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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무현의 꿈 '시베리아 철도', MB·박근혜는…

일취월장7 2016. 10. 21. 10:07

DJ·노무현의 꿈 '시베리아 철도', MB·박근혜는…

2016.10.19 07:17:26


[이철-박흥수 대담 上] 좌초된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업, 그 이유는?

             
지난 3일 일본 발 뉴스 하나가 여러 언론사의 특파원 보도로 한국에 소개 되었다. 오는 12월, 러일 경제협력회의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way)의 일본 연결을 제안했다는 <산케이> 신문 보도내용이다. 

연해주에서 사할린을 잇는 7km 구간과 사할린에서 홋카이도를 잇는 42km를 해저터널 또는 다리를 건설해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일본 철도를 연결하는 것이 러시아가 제안한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 철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에 연결된다.  

애초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대륙으로 이어진 한반도와 연결하는 방안, 즉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연결하는 방안으로 러시아와 남북이 수년간 노력해왔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 이러한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산케이> 신문 보도와 같이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공이 넘어가는 모양새다.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장 중요한 상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면서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주창했던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서는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가 일본에 손을 내미는 이유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이 만나 대담을 나눴다. 이철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러 철도 협상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다. 

그동안 남북철도 연결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한 그 과정에서 얽힌 뒷이야기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들의 대담을 통해 노무현 정부에서 하려고 했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현재는 왜 좌초됐는지, 현재 러시아와 일본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파트너십을 맺는 게 어떤 의미인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2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을 두 회에 걸쳐 싣는다. 

▲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 ⓒ프레시안(최형락)


"철도 연결은 단순히 통로가 열리는 개념이 아니다" 

박흥수 : 박근혜 정권 말기가 되어가면서 국정의 난맥상이 보이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는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와중에 러시아 정부는 현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일본 홋카이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에 제안했다. 오는 12월 일본 야마구치에서 열리는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논의 중인 경제협력사업의 일환이다.  

이 방안이 현실화된다면 일본을 통한 유라시아 철도가 완성된다. 사실 이런 방안은 거슬러 올라가면 1995년, 그리고 2000년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두고는 의문이 제기됐다. 바로 시베리아와 맞닿아있는 한반도 때문이다. 섬에서 해저터널을 뚫어 시베리아를 잇는 것보다는 기존 철도를 이용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반도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러시아는 남북철도 연결 가능성이 물 건너갔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이 섬에서 해저터널을 뚫어 시베리아 철도까지 연결되는 안이 본격 논의되는 듯하다. 대륙철도 문제는 우리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대륙철도를 추진해오지 않은 게 아니다. 상당 기간 추진해왔고 진척도 어느 정도 이뤘다. 하지만 이것이 어느 순간 끊겼다.  

우선 과거 한국철도공사(현 코레일) 사장(2005년 6월30일~2008년 1월21일) 당시 이야기를 해보자. 취임할 당시, 대북철도사업이 국가적 사업이었다. 청와대, 국회 등에서도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담당했던 주체는 철도공사였다. 철도공사 사장을 맡게 될 때부터 남북철도 연결사업에 대해 정부의 제안을 받았었나? 

이철 : 내가 철도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게 2005년 6월 30일이다. 그 전에 정부와 청와대와 접촉을 했었다.  

박흥수 : 사장 맡아 달라고 제안한 것인가.  

이철 : 그렇다. 그러나 내가 펄쩍 뛰었다. 나는 철도 관련해서 비전문가고, 문외한이었다. 그리고 철도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다. 철도인 전체가 뭐랄까. 부패‧무능한 집단으로 인식했다. 나를 그런 진흙탕에 빠뜨리려 하나 싶었다. 그런데, 추후 나를 생각하는 이들이 차분하게 생각해보라 했다. 더 큰 자리 안 줘서 토라진 속 좁은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런 부패한 집단을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래서 가게 됐다. 

이후 그곳에서 일하면서 철도인에 대한 인식이 180도 달라졌다. 철도 직원들은 성실한 공복이라고 말해야 될까? 굉장히 순진하고 열심히 하는 분들이었다. 진짜 문제는 고위 관료들, 청와대를 비롯한 고위층, 국회와 언론까지 포함해 사회의 주류가 악용했던 측면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철도와 철도인에 대한 애정을 참 많이 갖게 됐다. 그런 와중에 남북철도 연결이라는, 철도공사 그리고 철도공사 사장에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게 되었다. 

박흥수 : 철도 연결은 운송 즉, 경제적 가치만 있는 게 아니다. 역사의 복원, 문화 교류와 소통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이를 통해 안보와 평화에도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우리 인류가 추구하는 문화, 가치, 그리고 공존이 철도를 통해 완성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철 :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철도에서 선로를 연결하고 철도를 운행하는 것을 수송 수단의 하나로 생각한다. '도로가 하나 개통됐다', '통로가 열렸구나' 하는 식의 생각을 가지기 쉽다. 하지만 철도의 선로 연결은 의미가 매우 다르다. 유라시아 대륙에 연결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대륙 철도 연결은, 인체로 비유하면 막혔던 동맥이 연결되는 것과 똑같다. 박흥수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철도 연결을 통해서 문화 교류가 일어나고 안보나 평화가 증진되는 것을 우리가 고려해야 한다.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가 연결되면 가스‧전기도 동시에 개설된다. 우리도 그렇게 계획을 했다. 그 점에 러시아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거기에는 일본, 북한도 이해관계를 함께 하고 있었다.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은 공동 번영 취지에 들어맞는 부분이었다.  

"청와대의 의지 있었으나 관료들은 철도에 아무 관심 없어"

박흥수 : 본격적인 남‧북‧러 철도사업 이야기를 해보자. 이미 김대중 정부시절인 2000년 7월 31일 제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연결 합의를 통해 남북 철도 연결이 가시적으로 궤도에 올랐다.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사업의 진척과정에 대해 말씀 해 달라. 사장 취임하고 나서 대북 협상 파트너의 남측 대표는 누구였나?

이철 : 처음에는 청와대, 통일부, 건교부, 코레일 이런 공적 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구체적인 진척도 있었다 예를 들면 615공동성명에도 그런 내용이 포함됐고 2004년에도 남‧북‧러 철도 전문가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취임 후 통일부 측과 논의도 있었다. 사실 청와대와 통일부가 주도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관료들은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내가 취임하고 6개월이 지난 2005년 10월로 기억한다. 서울에서 열린 '제14차 시베리아횡단철도운영협의회(CCTST)' 총회에 참석해 러시아 철도공사 야쿠닌 사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하고 같이 앉는 기회가 있었다. 정동영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서 남북철도 연결을 주관하는 입장이었는데 통일부의 관료들이 조금 뭐랄까... 

박흥수 : 그러니까 청와대와 장관은 의지가 컸는데 관료들이 뒷받침을 못했다.

이철 : 맞다. 장관의 의지는 대단히 특별했다. 그런데 관료들은 그걸 뒷받침 하지 못 한다는 인상이었다. 회의에서 정동영 장관은 야쿠닌 사장한테 '남북철도 연결은 이철 사장과 협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며 적극적으로 소개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나서 생각해보니 통일부 차원에서 좀 주도를 했으면 더 나았지 않았겠나 하는 판단도 있다.

박흥수 : 그런 면도 있다. 하나의 공기업이 맡는 것보다는 국가차원의 지원을 받아 부처가 키를 잡고 사업을 추진하면 공기업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결정을 할 때도 수월한 면이 있다.

이철 : 맞는 말이다. 그 이후로 줄곧 러시아 측은 자신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철도공사를 주 파트너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철도공사를 주 파트너로 삼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철도공사가 실질적인 운영자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철도공사가 협상 대표가 되어야 철도공사를 통해 TSR의 주된 수입이 되는 컨테이너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이해가 있었다. 물량 확보 관련해서는 통일부도 아니고 청와대도 아닌 철도공사를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리고 내가 자기네 파트너로서 실천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 즉 대통령과 매우 친하다는 잘못된 정보가 그쪽에 전달된 듯하다.(웃음)  

박흥수 : 야쿠닌 사장도 러시아에서 매우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다. 

이철 : 나중에 푸틴 대통령이 재선 되기 전, 야쿠닌 사장이 대통령 후보 3인 중 한 명으로 거론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는 지금도 푸틴 대통령 오른팔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그런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내세워 남한은 한국철도공사, 북한은 김용삼 철도상을 선택해 남‧북‧러 철도 운영자 회담을 진행했고, 이후 TKR TSR 연결사업과 러시아가 목표로 하는 극동개발, TSR 활성화 등을 추진하려 했다. 이를 야쿠닌 사장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박흥수: 이 과정에서 국토부, 당시 건교부는 어떤 역할을 했나?

이철 : 그것은 참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웃음) 아마 과거의 관료, 또는 지금의 관료 같았으면 방해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방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반공 영화에서 보듯이 배후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고 하는 행동을 보였다. 

박흥수 : 구체적으로 한 가지만 예를 들어준다면? 

이철 : 남‧북‧러 철도 회담을 할 때 건교부 인사가 대표단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사람이 대표 의사와 상관없이 별도로 저쪽하고 접촉을 하고 채널을 다르게 하려했다. 대외 접촉에서 이러한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모든 통로는 단일화 돼야 한다. 거기에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건 매우 전략적인 실수다. 때로는 일부러 '다른 목소리를 내봐라' 이렇게 역할분담해서 상대 의중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철저히 하나의 통로로 말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걱정을 많이 하긴 했는데, 다행히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관료였다면 틀림없이 방해를 했을 것이다.(웃음) 하지만 그때는 방해까지는 하지 않았다. 2006년 3월 15일부터 20일 동안 6일간 진행된 TSR-TKR 연계를 위한 MOU 체결을 위한 남‧북‧러 철도협상에 건교부, 통일부 관계자들이 왔지만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자기 부처에 보고를 하는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관료들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그 당시 건교부가 나쁜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하는 거다. 나는 관료들이 그나마 잘 대응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사업을 하는 내내 관련 정부부처는 적극적인 지원을 하진 않았다. 관료들 특성이 자기들 영역이 아니면 지켜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박흥수 :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냐면 건교부(국토부 )관료들 입장에서 철도공사는 자신들이 컨트롤하는 산하기관이다. 파트너십이 아니라 명령과 복종 관계인 '갑을 관계'가 분명하다. 그러니 이런 대북철도 연결사업에서 철도공사가 대표로 나서 일정한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이철 : 철도공사 사장 취임하고 2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그간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그간 지녔던 철도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전환됐을 때였다. 그때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개별보고를 하라는 연락이었다. 그간 생각했던 바를 A4 10페이지 정도 정리해서 청와대로 갔다. 그런데 집무실에서 보고를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대통령이 지내는 안채로 나를 불렀다. 거기에 가니 권양숙 여사도 대통령과 함께 있었다. 편한 자리였다. 

그래서 생각했던 바를 가감없이 다 이야기했다. 철도공사의 잘돼 있는 점, 잘못돼 있는 점, 아까 말했듯이 철도공사 직원들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정부와 관료 집단의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어서 철도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는 상하분리의 문제도 이야기 했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도 않는 상하분리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고도 했다. 하지만 난 그때까지 상하분리가 민영화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민영화의 초석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러다 해고자 복직 문제에 대해서도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부인을 옆에 앉혀 놓고는 일어서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가슴에 담은 말은 쏟아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철도민영화 관련, 철도 노조와 협상을 진행했고, 적절한 합의안(2003년 4월)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합의안 이후, 두 달여 뒤 철도 노조는 파업(2003년 6월)을 진행했다. 이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분노는 내가 만났을 때에도 대단했다. 자기 나름대로는 노동자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만 뒤통수를 딱 맞았다고 표현했다. 그때 느낀 것은 정말 엄청난 충격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들과 함께 할 생각이 없다면서 인격적으로 짓밟혔다고까지 표현했다.  

▲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프레시안


"노 대통령, 자필 원고로 철도의 중요성 언급해" 

박흥수 : 노무현 대통령과 철도 노조 사이가 좋지 못해서 그런 듯하다. 대통령은 노동조합에, 노동조합은 대통령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철도민영화를 숙명적 과제로 여긴 건교부 관료들의 작업도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이번 주제에서 벗어나기에 더 언급하지 않겠다.  

이철 : 그렇게 화를 내는 게 30분 간 계속됐다. 그래서 내가 결국, 그렇게까지 하면 나도 할 방법이 없지 않느냐, 나에게 그런 한계를 주면 (사업을) 하지 말라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랬더니 이내 알겠다고 하면서 화를 가라앉혔다. 노 대통령은 매우 인간적인 분이다. 화를 냈다가도 냉정을 되찾으면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노 대통령은 집권 이전의 해고자들은 우선 복직되도록 사장의 재량권을 인정해 줬다. 나나 노 대통령은 그렇게 되면 상당수 해고자가 복직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리 많은 인원이 아니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매우 미안했던 듯하다. 나중에 대통령 국회 연두 시정 연설에 애초 작성된 원고에 '철도를 적극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자필로 쓴 2페이지 분량 내용을 자신이 직접 넣었고 이는 생방송으로 그대로 나갔다.  

박흥수 : 기억한다. 사전에 배포한 원고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고 들었다. 

이철 : 정부 관료들 입장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일을 한 거다. 전례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그렇게 하니, 관료들은 '철도 문제는 이철 사장에게 다 맡기겠다는 의미구나'라고 받아들였다. 또 철도공사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라는 구체적인 사인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니 자연히 적극적으로 반대 행동은 못했다.  

박흥수 : 반대 행동을 못했다면, 다른 행동은 했다는 이야기인가. 

이철 : 아까도 말했듯이 방치하는 것이다. 일례로 내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열차 운행 관련, 중국 철도부 장관과 협상할 때였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철도를 이용해 대한민국 응원단을 베이징 올림픽에 보낼 수 있다면 남북관계나 철도 협력에 아주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제안을 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과 원만한 협상을 거쳐야 했다. 그때 중국과 협상에 앞서 우리 외교부에서 내게 북한과 중국 관계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아무래도 삼자간 합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그 둘의 관계가 중요했다. 협상 전 미리 알아야 하는 정보가 있다면 알아둬야 했다. 그런데 당시 브리핑에 외교부는 철도공사보다도 못한 보고서를 가져와서 브리핑을 진행했다. 중국과 북한의 인구, 면적, 전압관계, 철도 현황 등 대부분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을 브리핑했다.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 들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깜깜한 상태로 간 것이다.

박흥수 : 중국과의 협상에서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들어간 셈이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 

이철 : 나중에 중국 철도부 장관이 공식회담에서 북한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중국과 북한은 꽤 가까운 사이로 알았는데 깜짝 놀랐다. 중국 측은 베이징 올림픽 때 열차를 이용해 돕겠다는 우리의 생각에는 고맙게 생각한다면서도 북한과는 어떤 사업도 진행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흥수 : 특별한 이유를 든 것이 있나? 

이철 : 한번은 북한에 큰 수해가 나서 중국이 원조 물자를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승무원들만 돌아오고 물자를 보낸 기관차와 화차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북한을 직접 가보니, 이미 기관차 등은 분해해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분노해서 다시는 그런 원조를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후 또 북한에 비슷한 일이 생겨 결국 또 물자를 실은 기관차와 화차를 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다시는 북한에 기차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흥수 : 당시 북‧중 관계를 모르고 간 게 문제였던 듯하다.  

이철 : 모르고 갔다. 베이징과 평양을 오가는 국제열차도 다니고 있는 현실에서 중국과 철도 협력이 되는 것으로만 알고 갔다.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기자들까지 있는 공식 회담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 나는 너무 놀랐다. 실제로 중국의 북한에 대한 불신은 상당했다. 차라리 남한을 더 신뢰하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외교부, 국정원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다고 우리에게 조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박흥수 : 아마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이철 :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관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 말고는 알지 못한다.


"이명박-박근혜, 북한에 화답할 그릇 안 돼" 

박흥수 : 2006년 3월에 있었던 남‧북‧러 회담 이야기를 해보자. 당시 3월 15일부터 20일까지 6일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이르쿠츠크에서 남한, 북한, 그리고 러시아 철도 관련 담당자들이 만났다. TKR-TSR 연계 운행을 위한 한-러시아 철도협력 구축 MOU체결이 주목적이었다. 회담 제안은 누가 했나.  

이철 : 러시아였다.  

박흥수 : 당시 회담에는 누가 참석했나. 러시아 측의 행보도 궁금하다.

이철 : 러시아 쪽에서는 러시아철도공사 블라디미르 야쿠닌 사장, 그리고 북한에서는 김용삼 철도상(장관)이 참석했다. 야쿠닌 사장과 나는 부부동반이었고 김용삼 철도상은 아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혼자 참석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회의를 하고 물류기지인 보스토치니 항을 방문했다. 러시아의 중요한 관심사가 TKR과 TSR을 통해 물류를 이동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북 철도가 연결되기 전까지는 부산항에서 보스토치니나 자루비노 항 등 일단 시베리아 극동 항구를 통해 TSR을 연결해도 운임이나 소요시간 안전성 등에서 훨씬 유리하다. 배로 바다를 장기간 항해하면 녹이 슨다. 특히 전자제품을 비롯한 화물 등은 염분 작용으로 유해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또 유럽의 함부르크 항 같은데 화물이 도착해도 다시 트럭이나 열차로 환적을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철도를 이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TSR활성화는 러시아에 더할 수 없이 좋은 것이고 한국이나 일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러시아 측에서는 TSR과 TKR 연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실력자인 야쿠닌 사장이 주도하게 된 것이다. 

박흥수 : 회담 당시 북한 관계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하다. 

이철 : 맞다. 말을 붙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전용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르까지 가는 길이었다. 전용기 내 응접실 같은 공간에 소파가 2~3개 정도 있었다. 자연히 남북은 서로 따로 앉게 됐다. 그런데 내 아내가 갑자기 김용삼 철도상이 앉은 곳으로 가더니 말을 붙였다. 김용상 철도상은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군처럼 눈 한 번 돌리지 않을 정도로 경직된 모습만 보여줬다. 그런데 아내가 가서 "오빠"라는 호칭까지 쓰며 아이들 문제를 비롯해 여러 대화를 나눴다. 나도 덕분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관계가 풀어지게 됐다. 무섭게까지 보였던 김용삼 철도상의 얼굴은 시골집 할아버지처럼 바뀌어 있었다. 그게 회담 과정에 큰 도움이 됐었다.  

박흥수 : 러시아가 남‧북‧러 철도 회담을 주도한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나? 왜 러시아는 남북의 철도 대표를 불러야 했나?  

이철 : 러시아는 극동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 등 지역의 안전과 발전이 국가적 목표였던 듯하다. 연해주의 발전과 인구 증가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는 국가 안보에도 중요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캄차카 반도나 연해주 주변에 천연자원이 많았다. 이를 가져갈 곳은 태평양 지역에 한국과 일본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TSR과 TKR이 연결되면 이를 손쉽게 운반할 수 있으니 경제적 이득이 상당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로서도 남북 평화 공존과 공영, 더 나아가 통일이라는 러시아 보다 더 큰 이해관계가 달려있다.  

박흥수 : 남북 철도가 연결되면 세 당사자가 윈윈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자원개발과 안보적 측면에서도 안정되고 남한은 전쟁위험이 없어지면서 소통의 길이 열리고 북한은 북한대로 당장의 정치적 교류는 제한적이라도 열차 통과세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아 개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철 : 경제적 이득은 엄청 크다. 그냥 통과세 정도가 아니고 거기에 따른 건설과 인프라 투자에 따라 북한이 얻는 부대수입도 굉장히 클 것이다. 남북 철도 연결은 김일성의 유훈 사업 아닌가? 김일성 전집에 보면 남북철도 연결하면 해마다 1억5000만 불의 수입이 나온다고 구체적 액수까지 남겨 남북철도 연결에 대한 중요성을 말했다. 

박흥수 : 김일성 전집 보면 국가보안법 위반 아닌가?  

이철 : 전집을 본 게 아니다. 기록만 전달 받았다.(웃음) 하여튼 그런 김일성의 유훈사업이었기에 김정일도 적극적으로 나섰고 마침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이어지면서 남북 이해관계가 맞았고 철도 연결의 길이 열렸다. 내가 알기로는 김정은도 남북 철도 연결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거기 화답할 그릇이 안됐다.


"'외딴섬 한국'으로 질주박근혜 정부, 끔찍하다"
2016.10.21 06:58:02

[이철-박흥수 대담 下] 좌초된 시베리아 횡단철도 사업, 그 이유는?

             
지난 3일 일본 발 뉴스 하나가 여러 언론사의 특파원 보도로 한국에 소개 되었다. 오는 12월, 러일 경제협력회의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Trans-Siberian Railway)의 일본 연결을 제안했다는 <산케이> 신문 보도내용이다. 

연해주에서 사할린을 잇는 7km 구간과 사할린에서 홋카이도를 잇는 42km를 해저터널 또는 다리를 건설해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일본 철도를 연결하는 것이 러시아가 제안한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 철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에 연결된다.  

애초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대륙으로 이어진 한반도와 연결하는 방안, 즉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연결하는 방안으로 러시아와 남북이 수년간 노력해왔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 이러한 작업이 상당 부분 진행됐다. 하지만 결과는 <산케이> 신문 보도와 같이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공이 넘어가는 모양새다.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장 중요한 상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면서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주창했던 박근혜 정권에 이르러서는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가 일본에 손을 내미는 이유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철 전 철도공사 사장을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이 만나 대담을 나눴다. 이철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러 철도 협상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다. 

그동안 남북철도 연결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또한 그 과정에서 얽힌 뒷이야기는 무엇이 있었을까. 이들의 대담을 통해 노무현 정부에서 하려고 했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현재는 왜 좌초됐는지, 현재 러시아와 일본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파트너십을 맺는 게 어떤 의미인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2시간 넘게 진행된 대담을 두 회에 걸쳐 싣는다.아래는 상편에 이어 하편. 

▲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 ⓒ프레시안(최형락)


"김정일 훈령 기다리는 북한 철도상, 결국..." 

박흥수 : 본격적으로 회담 이야기를 해보자. 2006년 3월 남‧북‧러 철도 협상 당시 주요의제는 무엇이었고 오갔던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었나?  

이철 :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남‧북‧러가 협력해서 TSR과 TKR의 조기 연결이었다. 그래서 러시아 측에서는 3국이 공동 번영하는 길이니까 남북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를 연결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자는 입장이었다. 북한은 이미 2001년부터 북러 협정을 통해 철도 현황을 조사하고 개량사업을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북한은 이것을 상기시켜 남북 철도 연결보다 우선은 러시아와 북한의 합의 사항을 이행하고 촉진하자는 입장이었다. 

대한민국은 남북철도 연결을 통해서 대륙철도 연결을 한다면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인적 물적 교류 활성화와 우리가 북한에 할 수 있는 지원도 아끼지 않을 용의가 있었다. 그렇기에 북한도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건 대한민국의 기본 방향이었다. 철도는 커다란 평화를 가져오는 전령이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나섰고 의사표현을 했다.  

그러나 김용삼 철도상은 회담 내내 북쪽의 훈령을 기다리는 입장이었다. 우리도 물론 정부에 보고는 하지만 주어진 영역에서 자율적이었다. 주어진 영역이라는 것은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가시적인 회담의 성과를 올리는 것이었다. 설사 비용 지출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이익이 되는 것이니까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그것을 촉진하는 방향이었다. 회담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를 듣고 밤에 숙소에서 곰곰이 생각을 했는데 러시아 측은 우리가 보낸 차관을 상계하는 방법으로 북한 철도 개량사업에 남한과 함께 참가하는 구상도 했었던 거 같다. 그러나 회담에서 구체적인 제안을 받은 것은 아니다.  

박흥수 : 그렇게 회담이 진행됐고, 회담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이철 : 남북철도와 대륙철도 연결을 위한 MOU체결이 목적이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 잘해보자' 정도의 결과만 얻었다. 철도 사업 관련 노력하기로 했다 정도의 의장성명 정도만 발표됐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철도 개량사업에 참여 하게 된다면 남한의 기술력이나 자본이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하게 되어 철도로 유럽까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꿈에 그리던 실크로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사실은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도 대륙철도 연결사업을 완성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성과를 얻는 것인데 더 진전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박흥수 : 첫 술에 배부르기는 어렵다. 첫 만남으로 의사를 확인하고 더 알아나가면서 신뢰가 쌓이면 본국에 가서도 '이 사업 할 만한 사업이다'라고 설득도 할 것이고 이후 한발 한발 나가는 거 아닌가.  

이철 : 맞는 말이다. 러시아와 특별히 가까워졌고, 김용삼 철도상처럼 굳어있던 분과도 인간적으로 가까워졌다. 그런 게 큰 진전이었다. 아마 북한으로 돌아간 김용삼 철도상이 철도연결 관련, 긍정적으로 이야기했으리라 생각한다.  

박흥수 : 그런 것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회담이 열린 이후 두 달 만인 그해 5월 13일 제12차 남북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에서 5월 25일 남북열차시범운행을 하기로 합의했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열차시험운행은 다음 해인 2007년 5월에 있었지만 이런 남북철도 연결 사업이 추진된 배경에는 남‧북‧러 회담이 선도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철 : 조심스럽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하겠다. 일단은 서로 불신을 제거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시험운행 합의 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1년 2개월 만인 2007년 5월 17일 남북 열차 시범운행이 이루어졌다. 이것만 보더라도 남북관계가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이렇게 끊임없이 문을 두드려야 하는데, 지금은 남북철도 연결은 꿈도 못 꾸는 일이 되어버렸다. 

"박근혜 정부, 박살 내는 길로 가고 있다" 

박흥수 : 러시아 쪽은 이 시기에 한국 쪽에 더 긴밀하고 친밀하게 접근 했던 것 같다. 

이철 : 그렇다. 특히 야쿠닌 사장은 친한파가 됐다. 외모는 백인이지만 정서적으로는 막걸리 한 잔 나누면 친해질 것 같은 한국스타일이었다. 남‧북‧러 회담 넉 달 후인 2006년 7월 야쿠닌 사장은 한국을 방문해 제주에서 열린 한러 철도운영자회의에 참석했다. 이때 야쿠닌 사장은 한국 측에서 컨테이너 물량을 약속해 달라며 적극적으로 한국 화물 운송사업자들의 TRS 이용을 촉구하기도 했다. 우리 측에서는 화주들이 더 좋은 조건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료를 낮춰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박흥수 : 남북 관계는 늘 힘들다. 그래도 인내심 가지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회복은 고사하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불가능한 듯하다.  

이철 : 남북관계라는 게 미묘한 게 나도 철도 문제로 북한을 몇 번 가보았다. 가보면 참 조심스럽다. 그 친구들은 의도적으로 한 번씩 쿡쿡 찔러 본다. 옆에 사람들 있을 때 그러는데 자기가 이만큼 투사다 뭐 이런걸 보여 주려고 하는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전쟁 못 할 줄 알아?' 이러면서 세게 나오다가도 돌아서면 친절하게 대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자칫 잘못해서 거기 맞대응하면 관계가 깨지는 거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비겁하지 않게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 저 사람들을 알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MB정권 이후 박근혜 정권까지는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결코 북쪽은 잘했는데 남한이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북핵 문제는 진짜 잘못된 문제고 그걸 통해서 얻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이걸 해결하는 방안이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북한은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북한 쪽 실무진은 교류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철도상마저도, 최고위층마저도 결정을 대기하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경직된 사회가 북한이다. 우리는 그런 사회에 맞춰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조금씩 진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듯하다. 관계가 나쁘면 나쁠수록 더 통로를 열고 더 이야기를 계속하고 그런 노력을 배가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하나 끊어 가고 있다. 있는 것을 없애버리고 아예 박살내는 길로 가면 결과는 뻔하다. 남북철도 운행도 잘 운행되다가 축소됐고 이내 중단됐는데, 이건 전혀 비용 문제를 생각할 게 아니다. 통일비용을 생각하면 세발의 피에 불과하다.  

결국, 나중에는 개성공단 폐쇄까지 이르게 됐다. 남북 평화공존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를 몇 십 년, 몇 백 년 뒤로 돌린 것이다. 북쪽에서 더 거친 행동을 할수록 문을 더 크게 열어놔야 한다. 이게 북한을 모욕하는 표현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지만 우리 가족 중에 일부가 엇나갈 때 채찍을 들기보다는 더 많은 관심과 배려와 대화를 해야 되지 않나? 우선 북쪽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알아야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도 깨버리면 우린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박흥수 : 맞다. 상대를 모를 때 두려움과 공포, 오해가 커진다. 상대를 알면 이때 상대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고 거기에 따른 대응을 할 수 있고 대안도 내놓을 수 있다. 다시 철도 얘기로 돌아가 보자. 2007년 시범 운행 때의 직접 참석하셨는데 소회랄까? 한 말씀 해 달라.

이철 : 나름대로 뿌듯한 마음도 있었지만 또 한편 이게 또 진전되어야 하는데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잘 되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 등이 섞여있었다. 

▲ 박흥수 객원연구위원. ⓒ프레시안(최형락)


"유라시아 통로에서 한국이 완전히 배제된다" 
   
박흥수 : 노무현 대통령의 대륙철도 연결에 대한 의지는 어땠나. 여러 정책 중 하나였는가? 아니면 여느 정책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는가? 

이철 : 철도에 대해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2006년도 국회 첫 연설에서도 그랬다. 철도에 대한 희망이랄까. 철도에 대해서는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박흥수 : 특별히 기억나는 말은 없었나.  

이철 : 뭐라 표현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그때 청와대에 보고할 때, '내가 그러니깐 의원님에게 부탁을 드린 게 아닙니까'라며 그런 식으로 자기가 특별한 애정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를 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살던 고향에서 고개만 조금 넘어가면 기차가 다녔다고 한다. 

박흥수 : 시골 소년이 기차에 동경을 가졌을 듯하다.  

이철 :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박흥수 : 하지만 그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7년 5월 17일 개성공단까지 철도로 가는 시범운행이 있었지만, 그 해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 됐고 그다음 해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 취임한 후 12월에 개성공단 가는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이철 : 중단 이유가 경제적 이유 아닌가.  

박흥수 :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다. 당시 개성공단 운행 이후, 개성공단으로 가는 물자가 없는 날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물량이 없으면 열차를 운휴시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휴시키면 열차가 다녔다 안 다녔다 하는 식이 되니 연속성을 위해서 빈차로 간 적도 있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운행을 줄이다 완전 중단됐다. 

대담의 막바지에 왔다. 천안함 사건, 5.24조치, 연평도 포격사건을 거치면서 남북관계는 점점 더 악화됐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 출범 때에는 박근혜 정권의 성공은 남북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남북관계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극렬한 대결 구도로 갔다. 특히 가슴 아팠던 것은 개성공단의 폐쇄였다. 이런 상황이 반복 되니까 러시아 측에서는 이제 대륙철도의 한반도 연결은 답이 없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더 결정적인 것은 사드가 배치되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더 이상 한국을 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기보다는 미국의 MD 전진기지로 간주하면서 한국에 대한 기대를 접게 되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 결과가 바로 대륙철도의 일본 연결로 귀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라시아 물류의 시발점으로서 한국은 의미가 없어진다. 일본철도가 일본 본토에서 시베리아로 연결되면 선점효과로 인해서 아시아 태평양의 물류는 일본이 블랙홀이 되어 빨아들이게 된다. 나중에 한반도 종단 철도가 대륙에 연결 된다 하더라도 지선에 불과하게 된다. 이미 엄청난 대륙연결 인프라가 투자된 일본을 놔두고 한국에 재투자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이런 현실에서 마땅한 대안이나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이철 : 유라시아 통로에서 한국은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다. 굳이 전쟁까지 안가도 철의 실크로드 연결 꿈이 사라지는 식이다. 일본으로 대륙철도가 연결된다면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과 관련국에서 '왕따' 당하는 그런 효과가 당장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한국 고위층들이 이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선로가 한 번 정해지면 그것은 변경될 수 없다. 일본 쪽으로 연결되면 우리 쪽으로 오는 건 불가능하다. 100~200년 안에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나. 당연히 아시아 지역은 일본을 기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본 선로 연결은 일본이 한반도-대륙의 통로에 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장기적인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섬이었던 일본은 대륙이 되고 우리는 섬이 되는 꼴"  

박흥수 :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아예 인지하지 못하고 눈앞의 사건들 속에 묻혀 악전고투 하는 것 같다.  

이철 :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부 요직에 가득 차있고 설사 생각이 있더라도 그걸 말할 수 없는 분이기가 지배하는 현실이 아닌가 생각된다. 감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는 분위기다. 일부 있다 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그런 말을 하겠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통점은 집안 내력, 해외 유학에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공통점은 측근이 그들과 이야기 할 때는 전부 받아쓰기 밖에 안 한다는 점이다. 건의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흥수 : 러시아는 천연자원이 많기에 당장 자금이 없더라도 일본에 장기적으로 조달하는 방식으로 일본의 자금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러일 철도 연결과 동시에 천연가스관이나 송유관 사업이 같이 진행된다면 이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 따른 경제 효과도 상당하다. 또 이 과정에서 북방영토 문제의 적절한 해결까지 볼 수 있어 러시아와 일본은 서로가 원하는 바를 적절히 취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일본을 따라잡기는커녕 고립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철 : 러시아와 일본은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하면서 극동의 새로운 발전 계기를 만들고 한국은 들러리조차 서지 못하게 된다.  

박흥수 : 이렇게 되면 동북아시아의 정치지형도 상당히 바뀌게 될 것 같다. 과연 한국이 동북아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거나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발언권을 행사 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철 : 그렇다.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외딴 섬으로 전락한 그런 모양새의 국가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데도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달려가는 한국의 지도층을 보면 끔찍하다. 

박흥수 : 일반 서민들이야 하루하루를 고민한다고 해도 지도자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현실은 절망적이다. 오늘만 사는 지도층들, 당장의 이권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런 가운데 섬이었던 일본은 대륙이 되고 우리는 섬이 되는 꼴이다.  

이철 : 맞다. 지도자는 없는 길도 뚫고 어긋난 것을 바로 맞추는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통로를 막아버리고 열린 길도 무너뜨리는 그런 지도자가 있다는 것에 정말 우리 미래가 암담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빨리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남북 관계를 완화함과 동시에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남북철도 연결과 대륙철도 연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흥수 : 맞는 말씀이다. 오랜 시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