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투표제가 개헌 사항? 점쟁이 독심술하나?"


조기 대선이 유력해지면서 결선 투표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결선 투표제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결선 투표제에 대한 공을 국회로 넘기면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결선 투표는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후보가 과반을 넘지 못할 경우 1, 2위 후보를 대상으로 다시 한 번 투표를 해 최종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과반 이상의 득표를 보장해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이 강화되고 군소 정당의 후보들도 단일화의 덫에서 벗어나 소신을 펼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오래전부터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어 온 제도다.
<프레시안>은 2016년 12월 30일 서울 종로구에서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인 김진욱 변호사, 안용흔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기창 고려대학교 로스쿨 교수, 이부영 전 국회의원과 함께 결선 투표제 도입을 주제로 좌담을 가졌다.
좌담 참석자들은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요목조목 반박했다. 일부 헌법학자들은 '최고 득표자가 2명 이상일 경우 국회에서 당선자를 가른다'는 헌법 67조 2항이 단순 다수 득표제를 전제한다고 해석해 개헌 없는 결선 투표제 도입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틀렸다는 것이다.
67조 2항은 동점자가 발생하는 희박한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며, 단순 다수 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규정은 헌법이 아닌 공직 선거법 187조 1항에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직 선거법을 개정해서 단순 다수 득표자가 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고, 최고 득표자가 동점자가 아닐 때 결선 투표를 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결선 투표제 문제가 헌법 개정 사항이라는 주장은 사실상 결선 투표제를 반대하자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좌담 전문을 2회에 걸쳐 싣는다. 1회에서는 결선 투표제를 둘러싼 법적 쟁점을, 2회에서는 결선 투표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속내를 짚어봤다.

ⓒ프레시안(최형락)
결선 투표제 도입해도 헌법에 어긋나지 않아
프레시안 : 결선 투표제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난관은 이를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이냐다. 우선 헌법학계에선 결선 투표제 도입이 개헌 사항이라는 주장이 강하다.
김기창 : 현행 헌법이 대통령 선거에 대해 명백하게 규정한 것은 "보통, 평등, 비밀, 직접 선거"를 규정한 67조 1항(직선제 조항)과 "대통령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67조 5항이다. 이 두 조항을 보면 일단 상당한 부분은 법률이 결정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67조 2항과 3항에 아주 독특한 경우를 상정한 규정이 있다.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날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극히 희박한 경우를 상정했다. 2항은 최고 득표자가 동점인 경우다. 3항은 입후보자가 한 사람인 경우인데, 이는 동점자가 나오는 것보다 더 희귀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두 조항이 과연 결선 투표제의 정신이나 원칙과 양립 가능한지를 볼 필요가 있다. 제가 보기에 두 조항은 결선 투표제와 별 관련이 없다.
첫째, 입후보자가 한 사람인 경우는 결선 투표제와 무관하다. 둘째, 최고 득표자로 동점자가 나오는 경우도 결선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전제할 아무 근거가 없다. 최고 득표자가 동점자이면 현행 헌법 규정에 따라 국회에서 승자를 결정하면 된다. 최고 득표자가 동점자가 아니면서 동시에 절대 다수적 득표자가 없는 경우에 결선 투표제를 법률로 도입하는 것은 헌법 어떤 조항과도 어긋나지 않는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헌법 제정자가 1948년 제헌 헌법에서 "최고 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못 박아뒀다가 1962년 개헌에서 그 조항을 삭제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 다수 득표제를 철회한 것으로 해석할 상당히 강력한 근거가 된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순 다수 득표자가 대표자가 돼야 한다"고 못 박은 제헌 헌법 규정을 삭제할 이유가 없었다.

▲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단순 다수 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규정은 공직 선거법 187조 1항에 있다. 단순 다수 득표자 당선인으로 하는 것은 헌법이 아니라 법률로 정했다. 따라서 공직 선거법을 개정해서 단순 다수 득표자가 표 과반을 획득하지 못하고, 최고 득표자가 동점자가 아닐 때 결선 투표를 한다고 하면 그 어떤 위헌 논란도 맞닥뜨릴 필요 없이 도입할 수 있다.
김진욱 : 개헌 사항이라는 주장은 최고 득표자가 동점을 받으면 국회에서 승자를 가리도록 한 헌법 67조 2항을 반대 해석한 것이다(최고 득표자가 동점이 아닐 경우, 과반수를 얻지 않아도 대통령으로 인정하므로 한국 헌법이 단순 다수 득표 제도를 전제한다는 해석이다. 편집자). 67조 2항을 반대로 해석하면,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이 아닌 경우, 즉 1인인 경우에는 국회에서 선출하지 않는다'가 된다. 그럴 때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국회가 아니라 다른 기관에서 선출할 수 있고, 결선 투표를 할 수도 있다.

▲ 김진욱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개헌 사항이라는 주장은 결선투표제 도입하지 말자는 것
프레시안 : 하지만 남미, 유럽 등 결선 투표제를 채택한 나라들은 이를 헌법에 명문화하지 않았나?
안용흔 : 그렇다. 그런데 남미는 결선 투표제(절대 다수 득표제)뿐 아니라, 단순 다수 득표제를 채택하더라도 헌법에 규정이 있다. 결선 투표제를 하더라도 '과반 혹은 일정 비율 (아르헨티나의 경우 45%) 이상 득표하지 못하면 2차 선거를 통해 승자를 정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다. 반면 한국에는 단순 다수제 규정조차도 헌법에 없다.
김진욱 :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렇다. 첫째, 대통령 선거에 관한 사안은 중요하니까 헌법에 명시하자는 것. 둘째, 다른 나라도 그렇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헌법에 결선 투표제를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유럽은 한국과는 달리 헌법 개정이 국회 소관이다. 실체를 보면 개헌이 한국에서 법률을 개정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민주적 정당성에 기반을 둔다.
우리는 자기 경험을 규범으로 생각하는 오류가 있다. 예를 들어 배심원 제도를 두고도 도입 초기에 '법관에 의한 재판'이라는 헌법 조항 위반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법관에 의한 재판'이 행정부나 입법부의 개입, 즉 삼권 분립을 위반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나왔다고 진화하면서 수용됐다. 국회의원 수를 300명으로 늘릴 때도, 헌법에 '국회의원 수는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적혀 있다는 점을 근거로 위헌론이 제기됐다. 그게 자기 경험을 규범으로 생각해버리는 오류다.

▲ 이부영 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기왕 개헌특위도 구성이 되는데, 헌법 개정을 통해 결선 투표제를 명시하면 이런 논란이 좀 더 명료하게 해소되지 않을까?
김진욱 : 법률 개정으로 가능한 것을 헌법으로 규정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개헌 사항'이라면서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안 하는 이유로서 개헌을 얘기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
김기창 : 그냥 공직선거법 187조를 바꿔서 실시하면 된다. 그러면 단순 다수 득표했던 분이 결선 투표에서 승패가 뒤집어졌을 때, 권리가 침해됐다고 헌법 소원을 걸어 사후적으로 다퉈볼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 헌법재판소가 결선 투표제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새로 투표해라'라고 하거나, 이번 선거는 무효’라고 결정할까?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결선 투표제 도입 위한 선거법 개정 나서야
프레시안 : 선거법 개정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쟁점들, 비례대표 확대나 선거 연령 18세 인하와 같은 선거법 개혁안과 결선 투표제 도입을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보나?
김진욱 : 한꺼번에 되면 좋겠지만, 지금은 목전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원칙이다. 최소한 결선 투표제와 선거 연령 18세 인하는 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만 꼽으려면 결선 투표제를 먼저 해야 한다. 선거 연령 인하는 올해 안 되면 내년에 해도 되지만, 결선 투표제는 이번에 안 되면 5년을 기다려야 하고, 5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안용흔 : 결선 투표제

▲ 안용흔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신생 민주국가 중에 결선 투표제를 채택한 국가는 대부분 비례대표제도 채택했다. 비례대표제도 어떤 유형이냐 따라 전혀 다르다. 브라질은 비례대표제인데 정당명부제가 아니라, 공개 명부제다.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보고 투표하다 보니, 정당이 움직이는 정당 정치가 아니라 인기 있는 몇몇 개인에 의해 선거가 좌우된다. 단순 다수제 같은 경우다. 그래서 브라질에는 의석이 있는 정당이 10개가 넘는다. 정당 너무 많아져서 정당 연합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다.
결선 투표제와 정당 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국회의원 가운데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린다고 하면 계산에 들어간다. 결선 투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함께 논의하면 둘다 놓치지 않을까.
김기창 : 법률 개정 의제를 놓고 여야가 논의를 거치는 과정 자체가 주는 교육적인 효과가 중요하다 본다. 결국 이 제도는 정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모든 정당에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설명할 기회를 주고, 결선 과정에서 연정이나 연합이 일어나는 경험을 주는 제도라는 설명을 제대로 제시하려면, 메시지 전달을 위해 결선 투표제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문재인이 안철수 우군화할 유일한 방법은…"


결선 투표제의 효과에 대해 이부영 전 의원은 "결선 투표제는 정당 간 정책 연합, 연합 정치를 제도화한다"며 "결선 투표제를 하면 유권자에게 '누구를 떨어뜨리기 위한 선거'라는 개념에서 '어느 쪽을 택해야 내가 유리하다'는 식으로 선거의 개념의 바뀐다. 결선 투표제는 유권자의 사고 자체를 바꾸는 제도"라고 말했다.
남미 국가의 결선 투표제를 연구해온 안용흔 교수는 결선 투표제가 사회 갈등을 줄이고 복지를 늘린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또 볼리비아와 우루과이 사례를 통해 결선 투표제가 때에 따라 좌파 혹은 우파의 집권을 유리하게 했다는 점을 들어 결선 투표제가 특정 세력의 유불리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기창 교수는 결선 투표제의 장점으로 정책 선거가 가능한 점과 매번 반복되는 단일화의 압박이라는 선거 과정의 불합리한 측면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진욱 변호사 역시 민주적인 선거 제도로 나아려면 대통령 선출 방식에 대한 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결선 투표제의 시급한 도입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좌담 참석자들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결선 투표제 도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프레시안(최형락)
결선 투표제, 유권자의 사고를 바꾼다
프레시안 : 국민들에겐 결선 투표제 자체가 낯설다. 왜 지금 결선 투표제 도입이 시급하고 필요한 과제인가?
안용흔 : 나는 결선 투표제가 발휘하는 정치 경제적 효과를 연구했다. 의회 선거 제도, 정당 수, 그 나라의 경제 수준 등 다른 변수들을 모두 통제한 상태에서 살펴본 결과, 결선 투표제는 사회 갈등 완화, 복지 확대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왔다. 결선 투표제를 채택한 국가가 단순 다수 대표제를 채택한 국가보다 압도적으로 사회 갈등이 낮았다. 남미 국가 3분의 2가 결선 투표제를 채택했는데, 결선 투표제를 택한 국가가 복지 지출도 상대적으로 높았고, 사회의 다양한 집단의 요구를 수용하는 편이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서 한국 사회도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결선 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부영 : 결선 투표제는 단일화를 위해 단순히 후보 하나를 주저앉히는 제도가 아니다. 결선 투표제를 하면 정당 간 연합이 된다. 여태까지는 선거가 끝나면 패배한 정당들이 다 소멸했다.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정당이 없어지지 않는다. 연합의 전제 조건으로 장관과 부처를 나누고, 각 정당이 정책 연합을 할 수 있다.
결선 투표제는 유권자의 사고 자체를 바꾸는 제도다. 유권자도 정책을 보며 어느 당을 택해야 유리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누굴 떨어뜨리기 위한 선거가 아니라, '어느 쪽을 택해야 내가 유리하다'는 식으로 개념이 바뀐다. 배제의 정치에서 연합과 상생의 정치로 바뀐다.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면, 다음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자치단체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가 1987년에 군부독재를 극복하자고 해놓고 결국 양김이 분열하는 바람에 노태우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지 않았나. 그때 결선 투표제를 도입해서 양김 중에 누가 당선됐더라면 남북 관계나 복지 문제나 여러 사회 정책에서 꽤 큰 발전을 이루었으리라고 확신한다. 이젠 가치관이 다른 것도 아닌데 새누리당도 찢어졌다. 합치진 못하더라도 연합이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 시기에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어찌보면 정언명령이다.

▲ 이부영 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결선 투표제는 진보 진영에게만 유리하다?
프레시안 : 보수 진영에서는 결선 투표제가 진보 진영의 집권을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 김기창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안용흔 : 남미 사례에서도 결선 투표제가 진보에 유리했던 사례와 보수에 유리했던 사례가 모두 있다. 먼저 볼리
비아 사례다. 1989년 중도 좌파 정당이 자신의 집권을 위해서 결선 투표제 하에서 좌파 군소 정당을 규합해 나갔음에도 1차에서 과반 득표 못했고, 결국 소수 원주민 정당까지 포함해 2차 선거에서 이겼다. 그 결과 더 좌파적인 성향의 정책, 원주민 정책이나 복지 정책 확대들이 있었다. 중도 좌파 정당이 집권하는 데 결선 투표제가 유리하게 작용한 경우다.
우루과이는 중도 좌파적인 성향이 강한 나라다. 중도 좌파 정당인 콜로라도당이 매 선거에서 이겼고, 중도 우파 국민당(national party)은 졌다. 결선 투표제가 도입되고, 중도 좌파 정책에 약간 불만을 가진 다수 좌파적인 세력들이 큰 정당과 연합해서 '대전선'이라는 큰 좌파 정당을 만들었다. 결선 투표제가 아니면 대전선이 이겼을 텐데, 1999년 대선에서 콜로라도당이 자신의 경쟁자였던 국민당과 연합해 중도 우파적인 정책을 수용하면서 좌파 정당의 집권을 무마시켰다. 그러면서 대선 다음 해인 2000년도에 정부가 민영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복지 지출을 삭감하고, 남미국가 간 지역 경제 통합을 이뤘다. 약했던 중도 우파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이 강화됐다.
결선 투표제를 하면 다양한 세력의 요구를 담은 정당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2차 선거에서 정책 연대나 연립 정부 구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좌든 우든 정당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기여를 한다. 한국의 경우 여당 내에서도 정당이 갈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여당이 결선 투표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집권 플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결선 투표제 도입, 지금이 적기
프레시안 : 조기 대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치권이 이 기회에 시급히 추진하지 않으면 결선 투표제 도입은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울 듯하다.
이부영 : 여태까지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결선 투표제를 반대한다고 알려졌기에 민주당 의원들이 발언이나 행동에서 제약을 받았다. 그런데 문재인 전 대표가 야3당에서 결선 투표제를 논의하라고 말해서, 민주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이제 족쇄가 풀렸다고 생각한다. 여야가 1월에 임시 국회를 열기로 합의했는데 좋은 기회다.
김진욱 : 지금까지 1위 후보자는 결선 투표제를 '개헌 사항'이라며 반대했다. 그때는 새누리당 후보였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문재인 전 대표가 '국회에서 해결해달라'고 했다. 그분 입장에서 큰 용단을 내렸다고 본다. 이번이 적기다. 선거가 임박해서 한다고 하지만, 원래 선거 제도는 선거가 임박해서 하는 것이다. 일단 선거법을 개정하고, 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 개헌하면 된다.
김기창 : 역설적이게도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이야말로 결선 투표제를 (개헌이 아닌) 법률로 관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서 개헌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개헌론을 띄우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지금 헌법 구조에서도 법률 개정만으로도 국정원을 독립기관으로 바꾸고, 검찰에 대한 상호 견제를 하고, 여러 공기업 임원 인사권을 독립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
야3당이 지난 5,10년간 국민에게 너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존재감 없이 여당에 끌려다녔는데, 결선 투표제라도 하나 의제로 설정해서 관철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야당의 존재 이유가 설명될 것 같다. 야3당이 수적으로 다수인데 이것 하나 못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것은 죄 짓는 일 아닌가 싶다.
안용흔 : 정치 개혁이라는 것이 10년, 20년 걸리면서 서서히 이뤄지면 이상적이지만, 결국에는 정치적 계산에 의해 모두가 조금씩 잃거나 조금씩 얻는 균형점 속에서 정치 개혁이 일어난다. 그걸 가지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는 1995년에 결선 투표제를 도입했다. 당시 정의당의 메넴이라는 대통령이 인기가 좋아서 한 번 더 하고 싶었는데, 한 번 더 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했다. 그래서 1994년 헌법에 재선 출마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대신 하나 수용해준 야당(급진시민연대)의 의견이 결선 투표제였다. 결선 투표제 도입 이후 사그라들던 급진당은 다른 당과 연합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다.

▲ 안용흔 대구가톨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결선 투표제에 적극적이다. 문제는 민주당, 특히 대선 주자들의 도입 의지인데, 문재인 전 대표가 결선 투표제 도입에 명확한 의지를 밝혔다고 보긴 어렵고 민주당도 국회입법조사처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개헌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이부영 : 문재인 전 대표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단일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새누리당이 분당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들어와서 이른바 제3지대가 구체화되는 상황이다. 이런 속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당 안팎으로 다른 여러 대선 후보들을 껴안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를 어떤 방법으로 우군화, 중립화시킬 것인가? 그 길이 바로 결선 투표제다. 이런 현실적인 판단을 내부의 측근들이나 전략가들이 평가해 내면서 민주당 안에서도 결선 투표제에 대한 태도가 점차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온 안이 문재인 전 대표의 '야3당의 결선 투표제 논의'라고 본다.
안용흔 :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 여론조사에서 35% 이상의 지지도를 유지한다면 결선 투표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와중에도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25%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문 전 대표를 지지하는 열성 지지자인데, 중도층에 있던 사람이 문 전 대표에게 돌아서지 않고 있다. 문 전 대표도 자신에 대한 정치적인 호불호가 강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결선 투표제 도입이 본인의 한계를 넘을 제도적인 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기창 : 결선 투표제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가 약간 애매한 식의 입장을 지속한다면, 원칙보다는 계산만 골몰하는 구태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결선 투표제는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떠나서, 좀더 나은 정치를 경험하는 데 중요한 제도임을 알았으면 한다.
김진욱 : 참여연대가 최근 결선 투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오해를 살 수도 있고, 특정 시민들과 척을 질 수도 있지만, 장고 끝에 성명을 냈다. 늦어도 1,2월에는 도입해야 한다.
대선이 바뀌어야 지방선거, 총선도 바뀐다
김기창 : 단순 다수 득표와 결선 투표의 차이가

▲ 김진욱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이부영 : 한반도에 엄습해오는 안보, 경제 위기를 보면,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지금처럼 대결과 배제의 정치가 아닌, 화해와 타협과 연합의 정치로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존립 근거가 없어진다. 그 제도적 출발이 결선 투표제다. 결선 투표제로 어느 한 승자가 있더라도 여러 정당이 공존하며 정권을 공유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남북 간 심각한 위기가 왔을 때는 대연정도 해야 한다. 이 문제와 촛불 시민 혁명의 뜻을 받아들이자는 뜻에서 18세 선거 연령 인하는 정언명령이다.
안용흔 : 결선 투표제는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대립하는 것을 포용의 사회로 감쌀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을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도 자각해주기를 바란다. 단기간의 정치적 유불리에 대한 계산을 내려놓고, 한국 사회의 정치 발전, 국가 발전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곰곰이 생각해서 결단을 내려주면 좋겠다.
김진욱 : 정치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우리나라 정당이 제대로 서야 하는데, 지금같은 상태로는 너무 어렵다. 이번 기회에 대통령 결선 투표제를 실현하자. 대통령 선거가 바뀌어야 시장 선거, 도지사 선거도 바뀐다. 사람들 의식구조가 그렇다. 전반적으로 민주적인 제도로 나아려면, 대통령 선출 방식에 대한 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