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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떻게 '마피아의 나라'가 되었나?

일취월장7 2016. 10. 25. 11:10

한국은 어떻게 '마피아의 나라'가 되었나?

2016.09.27 09:33:44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한국 사회 마피아즘 ①

             
정운호 사건을 둘러싼 법조계 비리, 대우조선 부실 회계 및 공적 자금 지원을 둘러싼 논란, 세월호 사태에서 나타난 해양 관련 인사들의 비리, 포스코를 둘러 싼 각종 특혜 및 비리 의혹 등 최근 우리 사회를 들쑤셔 놓은 대형 비리와 관련된 사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복잡하게 얽혀진 이익의 연결 고리'를 중심으로 한 그들만의 리그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익의 연결 고리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만의 리그(이 글에서는 마피아즘이라고 한다)는 한국 사회에 음으로 혹은 양으로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한국을 부패 사회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낳고 있다.

마피아즘은 끼리끼리 뭉쳐서 남을 배제하고 이권을 철저히 챙기는 경향을 말한다. 마피아는 국가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뭉쳐 있고, 그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폭력과 살인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확보된 자금력을 기반으로 금융과 산업, 정치 등에 까지 개입하여 사업 영역을 확대해 가는 범죄 조직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피아즘의 속성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만의 끈끈한 배타적 유대감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범죄적 이익 공유'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느 사회이든지 마피아즘이 만연하기 시작하면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 곳곳에서 비효율성이 커지기 때문에 경제 발전이 지체되고 마피아 네트워크 이외의 사람들은 부당하게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부당한 취급을 받으면서 살게 된다.  

한국에서 최근까지 가장 많이 비판받아 왔던 마피아즘의 일종은 관피아였다.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에 공기업이나 유관 기관에 재취업하여 요직을 독점하는 현상을 말한다. 낙하산 인사랑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데 낙하산 인사는 보통 해당 직무와 상관없는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관피아는 해당 분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것인데 이 사람이 관에서 있었던 사람이거나 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문제는 모피아(기획재정부 마피아), 교피아(교육부 마피아), 세피아(국세청 마피아), 팜피아(식약청 마피아) 등 관피아 뿐만 아니라 정피아(정치인 마피아), 원피아(원자력 마피아), 축피아(축구협회 마피아), 건피아(건설 마피아), 철피아(철도 마피아) 등 등 보다 넓고 깊게 퍼져있는 이익의 카르텔이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익의 카르텔은 이제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 막고 불평등한 사회로 내닫게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도대체 왜 한국 사회에 이러한 마피아즘이 만연하게 되었는지, 어떤 유형의 마피아즘이 횡행하는지, 그리고 대안은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필자)

(원문 보기 : 우리 사회의 암 : 마피아즘) 

문제의 근원 : 우리가 남이가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건배사가 '우리가 남이가'일 것이다. 여러분은 이 말의 연원을 알고 있는가? 이 말은 '초원복집 사건'이라고 불리는 14대 대선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희대의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1992년 12월 11일, 14대 대통령 선거 사흘 전, 부산 초원복집에 검·경·안기부·재계를 망라한 부산 지역 기관장들(김기춘 전 법무장관,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김영환 부산시장, 정경식 부산지검장 등)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 "영도다리 빠져 죽자" 등 지역 감정 조장 발언들을 하면서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자고 모의했다. 

그런데 이 모임이 언론에 보도됐고 문제가 되자 쟁점을 '도청'으로 바꾸어 이 모임 참여자들이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했고 불리한 상황에 처했던 김영삼 후보가 기사회생하여 경상도 지역의 몰표를 받으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뭉쳐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로써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발언들이 불리하게 작용하기는커녕 당선에 도움이 되었으니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신은 큰 대통령 선거판에서, 그보다 작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보다 더 작은 각종 선거나 사업에서 뭉치는 것이 당선을 담보하거나 혹은 이익을 담보해주는 특별한 공식으로 인정되었다. 특히 공직자들의 경우, 공직을 그만 두고 나가 사업을 하거나 거대 조직에 몸담으면서 전관 예우라는 형태로 각종 특혜를 받고 비리 행위를 일삼게 되는 암묵적 배경이 되었다. 관피아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많이 부각되었던 것은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던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 진도에서 침몰하면서 해양 관련 공무를 담당하던 사람들의 문제가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관 예우나 모피아 같은 단어는 아주 오래 전부터 관치 경제, 관치 금융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말할 때 쓰이던 용어다.

문제는 공무원들만 이러한 내부 서클 혹은 범죄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이익의 카르텔이 주는 유혹은 실로 대단해서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카르텔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고 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마피아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는 일시적인 사회문제가 되어 대중의 비난을 받더라도 그 비밀스럽고 끈끈한 연대의 특성상 조만간에 묻히게 되고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이러한 마피아즘이 횡행하는 것일까?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계급이 매우 약하다고 한다. 계급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유일한 계급이고 기수가 유일한 계급이다. 공직, 군대, 학교, 직장,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이 원칙은 적용된다. 선배는 후배를 보살펴야 하고 후배는 선배를 모셔야 한다. 후배를 잘 챙기지 못하는 선배는 덕망이 없고 무능한 선배이고 선배를 잘 모시지 못하는 후배는 시쳇말로 '싸가지 없고 무능한' 사람이다. 후배를 잘 챙기지 못하는 선배는 퇴직 후에 자리가 없고 선배를 잘 챙기지 못하는 후배는 승진이 없다. 이들 선후배 혹은 친구 사이는 남이 아니다. 바로 우리이다. 선배 또는 친구의 이익이 내 이익이고 후배 또는 친구의 이익이 내 이익인 까닭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익의 카르텔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 영화 <비스티 보이즈> 한 장면.


가장 큰 마피아즘 : 관피아 

관피아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면서 가장 오래된 마피아즘의 하나이다. 관피아에는 모피아(기획재정부 마피아), 세피아(국세청 마피아), 교피아(교육부 마피아), 원피아(원자력 마피아), 팜피아(보건복지부, 식약청 마피아) 등이 있다. 이러한 관피아가 형성되었던 이유는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던 시기에 국가 시스템을 운영하려니 제도를 해석하는 사람과 인맥의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사람과 인맥이 시스템이 갖춰진 지금까지 힘을 쓰고 있으니 시스템의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고 비효율이 높아진다. 

모피아는 기획재정부(MOSF, Ministry of Strategy and Finance)와 마피아의 합성어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 은행을 비롯한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자산관리공사(캠코), BC카드,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상호저축은행중앙회 등 금융 관련 기관은 기획재정부 산하이고 이들 최고기관장 자리는 으레 기획재정부 출신이 맡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경우 역대 위원장 6명이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고 금융감독원 또한 부원장급 이상 대부분이 모피아 출신이다. 증권 산업 쪽도 마찬가지다. 증권선물거래소, 증권예탁원, 코스콤(옛 한국증권전산) 등의 최고 경영층들 대부분이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선배, 후배 등 비공식적 관계로 끈끈하게 묶여진 이들은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한 통 혹은 식사 한 끼로 업무 협조를 이뤄낸다. 공식적인 관계와 비공식적인 관계가 엉키면서 공식적인 형태보다는 비공식적인 형태를 통해 문제를 풀게 되는 것이다. 특히, 금융과 관련된 문제들은 관행상 비밀리에 추진되기 때문에 밀실 회의가 일반화돼 있는데, 이러한 것도 비공식적인 문제 해결을 강제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물론 모피아의 역할이 항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개발도상국이었던 시절에는 시장의 미성숙으로 인해 정부가 나서는 것이 효율적이기도 했고, 경제 위기에 처했을 때도 빠른 의사 결정을 내려 위기를 조기 탈출하는 역할도 했다. 특히 한국처럼 금융 제도에 모호한 점이 많고 관료들의 해석에 좌우되는 경향이 있는 상황에서는 비공식적인 관계가 효율적이다. 문제는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국가의 경제 정책이 검증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지시를 통해 결정된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복잡하고 다양한 경제 환경에서는 이러한 비공식적 의사 결정 시스템은 국가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금융 관련 정책의 법적 절차를 좀 더 정교히 할 필요가 있다.

세피아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관세청과 마피아의 합성어로 기업에 대한 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 부처 중 가장 힘이 센 이들 정부기관의 전임자들이 국세동우회, 관세동우회 등의 조직을 만들어 이권에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들은 세금 징수를 담당하고 전국에 걸쳐 조직화되어 있는 이들과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탈세와 절세 사이를 넘나드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금 문제 때문에 기업들은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잘못되는 경우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세동우회나 관세동우회는 매년 신년인사회를 열고 전·현직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각 지역별로도 지부를 중심으로 신년인사회와 정기총회 등을 개최한다. 국세청이나 관세청 사람들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해병대 모토처럼 '한 번 가족은 영원한 가족'이라며 서로 챙겨준다. 현직에 있던 사람이 은퇴하고 세무사나 관세사로 개업하면 현직에 있는 후배들이 편의를 봐주어 일이 쉽게 되도록 힘을 쓴다. 법무법인이나 세무법인, 일반기업들은 이러한 관행을 알기에 고위 간부들이 퇴직하면 바로 모셔 온다.

현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국세청 퇴직자들은 술 병뚜껑 업체에도 재취업하는데 국세청이 술 병뚜껑 개수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제도로 인해 만들어진 풍경이다. 국세청이 납세 병뚜껑 사업자를 지정하기 때문에 국세청 퇴직자들은 병뚜껑을 납품하는 삼화왕관과 세왕금속에 감사나 이사, 부사장, 혹은 대표이사로도 재취업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감독하고 제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경제 검찰'이라고도 불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공무원들은 퇴직 후 조사 대상인 대기업이나 기업의 법적 대리인이 되는 대형 법무법인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현직에 영향을 주게 된다. 공저거래위원회 퇴직 후 재취업하는 조직을 예를 들면 공정위와 직접 연관된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공정경쟁연합회 회장, 상조보증공제조합 이사장, 그리고 직접판매공제조합 이사장 등이 있고, 기업과 법무법인인 LG경영개발원 자문역, KT 상무, 롯데제과 자문, 법무법인 바른과 김앤장, 삼일회계법인 등이 있다. 그것이 기업의 공정거래 역량을 강화하고 정부와 업계 간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자리이든 공정거래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재취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피아 혹은 핵피아는 원자력발전(핵발전)과 관련된 공공 조직과 마피아의 합성어이다.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공공조직은 원자력 정책 최고 결정 기구인 원자력위원회를 필두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원자력통제기술원, 한국원자력연구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국제협력재단, 한국원자력산업회, 그리고 실행조직인 한국수력원자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번 원자력과 관련된 기관에서 일을 하면 이들은 가족이 되어 순환하게 된다. 원자력에서 진흥과 규제 업무는 서로 그 지향점이 달라 서로 견제를 해야 하는 관계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인사들은 원자력 업무의 특성과 관계없이 돌고 돈다. 그것이 규제든 진흥이든 상관없이. 원자력 산업체 근무자, 과학기술자, 정치인, 관료가 한 몸이 되는 강한 연대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원자력 레짐'이라고 부른다. 원피아는 말 그대로 체르노빌 핵사고나 후쿠시마 핵사고에서 보여 주 듯 철저하게 정보를 은폐하고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관료들 간, 혹은 관료와 공공 조직 간 이동에다가 학술 단체와 민간의 이동이 더해지면서 원피아는 완벽한 마피아로 재탄생한다. 이들을 비판하고 견제할 세력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두산중공업, 현대산업개발, 현대건설 등 원전 건설사들은 입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원전 건설의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고위임원이나 정부 쪽의 고위인사를 모셔오고 학술단체에 대폭적인 지원을 한다. 원전산업회와 한국원자력학회의 인력도 공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철저한 비밀주의에 기반한 끊임없는 사건 사고의 은폐와 정보의 독점을 근간으로 원피아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가고 있다.

토건 마피아는 국토부의 퇴직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이다. 토목 건설과 관련된 12개 협회의(해외건설협회, 한국감정평가협회, 대한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한국골재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한국건설기술관리협회, 대한주택건설협회, 대한설비건설협회, 전문건설공제조합, 건설공제조합,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이나 부회장들은 거의 모두가 국토부 출신이다. 국토부가 이처럼 막강한 자리들을 독식할 수 있는 이유는 대형 인프라 공사나 택지개발사업에 대한 각종 규제 권한을 가지고 있고, 건축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으며 건설 관련 협회의 감독권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건축 토목과 관련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어 민간 영역의 회사들이 현직 국토부 관료와의 채널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아주 강하고, 이러한 필요는 퇴직 관료들에게 재취업의 기회를 보장한다. 또한 이들이 쉽게 민간 영역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불투명한 후보 선임 절차에 기인하기도 한다. 건설 관련 협회가 회장을 선임할 때는 대부분 추대 형식을 취하고 있고, 부회장은 이사회에서 추천한다. 이사회추천이라고 해도 내부와 외부 전문가의 평가를 통한 추천이 아니라 회장 혹은 국토부의 사전 내락을 받은 사람을 추천하게 되니 밀실추천과 다를 바가 없다. 

노피아는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출신의 노무사들과 건설업체가 만들어낸 변형 마피아이다. 이들 감독관 출신 노무사들은 건설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후임인 현직 감독관에게 청탁을 해서 해당 업체의 불법이나 비리를 눈감아 주도록 압력을 가한다. 이를테면, 퇴직 감독관이 건설사와 현직 감독관 사이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데 근로감독이라는 말단의 권력을 가지고 이익의 카르텔을 만들어낸 변형적인 관피아다.

팜피아는 보건복지부와 식약처 내의 약사 출신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말한다. 식약처는 식품·의약품에 관한 안전을 책임지는, 즉 사람의 목숨을 다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서 중의 하나이다.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실이 분석한 2005년부터 2014년 4월까지의 식약처 4급 이상 퇴직자 재취업 현황 자료를 보면 93명 중 83명(89.2%)이 퇴직 2년 이내 유관 기관이나 이익단체 혹은 관련 민간기업에 재취업했다. 이들 중 14명은 한국분석기술연구원과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등 식품과 의약품 안전 검사를 담당하는 유관 기관으로, 17명은 대기업 회원사 이익을 대변하는 식품산업협회 등 이익단체 임원으로 재취업했다. 여기에 민간기업으로 재취업한 사람 숫자도 25명이나 되었다. 이런 짬짜미 구조에서 식품과 의약품 안전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프레시안(최형락)


기타 마피아즘 

한국 사회를 보면 앞서 언급된 관피아 이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마피아즘이 횡행하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인 부분은 분야별 마피아즘을 다루는 글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최근에 한 청년의 죽음으로 이슈가 되었던 서울메트로와 서울특별도시철도공사를 지칭하는 말로 메피아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실력 대신 학교와 파벌을 중요시 한다고 해서 한국축구협회에 붙여진 이름인 축피아, 그리고 대한항공과 관료들의 유착 혹은 대한항공의 독보적인 입지로 인해 벌어지는 항공정책의 난맥상을 꼬집는 말로 쓰이는 칼피아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한다.   

메피아라는 용어는 서울도시철도공사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철도와 관련해서는 2014년 철도공단의 부실시공과 특혜비리가 적발되었을 때 철피아라는 용어가 만들어져 쓰였고, 메피아는 이번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을 사망에 이르도록 한 배후라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서울메트로는 매년 누적되는 적자로 인해 공기업 개혁의 표적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 정원을 10%인 약 1000명을 감축했다. 이 과정에서 해직된 서울메트로 출신들이 민간 용역업체인 은성PSD를 만들었고 서울메트로로부터 용역사업을 위탁받아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 이후로도 서울메트로 퇴직자들이 재취업하는 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이처럼 서울메트로 1·2급 고위직들이 은성PSD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이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데는 지하철 관련 업종 취업제한 규정 등이 없었던 것도 원인이 되었다. 

축피아는 축구협회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국제대회가 끝나는 시점마다 문제가 되어왔다. 실력에 따라 선수를 기용하거나 감독을 발탁하지 않고, 학연과 파벌에 의해 감독을 선임하고 선수를 선발하다보니 충분한 실력이 있음에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혹은 실력이 없는 사람들로만 대표팀을 만들어 국제대회에 나가니 망신스러운 결과를 안고 온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축구협회에서 기술위원장에 자격이 없는 사람을 선임한다든지 경험이 일천한 감독을 선입한다든지, 혹은 납득할 수 없는 선수단 구성을 한다든지 하는 일관성 없는 정책들이 거의 모두 인맥과 학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칼피아는 대한항공 (KAL)의 고위급 인사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대한항공의 고위급 인사들이 국토교통부에 취업해서 정책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대항항공에 유리한 결정들을 많이 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관피아와는 달리 대한항공은 민영회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항공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국토부에 이들 임원이 재취업을 함으로써 현장과 정책의 유착이 심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을 해야 하나? 

앞서 논의된 대로 마피아즘이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끼리끼리 뭉쳐서 남을 배제하고 이권을 철저히 챙기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려서, 사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발전하는데 저해 요소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공직자의 재취업에 제한을 두거나 아예 재취업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들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공직자가 퇴직한 뒤에 재취업을 할 경우에 1, 2년씩 기한 제한을 두며 이를 위반할 경우엔 최대 징역 5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물론 유사 업무에 재취업하는 경우에는 취업 자체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제한 조치가 개인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지만 공공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재취업 시에 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는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점점 강해지고 있는 마피아즘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

마피아즘을 없애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이미 기득권화된 분야들이 많아 마피아즘을 해체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우선은 이슈화를 한다는 의미에서 논의해 보자. 첫 번째는 법에 의해 각종 진흥 업무를 맡고 있는 공공 기관과 이러한 공공 기관과 쌍생아처럼 태어난 각종 협회를 해체하는 것이다. 한국의 각종 법률 혹은 법령은 정부에 많은 권한을 위임하면서 규제 업무가 되었든 진흥 업무가 되었든 그 실행 단위로 각종 공공 기관과 협회를 상정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공공 기관과 협회가 퇴임 공직자들의 재취업기회를 보장하고 있고 이들을 통해 강력한 이권 카르텔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또한 이런 관행은 후임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법을 만들고 협회를 만들도록 조장하고 있어 극심한 예산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두 번째는 공직자 윤리법을 대폭 강화하여 공직자들의 비윤리적인 재취업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현재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들의 재취업을 제한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현재 공직자윤리법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는 일부 공직 유관 단체와 협회 등은 재취업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재취업 심사에서 검토하는 업무 연관성을 소속 기관이 아닌 부서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문화관광체육부 공무원이 강원랜드나 한국관광공사 등에 취업 심사 없이도 취업할 수 있고, 농축산식품부 공무원은 곡물협회 사료협회에, 방위사업청 공무원은 각종 군사 관련 협회와 방산 업체에 취업이 가능하다. 

공무원이 민간의 협회를 장악하고 민간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둘째는 업무 연관성을 소속 기관이 아닌 부서로 한정하면 회사 전체로는 업무 연관성이 있지만 부서 자체로는 업무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체계는 형식적으로는 공무원들의 재취업을 규제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동안 관피아 논란의 핵심이 되었던 공공 기관이나 협회를 중심으로 재취업 자체를 합법화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정부 예산의 사용 방법을 보다 시장 친화적인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예산 사용 형태를 보다 시장 친화적인 형태로 바꾼다면 첫 번째 제시한 공공 기관이나 협회를 줄이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직접적으로 기업에게 출연하는 R&D 예산을 살펴보자. 현재 R&D 예산은 공공 기관들이 배분하고 감독한다. 기업들은 사업 계획을 잘 제출하고 받아서 쓰면 그만이다. 예산의 부정 사용이 아니더라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딱 좋은 구조다. 사업에 대한 심사는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진행하는데 최근 들어 이러한 전문가들의 전문성과 공평성에 많은 회의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벤처캐피털이나 이와 동일한 투자 업무를 하는 금융 기관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 R&D 자금을 심사하고 수혜 기업은 이 자금에 상응하는 자신의 보통주 지분을 내놓던지 아니면 우선주를 발행해서 충족을 시킨 다음 R&D가 성공해서 성과가 있을 경우 이를 원래 가격에 되찾아가는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보다 시장친화적인 방법이다.


판·검사는 선거로 뽑고, 탄핵도 하자!
2016.10.05 12:08:44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한국 사회 마피아즘 ②

             
최근 부장판사, 검사장 등 우리 법치주의 상징인 사람들조차 끝이 없는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법률과 법치에 대한 불신은 경제 등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민주주의에 충실한 선거와 함께, 법치주의에 충실한 법의 집행을 통해서만이 인간의 존업성 보장을 근본 가치로 하는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사법의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여야 한다. 전관 비리의 불법적 관행을 종식시키는 것이 그 출발이 되어야 한다.

개혁 방안으로 먼저 사법 권한을 분산하여야 한다. 둘째, 전관이 배출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제3의 수사 기관 창설과 변호사 영구 제명 사유를 확대하여야 한다. 넷째, 판·검사에 대한 인사나 징계 등에 국민들이 직·간접으로 관여하여야 한다. 다섯째, 판사·검사에 대한 탄핵 절차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여섯째, 다양한 징계 사유를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규정을 제정하여야 한다. 

과거 시험이 아닌 민주주의를 통한 법치주의 확립이 필요하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법치주의가 훼손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 전관 예우라는 선진국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말이 회자되는 자체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자체 개혁이 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정신으로 사법을 다시 세워야 한다. 주인인 국민이 회수하여 직접 내지 위임 권력을 통해 사법권의 일부를 행사할 수밖에 없다.  

(원문 보기 : 전관 비리와 사법 개혁) 


무너지는 법치주의의 토대 

법조계에서 그 동안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 대전 법조 비리, 벤츠 검사 비리 등 각종 비리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법원과 검찰, 변호사회는 그때마다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최근 부장판사, 검사장, 부장검사가 부패 비리 혐의로 구속되어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고, 곧 검찰총장도 할 듯하다. 국민은 사법 제도가 법조인의 탐욕의 수단으로 전락한 현상을 또 다시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대법관과 검사장 등 우리 법치주의 상징인 사람들조차 끝이 없는 탐욕을 보여주고 있다.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법치주의는 국가의 작용과 활동은 국회가 미리 제정한 법률에 근거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는 원리다. 여기서 법률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말한다. 따라서 법치주의는 헌법에의 합치를 전제로 하는 원리다. 법치주의는 국가의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경우,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공권력 행사는 그 발동 사유와 행사방법 등을 미리 법률로 정하여 두고 하라는 것이다. 이는 종국적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이고, 거기에 법치주의 기초 근거가 있다. 따라서 법치주의가 무너지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소지가 매우 높다.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망각한 대통령 및 정부 관료와 국회의원 등의 행태로 국회에서 제정한 많은 법률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또 법률의 공정한 행사와 집행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형사 사법의 경우, 이를 집행하는 경찰, 검사, 판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소위 전관 예우, 아니 전관과 현관의 마피아적 합작 비리이다. 전관 비리는 사법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법원과 수사 기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나아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사법 개혁이 시급하다. 

법률과 법치에 대한 불신은 경제 등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민주주의에 충실한 선거와 함께, 법치주의에 충실한 법의 집행을 통해서만이 인간의 존엄성 보장을 근본 가치로 하는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사법의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여야 한다. 전관 비리의 불법적 관행을 종식시키는 것이 그 출발이 되어야 한다. 불법의 뿌리가 깊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임기응변적 대책으로는 불식시킬 수 없고, 사법 전반의 제도 개혁과 함께 법조인 개인 비리에 대한 예방과 처벌 양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 주도층인 법조계의 암묵적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에 쉽게 이루어지기 어렵다.

▲ 2014년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는 전관 예우 논란으로 결국, 후보자 자리를 자진 사퇴했다. ⓒ연합뉴스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먼저. 사법 권한을 분산하여야 한다. 권한이 집중되고, 권한이 많으면 부패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사법 운영 기관 사이의 권한 배분과 더불어 민주적 사법 운영, 즉 국민 주권주의에 충실하게 사법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주 법관과 검사는 선거 등으로 선출되고 있다. 일본도 최고재판소장과 최고재판관은 중의원선거 시 신임 투표 등을 통해 국민의 위임을 받고 있다. 우리는 국민의 위임 권력이 아닌 판사, 검사에 대하여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권한을 주고 있다. 국민들이 사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배심제의 전면적 도입이 필요하다. 배심 재판과 같이 집중 심리주의 원칙-즉 매일 한 사건을 계속 심리하여 결론을 내는 재판 원칙-을 지키게 하여 전관들의 음성적 변론을 막아야 한다. 검찰의 경우, 공소 제기 권한과 수사 권한을 분리하는 방안도 검토하여야 한다. 현재의 검찰이 직접 수사권과 경찰에 수사 지휘권을 계속 행사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기소권을 분리하여 현재 검찰청에 분리된 별도의 기소검사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둘째, 전관이 배출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연방 국가이므로 대부분의 사건은 주 법원 관할이고, 주법원 법관은 대개 10년 이상 경력자가 선거 등을 통해 임명되고, 연방 법관을 포함하여 종신직 등으로 전관 배출이 거의 없다. 우리와 비슷한 임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일본의 경우, 소수의 판·검사가 중간에 사직하는데 이들은 주로 봉사를 목적으로 개업하거나 대학 교수로 진출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하여 변호사로 개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현재 퇴직 전 1년 근무지 사건의 수임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전관 비리의 예방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3년 등으로 기간을 확대하여야 한다. 다만 확대하더라도 로펌의 경우, 전관 변호사는 담당 변호사로 기재하지 않고 전화로 변론하는 등 편법이 자행되고 있으므로 실효성이 없어 개선되어야 한다. 따라서 몇 년간 개업 자체를 금지하는 방안도 검토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198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하였으나 심판 대상이 된 당시 조항은 형평성 등에서 위헌의 소지가 있었다. 즉, 15년 미만의 전관인 경우에만 적용되었고, 지금과 달리 서울지방법원의 관할이 너무 넓은 문제도 있었다. 그 이후 사회 여론이 더욱 악화된 점을 고려하면 정면으로 금지하는 것도 고려하여야 한다.

셋째, 제3수사 기관 창설과 변호사 영구 제명 사유를 확대하여야 한다. 전관 비리는 엄밀히 보면 현직 법관, 검사의 재량권 일탈로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고, 전직 검사, 판사도 일정 기간 수사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 또 선임서를 제출하지 않고 검찰청이나 법원에 변론하는 경우, 현재는 징계 사유에 불과하지만 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변호사 영구 제명 사유를 확대하여야 한다. 또한 미국과 같이 판사, 검사 등이 공직으로 진출하기 전에 의무적으로 변호사로 등록하게 하고, 비리 적발 시 변호사 자격 자체를 일시적 또는 영구히 박탈하여야 한다. 

넷째, 인사나 징계 등에 국민들이 직, 간접으로 관여하여야 한다. 법관, 검사, 변호사의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 위원 과반수 이상을 국회나 대통령이 추천하는 자로 임명하여 위임 권력의 통제를 받게 하여야 한다. 인사위원회나 징계위원회 위원들이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보조 인력을 배치하는 등 권한을 강화하여야 한다.

다섯째, 탄핵 절차법을 제정하여야 한다. 일본의 법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헌법에 탄핵 또는 형의 선고가 아니면 파면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의 선고는 대법원 확정 판결을 말하기 때문에 그 사이는 파면을 할 수 없고, 정직이 최고 징계가 된다. 그런데 일본은 법관 탄핵법을 제정하였다. 그 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들이 국회에 판, 검사에 대한 탄핵 신청을 할 수 있고, 국회(양원제) 양원 의원 11인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를 심사하여 탄핵 청구를 하고, 헌법재판소가 없는 일본 헌법상 7인의 양원의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탄핵 결정을 한다. 1948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 국민들은 약 90만 건의 탄핵 신청을 하였으나 대부분 국회에서 각하되고 9건이 청구되어 7명의 재판관이 탄핵되었다. 그 중 일본 최고재판소(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재판 권한을 통합한 기구)는 자체적으로 판사 6명의 탄핵을 국회에 신청하여 모두 탄핵 결정되어 파면되었다.

여섯째, 다양한 징계 사유를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규정을 제정하여야 한다. 현재 우리 법관 징계법은 징계 사유를 "1.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한 경우, 2. 법관이 그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로, 검사 징계법상 검사의 징계 사유는 "1. 검찰청법 제43조를 위반하였을 때, 2.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하였을 때, 3. 직무 관련 여부에 상관없이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미국 헌법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법관의 신분 보장 규정이 없어 법률로 징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 검사와 비슷하다. 미연방 차원에서 법관을 징계하는 절차는 2002년 사법 개혁법(Judicial Improvement ct of 2002)에 규정되어 있고, 이에 따라 각 연방 항소법원은 연방 법관에 관한 징계 신청을 심사하는 법관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2002년 사법 개혁법은 징계 신청 절차, 사건의 심사 및 진행 절차에 관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고, 특히 어떠한 정도의 부적절한 행동이 법관 징계 중 파면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관하여도 규정하고 있다. 

징계 사유를 보면, 모범법관행동규범(Model Code of Judicial Conduct)에 규정되어 있는 징계사유예시범법관행동규범의 강령과 규칙의 규정을 참조할 때 구체적인 법관 징계 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행위의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법관이 자신이나 타인의 개인적 이익 혹은 경제적 이익을 증가하게 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그러한 행위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 사법기관의 특권을 남용하는 경우.

2. 법관이 사법적 의무를 수행하면서 편견이나 선입견을 드러내는 언행 또는 희롱유사 행동을 하는 경우 : 인종, 성별, 종교, 출신국, 민족, 장애, 연령, 성적 취향, 결혼 여부, 사회경제적 지위, 정치적 입장 등. 

3. 법관이 사건의 이해관계인이나 변호사에게 법관 앞에서 진술할 권리를 부여하지 아니하는 경우 및 화해를 강제하는 경우. 

4. 법관이 제척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사건에 대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아니하고 부적절하게 회피 제도를 이용하는 경우. 

5. 법관이 당사자, 배심원, 증인, 대리인, 법원 직원 등 직무상 대하는 사람들에  하여 인내심 있게 예의 바른 태도를 취하지 아니하는 경우. 

6. 법관이 어느 법원에라도 계류 중이거나 계류가 임박한 사건에 관하여 결과에  향을 미치거나 공정성을 해할 것으로 예측될 수 있는 공개적 또는 비공개적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

7. 법관이 재판업무 외 활동을 함에 있어, 사법적 의무의 올바른 수행에 장애가 되는 활동, 회피 사유에 해당하게 하는 활동, 합리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법관의 독립성·청렴성·공평성을 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활동에 참여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일정한 행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경우. 

8. 법관이 인종, 성별, 종교, 출신 국가, 민족성, 성적 취향 등을 근거로 불법적 차별을 하는 단체에 가입하는 경우. 

9. 법관이 법에 의해 금지되거나, 합리적 일반인의 관점에서 법관의 독립성·청렴성·공평성을 해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선물·융자·유증·이익 기타 재산적 가치 있는 물품을 수령하는 경우. 

10. 법관이 정치 단체의 대표자가 되거나 대표하여 연설을 하는 행위, 공직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 정치 단체 또는 공직 후보자를 위하여 모금 또는 기부 행위 등(모범법관행동규범이나 다른 법률 등에 의하여 특별히 허용되는 경우는 제외)을 하는 경우. 

이러한 규정이 있다는 자체가 법관들에게 위하(겁주는)효과를 줄 것이다. 최근 우리 대법원장은 종래와 같은 보여주기식 대국민 사과를 하였으나 진정성이 없다. 대법원장이나 검찰총장은 구속된 부장판사를 직무 정지하거나 검사장을 해임할 것이 아니라 국회에 탄핵을 해달라고 신청했어야 했다. 대법원과 검찰에서 발표한 대책은 미봉책이어서 또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징조는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있다. 일본의 예를 보면 이와 같이 실제 탄핵되는 경우는 극소수 법관이지만 이러한 제도가 있다는 자체가 법관들에 대한 위하적 효과가 있어 위법의 사전 예방 효과는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급히 우리도 탄핵 절차법을 제정하여 현재 헌법과 법률에 의해 탄핵이 가능한 사법 관련 직책인 법관, 검사, 경찰청장에 대하여 국민들이 국회에 탄핵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국민 주권주의를 넘어서는 제도와 기본권 보장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시험이 아닌 민주주의를 통한 법치주의 확립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전제이다. 국민의 위임 권력이 아닌 고시 합격자에 대한 과도한 권한 부여는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그 동안 우리 국민은 과거 시험 제도의 향수에 너무 심취되어 그들에게 과도한 권한과 왜곡된 신뢰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판사, 검사. 고시 합격한 고위 관료들은 특별한 엘리트로 대우받아 왔고, 그 중 일부는 계급적 우월감까지 드러내면서 국민들을 무시해 왔다. 고시 합격자들의 상당수가 국민들의 신뢰와 대우에 부응하여 사회 지도층으로 공과 사를 구별하는 봉직의 자세를 갖추기 보다는 공직을 개인의 명예와 부를 쌓는 기회로 삼는 것을 당연시하여 왔다.

청나라나 조선의 과거 시험은 청조나 조선 말 개혁의 중요한 과제였다. 우리와 같이 고시 시험이 존재하지만 판, 검사나 고위 관료가 돈보다 명예를 좇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사법과 상당수 법조인의 모습으로는 더 이상 법치주의가 온전하게 작동될 수 없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법치주의가 훼손되는 사태를 방치할 수 없다. 전관 예우라는 선진국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말이 회자되는 자체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사법 개혁의 최후의 수단으로 검사장 주민 직접선거는 물론 제2공화국 헌법에 규정되었으나 투표 전날 5.16 쿠데타로 실시되지 못한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한 선거 제도도 검토하여야 한다. 자체 개혁이 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정신으로 사법을 다시 세워야 한다. 주인인 국민이 회수하여 직접 내지 위임권력을 통해 사법권의 일부를 행사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좀먹는 '삽질 마피아'

2016.10.25 08:05:08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한국 사회 마피아즘 ③
             
사회 기반 시설(사회 간접 자본, SOC)은 도로나 항만, 철도같이 생산 활동에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경제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물을 의미한다. 이러한 시설물에 대한 투자는 규모가 매우 크고 그 효과가 사회 전반에 미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민간 차원에서 진행하지 않고 정부나 공공 기관이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공적인 가치를 지닌 사업으로 추진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사회 기반 시설은 공적인 가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사라지고, 예산 낭비, 환경 파괴,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본고(本稿)는 여러 사례를 통해 건설 회사의 그릇된 관행과 공무원의 잘못된 영향력을 중심으로 토목 업계의 흔들리는 현주소를 분석한다.(필자)

(원문 보기 : 토목의 공공성)  

대규모 토목 사업의 변질 

고대 로마 시대에 공학은 크게 각종 병장기를 만드는 군사 공학(military engineering)과 문명의 기반이 되는 토목 공학(civil engineering)으로 나뉘었다. 도로, 수로(水路), 도시 건설과 같은 토목 사업은 1000년 로마 문명을 지탱하는 근간이 되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기간 117∼138년)의 티볼리 별장은 '티부르티나 가도'라는 간선 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데, 황제는 사비를 들여 별장과 간선 도로를 연결하는 개인 도로를 별도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로마 시대를 통틀어 권력자들의 별장 근처에 도로나 교량을 만든 사례는 찾을 수 없다. 로마인에게는 공(公)과 사(私)가 엄격히 구분되었고, 토목 공사는 공적인 사업의 대표적인 예였다. 이러한 로마인들의 정신이 천년 제국을 뒷받침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산업화를 압축적으로 이루었다. 당시에는 도로 등과 같은 사회적 인프라가 거의 구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일부 사업에는 상당한 부작용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22조 원이 낭비된 대국민 사기극 4대강 사업, 돈 먹는 하마가 된 시화호 사업, 17일 동안의 잔치 후 흉물로 남을 게 분명한 평창 동계 올림픽 경기장들, 유령 공항이 되거나 개장도 하지 못한 지방 공항, 지역 공동체를 파괴하는 댐 사업, 극한의 갈등을 겪은 송전탑 사업, 가치의 대결이 된 제주 강정 마을 항만 사업 등과 같은 수많은 토목 사업은 예산 낭비, 환경 파괴, 사회 갈등을 일으켰다. 우리 사회는 잘못된 국책 사업을 하느라 막대한 국민 세금이라는 수업료를 납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토목 사업은 산업 발전을 뒷받침함과 동시에 국민 생활의 편리함을 도모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토목 사업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토목 본연의 갈 길을 못 찾는 이유를 살펴보자.

토목 사업의 변질의 원인 

사회 기반 시설은 공적인 가치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성은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서는 사라졌다. 공공을 위한다는 허명으로 포장한 각종 토목 사업은 가치 판단을 유보한 채 돈벌이에 혈안이 된 건설 업계와 탐욕스런 정치권의 합작품이다. 많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개인 건설 회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군·구 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토목/건축 사업에 깊숙이 관여하여 이권을 챙길 개연성이 있고, 건설 회사를 가지지 않더라도 건설 공사에서 각종 공법을 선정하는데 관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기초지자체 하천 정비 사업의 사례를 살펴본다. 1킬로미터(km) 하천 공사라면 400미터(m)는 군수, 200미터는 건설국장, 200미터는 담당 과장, 200미터는 담당자가 (비공식적으로) 추천한 공법으로 설계하여 공사를 하였다(편의상 길이는 임의로 설정함). 만약 특허 공법을 선정하였다면 최대 30%까지 공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매년 연말만 되면 국회의원들은 예산 부서에 소위 '쪽지 예산'을 전달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토목 공사를 청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의 능력은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고, 국회의원은 예산 확보를 자신의 치적으로 여긴다. 유권자들은 그 토목 사업 예산이 타당하고 지역에 꼭 필요한가는 논외로 여긴다. 19대 순천·곡성 보궐 선거에서 이정현 후보는 '세금 폭탄'을 선물하겠다고 공약했고, 그리고 당선되었다. 정치인들이 토목 사업이란 미끼로 교묘하게 유권자를 유혹하고 유권자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비롯된 잘못된 의사 결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영혼 없는 공무원, 곡학아세하는 전문가, 그리고 정치에 휘둘리는 사법부다. 첫째, 영혼 없이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공무원이 문제다. 예를 들면 경인운하는 그동안 수차례 관에 들어갔던 사업이었는데, 어느 한순간 관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다. 공무원들의 서랍에 수많은 사업 목록이 있고 정치 상황에 따라 그에 적합한 사업을 식탁에 음식을 차리듯이 내놓는다. 이때 내놓은 사업의 경제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 파괴적인 사업을 '친환경 댐 건설', '가장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말장난으로 오히려 친환경으로 포장하며 사회적 갈등이 예견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조직 유지를 위해서는 어떤 사업이든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관료들이 만드는 비극이다. 

둘째, 전문가들의 곡학아세다. 황당한 사업에 대해 왜곡된 이론을 제공한 전문가들이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여 공무원들에게 면죄부를 준다. 그 대가로 전문가들은 훈·포장을 받고 정부 연구 용역을 수행한다. 이런 사례는 이미 4대강 사업에서 수없이 확인했다. 실패한 사업으로 판명 난 4대강 사업에 대하여 그 전문가들은 이왕 만들어진 토목 시설물에 대한 평가는 소모적이므로 유지 관리를 어떻게 잘하느냐에 집중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편리한 변신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전문가들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공무원들은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억지춘향 논리를 바탕으로 제2의, 제3의 4대강 사업을 준비하고 추진할 것이다.

셋째, 사법부의 정치적 판단이다.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토목 사업에 대해 사법부는 언제나 정부의 재량권 일탈남용이 아니라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정치적으로 시작한 잘못된 사업에 문제가 발생해도 사법부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공무원들은 거리낌이 없다. 부산고등법원에서 낙동강 보를 건설할 때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은 국가재정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서는 "예비 타당성 조사 미실시는 예산 편성의 하자이지 4대강 사업의 절차상 하자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것은 사법부가 스스로 위신을 실추시킨 것에서 멈추지 않고 토목 관료 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 2008년 12월 30일자 만평 '누가 뭐래도 난 삽질할 뿐이고~.' ⓒ프레시안(손문상)


건설 산업의 비정상적 관행 

건설 산업은 민간 영역에서 건설 회사(건설업)와 설계 회사(건설 용역업)으로 대별할 수 있고, 공사 감리 분야는 설계 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 기관으로부터 건설 공사를 수급하여 적정 이윤을 남긴다. 정상적인 회사 운영을 통한 이윤 창출은 보장해야 하지만, 각종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현실을 진단하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불법 재하도, 유령 회사 운영, 단가 후려치기, 공사 금액 부풀리기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건설 산업에 팽배해 있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은 한번 대기업은 영원한 대기업이고 실력 있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건설 산업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고착화되고 따라서 건설 업계에 역동성이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면 건설 산업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침체해질 것이다. 

건설 회사의 잘못된 관행 중 대표적인 것들로는 △ 불법 하도급(재하도, 공사비 부풀리기/후려치기), △ 공동 도급 지분 포기, △ 유령 회사 운영 및 외국 회사 공사비 과지급 등을 들 수 있다. 낮은 공사비로 인한 부실 공사 방지와 공사장 안전 확보를 담보하기 위하여 건설산업기본법은 원칙적으로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원도급자는 관리비와 이윤을 제한 나머지 금액을 하도급자에게 지불하게 된다. 원도급자→하도급자→재하도급자로 건설공사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관리비와 이윤 명목으로 약 10∼20%(지분 포기 금액)를 책정하고 있는데, 재하도급자는 당초 공사비의 약 65∼80%로 공사를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비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재하도하는 과정에서 하도 공사비의 20∼40%까지 지분 포기 금액을 책정하는 사례도 있다. 

건설 공사를 공동 도급할 경우 각 회사마다 지분율이 있는데, 공동 도급에 포함된 어떤 회사가 그 지분을 포기할 경우 통상적으로 지분율에 해당하는 공사비의 약 10∼20%를 지분 포기 금액으로 책정한다. 특히 지방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로 지방의 건설 공사일 경우 중앙의 큰 회사와 지방의 작은 회사들이 공동 도급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지방 회사들은 지분 포기 금액을 받고 큰 건설 회사에 공사를 일임하는데, 4대강 사업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지방 회사에 누가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지본 포기 금액은 달라진다.

또한 원도급자가 유령 회사(paper company)를 하도급자로 선정했음에도 별도로 작업반장을 고용하여 하도급자가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재하도급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하도급 회사는 통장을 통해 공사비 출납만 담당하고, 원도급사가 작업반장을 직접 관리하는 직영 체제를 운영하는 불법 재하도급 관행은 지방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례1. 농어촌공사 오봉댐 여수로 사업 

2002년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덮쳤을 때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 중의 하나가 강릉이다. 하루 860밀리미터라는 기록적인 강우가 발생하여 오봉댐이 붕괴 위험까지 가는 등 강릉 전역이 극심한 홍수 피해를 입었다. 오봉댐 관리 주체인 농어촌공사는 2008년부터 치수능력 증대 사업으로 댐마루 높이를 약 5미터 증고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최초 공사비 461억원에서 95억 원(당초 공사비의 20%)이 증액되어 현재 556억 원으로 설계 변경하였다. 국가재정법 제38조(예비 타당성 조사)에 의하면 공사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당초 공사비가 500억 원 이하였기 때문에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볼 때 공사비가 556억 원이라면 예비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이다. 당초 공사비 기준으로 20%가 증액된 사업이기 때문에 사업을 구상할 때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기 위하여 공사비를 줄여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진행될 때 사업비를 증액시켰다는 의혹이 있고, 이러한 점은 국가재정법을 무력화시킨 사례라 판단된다. 

또한 농어촌공사는 불법 재하도급을 묵인하고 공사장 관리를 부실하게 하여 2011년 1월 거푸집 붕괴 사고가 발생하여 4명이 숨졌다. 2011년 사고 당시 공사 현장을 부적절하게 운영한 농어촌공사는 2016년 현 시점에서도 역시 공사장 운영에 불법성이 있고 투명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9월 오봉댐 공사 현장의 불법성을 밝힌 기자 회견문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한다. 

농어촌공사는 오봉댐 치수 능력 증대 사업을 하기 위하여 S건설과 도급 계약을 했고 S건설은 T건설과 하도급 계약을 했다. 여수로방수로 구조물 공사(여수로 벽체, 바닥 등)를 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 5월경 L 작업반장은 원도급사인 S건설과 이행 각서를 작성하였다. 이행 각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 공정은 "철근 조립과 콘크리트 타설"로 이루어져 있고 공정별 단가가 명시되어 있다. 일종의 계약서로 볼 수 있다. 또한 이행 각서에는 "공사 대금과 관련한 적자나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라도 귀사에는 공사 대금 보전 및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문구도 포함하고 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필요한 자재를 구매하기 위하여 작업반장이 직접 필요한 자재의 견적서와 세금 계산서를 작성하여 S건설에 제출하면 하도급 업체인 T건설이 구매 대금을 지급하였다. 또한 작업반장이 고용한 일용직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서 T건설이 '일용 노무비 지급 명세서(2015년 7월분)'라는 서류를 만드는데, 이 서류에 대한 결재는 담당과 소장이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담당은 S건설 안전 관리자였고, 소장은 역시 S건설 현장 소장이었다. 현장 근로자에 대한 노무비를 지급하기 위해 하도급 업체인 T건설이 노무비 지급 명세서를 작성하였지만 의사 결정권은 S건설에 있었고, T건설은 단지 공사비를 기계적으로 지출하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 또한 T건설은 공사 현장에 현장 소장을 포함한 어떠한 직원도 파견하지 않았다. 이런 논란이 발생하자, 지난 8월 S건설 소속 직원(P 공사과장)을 T건설 현장 소장으로 부임시켰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에 의하면 "하수급인은 하도급 받은 건설 공사를 다른 사람에게 다시 하도급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법적 취지는 다음과 같다. 재하도급을 할 경우 하도급 업체는 관리비(통상 공사비의 10∼18%)를 제한 금액을 재하도하기 때문에 재하도급 업체는 그만큼 공사비가 줄어들게 된다. 결국 재하도급 업체는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공사장의 안전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관행이 결국 공사 부실로 이어지고 인명 사고로 직접 연결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4명의 인명 사고가 발생한 주요 원인은 불법 재하도급과 그로 인한 품질저하와 안전 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농어촌공사는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고 불법 재하도를 묵인하고 있다.

공무원의 그릇된 영향력 

다음으로 각종 공제조합, 협회 등에 공무원의 영향력을 살펴본다. 먼저 건설공제조합이 법률적으로 어떻게 국토부에 종속되어 있고, 공무원의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본다. 건설 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건설공제조합의 운영위원회는 이사장 후보자를 총회에 추천하는 등 실질적인 최고 의결 기관인데, 운영위원장은 국토부장관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5년 10월 29일 건설공제조합은 임시총회에서 박승준 이사장을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키자, 건설공제조합 노동조합은 "이번 선임은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밀실, 낙하산 인사"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운영위원회에서 이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조합원 총회에서 선임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운영위원회는 국토부가 내정한 사람을 총회에 추천하는 거수기 역할만 해왔다"고 주장했다. 

건설공제조합은 건설 산업기본법에 의해 설립된 특수 법인으로 건설 산업에 필요한 보증, 융자, 공제(보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건설공제조합은 종합 건설사 약 1만1000개사(社)가 조합원으로 자본금은 약 5조2000억 원이며 정부의 출자금은 0(zero)원이다. 건설공제조합에 출자금이 한 푼도 없는 국토부는 퇴직 공무원 또는 정치권 인사들을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으로 내정하고, 형식적 절차를 거쳐 내정자들은 이사장과 임원에 임명된다.

또한 국토부는 수많은 협회를 관련 법에 의한 법정 단체로 인가하고 협회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 한 사례로 한국하천협회는 하천법에 근거하여 설립되었고, 하천법은 한국하천협회의 정관의 기재 사항과 협회의 감독에 필요한 사항 등은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협회가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하천법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그 업무를 협회에 위탁하는 경우에는 위탁 업무의 수행에 드는 경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예산의 범위 안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협회가 수의 계약 형태로 각종 위탁 업무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협조 없이는 예산 확보가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협회는 국토부의 낙하산 인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국토부의 잘못된 정책을 홍보하는 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사례 2. 1조1200억 원의 농업용 저수지 도수로 사업 : 제2의 4대강 사업

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녹조가 발생하여 식수원에 심각한 악영향이 생긴다는 비난의 여론이 드세다. 이에 국토부는 또 하나의 꼼수를 고안했다. 4급수에 미치지도 못하는 금강의 물을 펌핑하여 도수로를 통해 보령댐으로 보내는 사업이다. 2015년 말 사업을 시작할 때 국토부는 2016년 3월이면 보령댐 물이 말라버리는 긴급 상황이 발생한다는 논리로 국가재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100년 빈도 가뭄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수로 공사를 완료한 2016년 3월 보령댐은 마르지 않았고 24% 저수율을 기록했다. 약 800억 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한 '만들어진 가뭄'이었다. 

한편, 농림부는 2016년 5월 <하천수 활용 농촌 용수 공급 사업 사전 예비 타당성 검토 전체 사업 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4대강 사업으로 만든 보에 저장한 물을 이용하기 위하여 농경지 20개 지구를 선정하였고 각 지구마다 도수로를 만들어 보의 물을 농업용댐에 공급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필요한 예산이 무려 1조1200억 원이고, 현재 충남 예당저수지 도수로 사업을 포함한 3개 지구에서는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지도 않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농림부가 개발한 논리는 황당하기 이를 때 없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2012년 서해안 지방에 104년 빈도에 해당하는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고, 2014년 중부 지방에 80∼200년 빈도 가뭄이 발생했다. 지하수 관정을 파는 등 긴급 가뭄 대책을 추진한 결과, 가뭄 피해액은 없었다. 한발 빈도 10년 가뭄에 대비하여 농업 용수를 개발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음에도 가뭄 피해가 없었다는 사실은 경이적이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농업 용수가 충분히 개발되어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농림부는 4대강 수계에 있는 전체 답면적(48만 ha)의 42%, 전체 수리 시설(40,819개소)의 62%가 10년 미만의 가뭄이 발생하면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분석했다. 

100년 빈도 이상의 가뭄이 발생하더라도 국부적으로 긴급 대책을 시행한 결과 가뭄피해가 없었는데, 고작 10년 빈도 가뭄이 발생하면 우리나라 농토의 절반 가까이 가뭄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4대강 보 건설로 확보한 물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4대강 물을 펑핑하여 도수로를 통해 산 중턱에 있는 농업용 댐에 공급하겠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20개 지구에서 추진할 계획이고(3개 지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 필요한 예산은 1조1200억 원에 이르는데, 그 기대 효과는 기괴하다. 

이 사업을 하면 10년 빈도 가뭄에 농업 용수가 부족한 농경지(42만2296헥타아르(ha))의 2.8%, 4대강 수계에 있는 물 부족 농경지(20만2239헥타르)의 6.1% 정도가 10년 빈도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나라 물 부족 농경지 모두를 10년 빈도 가뭄에 견딜 수 있게 하려면 산술적으로 약 4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지난 70여 년간 농업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무용지물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추진했던 110여 개의 농업용 저수지 증고 사업(예산 약 3조 원)은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토부가 2015년 작성한 <전국 수리권 일제 조사 및 하천수 관리 방안>이라는 보고서가 현재 농림부가 진행하는 도수로 사업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 하지만 자기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마와의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그 집요함이 보인다. 또 다른 사기극에 '억지 춘향 논리'를 제공한 전문가 집단의 뻔뻔함에 전율을 느낀다. 만들어진 가뭄을 해결하는 것이 국가 긴급 상황이기 때문에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정치인들의 무식함에 더 이상 실망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22조 원의 국민 세금을 낭비한 4대강 사업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음에도 "4대강 사업 좀 더 두고 봐야"하고 "역사가 평가해 줄 것"라는 괴변을 늘어놓는 4대강 사업 추진 세력들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했다. 그러한 대국민 사기극을 펼친 공로로 정부 훈·포장을 받았던 1157명이 아직도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다. 

해방됐을 때 일제에 부역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어두운 그림자가 21세기에도 사회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4대강 사업에 대한 단죄를 하지 못한 결과, 4대강 추진 세력들은 1조1200억 원이 낭비되는 제2의 4대강 사업을 진행한다. 우리 사회가 무관심하면 그들은 제3의 4대강 사업을 은밀하게 준비할 것이고, 머지 않는 장래에 그 황당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토목의 공공성 회복을 위하여 

이제 새로운 토목의 방향을 고민할 시점이다. 4대강 사업 이후 토목/건축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내가 주장하는 '좋은 토목', '착한 토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토목이나 건설 인프라는 이미 충분히 구축돼 있다. 여기에 타당성이 부족한 대규모로 사업을 자꾸 벌이는 것은 '나쁜 토목'이다. 이제는 필요한 부분만 늘리는 '작은 토목', '좋은 토목'을 지향해야 한다. 농촌에 가면 적게는 20가구 많게는 100가구가 모여 산다. 한 300명이 모여 산다고 가정하자. 지금 정부가 하려는 것은 이 작은 마을을 한 단위로 묶어서 큰 댐을 건설해 물을 공급하겠다는 방식이다. 그 자체가 무리한 계획인 데다 사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고서 내용을 왜곡하고 갖가지 자료나 근거를 고무줄처럼 잡았다 늘리기도 한다. 그렇게 ‘나쁜 토목’만 지향하다 토목 분야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내년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400조 원을 돌파할 계획인데, 사회 기반 시설(SOC) 예산은 8% 줄어든 22%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4.5% 감축에 이어 올해도 SOC 예산이 2년 연속 대폭 줄어들어 사실상 토목/건설 중심의 예산 편성은 종언을 고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한꺼번에 줄이느냐 아니면 서서히 줄이느냐 하는 것인데, 규모를 줄이면 어차피 기존 인력은 남아돌게 되고 기왕이면 '작은 토목', '좋은 토목'을 통해 연착륙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작은 토목'은 일자리를 보다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 정치인들이 내놓는 토목 사업 계획은 너무 거대하고 황당한 게 많다. 그건 토목이 경착륙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1000억 원짜리 사업을 하나 하면 관리하기는 쉽다. 그러나 대개 기계를 동원해 일을 해버리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 100억 원짜리 사업 10개를 하면 같은 돈으로도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같은 효과를 내면 금상첨화다. 좋은 토목과 나쁜 토목의 차이는 그것이다. 또한 같은 예산으로 토목 사업을 하더라도 다목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지하차도를 30년 빈도 홍수 때 일시 저장하는 홍수 방어 시설로 활용하는 다목적 토목을 도입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토목 시설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의 요체는 유지 관리가 쉬워야 하고 유지 관리 비용은 적어야 한다.

결국 문제는 정치이다. 토목 사업을 하면 땅값이 오른다는 인식이 전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다. 그 결과는 이미 우리가 목도한 대로 환경 파괴와 국민 세금 낭비로 이어졌다. 토목 사업을 유치하면 지역이 발전하고, 그것은 정치인의 능력이고 표로 직접 연결된다는 소아적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정된 국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목 정책이다. 하지만 토목 정책으로 경쟁하는 선거가 아니라, '묻지 마' 토목 사업을 쏟아내는 선거가 우리 사회를 더 암울하게 만들어 왔다. 토목 사업은 공공 사업이며 말 그대로 공(公)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금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