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브렉시트, EU체제 리스크 높인다

일취월장7 2016. 5. 19. 10:21
브렉시트, EU체제 리스크 높인다
강선구 | 2016.05.17
오는 6월 23일에 영국에서 EU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진다. 현재까지 어느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 어려운 접전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EU규제에 반대하고 국가주권을 확대하려는 영국의 국민정서에다 분담금과 역내무역적자 문제, 이민제한 등이 탈퇴 사유에 가세하고 있다. 브렉시트 결과와 상관없이 EU체제가 추진하는 통합방식의 재검토가 이뤄질 전망이다.

 
오는 6월 23일로 다가 온 브렉시트 투표

 
유럽연합(EU)의 주요 회원국 가운데 하나인 영국이 오는 6월 23일에 국민투표를 통해서 EU 탈퇴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브렉시트(Brexit)는 영국(Britain)의 탈퇴(Exit)를 합해서 만들어진 조어로서 지난 2012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을 표현했던 그렉시트(Grexit)를 연상시킨다. 그렉시트의 가능성은 지난해에도 대두되었다가 7월에 구제금융협상이 타결되면서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이다.

 
영국은 유로존에 속한 국가도 아닌데다 경제위기 상황에 처해 있지도 않지만 특별한 회원국 지위를 요구하며 EU와 묘한 대립각을 세워 왔다. 지난 2015년 5월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당은 선거공약에서 2017년말까지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후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지난 2월의 EU 특별정상회담에서 영국의 회원국 지위의 명목상 변화를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둔 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오는 6월 23일에 치룬다고 발표했다. 영국의 EU 회원국 자격이 재협상됐으므로 EU를 탈퇴하지 않고도 영국이 이전보다 독립성을 확보한다고 믿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한달 후 브렉시트가 부결되면 기존 영국과 EU간의 관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겠지만 만약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영국은 2년의 퇴장기간을 거쳐 EU와 결별하게 된다. 영국은 해당 기간에 예산 분담금은 내야 되지만 EU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EU가 체결했던 조약을 준용했던 부분에서도 영국은 대상국들과 다시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과 EU의 FTA협정이 영국에는 효력이 없어지므로 영국은 우리나라와 따로 협정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EU에서 벗어나려는 영국민의 뿌리깊은 정서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를 막아야 되는 입장에서 대국민 홍보에 나서고 있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모기지(mortgage) 비용이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식이다. 재무장관을 맡고 있는 조지 오스본(George Osborne)은 파이내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런던 금융가에서 수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연간 690억 파운드에 이르는 금융서비스 수출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지만 탈퇴파들은 브렉시트로 인해서 국가 주권이 강화되고 EU의 복잡한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한다. 정치권에서는 노동당을 위시한 좌파진영, 국민 가운데서는 노년층이 전통적인 탈퇴지지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지난 1973년에 영국 히드(Heath) 총리가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해도 국가주권의 침해는 없다”면서 국민을 속였다고 비난한다.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 영국경제가 잦은 파업과 정전사태 등 소위 영국병으로 대륙경제에 뒤처져 있었고 그 위기타개책으로 국가주권을 양보하고 유럽공동시장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과거 대영제국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영국민들은 제2차 대전 이후 대륙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유럽통합에 대해서 부정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유로화가 도입됐지만 영국이 아직까지 파운드화를 고집하는데도 이러한 뿌리깊은 정서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분담금과 역내무역적자에 대한 경제적 불만

 
한편 영국의 EU탈퇴에 있어서 경제적 이유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분담금과 역내무역적자 문제이다. 영국은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많은 EU예산 분담금을 내고 있으며, 전체 분담금에서 영국 분담금의 비중도 지난 2009년의 8.3%에서 2014년에는 9.7%로 상승했다. 지난 2014년도 1,165억 유로의 EU예산 가운데 영국이 113억 유로를 분담한 셈인데, 영국이 예산의 혜택을 본 64억 1천만 유로를 제외하면 49억 3천만 유로의 분담금 적자가 발생했다.

 
분담금과 함께 영국의 불만사항은 역내무역적자의 심화이다. EU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EEC는 역내 공동시장(Common market)을 형성하여 역내교역을 늘려 왔다. 영국도 EEC 가입 이후 역내교역을 늘려 왔지만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서 역내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다. 지난 2015년 EU 전체수입에서 역내 조달 비율은 63.3%였는데 영국은 수입의 53.6%만 EU에서 조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영국의 수입규모는 큰 편이어서 EU 수입액 가운데 영국은 10.2%를 차지, 독일, 프랑스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문제는 영국의 수출에서 EU 시장의 비중이 수입에서보다 더욱 낮은 44.4%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역내로 향하는 영국 상품보다 역내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는 상품이 많다 보니 영국 무역적자의 79%가 역내교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영국의 무역적자액은 1,494억 유로에 달했는데, 1,182억 유로의 적자가 역내교역에서 생겨났다. 유럽의 재정위기 여파에 따라 EU국가(영국 제외)들이 영국으로부터 수입을 줄인 반면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영국으로의 수출을 늘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역내무역 불균형으로 영국의 상품무역 적자가 더욱 심화되면서 서비스 무역흑자에도 불구하고 경상수지는 2012년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민 제한 문제도 이슈로 등장

 
EU 분담금과 역내무역적자가 과거로부터 누적된 불만이라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이슈는 이민제한 및 지원 축소이다. 영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의 수는 지난 2013년 1분기에 49만 3천명이었던 것이 2년 뒤인 2015년 1분기에는 64만 2천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비해 영국에서 이민을 나가는 인구는 분기별 29만명 수준으로 줄어서 순유입된 이민자 수가 분기별 30만명에 이르고 있다.

 
이민자의 대다수는 EU국적을 가진 사람들로서 취업 목적이 대부분이다 보니 영국민들과 일자리를 다퉈야 한다. 또한 이들이 정착할 때까지 복지수당이나 임대주택 제공 등도 이뤄져야 하므로 영국 정부로서는 재정부담이 적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난 2월 EU 특별정상회담에서 영국 캐머런 총리가 회원국 자격관련 재협상에 성공한 주요 항목 중 하나도 이민자에 대한 복지축소였다. 이에 따르면 영국으로의 신규 이민자는 당장 세금혜택이나 복지수당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수혜대상이 된다. 또한 이민자는 본국에 남겨둔 아동에 대해서도 복지수당을 받았는데, 앞으로는 아동의 체재국 물가수준에 맞게 낮춰진 수당을 받게 된다.

 
영국 정부는 EU 기준과는 별개의 영국 기준으로 이민자 대우에 나서면 이민자의 유입이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난민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2015년 한해 동안 유럽대륙에 유입된 난민의 수는 120만명에 육박하는데, 영국은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해 3만 8천명의 신청자 가운데 1만 3,900명에게만 난민자격을 부여했다.

 
여론조사는 찬반이 팽팽

 
현재까지 브렉시트의 향방에 대해서 어느 한 쪽이 우세하다고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조사 시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지난 4월말까지는 탈퇴를 지지하는 진영이 추격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중순 영국 상공회의소(BCC)가 실시한 최종 여론조사에서 재계 지도층의 54%는 영국이 EU에 잔류하는데 투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과반수이지만 이전 조사에서 나타났던 60%의 지지율보다는 감소한 것이다. 반면 EU 탈퇴에 투표하겠다는 응답률은 종전의 30%에서 37%로 늘었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양측의 접전 양상이 더해 갈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NatCen Social Research사는 지난 4월 25일에서 5월 3일 사이 부동층을 제외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는 정확히 잔류와 탈퇴가 50:50 이었다.

 
브렉시트 논의가 처음 시작됐던 지난 2013년부터의 찬반 지지율 추이를 보면 2013년 초부터 1년간은 탈퇴 의견이 앞섰다가, 이후 2014년 3월부터 2015년 8월까지는 잔류 의견이 더 많았다. 이러한 여론조사는 인터넷 여론조사회사인 YouGov의 결과에서 차용한 것인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민자에 대한 지원 여부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14년 11월 캐머런 총리가 이민자에 대해 지원을 줄이겠다는 연설을 한 직후 EU 잔류에 대한 지지율이 탈퇴 지지율을 크게 앞섰다.

 
국제사회 및 금융계는 브렉시트에 강한 반대

 
그렇지만 EU 잔류에 대한 찬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캐머런 총리가 소속된 집권 보수당 마저 반반으로 의견이 나뉘어지면서 보수당의 공식 입장은 어느 한쪽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2월에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 일정을 발표한 직후 열린 내각회의에서는 29명 장관 가운데 6명이 EU 탈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던칸 스미스(Duncan Smith) 노동연금부 장관, 마이클 고브(Michael Gove) 법무부 장관 등이 포함되는데, 특히 마이클 고브는 캐머론 총리와 가까운 사이이며 동지적 관계인 인물이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서 전 런던 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도 탈퇴 지지를 선언했다.

 
한편 국제사회는 영국의 브렉시트를 반대하면서 EU의 안정, 나아가서 세계정치 및 경제질서의 유지를 바라고 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 순방 중이었던 지난 4월 22일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앞서 국제통화기금(IMF)도 브렉시트가 세계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금융계를 대표하는 월가의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JP Morgan 등은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국제금융계가 혼돈에 빠질 것이라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폭은 투자자본 이탈, 투자대상기업의 신용등급 하락 등을 야기하여 투자수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영국의 외국인투자(FDI, 포트폴리오투자, 파생투자 등을 합산) 잔고는 10조 6천억 파운드로서 영국 GDP의 6배에 이를 정도이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지난 2014년 대영 FDI 투자에서는 706억 파운드, 그리고 포트폴리오 투자에서는 676억 파운드의 수익을 거둔 바 있다. 만약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영국금융시장이 혼란해지면서 외국인투자가 10%만 빠지게 되어도 약 138억 파운드의 투자수익이 영국에서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국제 투자은행들과 영국에 진출한 대기업들은 영국의 EU 탈퇴라는 악재를 원치 않는 것이다.

 
EU체제 유지 리스크 커져

 
영국에게 브렉시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영국산업연맹(CBI)이 컨설팅회사인 PwC에 의뢰한 조사에서는 브렉시트의 경우 9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천억 파운드(GDP의 5%)의 경제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독일 베텔스만(Bertelsmann) 재단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경제가 매년 GDP의 1.1%에 달하는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렇지만 브렉시트의 가장 큰 피해당사자는 EU가 될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를 계기로 증폭되는 유럽회의주의(Euroscepticism)가 EU통합의 긴 흐름을 단절시킬만한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브렉시트가 결정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스 등에서 포퓰리즘 정당들을 중심으로 EU탈퇴를 묻는 국민투표 요구가 추가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브뤼셀에 본부를 두고 있는 EU는 ‘보다 긴밀한 연합(ever closer union)’을 추구하면서 정치통합까지 염두에 두었지만 난관에 봉착할 전망이다. 런던에 소재한 유럽개혁센터(CER)는 영국이 빠진 EU체제는 ‘자유의 쇠퇴, 과학의 후퇴, 보호주의 강화’ 등 3중고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브렉시트가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도 앞서의 경우에는 못 미치지만 EU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영국의 투표 이후 통합의 주축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과 프랑스가 앞장서서 유로존부터 결속을 다지는 새로운 이니셔티브를 내놓지 않으면 다른 회원국들의 동요를 막지 못할 것이다. 또한 영국이 EU의 규제가 많고 주권제약이 심하다면서 극단적으로 탈퇴를 고려한 만큼, 앞으로 EU의 통합 방향은 단선적이고 규제 일변도인 데서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과 같은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이 탄생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