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편한 사람들 - 유승민 왜 박근혜에 정면으로 맞서는 걸까?

일취월장7 2016. 6. 2. 10:33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불편한 사람들

정부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국론 분열’의 우려가 있다며 기념식에서 제창하는 것을 꺼린다. 이 노래는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의 깃발이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공화국 헌법에 대한 찬가다.

  조회수 : 1,111  |  김형민 (SBS CNBC 프로듀서)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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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호] 승인 2016.06.01  16:08:36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심복이라 여겼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고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이 사태가 알려지자마자 전국에는 비상계엄령이 떨어졌지. 비상계엄이란, 전쟁이나 기타 비상사태를 맞아 군 병력이 경찰을 대신해 해당 지역의 치안을 장악하는 것을 말해. 계엄군 사령관이 행정권과 사법권을 틀어쥐게 되는 무시무시한 상황이야. 하지만 오래도록 민주주의를 염원해왔던 몇몇 사람들은 한시라도 빨리 계엄령을 해제하고 유신 체제로부터 벗어나 민주정치를 복원하고자 일단의 거사를 준비한다. 물론 계엄령하에서는 사람들의 모임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그들은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냈어. 바로 결혼식이었지.

“신랑 홍성엽, 신부 윤정민의 결혼식을 다음과 같이 거행하오니…”라는 청첩장을 만들었다. 청첩장엔 예식이 ‘1979년 11월24일 서울 명동 YMCA 강당에서 열린다’라는 문구가 주먹만하게 박혔다. 하지만 결혼식은 가짜였어. 신랑 홍성엽은 진짜였지만, 신부 ‘윤정민’은 애초에 그들의 꿈이었던 민주정치, 즉 민정(民政)을 비튼 가상의 인물일 뿐이었거든. 윤보선 전 대통령부터 젊은 학생과 노동자들까지 만장(滿場)한 가운데 결혼식이 열렸다. 예식에서 울려 퍼진 건 ‘딴딴따단~’ 결혼행진곡이 아니라 날카로운 구호와 비명, 뒤늦게 사실을 알아챈 계엄군의 군홧발 소리였지.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5월16일 유치원생들이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는 윤상원 열사 묘역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5월16일 유치원생들이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는 윤상원 열사 묘역을 지나고 있다.

체포된 사람들은 그야말로 악독한 고문을 받았다. 위장 신랑 홍성엽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그만큼 특별 취급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백기완이라는 재야 인사였지. 이전부터 미운털이 박혀 있었던 그를 계엄 당국은 글자 그대로 짐승처럼 다뤘어. 체중 82㎏의 육중한 체구를 자랑했던 그가 40㎏대의 말라깽이가 될 정도였다면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니. 냉혹한 계엄 당국조차 이러다가는 죽이겠다 싶었던지 병보석으로 내보낼 정도였어. 그 참혹한 시간들을 백기완은 자신이 지은 시(詩)를 주문처럼 읊조리며 버텼다고 한다.

“시멘트 바닥에 누워 천장에 매달린 15촉 전구를 보고 있노라면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 절망에 몸부림칠 때가 많았다. 극한상황에서 자꾸만 약해지는 정신을 달구질하기 위해 ‘묏비나리’ 시를 지어 주문처럼 외우고 또 외웠다.”

이 ‘묏비나리’라는 시는 출옥 후 요양 중에도 계속 백기완의 입에서 맴돌았고 결국 그의 손에 의해 쓰여 세상 밖으로 내보내졌다. ‘묏비나리’는 매우 긴 시다.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봐주기를 바란다. 한 건장한 사내를 반으로 쪼그라뜨리는 지옥불 같은 고문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쥐어짜고 부서지도록 이 악물면서 써 내려간 시이고, 그 시 속에서 가물거리는 희망을 찾았던 위대한 드라마의 대본이며 참혹한 역사의 증거이니까.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자료</font></div><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위)의 시 ‘묏비나리’에서 따왔다. 
ⓒ시사IN 자료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위)의 시 ‘묏비나리’에서 따왔다.

고문은 백기완의 육체를 파괴했지만 그 정신은 건드리지 못했어. 이후에도 백기완은 광주의 살인마이자 나라를 도둑질한 전두환 정권과 맞서 싸운다. 거동이 여의치 않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랄 만큼 심약한 유리 심장이 됐지만, 백기완은 각지를 누비면서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북돋웠어. 그 와중인 1983년 2월 대구에서 열린 ‘기독교 예장(예수교 장로회) 청년 대회’에서 백기완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가 등장했을 때 청년들이 일제히 일어나 팔을 힘차게 뻗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노래 가사는 백기완이 필사적으로 짓고 읊조리고 비명처럼 내질렀던 시 ‘묏비나리’의 일부였거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세상없는 명감독이라도 이런 명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까. 백기완은 노래를 듣고 그냥 펑펑 울었다고 해. 봇물 터지는 울음 속에서 노래는 천사처럼 날개를 폈고 용기와 희망과 함께 어두운 역사의 허공을 날았지. 이게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야.

윤상원·박기순 영혼결혼식 기념해 만든 노래

이 노래가 지어진 시기는, 백기완이 노래와 마주하기 꼭 1년쯤 전이었다. 광주 항쟁의 마지막 날, 도청을 떠나지 않고 쳐들어오는 계엄군에 맞서다가 장렬하게 쓰러진 사람들 가운데에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외신 기자들을 상대하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때 은행 직원 노릇도 했던 그는 충분히 혼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어. 그러나 시민군 지도자로 남아 끝까지 싸웠고 의연하게 죽었다. 밤 시간에 노동자들을 가르치는 야학 활동을 했던 윤상원에게는 몇 년 전 연탄가스 사고로 사망한 여자 동료가 있었지. 비록 생전에 연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친지들은 이 불운한 처녀 총각의 영혼결혼식을 올려주기로 한다. 이 영혼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백기완의 시 일부를 따서 만들어진 노래가 바로 이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어. 노래의 주체는 윤상원과 박기순(윤상원의 여성 동료), 즉 ‘앞서간’ 이들이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해 외치는 노래였지.

이 노래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진단다. 이 노래 테이프를 만든 사람들은 엉성하게 녹음한 테이프를 가슴에 품고서는 꼭 혼자서만 다녔다고 해. 혹여 경찰에 잡히더라도 자기 혼자만 포획되도록. 누군가는 꼭 다른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전파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백기완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불렀고 이제는 윤상원의 목소리로 산 자들을 향해 내리꽂는 절규 같은 노래를 듣는 사람들 역시 주먹을 부르쥐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언젠가 네게 1980년대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고 싶다. 비록 그 숱한 오류와 돌아보기조차 싫은 ‘흑역사’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대학생들이, 청년들이 살인적인 독재정권에 의롭고도 줄기차게 저항한 역사는 한국사, 아니 세계사를 통틀어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빛을 발한다. 백기완처럼 ‘산 자’와 윤상원같이 ‘죽은 자’의 육성이 넝쿨처럼 엉키고 담쟁이같이 역사의 담장을 타고 오른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은 언제나 그 빛의 한가운데에 있었어. 독재에 맞서 싸우다 제 몸에 불을 댕겼던 사람들도, 절망으로 그득한 밑바닥에서 술 취해 나뒹굴던 사람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삶을 다지고 죽음 앞으로 나섰다. 독재에 맞선 민주주의의 깃발이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공화국 헌법에 대한 찬가였다.

그런데 이 노래를 ‘국론 분열’의 우려가 있다고 나대는 사람들이 있구나. 아빠는 그 사람들의 나라(國)가 어디인지 묻고 싶어.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살 권리가 없다. 백기완을 고문하고 윤상원을 죽인 독재가 그립다면, 그들은 차라리 휴전선 넘어 북한으로 올라가는 게 맞을 거야. 그들이 원하는 나라는 그런 나라니까. 지은이가 멀쩡히 이 땅에 살아 있고 이 노래에 붙여진 사연들이 있는데도, <님을 위한 행진곡>에서 ‘님’이 김일성을 가리키는 게 아니냐고 떠드는 ‘종북주의적’ 상상력의 소유자들도 활개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북한으로 가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여기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란 말이다.

이 노래가 불편한 자들은 민주주의가 불편한 거야. 사람을 반으로 꺾어버리는 고문이 넘쳐나고 중무장한 군대가 시민의 살을 헤집고 군화로 짓밟고 총으로 쏜 것을 당연시하는 파시스트들이다. 아직까지도 ‘광주 항쟁’이 아니라 ‘광주 폭동’이라 부르고 싶어 혓바닥이 들썩이는 자들이야. 그들의 코앞에서 아빠는 이 노래를 가사 하나 하나 씹으면서 불러주고 싶구나.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Why뉴스] 유승민 왜 박근혜에 정면으로 맞서는 걸까?

노컷뉴스 |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 입력 2016.06.02. 11:57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유승민 의원이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섰다. 그제(31일)는 대학강연을 했고 어제(1일)는 4개월 만에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면서 SNS 정치를 재개했다.

유 의원은 특히 대학강연에서 "5.16은 쿠데타"라고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수구 보수의 논리가 성장이 불평등을 치유한다고 우긴다거나, 친재벌정책을 친시장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박근혜 정권의 역사관과 경제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토로했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유승민 의원은 왜 박근혜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서는 걸까?"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무소속 유승민 의원이 지난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법학관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의 역할'을 주제로 특강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무소속 유승민 의원이 지난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법학관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의 역할'을 주제로 특강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유승민 의원이 '5.16을 쿠데타'라고 분명하게 언급을 한거냐?

= 그렇다. 유승민 의원은 그제 성균관대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면서 박근혜 정부에서는 금기시 되고 있는 5.16에 대해 '쿠데타'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유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5.16 쿠데타 이후에 만든 군사 정권과 그때 만든 정당 이름이 공화당이라서 그냥 '공화'가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그렇지가 않습니다"라면서 '5.16 쿠데타', '군사정권'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무소속 유승민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무소속 유승민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 이 발언이 의외라는거냐?

= 맥락으로보면 의외라고 할 건 없다. 5.16이 쿠데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5,16이 쿠데타라는 사실은 헌법재판소 결정과 대법원 판례, 심지어 논란이 많았던 교학사 교과서에도 쿠데타라고 분명하게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5.16이 쿠데타냐? 아니냐?가 논란이 됐고 청문대상 대부분이 답변을 피해갔다. 법을 집행하는 검찰총장이나법무부장관, 그리고 내각을 통할하는 국무총리조차 쿠데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법을 집행하는 김수남 검찰총장은 "5.16에 대해서는 어떤 성격을 갖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중립을 지켜야하는 검찰총장의 견해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고, 김현웅 법무부장관은 "5.16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어서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답변했다.

법무부장관을 지낸 황교안 국무총리는 "그 (5.16)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일일이 다 말씀드리는 것은 또다른 논란만 야기하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자신이 쓴 <집회시위법 해설서>에는 4.19 혁명을 '혼란',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소속 유승민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무소속 유승민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 '5.16이 쿠데타'라는 발언만 갖고 각을 세웠다거나 정면으로 맞섰다고 하기는 무리 아닌가?

=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유승민 의원의 강연내용을 들어보면 박근혜 정부의 노선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걸 알 수 있다.

유 의원은 "공화주의는 공공선을 담보하는 법의 지배 안에서 시민들이 다른 시민들에게 예속되지 않고, 왕, 군주에 지배를 받지 않고 법치의 지배를 받는 정치체계다.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굴종과 주종적 지배를 강조하지 않는다"고 강조를 했다. 상당히 의미있는 발언 아니냐?

유 의원은 '수구 보수'란 표현도 썼다. "우리나라에서 수구 보수의 논리가 성장이 불평등을 치유한다고 우기고, 재벌 대기업을 살려야 한국 경제가 사는 것처럼 얘기한다"면서, 재벌 대기업을 "겉으로는 시장논리와 경쟁을 칭송하면서 속으로는 기득권 강화와 유지를 위해 법과 제도를 반경쟁적, 반시장적으로 만들려고 힘쓰는 세력"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특히 "우리사회가 재벌이 발목이 잡혀있다"거나 "가습기 살균제 같은 것을 만들어 파는 기업은 집단 소송을 해서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징벌해야 한다"는 등 파격적인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유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무소속 유승민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무소속 유승민 의원 (사진=황진환 기자)
▶ 헌법을 인용한 것도 그런 의미가 있는 거냐?

= 정치권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유승민 의원이 헌법의 가치를 강조하면 할수록 박근혜 정부가 헌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그제 강연에서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그 조항을 언급하면서 "'정운호 게이트'를 봐도 그렇고, 재벌들이 구속됐다 걸핏하면 사면·복권되는 걸 봐도 그렇고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 인식이 매우 안 좋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헌법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보수"라면서 헌법1조1항을 다시 거론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지난해 7월 원내대표에서 사퇴할 때도 헌법 1조1항을 언급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3일 무소속 출마를 위한 탈당 데드라인을 1시간 앞두고 탈당기자회견을 하면서 헌법1조2항을 언급했다.

유 의원의 원칙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사진=청와대 제공)
(사진=청와대 제공)
▶ 유승민 의원이 왜 박근혜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는 거냐?

= 첫 번째는 유승민 의원이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해 7월 원내대표 사퇴기자회견에서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3일 탈당기자회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의 내용처럼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다.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당을 잠시 떠나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승민 의원이 내세우는 원칙은 헌법과 정의가 기본이다. 유 의원이 이런 원칙을 강조하면 할 수록 박근혜 정권과는 멀어지는 게 현실이다.

두 번째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말로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유 의원은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는 아무 관심 없고 '성장 지상주의'를 이야기하는데 결과가 어떠하냐?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은 진정한 의미의 시장경제가 아니다"고도 했고 "한국 사회 전체가 재벌들에게 인질이 된 것 같이 '재벌 대기업을 살려야 한국경제가 산다', '이들을 위해서 재정금융 지원하고 규제도 풀어줘야 한다' 등의 논리로 수 십년 지났는데 (지금 한국 경제는) 죽어가는 경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그러면서 "친재벌 정책을 친시장 정책으로 바꿔야한다. 재벌 대기업 위주의 경제 체제로는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면서 "재벌 대기업은 기업 활동의 자유는 확실하게 보장하되 불공정행위, 독점력 남용, 총수와 임원진의 사익편취 행위, 불법행위는 법으로 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은 또 '상시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 논란에 대해서는 "청문회를 많이 하는 건 일하는 국회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원내대표에서 물러날 때도 야당과 합의한 국회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세 번째는 이제는 내 길을 가겠다는 대선행보를 구체적으로 선언했다는 평가다.

유승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성균관대에서 제가 늘 주장해오던 따뜻한 보수, 정의로운 보수, 헌법 가치를 말했다"면서 "공화주의 철학에 기초한 보수혁명을 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새누리당의 한 현역의원은 "유 의원의 발언은 주변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이제는 내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유 의원은 지난 3월 탈당기자회견에서 "권력이 저를 버려도 저는 국민만 보고 나가겠다. 국민의 선택으로 승리해 정치에 대한 저의 소명을 다하겠다. 오늘 저의 시작이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로 나가는 새로운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유승민 의원이 자신의 생각이나 주의 주장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박 대통령과 맞서는 것처럼 비쳐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유 의원은 이제는 자신의 이런 행보가 대통령에게 맞서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의원을 비판했던 '자기정치'를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유승민 의원은 새누리당에 복당한다고 했는데?

= 원칙주의자인 유승민 의원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유 의원은 "새누리당 복당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고, 당이 어떤 결정을 하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공천 마감시한 1시간 전까지 탈당을 하지 않고 기다리던 유승민 의원을 기억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누가 봐도 기다릴만큼 기다렸다는 이른바 '임계점'까지 기다렸다가 탈당을 했다.

그러면서도 새누리당을 비판하지 않았고 선거에서 당선되자 복당 신청을 했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새누리당의 한 현역의원은 "유 의원의 발언은 새누리당에서 복당을 안시킬 것이라는 전제 아래 한 발언 아니겠나?"면서 "이제는 누가 무서워서 입에 재갈 물리고 하는 그런 상황을 끝내겠다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유승민 의원은 그래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설립한 싱크탱크 합류 여부에 대해 "거기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내 비박계에서는 유승민 의원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맞설 유력한 카드로 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 유승민 의원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 될 것으로 보인다.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bamboo4@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