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문화, 예술

[4.13, 자영업자의 선택은] 1편

일취월장7 2016. 4. 7. 11:03

하림이 재벌 되는 동안, 우린 뭐가 됐을까?
[4.13, 자영업자의 선택은] ①경쟁도 양극화
성현석
기자
| 2016.04.05 07:05:23
       

한국 사회의 대표 직업을 꼽는다면? 어쩌면 자영업자 아닐까. 상당수 청년이 취업을 못 한다. 정 취업이 안 되면 결국 자영업자가 될 게다. 직장에서 퇴직한 이들 역시 대부분 노후 대책이 없다. 그들의 선택지 역시 자영업이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 준비 없이 쫓겨나면, 가장 흔한 대안이 자영업이다. 그런데 장사에 필요한 기술이 전혀 없다. 결국 프랜차이즈 업체에 의지한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을 몰라서가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찾아갈 만큼, 맨몸으로 만나는 세상은 두렵다.  


대중의 호민관, 약자의 바람막이가 되겠다며 총선 후보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다. 그들은 자영업자 또는 예비 자영업자의 현실을 얼마나 알까. 그래서 예비 국회의원을 위한 '자영업 리포트'를 준비했다. 자영업자의 현실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물론, 유권자가 먼저 읽는 게 좋다. 그래야 어떤 후보의 목소리가 더 현실에 가까운지 가늠할 수 있다. "4.13, 자영업자의 선택은" 첫 번째 기사에선 경쟁조차 양극화한 현실을 다룬다.


한국은 '치킨 공화국'이다. 통계로도 드러난다. 자영업자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네 번째다. 요식업이 중심인데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가 치킨 전문점이다. (한국외식업경영지수 연구용역 데이터 참고.) 반면 요식업계에서 수직 계열화와 독점이 가장 잘 진행된 분야 역시 치킨 업계다.  


한마디로 경쟁 양극화. 먹이사슬의 아래쪽에 있는 이들은 무한 경쟁을 강요받는다. 반면, 위쪽은 경쟁 무풍지대다. 치킨 생태계의 포식자인 하림은 축산기업으로는 최초로 대기업 집단에 편입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일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65개 기업집단을 '상호출자제한·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해 발표했다. 여기 포함된 민간 기업을 흔히 '재벌'이라고 부른다. 닭고기 가공 업체인 하림은 이 가운데 38위다. 자산총액은 9조9000억 원이다. 소, 돼지 등과 달리, 닭은 기업 중심으로 계열화 돼 있다. 이는 정부의 축산 정책이 낳은 결과다. 정부는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동우 등 일부 기업을 선정해 집중 지원했고, 중소 규모 도계장과 재래시장 닭전은 폐쇄시켰다.

그 결과, 하림은 재벌이 됐고 양계 농민은 하청 노동자가 됐다. 그리고 등 떠밀려 창업한 치킨집 사장들은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살아낸다. 이는 한국 사회의 어떤 특징을 도드라지게 묘사한 캐리커처와도 같다. 다른 분야 역시 정도는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한국에선 경쟁도 양극화 돼 있다. 누군가는 너무 심한 경쟁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너무 편한 경쟁을 한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자유 없는 경쟁 

전국에 치킨집은 수만 곳에 달한다. 왜 숫자를 애매하게 적었냐고? 등록된 치킨전문점은 3만여 곳이지만, 실제 치킨집은 그보다 훨씬 많다. 예컨대 길거리에서 파는 장작구이 통닭도 있다. 또 닭강정이나 닭꼬치를 파는 노점도 있다. 그래서 통계 작성 기관마다 수치가 다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치맥(치킨과 맥주) 열풍을 보며, 숱한 이들이 치킨집 창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가 폐업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02년 월드컵 이듬해인 2003년, 치킨집 창업이 급증했다. 1990년부터 시작된 곡선의 첫 번째 꼭짓점이다. 하지만 폐업 그래프는 그보다 높은 꼭짓점이다.  

유행 따라 하는 창업은 위험하다는 상식에서 나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그렇게 많았다. 하지만 상식은 예외가 적으니까 상식이다.  


▲ ⓒ공공데이터포털


치킨집 운영에서 '전관예우'는 통하지 않는다. 예전 회사에서 마지막 직급이 부장이었든, 과장이었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공부를 어디까지 했는지 역시 관심 밖이다.


"아직도 넥타이에 집착하십니까?"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BBQ가 내걸었던 가맹점 모집 광고 문구다. 설마 '넥타이', 그 자체에 집착한 사람이 있었을까. 실제로 벗어던져야 했던 건, 넥타이가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그렇게 뛰어든 곳은, 완전한 경쟁 시장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경쟁이 혁신을 낳는다고 가르친다. 여기엔 단서가 있다. 자유가 있어야 한다. 혁신적인 시도를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경쟁의 순기능이 작동한다. 하지만 치킨집 주인에겐 자유가 없다.  

'미피데이'가 끔찍한 이유 

서울 신촌에서 만난 한 치킨집 주인은 치킨 요리를 '라면 끓이기'에 비유했다. 물론 과장된 표현인데, 개성이 없다는 뜻이다. 프랜차이즈 치킨은 라면처럼 맛이 표준화돼 있다. 닭의 육질을 감별하며 치킨을 즐기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느끼는 건, 프랜차이즈 본사가 공급하는 양념의 맛이다. 가맹점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매뉴얼만 따르면 된다. 그러므로 누가 해도 상관없다.  

결국 직장 생활과 마찬가지다. 기업 입장에서 직원은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이다. 업무는 잘게 쪼개져 있고, 대부분 매뉴얼이 있으며, 회사 밖에는 그저 일만 시켜달라는 이들이 넘쳐 난다.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선 윗사람 눈치를 봐야 했다면, 치킨집 차린 뒤엔 본사 눈치를 본다. 본사가 꼬투리를 잡으면, 최악의 경우 닭 공급을 중단할 수도 있다. 고의로 나쁜 재료를 보낼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그렇게 며칠 지나면 망하는 거다. 

직장에서 쫓겨나서 치킨집 차렸지만, 직장 생활과 다를 게 없다. 아니 훨씬 더 나쁘다. 휴가는 꿈도 못 꾼다. 직장과 달리 동료가 없다. 둘러보면 온통 경쟁자뿐이다. 치킨집만 경쟁자가 아니다. 치킨집 주인들이 끔찍해 하는 게 '미피데이'다. 미스터 피자가 할인행사를 하는 날인데, 치킨집 매출이 확 줄어든다.  

1980년대 림스치킨과 지금 프랜차이즈의 차이 

치킨에 관심 있다면, 필독서가 있다. <대한민국 치킨展(전)>이라는 책인데, 대한민국 치킨의 거의 모든 게 담겨 있다. 이 기사 역시 <대한민국 치킨展(전)>의 내용과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책의 저자인 정은정 씨는 1975년 설립된 림스치킨을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의 원조로 꼽는다. 제조부터 판매까지 담당하는 최초의 프랜차이즈였다는 설명이다. 명동 신세계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 1호점을 냈다. 퇴근길에 치킨을 사가는 중산층 가장의 모습, 그 배경에 있는 게 림스치킨 가맹점이었다. 하지만 림스치킨은 1980년대 말 양념치킨 열풍과 함께 쇠락한다.  

정은정 씨는 전성기의 림스치킨과 지금의 치킨 프랜차이즈를 비교한다. 지금의 프랜차이즈 본사는 염지(鹽漬, 고기를 소금과 화학약품에 절이는 것)가 된 닭과 양념, 식용유, 각종 부자재 등을 독점 공급한다. 이 과정에서 이익을 낸다. 심지어 맥주 브랜드 선택권도 본사가 갖는다.  


1980년대 림스치킨만 해도 달랐다. 치킨에 곁들여 나가는 치킨무는 가맹점 업장에서 직접 담갔다. 양배추 샐러드 역시 마찬가지. 본사는 지금과 달리 생닭을 공급했고, 가맹점 업장에서 염지를 해야 했다. 따라서 똑같은 림스치킨인데, 가게마다 맛이 달랐다. 식용유 선택권 역시 가맹점 몫이다. 성수기에는 본사를 통하지 않고 닭을 구입하기도 했다.(사입) 지금은 모든 프랜차이즈 업체가 사입을 엄격하게 금지한다. 


조리법 교육 역시 지금은 철저히 본사가 진행한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다. 1980년대에는 가게를 넘긴 사람에게 조리법을 배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본사도 교육을 했지만, 위생 교육 수준이었다.  

요컨대 치킨 프랜차이즈 산업은 본사의 통제력을 강화하고 가맹점의 자율성을 없애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가맹점 주인은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치킨 관련 노하우를 축적하기 힘들다. 그만큼 쉽게 대체할 수 있다. 자율 없이 경쟁만 있는 지옥에서 살아간다.

양계 농가 90%가 기업 소속 '계약 농가' 

글 도입부에서 언급한 하림은 닭고기를 공급하는 업체다. 한국 치킨 산업 역사는 하림의 성장사와 겹친다. 한국에서 한 해에 도축되는 닭은 약 8억 마리인데,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치킨으로 튀겨진다. 그 많은 닭은 누가 키우나? 양계 농가가 키운다. 이 양계 농가의 90% 이상이 육계 기업에 소속된 '계약 농가'다. 그 가운데 절반이 하림에 속해 있다. 계약 농가는 일종의 하청 업체 격이다.  

농축수산물 가운데서 이런 경우는 닭뿐이다. 치킨 소비가 철저히 기업(프랜차이즈 업체) 중심인 탓에 공급 역시 기업이 담당하는 구조가 정착했다.

사실 정부가 이런 방향으로 유도했다. '축산 현대화'가 명분이었다. 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도 했다. 국민이 상대적으로 싼 값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게끔 한다는 목적도 곁들여졌다. 일부 치킨집의 '영양센터' 간판은 그 시절의 흔적이다.

하림은 이런 정부 정책에 가장 잘 부응한 기업이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11살 때 축산업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실과 교과서에 병아리와 닭 키우는 법이 실려 있던 시절이다. 양계산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그만큼 뜨거웠다. 당시 외할머니가 병아리 10마리를 사줬는데, 김 회장이 정성껏 키웠다고 한다. 그걸 팔아 번 돈으로 다시 병아리 100마리를 샀고, 이를 되팔기를 거듭해서 고등학교 때는 닭 4000마리, 돼지 30마리를 기르는 사업가가 됐다는 이야기다. 어찌 됐건, 대단히 부지런한 기업인이었던 건 분명하다. 


업계 1위가 된 뒤엔 인수합병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하림 그룹 계열사는 58곳이다. 천하제일사료 등 양계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회사는 대부분 인수했다. 지난해 해운업체 팬오션 인수 역시 옥수수와 콩 등 닭 사료 공급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인수합병은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굳히는 방편이 된다. 공정한 경쟁이 어려워진다. 이번에 대기업 집단에 편입된 건, 이처럼 잦은 인수합병의 결과다.  

경쟁으로 이익 보는 건, 경쟁 부추긴 '갑'뿐이다 

문제는, 이처럼 경쟁을 피하는 쪽으로 진화해 온 하림이 계약 농가들에 대해서는 경쟁을 강화하는 정책을 써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을 선도했다. 2위 이하의 육계 기업들은 하림을 따라한다.  

< 대한민국 치킨展(전)>은 계약 농가에 대한 상대평가 제도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사료를 가장 적게 쓰고 닭을 키워낸 농가가 1등이 된다. 1등에겐 혜택을 주고 나머지에겐 불이익을 준다. 미국의 스미스필드 등 대형 축산기업에게서 배운 제도다. 농가 입장에선 당연히 못마땅하다.  


경쟁으로 이익을 보는 건, 경쟁을 부추긴 자뿐이다. 농가 입장에선 닭 한 마리당 400원 남짓인 사육 보수가 못마땅하다. 그러나 하림은 대기업이고, 농가는 자영업자다. 경쟁에 내몰린 농가끼리 연대해서 압력을 넣기가 어려운 구조다. 결국 농가들은 닭을 많이 키워서 이익을 늘리는 선택을 한다. 시설 투자비용이 늘어난다. 양계 시설에 수억 원대를 묻어둔 농가는, 마음이 불안하다. 투자한 돈이 크면, 피해에 따른 위험 규모도 함께 늘어난다. 결국 하림의 눈치를 더 보게 된다. 실제로 하림은 농가에 대한 '갑질'로 종종 물의를 일으켰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관계와 구조가 똑같다. 가맹점 사장 역시 이미 투자한 퇴직금을 날릴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럴수록 본사 눈치를 보게 된다. 본사에 코가 꿰인 것이다. 가맹점이 누리는 자율의 폭은 줄어들고, 경쟁은 격화되는 쪽으로 진화했다.

자영업 생태계 '갑질' 막는 경제 민주화 

이동걸 동국대학교 초빙교수에 따르면, 한국에서 재벌 개혁 시도에 승산이 있었던 건 두 차례다. 첫 번째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다. 위기를 부른 책임이 재벌에게 있었으므로, 개혁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었다. 두 번째는 2010년 이후 대기업이 중소상인의 영역에 진출할 때다. 이는 평범한 시민이 몸으로 느끼는 문제라서 개혁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었다.

치킨 자영업 생태계의 포식자 문제는 후자에 가깝다. 대표적인 포식자 가운데 하나인 하림은 이제 '재벌' 반열에 들었다. 재벌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서 경쟁을 피하는 일을 흔히 본다. 그걸 막자는 게 '경제 민주화' 주장의 한 축이었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 구호가 다시 튀어나온 이번 선거에서 강자에게 공정한 경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유권자 대부분은 이미 자영업자거나 미래의 자영업자다. 대기업 퇴직자 역시 가장 흔한 선택은 자영업이다. 지옥도가 돼 버린 자영업자들의 풍경은, 유권자 대부분의 문제다. 그러데 왜 총선 후보자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일까. 다들 노후 걱정이 없어서? 그게 진짜 궁금하다.  



"혜리를 '맑스돌' 만든 그것, 총선에선 누구 편?"

[4.13, 자영업자의 선택은] ② 3평 가게 안의 계급투쟁
성현석
기자
| 2016.04.07 07:46:42

음주가무의 나라, 한국에서 술장사가 안 된다. 6년 전 100만 원 매출을 올렸던 술집이 지금은 73만 원어치를 판다. 최근 발표된 서비스업생산지수 이야기인데,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0년 7월 이후 최저치다.

노동자들의 근로소득은 지난해 1.6%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자영업자의 연간 사업소득은 1.6% 줄었다. 역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래 첫 마이너스다.

거의 모든 자영업이 어렵다는 말이다. 하지만 똑같은 고통은 아니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원장도, 동네 치킨집도 모두 자영업자다. 누군가에겐 여윳돈이 줄어드는 어려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이다. 그 간극만큼 사회의식도 다르다. 그들을 한데 묶어 이야기하긴 어렵다.  

자영업자가 '갑'이 되는 순3평 가게 안의 계급투쟁


하지만 강력한 공통분모가 있다. 고용 문제다. 3평(9.9제곱미터)이 채 안 되는 테이크아웃 커피점도 '알바'를 쓴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고용주를 겸한다. 자영업자의 장부는 기업 회계처럼 복잡하지 않다. 매출에서 몇 가지 고정 비용을 뺀 게 자기 소득이다. 


비용은 대부분 강자의 요구다. 예컨대 가게 임대료는 건물주의 요구다. 건물주가 '갑'이므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재료비 역시 강자들이 정한다. 


유일하게 자영업자가 '갑' 위치에서 통제할 수 있는 비용이 인건비다. 직원 급여를 줄인 만큼, 내 소득이 늘어난다. 게다가 매출은 줄어든다. 다른 비용은 요지부동, 아니 오름세다. 직원을 쥐어짜야 내가 산다. 3평 가게 안은 처절한 계급투쟁의 전장이 된다.

성형외과 원장도, 동네 치킨집도 이 점에선 마찬가지다. 개원을 준비하는 의사가 듣는 흔한 조언도 고정 비용을 줄이라는 것이다. 결국 인건비 깎으라는 말이다. 물론, 한계가 있다. 비슷한 업종, 비슷한 규모라면 직원 급여 역시 마찬가지다. 그보다 조금 더 줄이느냐, 마느냐의 다툼이다. 인건비를 못 줄일 바엔, 더 고분고분했으면 싶다. 모든 고용주가 같은 마음이다.  

"알바느님, 그래서 1000원 더" 

치킨집 주인이 말했다. "'알바느님'이지." 알바와 하느님을 합친 말인데, 살짝 비꼬는 느낌이다. 배달 아르바이트 직원에 대해 불만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단다. 갑자기 출근을 안 하면 주인 입장에서 대단한 낭패다. 치킨 배달은 아무나 못한다. 술을 파니까 청소년은 고용할 수 없다. 오토바이 운전 면허도 있어야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오토바이를 몰고 가야하는 위험한 일이다. 세상이 온통 월드컵에 열광할 때 홀로 오토바이를 몰아야하는 외로운 일이다.  

주인 마음에 쏙 드는 아르바이트 직원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게 힘들게 모신 '알바느님'에게 급여는 얼마나 주나, 물어봤다. "최저시급보다는 훨씬 더 주지." "그래서 얼마?" "천 원쯤 더." 

2016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6030원이다. 그러니까 시급으로 7000원쯤 준다는 말이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알바몬, 알바천국 등에서 검색해봤다. 시급 7000~9000원대였다. 9000원은 드물다. 최저시급보다 1000~2000원 더 주는 게 보통이다.

다른 아르바이트보다는 확실히 낫다. 예컨대 서울시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 가운데 6%는 최저시급도 못 받는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미용실 등 근로자 수가 1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 3600곳을 조사한 결과.)

오토바이 운전 능력, 사고 위험 등 몇 가지 문턱을 넘은 대가가 최저시급에 얹어진 1000~2000원이다. 이 대목에서 각자 지닌 사회의식의 색깔이 갈린다. 최저시급보다 더 받는 돈, 1000~2000원. 그게 많은 돈인가, 아닌가. 치킨집 주인은 그 정도면 많다고 본다. "걔들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 

치킨 배달도 외주화안전판은 최저임금 


실제로 치킨집 배달 아르바이트 시급이 오른 것도, 맥도날드나 버거킹 등이 배달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다. 배달 아르바이트 수요가 늘면서 시급이 올랐다. 말 그대로 시장 논리.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결정한다. 아르바이트 직원의 전문성을 치킨집 주인들이 높게 쳐줘서 오른 게 아니다.  

역시 시장 논리에 따라 배달 아르바이트 시급을 위협하는 요소도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요식업계에도 '외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알바느님' 모시느니, 배달 대행업체를 쓰겠다는 게다. 아직은 식당 주인들이 배달 대행업체의 효용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다. 일단 가입비를 내고, 업체를 이용할 때마다 수수료를 내는 방식인데, 대체로 비싸다는 의견이다. 게다가 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도 썩 못 미더워 한다. 아무래도 여러 가게의 배달을 도맡다보니, 배달 시간을 못 맞추는 경우가 있다.

배달 대행업체가 아직 영세한 탓이다. 만약 이들 업체가 규모와 전문성을 키운다면, 업체에 소속되지 않은 배달 아르바이트는 일자리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지금보다 낮은 시급을 감수해야 한다. 시급은 어디까지 떨어질까.  


안전판은 결국 최저임금이다. 치킨집 주인도, '알바느님'도 올해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잘 알고 있다. 의외라고? 당신이 최저임금과 상관없는,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를 갖고 있는 탓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입장이라면, 최저임금이 늘 눈에 들어온다. 인터넷 덕분이다. '알바몬' 등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최저임금이 눈에 잘 띄게끔 표시돼 있다. 제시된 시급이 그보다 얼마나 많은지를 비교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고른다.


▲ '알바몬' 광고에 출연한 '걸스데이' 혜리. ⓒ알바몬



"'사장몬' 검색어 보고 놀랐다?당신이 순진한 거다" 


몇 평 가게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 아르바이트 직원의 방패는 최저임금이다. 가게 주인들도 그걸 잘 안다. 상대의 방패가 얇아져야 싸움이 유리해진다. 


지난해 벌어진 '알바몬' 사태는 가게 주인들의 이런 정서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걸스데이' 멤버 혜리는 '알바몬' 광고에 출연해서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5580원(2015년 기준)입니다"라고 외쳤다. "알바가 '갑'이다"라고도 했다. 


'그게 어때서'라고 한다면, 순진한 거다. 광고가 나가자마자 난리가 났다. 가게 주인들이 '알바몬' 탈퇴 운동을 벌였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알바몬'이 떴다. 가게 주인들은 알바몬 측의 공개 사과와 광고 중단을 요구했고, '사장몬'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결성했다. '사장몬'도 곧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결국 타협으로 결론이 났다. 알바몬 측은 후속 광고인 '야간 수당' 편 방영을 중단했다. 대신 '사장몬'은 폐쇄했다. 졸지에 혜리는 '맑스돌'이 됐다.  

일베 "힘들게 구한 노비들 탈출할까봐 부들부들 ㅋㅋ"


흥미로운 건, 당시 '일베'의 반응이다. 이 사태 관련 글 가운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건, 관련 기사와 이미지를 캡처한 뒤 "힘들게 구한 노비들 탈출할까봐 부들부들 ㅋㅋ"라는 글을 단 게시물이었다. 최저임금 규정을 지키는 업체가 늘어나면,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이들이 새 일자리를 찾아서 떠날 수 있다. 그러니까 사장들이 화를 낸다는 뜻이다. 알바몬 광고를 비난하는 가게 주인들을 조롱하는 뉘앙스다.

'일베' 이용자들은 게시물 내용을 추천하면 '일베로'를 클릭한다. 그 반대는 '민주화'다. 당시 '일베로'를 클릭한 횟수는 2216건이었다. '민주화'를 클릭한 횟수는 162건이다.

밥벌이가 달린 진짜 계급투쟁 앞에선 '일베'도 색깔이 달라진다.

치킨집 주인은 아르바이트 직원을 무시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기자 앞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욕하다가도, 배달 오토바이가 가게 앞에 서면 입을 닫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에게 미소 짓는다. '일베'에 적힌 대로다. "힘들게 구한 노비들 탈출할까봐 부들부들 ㅋㅋ" 

"걔들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라던 치킨집 주인의 말은, 사실 자신을 향한 것이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나이라도 젊지. 치킨집 주인이야 말로, 가게가 망하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걸 아니까, 물러설 수 없다. 좁은 가게 안의 계급투쟁은 늘 폭발 직전이다. '알바몬' 광고에 출연한 혜리는 그 뇌관을 건드렸다.

최저임금 공약, 말 바꾼 새누리당 

혜리가 이야기한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시급"이 마침 선거 쟁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각각 오는 2020년, 2019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최저시급 1만 원은 진보 진영의 오랜 요구 사항이다. 녹색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등 다른 진보정당 역시 최저시급 1만 원을 공약했다. 다만 달성 목표 시기는 빠르다.

새누리당의 입장은 오락가락했다.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최저시급)을 최대 9000원까지 인상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지난 5일, 조원동 새누리당 경제정책본부장은 "최저임금(최저시급)을 9000원으로 올린다는 건 오보"라며 당의 입장을 뒤집었다. "그렇게 올라가는 효과를 내겠다"라는 설명이다.  

최저임금이 자영업자들에게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 잘 아는 탓일 게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최저임금 공약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저임금 수혜자와 미달자, 그들의 선택은? 

2014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최저임금 수혜자(최저임금의 90~110% 수령 노동자)는 121만 명이고 최저임금의 영향률(전체 노동자 대비 최저임금 수혜자 비율)은 6.5%이다. 같은 조사에서 최저임금 미달자는 227만 명이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2.1%였다. 2014년 당시 법정 최저임금은 5210원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 민감한 집단은 이 가운데 최저임금 수혜자인 121만 명이다. 최저임금 미달자의 경우, 아예 체념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안 지켜지는데, 오른다고 지켜지겠나 싶은 거다.  

최저임금 수혜자 121만 명 가운데 상당수는 투표 자체를 안 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치킨집 배달 노동자는 휴일이 더 바쁘다. 투표에 참가하는 나머지 가운데 역시 많은 수는 정치적 입장이 이미 정해져 있을 게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은 앞서 언급한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다. 그 수치를 A라고 하자.

최저임금 인상 공약 때문에 화가 난 자영업자는 얼마나 될까. 최저임금 수혜자를 직원으로 고용한 업주를 집계해야 한다. 최저임금 수혜자를 여러 명 고용한 경우가 있을 테니까, 121만 명보다는 줄어든다. 그 수치를 B라고 하자.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A와 B의 차이만큼의 표를 얻는 공약인 걸까. 당연히 아니다. 정치란 그저 표계산이 아니다.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 경험을 떠올리며,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중년 사무직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한숨짓는 자영업자를 보고, 자신의 미래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도 꽤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못마땅할 수 있다. 최저임금 관련 공약을 내건 여야 정당이 어느 수준까지 표계산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영업자와 알바의 계급투쟁, 어느 당이 더 잘 이해하고 있나

다만 분명한 건, 새누리당은 최저임금 공약이 지닌 폭발성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B에 속하는 집단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얼마나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지, 그걸 아니까 당의 입장을 번복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떨까. A에 해당하는 집단의 정서를 잘 알고 있을까. 오는 13일, 선거 결과가 답을 알려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