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박근혜-최순실, <밀회> 그리고 <출생의 비밀> - 박근혜가 '박정희'를 죽였다. 대안은?

일취월장7 2016. 11. 16. 14:58

박근혜-최순실, <밀회> 그리고 <출생의 비밀>

[헬조선 경제학] <밀회>, <출생의 비밀> 그리고 <21세기 경제학>
    
2016.11.16 11:06:35


한국은 서방 7대 자본주의 강국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원화 가치 변동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2015년 말에 2만7000달러를 넘었으며 2016년 말에는 3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5년에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벌어들인 소득이 6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원화 기준으로는 처음 3000만 원을 넘었지만 원화 가치가 떨어지며 3만 달러 고지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2015년 국민 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달러화 기준 2만7340달러로 2014년보다 2.6% 줄었다. 1인당 GNI가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원화 가치가 떨어진 영향이 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연 평균 7.4%포인트 상승한 바 있다. 원화 기준으로 1인당 GNI는 전년 대비 4.6%포인트 늘어난 3093만5000원으로 3000만 원을 처음으로 웃돌았다. 가계 구매력을 나타내는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은 1756만5000원으로 1년 새 4.7% 증가했다.)

정부와 언론은 우리나라가 곧 '3050' 그룹, 즉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이면서 동시에 인구 규모가 5000만 명이 넘는 나라에 속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5000만 명 넘으면서 동시에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6개국뿐인데 여기에 한국이 합류할 경우 7개국으로 늘어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종합적인 경제력은 세계 7위권이다. 

한국의 종합적인 과학기술 능력은 세계 7위권이다. 특히 국내 총생산(GDP) 대비 과학기술(R&D) 투자액의 비율은 4.3%(2014년)로 세계 1위이며 세계 2위인 스웨덴의 4%보다 높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2~3% 가량이다.)

연구개발(과학기술) 투자의 절대 액수 역시 세계 6위로 이탈리아를 앞서고 있다. 또 기업 부문에 한정해 보더라도,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 비율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3.4%로 세계 1위이다. 기업 부설 연구소가 3만5000개에 달할 정도로 민간 기업에서의 기술 능력이 높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가 생산하는 제품들의 기술 및 품질 수준은 이미 글로벌 선진 업체의 그것과 비등해졌거나 어떤 영역에서는 더 앞서고 있다.

또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9위권이다. 세계 106개국의 무기와 병력, 국방비 등을 평가하는 웹사이트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 Power)는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한국을 세계 9위로 평가했다. 

또한 현대 군사력의 핵심인 군사 과학기술 면에서 한국은 세계 9위이며 이탈리아(10위)보다 앞섰다(<2015 국방 과학기술 수준 조사서>(국방기술품질원 펴냄)). 참고로 군사 과학기술의 세계 순위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중국, 이스라엘, 한국, 이탈리아 순인데, 즉 군사 과학기술 면에서도 한국은-러시아와 중국, 이스라엘을 제외할 때-서방 G7에 속하는 강국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2006년에 이어 2012년에도 한국의 종합 국력을 세계 9위로 평가했다. 또한 그 동안 '선진화' 담론을 이끌어온 한국의 '한반도선진화재단' 역시 2015년에 한국의 종합 국력을 세계 9위로 평가했다. 세계의 강대국 순위는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일본, 4위 인도, 5위 독일, 6위 영국, 7위 프랑스, 8위 러시아이다. 러시아 다음의 세계 9위가 한국이다.

주목할 점은 서유럽의 이탈리아, 북미의 캐나다의 국력이 한국의 그것보다 낮게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와 캐나다는 그간 서방 7개국 정상 회담(G7)의 일원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강대국 행세를 해왔다. 이렇듯,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이제 G9 또는 서방 G7에 속해 마땅한 강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국을 약소국으로, 개발도상국으로 여기는 사고관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먼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강국인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최강국에 속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에 비교할 때 한국은 경제력 또는 군사력 등에서 열위이다. 

하지만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끝이 아닌 서유럽의 한가운데 속한다고 상상해보라. 서유럽에서 인구 5000만이 넘는 나라는 영국(6000만)과 프랑스(6000만), 독일(8000만), 이탈리아(6000만) 뿐이다. 스페인(4000만), 네덜란드(2000만), 스웨덴(1000만) 등이 있지만 모두 인구수에서 한국보다 적다. 

물론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는 서유럽 평균(4만 달러)보다 아직 적다. 그렇지만 인구수와 그에 따른 경제력의 전체적 규모는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아직 8000달러(2015년)인데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초강대국 취급을 받는 것은 그 인구수 때문이다. 인구 규모와 함께 전체적 경제력과 과학기술 능력, 군사력 등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서유럽에서 바로 이탈리아를 제치고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 이은 서유럽 4대 강국으로 떠오른다. 

한국은 자본주의 7대 강국 

이제 한국은 세계 7대 자본주의 강국이다. 우리나라의 야권과 진보는 이러한 명명백백한 사실에 상응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새롭게 일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를 전근대 또는 반(半)봉건 사회 하물며 '식민지 반(半)봉건 사회'라고 보는 관점을 내던져야 한다. 한국은 1960년대 이래 근대화와 공업화 즉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공업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라에 속한다. 

그것은 매판적 또는 종속적(예속적) 산업화가 아니라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산업화였고 그 결과 자립적인 한국 자본주의가 세계 시장에 등장하였다. 오늘날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족 자본(national capital)'으로서 삼성과 현대자동차, LG와 SK 같은 재벌계 대기업들과 그리고 포스코 같은 과거 국영 기업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에 있어 민족주의(nationalism)의 과제는 자본주의자들(capitalists)에 의해, 특히 대자본가들(big capitalists)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자본주의적 민족주의(capitalistic nationalism)가 성공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자본주의적 민족'으로서의 한국인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문화적으로는 한류(韓流) 열풍이다.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한류 자체가 상업적 즉 자본주의적 기획사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한류의 내용 역시 매우 현대적=자본주의적=물질적으로 바뀐 한국적=민족적 문화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근대화 즉 자본주의적 산업화(특히 자립적 산업화)가 덜 된 태국(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방문해서 한류 드라마에 등장하는 현대적 한국인의 삶(주로 부유층의 삶에 관한 것인데)을 동경하는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은 전근대 사회이며 한국을 지배하는 삼성그룹 역시 봉건적 기업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만약 한류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유층과 재벌 일가의 상류층 문화('갑질' 문화도 포함)가 '전근대적 봉건성'의 증명이라면,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부유층의 그것은 전근대보다도 못한 미개 야만 국가의 그것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런 말을 듣는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인은 아마도 모멸감을 느끼거나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한국인을 자기 나라의 '치부'에 몰두해 과장을 일삼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특권, 자본주의적 갑질 

앞서 보았듯이 모든 통계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에 이르는 20년간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는데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 그런 것일까?

자유주의(liberalism) 또는 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의 근대성을 신뢰하는 야권의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여전히 덜 완성된 근대화 즉 덜 완성된 고전적 자유주의를 지목한다. 

한국 경제에서는 여전히 과거 개발 독재 중상주의(mercantilism)의 유산인 재벌그룹 체제와 관치 경제의 지배가 유지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빈부 격차와 갑을 관계(갑질) 같은 온갖 경제사회적 충돌과 대립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벌그룹 개혁과 관치 경제 타파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개혁, 즉 서방 선진국들이 17~19세기에 수행한 고전적 자유주의 개혁을 수행하는 것이 21세기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 발전 단계 즉 중상주의, 또는 봉건제 말기 단계에 상응하는 역사적 진보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한 역사적 진보를 내용으로 하는 경제 철학을 자유주의적 진보 즉 진보적 자유주의라 부른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고전적-개혁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평등적 자유주의 입장에 서있는 이들 야권의 논자들은 한국 경제를 여전히 '근대화-합리화-시장화'가 덜 된 사회로, 한마디로 말해서 시장 자본주의가 덜 발전한 경제로 보며 따라서 '합리적 시장' 즉 시장 자유주의의 원리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의 경제 구조 개혁, 즉 자본주의를 더욱 자본주의답게 만드는 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말한다. 깨끗하고 투명한 자본주의, 약간의 복지와 약간의 노동권+인권을 가미하되, '공정한 시장 질서 즉 경쟁적 시장 질서'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capitalism)가 이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기본적 대립선 즉 모순을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중상주의' 즉 재벌그룹+관치 경제 vs. '투명하며 경쟁적인 공정 시장 자본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사고하는 자유주의의 기획이 무엇을 낳았던가? 그들의 구상과 기획은 실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거의 모두 실시되었다. 

자유주의적 경제 관료와 그들이 협력하여 진행한 '시장 개혁'이 바로 깨끗하고 투명한 공정 시장 자본주의로의 전환이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 투명하고 깨끗해졌다. 분명 좋은 일이며 훌륭한 성과였다. 박수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것과 동시에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다. 

'착한 투명한 자본주의'라는 가면을 내걸고 자본주의다운 자본주의가 등장했다. 노골적인 이윤추구와 금융 투기 재테크, 저임금의 아르바이트(알바)-비정규직 증가와 '삼포 세대' 청장년, 노인 빈곤층의 증가와 같은 전형적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 현상이 도처에서 출현했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다워질수록 그 경제가 인간과 자연을 더욱 착취한다. 그리하여 부익부빈익빈과 함께 환경 파괴가 심화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목격되는 불평등 심화와 가진 자들의 갑질의 배경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의 심화가 있다. 약자인 을(乙)에게 가해지는 갑(甲)들의 횡포와 착취는 대한항공과 남양유업 같은 대기업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영세 기업, 동네 카페와 동네 마트의 주인들이 그 종업원과 알바생에게 가하는 횡포와 착취, 인권 유린과 약탈 같은 갑질 역시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없는 자들, 종업원들에 대한 약탈과 갈취가 전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바, 이것은 명백한 자본주의적 갑질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를, 그것의 고유한 본성인 갑질 횡포를 비판하는 관점에 서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이 나라 역사의 진보를 이루어낼 수 없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말하는 것 

노무현 대통령 치하였던 10여 년 전에 박세일을 필두로 하는 일단의 보수 지식인이 '선진화'라는 담론을 제기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라는 싱크탱크가 만들어졌고, <대한민국 선진화론>이라는 책도 발간되었다.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은 선진화 담론에 열광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정부도 선진화를 주요 국정 어젠다로 제시했다. 손학규 등 일부 야권인사들도 동조했다. 

그런데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 다루는 대상은 21세기의 미국과 독일, 프랑스와 스웨덴 같은 선진국들이다. 그런데 그는 그 책에서 20세기 후반부터 그 선진국들에서 빈부 격차 심화와 함께 부와 소득의 세습 계급화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가난한 개발도상국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선진국들에서 19세기 자본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가 열렬히 비판했던 것처럼, 그리고 미국의 수천만 20대 청년들이 열광적으로 동의했던 것처럼, 21세기 미국 자본주의는 미국의 중산층 서민들에게, 특히 청년들에게는 지옥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헬조선'의 지옥도 풍경은 '천조국' 미국에서 이미 1980년대 초중반부도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헬조선'은 '헬미국'의 복사판이었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보다 훨씬 투명하고 합리적인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 등 서방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빈부 격차와 세습 계급 부활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선진화' 또는 '정상 국가화' 담론이 이 나라 야권과 진보의 담론으로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헬조선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봉건적이고 중상주의적, 전근대적인 재벌 그룹과 관치 경제로 온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21세기 선진국의 모습으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로 전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천조국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빅토리아 자유주의의 원리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원리가 경제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철되고 있다. 불평등 심화, 부와 소득의 세습계급화는 그 결과의 하나일 뿐이다. 

현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특권 세습 귀족  

한국은 서방 자본주의 7대 강국이며 선진국 초입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것과 함께 빈부 격차와 갑질 횡포, 부와 소득의 세습 계급화 심해지고 있다. 천조국 미국과 비슷한 모습으로 전환하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전근대적 또는 봉건적 현상 또는 중상주의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자본주의적 갑질, 자본주의적 착취, 자본주의적 세습 계급화이다. '돈이 돈 버는 원리'와 '돈 가진 자가 주인'이라는 원리, 적나라한 자본주의의가 유일무이한 통치 원리로서 작동하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졌다. 돈 없는 자들, 돈 없는 부모 만난 자들에겐 지옥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TV 드라마와 사건, 사고 뉴스에서 듣고 있는 가족 간 불화와 사회적 충돌은 어떤 라인(line)을 따라 발생하고 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라.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와 한국 경제를 앞으로 크게 뒤흔들 대지진은 앞으로 어떤 단층선(폴트라인: fault lines)을 따라 진행될 것인가를 살펴보라. 

< 출생의 비밀>과 <밀회> 같은 TV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한국 사회 부유층과 특권층이 과연 '전근대적 재벌 오너 패밀리들'과 '전근대적 국가 관료들'이란 말인가? 그들만이 갑질하는 특권층으로 묘사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 드라마들에 묘사되듯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우리 주변의 가족적, 사회적 불화와 대립의 갈등선은 국민의 0.001%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한줌도 안 되는 숫자의 전근대적 재벌과 경제 관료 특권 세력과 나머지 전체 사회 계급·계층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재벌 일가와 경제 관료가 아니더라도 특권자들은 곳곳에 존재한다. 박근혜와 정유라-최순실, 장시호-최순득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 드라마 <출생의 비밀>과 <밀회>를 상상해보라. 게다가 성공한 중견 기업인과 성공한 벤처 기업가들, 성공한 부동산-주식 재테크 투자자들, 그리고 교수와 언론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로 성공한 이들 역시 스스로를 특별한 신분으로, 부유한 신분으로 의식하고 행동한다. 

이들 역시 재산이 수십억~수백억 원에 달하는 상위 1% 부자들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서 승진한 386 세대와 386 정치인 역시 일종의 특권적 신분으로 바라본다. 이들 역시 재산이 10억, 20억 원이 넘는 이들이며 상위 2% 이내의 부자들이다.

이들 상위 1%와 나머지 99%, 또는 상위 5%와 나머지 95% 사이에는 점점 더 넘지 못할 벽, '넘사벽'이 세워지고 있다. 양자 간에는 더 이상 신분 이동 즉 신분의 상승 또는 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 말고는 달리 신분 상승 또는 계급 상승할 방법이 없다. 부와 소득이 세습화되고 있고, 계급 질서가 부활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TV 드라마에서 묘사되고 매일 매일의 뉴스에서 보도되는 우리 주변의 온갖 불화와 충돌, 그리고 범죄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임박한 대지진의 단층선이다. 그 대립선은 전근대 대 근대의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자본주의적인 갈등선이며, 더구나 시장 자본주의(market capitalism)가 매일 매 순간마다 더욱 그 간격을 넓히고 있는 갈등선이다. 문제시되는 것은 전근대적 특권이 아니라 매우 자본주의적인 특권이다.

'최순실-정유라와 최순득-장시호' 주연의 <출생의 비밀>과 <밀회>

자본주의적 특권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 대 노동 간의 대립,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간의 대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문제를 협소하게 만든다. 자본가 계급이란 누구인가? 노동자 계급이란 누구인가? 과연 펀드 매니저와 재테크 개미 투자자들(여기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포함되는데)을 하나의 자본가 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연봉 7000만~1억 원의 현장 노동자 및 은행 직원들과 연소득 1500~3000만 원의 알바-비정규직 또는 영세 기업 노동자들을 하나의 노동 계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서로 연대 의식을 가지면서 '우리는 하나의 노동 계급'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충돌과 갈등의 선은 '노동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라는 개념과 담론으로 환원할 수 없다. 훨씬 더 넓은 담론, 넓은 프레임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로 직장 내에서의 기업주-경영자 vs. 직원-노동자 간의 대립으로 파악되는 자본-노동 간 계급 대립의 프레임은 취업자들의 정규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오늘날 21세기 자본주의에서는 미취업 청장년과 노인들, 여성들이 넘쳐난다. 하도급 업체로 위장된 저임금 착취형의 일자리도 넘쳐난다. 

정리 해고와 명퇴, 저성과자 일반 해고로 인해 정규직 노동자 지위 즉 노동 계급에서 이탈한, 하지만 노동 계급보다도 가난한 영세 자영업자도 넘쳐난다. 천조국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부동산-주식 재테크에 성공한 정규직 월급쟁이들(노동 계급)도 많으며 아예 직장(노동 계급 지위)을 내던지고 부동산-주식 재테크에 전업적으로 나서는 자들도 많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선진국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벌어지는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보다 넓은 개념과 담론적 프레임이 있다. 프랑스 사람인 토마 피케티가 자신의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을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이 아니라 일종의 '자산' 개념으로서 이해한 것은 '자본가 계급'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자산가 계급)이 오늘날의 21세기의 세계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에 해당되는 우리말이 있다. 바로 '가진 자들' 또는 '있는 놈들'과 그리고 '못가진 자들' 또는 '없는 놈들'이다. 순수 영어의 'the haves'와 'the have-nots'에 해당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산업 자본주의의 시대에는 노동 계급과 자본가 계급, 그들 사이의 대립이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 시대, 재테크 원리가 지배하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시대에 일어나는 계급 간 대립은 부르주아(자산가=유산자)와 프롤레타리아(비자산가=무산자) 간에 형성된다.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한 알바와 비정규직, 그리고 중소-영세 업체 노동자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프레카리아트 즉 불안정 프롤레타리아라는 신개념이 유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이 학문적으로도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부르주아와 프레카리아트 간의 대립이 오늘날의 자산가 자본주의, 19세기 빅토리아 자본주의의 21세기 부활을 설명하는 더욱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계급 개념임을 보여준다.

금융 자본주의, 재테크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capital)이 아니라 자산(property)의 소유 유무가 인간적, 사회적 차별의 근원이 된다. 자산에는 부동산과 유가 증권(금융 자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학력과 학벌 역시 상속된다.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자신들만의 사립학교와 자사고 특권을 만든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부와 재산을 학력과 학벌을 통해 상속한다. 

재벌 일가와 고급 관료들을 포함하여, 모든 부자들이, 즉 대한민국 상위 1%의 가진 자들이 자신의 재산과 소득, 그리고 학력을 상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대대손손 물려주어 세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유럽 19세기 빅토리아 자유주의 시대의 모습이 21세기의 한반도 남쪽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부활한 것이다.

이것이 <밀회>와 <출생의 비밀> 같은 인기 TV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사회적, 가정적 대립과 갈등의 소재들이다. 자산가 부유층은 자신의 부르주아 지위를 유지하고자 분투하면서 행여 자기 자식들이 프레카리아트 지위로 추락할까 두려워한다. 반면에 다른 방법으로는 신분 상승, 계급 상승이 힘든 프레카리아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즉, 출생의 비밀 위조를 포함하여-귀족적 특권 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이번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최순실-정유라와 최순득-장시호의 출생과 그간의 행적을 둘러싼 각종 비밀과 의혹들은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출생의 비밀>과 <밀회>의 드라마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가 '박정희'를 죽였다. 대안은…

[최장집의 진단] "탄핵하고, 박근혜 없는 미래 비전 찾자"
    
2016.11.15 15:37:19



"박근혜 없는, 그 이후의 한국 사회를 위해 우리는 어떤 비전을 가질 수 있나?"

평생 한국의 민주주의 연구에 몰두해온 노(老)정치학자의 무거운 질문이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는 15일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가 주최한 토론회의 강연 원고를 이 질문으로 시작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퇴진' '탄핵'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일 게 아니라 "박근혜 없는" 한국 사회의 비전을 찾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국회, 당장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아야" 

우선 최장집 교수는 현 시점에서 국회가 해야 할 역할로 "탄핵 절차를 밟을 것"을 주문했다.

최장집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민주 정부로서 정당성을 상실했고, 도덕적 권위 또한 땅에 떨어졌다"며 "정치적, 외교적,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등 거의 모든 영역과 수준에서 사실상 나라를 파탄에 이르게 한 무책임과 실정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광범위하고 격렬하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사태가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은 공정하지 못한 분배와 사회적 양극화, 그로 인한 시민 다수의 배제와 성장 혜택으로부터의 소외를 확대 재생산해 온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무책임과 무능력에 (근본) 원인이 있다"며 "정부 실정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지 않았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도) 이렇듯 지지의 철회와 비판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국회가 헌법의 정신과 규범을 따라 헌정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에 대한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시민의 분노한 요구에 부응하면서, 마비 상태에 놓인 정부를 대신하여 헌정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최장집 교수는 한국의 정치인에게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최 교수는 "정당과 정치인이 광장에서 시민의 분노에 동참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통치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주저하거나 전략적으로 행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지금 그들은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수동적 내지 전략적으로 행위하는 데 전념하는 듯 보인다"고 꼬집었다.

최 교수는 "국가의 최고 행정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절대 다수의 국민들에 의해 통치에 필요한 권한과 능력이 부정당했다면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는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 국회가 우선해야 할 일로 "헌법에 따라 탄핵 절차를 밟는 일"을 꼽은 것이다. 

"'헌정 공백' 상태, 대선 주자의 능력 평가할 시험대" 

최장집 교수는 현재 상태를 "헌정 공백" 상태로 규정했다.

최장집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는 대통령과 집행부가 일시에 무력화돼 국정이 마비되고 헌정 공백이 생긴 경험을 가져본 적이 없다"며 "이때 국가의 어느 부분 내지 누가 통치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헌법이 규정하는 분명한 제도가 없거나 애매하다는 점에서 오늘의 상황은 '헌정 공백'"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헌정 공백 하에서 국회가 다음 대통령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때까지 의회 내에 집행부 기능을 갖는 과도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충분한 헌법 이론적 근거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즉,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를 밟는 일"과 동시에 선거를 위한 국회 중심의 과도 내각을 구성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최 교수는 "탄핵 절차에 우선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를 개최해 모든 시민이 이 문제를 놓고서 심도 있고 폭넓은 정보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더 나아가 그는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조사위원회 또는 특검을 설치하고 조사하는 일에 착수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공정한 평결에 대한 의문을 놓고서 최 교수는 "그 결과가 어떠하든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국회가 얼마나 헌법 공백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헌법재판소가 얼마나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할 것인지가 명백히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최 교수는 "대통령 선거까지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대선 주자로 일컬어지는 주요 정치인은 헌정 공백과 탄핵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놓고서 자신의 관점과 대책을 내놓을 훌륭한 기회를 갖는다"며 "이 과정에서 대선 주자의 능력도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견제 받지 않은 권력, 박정희 패러다임 맨얼굴 보여줘" 

최장집 교수는 지금과 같은 '헌정 공백'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박근혜 정부가 고집해온 "박정희 모델 또는 박정희 패러다임"을 꼽았다. 

최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파탄은 1960~70년대 시행되고 완성된 권위주의적 산업화 또는 경제 성장 모델 즉 박정희 모델 또는 박정희 패러다임이 그 시대적 역할을 다했음에도 그것을 부활시키고 재현하려 했던 국가의 구조와 그 운영 원리의 시대착오적 성격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했다. 

최장집 교수는 박근혜 패러다임의 핵심 요소로 ① 관치 경제와 그 결과인 국가-재벌 대기업 동맹 ② 노동자와 노동 운동의 산업적 시민권 부정 ③ 자율적 결사체를 억압하고, 관변 단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시민 사회 축소 ④ 지방 자치를 통한 지역적 권력 분산 금지 ⑤ 반공 의식과 국가주의적 이념과 가치 강화 교육 등을 꼽았다.

최 교수는 "박정희 패러다임은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헤게모니를 가졌던 국가 구조와 운영 원리였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조차도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대안적 국가 운영의 비전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전제하고 나서, "박근혜 패러다임의 실체는 박근혜 정부에서 더 적나라하게, 또 조야하게, 노골적이면서 시행착오적인 형태로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말을 가져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야당과 시민 사회의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시점에 발생했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라고 환기하며, "견제되지 않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대통령의 엄청난 권력이 얼마나 쉽게 사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박정희 패러다임 해체, 민주화 이은 두 번째 대전환점" 

최장집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무력화/붕괴가 가져온 가장 큰 의미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해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개혁적 야당이나 과거 민주 정부마저도 대체하지 못했던 박정희 패러다임이 사실상 해체되었다"며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민주화를 통해서도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았던 역사적인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화에 이은 두 번째 정치적 대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렇게 넓게 열린 공간, 예기치 않게 다가온 구질서의 치명적 약화 내지 해체가 밖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할 수 있고, 안으로는 민주주의 가치와 원리에 잘 부응하는 정치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귀결될지, 아니면 위로부터의 개혁의 방식으로 구질서를 다른 형태로 복원하게 될 것인지('수동 혁명')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그것은 정당과 정치인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앞당겨질지도 모르는 앞으로 다가올 대선은 지난날의 대선과 달리 박정희 패러다임이 수명이 다한 이후 한국의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큰 문제를 둘러싼 어젠다 사이의 경쟁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목소리 높였다.

"사익에 기반 둔 정치 공학적 개헌, 불필요" 

한편, 최장집 교수는 '개헌'을 둘러싼 최근의 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최 교수는 "헌정 공백을 처리하는 과정과 다가오는 대선 정국이 개헌에 대한 논쟁과 서로 중첩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개인 정치인이 정치의 판을 흔들어 자신의 정치적 전략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개헌에 대한 편의주의적이고 정치 공학적 접근을 비판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개헌은 필요하면 할 수도 있고, 필요 없다면 안할 수도 있다"며 "개헌이 필요하다면 왜 필요하고, 오늘의 한국 정치 체제와 제도가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광범위한 토의가 선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한 뒤에야 우리는 본격적인 개헌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