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최순실 게이트’를 이해하는 다섯가지 쟁점

일취월장7 2016. 11. 2. 15:39


‘최순실 게이트’를 이해하는 다섯가지 쟁점

이제까지 제기된 최순실·차은택 관련 의혹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폭이 넓다. 박근혜 대통령의 강경 발언 이후 검찰이 수사팀을 늘렸지만 예전의 경험을 되짚어볼 때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공산은 크지 않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제476호




최순실·차은택 게이트에는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그리고 최순실씨가 설립한 회사들도 여럿 등장한다. 좀처럼 큰 그림을 파악하기 어려운 ‘최순실·차은택 게이트’를 핵심 쟁점별로 정리했다.



1. 기업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것 아닌가?


2015년 10월 미르, 2016년 1월 K스포츠라는 이름의 재단이 각각 설립되었다. 두 재단은 설립 목적만 봐도 ‘쌍둥이 재단’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미르재단은 ‘문화’, K스포츠재단은 ‘체육’을 매개로 “‘국민행복은 국가발전’을 목표로 창조문화와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는 문구가 똑같이 실려 있다. 주소도 서울 강남구 논현동으로 걸어서 10분 거리다.

이 미르재단에 삼성·현대·SK·LG 등 16개 그룹이 486억원을 냈다. K스포츠재단에도 19개 그룹이 288억원을 냈다. 합치면 774억원, 약 800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모금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했다. 두 재단의 이사 명단에 전경련 출신은 없었다.

ⓒ연합뉴스
10월12일 국정감사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신생 ‘쌍둥이 재단’에 대기업들이 거액을 출연한 이유는 ‘정부’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전경련은 모금 창구이고, 정부에서 하는 재단으로 알고 돈을 냈다고 언론에 말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해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에서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금 활동에 관여한 사람도 구체적으로 지목됐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이다. 이에 청와대와 전경련은 기업들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해명했다. 안종범 수석은 10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순수한 자발적 모금이었다”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더구나 안종범 수석은 미르재단 인사 개입 의혹도 받고 있다. 4월4일 미르재단 이 아무개 전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현직 청와대 수석이 민간 재단 인사에게 전화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안종범 수석은 “통화한 것은 맞지만 인사 관련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10월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두 재단이 “재계 주도로 설립된 재단”이라면서도 자신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구상을 두 재단과 연결 짓고, 재단이 진행한 사업의 성과를 치켜세웠다. 박 대통령은 “(문화·체육 투자 확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기업인들과 소통하면서 논의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2월 기업인들을 모신 자리에서 문화 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부탁드렸다. 전경련이 나서고 기업들이 이에 동의해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라고도 말했다. 대통령 뜻으로 설립된 재단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발언이다. 두 재단 모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신청 하루 만에 설립 허가를 받았는데, 이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 좋은 취지이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


설령 정부 뜻에 따라 기업이 모금해 설립된 재단이더라도, ‘한국문화예술 브랜드 확산’ ‘체육을 통한 국위 선양’ 같은 사업의 구체적 목적에 기업들이 동참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두 재단의 이사들 면면을 들여다보면 낯익은 이름과 만난다. 최순실씨다.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애 시절’부터 가까웠던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박 대통령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씨의 전처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 앞에는 ‘비선 실세’라는 말이 붙는다. ‘몰래 어떤 단체 또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실제 세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된 박관천 전 경정은 2015년 1월 검찰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그간 비선 실세 논란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보듯 정윤회씨가 중심이었다. 이번엔 최순실씨가 의혹의 중심에 섰다. 두 재단을 실질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지난 5월 K스포츠재단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동춘씨는 최순실씨가 단골로 다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운동기능회복센터 센터장이라고 9월20일 <한겨레>가 보도했다.

ⓒ연합뉴스
10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은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는 지원하는 방식으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만들어졌다고 해명했다.
최순실씨가 재단 운영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9월20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일방적인 추측성 기사여서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최씨 모녀 소유의 ‘비덱’과 K스포츠 커넥션이 불거지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K스포츠재단이나 미르재단이 최순실씨 개인 이익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더블루케이가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일감을 따낸 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조 공문’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더블루케이 설립 3개월 전인 지난해 9월 “장애인 체육팀 창단에 에이전트를 활성화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고, 이에 장애인 펜싱 선수팀 창단을 준비하던 GKL이 올해 5월 설립 5개월도 지나지 않은 더블루케이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전직 펜싱 선수인 더블루케이 고영태 이사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크다.

최순실씨 개입 의혹이 이는 건 K스포츠재단뿐 아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두 재단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며 “과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취임식 당시 대통령께서 입었던 340만원짜리 한복을 미르재단 김영석 이사에게 직접 주문해 대통령에게 전해준 당사자”라고 주장했다. <JTBC>는 10월18일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의 말을 빌려 최순실씨가 미르재단에서 ‘회장님’으로 불렸고, 이 재단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였다고 보도했다.



3. 차은택 감독은 능력 있어서 쓴 것 아닌가?


최순실씨 외에 미르재단을 움직인 현 정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이가 바로 차은택 CF 감독이다. 차은택 감독은 이승환·이효리·싸이·빅뱅·2NE1·티아라 등 뮤직비디오 200여 편,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 나오는 SK텔레콤 ‘붉은 악마’ 시리즈 등 CF 800여 편을 찍었다.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 문화융성과 관련된 일에 기여한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
9월20일 미르재단이 입주한 건물의 관리인이 취재진의 출입을 막기 위해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의혹을 보면, 적어도 ‘문화융성’에 관한 한 차은택 감독의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우선 미르재단의 등기부등본 어디에도 그가 이사로 이름을 올린 바 없다. 재단 공식 직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재단의 초대 이사장과 이사 전원이 차은택 감독과 잘 알거나 함께 일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김형수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은 그의 연세대 대학원 스승이다. 이 재단 장순각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이한선 전 HS애드 국장, 이성한 전 사무총장도 차 감독이 추천했다. 차 감독은 <매일경제>에 “뜻도, 사업 방향도 좋았고, 존경하는 분이 이사장님(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이 되셔서 일할 수 있는 몇 분을 추천해드린 게 일이 크게 번졌다”라고 해명했다.

그의 해명대로 선의의 추천이 괜한 오해를 산 걸까? 미르재단 사무실 계약은 2015년 10월24일 차 감독의 절친한 후배 김성현씨가 했다. 사흘 뒤인 10월27일 미르재단이 설립되었다. 김성현씨는 당시 자신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광고회사 ‘모스코스’(후에 유라이크커뮤니케이션즈로 이름을 바꿈)를 미르재단 설립 사흘 뒤인 2015년 10월30일 해산했다. 이 회사는 대통령이 임기 후반 3년 동안 국민 1000명을 만나 소통한다는 계획이 담긴 ‘국민을 향한 천 번의 걸음-천인보’라는 기획안을 만들기도 했다.

이 모스코스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은 김홍탁씨는 2015년 1월 세워진 광고회사 더플레이그라운드의 대표이사로 2015년 3월 취임한다. 그런데 김홍탁씨가 차은택 감독을 통해 회사 대표를 맡게 되었다며 “돈을 대줄 물주는 있는 거지. 재단, 재단이래 재단”이라고 2015년 3월 말했다는 녹취가 있다고 JTBC가 보도했다. 이로부터 7개월 뒤 미르재단이 설립됐다. 이후 더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 당시 K스포츠재단의 태권도 시범단 행사를 담당해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하면, 미르재단 설립과 운영의 배후에 차 감독이 있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시사IN 이명익
10월19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특혜 입학과 성적 부정처리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에 이화여대 교수와 학생 3000여 명이 참여했다.
2014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시연한 늘품체조도 차 감독이 정 아무개 헬스트레이너를 김종 문체부 2차관에게 소개해준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문체부 상황을 잘 아는 한 고위 관계자는 “그때 ‘차은택이 봐주면 (윗선에) 통과된다’는 소문이 막 돌았다”라고 <시사IN>에 말했다. 이후 차 감독은 창조경제추진단장 및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을 맡았다. K스포츠재단 고영태 이사가 차 감독과 최순실씨의 연결고리라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여서, 단순히 능력 있는 인재를 기용한 정도에서 문제가 끝날 가능성은 적다.



4.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는 금메달을 땄으니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유라씨는 국가대표 승마 선수다. 2014년 9월20일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정씨가 지원한 이화여대 체육특기생 마감일은 9월16일이다. 당시 이화여대 수시모집 요강은 “원서접수 마감일 기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개인종목 3위 이내”로 입상 실적을 제한했다. 정씨가 금메달을 딴 것은 마감일 4일 뒤였고 개인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이었다. 평가에 참여한 한 교수는 “당시 입학처장이 평가자들에게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모집요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2013년 5월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교수회의에서 특기자 종목을 확대하기로 결정해, 2014년 7월 체육특기생 종목에 승마가 포함된 이후 첫 합격생이자 개교 이래 첫 승마 특기생이다.

합격 후에도 정씨는 교수들한테 특별대우를 받았다. “구보는 3절 운동이다. 마음속에 메트로놈(음악의 박자를 나타내는 기구)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된다” “해도해도 않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추천하지 않음. 맞춤법은 원문 그대로)” 따위 표현이 포함된 8장짜리 리포트를 이메일로 제출하고 B학점을 획득했다. 지난해 ‘체육과학부 실기우수자 학생들에게 대회 실적이나 과제물 등을 참고해 최소 B학점 이상을 주라’는 지침을 새로 만든 덕이었다. 여름 계절학기 과목에서 특혜를 받은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사퇴했지만 “특혜는 없었다”라고 주장하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5. 개인 비리가 있었다면 수사해 처벌하면 되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은 10월20일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못 비장한 말투였지만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의혹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재단 운영 개입’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 뜻에 따라 대기업 모금으로 설립된 재단이,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한 사인의 이익 추구에 이용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최순실씨와 관련된 증언에는 청와대가 있다. 최씨가 재단 핵심 관계자들에게 “VIP의 관심 사항”이라고 하면서, 더블루케이의 ‘블루’는 청와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심지어 최순실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는 주장까지 보도됐다.

이런 주장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주장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 스타일과 관련이 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고리 삼인방’ ‘정윤회 파동’ 등 비선 실세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유명 헬스트레이너 윤전추씨의 청와대 행정관 기용에도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 역시 맥을 같이한다.

10월20일 박 대통령의 ‘강경 발언’ 다음 날 검찰은 수사팀을 5명으로 늘렸다. 언론은 ‘수사 확대’ ‘급물살’ 따위 제목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그동안 비선 실세 의혹 논란이 검찰에 가서 처리된 과정을 보면 이번에도 수사 전망은 밝지 않다.


최순실·박근혜 넘어, '기득권 카르텔'을 저지하자
2016.11.01 10:59:00

[민교협의 정치시평] 최순실 사태의 본질은?

하루가 멀다 하고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 그리고 이들을 앞세운 세력들의 국정농단과 비리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기세등등했던 준(準)권위주의 정부는 연이어 터져 나오는 증언들과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공황 상태에 빠졌지만, 곧바로 대오를 정비하고 조직적으로 개입하며 최순실 관련자들을 대거 귀국시키는 등의 조치를 통해 국면 전환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을 개, 돼지로 아는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하기 어렵게도, 최순실은 귀국 직후 구속이 아니라 정부 당국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전히 저들의 권력은 새파랗게 살아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 일부가 박근혜 정권을 버리는 전략으로 돌입한 것은 맞지만, 이 정권과 그 배후 세력들이 쉽게 권력을 포기할 자들이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현재 대통령은 청와대와 정부 내 주요 인사들을 사임시키고, 검찰은 이들 자택과 사무실 등은 물론 청와대까지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많은 관련자들을 이미 수사하고 있다. 거대한 기획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시간을 벌고 사태를 조작할 수 있는 힌트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국 중립 내각 구성안을 역으로 제안했다. 이 거대한 기획이 정치권에서도 작동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통령이 국가 붕괴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하야하도록, 야당과 시민사회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자진 하야가 아니면 탄핵 외의 다른 방법, 특히 거국 중립 내각과 같은 방법은 전혀 대안이 될 수 없다. 현재 드러난 사안들만으로도 다른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이미 사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사임을 거부했다면 야당과 민중은 탄핵을 위해 거세게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땅의 야당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득권 카르텔'은 최순실, 박근혜보다 더 공고하다 

현재 하야냐 탄핵이냐의 논쟁은커녕 주요 야당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는 국면이다. 그러나 반드시 관철해야 할 역사적 임무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최순실을 비롯, 국정을 유린한 소위 비선들과 같은 당사자는 물론, 새누리당과 새누리당에게 직간접적으로 부역한 집단에 철저한 응징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인지하고도 은폐하고 협박하기 바빴던, 정권의 주구를 자임해 왔던 수사와 감찰 단위에 대한 처벌도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고 여러 가지로 자격이 없는 자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과 특권을 마음 놓고 취한 이 땅의 다양한 보수 기득권 카르텔 세력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이 필요하다. 그 카르텔에는 일각에서 주장하듯 재벌과 같은 자본 세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직접적으로는 새누리당 안팎의 정치가들이 있다. 또 국정원과 검찰을 비롯한 각종 국가 기구 관료들, 언론인들, 교수들, 종교인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과 인맥과 혼맥, 지연과 학연 등으로 얽혀 우리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부정의한 특권을 강화하고 있는 각종 기득권 지배 세력들이 있다. 

늘 강조하듯 현실 사회에서 보수 정치 세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보수 세력이라는 것은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거나 기존 사회 체제 유지를 통한 안정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 같지 않다. 탐욕과 특권의 독점적 확보와 확대를 추구하는 기득권 지배 세력에 불과하다. 즉 정치 사회의 보수 정당 세력은 이 사회 지배 집단의 이익을 반영하는 세력들 중 일부분일 뿐이다. 그들은 부를 독점하고 착취하고 지배하고 있는 실제 세력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해 오고 있다. 그리고 이 헤게모니 하에서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집단과 오랜 기간 세뇌된 집단들이 있을 뿐이다. 

서구에서 그 집단들은 끈질긴 저항, 사회주의 국가 탄생 등 위협으로 인해 타협을 했다. 그리고 일정 부분 양보하며 제도적으로 통제당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비중심부, 비서구 국가들은 이런 통제 장치가 없다. 자신들 외의 힘과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같이 하며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 보수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현재 충격적이라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이 땅의 지배 기득권 세력들 중 상당수는 최순실 등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최순실 일당의 권력 남용과 이익 독점 정도가 너무 심해 그들 내에서도 불만 세력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어느 수준까지 폭로될 것인가' 부분이었다. 권력 누수 현상이 심화되고 넓은 의미에서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확실하게 든 순간부터, 그들은 갑자기 돌변하기 시작했다.  

단임제 하에서, 우리 사회의 진짜 지배 기득권 세력에게 있어서 박근혜나 최순실과 같은 이들은 필요에 따라 쓰여지거나 버려지는 도구에 불과하다. 넓은 의미에서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게 보일 경우 얼마든지 이들은 버려질 수도 있다. 단지 넓은 의미에서 이들은 같은 배를 타고 있으며 일정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통제를 벗어난 필요 이상의 권력 투쟁으로 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 강도를 조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그 선봉에 <조선일보> 등 여론을 주무를 수 있는 집단이 있다.  

우리가 반드시 각인해야 할 것이 있다. 박근혜 비판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조선일보> 등을 보며 '그들 내부에 분열이 일어났다', '보수도 등을 돌렸다'고 환호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박근혜 카드를 완전히 버린 것도 아니다. 이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검찰 조사도 안 된 상태에서 어마어마한 정보들이 각 언론사들에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들은 비판을 하지만 그 타겟은 최순실, 우병우, 정호성, 안종범 등등에게 맞춰져 있다. 본질을 흐리는 이들의 전략은 매우 교활하기 이를 데 없다.  

대통령의 '퇴진'이 먼저, 그리고 '기득권 카르텔'을 해체해야

따라서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반드시 다양한 기득권세력들의 특권적 권력 박탈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설사 대통령의 하야와 새누리당의 해체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조치가 없을 경우 유사한 상황은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또한 현재 최순실 일당에게만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세간의 관심에 대해 우리는 조금 긴 호흡으로 차분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연설문 유출 부분을 보자. 대통령 자신과 측근들의 천인공노할 국정농단과 국고탕진, 그리고 그 다양한 악행들만으로도 천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우리는 최순실 개인 등 소수 비전문가들 뿐 아니라, 어떤 전문적인 세력이 연설 자료 전달을 넘어 많은 부분 관여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기밀 문서들 중 수정했다는 부분들은 최순실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 있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단순히 그 일인에게 문서만 전달했다는 것 역시 적극적 은폐의 한 모습일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검찰이다. 현재의 심각한 위기 국면에서조차 친(親)우병우 인사들을 대거 투입한 검찰 권력은 이명박근혜정권 내내 정치 검찰의 전형을 보여줌과 동시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 사실상 단 한 명의 용기 있는 언론인의 의지에 의해 폭로되기 전까지 모든 것을 감추기에 급급하고 오히려 문제제기하는 자들을 투옥하기에 바빴던 검찰을 비롯한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근본적인 수술을 필요로 한다. 이런 부분을 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박근혜를 비판하며 스스로 개혁파인 양 나서는 새누리 당 내 인사들의 정치쇼다. 여기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설사 새누리당이 해체되거나 분당이 되는 상황으로까지 밀리더라도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위장술에 속아서는 절대 안 된다. 즉 유승민 등으로 대표되는 쇄신파들이 따로 나와 반기문이나 손학규,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안철수를 비롯한 그럴싸한 인물들과 새로운 당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여권 재편 기만술, 즉 기득권의 지배 연장술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현 정국에서 마치 피해자인 양 뒤로 빠져 있는 재벌들이야 말로 진정한 배후 세력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이들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단순히 미르 재단 등에 막대한 돈을 제공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야 말로 최순실-박근혜-보수 관료 라인을 철저하게 이용해 민영화나 쉬운 해고와 성과연봉제 도입, 규제완화, 법인세 인상 저지 등,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해 왔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뒤로 빠져 있는 재벌들의 연관 고리들을 철저하게 폭로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 세력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반격을 시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어쩔 수 없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보수 언론들도 조만간 반드시 아주 치밀하게 반격을 시도할 것이다. 벌써 <조선일보>는 내치는 거국 내각에 맡기고 북한을 옥죄는 대북정책만 신경을 쓰라는 등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박근혜 게이트가 아니라 최순실 게이트인 양 비판의 초점을 비틀고 있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겠다는 이들의 계획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려되는 것은 대중의 관심이 잦아든 이후이다. 대통령도 이 정도인 줄 몰랐다는 등, 그들에게 당한 부분도 많다면서 동정론을 선동하기도 할 것이다. 보수 세력 이탈층을 다시 끌어 모으기 위해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에도 유사한 일들이 있었다며 비선이나 권력 남용 등의 사례를 왜곡하거나 과장해 선동할 수도 있다.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라는 카드를 꺼내,  부화뇌동하는 일부 야권 인사들을 끌어 모아 개헌론에 다시 불을 지필 수도 있다. 

'여성 대통령은 안된다'는 식의 비난도 우려된다. 이 사태와 관련해 최순실 모녀로 집중되는 비난이 성 차별에 근거한 비난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우리는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번 정권 내에 끔찍한 역사적 후퇴가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료, 철도, 가스, 수도 민영화 추진, 교학사 교과서 논란,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카톡 검열, 교과서 국정화 강행, 건국절 논란 유도, 성완종 리스트 무시, 미군 탄저균 배달 사고, 각종 검찰 비위 사건 및 정치검찰의 불공정한 편파적 기소, 테러방지법 입법 강행, 위안부 문제 졸속 합의, 개성공단 폐쇄, 노동법 개악 시도, 전교조 법외 노조화, 박정희 우상화 작업에 예산 낭비, 4대강 수질 악화 방치 및 확대 기도, 세월호 특조위 조사 방해 및 임기 종료, 가습기 살균제 조사 방해, 고 백남기 농민 사건 탄압, 사드 배치 강행, 일베, 롯데, 어버이연합, 권력 실세 등에 대한 비호 및 엉터리 수사, 문화계 블랙 리스트 등등. 

이러한 일들 중 상당수가 최순실이 개입한 것으로도 보도된다.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최순실 개인이 개입한 것이네, 아니네'로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수사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 모든 죄를 최순실에 뒤집어 씌우고 한 두 관료를 집어넣는 것으로 현 사태가 끝난다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다시 몇몇 인물만 바뀐 채 저들의 지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시민들의 총체적, 전면적 개입이 필요하다.

"죽은 고기 뜯는 언론, 믿지 마십시오"
2016.10.31 14:50:37

[기자의 눈] 최순실 게이트와 하이에나 언론의 재기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표현의 출처를 아는 이들이라면, 최근 정국의 흐름이 의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형광등 100개' 운운하며 '박비어천가'를 읊던 바로 그 TV조선이 '최순실 게이트' 폭로의 선봉대에 서 있으니 말이다. TV조선뿐 아니다. 함께 박비어천가를 떠들던 채널A 등 보수 언론이 나란히 '최순실 폭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표변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이들 보수 언론의 달라진 태도는, 콘크리트 지지층조차 무너지고 있는 민심 이반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언론이 박 대통령을 배반하는 속도는 민심이 등지는 속도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TV조선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지난 18일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가 <한겨레>는 11건, <경향>은 10건, <한국>은 8건, <조선>,<동아>,<중앙>은 4~5건이었다. <조선> 등은 이때까지만 해도 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는 타 언론사에서 제기된 의혹을 받아쓰는 수준으로만 처리했다. 그보단 '송민순 회고록' 파동 건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문재인 전 의원 등에 대한 종북몰이에 집중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첫 번째 해명을 한 다음 날인 21일부터 <조선>의 보도량은 급격히 늘어난다. 이후 24일 JTBC가 '청와대가 최순실 씨에게 시시콜콜한 결재를 받았다'는 단독 보도를 한 뒤부터는 단순히 보도의 양을 늘리는 것을 넘어서서 '단독', '특종' 기사를 쏟아낸다. <동아>는 <조선>보다는 주춤했지만 곧 증가세를 이어받았고, 채널A는 TV조선 못지않게 단독 기사들을 쏟아냈다. <중앙>도 JTBC에 비하면 소극적이지만, 대통령 해명 이후 보도량이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대통령의 해명을 이끌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JTBC를 제외하고, <조선>, TV조선, <동아>, 채널A 등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가장 '열일'하는 언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연 '1등 신문'들다운 탄탄한 취재력이 빛을 발했다.



ⓒ민언련

ⓒ민언련



그 많은 '단독'들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들 언론이 현 정권의 실상 알리기에 앞장서는 데 대해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든다. 불과 며칠 만에 수십 개의 단독 기사를 뚝딱 만들어내는 능력 있는 언론사가 왜 지금까진 조용했을까. 

이쯤 되면 의구심이 든다. 혹시 그 많은 '단독'들이 며칠이 아닌, 몇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바꿔 말하면, 이미 오래전 취재를 마쳤음에도 보도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박근혜 정권이 시들어가는 기미가 보이자, 이제야 때가 되었다는 듯 내보내는 것 아닐까.

이런 의심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31일 전현직 언론인이 모여 언론단체 시국선언을 하는 자리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다. 이완기 민언련 상임대표의 말이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가장 잘못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게 언론입니다. 2011년 TV조선이 개국하면서 박근혜 의원을 TV에 출연시켰습니다.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했습니다. 그런 TV조선이 대통령과 측근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이에나 언론 그대로입니다. 죽은 고기를 뜯어 먹는 그대로입니다. 언론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표변해서 양시양비로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려 하려 할지 모릅니다. 또 다른 잘못된 권력을 찾아서 갈 것입니다." 

만일 이미 내막을 알았음에도 묵인해왔다면, 그 언론은 더 이상 진실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없다. 국정 농락을 가능케 한 공범 내지는 방조자로 불려야 맞다.

이날 시국 선언 기자회견에 참가한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SBS본부장은 "우리는 공범이었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대통령이 뭐라고 하면 그래도 대통령이니까 그게 사실인 줄 알고 열심히 받아쓰고 열심히 방송했습니다. 그게 사실이었습니까. 최 씨 일가가 무당 춤을 추는 거대한 인형극을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연극을 뉴스에 내보냈습니다. 그런데도 회사의 정치권력은 청와대와 척 지면 어렵다, 먹고 살기 어려워진다는 논리로 내부 기자들을 끊임없이 겁박했습니다." 

과연 SBS만의 문제일 뿐일까. 시대의 죄인이 되기 전에 스스로 밝혀야 한다. 지금의 성과를 자축할 게 아니라, 과거의 침묵을 반성해야 한다. 

언론이 쥐고 있는 칼날은 살아있는 권력을 정조준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다 죽어가는 고기의 폐부를 들쑤시는 것은 이완기 대표의 말마따나 '하이에나 언론'이다.

당분간 보수 언론의 '단독 파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연극'에 놀아난 데 대한 반성인지, 아니면 하이에나 언론의 재기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박근혜, 몽니 부려서 해결될 일 아니다"

2016.11.02 14:38:57


[정세현의 정세토크] "윤병세 장관, 아직도 朴대통령 줄 섰나"

             
이른바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가운데,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비롯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전투기 사업 등에도 최 씨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위의 결정들은 모두 청와대를 중심으로 갑작스럽게 결정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과거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과 비교했을 때 위의 사안들에 비선의 개입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유관 부처 간에 정책 방향이 결정되고 그 보고가 대통령한테 올라간 뒤에 바뀐 것이라면 대통령이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무 부처 장관이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한 뒤에 갑자기 통보가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비선이 작용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으로만 세더라도 벌써 67년이나 됐다. 정부 수립 초기에는 굉장히 엉성했지만 이후 국가 운영의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정책 결정 과정'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바깥에서 툭 던지는 한 마디가 국가 방침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전직 관료로 허탈한 느낌마저 든다. 저도 이런 정도인데, 지금 이 시기에 대한민국의 관료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박근혜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박 대통령의 침묵에 동조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 전 장관은 "국무위원은 자기 업무 영역 밖의 것도 이야기할 수 있고 대통령과 생각이 달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왜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는지 모르겠다. 퇴직 이후 연금 때문에 그런 건가"라고 쏘아 붙였다.  

그는 "관료가 영혼이 없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정무직 정도 되면 없던 영혼도 생겨야 한다.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지부상소(持斧上疏,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지니고 올리는 상소)라도 올리고, 그래도 관철되지 않는다면 장관직을 버리고 나와야 한다. 특히 대선 때부터 캠프에 있다가 장관까지 했으면 그렇게 아쉬울 것도 별로 없지 않나"라며 "지금 국민들은 소관 업무와 관련해서 대통령 앞에서 소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국무위원이 있길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게 나라냐' 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런 식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느냐는 불만도 있는 것"이라며 "국정을 운영하는 현장의 책임자들이 소신도 없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활용해서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비선이 귀띔해 준 대통령의 발언이 맞는 거라고 생각하고만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최순실 씨의 국정 개입이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북 정책도 최순실 씨가 좌지우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2월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후 7월에는 사드 배치를 확정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위 사안들을 결정하기 직전에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는 공식적인 라인에서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검토 중이라거나, 그런 방향으로 추진하지 않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갑작스러운 결정을 내리면서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최 씨가 "2년 내에 북한이 붕괴하고 통일이 된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 수정과 '통일 대박'발언도 최 씨의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사이비 종교인의 딸이 중차대한 남북관계를 포함해 한미, 한중 관계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데요. 정상적이고 합리적이며 투명하게 정책이 결정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세현 :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을 때 부처 간 정책 결정을 위해 상당히 진통을 겪었던 일이 떠오릅니다. 정부의 정책은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닌, '정책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하면서 거의 매일 대책 보고서를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 혼자 하는 것은 아니었고 통일비서관, 외교비서관, 국방비서관, 국제안보비서관등이 함께 협의해서 어떻게 대처할지를 결정하고 이걸 수석비서관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면 수석비서관이 이걸 가지고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협의하고 이후에 대통령에게 보고했죠. 

물론 비서실장이 회의를 주재하기 전에 수석비서관이 통일부 장관과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당시 안기부장) 등과 소통하면서 의견을 모아서 정책 대안을 건의하면 대통령이 결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의 정책 결정 과정을 겪었고, 서로 의견이 부딪혀서 의견 조정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처 간의 의견이 다른 사안들이 계속 나타나니까 1994년 4월 7일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가 만들어졌습니다. 관계부처 장관들끼리 정책 조정을 끝낸 뒤 그 결과를 자신에게 보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의 주재는 통일부총리가 맡았고 여기에 외교부 장관, 국방부 장관, 안기부장, 외교안보수석,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는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개편됐습니다. 즉 대한민국 정부는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이러한 식으로 정책을 결정한 겁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주무 부처 장관이 기자들을 만나거나 국회에서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하면서 갑자기 통보가 이뤄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건 비선이 작용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유관 부처 간에 정책 방향이 결정되고 그 보고가 대통령한테 올라간 뒤에 바뀐 것이라면 대통령이 고심 끝에 결정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가 올라갔다는 것 없이, NSC를 열어서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NSC가 일종의 '통과 의례'가 된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집권 초기부터 대체 누가 대통령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처음에는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인 줄 알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막후 원로그룹'인 이른바 '7인회'도 아니고 당에서 소위 '친박'이라고 불리던 사람들도 아니라고 하니까요. 그런데 문고리 3인방도 아니라고 하니, 혹시 우리가 모르는 대단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나 싶은 의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아니었다는 것이 최근 보도로 드러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으로만 세더라도 벌써 67년이나 됐습니다. 정부 수립 초기에는 굉장히 엉성했습니다. 1인 통치성도 강했고, 특히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이러한 특성은 더욱 강조됐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가 운영의 시스템이 갖춰지면서 '정책 결정 과정'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의 행정 시스템이 우리나라 행정의 운영 원리로 도입되면서 나름대로 체계를 갖춰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는 이런 프로세스를 거치지 않고, 바깥에서 툭 던지는 한 마디가 국가 방침으로 정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전직 관료로 허탈한 느낌마저 듭니다. 저도 이런 정도인데, 지금 이 시기에 대한민국의 관료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요? 특히 장‧차관들과 수석비서관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상당할 것입니다.  

유관부처 공무원 입장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자괴감이 드는데 이미 결정된 것을 물릴수도 없고, 그대로 집행해야 하는 최일선에서 책임을 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곤혹스러울 겁니다.

정부의 결정이 고심 끝에 결정된 것이라면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해가면서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지만, 비선에서 코치해서 결정된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비선에서 결정했지만 나쁘지 않으니까 따라가자? 이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없는 논리입니다.  

▲ 지난 1월 6일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열린 NSC 회의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초창기에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지급방법을 놓고 청와대와 이견을 보이고 결국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처음 사의를 표명했을 때 청와대는 이를 반려했지만, 진 장관은 이건 장관 이전에 '양심의 문제'라며 사의하겠다는 뜻을 고수했는데요. 본인이 장관이라면 이 정도 소신은 가지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선비 정신이 바로 그런 것 아닙니까? 관료가 영혼이 없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정무직 정도 되면 없던 영혼도 생겨야 합니다. 말단 관료 시절에는 자기 결정권이 제한돼있지만, 정무직은 다릅니다. 하루를 해도 장관이고 1년을 해도 장관인데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또 국무위원은 자기 분야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국가 업무 전체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자리가 국무회의입니다. 즉 국무위원들은 다른 부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통일부 장관의 경우 '국무위원에 임함, 통일부 장관에 보함' 이라고 돼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일종의 '보직'인 셈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무위원은 자기 업무 영역 밖의 것도 이야기해야 하고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다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아무 말도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퇴직 이후 연금 때문에 그런 겁니까?

장관 정도 됐으면 지부상소(持斧上疏)라도 올리고, 그래도 관철되지 않는다면 장관직을 버리고 나와야 합니다. 특히 직업 관료로 장관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장관을 하고 퇴직하는 것이 꿈일 수도 있지만, 대선 때부터 캠프에 있다가 장관까지 했으면 그렇게 아쉬울 만한 것도 별로 없지 않습니까? 정책을 추진하려고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용기 있게 사표 던지고 나가는 겁니다.  

물론 사표를 던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지금 국민들은 소관 업무와 관련해서 대통령 앞에서 소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국무위원이 있길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제대로 된 나라인 겁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이게 나라냐' 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안에는 대통령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왜 이런 식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느냐는 불만도 있는 겁니다. 대통령 밑에서 국정을 운영하는 현장의 책임자들이 소신도 없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활용해서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비선이 귀띔해 준 대통령의 발언이 맞는 거라고 생각하고만 있는 겁니다.

박근혜, 버틴다고 해결될 일 아냐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다는 설명을 한 적도 있는데, 결국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한중 관계, 미중 관계를 위기로 몰았습니다. 국민 여론은 하야나 탄핵으로 집중돼있는데 정치권에서는 '거국 중립 내각'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총리가 내치를 맡는 이른바 '책임 총리'도 박근혜 정부가 생각하는 카드로 보입니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1년 4개월인데 지금처럼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세현 : 일단 과거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태우 정부 말기에 현승종 고려대학교 총장이 넉 달 동안 총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대통령이 있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총리한테 모든 힘이 몰리는 구조는 아니었습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4월 26일 하야했는데, 당시 외무부 장관을 겸직하면서 과도정부의 수반이 된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도 있습니다. 그는 하야한 이승만을 하와이로 망명하게 했고 선거를 치러서 새로 발족한 내각에 권한을 인계했습니다. 허정 모델로 갈 것이냐, 아니면 노태우 정부 말년에 이뤄진 현승종 총리 모델로 갈 것인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떤 모델로 가든 선출된 권력인 국회가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선출 권력인 대통령이 저렇게 돼버렸기 때문에 국회가 사태를 수습해야 합니다. 그러면 국회의장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국회의장이 총리를 겸직할 수는 없기 때문에, 허정 모델로 과도 내각을 이끄는 총리를 세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현안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드 배치 문제도 이걸 밀어붙일지 잠시 중단할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야당은 최근 국가 수습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거국중립내각'과 관련, 처음에는 여기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이를 받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밝힌 이후에는 일단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과 관련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립 내각에 들어가면 박근혜 정부 실정에 대한 책임을 같이 쓰게 된다는 것 때문에 망설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당의 입장이 바뀐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야당이 입장에 변화를 둔 것은, 국민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주말을 기점으로 야당에서 거국중립내각 이야기가 쏙 들어갔는데, 박 대통령의 하야나 탄핵을 원하는 여론이 높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이 시국 선언에 나서고 있는데, 4.19 때와 상황이 유사합니다. 국민의 불만과 원성이 전국적으로 퍼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는 12일까지 집회가 이어진다고 하는데, 자칫하면 촛불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좀 더 시위가 강경해질 수도 있습니다.

▲ 지난 10월 29일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집회에 모인 시민들.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주자가 먼저 거국중립내각에 찬성 의사를 밝혔는데, 이제 와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하니,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분노할 여지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정치 세계의 하루는 보통 사람의 일생보다 긴 시간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닷새나 지난 뒤에 국민 여론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사건이 웬만한 일이었다면 야당 입장에서도 거국 내각 정도로 마무리하자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정치인들은 이 사안을 가지고 판을 너무 크게 벌리는 것은 오히려 본인의 입지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비선의 국정 개입 정도가 너무 심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누가 대통령인지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면서 국민 여론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정치인은 이러한 국민 여론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상 규명부터 하자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우선 진상을 규명하고 이후에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건가요?

정세현 : 거국내각이라는 것이 까딱 잘못하면, 누구를 앉히느냐에 따라 아무런 힘도 못 쓸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의원(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이 대통령이 주도해서 임명하는 총리는 '헬렐레 총리'라면서 수습이 안 될 거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서보다는 국회가 주도해서 정국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정 모델을 따라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과도적인 상황에서 국회에 의해 선정된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과도 정부 수반으로 선거 관리하면서 이 사건을 우선 심판하고 수사해서 처벌할 것 있으면 처벌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으면 묻고 가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재 자리에 있으면서 뭔가를 바꿔보겠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을 겁니다. 더구나 검찰이 지금까지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자리를 지킨 상태에서 나온 수사 결과는 아무도 믿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특검을 도입하면 해결될까요? 전례에 비춰봤을 때 특검도 사실 '솜방망이'입니다. 결국 주체가 문제인데, 국회에 힘을 실어주고 검찰도 국회와 상의하면서 사건을 정리해줘야 합니다.  

프레시안 : 국회가 주체가 되려면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권한 위임이 필요합니다. 박 대통령은 국회에게 권한을 위임할까요? 여야의 협조는 가능할까요?

정세현 : 그게 문제입니다. 내년에는 대선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대권 주자들은 셈법 계산을 하느라 분주할 겁니다. 그런데 수적으로 야당이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국민 여론이 워낙 강경하기 때문에 대통령도 무작정 버티는 것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 지난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프레시안 : 지금이 한국 현대사 최악의 위기인 것 같은데, 이 바닥에서 더 내려갈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정세현 : 더군다나 현재 동북아 정세를 봤을 때 국제정치적인 안보 위기까지 함께 있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국가안보실장이랑 외교안보수석은 그대로 놔뒀다고 하지만 그동안 그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눈 것이 아니라 그저 명령하는 식으로 했기 때문에 이런 참모들에게 권한을 준다고 해도 이걸 행사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면 국회가 강하게 나서야 합니다. 새누리당도 당장의 주도권을 잃는다는 생각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안을 해결하는데 새누리당도 함께 했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내년 대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세 싸움하고 주도권 뺏겼다고 생각하고 몽니 부리면 내년에 대선 후보도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국, 이미 방향 틀었다  

프레시안 : 최근 미국의 기류 변화를 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 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지난 10월 21일~22일(현지 시각) 북한 당국자와 미국 민간 전문가 및 전 당국자들의 1.5트랙 접촉이 있었습니다.  

또 25일(현지 시각)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CFR 간담회에서 북한을 비핵화하겠다는 생각은 실패한 개념이라면서 미국은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유인책을 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향후 미국의 대북 정책이 '전략적 인내'에서 '관여'로 가는 시발점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방향을 트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는 북한에 대한 강한 제재와 압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한국 외교관들은 미국이 특정한 방향으로 가면 여기에 맞춰 따라가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한미 동맹, 한미 공조와 같은 것들이 외교의 기본 방침처럼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배경을 보자면 윤 장관의 발언은 완전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건데, 이건 대통령 때문이라고 봅니다. 발언의 청자가 국민도, 미국도 아닌 박 대통령에 맞춰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9월 18일(현지 시각) 한미일 외무장관 회의 이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임해야 한다"며 "시급히 필요한 것은 그들이 현재 상황에서 (핵 실험을) 동결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CFR에서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다고 이야기한 뒤에 나온 발언입니다. 대화와 협상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사실상 CFR 입장으로 굳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케리 장관이 이를 받아서 이야기한 겁니다. 그런데 이 기자회견 이후에도 한국 외교부는 압박과 제재만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럼 윤 장관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서 이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윤 장관은 그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 겁니다. 대통령이 혹은 비선이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줄을 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CFR에서 나온 것은 정부 입장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CFR 회의가 무슨 일개 학회의 세미나 정도 수준이라고 보면 안됩니다. 실제 실무 경험도 가지고 있고 오랜 기간 동안 상아탑에서 연구를 하기도 하는, 미국 대외 정책의 산실이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CFR은 자신들이 발간하는 보고서를 적실성이 높도록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서 실제 정부가 쓰도록 하고, 소속돼있는 인사들을 정부에 진출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제 경험으로는 미국이 정부가 직접 나서기는 좀 그렇지만,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나라들이 미국의 입장에 순응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해 CFR이 움직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1년 2월 CFR 관계자가 한국에 와서 지나가는 말로 대북 송전을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북한 경수로 공사가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북측에서 전기를 미리 좀 보내달라고 했었습니다. 200만 킬로와트 송전을 요청했는데 너무 많아서 50만 킬로와트 정도로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CFR이 한국에 와서 송전은 곤란하다고 주장한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당시 새로 들어선 조지 W. 부시 정부는 북한을 악으로 규정하고, 1994년 제네바 합의를 깰 준비를 천천히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 들어와서 압력을 가한 것이죠.

직접 오지 않더라도 종이 한 장으로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논 페이퍼 (None-Paper), 즉 발신도 수신도 명확하지 않은 메모지 같은 형식의 글을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합니다. 만약 이것이 문제가 되더라도 자신들은 그런 문건을 준 적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을 하기 위해서죠.

미국 국무부가 자신들이 직접 이야기하기 곤란한 사안을 CFR이 대신 해주고 있었다면, 지금 CFR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야기 역시 장차 국무부에서 채택할 만한 가능성이 높은 정책이라고 판단해야 합니다. CFR 보고서와 케리 장관 발언, 그리고 10월 북미 간 1.5트랙 협상도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 선회와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도 적어도 양다리 혹은 궤도 수정을 고려했어야 합니다. 외교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우리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만 이야기하지만, 미국이 정책 변화의 조짐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만약을 생각해서 퇴로를 열어 둬야 한다. 따라서 압박과 제재를 이어갈 것이지만, 이것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주장한 것이라고, 기회가 될 때 밝혀야 한다"정도로 빠져 나갈 구멍을 마련했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 의미에서 10월 북미 간 접촉은 주목할 만한 접촉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반관반민 접촉이었지만 미국 측 인사들이 북한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미국은 카터가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카터의 교통편을 제공했습니다. 정부가 하지 않으면 교통편을 제공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또 북미 간에 비공개 접촉을 할 때 이번에 만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나 독일 베를린 등이 주요 접촉 장소입니다. 쿠알라룸프르가 한국의 시선을 따돌리기에 좋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북미 간 접촉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장소를 보고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식 회담으로 가기 위한 수순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이번 접촉을 주선한 사람이 리언 시걸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인데, 양측 간에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북한에 핵 동결로 시작해서 평화협정까지 논의하는 회담이 열린다면 응할 수 있겠느냐는 점을 타진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북한은 평화협정부터 체결하자고 했을 것이고 미국은 핵 동결로 시작해서 평화협정까지 가자고 했을 겁니다.  

북한은 핵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중지를 맞바꾸자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이 당시 접촉에서 이러한 부분도 이야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훈련 중지는 앞으로 더 협의해야 할 문제지만 핵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을 맞바꿀지, 아니면 약간의 순차를 둘지는 협의를 해보되 최종적으로 평화협정까지 가면 나오겠느냐는 부분을 상당히 진지하게 살폈을 것입니다.  

북미가 저 정도까지 대화를 진행시켰다면 북미 간에 비공개 접촉은 얼마든지 눈에 띄지 않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뉴욕 채널도 있구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해보고 각자 상부에 보고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내 유력 대선 주자 캠프 쪽에도 이런 사실이 보고 됐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실제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곳은 CFR이라고 봅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회의를 해서 낸 결론으로 북핵 문제를 이끌고 나가려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교부는 이런 사실에 착안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24일 '조중(북한·중국) 국경공동위원회 제3차 회의'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정세현 : 국경 문제는 핑계입니다. 사실은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북미 접촉 결과를 알아보려 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2년마다 국경 실무회담을 엽니다. 1962년 협상 이후에 1964년 이를 획정하는 실무 의정서를 체결했는데요. 2년에 한 번씩 하는 이유는 국경선인 압록·두만강이 국제 하천이기 때문에 경계가 조금씩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외교부 부부장이 갈만한 사안은 아닙니다. 국장급이나 과장급에서 끝낼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미 틀이 정해져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류전민은 쿠알라룸프르 회의 결과를 들어 보고, 이를 통해 앞으로 대북·한반도 정책을 어떤 식으로 조정할 것인지를 구상하는 현장 조사 차원에서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 관측됩니다. 이는 북한이 이미 5차 핵실험까지 했지만, 더 이상 사고를 치지 못하게 하도록 중국이 사전에 관리를 하겠다는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중국을 받아들였다는 것도 살펴봐야 할 대목입니다. 북한이 핵 카드를 들고 미국과 협상하려면, 협상의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중국과 협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이런 점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겠네요?

정세현 :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출범해야 가능하겠지만, CFR 입장에서는 새로운 정부에 건의할 수 있는 안을 빨리 만들어야 하고, 중국도 미국의 새 정부가 어떻게 움직일지 탐문하기 위해 북한에 와서 사전 정지작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전과는 다른 점이 한국 정부가 극력 반대하면 미국이 대화 프로세스를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북한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굉장히 중요하고 거의 전부이다시피 한 문제지만, 미국에서는 아주 작은 문제에 불과합니다. 자기들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대화를 하면 안 된다고 할 경우 하면 미국 정부가 굳이 나서지는 않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좀 더 강화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난공불락'의 상태까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명분으로 북한의 핵을 쓸 수도 있습니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북핵은 미국에게 '꽃놀이 패' 입니다. 그런데도 제재와 압박만을 부르짖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보면, 이들이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잃어버릴 수십 년'의 기반을 닦은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나쁜 정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