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주적이 국민의당인가? 더민주인가? - 2016 총선, 누가 '청년'을 이야기하고 있나?

일취월장7 2016. 3. 11. 11:06

주적이 국민의당인가? 더민주인가?

[주간 프레시안 뷰] 김종인, 정말 잘하고 있나


"비박만 많아진다면 그런 승리 반댈세"

총선을 앞두고 진기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당은 여당과 싸우고 야당은 야당과 싸웁니다.

싸움의 모양새도 점입가경입니다. 여당에서는 유신 시대에도 못 들어본 '진박' 경쟁이 벌어지더니 욕설 녹취록까지 나왔습니다. 야당에서는 분당, 탈당에 이어 통합을 명분으로 싸웁니다. 언론들은 신이 났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은 진절머리가 납니다. 

손익계산서는 분명합니다.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해 혐오감이 늘어날수록 여당은 유리합니다. 핵심 지지층이 반드시 투표장에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야당이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여당에서 공천을 둘러 싼 혈투가 벌어지는 이유는 총선에서 승리한들 청와대가 반가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많이 당선되는 것이 아닙니다. 합리적 보수 같은 '가짜'를 걷어내고 맹목적인 충성을 해 줄 '진박'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되는 것입니다. 

작년 한 해, 대통령은 등에 칼을 맞았다고 느꼈습니다. 야당이 지리멸렬해 있는데 느닷없이 아군이 칼을 들이 민 것이지요. 유승민 같은 의원이 늘어나서 청와대에 좋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당 의석수가 늘어도 비박계가 지금보다 더 많이 당선된다면 차라리 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결국 한 쪽에서는 그 세력을 완전히 잠재우려 하고, 반대 편에서는 어떻게든 버티려고 합니다. 이것이 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본질입니다. 윤상현 의원의 취중진담처럼 죽이지 않으면 죽는 싸움이지요. 

원래 이런 싸움은 선거가 끝난 후 대선을 앞두고 벌어져야 정상적입니다. 개국 후의 왕자의 난, 반정 후 공신들 간의 혈투란 그 때 벌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 전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내부 다툼이 극렬한 것은, 여당이 과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당은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도대체 야당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요? 야권 통합 논의나 공천하는 내용을 보면 야당은 집안 싸움이 난 여당의 위기를 통해 상황의 반전을 도모하기 보다는, 아예 폭삭 주저앉자고 작정한 사람들 같습니다.

김종인이 정말 잘하고 있나? 

김종인 대표의 리더십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독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비상 대권'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많습니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최선은 불가능했을까요? 정말 김종인이 뛰어난 리더십으로 당의 규율을 바로잡은 것일까요? 그리고 김종인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우선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김종인 대표의 선택지를 검토해 보겠습니다. 김 대표는 한밤 중 비상회의를 통해 필리버스터를 사실상 중단시켰습니다. 두 차례 의총을 거쳤기는 했지만, 사전에 중단 결정이 언론에 보도되어서 이미 김이 빠졌습니다. 김 대표는 '총선을 지면 책임질 것이냐?'고 윽박질렀습니다. 최선이었습니까? 

김 대표는 필리버스터에 모아진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들에게는 원기회복제라도 돌렸지만, 필리버스터를 응원했던 시민들과 지지자들에게는 성의있는 해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김종인 대표의 선택은 정치공학적으로는 성공적일지 모르지만 시민참여형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의 엘리트 정치의 단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모처럼 시민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야당이 다시 폐쇄적인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김 대표는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국민'을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응원하는 시민들을 마치 소풍나온 중학생들 취급하면서 이제 다 끝났으니 조용히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훈시하는 고집 센 교장 선생의 모습이었습니다. 시민들은 축제의 여운도 채 가시지 않은 채 쫒겨 났습니다. 마음에 남은 것은 또 한 번의 배신감입니다. 

질서 있는 퇴장은 엘리트주의자들의 시선입니다. 퇴장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퇴장에서 살아있어야 했던 것은 질서가 아니라 감동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김종인 대표는 훌륭한 정책가인지는 모르지만 훌륭한 정치인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에서는 그렇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연합뉴스


김종인이라서 가능했나? 

다음으로 따져 볼 것은 김 대표의 리더십입니다. 김 대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건 싫어하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후한 평가를 하는 듯 합니다. 야당의 가장 큰 문제가 규율과 기강이었는데 그것을 바로 잡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실만 놓고 본다면 맞습니다. 적어도 당 안에서 공개적으로 지도부에 대항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가 지금이 아니라 6개월 전에 당 대표를 맡았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가능했을까요? 

김 대표가 지금 당을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총선을 코 앞에 두고 그가 공천권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면, 지금은 김종인 대표가 아니라 누구든 그와 같은 권한만 쥐고 있다면 당을 조용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을 보면 분명합니다. 두 달 전만 해도 누가 이한구를 대단하게 보았든가요? 요즘은 김무성 대표도 일단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 합니다. 윤상현에게 죽인다는 막말을 들어도 제대로 화도 낼 수 없습니다. 칼자루가 저쪽에 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김종인 대표는 공천권을 손에 쥐고 적잖이 무책임한 행보를 해 왔습니다. 현역 컷오프 과정에서는 시스템 공천이라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대구에 출마한 홍의락 의원을 내쳤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말은 했지만 2주가 지나도록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시기를 놓쳐서 이제는 컷오프를 취소한들 홍 의원과 대구가 받아들일 것 같지 않습니다. 

최근 이루어진 전략 공천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습니다. 김현종을 영입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미 FTA에 대해 당의 입장이라도 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김종훈을 영입한 새누리당과 무슨 차별성이 있는 당인지 설명이 안 됩니다.

인천에 공천한 윤종기는 강정마을 뿐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진압 전문' 경찰로 불렸던 인물입니다. 인천경찰청장을 지내는 동안에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던 김용판과, 용산 참사의 책임자였던 김석기를 직장교육 강사로 초빙했습니다. 윤종기가 '전략 공천'을 할만큼 당의 정체성에 맞는 훌륭한 경찰인지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더민주라면 진압보다는 인권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영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수도권에서 12년이나 고생한 지역위원장을 버리고 표창원을 전략공천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해당지역구는 분구가 되면서 더민주 후보들에게 유리해 진 곳입니다. 표창원이 당에 반드시 필요하다면 비례대표 공천을 주면 될 일이고, 경쟁력이 더 있다면 수도권의 험지에 출마시켜도 됩니다. 굳이 누군가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지역구를 보장해 줄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영입한 인물들에게 비례대표도 아닌 수도권 지역구를 챙겨준다면, 이 당에서는 이제부터 누가 사서 고생하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 대표는 이제 한 달 뒤에 당을 떠나면 그만일지 모르지만, 이 당은 이번 총선만 치르고 없어질 당은 아닙니다. 

이기고 싶다면, 신사처럼 행동하십시오 

마지막으로 김종인 대표의 목표에 대해 검토해봅시다. 김 대표는 지금 정도의 의석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수도권에서 야권의 통합이나 연대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금 김 대표의 행보는 거기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필리버스터 정국을 끝내면서 김종인 대표는 야권 통합 카드를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나, 형식, 내용이 실제로 통합을 원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김 대표는 야권통합 제안 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안철수 대표를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았고, 통합 제안도 협박조였습니다. 

이런 태도는 국민의당에서 지도부 분열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당을 좋아하지 않는 더민주 지지자들에게는 '신의 한수'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호쾌해 보일지 모르는 이런 행보가 실제로 야권의 총선에 도움이 될까요?

야당의 분열 자체를 악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야당들이 인물과 정책, 실력으로 경쟁하다가 구도 때문에 단일 여당후보에게 지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후보단일화를 할 수 있습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야권에서 경쟁하는 것이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민주 지지자만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협박으로 국민의당을 와해시킨다면 그 지지자들은 결코 더민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에서 국민의당 김경진 변호사야 말로 훌륭하고 용기있는 말을 했습니다. 김변호사는 야권 통합에 대한 당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민주가 우리의 주적입니까?"라고 맞받아쳤습니다. 

이 말은 김종인 대표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국민의당이 주적입니까?" 안철수 대표의 "광야에서 죽겠다"는 말은 실은 김종인 대표가 끌어낸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김종인 대표는 어제도 안철수 대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의가 없다. 정치를 잘 못 배웠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김종인 대표의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탈당하고 창당한 지 한 달이 안 된 당에 대해 통합을 제안하면서 악담을 퍼붓는 것은, 잘 배운 예의가 있는 정치인가요?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당도 폭주를 멈춰야합니다. 친노패권후보 5명이라니요. 더민주가 주적입니까? 김종인의 얕은 수에 놀아나는 것을 멈추고 책임있게 행동하십시오. 막말을 멈추고 건전한 경쟁을 제안하는 쪽의 지지율이 먼저 올라갈 것입니다.

아직도 한 달이 남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봅니다. 필리버스터가 마무리 되는 국면에서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 내고 경제민주화 이슈로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했을까요? 마지막 필리버스터에서 국민의당에 존중을 담은 야권연대를 제안하면서 국민들에게 야권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불가능했을까요?

아직도 한 달이 남았습니다. 호남과 비례대표에서 최선을 다해 싸우십시오. 싸움의 수단은 비난과 무시가 아니라 인물과 정책이어야 합니다.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는 수도권 지역에서는 3월말을 기한으로 각자 열심히 경쟁한 뒤 후보자간 자율적 단일화를 천명하십시오.

한 달이면 보통 한 번의 기회는 있게 마련입니다. 김종인이든 안철수든 먼저 신사답게 행동하고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 총선 이후의 주도권을 갖게 될 것입니다.



2016 총선, 누가 '청년'을 이야기하고 있나?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20대 총선, 청년 공약을 파헤치다


한 달이 지나면 정말 투표를 하는 걸까 날짜를 확인해볼 정도로 선거 분위기가 허전하다. 선거구 획정이 늦은 탓인지 큰 기대를 버리고 미리 마음을 비워둔 탓인지 모른다.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필리버스터로 말미암아 국회에 모였던 의지들은 자기 생활로 다시 흩어졌다.

그렇다고 여의도 소식이 끊긴 것은 아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야당 대표의 말이 정치 뉴스를 휩쓸더니, 물밑 암투로 벌어지던 공천 과정의 갈등이 취중 진담처럼 우스운 꼴로 모습을 드러냈다. (권력자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아무리 서로 미워도 죽여버리지는 말자.) 다른 쪽에선 컷오프니 전략 공천이니 하며 경선 대진표가 하나둘 그려지고 있다. 이제 국회의원 선거가 한 달 남았다. 

새해를 맞아 선거를 전망하는 이야기에는 '청년'이 빠지지 않았다. 헬조선과 흙수저가 2015년의 단어로 꼽히고 청년 문제에 모두가 관심을 보이니, 이번 선거에서는 청년이 반드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과학적 분석이나 예측이라기보다는, 청년의 삶이 나아지길 바라거나 새로운 정치적 에너지의 등장을 기대하는 열망의 표현에 가깝다. 청년층의 표심을 원하는 기성 정치권의 욕심도 얼마큼은 담겨있을 것이다.

물정에 빠른 언론들부터 청년에 주목했다. 보도에 담긴 기성세대의 시선은 최연소 출마자와 20대 후보들을 소개하며 젊은 사람들의 '패기 있는 도전'을 높이(!) 샀다. '얼짱' 운운하며 외모를 칭찬(!)해주기도 했다. 한편 정당들은 앞다퉈 청년을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청년 희망 아카데미부터 청년 일자리 70만 개, 청년 안전망, 청년 희망 둥지, 청년 디딤돌 급여, 그리고 청년 기본 소득까지 그 구성이 어느 때보다 다채롭다. 청년 유권자들의 운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총선 청년 네트워크, 대학생·청년 공동 행동 네트워크, 대학생 참여 네트워크가 구성됐다. 

이 시점에 중간 점검을 한번 해야지 싶다. 다가오는 총선은 청년과 우리 사회에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정세와 구도를 읽을 깜냥까진 없으니, 선거의 기본 요소인 후보·정책·유권자의 세 가지 측면에서 현재 상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특히 청년층의 투표율을 유독 강조하는 접근에 대해서는 강한 유감을 전한다. 

청년 후보, 나이의 문제가 아냐 

청년 몫의 비례대표를 따로 두는 정당도 있거니와, 이번 선거에서는 '청년 후보'라는 타이틀이 눈에 자주 띈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따라 한 공개 경쟁은 사라졌지만, '청년 정치인'의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청년이라는 이름표는 후보에 의해 표방되기도 하고, 바깥에서 붙여지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청년이 제도 정치의 행위자이자 자기 세대의 대표자로 직접 나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세대'의 문제로 나타나는 당사자의 목소리는 역시 같은 세대인 사람이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세대 사이에는 아무래도 문화적 코드의 차이도 있고 말이다. 20대인 국회의원을 상상해 보라. 분명 기성세대 의원과는 다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척도에서도 좋은 일이다. 기득 정치인들이 공고히 쌓아둔 진입 장벽과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차세대의 정치 신인들이 좌절해선 안 된다. 다양한 삶의 요구를 대변하는 새로운 사람들이 국회에 끊임없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 후보'가 뜻하는 바에 있다. '청년 후보'는 무엇인가? 생물학적인 나이가 25세 이상 40세 이하인 젊은 출마자인가, 아니면 세대 교체의 기치를 내건 차세대 정치인인가? '스스로 청년인 후보'인가 아니면 '청년이 지지하는 후보'인가?

나는 어떤 의미에서건 모든 청년 후보들이 선전하길 응원한다. 누구도 불공정한 게임의 피해자가 되거나 선거 흥행의 장식품으로 쓰이지 않길 바란다. 청년들도 이만큼 실력이 있다고 증명해주길 기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4월 13일에 어떤 후보가 나와 같은 세대라고 해서 그에게 투표할 계획은 없다. 청년이기 때문에 청년을 지지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나쁜 것이다. 그런 사고 방식이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후보'는 마땅히 청년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청년 후보의 원리적인 성립 요건은 우선 청년의 고유한 이해관계가 형성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그것이 모이는 결사체가 있고, 마지막으로 조직된 요구와 후보 사이에 정치적 통로(political channelment)가 존재해야 한다. 노동자 후보도 여성 후보도 마찬가지다.

결국, 청년 당사자의 대중적 움직임 없이는 '청년 후보'도 존재할 수 없다. 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다른 나라에 있다. 바로 미국 대선의 버니 샌더스 후보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정치의 내용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청년 정책, 모든 세대를 위한 사회적 기획으로 

녹색당은 지난 1월에 발간한 총선 정책 공약집을 통해 "청년과 사회의 새로운 계약 맺기"라는 청년 정책의 비전을 가장 먼저 발표했다. 지역 단위의 청년 배당을 확대하는 한편, 전면적 기본 소득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출발선에서 우선 만 15~29세의 청소년·청년에게 월 40만 원의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핵심 공약을 밝혔다. 정치적 시민권, 교육권, 주거권, 노동권을 청년 세대의 권리로 제시하며 종합적인 공약을 선보였다. 녹색당의 청년 정책은 '권리'를 키워드로 삼을 수 있다. 

노동당은 소득 보장을 핵심 목표로 두고 "청년에게 월 100만 원의 보장 소득을"이라는 제목으로 청년 정책을 제시했다. 대학 등록금 무상화로 월 60만 원, 생계비 절감으로 월 10만 원, 기본 소득으로 월 30만 원을 합산하여 전체 월 100만 원의 소득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노동당은 부채 탕감, 노동 시간 단축, 최저 임금 1만 원 등의 내용도 청년 정책의 틀 안에서 구성했다. 노동당의 키워드는 '소득'이다. 

국민의당은 창당 1호 법안을 국민 연금이 참여하는 청년 공공 임대 주택 사업으로 선정한 이후, 지난 7일에는 "청년 희망 프로젝트 : 공정한 출발"이라는 제목으로 10가지 청년 공약을 발표했다. 취업 활동에 나선 청년에게 고용 보험 기금으로 월 50만 원씩 6개월 동안 300만 원의 구직 급여를 지급하고 취업 후에 갚도록 하는 '후납형 청년 구직 수당'이 대표 공약이다. 그 밖에 청년 스타트업 제품의 공공 구매 확대, 청년 구직자 인권 보호, 대학 입학금 폐지와 등록금 심사제도, 국가 장학금 사각지대 해소가 주요한 내용이다. 국민의당이 보도 자료를 통해 스스로 강조한 키워드는 '공정'이다. 

아쉽게도 다른 정당들은 아직 종합적인 청년 정책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정의당은 "국민 월급 300만 원"이라는 슬로건의 노동 정책에 최저임금 1만 원과 공기업·대기업의 5% 청년 고용 할당제를 포함했고, 청년에게 특화된 공약으로는 "복지 임금 100만 원" 10대 과제에 들어간 '청년 디딤돌 급여'를 제시했다. 지원을 필요로 하는 미취업 청년에게 월 50만 원, 연간 최대 54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27세 취업 준비생 1인 가구의 경우, 통신비·주거비의 절감과 청년 급여를 통해 매월 59만 원 상당의 가계비를 낮출 수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복지'라는 키워드를 꼽을 수 있겠다. 

더불어민주당은 2월 초에 발표한 민생 복지 공약에 청년 정책을 담았다. "청년에게 희망을"이라는 메시지로 청년 일자리 7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익숙한 약속과 더불어 월 60만 원씩 6개월간 취업 활동비를 지원하고 패키지형 공공 고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년 안전망'을 제시했다. 셰어 하우스 임대주택 5만 호와 신혼부부용 소형주택 5만 호를 공급하는 청년주거 정책도 있다.  

한편 새누리당은 3호 정책 공약인 "일자리 더하기"와 5호 정책 공약인 "배려 나누기"에 청년 관련 정책을 두었다. 청년 희망 재단에서 운영하는 '청년 희망 아카데미'의 전국 확대, 벤처 장학제도, 1~2인 가구 임대 주택 공급 확대, 행복 주택 신혼부부 특화단지 조성, 대학 연합 기숙사 확충이 있다.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를 위해 노동 개혁을 추진했던 당론에 따르자면, 집권 여당의 청년 정책이란 기승전'노동 개혁'일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최형락)


중요한 것은 개별 정책 공약이 아니라 그것이 배치되는 큰 그림이다. 그런 관점에서 총평했을 때, 정당마다 권리·소득·공정·복지·안전망으로 가치와 원리는 다양하지만, 전반의 방향에서 청년 정책이 '일자리 창출'과 '취업 지원'이라는 기존의 범위를 넘어서 '소득 보장'과 '사회 안전망'의 넓은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본 소득·구직 수당·실업 급여 등 형태는 개성 있지만, 크게 '청년 수당'으로 통칭할 수 있는 공통점이 새누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에서 나타났다. 저성장 시대 개막, 산업구조의 변화, 불안정 노동의 확대, 불평등의 심화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현실로부터 약자의 상징이자 시민의 다른 이름인 '청년'을 위한 정책 또한 패러다임 수준의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발견되는 청년 정책의 전환에 우리 사회가 복지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있다. 생애 단계마다의 각종 위험에 대응되도록 잘 설계된 복지 제도의 틀에서 청년에 특화된 프로그램이 있을지언정 오로지 청년만을 위한 정책은 없다. 청년을 위한 것은 모든 세대를 위한 것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청년의 권리를 통해 모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재현해야 한다. 

정책이 중심이 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당장 보기는 어렵겠지만, 복지 국가라는 해법과 시장주의 노선 사이의 갈림길 앞에 각 후보·정당들이 그러한 사회적 기획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진심으로 요청한다. 

청년 유권자, 투표율 올리기를 넘어 

마지막으로 유권자 운동을 살펴보겠다. 소위 '청년 유권자 운동'의 과제가 청년층의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너무 많다. 선거가 다가오니 또다시 20대 투표율 이야기가 나온다. “대통령은 투표하는 국민이 만든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가 오르내린다. 투표율이 높아야 표심을 좇는 후보와 정당들이 청년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건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투표독려 캠페인을 성실히 하자는 것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투표율 높이기'는 유권자 운동이 책임질 몫이 아니다. 특정 연령 집단의 투표율이 높거나 낮은 것은 수많은 변수가 복잡하게 연관되어 나타난 결과물이다. 한 달 동안 24시간 내내 투표 독려만 한들 질적으로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 행위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이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투표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선언으로는 효과도 감동도 없다.

혹자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 받지 못 한다'는 격언까지 인용하며 투표하지 않는 '게으르고 무책임한 청년'들을 꾸짖는다. 청년들이 투표하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것이니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언설도 있다. '20대 개새끼론'과 같은 논리구조다. 그러나 권리는 참여의 대가 혹은 참전의 전리품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투표하든 안 하든, 인간다운 삶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또 누군가는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기성 체제·기성 정치·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를 조직하여 투표율을 '혁명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젊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혐오'다. 박권일 칼럼니스트의 지적처럼 분노는 변화로 향하지만, 혐오는 '탈조선' 혹은 '공멸'로 이어진다. 반정치주의에 근거를 두고 정치 참여를 호소한다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모순이다. 헬조선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지면, 돌아오는 것은 참여가 아니라 냉소일 뿐이다. '헬조선'은 대안을 만드는 언어가 아니다.

유권자 운동은 선거 과정에서 정치 참여를 수단으로 벌어지는 대중 운동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선거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싸움에 최대한 개입하는 것이다. 선거의 장에서는 현실 정세를 조건으로 '선택의 기준'이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정치적 힘들이 경합한다. 예컨대 야당은 총선을 '집권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로 규정하고자 할 것이고, 또 다른 집단들은 각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경제 민주화를 위한', '소수자 혐오에 맞서는', '반칙과 특권을 없애는' 선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러한 힘겨루기는 언제나 전선의 형성을 두고 벌어지는 헤게모니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청년 유권자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청년이 제시하는 '정치적·사회적·윤리적 가치'를 모든 유권자의 기준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절대 청년층 투표율 높이기 정도에서 멈춰선 안 된다. 청년이 청년에게 말 거는 것에서 그만둬서도 안 된다.

그것은 좋은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세대 연대와 사회 연대의 큰 그림, 그리고 다른 세대와 집단에까지 공명하는 메시지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구체적인 청년 정책에서 출발하더라도 그다음에는 '청년을 위한 것'이라는 상징을 통해 모두를 위한 것을 구성하는 정치적 실력이 필요하다. '모든 세대가 함께 고민하는 지속가능한 다음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박근혜, 중-미의 대북 협상에 허 찔리나

[주간 프레시안 뷰] "북한을 국제 사회 일원으로 복원하는 게 한국 역할"


"박 대통령은 지금 한국의 안전보장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산을 세계에 보여주려 했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검토 등으로 김정은.시진핑의 허를 찔렀다. 미.중 협상이 서둘러 진행되고 유엔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탄생한 데엔 박 대통령의 냉엄한 성정과 결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지금 북한의 무역 의존도는 40% 정도다. 이는 가장 대표적인 수출 주도형 국가인 한국의 1970~80년대보다도 월등히 높은 비중이다. 이런 외부 의존형 경제에 가해지는 경제 제재는 북한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앞의 인용문은 중앙일보 4일자 전영기 논설위원의 칼럼 '살생부와 유승민', 뒤는 주사파에서 뉴라이트로 전향한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의 4일자 <조선일보> 칼럼 "中은 지난 7년을 허송세월했다"의 일부입니다. 

강력한 경제 제재에 의한 북한의 변화, 항복, 나아가 붕괴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납니다. "이제는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하며,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한 때"라는 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연설에 맞장구를 친 것이죠.

심지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인 유호열 고려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한국이 개성공단을 중단할 만큼 강하게 나가진 못하리라고 판단했을 것 (…)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의 이런 판단을 전제하고 내린 것"이라며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지난 6일 런던에서 한국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개성공단을 중단했기 때문에 (…) 중국을 움직이는 데(고강도 대북 제재 동참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대북 제재가 오히려 통일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언론 보도, 대다수 학자들의 발언들을 보면 마치 북한의 굴복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착각을 갖게 됩니다. 한국 주도의 강력한 대북 제재로(중국까지도 동참한) 북한의 태도 변화, 나아가 북핵 문제 해결이 일보 직전에 와 있다는 착각 말입니다.  


예, 물론 '착각'입니다. 종편을 비롯해 공영방송과 보수신문 등 거의 모든 언론의 집중 포화 속에 오직 한국 국민들만 '고강도 압박에 의한 북핵 해결 임박'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허를 찔릴 대상은 김정은이나 시진핑이 아니라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과 미국, '제재 이후', 대화와 협상에 착수 

한반도 문제의 최대 당사국인 중국과 미국은 이미 '제재 이후', 즉 대화와 협상에 의한 해결방안에 착수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두 나라 모두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특히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9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대규모 한미 합동 군사훈련으로 긴장이 고조된) 한반도 정세의 안정을 위해 각국의 냉정과 자제를 강조한 후 10일부터 이틀간 러시아 방문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주요 의제는 당연히 6자회담 개최일 것입니다.

이렇듯 주변 당사국들은 협상 모드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 정부만 '오직 제재'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 8일에는 '북한 식당 이용 자제'라는, 실효성도 없고 치사하기까지 한 독자 대북제재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대부분 언론들은 대단한 제재인 양 심각하게 보도했습니다. 한마디로 코미디입니다. 다른 당사국들은 제재와 협상을 동시 추구하는 데 비해 한국은 제재만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국제사회에서 '우물 안 개구리'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제재와 압박만으로 한 나라의 행태를 바꾼 적은 없습니다. 변화는 교류와 접촉, 대화와 협상에서 비롯됩니다. 이란과 쿠바가 그러했습니다.  

현재 중국과 미국, 나아가 러시아(어쩌면 북한까지도 포함한) 간에 벌어지고 있는 물밑 협상의 구체적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뀐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협상으로 정책 전환 

북한 연구자인 이정철 숭실대학교 교수는 9일자 창비주간논평('평화체제 입구론과 비핵화 팻말론')에서 "미국이 25년간 고수해온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 원칙을 버리고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론을 수용해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이런 정책 변화의 진원지는 중국이라고 관측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라는 징벌적 대북제재론의 발상법을 지닌 한국이 이런 변화를 추동했을 가능성은 제로이기 때문이죠) 즉 미국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에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논의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이정철 교수의 관측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북강경파이며 한때 백안관 안보회의의 고위관리로 근무했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의 2월 26일자 <중앙일보> 칼럼('대북 외교의 판이 바뀌고 있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다소 길지만 주요 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1월 6일 핵실험을 강행하기 불과 며칠 전 미국과 북한이 평화조약을 위한 회담을 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핵실험 이후 미국이 회담을 없었던 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WSJ의 보도에 대해 미 국무부는 보도가 잘못됐다며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워싱턴은 핵실험 전에 평화조약 회담에 합의하지 않았다. 사실은 이렇다. 평양이 평화조약 회담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평화조약 회담이 비핵화 회담과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평양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 대한 국무부의 발언은 이번 달 초 내가 베를린에서 들은 것과 일치한다. 

중요한 것은 국무부의 반응에 담긴 함의다. 국무부가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북한과 평화조약을 위한 회담을 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단 평화조약 회담에는 비핵화가 구성 요소로서 포함돼야 한다. 이런 형국을 표현하는 미국 속어는 'flipping the script(판세 뒤집기)'다. 즉,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지난 25년간 유지돼온 대북(對北) 협상의 형판(形板·template)이 점진적이지만 상당한 정도로 바뀌고 있는 현장이다.

과거의 합의에 담긴 논리는 두 가지였다. 첫째,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조약을 상정할 수 없다. 

WSJ 보도에 대한 국무부의 반응은 사실상 대북 대화에 새로운 선례를 남긴 것이다. 핵무기가 단지 한 요소에 불과한 포괄적인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의 가능성이다."

(☞바로 가기 : 대북 외교의 판이 바뀌고 있다(빅터 차, <중앙일보> 2월 26일))

미국 내 대북강경세력의 내부자(insider)라고 할 수 있는 빅터 차의 위와 같은 발언은 오바마 정부가 대북 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북핵 협상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이정철 교수는 "결국 현 사태를 진정시키는 길은 한미군사연습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 동시 병행의 고리는 한미군사연습의 중단 혹은 축소를 한 축으로 하고 북한의 핵과 로켓을 동결하는 것을 다른 축으로 하는 협상안을 입구에서 수용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2012년 무산된 2.29 합의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당시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핵동결과 미국의 경제지원을 맞바꾸기로 했지만, (합의에 포함되지 않은) 미국이 한미군사훈련을 강행하고 이에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로 맞대응함으로써 합의 자체가 무산된 바 있습니다. 즉 2.29 합의 무산의 주범인 한미군사연습과 로켓 발사를 상호 동결함으로써 일단 동결식 평화체제를 정착시킨 다음, 비핵화와 평화협정이라는 궁극적 해결책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동결식 평화체제가 정착된다면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북한은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장(DNI)의 방북을 전후해 '한미군사연습과 핵실험의 상호 중단'을 제안했고 작년 1월 9일에는 이를 공개 제안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가을 유엔회의에 이르기까지 이 방안을 꾸준히 제기해 왔습니다. 또한 중국에 정통한 한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1월 7일 왕이-케리 전화 통화에서 중국 측도 북한 핵 및 로켓 활동 동결을 첫 단계로 한 비핵화 협상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미국이 북핵 협상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협상은 성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집안 싸움에 골몰한 집권 여당, 북핵 협상에 기여할 수 있을까

물론 '한미 군사훈련에 손을 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선 양국 군부 등 한미 간에 성역처럼 돼있기 때문입니다. 한미 군사 훈련은 이제까지 딱 한 번(1992년) 중단된 바 있을 뿐입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규정한 남북기본합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였죠. 다음 해인 1993년에는 당시 국방장관 딕 체니(네오콘의 거두였죠)가 미 국무부나 주한 미 대사관과 상의 없이 군사훈련(팀스피릿)을 재개했습니다.  

이 때문에 이정철 교수는 "(기존의) 전략적 인내와 대북 압박이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점을 미국이 시인"하고 "추가적인 핵 능력 가시화가 북미 협상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이 이해"할 때, 비로소 잠정적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즉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말 대 말의 수준에서 교환하되, 행동 대 행동 수준에서는 '(한미의) 합동군사연습의 축소'와 '(북한의) 로켓과 핵의 동결 및 검증'을 교환하는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가기 : 평화체제의 입구론과 비핵화 팻말론(이정철 <창비주간논평> 3월 9일))
(☞바로 가기 : 북한과 미국, '동결식 평화 체제' 합의할 수 있나 (이정철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2015년 10월 26일))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문제는 현재의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동결형 평화체제에 동의할 것인가 라는 점입니다. 지금 현재는 오로지 대북 제재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금 집권 새누리당은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친박 대 비박이 목숨을 건 추악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8일에는 "김무성이 죽여버리게. 죽여버려 이 XX"라는 같은 당 소속 윤상현 의원의 발언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권력 장악을 위해 같은 당 대표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이런 정당에서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통 큰 시각을 기대하기란 그야말로 연목구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의 주역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입니다. 1991년 북핵 위기가 표면화된 이후 25년간 죽 그랬습니다. 1993년 3월 북한의 NPT(핵확산 금지 조약) 탈퇴로 본격화된 1차 북핵 위기는 1994년 북미간의 제네바 합의로(한국은 협상에 참여조차 못했습니다) 해결됐습니다. 2002년 10월 미국의 침소봉대로 제기된 북한 우라늄농축 의혹은 2차 북핵 위기(2003년 1월 10일 북한 2차 NPT 탈퇴 선언)를 불러왔지만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합의로 일단 봉합됐습니다(당시 한국은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톡톡히 했죠).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2012년 2.29 합의, 올해 초 미북간의 평화협정 비밀 논의 등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 쥐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채 오직 한국 혼자의 힘으로, 그것도 오직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백일몽에 불과할 뿐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은 남북 화해와 교류를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복원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이 한반도의 안정과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여당을 포함한 현재의 정치세력에서 이러한 전망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한반도의 최대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