '인상적 운동' 전개해야

제도와 법률은 매우 중요하다. 촛불정국에서 기실 제도정치권이 아무런 공헌도 없지만 지금 모든 과정을 철저히 제도정치권이 주도하는 반면, 시민들이 개입하고 참여할 공간은 부정되고 있는 사실로부터 다시금 법제도의 현실적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지금 우리에게 부여된 시대의 과제는 시민주권의 민주주의를 불가역적으로 튼튼하게 세워나가는 일이다. 그것은 멀리는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의 유습으로부터 일제 식민지시대의 잔재 그리고 박정희 유신 잔재와 전두환 철권통치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하고 시민주권의 사회를 튼튼하게 구축해나가는 역사적 대과업이다. 그리고 이 과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완전한 해체와 시민기본권의 확고한 정립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촛불정국에서 유난히도 정의당의 활동이 두드러지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열심히 실천하기는 했겠지만 일반인들의 눈에 들어오고 귀를 뜨이게 하는 운동이 부재했다.

국제 환경운동조직 '그린피스'는 때대로 아슬아슬하고 위험하게 보이는 인상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 정의당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린피스가 보여주었던 인상적인 형태의 운동 방식이다. 지금과 같은 비상 시기에도 존재 의미를 부각시켜 내지 못하면 향후에도 기대하기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하다. 녹색당 등의 소수정당 역시 마찬가지고, 선거법 쟁취를 위한 시민조직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린피스와 같은 과감하고도 대중들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강렬한 행동으로써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는 실천을 기대해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법원의 민주화를 위해

[기고] 반기문 이후⑤ 법원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2017.02.14 18:03:58


지난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가 법원에 의해 기각되자 한 현직 판사는 영장 시스템을 비판하면서 사법제도 개선을 주장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형사 영장전담과 부패전담(뇌물, 정치자금) 등 형사 재판부에 중요 사건을 몰아넣는 사무 분담 방식과 이러한 전담재판 사무 분담의 결정 권한이 서울중앙지법원장과 대법원장에 의해 독점돼 있으며, 영장전담 형사합의부 등 요직 사무 분담에 고등부장 승진을 얼마 안 남긴 잘 나가는 지방부장을 꽂아 넣은 후 고등부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영향력이 행사된다고 비판했다.  

중앙통제 방식의 법원 사무행정, 판사회의로 넘겨져야
 

우리나라 법원에서 재판부 구성을 비롯해 영장 시스템 등의 사무 분담은 대법원장과 그를 보좌하는 법원행정처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독일 법원조직법은 재판부 구성에 관한 사항을 사법행정 사무로 분류하지 않는다. 독일에서 사무 분담 및 사건 배당은 사법권 독립의 핵심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 업무를 사법 행정 사무로 인정한다든가, 각각의 소송에 따라 그 어떠한 이유를 붙여 임의적으로 재판부나 법관에 배당될 경우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할 위험성이 크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의 각 법원에서 사무 분담 계획의 수립은 '판사회의'의 권한이다. 법관들은 재판상의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사무 분담 계획을 수립하고 그 결정 과정에서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으므로 사법 행정이 영향을 미칠 여지가 없다.  

법원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법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러나 법원은 재판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일상과 운명을 결정짓고, 국가 정책을 좌우한다. 나아가 법원의 결정은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그리해 법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본래 행정 사무관리(administer) 업무를 지원하는 기관이 비대해짐으로써 이러한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조직 내 여타 기관 위에 군림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 관료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이기도 하다. 법원 역시 이런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바로 그것이다.  

'보이지 않는 사법 권력' 법원행정처 

'보이는 권력'과 '보이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 사법부 조직이라 하면 대법원, 고등법원, 판사 등등 우리들은 상당히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법원행정처라는 기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그리해 보이지 않는 이 법원행정처가 기실 권력기관 중의 권력기관이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권력'의 전형이다.

법원행정처는 인사관리실이나 기획조정실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법관의 재판을 보조한다는 본래 취지를 넘어 법관에 대한 감독기관으로 기능하면서 전체 법관과 전체 재판을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이렇듯 사법 관료화의 핵심으로 부상한 법원행정처는 일본 식민지시대 잔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즉, 일본 제국 시대에 일본의 전체 법원과 재판관을 지배, 통제했던 사법성(司法省)을 그대로 모방한 제도인 것이다(사법성은 이후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현재 세계적으로도 법원행정처라는 이 독특하고도 기이한 기구는 선진국 중 가장 사법 후진국인 일본을 제외하고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법원의 권위란 '숫자의 희소성'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대법원에서 실질적으로 재판을 담당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대법관은 사실상 12명에 불과하다. 이 12명의 대법관으로 밀려드는 재판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래서 일종의 편법인 상고법원을 추진하다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대법원은 한사코 대법관 증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재 대법관 증원에 대한 반대 논리의 저변에는 소수 엘리트주의의 고착에 의한 기득권 유지와 강화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거나 혹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숫자와의 비교라는 경쟁 심리가 깔려 있다고 지적된다.  

하지만 최고법원의 권위란 '대법관 숫자의 희소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신뢰로부터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턱없이 부족한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하고 공정하며 신속한 상고심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국민이 대법원의 재판을 받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될 때까지 수요가 존재하는 한, 대법원의 재판서비스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독일 대법관 숫자는 320명에 이르고 있다. 

사법정의의 실현과 국민을 위한 사법서비스, 이것이 법원의 존재 이유

우리나라의 법관은 우선 숫자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우리나라 법관 정원은 2013년 10월 말 현재 2739명으로서 인구 10만 명당 5.37명에 불과하다. 유럽의 경우, 모나코의 54.5명을 비롯해 우리와 유사한 법제를 가지는 독일이 24.5명, 스위스 16.5명, 프랑스 11.9명 등이다. 심지어 폴란드나 체코, 러시아도 우리의 4배에서 6배의 수준의 법관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전에 고위직 외무공무원 선발 방식이었던 외무고시가 소수 정예화해 엘리트화·귀족화한 것과 동일한 논리로 특권화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워킹맘'이던 30대 판사가 과중한 업무로 과로사한 사건까지 있었다.  

오늘날 검찰 권력이 오늘날 무소불위 무제한적으로 행사되고 있는 것도 기실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법원이 자신이 가진 현재의 영역만을 지키는 데 급급해 역할과 책무를 스스로 포기, 방기하면서 심화된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사법 접근권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원과 법관을 대폭 증설, 증원하고 사법 서비스의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마련되는 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 국민을 위한 사법 서비스 제공, 이것이 사법정의의 실현과 함께 법원의 존재 이유다.



표창원 의원은 왜 경찰개혁을 말하지 않을까?

[기고] 반기문 이후⑥ 시민이 깨어있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오지 않는다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       
2017.02.15 16:02:23


표창원 의원, 비록 최근 물의를 빚은 사안도 있지만 대단히 활발한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대체로 바람직하다. 필자도 그의 문제의식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경찰 출신으로서 왜 경찰 개혁에 대한 주장은 거의 없는가라는 점이다. 지금 경찰 조직은 용산 참사나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굳이 다시 들출 필요도 없이 문제가 대단히 많고 개혁의 중요한 범주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평소 사회 제반 문제에 대단히 개혁적인 표창원 의원이 경찰의 현실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왜 정작 경찰 개혁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을까? 경찰 조직을 대표하는 경찰 조직의 추천 케이스도 아닌데.  

그리고 그 많은 서울대 출신 국회의원들은 왜 서울대 개혁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있을까? 또 많은 교수 출신 국회의원들은 왜 문제투성이인 교육계의 개혁을 말하지 않는가? 언론계 개혁에 적극적인 기자 출신 국회의원도 드물다. 관료 출신 국회의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왜 유명해지면 모두 국회의원만 되려고 할까? 

우리 사회의 큰 병폐 중 하나는 각 분야에서 출세한 사람들 모두가 국회의원이 되고자 열망하고 또 국회의원이 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젠가부터 변호사, 교수, 기자를 비롯하여 배우, 아나운서, 가수, 바둑 기사까지 좀 이름이 유명해졌다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자천타천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국회의원이 된 뒤 무엇을 하였나? 우리 사회와 국가를 개선하고 바꾸는 데 기억에 남을만한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필자가 과문한지 모르지만, 그러한 사례를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특히 자기가 몸 담았던 분야의 개혁을 실천한 경우는 더욱 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결국 모두 출세에만 목표를 둔 매명(賣名)주의, 출세주의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사태가 이러니 우리 사회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되는 것 아닐까? 그러한 왜곡된 현상들이 쌓여서 결국 오늘날 우리 사회가 기본이 무시된, 나라 같지 않은 나라로 전락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우리 인간 사회란 구성원들 각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맡은 바 그 직분을 다할 때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어떤 자리에서 유명해지면 마땅히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곳에서 모든 힘을 다해야 함이 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임무일 터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사회가 전진하고 진보한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문제부터, 그리고 자기가 몸담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개선 방안을 제기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의미 있게 발전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되어야 한다. 경찰 개혁에 대한 표창원 의원의 방안을 기대한다.  

참여하라, 조직하라, 행동하라 

장엄하게 타오른 촛불민심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 과연 개혁이 실현될 수 있을까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갖고 있다.  

언제 쉽게 일이 이뤄질 때가 있었던가?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이 나라를 변화시키고 개혁한다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실천을 필요로 한다.  

이제 지구전으로 끈질기게 간다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어차피 하루 이틀에 끝날 우리의 운동이 아니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맞서 장장 443일이나 천막농성을 전개하여 끝내 승리를 거뒀던 실천 행동은 모범적 사례다. 각자가 서 있는 직장에서 그리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각자의 특성에 맞춰 가능한 실천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하여 참여하고 조직하고 행동해야 한다.  

스페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생 진보정당 포데모스도 대졸 출신의 청년들과 노동자,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1000개 이상의 풀뿌리 운동에 토대를 가지면서 신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포데모스는 번역하면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말 우리도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다.  

경기도 양수리에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협동조합 '두머리부엌'이 있다. 로컬 푸드, 슬로푸드의 환경식품으로 운영되는 식당으로 착실하게 자리잡게 된다면 지역 근거지를 확보하고 지역에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시너지효과를 창조해내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주적 주민 지역조직들이 전국적으로 각 지역사회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한다. 뚜벅뚜벅 내일을 향해 한 걸 한 걸음 실천해 나가자.

시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정권교체가 돼도 민주주의는 오지 않는다

나아가 민주적 지자체장이 선출된 지역에서 특성에 맞춰 조례 제정 등을 통하여 직접민주주의와 시민주권의 자치를 실천하는 방안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지역이 강해야 민주주의가 보장된다. 독일의 시민단체들은 지방자치제도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90년 쉴레스비히-홀스타인 주에서 지방자치법이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광범위한 주민 참여를 보장하게 되었다.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주민청원이다. 일정한 수의 주민이 청원한 사항에 대하여 지방의회는 일정 기간 내에 반드시 심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둘째, 주민회의다. 지방자치단체는 최소 1년에 한번 이상 지역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주민회의를 소집해야 하며, 여기에서 집약된 의견은 해당기관에서 일정 기간 내에 심의되어야 한다.  

셋째, 주민투표다. 일정 수의 주민은 지역의 중요 문제에 대하여 주민투표를 청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지방의회 의원의 2/3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주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지금 입만 열면 모든 것을 다해줄 것 같은 대선 주자들이 이 나라를 잘 만들어서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좋은 권력, 착한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들이 깨어있지 않으면, 정권교체가 된들 그들은 또 다른 '지배자'로 우리 위에 군림하게 될 뿐이다. 민주주의는 오로지 우리 시민들의 힘에 의거해서만 담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