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독재자의 무기가 되고 있는 ‘반테러법’

일취월장7 2016. 2. 17. 11:57


독재자의 무기가 되고 있는 ‘반테러법’

전 세계에서 반(反)테러법이 위세를 떨치고 있다. 반테러법은 ‘테러를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손과 입을 묶고 있다. 그러나 파리 테러가 보여주듯 반테러법의 효과는 의심스럽다.

  조회수 : 260  |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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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승인 2016.02.17  09:17:22

지난해 12월18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서쪽 60㎞ 지점에 있는 월렌코미에서 시민들이 대정부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최대 부족인 오로모족이 살고 있는 지역들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편입한다는 정부 방침 때문이었다. 한 달여 동안 시위가 이어져왔던 이날, 정부군과 경찰은 문자 그대로 살인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에게 발포한 것이다. 최소 75명이 사망하고 시위대 상당수가 부상당했다.
이날 군경의 발포는 에티오피아 법률상 ‘합법’이었다. ‘반(反)테러법’ 덕분이다. 이 법은 1991년 군사정권을 축출한 뒤 장기 집권을 하던 고(故) 멜레스 제나위 총리의 작품이다. 생전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며 한국의 경제개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그가 2009년 도입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 법안을 빌미로 반체제 인사와 정부 비판 성향 언론을 탄압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받아왔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발포로 수십명이 사망하자 국제 인권단체들은 ‘반테러법을 이용해 평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며 비판에 나섰다. 에티오피아의 한 인권단체 인사는 “자기 땅을 정부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시위한 것이 테러는 아니다. 이 법이 제정된 뒤 정부에 반대하면 무조건 반테러법 위반이고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도 합법적인 것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타체우 레다 정부 대변인은 “시위대는 폭력적 방식으로 시민들을 위협했다. 반테러법에 의거한 발포는 정당했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FP</font></div> 에티오피아 월렌코미에서 시민들이 대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에티오피아 월렌코미에서 시민들이 대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집트에서도 반테러법은 군과 경찰에 자유로운 무력 사용권을 부여했다. 지난해 8월 카이로 동부 나사르시티의 한 주택에 이집트 대테러 부대가 출동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총기를 난사해 집안에 있던 대학교수 등 일가족을 몰살시켰다. 살해당한 가족은 모두 비무장 상태였다. 이집트 정부의 대테러 부대가 왜 이들을 죽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집트 반테러법은 지난해 6월29일 히샴 바라카트 검찰총장이 출근길에 폭탄 테러로 숨지자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불과 두 달 만에 만들었다. 이 법안으로 테러 단체를 만들거나 주도하면 사형이나 종신형, 그리고 테러 단체에 자금을 대거나 합류하면 각각 징역 25년형, 10년형을 받을 수 있다. 이 법안은 엘시시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안겨주었다. 엘시시의 정적인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테러 조직’으로 규정했다. 누구든 무슬림형제단에 가담하거나 기부하면 이 법에 의해 징역 10년 이상을 받게 된다. 엘시시에게 반테러법은 정적 제거용으로 안성맞춤이다.
새해 벽두인 지난 1월2일 사우디아라비아는 저명한 시아파 지도자를 포함한 사형수 47명을 테러 혐의로 집단 처형했다. 알카에다 관련 테러에 가담한 혐의였다. 처형의 법적 근거는 반테러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지도자 알님르도 이날 처형당했다. 사우디 내 시아파 진영이 격분했다. 중동의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 역시 거세게 반발하면서, 사우디·이란 관계는 외교 단절로 치달았다. 사우디의 한 인권운동 관계자는 “이번에 처형된 이들은 반테러법의 희생양이다. 나는 이들이 사우디 왕실에 대한 위협 세력이지 테러리스트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REUTER</font></div> 지난해 12월18일 군과 경찰의 발포로 최소 75명이 사망했다. 오로미아 주에서는 시위 도중 트럭이 불에 타기도 했다. 
ⓒREUTER
지난해 12월18일 군과 경찰의 발포로 최소 75명이 사망했다. 오로미아 주에서는 시위 도중 트럭이 불에 타기도 했다.

반테러법의 효시는 9·11 이후 미국의 ‘애국법’


반테러법은 말 그대로 ‘테러를 반대한다’는 법이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9·11 테러가 일어난 후 10년간 ‘테러’ 혐의로 체포된 사람만 세계적으로 모두 11만9044명에 달한다. 이 중 3만5117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중국에서만 7000여 명이 테러 혐의로 구금됐고, 터키에선 쿠르드족 분리독립 운동가들이 테러 혐의로 대거 기소됐다. 시리아를 비롯한 아랍의 몇몇 독재정권은 반테러법을 근거로 ‘아랍의 봄’이라는 민주화 혁명을 짓밟았다.
반테러법의 효시는 미국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애국법(Patriot Act)이라는 테러방지법을 제정했다. 미국 의회는 연방수사국(FBI) 등 수사기관의 대테러 활동을 강화하고 감청 및 수색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는 법안 마련에 착수해 2001년 10월25일 통과시켰다. 법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서명한 그날 바로 발효됐다. 보통 수개월씩 걸린다는 미국 입법 기간이 이 법안에서는 불과 한 달 보름으로 단축된 것이다. 테러 용의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수사기관의 유선, 구두 통신 및 이메일 감청을 대폭 확대하고, 테러 혐의를 받는 외국인의 기소 전 구금 기간을 48시간에서 최고 7일까지 늘렸다.


캐나다에서도 지난해 5월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 권한을 대폭 강화한 ‘대테러법 개정안(C-51)’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정보기관이 테러 용의자들을 감청 등으로 감시할 수 있으며, 기소 없이도 체포·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2014년 10월 국회의사당을 포함해 수도 오타와 도심 3곳에서 무장 괴한이 총기를 난사한 사건이 터진 뒤 캐나다 정부가 만든 것이다.
프랑스 역시 강력한 반테러법을 시행해왔다. 2008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테러리스트가 머물기에 최악인 국가’로 러시아·싱가포르·이집트·요르단과 함께 프랑스를 선정했다.
프랑스인들은 역사적으로 테러에 매우 민감하다. 1950년대의 알제리전 기간에 벌어진 테러 공격에 대한 역사적 기억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사법권까지 지닌 특수부대가 테러리스트의 체포·수사를 진행하며, 영장 없이 용의자를 구금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AP Photo</font></div>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린 2015년 12월27일 중국에서도 반테러법이 통과됐다. 베이징의 번화가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인 공안들. 
ⓒAP Photo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열린 2015년 12월27일 중국에서도 반테러법이 통과됐다. 베이징의 번화가에서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인 공안들.

이런 프랑스조차 테러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지난해 1월의 시사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건과 11월의 파리 테러 사건을 두고 봤을 때, 강력하다는 프랑스의 반테러법이 어떤 효력을 발휘했는지 의심스럽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프랑스 하원은 테러 방지 목적에 한정해 국가 정보기관이 판사의 사전 승인 없이도 테러 용의자를 감시하고 전화 감청이나 이메일·메신저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더 강화된 반테러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국의 애국법 내용과 비슷해 ‘프랑스판 애국법’으로 불린다.
프랑스의 인권단체와 인터넷 업계 등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피에르 올리비에 쉬르 프랑스 변호사협회 회장은 “테러로부터 프랑스를 보호하는 내용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대한다”라고 말했다. 테러 전문 판사 마르크 트레비디크 판사도 “통상적인 사법적 감시가 빠진 위험한 법안”이라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법안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인터넷 업계다. 웹호스팅, 소프트웨어 개발, 전자상거래 등 800개 이상의 인터넷 업체는 인터넷에서 대규모 감시가 이뤄져 경제활동이 위축된다는 이유로 극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테러 공격을 예측하고 찾아내 예방하기 위한 감시 수단은 엄격하게 제한돼 사용될 것이다”라며 여론을 달래는 중이다.


프랑스 인터넷 업계가 프랑스판 애국법에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6월 벌어진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 때문이다.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던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국내 테러 분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무차별 감청 등 국민 사생활을 광범위하게 침해했다고 폭로했다. 이를 계기로 애국법에 근거해 전 세계를 유리 온실 보듯 도감청해 들여다봤다는 ‘프리즘 시스템’이 알려졌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 등 미국의 대표 기업들이 난처해졌다. 정부에 협조하면 고객의 사생활을 누출해야 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법안에 위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애국법으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NSA였다. NSA는 테러라는 이름으로 무소불위의 수사를 했으며 도감청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모았다. 마침내 2013년 12월 미국 연방 1심 법원인 워싱턴 지방법원은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위헌 소송에서, “NSA의 정보 수집은 시민에 대한 부당한 압수 수색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 4조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애국법이 사실상 폐지 순서를 밟게 된 것이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자유법안(USA Freedom Act)’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는 NSA가 미국 시민들에 대한 전화 통화 내용을 수집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명시되었다.


“소수민족 독립 세력 탄압 수단이 될 수도”


새해 첫날부터 중국에서도 반테러법이 발효되었다. 지난해 12월27일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중국 내외에서 일어나는 모든 테러에 적극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전격 통과시켰다. 총 10장 97조로 구성된 중국의 반테러법은 “통신·인터넷 기업은 공안 당국의 테러 수사에 협조해야 하고, 데이터 접속과 암호 해제 등에 대한 기술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인터넷 사용자의 개인정보 유출과 IT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국제적인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또 소셜 미디어(SNS) 등에 테러 현장 사진을 올리는 것이 금지된다. 신장이나 티베트 같은 지역에서 민족적 혹은 종교적 갈등이 생겨도 이 법안으로 인해 세상에 알려지기 쉽지 않게 됐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반테러법이 중국 내 (소수민족) 독립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신장 지구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간부는 “이제 우리는 고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외부에 우리 상황을 알릴 마지막 끈이 끊어진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중국의 반테러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해외 테러 현장에 중국군을 파병한다는 조항이다. 중동이나 아시아 등지에서 테러가 일어나면 중국군을 손쉽고 빠르게 파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홍콩의 한 테러 전문가는 “중국군이 해외에서 전쟁을 치를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이는 ‘테러의 씨앗’을 중국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이 그랬듯이 말이다”라고 우려했다.



‘반테러법’은 언론 탄압의 족쇄

  조회수 : 207  |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저널리즘은 테러리즘이 아니다.” 2014년 제66차 세계신문협회 총회에서 토마스 브루네가드 회장이 개막 연설을 통해 한 말이다. 그가 이렇게 강조했던 이유는, 제3세계 언론인 보호 차원에서 제정된 황금펜상을 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 기자가 수상했기 때문이다.
네가 기자는 에티오피아의 반(反)테러법을 비판하다 2011년 9월에 체포되었다. 다음 해 1월에는 반테러법으로 18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전엔 ‘아랍의 봄’ 관련 보도와 정부 비판 기사 등으로 인해 구금되기도 했다. 당시 판사는 “네가는 표현의 자유를 가장해 폭력을 선도하고 헌정을 전복하려 했다”라며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아랍의 봄’이라는 표현 자체에 에티오피아의 안보를 해치고 헌정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내외신 언론인이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11년 12월에는 에티오피아의 분리독립 단체를 취재하기 위해 불법 입국한 스웨덴 언론인 2명이 징역 11년형을 받았다. 모두 2009년 도입된 ‘반테러법’을 위반한 혐의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엠네스티 제공</font></div>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 기자(오른쪽)가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엠네스티 제공
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 기자(오른쪽)가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이집트에서도 반테러법 때문에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테러 사건 관련 오보나 정부 발표 이외의 내용을 보도했다간 20만~50만 이집트 파운드(약 3000만~76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원래는 최소 2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려 했는데, 언론기관과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로 그나마 벌금형으로 바뀐 것이다. 한 달에 고작 한국 돈으로 수십만원을 버는 절대다수의 이집트 기자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금액이다. 이집트의 한 인권활동가는 “반테러법을 이용한 언론 길들이기다. 언론 매체가 정부에 불리한 내용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사전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의 언론 자유는, 2014년 엘시시 전 국방장관이 대통령이 된 뒤 더욱 후퇴했다는 평가다. 시위와 집회를 철저히 차단하는 동시에 반정부 성향의 인사나 언론인들을 대거 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테러법에서 가장 큰 부작용은 바로 언론 자유의 위축이다. 정부는 언제든 불리한 언론 기사에 대해 ‘국가 안보’를 근거로 반테러법을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법조문만 보면, ‘언론 행위’ 가운데 어디까지가 저널리즘이고 어디부터가 테러리즘인지, 대단히 모호하다. 반테러법은 이런 모호한 사각지대를 비집고 언론 자유를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다.
2013년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영국의 진보 성향 매체인 <가디언> 지면을 통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불법적 정보수집 활동을 폭로했다. 영국 정부 관계자는 <가디언> 사무실로 찾아가 하드디스크 파기를 요구했다. 경찰은 스노든 관련 기사를 담당한 글렌 그린월드 기자의 동성 연인을 히드로 공항에 장시간 구금하기도 했다. 이처럼 언론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도 스노든 파문 이후 언론인 다수가 체포되거나 기소되었는데 그 법적 근거는 모두 자국의 반테러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