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이 된 한국 청년
새로운 희망을 찾아 한국 바깥으로 떠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탈조선 움직임은 기존의 이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국민을 길러내는 데도, 노동자를 길러내는 데도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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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승인 2015.12.08 08:17:31 |
전통적으로 한국 청년들은 동아시아에서 ‘과격’하기로 손꼽혔다. 항일운동과 반독재 투쟁 모두 청년들의 참여로 큰 흐름을 탔다. 그런데 일본(실즈), 홍콩(우산혁명), 타이완(해바라기 혁명)의 청년들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요구하며 ‘행동’에 나선 것과 달리 요즘 한국 청년들은 조용하다.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당면한 고민이 없는 걸까? 그렇지 않다.
‘청년’은 2015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이고 뜨거운 주제다. 다만 요즘 한국의 청년들은 시위가 아닌 다른 양태로 과격하다.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달고 사는 식이다. 언론에서도 청년의 비참한 현실이나 그들의 현실을 한번에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경쟁적으로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2015년의 단어라 할 만한 ‘헬조선’도 그중 하나다. ‘헬조선’에 대한 대책을 백가쟁명식으로 보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변화 속도가 언론과 연구자의 담론을 압도하면서 청년 당사자들의 언어는 점점 더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서울연구원과 하자센터의 청년연구팀은 이 문제와 관련해 청년들의 참여적 자기성찰을 통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헬조선 담론의 ‘당사자’들이 연구원으로 결합해 포커스그룹을 만들고 세미나·포럼 등을 운용하는 등 1년 가까이 연구팀을 굴려왔다. <시사IN>은 이들이 직접 사례를 모으고 자기성찰적으로 분석한 결과물을 ‘탈조선·~충·노오력·노답’이라는 4가지 키워드로 재정리하고 그 너머의 담론이 무엇인지를 모색하는 기획물을 4회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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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원 그림 |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을 준비 중인 친구 ㄱ(35·남)을 만났다. 오스트레일리아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적이 있는 ㄱ이 본격적으로 이민을 결심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는 워킹홀리데이 시절 고단한 하루 노동을 마치고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을 마실 때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러한 행복이 도무지 불가능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쉴 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은, 돌아온 한국에서 꿈꾸는 일조차 사치였다. 두 번째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때문이라고 했다. 국가 지도자를 뽑는 기준의 ‘미개함’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ㄱ은 기술이민을 위해 전국을 돌며 용접을 배워 전국 기능대회에서 수상까지 할 정도로 실력을 키운 뒤, 이민에 필요한 영어 점수를 높이기 위해 단기 스파르타식 영어학원이 있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한 방송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2040 젊은 층의 88%가 “한국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한국이 부끄럽다고 답한 이가 93%였다. 한 월간지의 특별기획 기사 제목은 “나아진다는 희망 없다, ‘탈(脫)한국’이 답이다”(<신동아> 11월호)였다. 이 기사에서 설문에 참여한 2030 세대의 51%가 ‘나는 한국이 싫다’는 말에 동의하고 있으며, 그 이유로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어서’가 50.6%로 가장 많았다. 많은 청년들에게 한국은 이미 떠나고 싶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사실 희망을 찾아 한국 바깥으로 떠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 때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못살던 시대에 사람들은 희망을 찾아 다른 선진 ‘국가’로 떠났다. 영화 <국제시장>의 파독 광부 등을 통해서 봤듯이, 1960~1980년대 해외 이주는 국가의 기획 아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해외’는 국내보다 더욱 많은 기회와 희망이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 이후에는 더 많은 한국인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해외로 이주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들은 소매상 등의 자영업을 통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1976년 해외 이주자 수는 4만6533명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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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탈조선’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다. 위는 공항 출국장 모습. |
1990년대 이후 세계 ‘시장’을 향한 두 번째 흐름이 형성됐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 제목이 이야기하듯 이때의 흐름은 특정 국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지향하는 ‘글로벌 진출’이었다. 1980~ 1990년대의 경제적 고도성장기를 거쳐 한국은 굳이 이민을 떠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제법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1994년 국회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비준 동의안이 통과된 직후부터 ‘세계화’는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지향점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기업이 ‘글로벌 경영’이라는 비전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으며, 청년들 역시 배낭여행, 해외 인턴십, 워킹홀리데이, 유학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글로벌 차원에서의 문화적 감각을 익혀나갈 수 있었다. 이 흐름은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 한동안 계속되었다.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떠난다
그리고 지금 담론화되고 있는 ‘탈조선’이 있다. ‘세계 경영’을 주창한, 절대 망하지 않으리라 여겨지던 굴지의 기업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고 사라졌다.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으며, 중산층 가족은 빠르게 해체되었다. 이후 금융 세계화와 민영화, 노동 유연화 등 모든 부문에서 경쟁이 일반화된 신자유주의 물결이 한국을 휩쓸었으며,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한국은 ‘헬조선’이 되었다. 헬조선에서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곧 ‘한국을 탈출’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고, 청년들은 이를 ‘탈(脫)조선’이라 불렀다.
첫째 흐름의 해외 이주는 국가 차원에서는 외화 수입을 위한 수단이었으며, 개인 차원에서는 낯선 국가, 특히 선진 ‘국가’를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희망이 있는 장소로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둘째 흐름의 글로벌 진출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갈 전문가로서 역량을 키우는 학습의 과정이었으며, 여기에는 한국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삶의 영토를 글로벌 ‘시장’으로 넓힌다는 자신감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셋째 흐름, 현재의 ‘탈조선’은 어떠한가? 무엇보다도 탈조선은 다른 나라에 희망과 기회가 있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국을 ‘탈출’하기 위한 것이라 앞의 두 시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떠난다는 것 자체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기 때문에, 탈출 그 자체가 희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청년들에게 탈조선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탈출은 새로운 ‘국가’나 ‘시장’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다. 탈조선은 여기가 죽기보다 더 싫다는 격렬함의 표출이다.
오스트레일리아를 향해 떠난다는 ㄱ의 또 다른 친구 ㄴ(35·남)은 ㄱ의 탈조선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너는 한국을 떠날 거면서 왜 한국 사회를 그렇게 비판하냐? 여기에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가 되냐? 굉장히 이기적이다. 난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난다.” 이처럼 현재 청년들이 탈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은 양가적이다. 누군가는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한국을 떠나지만, 남아 있는 자들의 박탈감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탈조선은 이민이나 글로벌 진출과 달리 손쉽게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국가 중심의 관점에서 탈조선은 자국 혐오의 혐의 때문에 도덕적이지 않은 것으로 비난받으며, 시장 중심의 관점에서 탈조선은 한국에서 패기 넘치게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노오력’을 하지 않는 것으로 비난받는다.
그러나 청년들이 탈조선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오히려 한국을 무대로 한 국가나 시장의 기획 자체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즉 탈조선은 국익을 위해 희생하는 ‘국민’을 길러내는 데도 실패했고, 시장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동자’ 또는 ‘소비 주체’를 길러내는 데도 실패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자국에 대한 혐오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지고 있을 때, 기업 등의 시장에서 더 이상 새로운 기회를 만들 여력이 없을 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탈조선이다.
어쩌면 이러한 실패는 의도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지 않고 그저 살게 내버려두는, 근대도, 근대가 아닌 것도 아닌 묘한 시대의 통치 결과를 탈조선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탈조선은 아무도 서로를 돌보지 않는, 즉 ‘사회’가 실종된 국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절망적인 자구책의 수사인 것이다. 차라리 난민이 되기를 선택한 것, 그것이 탈조선이다.
그렇다면 난민으로서의 삶은 어떤 걸까? 배우를 꿈꾸며 다니던 대학을 그만둔 ㄷ(25·여)은 우울감과 불안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제 몸 하나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할 뿐인데도, 한국 사회는 이것조차 사치로 만들어버렸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금체불·착취 등 각종 ‘갑질’에 시달리면서 ㄷ은 완전히 소진되었고, 결국 배우의 길을 포기해야 할까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ㄷ이 생각하는 유일한 희망은 인도나 부탄·네팔 등 ‘한국 같지 않은 나라’에 2개월 정도씩 체류하며 ‘헬조선’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
“당신은 한국에 왜 남아 있습니까”
비혼 여성인 초등학교 교사 ㄹ(33) 역시 최대한 한국을 떠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 한다. ㄹ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성적 대상화가 심해지면서 일상생활에서조차 불안과 공포를 느낄 정도로 두려움의 강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상이 공포로 변하는 순간, 더 이상 한국은 살 만한 나라가 아니다. 현재 ㄹ은 해외 파견 근무를 알아보는 등 ‘탈조선’을 향한 장기적이고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일에서 보람을 느끼면서도 먹고살아갈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남자든 여자든 앞으로의 삶 정도는 계획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살면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느 하나도 충족되지 않는 나라에 왜 남아 있느냐를, 저는 오히려 묻고 싶어요.” 한국은 이제 왜 남아 있는지를 묻는 나라가 된 것이다.
레바논 베이루트와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로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미국과 유럽은 테러 공포에 질려 있고, 아프리카에서는 학살이 일상처럼 벌어지고 있다. ‘헬조선’을 넘어선 ‘헬지구’라는 말이 등장했다. 무너지고 있는 것이 단지 한국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는 말이다. 전 지구적으로 국민의 시대가 저물고 난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아감벤이 ‘벌거벗은 삶’이라고 한 난민이 지구인들의 보편적인 삶의 형식이 되고 있다.
‘누가 국민인가’를 묻는 것으로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또한 극소수 글로벌 엘리트들에게만 열리는 지구의 시장화를 통해서도 난국은 타개되지 않는다. 탈조선이라는, 이 ‘심정적’ 난민들은 낱개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보호하는 상호 호혜적인 연대의 영역을 다시 상상하고 발명해야 한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아이들 생각의 힘은 발끝과 손끝에서 나온다
아이들 생각의 힘은 대부분 발끝이나 손끝에서 나온다. 컴퓨터·문제지와 과잉보호가 넘치는 ‘건물’에서 밖으로 아이들을 내보냈으면 좋겠다.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는다. 녀석들은 교문 앞에서 동무를 기다리다가 만나면 팔짝팔짝 뛴다. 친한 동무, 신기한 꽃이나 나뭇잎, 유리나 사금파리류의 반짝이는 ‘쓰레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관심 대상 1호다. 개구쟁이 아이들 몇몇은 5분이면 족한 등굣길을 30분 넘게 걸리기 일쑤다. 운동장의 모래, 곤충이나 벌레들, 주변 공사 현장 등 온갖 사소한 변화와 움직임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이런 ‘호기심 천국’의 아이들은 대개가 밝고 건강하게 성장한다.
아이들 생각의 힘은 대부분 발끝이나 손끝에서 나온다. 등굣길은 그 자체가 사유와 놀이와 자립의 시간이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과정이고 이런 것들이 모여 유년기 삶의 ‘히스토리’를 구성한다.
몸과 마음이 지친 아이들은 어깨와 표정도 딱 그만큼 무겁다. 눈을 마주치면 마지못해 딱딱한 인사를 건넨 후 땅만 보며 걷다가 교실로 직행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예외 없이 주변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움직임 하나에 아이가 지닌 모든 상황과 특성이 거의 다 담겨 있는 셈이다.
제일 안타까운 일은 자가용 등교다. 학교 앞 도로가 자가용 등교 차량으로 엉키기 일쑤다. 날이 궂은 날은 위험한 상황이 많다고 자제를 부탁해도 교문 앞까지 정성껏 ‘모셔주고’ 싶은 지극한 사랑을 막지 못한다. 경험의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잘못된 양육 문화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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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성 그림 |
대학생 자녀의 학점을 교수에게 따지고, 취업한 자녀의 직장 상사에게 청탁을 넣는 우스꽝스러운 풍경이 이런 데서 싹튼다. 교사를 자녀로 둔 부모가 교실 청소와 환경정리를 대신 해주고, 교장·교감에게 학년과 담임 배정 문제를 청탁하거나 항의하는 이상한 상황도 벌어진다. 대졸자의 51%가 캥거루족이라는 통계 또한 청년실업의 어려운 현실 못지않게 이러한 양육 태도와도 관련이 깊다.
더욱이 ‘한번 삐끗’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불안한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은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가족 관계를 애정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미성숙한 어른아이를 다룬 영화 <영 어덜트>(2011)의 주인공처럼, 주체적인 삶의 방식을 놓치고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결여된 고장 난 감정체계를 가진 성인이 자꾸 늘어난다.
<부모의 자존감>(양철북)의 저자 댄 뉴하스는, 건강한 양육이란 ‘아이를 잘 보살펴 키우고, 그런 다음 자유롭게 놔주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물론 그 반대는 ‘아이를 잘 돌보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려는 아이의 노력을 묵살해버리는 것’이다.
제대로 ‘못 놀아봐서’ 생기는 일들
과도한 간섭과 통제는 공부의 즐거움도 앗아간다. 유년 시절의 모든 공부는 반짝이는 호기심과 풍부한 감성이 기본이다. 자신의 경험 세계를 기반으로 직관 혹은 직감적으로 느낌을 얻는 일이며, 그렇게 깨달은 분별을 개념화하는 것이 그들의 공부법이다.
아이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는 과정을 가만히 보면, 논리적 사고 과정이나 반복학습의 결과가 아니라 그냥 오감을 통한 느낌으로 ‘탁’ 알거나 ‘아!’ 하고 느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느낌을 지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의 공부는 지루하지 않다. 타자 또는 대상과의 감정적 교류 경험으로 터득한 생생한 감성의 힘이 센 아이일수록 자발성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주도성이란 결국 결핍과 욕구를 스스로 느끼고 이를 채우고자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험과 감각 속에서 느끼지 못하고, 끝내 추상적인 용어만 억지로 외우는 공부는 깊이도 재미도 확보하기 어렵다. 감각적 느낌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는 두렵거나 지겹거나 둘 중의 하나다. 감성의 힘이 약한 아이들은 궁금함이나 신기함·놀람·호기심 등을 스스로 생산하지도 못한다. 새로울 것도 놀랄 것도 없다. 제대로 ‘못 놀아봐서’ 그런다.
방학이 싫다는 아이들이 꽤 많다. 학원 순례 때문이다. 컴퓨터와 문제지와 과잉보호자들이 넘치는 ‘건물’에서 ‘밖의 세상’으로 아이들을 좀 내몰았으면 좋겠다. 마음껏 뛰고 노는 아이들이 동네마다 넘쳐난다면, 장담컨대 대한민국의 미래는 한층 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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