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대학 안 가도 상관 없어요. 엄마도 괜찮대요”

일취월장7 2016. 7. 23. 10:45

“대학 안 가도 상관 없어요. 엄마도 괜찮대요”

‘대학에 안 가도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학생이 학교에 다녀야 하는 이유를 우리 교육은 제시하지 못한다. 지금 행복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조회수 : 26,889  |  해달 (서울 대치동 입시학원 강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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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1호] 승인 2016.07.22  16:20:22


2년 넘게 학원을 다니면서 숙제를 한 번도 안 해 오는 학생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공부를 안 한다. “너 그러다 대학 못 간다”라고 엄포를 놓았더니 “못 가면 어때요? 전 지금도 행복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만사태평이다. 내 표정을 살피더니 “학원에 안 오면 불안하니까요. 근데 대학 안 가도 상관없어요. 엄마도 괜찮다고 했어요”라고 덧붙인다.

속 편한 소리 한다고 혀를 찰 수도 있다. 옆에서 친구들도 “쟤는 아빠 사업 물려받으면 되니까 저래요”라고 말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좋은 직장을 얻는 길이라고 믿는 아이들은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친구가 부럽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가정에서 자란다고 ‘학벌’에 대한 욕구가 덜한 것은 아니다. 일찍부터 자식에게 청년 사업가의 길을 열어주는 부모가 아니고서야 대체로 좋은 대학에 자식을 진학시키려 애쓴다. 학벌의 위력이 덜해졌다고 하지만 ‘인(in)서울’로 대표되는 유수의 대학 간판은 여전히 명예나 경제력으로 치환되어 인식된다. ‘좋은 대학 나와 봤자 회사원’ ‘고졸과 대졸 신입사원의 임금 차이가 없다’고 회의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도 늘고 있지만, 지방 사립대의 붕괴는 서울과 몇몇 지방 국립대로 대표되는 학벌 사회를 한층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이 아이의 상태를 단지 비빌 구석이 있어서 태평한 것이라고 깎아내리기는 어렵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김보경 그림</font></div> 
ⓒ김보경 그림

학원비가 아깝기도 해서 몇 차례 아이 어머니에게 학원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권해봤다. 하지만 “학교에 가고, 학원에도 다니면서 학생답게 일상생활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나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니, 입시 체제 안에서 평범하게 지내기 위해 학원을 소비하고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생활을 위해 학원에 다녔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교실에 특이한 아이가 하나 있구나 여기고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성적을 올릴 욕구가 없는 아이가 학원에 오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원을 의지 없이 다니는 친구들 중 일부는 이 아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학원에 오지 않는 학생들 중에는 이런 이들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만족하며 살 수 있지만, 입시 외의 선택지를 제시받지 못하니 남들 하는 대로 영혼 없이 따라가고 있는 아이들은 어딜 가든 있을 것이다. 설령 그런 아이가 단 한 명밖에 없을지라도 그 목소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 할 일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고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원래 그렇다’며 강요하지 말아야

고등학교 졸업 이후 꿈꿀 수 있는 진로가 다양하지 않은 사회에서, 대학 입시가 아닌 다른 삶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부모나 교사 처지에서 솔직히 부담이 크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의 개성으로 삶을 꾸려나가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든 일을 하고, 많은 돈을 벌며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대학 간판으로 상징되는 학벌의 욕망을 외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딴생각하지 말고 일단 공부만 하라’고 다그친다. 특별히 위대해지겠다거나 사회적 성공을 바라지 않는 아이에게도 어떻게든 노력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힘들게 살지도 모른다고 겁박한다.

하지만 ‘현실’을 핑계로 살아남는 법만 가르친다면 사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학벌을 쟁취하지 않아도 삶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믿어야 하고, 아무것도 되려 하지 않아도 지금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회에서 자력으로 살아남으라는 충고를 듣는 빈도는 열일곱 살이라는 시간을 충분히 누리라는 말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사회가 원래 그렇다’는 말은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 어떤 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대학에 못 가도 상관없다”라던 한 소녀의 말이 집안이 잘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말이면 좋겠다. 학벌에 관계없이 모든 삶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꿈꾸지 않으면, 학벌은 더 견고하고 더 좁은 문이 되어갈 테니 말이다.



꿈이 뭐냐고 아이에게 묻지 말자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사회학을 가르치는 엄기호씨는 한국에서 공부에 대한 개념이 세 번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 공부를 하는 목적은 신분 상승이나 자아실현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조회수 : 213,560  |  엄기호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강사)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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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승인 2016.06.09  17:51:49


“진로 강의에 왔지만 나는 진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폭탄선언’으로 엄기호씨는 강의를 시작했다. 학생들이 장차 ‘노동하는 사람’이 아닌 ‘자아실현 하는 사람’이 될 것인 양 환상을 심어주는 현행 진로교육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서란다. 강의 제목대로 ‘입시를 견딘 청춘’이 대학에서 길을 잃는 이유도 어쩌면 이것과 관련이 있을 터. 5월17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펼쳐진 두 번째 진로학교 강좌를 지상 중계한다.

대학 강단에 서다 보면 ‘진로=자아실현’인 양 착각하는 학생들을 흔히 만나게 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진로보다 오히려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해 묻고자 한다.

돌이켜보면 한국 사회에서 공부에 대한 개념이 바뀐 계기가 세 번 있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이전까지의 시기다. 이때까지는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 명확했다. 신분상승을 위해서였다. ‘공부가 재미있냐 재미없냐’는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그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했다.

심지어 전두환 정부 때는 과외 금지 등 급진적인 조처가 행해진 결과 ‘공부를 통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판타지가 횡행했다. 그 덕분에 지독하게 가난했던 나와 내 누이도 이를 악물고 공부해 공장 대신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당시는 입시에 사회자본·문화자본 따위가 끼어들 여지도 별로 없었다. 외국에 살다 와서 영어 발음이 원어민 수준이라도 학력고사에서 통하는 건 오직 <성문종합영어>를 얼마나 열심히 외웠느냐였다. 질기게 공부해 ‘교육자본’을 다져놓으면 이것을 나중에 ‘경제자본’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에 대한 믿음, 여기서 지식의 권위가 생겨났던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엄기호씨는 “자신의 삶을 탁월한 삶, 멋진 삶, 자유로운 삶으로 바꿔낼 수 있는 ‘삶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좀 더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엄기호씨는 “자신의 삶을 탁월한 삶, 멋진 삶, 자유로운 삶으로 바꿔낼 수 있는 ‘삶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좀 더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학력고사는 너무나도 예측 가능한 시험이었다. 학력고사 다음 날이면 일등부터 꼴찌까지 전국 순위가 나오면서 내가 대학에 갈 수 있는지, 간다면 어느 대학에 갈지를 단번에 계산할 수 있었다. 예측 가능성이 작동하던 그 시절, 학교를 지배한 것은 반학교(counter-schooling) 문화였다. 당시 학생들에게는 학교가 곧 세상이었다. 당구장·예배당 정도 말고 ‘학교 밖’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보듯 하다못해 반항을 하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가야 했던 시절이다(웃음). 당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아이들은 비난을 받곤 했다. ‘뼈 빠지게 돈 버는 너네 부모님은 생각 안 하냐?’는 식이었다. 이 시기, 한국에는 개인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소비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당대를 상징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청소년에게 던진 메시지는 선명했다.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는 상황을 거부하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이었다. 이 시기, 자기를 욕망의 주체로서 재발견한 청소년들이 신분 상승 대신 눈을 돌린 것은 다름 아닌 자아실현이었다.

더불어 나타난 흐름이 탈학교 문화다. 대안학교·공동육아 등이 이 시기 일제히 등장했다. 전교조·참교육학부모회 등 비판적인 교육단체들도 이때 생겨났다. 이들은 공부를 쓸모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난 앞으로 헤어 디자이너가 될 건데, 뭐하러 미적분을 배워야 해?”라는 식이었다. 그전까지의 공부가 신분 상승을 위한 도구였다면 이때부터 공부는 자아실현의 도구가 된 셈이다. 그 결과 공부에는 치명타가 가해졌다.


요즘 진보적이라는 교사·부모는 “난 네가 좋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한 거야”라는 말을 즐겨 한다. 혁신학교 또한 이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행복한 교육, 행복한 배움을 표방하는 혁신학교는 기존 학교가 꿈을 묻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나는 혁신학교가 시대적으로 조금 늦게 등장한 듯싶어서 안타깝다.

무슨 말이냐. 한국 사회가 1997년 경제위기와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면화된 게 일종의 생존주의다. 공부를 하는 목적 또한 이전처럼 신분상승이나 자아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로 변했다. 이들은 더 이상 “난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데 미적분을 왜 배워야 해요?”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미적분을 배우면 내가 먹고살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

얼마 전 ‘학벌없는사회’라는 시민단체가 해체 선언을 했던데, 몇 년 전부터 지방으로 강의를 다니면서 느낀 게 이미 학벌사회 하부는 완전히 붕괴돼 있다는 사실이다. 상위 극소수 대학을 제외하면 나머지 대학 서열은 거의 무의미해졌다. 이 대학엘 가나, 저 대학엘 가나 어차피 취업이 불가능한 세상이다. 연세대 졸업식 날 붙어 있던 현수막 문구를 다들 기억하실 거다. “연세대 졸업하면 뭐하냐. 백순데…”라고.


‘노오오오력’의 종착역은 소진일 뿐

오늘날의 생존주의가 고약한 것은 생존만이 아니라 성공까지 함께 요구하기 때문이다.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처럼 자아실현과 성공을 모두 이룬 사람들을 멘토라 부르면서 이를 본받으라고 부추긴다. 이게 불가능하다는 걸 아니까 요즘 아이들이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 반에 4~5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공부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엎드려 잠만 잔다. 그래야 덜 욕먹고 덜 지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무기력은 이 시대의 생존 전략일지도 모른다. 생존을 못해 무기력한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무기력을 택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더 문제가 될 것은 무기력한 아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공부를 잘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열심히 노력했지만 좌절하게 된 친구들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자아실현과 성공이 동시에 가능하려면 미친 듯이 살아야 한다. 웬만큼 노력하는 사람은 세상에 쌔고 쌨다. 그러니 ‘노오오오오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말장난일 뿐이다. 인간에게 150%, 200%를 하라고 노력하라는 건 삶을 망가뜨리라는 얘기다. 물론 노력해서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 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노오오오력’의 종착역은 소진일 뿐이다. 지금을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번 아웃(burn out)돼 있는 시대라 하지 않나. 해도 안 되면 사람은 패배감·절망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제주도 해녀학교(위)에서는 물속에서 자기 숨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제일 먼저 배운다고 한다. 
ⓒ연합뉴스
제주도 해녀학교(위)에서는 물속에서 자기 숨의 길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제일 먼저 배운다고 한다.

그런데도 부모나 교사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난 할 수 있어요(I can do it!)”다. 넌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이니 ‘무한한 노력’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꽃피우라는 식이다. 인간이 무한하긴 뭐가 무한한가. “아이 캔 두 잇”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진짜 용기다. 따져보면 “아이 캔 두 잇”이라는 문장에는 주어가 숨어 있다. “넌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한다(You must say)”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이는 자본주의나 체제, 문화, 사회일 수도 있고 부모나 교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이 캔 두 잇” 뒤에는 “만약 네가 실패한다면 그건 네 책임이야(If you fail, it’s your fault)”라는 문장 또한 생략돼 있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린 이렇게 모든 짐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열심히 했는데도 잘 안 된다 싶으면 ‘내 탓’을 하며 우울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남 탓’을 하는 사람도 있다. ‘네가 조금만 더 도와주었으면 일이 잘 풀렸을 텐데, 그러지 않아 망했다’는 식으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분노를 터뜨린다. ‘요즘 애들은 근성이 없다’며 아래 세대를 탓하는 사람도 있다. 엄청난 피해망상이다. 그 짝이 과대망상이다. ‘나는 다 할 수 있는데’ 옆에 있는 네가 안 도와줘서 이렇게 됐다는 식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아실현의 이름으로 자아를 파괴하고 있다. 그러니 제발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묻지 마시라. 옛날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방팔방에서 꿈을 묻는 시대다. 부모나 교사가 쿨한 척 꿈을 물어볼수록 아이는 더 괴로워진다. ‘내가 너무 지질한가?’ 싶어서다. 오죽하면 수업시간에 “꿈 같은 거 안 찾으면 안 돼요?”라고 묻는 친구들도 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답한다. “안 찾아도 돼. 이번 생에는 안 되나 보지 뭐”(웃음).

입장 바꿔 생각해보시라. 자아를 발견한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여러분은 지금 자아를 발견하셨나? 아마 죽을 때까지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오늘날 자아실현의 프로세스는 나이 열여덟이 되기 전에 자아를 발견하라는 태세로 진행된다. 이게 말이 되나? 부처님도 열여덟 살엔 득도하지 않았다.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되려면

교육은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배려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식의 나르시시즘이나 ‘자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제주도 해녀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게 물속에 던져놓고 자기 숨의 길이를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 한계를 알아야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도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지 않았나.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는 것, 내 한계를 모르는 것이야말로 나를 위험에 빠뜨리는 ‘무지 중의 무지’다.

자기 한계를 알게 된 인간은 한마디로 설치지 않는다. 가식이나 겸양을 떠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내 한계가 이것이구나’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구나’ 싶어서 절제할 줄 알게 된 인간은 겸손하게 배우려 든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이렇게 겸손한 인간을 기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는 어떤가? 자신의 무지를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무지한 자가 환대받지 못하는 구조여서다. 그러니 무식함을 드러낼 용기를 낼 수가 없다.

지혜롭고 절제하고 배움을 청하는 용기를 배우는 것. 이 세 가지가 공부의 목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덕을 갖춘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정치공동체(폴리스)의 목적 또한 모두가 훌륭해지는 것이었다. 집단만 훌륭하고 개인은 지질한 게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한 사람 한 사람이 훌륭해지고 노력하는 것을 공공선으로 여겨 그 노력을 공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폴리스의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렇게 개인이 훌륭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사회를 나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삶이라 표현한다고 오해하지는 마시라. 우리는 마치 물속에서 숨을 10분 참는 사람이 훌륭하고 탁월한 양 얘기한다. 그러나 진짜 탁월한 것은 물속에 1분밖에 머물지 못할지라도 그 시간을 충만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파악하고 이를 선용하는 기술을 익히는 것, 그리하여 자기만의 양식(style)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삶, 탁월한 삶이라고 푸코는 말했다. 이럴 때 비로소 나 자신 또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랍시고 학교에서 왜 쓸데없는 것들을 가르치느냐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 쓸모라는 걸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 중심으로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로써 우린 자유로운 존재가 돼야 한다. 공부를 통해 자신을 배려하고, 배우는 과정에서 덕을 갖춘 존재가 되며, 그 과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이것이 공부를 하는 목적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보건 보수건 행복이 교육의 최고 목표인 양 한목소리를 내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삶을 탁월한 삶, 멋진 삶, 자유로운 삶으로 바꿔낼 수 있는 ‘삶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좀 더 궁극적인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

정리·김은남 기자



어떤 문제아라도 변할 수 있다

교단에 서고 첫 몇 년 동안은 출근할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믿음을 갖고 보듬으면 아이들은 변한다.

  조회수 : 362  |  이중현 (남양주 조안초등학교 교장)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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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호] 승인 2016.07.26  18:03:41


학교에서 생활한 지난 시간을 떠올리면 수많은 아이들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아이들 가운데 도드라지는 얼굴은 유난히도 속을 많이 썩인 아이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와 싸우는 아이,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사는 아이, 수업시간에 소리를 지르며 교실을 돌아다녀 수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아이….

교단에 서고 첫 몇 년 동안은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버스 운전석 앞에 걸린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밤을 새워 찾아본 아동심리학이나 문제행동 상담 사례에도 없는 아이들이어서 내 능력으로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다가 그 아이가 아파서 결석이라도 하면 정말 미안하지만 마음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날 하루는 내 마음은 물론 교실에도 평화가 충만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잠시, 그런 내 모습이 선생으로서 큰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퇴근길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자책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그 아이들은 아직 햇병아리 교사인 나를 흔들어댔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박해성 그림</font></div> 
ⓒ박해성 그림

그러나 교사 냄새가 제법 날 정도의 경력인 10년이 넘어서는 그 아이들이 밉지 않았다. 이전보다 더 심한 아이들을 만났는데도 말이다. 오히려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내가 담임을 하는 1년 동안이 아니어도 3년 뒤, 10년 뒤라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내 친구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내 품에서 변하는 ‘교사의 행복’

친구가 살아온 이력을 말하자면 아닌 게 아니라 소설책 몇 권은 될 것 같다. 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문제아였다. 앞에 앉은 아이 머리를 연필로 찌르거나 주먹으로 쥐어박거나 해서 당한 아이 할머니나 어머니가 복도에 와서 지켜야 할 정도였다. 중학교 다닐 때도 문제아였다. 물론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친구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를 배운 세대다. 그런데도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했다. 중학교 졸업하도록 영어 알파벳을 처음부터 끝까지 쓸 줄도 몰랐다. 당연히 고등학교에 진학할 실력은 안 되고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친구는 읍내는 무대가 좁다며 서울로 진출했다. 아마도 청량리역 정도는 평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와서 친구의 삶에 반전이 일어난다. 한 여학생 때문이다. 자기 이름도 한자로 쓰지 못할 정도의 무식함을 여학생 앞에서 드러냈고, 그것이 친구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천자문을 외워 자존심을 찾았나 했는데 그 여학생은 고졸 검정고시를 볼 것을 권유했다. 공부라면 질색인 친구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공부해서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또 여학생은 대학 진학을 주문했고, 친구는 대학에 갔다.

친구가 대학을 다닌다는 소문이 고향 읍내에 퍼졌을 때, 사람들은 ‘그 녀석이 대학을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사람도 있었다. 친구를 잘 아는 고향 사람들이 볼 때는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사립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것도 도덕 교사로 말이다. 거의 한 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다. 친구는 교사로 생활하는 동안 문제아를 포함해서 많은 아이들의 삶을 다독였다. 자신도 문제아 경력이 있었으니 학생들이 어디가 아픈지 잘 알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 제자들이 친구를 찾는 걸 봐서 멋진 교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친구 이야기를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전국의 수만명 교사들에게 들려준 것 같다. 어떤 문제아라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보듬어달라고. 내 친구를 변하게 한 그 여학생처럼 지금 고통스럽게 만나는 그 아이에게 따뜻한 삶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내 친구는 학교 울타리 밖에서 한 여학생 때문에 변했는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그것도 내 품에서 변한다면 교사로서 더 이상의 행복이 없지 않겠느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